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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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교술이란 결국 일종의 독심술이며, 나를 맞아준 부인에게는 그 귀한 재능이 있었다. 공감은 마음뿐만 아니라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고, 블래킷 부인과 내 세계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하나였다. 게다가 부인에게는 궁극의 재능, 천상이 허락하는 가장 고매한 재능이 있었으니 바로 완전한 이타였다. 때때로 부인의 다정하고 열심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찌 된 사연으로 이토록 빛나는 인물이 북쪽 바다의 외딴섬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의아해졌다. 어쩌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일지도, 각자 흩어져 살지만 서로가 절실한 이웃들에게 부족한 것들을 보충해주기 위해서 일지도 몰랐다.                    p.75



'나'는 짧은 첫 방문과 뱃놀이 길에 둘렸던 두세 해 여름을 뒤로하고 다시 더닛 랜딩을 찾았다. 여름 한 계절을 지낼 숙소로 거리 끝에 위치한데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이 있어 번잡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아늑해 보이는 앨미라 토드 부인의 아담한 집을 선택한다. 하지만 조용히 은둔하며 글쓰기를 할 생각이었던 '나'는 그곳에서 결코 은둔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약초 애호가인 하숙집 주인 토드 부인의 세심한 환대 덕분이다. 토드 부인은 정원에 있는 약초밭에서 제배하는 풀들을 끓여 몸이 아픈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마을 의사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 약초 채집이 제철을 맞은 6월 말에 도착했기에, 토드 부인이 화창한 날마다 숙박인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토드 부인과 산책하며 지혜를 전수받고, 그녀의 일을 도와주느라 7월이 훌쩍 지났는데, 그러다 보니 마감이 지나버렸으나 꼭 써야만 하는 긴 글을 떠올리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토드 부인에게 당분간은 방에 틀어박혀 일에 전념해야겠다며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웃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늙은 선장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 건너편에 있는 토드 부인의 엄마를 함께 만나러 가기도 한다. 그렇게 더닛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삶을 함께 경험하는 동안 여름 한철이 천천히 지나간다. 토드 부인은 그 이웃들과 함께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저마다 고생을 잔뜩 하고 그 고생의 명암을 전부 깨우칠 때까지' 함께 해왔다. '나'는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서로에게 한 시절을 온전히 내어주는 이들의 삶을 함께 체험한다. "주어진 삶을 최대한 즐기며 한껏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누구든 마음이 좋아지는 것 같아."라는 극중 토드 부인의 말처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삶들이 그런 느낌이었다. 유쾌하고, 용감하고, 애틋하고, 따스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평범한 일상의 세계 말이다. 




그곳에 속세가 있었고, 이곳에 능히 시작된 영원을 사는 조애나가 있었다. 우리 모두의 생에는 외따로이 고립된 장소가 있다고, 끝없는 후회와 비밀스러운 행복에 바쳐진 장소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한 시간이나 하루쯤은 동행 없는 은둔자이며 외톨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역사의 어느 시대에 속했든 우리는 이 똑같은 감옥의 수감자들을 이해하고 만다고도. 산들산들 바닷바람이 부는 셸히프 아일랜드에 홀로 서 있는데, 문득 저 멀리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바다 쪽으로 향하는 유람선을 가득 채운 젊은 남녀의 쾌활한 말소리와 웃음소리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p.126~127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지만, 강추위는 여전한 요즘이다.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추운 계절에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세라 온 주잇의 <뾰족한 전나무의 땅>이다. 주잇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가까운 여성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며 살았는데, 특히 보스턴에서 문학 살롱을 개최하던 애니 필즈와 각별했다. 두 사람은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집필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자기 공간을 향한 나의 애착은 야옹, 하고 운 적 있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강하답니다”라고 스스로 묘사한 것처럼 주잇은 미국 지방주의 문학의 선구자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자신의 공간에 깊이 속한 존재였다. 이 작품 속 바닷가 풍경은 첫 장편인 <디프헤이븐>과 마찬가지로, 북동부 메인주의 바닷가 마을 사우스버윅에 기반한 것이라고 한다. 그곳은 그가 평생 발붙이고 사랑한 땅이었다. 공간에 대한 애착 덕분인지, 작품 속 공간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뛰어나다. 마을과 사람,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묘사력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 말이다. 


