이토록 재밌는 수상한 과학책 - 우주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 20가지
호르헤 챔.대니얼 화이트슨 지음, 김종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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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렸던 모든 결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바나나를 많이 먹었거나 먹지 않았거나, 중요한 친구를 만났거나 만나지 않았거나, 과일 카트에 치일 뻔했던 시간에 집에 있기로 결정했거나 혹은 밖에 나가서 카트에 치이거나 했던 일들 말이다. 게다가 당신은 우주에 관한 이 실없는 책을 발견하고 읽기로 결심했다. 지금 여기에 당신의 존재가 가능하려면 45억 년 전부터 시작된 그 모든 일이 일어났어야 한다. 한편 그 모든 일이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일어나 또 다른 당신을 만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p.49


사람들에게 시간 여행은 매우 흔한 소망이다. 영화나 SF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시간 여행에 대한 상상 한번 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지구에 방문한다면 어떨까? 왜 외계인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우주 어딘가에 나의 또 다른 복제본이 있다면 어떨까?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왜 우리는 순간이동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본 적이 있을 만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탠퍼드대학교 공학자 호르헤 챔과 물리학자 대니얼 화이트슨은 팟캐스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해왔다.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대니얼과 호르헤가 설명하는 우주'에서는 마이크로파부터 은하계 간에 벌어지는 현상, 가상의 기본 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호기심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받은 질문 20가지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과학적인 답을 들려준다. 우주, 외계인, 블랙홀, 핵융합, 양자역학 등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들 특유의 유쾌한 말솜씨와 유머, 그리고 깨알같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들 덕분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과학적 질문들이 가득해 곧 다가올 여름 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물리학에서는 때때로 잘못된 질문을 해서 엉터리 답을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질문은 우주가 어딘가로부터 왔을 것임을 가정하고 묻는 것이다. 또한 이 질문은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는데, 어떤 조건 아래에서는 우주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우주가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면 어떨까? 우주는 존재해야 하고, 우주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안이 실제로 유효한 선택이 아니라면 어떨까? 위 질문은 괴상한 철학적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매우 수학적인 논거가 있다.           p.216


과학적 정보로 가득한 책이지만, 지식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질문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각각의 상황을 직접 상상할 수 있도록 글을 이끌어 나간다. 분명 과학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큭큭대며 웃을 수 있는 포인트도 많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상상도 있어서 그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너무 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엔지니어와 물리학자 각각의 대답을 도표로 그려 정리했다. 예를 들어 수행 과제가 '핵무기로 칠면조 요리하기'라면 엔지니어는 '어렵지만 가능함'이라고 대답하고, 물리학자는 '당연히 가능함'이고, '산 정도 크기의 케이크 굽기'가 과제라면 엔지니어는 '불가능함, 물리학자는 '절대적으로 가능함', '태양 표면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로 비행하기'라면 엔지니어는 '그러지 않기를 바람', 물리학자는 '안 될 이유가 없음'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라고 알고 있다. 적당한 온도와 숨 쉴 수 있는 대기, 지표면을 흐르는 액체 상태의 물과 같이 매우 기본적인 것조차 다른 행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지구에서 가까운 '화성'이다. 그렇다면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 수도 있을까? 화성을 개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장기적으로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화성이 우리가 이사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면 화성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가지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이 책의 두 저자는 서문에서 '화장실에서 이 책을 보다가 물 내리는 것을 잊지는 말자.'라고 썼다. 위트있게 표현했지만,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과학책이 이렇게나 웃기고, 재미있어도 되나 싶게 흥미진진한 상황들이 매 페이지마다 가득하니 말이다. 엉뚱한 질문들과 기발한 상상, 유쾌하고 귀여운 카툰과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두 저자의 설명까지... 우주와 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특별한 책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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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 창비교육 성장소설 12
안세화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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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담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할 것이다. 긴긴밤,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을 떠올리며 숱하게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잡아 볼 것이다. 그 방법이 평생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도,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일단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엿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볼 수밖에 없다.                 p.130~131