1896년 처음 출간된 이 작품은 '여성이 여성에 대해 말하는, 여성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당시의 시대상에 맞는 종속적인 여성 대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간 다 잡아먹을 남자들'과 함께할 생각은 없지만, 사랑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한껏 사랑해온 마음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즐거움과 포근한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하다. 6월에 시작되어 8월의 늦여름까지 이어지는 시기가 작품의 배경이라 페이지마다 여름의 빛과 공기가 흠뻑 느껴지는 것도 너무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바깥은 겨울이었지만, 나는 바닷가 마을 더닛 랜딩의 초록빛 풍경 속에 있었다. 이른 아침의 산들바람, 따사롭고 청량한 공기, 햇살 아래 나무 향기를 느끼며 단호한 마음으로 꽃송이와 명랑함을 심은 아담한 정원 안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잔잔하게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처럼 섬세하고, 사려 깊게 그려지고 있는 이야기가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데워주었다. '세라 온 주잇'이라는 반짝이는 작가를 발견하게 해주어 너무도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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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확장판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조기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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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화면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화면 속의 캐릭터가 공룡이든 개든 램프 스탠드든 스스로 의도(혹은 감정)를 품고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야 애니메이터가 제대로 작업했다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터가 종이 위에 그리는 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살아 있고 감정을 느끼는 개체다. 이것이 이날 저녁에 내가 애니메이터의 연필 스케치를 통해 종이 위에 나타난 도널드덕을 보면서 생애 최초로 깨달은 사실이다. 정적인 선이 살아 움직이는 입체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과정은 당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요술 같았다.             p.34~35



<토이 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업>, <라따뚜이>, <니모를 찾아서>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성공 신화에 숨겨진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창의적 기업의 대표적 롤모델인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 신화를 진두지휘해온 공동설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에드 캣멀이 30여 년간의 경영 경험과 통찰을 집약한 이 책은 이번에 10주년 기념으로 전면 확장판이 새롭게 나왔다.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후 저자가 쌓아온 기념비적인 헤리티지를 되짚어보고, 더욱 업그레이드된 혁신과 창조의 스토리를 150여 쪽 증보한 버전이다. 확장판 서문과 4개의 포스트스크립트, 2개의 챕터가 더 늘어났으니, 기존에 나온 버전을 읽었더라도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월트 디즈니와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우상이었던 에드 캣멀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개발해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또한 픽사의 기업 문화부터 처음 상업적 성공을 거둔 <토이 스토리>의 제작 과정, 창의적 기업문화를 만들고자 채택한 다양한 경영 전략과 창작 원칙, 그리고 디즈니의 픽사 인수 이후 문화가 확연히 다른 두 기업을 어떻게 업계 최고로 성공시켰는지 그 스토리도 모두 담겨 있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의 비밀도 낱낱이 공개하고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에 참여한 제작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디즈니와 픽사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픽사의 신화, 디즈니의 부활을 이끈 혁명적 경영 스토리가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여러분에게 아무리 관찰력이 뛰어나고 관심을 기울이는 리더라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이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종종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픽사에서 나는 우리가 종종 보이지 않는 것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명확한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항상 노력했다. 1장에서 '나는 평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 왔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쓸 때만 해도 사람들이 타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는 것을 몰랐다.               p.503



적극적인 경청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실천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픽사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제작자조차도 건설적인 비판을 듣고,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들은 '투 데이 오프사이트'라고 불리는 또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것은 제작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제작팀이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이룬 상황에서 디즈니와 픽사 모두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이 모여 이틀간의 집중 세션을 통해 몇 가지 장애물을 돌파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안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진화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겨울왕국>을 제작 중이던 당시에 진행했던 투 데이 오프사이트에 대해서 들려준다. <눈의 여왕>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의 문제점이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엘사와 안나가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랑스러운 자매가 되었다고 한다.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관대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모든 역량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들어올 것, 그로 인해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놀라운 협업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성공해야 할 필요성과 무지의 결합만큼 신속한 학습 비결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1986년 신생기업 픽사의 사장이 되었을 때 유일한 문제가 바로 '픽사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에 완전히 무지했다는 점'이었다고 말이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낯선 신규 사업을 이끌어 가며 핵심 인재를 채용하고, 제품 가격을 책정하고, 픽사를 흑자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고심했는지 그 과정 또한 매우 흥미진진했다. 새로운 기술 도구들을 개발하고, 기업을 설립하고, 그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경영하는데 수십 년의 시간을 바쳤기에 얻을 수 있는 팁들을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직원은 건전지처럼 쓰고 버리는 부품이 아니라고, 기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은 경영자라면 직원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경영자가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 업무 능력도 최고로 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많은 경영자들이 이 책을 통해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최측근으로서 약 25년간 함께해오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세세하게 풀어낸 책 속 부록 또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창의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 등의 성공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을 가진 픽사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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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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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선원들이 무릎을 꿇은 채, 마을 사람들에게 두 손 모아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 같은 것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그들을 한 명이라도 살려두었다가는 마을에 재앙이 닥칠 것이야. 우리 선조들은 이들을 때려죽이기로 결정하셨고, 마을은 지금까지도 선조들의 결정을 따르고 있어. 마을의 관례는 반드시 지켜야 해."

어머니의 눈에 험악한 빛이 떠올랐다.

이사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p.125



곧 열한 살이 되는 이사쿠가 사는 마을은 지형 특성상 고립되어 있는 위치에 있었다. 열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에는 변변찮은 일거리가 없어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다른 마을로 가려면 북쪽에 있는 바위가 많고 험준한 산을 넘어 가야 했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생선 따위를 농작물과 맞바꾸어왔지만, 가족들의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 가족 중 한 사람이 산 너머 마을의 고용 하인으로 가곤 했는데, 계약의 대가로 목돈을 받게 되면 그걸로 가족들이 먹을 곡식을 샀다. 이사쿠의 아버지도 3년 계약으로 은 60돈을 받았는데, 마을에서도 눈에 띄게 건장한 데다 배를 모는 데도 능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은을 받은 편이었다. 


이 마을에는 단풍이 물들 무렵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의식이 거행된다. 바로 뱃님을 위한 의식이다.  뱃님이란 마을 앞 암초가 많은 바다에서 좌초한 배를 말한다. 뱃님에는 보통 음식, 집기, 기호품, 천 등이 잔뜩 실려 있고, 이 물건들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충분히 윤택하게 해준다. 또한 파선의 목재는 집을 수리하거나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겨울을 앞두고 열리는 마을 의식은 항해하는 배가 암초에 좌초되어 부서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해변으로 유인하기 위해 야간에만 소금을 굽는다. 거친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는 배의 경우 소금 굽는 불을 보고 마을이 있는 해변이라고 생각하고 배를 해안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배가 마을 앞바다를 지나가면 배 밑바닥이 암초에 걸려 금세 부서져버리고 만다. 난파된 배를 기원하는 의식을 넘어 배의 난파를 유도하는 방법까지 써야 할 정도로 이 마을 사람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뱃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어촌 마을의 기괴한 풍습은 결국 잔혹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는데...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마을 남자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오기는 했으나 예년과는 조금 달랐다. 고기를 잡으려면 새벽에 나가는 게 보통인데 바다에 햇살이 가득한 시간이 되어서야 나오는 이도 있었다. 고기잡이를 마치는 시간도 빨라져서 해가 기울 무렵에 뭍으로 향하는 배가 많았다. 몸이 아프다며 아예 바다에 나오지 않는 남자도 있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무서운 일은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이야."