나은은 얼마 전부터 이상한 꿈을 연달아 꾸는 중이었다. 잊을 수 없는 십이 년 전 그날, 그 사건의 완벽한 재현이 꿈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그날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 두 명을 구하고 대신 하늘로 갔던 소꿉친구 수빈 곁에 나은이 있었다. 만일 그때 인사도 없이 떠난 그를 잡았더라면, 바다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그 인생은 지금보다 나았을까? 끊임없이 솟아오른 생각은 그날 수빈이 살려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다다르고, 나은은 두 사람을 찾아 보기로 한다. 어린 시절 사고를 모른 채 각자 삶을 살고 있던 고등학생 은호와 도희는 자신들을 지켜보는 나은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오래 전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수빈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나은은 수빈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왔었다. 하지만 최근 반복되는 꿈을 꾸게 되면서 다시 그곳을 찾는다. 이상한 꿈은 오후 3시에 시작되어 수빈이가 사고를 당하기 직후인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실제 취침 시간은 상관없이, 언제나 꿈속 그곳에서의 시간은 매번 단 한 시간이었다. 자신의 꿈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은은 과거를 바꿔 수빈을 살려보고자 한다. 그래서 십이 년 전 소소리 마을 어딘가에 있던 여섯 살 은호와 도희를 찾아서 그들이 바다에 빠지지 못하도록 막아볼 셈이다. 수빈을 되살려 내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은은 달리고, 또 달린다. 한편, 지금까지 몰랐던, 하지만 현재의 자신들을 있게 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은호와 도희는 수빈에 대해 알아보고자 사건이 일어났던 그곳으로 향한다. 




"종종 생각했어. 그날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정대로 선착장까지 함께 갔다면 어땠을까. 그 장면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어. 노을이 내리고, 갈매기 소리가 울리는 그곳엔 자주 같이 있었으니까. 나란히 앉아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 걔가 먼저 내 이름을 불렀겠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그러면 난 걔가 들려줄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테고. 그런데...... 항상 그다음 장면이 잘 상상되지 않았어. 아무리 기다려도 수빈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걔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내가 전혀 모르니까."                  p.197~198


만약 과거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단, 그럴 경우 그가 구해냈던 두 아이의 미래는 사라진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관 없는 두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긴긴밤,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을 떠올리며 숱하게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쳐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을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잡아 보고 싶지 않을까. 그 방법이 평생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도,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내가 바꾸려는 미래는 일확천금을 번다거나,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을 다시 살려내, 그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 꿈 속에서 수빈의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도착한 나은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수빈이는 자신의 친구를 죽게 만들었던 은희와 도희를 지켜보며 생각한다. 사고의 원흉은 이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선택은 수빈이 했고, 아이들은 운 나쁘게 운명의 장난질에 휘말렸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 사고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빈이의 잘못도 아니었다. 미래를 바꾸어 볼 기회가 단 한 번 남은 지금, 수빈은 고민한다. '만일 내가 꿈속에서 수빈이를 붙잡으면, 현실에서 은호와 도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과거를 바꿀 경우 누군가의 희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은과 함께 독자들도 고민에 빠진다.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어떤 선택이 더 후회하지 않을 미래로 데려갈 것인지 말이다. 학업의 무게에 눌려 바쁘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어른들에게도,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표지의 색감만큼이나 상큼하고 찬란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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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야식
하라다 히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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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쿄 교외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합니다. 도서관의 이름은 따로 없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밤의 도서관'이라고 불러 주세요. 실제로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문을 엽니다. 근무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심야 1시까지. 휴식 시간이 한 시간 있습니다. 일반 도서관과 다르게 평범한 책은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다루는 책은 전부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의 장서뿐...... 작가가 작고한 뒤 책을 기부받아 우리 도서관에서 전시하고 정리하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p.25


도쿄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문을 여는 이곳에 살아 있는 작가의 책은 없다. 오직 죽은 작가들의 책만 모여 있는 책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10시가 되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식당에 모여 야식을 먹는다. 음식 또한 특별한데, 바로 책 속에 나오는 요리를 재현했다는 것이다. <시로밤바>에서 오누이 할머니가 만드는 카레라이스, <빨강머리 앤>에서 앤과 다이애나가 맛있게 먹었던 버터오이샌드위치, 그 외에도 정어리쯤과 당근밥, 통조림 요리 등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요리를 야식으로 먹을 수 있다.


책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던 오토하는 교원 채용 시험에 떨어진 뒤로 출판사, 에이전시 회사, 대형 서점 등에서 전부 떨어지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계약사원으로 서점에 들어갔다. 일 자체는 즐거웠지만 무급 야근은 당연했고, 월급도 너무 적었으며, 점장과 잘 맞지 않아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점점 늘어가던 차에 오토하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게 된다. 밤의 도서관을 운영하는 오너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 오토하는 면접을 보고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방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이곳 밤의 도서관에 오게된 미나미는 일할 때 필요한 책만 읽고 그 이상은 책을 더 찾아서 읽거나 공부하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필요한 책이 많으니 독서가처럼 보일 뿐 자신은 책에 대한 열의가 전혀 없었다.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언제 자신의 가면이 벗겨질까 늘 두려워한다. 공립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마사코는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고, 업무를 위해 책을 외워가며 일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 좋아했던 독서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예전만큼 즐겁게 책을 읽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각자 자신만의 비밀과 고민을 간직하고 있는 직원들이 모여 밤의 도서관을 운영해나간다.





"오늘은 <빨간 머리 앤>의 밤이야."

", 좋네요. 그런데 <빨간 머리 앤>에 음식 이야기가 있었나. 생각보다 없는 것 같네요?" 오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앤이 바닐라 향신료로 착각하고 진통제를 넣은 건 젤리를 넣은 레이어 케이크고, 다이애나가 학교에 가지고 간 건 나무 딸리 파이였죠? 디저트라면 잔뜩 있는데요."               p.174~175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 직원들 외에도 아무도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는 도서관 오너를 비롯해 매일 밤 도서관에 방문하는 할머니, 갑자기 나타나 특정 작가의 책을 다 찾아내라는 유명 작가, 인기 작가의 사후에 그의 책을 처분하려는 가족과의 만남, 도서관의 장서인이 찍히지 않은 등록되지 않은 책의 등장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책을 다루는 직장인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서점의 잇따른 폐업과 사서의 비정규직 고용 등 책에 대한 애정만으로 버텨내기엔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낮술>, <호로요이의 시간>, <우선 이것부터 먹고>, <할머니와 나의 3천 엔>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하라다 히카의 신작이다. 3권으로 출간되었던 <낮술>이라는 작품을 특히나 좋아한다. 지킴이 일을 하는 삼십대 여성이 하루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길 수 있는 점심에 맛있는 음식과 거기에 어울리는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그렸던 작품인데, 음식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었다. 하라다 히카는 소설을 통해서 좋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줄 수 있는 온전한 행복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래서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가 되었다. 밤에만 문을 여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야식이라니... 그 설정 만으로 읽기 전부터 반해버렸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먹는다는 판타지를 구현시켜준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상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등장 인물이 맛있게 먹었던,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멋들어지게 묘사했던 그 음식을 함께 먹어보고 싶다는 로망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만약 '밤의 도서관'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연간 이용권을 끊어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이야기의 힘은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잊어 버리게 해준다. 독서가 완벽하게 휴식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하라다 히카의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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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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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이 여러분 독서 모임에서 첫 번째로 읽을 책인가요?"

퍼트리샤가 묻자, 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골랐어요. 당신은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퍼트리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독서는 자신의 삶에서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현실이 괴로울 때마다 항상 책 속 세상으로 도망칠 수 있어서였다. 외로울 때마다 책이 위로하며 함께 있어주었고, 그렇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모든 문제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었다.            p.82 ~83


고등학교 서무실에서 일하는 퍼트리샤는 어느 날 하얀 봉투에 담긴 우편물을 하나 받게 된다. 발신인이 없는 우편물의 소인은 스웨덴이었고, 봉투 안에는 작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동생 매들린의 열여덟 살 생일에 선물한 거였다. 스웨덴으로 떠났던 날 매들린은 이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지 30여 년이 지났다. 목걸이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들린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퍼트리샤는 그렇게 낯선 나라 스웨덴으로 향한다. 그곳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유셰르였다. 매들린은 30여 년 전 유셰르의 자유 교회에서 인턴 자리를 얻었고, 일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과연 퍼트리샤는 동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상관을 조르고 졸라 얻어낸 특별 휴가의 기한은 3주였다. 퍼트리샤는 어떻게는 그 안에 동생의 실종에 관련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이야기는 현재 퍼트리샤의 시점과 30년 전 동생 매들린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당시에 매들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금씩 알게 되지만, 현실의 퍼트리샤는 동생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오래 전이라 당시의 기억은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했으며,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혹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매들린이 자발적으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던 중 퍼트리샤는 묶고 있는 호텔의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워낙 책을 좋아했기도 했지만, 동네 주민인 독서 모인 친구들에게 사연을 말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퍼트리샤는 작은 창문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결치는 파도와 목 놓아 우는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쩐지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모나의 책이 있는 B&B'에서 또 환상적인 아침 식사를 할 채비를 마친 그녀는 다시금 빠르게 머리를 빗었다. 매일 아침 모나는 오븐으로 폭신폭신한 호밀빵을 갓 구워내어 그 위에 버터를 발라 사르르 녹인 다음 시럽과 등자 열매, 크림치즈, 홈메이드 마멀레이드를 같이 내놓았고, 거기다 시장에서 방금 사 온 훈제 고등어와 이웃 농장에서 조달한 커다란 갈색 달걀도 곁들여 아주 멋진 아침상을 차렸다.             p.356


독서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모나의 책이 있는 B&B'는 경쾌한 건축 양식이 특징인 오래되고 노란 저택이다. 모나는 단지 편안해 보인다는 이유로 호텔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했는데, 덕분에 호텔에 들어서면 마치 나이 지긋한 사서의 거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에 둔 이상한 화분 사이, 다 해진 소파 옆 협탁 위, 온갖 그릇과 장식품들 사이마다 책이 흩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텔은 유셰르 마을의 공식 기관 같은 곳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사방에 책이 가득한 작고 아늑한 호텔, 모나가 구워주는 맛있는 빵과 음식들, 생각만 해도 설레이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동생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가 중심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독서 모임의 회원들인 중년 여성들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퍼트리샤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로부터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의지가 되어주는 치유의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혹은 독서 모임이 소재가 되는 작품은 언제나 설레임을 안겨 준다. 이 작품은 <템스강의 작은 서점>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프리다 쉬베크의 신작이다. 전작이 낡고 오래된 서점을 다시 살려내려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다는 미스터리를 한 축으로 호텔 주인이 여는 작은 독서 모임이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따뜻한 드마라를 그리고 있다. 완두콩 색으로 칠한 오래된 계단 난간, 계속 새로 천을 씌워 긴 세월 동안 사용해온 해진 소파, 녹색 대리석 장식 선반이 달린 낡은 벽난로, 한 세기도 전에 직접 손으로 짠 짙은 색 나무 서가, 고집불통 늙은 고양이,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템스강 풍경까지 들어서는 순간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작은 서점만큼이나 이번 작품의 배경 또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유셰르에서 펼쳐지는 작은 독서 모임과 문학 축제,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을 통해서 따스한 위로의 시간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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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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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의 삶. 그 이후의 삶.

클라라 이전의 모든 것은 생기 없고, 텅 비고, 임시방편처럼 여겨졌다. 클라라 이후는 나를 전율시키고 겁먹게 했다. 방울뱀들의 골짜기 너머 물바다의 신기루처럼.

나 클라라예요. 그 한마디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었으며, 그녀를 떠올리고 싶을 때마다 돌아갈 수 있던 단 한 가지였다. 기민하고 따스하며 신랄하고 위험한 그녀를.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이 한마디에서 퍼져 나왔다.            p.13


크리스마스 이브, 홀로 참석한 파티에서 나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트리 뒤편의 창가에 서 있다. 그때 누군가 한 손을 불쑥 내밀고 말한다. "나 클라라예요."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사실처럼 퍼뜩 내뱉은 그 말 한마디로 인해 그날 밤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 테라스로 가 뉴욕의 밤 풍경을 보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녀에 대해 더 알고, 더 듣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후 나는 매일 밤 클라라를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는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만난 날부터 딱 여드레 밤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추측해보고, 지난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상대를 향한 갈망과 희열에 이르기까지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며 마음속을 휘젓는 시기이니 말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더없이 섬세한 문장으로 그 순간의 감정들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그려내고 있다. 한쪽이 다가서려 하면 다른 한쪽이 한 걸음 물러서는, 좀처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진척이 느린,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온갖 생각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롱리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서로 사랑에 빠졌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불처럼 타올라 첫 눈에 반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말이다.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상대가 하지도 않은 행동을 미리 짐작하고 걱정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내내 말이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했던 모든 것들이, 맨 첫 번째 밤부터 마지막 밤까지, 심술과 자존심으로, 또 그 사이에는, 상당량의 두려움과 경고로 지배되었던 한편, 가장 중요해야 마땅했던 그 하나의 단어는 말없이 남아 있으리라는 선고를 받은 단어였다가는 이윽고 그것 역시도 단단하고, 빙하 같고, 또 바위같이 되어버렸던 일을 생각했다.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다가는, 밤에다가는, 공원의 동상에다가는, 내 베개에다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클라라,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놓쳐버렸기 때문에,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p.683



클라라를 만나고 다음 날, 나는 하루 종일 그녀 생각을 한다. 눈 속에서 헤어진 일부터 코트를 입었다가 입지 않은 일, 악수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배웅해 준 일, 그녀가 빌렸던 우산을 수위에게 건네준 일,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던 일... 나는 완전히 넋을 잃은 채 온종일을 보낸다.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보고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담요처럼 덮은 눈을 보며 걷는다. 나는 그 산책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새 눈 내리는 뉴욕의 밤거리를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특별히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전혀 지루할 새가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세상에 독자인 내가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 남자가 되었다가 그를 안달 나게 만든 여자가 되었다가 그렇게 두 사람과 함께 여드레 밤을 보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파인드 미>, <하버드 스퀘어>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안드레 애치먼의 신작이다. 그 동안 만나왔던 작품들에 비해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인데, 768페이지 내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내면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탐구하는 소설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레임과 불안한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해 서로 사랑에 빠졌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연애소설로 완성시켰다. 특유의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인해 이들과 함께 하는 여덟 번의 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 감정을 그려내고 있어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도 이렇게 뛰어난 몰입감을 안겨준다는 것이 안드레 애치먼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사랑을 원해요,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나는 로맨스를 원해요. 나는 반짝임을 원해요. 나는 우리 삶에 마법을 원해요."(p.189) 당신도 그렇다면, 이 황홀하고 우아한 연애소설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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