어머니는 화롯불에 장작을 넣으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게을러진 사람들은 뱃님이 가져다준 식량 덕에 마음이 느긋해져 고기를 잡으려는 열망이 시든 것이 분명했다.               p.156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는 일본 기록문학의 대가라 불린다. 일본에서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 자경단에게 집단으로 살해당한 조선인 대학살을 다루는가 하면, 소설임에도 철저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감출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이번에 나온 <파선>은 198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감염병에 대한 관심과 두려움이 커지면서 일본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소위 ‘역주행’으로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작품이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어둠 속의 불>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개봉되었는데,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읽는 내내 영상화하면 정말 흡입력 있는 호러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영화 버전도 상당히 궁금해진다. 주도 면밀한 취재와 현장 증언 사료를 기반으로 치밀하게 구성하며 쓰는 작가의 스타일 덕분인지, 실제로 어느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생생한 현실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고립된 마을과 그 속의 기괴한 풍습, 소금을 굽는 불로 항해하는 배의 난파를 유도한다는 사실은 타인을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된다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끔찍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이 배의 물품을 약탈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는 선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때려죽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선 오싹한 공포심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관례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기에,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광기와도 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 서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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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 처음 만나는 법 - 계약, 직장 생활, 결혼과 이혼, 인플루언서 활동까지 나를 지키는 현실밀착 법률
장영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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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소 한물간 유행어지만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은 여전히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을 사고 있다. 소확횡이란 소소한 사치를 즐기는 데서 오는 행복이라는 의미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변형한 단어로, 회사 물건을 소소하게 사적으로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행동을 일컫는다. 잘못된 행동인 것 같으면서도 많은 사람이 별생각 없이 SNS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상 속 일탈로 여겨지는 것 같다. 회사 비품을 슬쩍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회사 생활에서 늘 마주하는 상황, 어디까지 괜찮은지 알아보자.              p.50~51


회사에서 상사에게 남모르게 괴롭힘을 받고 있던 A씨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명찰처럼 생긴 녹음기를 발견하고 상대방 모르게 상황을 녹음해보기로 하는데 뭔가 찜찜하다. 몰래 녹음을 해도 괜찮은 걸까? 평범한 직장인 C씨는 퇴근 후 집 근처 호프집에서 서너 시간 정도 서빙 일을 한다. 단지 열심히 사는 것뿐이지만, 회사에 알려지면 인사고과를 불리하게 받을 것 같아 눈치를 보는 중이다. 회사 몰래 투잡을 뛰면 불법인 걸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는 다양한 책임과 마주하게 된다. 집 계약, 직장에서의 협상, 연인과 결혼 결정,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분쟁 등 매일 마주하는 일인데도 법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기는 여전이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만나자고 하니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럴 때 꼭 필요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사회생활을 할 때 무조건 알아야 하는 핵심 법률 지식을 선별하고, 풍부한 사례와 최신 법령을 통해 세심하고 정확하게 살펴본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집을 구할 때, 결혼 또는 이혼을 준비할 때, 인플루언서 활동을 할 때 꼭 필요한 법률 지식과 실전 조언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당시 한 유튜버의 문제 제기로 일부 인터넷 방송에서 뒷광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연예인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비연예인 인플루언서는 팔로워와 친밀감을 형성하며 때로는 민낯을 보여주는 식으로 솔직한 사생활을 공개해왔다. 그러허다 보니 이들이 올리는 콘텐츠는 소속 회사가 판매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가공한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실된 것이라는 신뢰를 만들 수 있었다. 뒷광고는 팔로워 또는 구독자들의 이러한 신뢰를 정면으로 깨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p.196


로펌에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K씨는 생성형 AI의 등장이 걱정이다. 인공지능에 필요한 디자인을 간단히 설명하기만 하면 몇 초 만에 결과물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더 많은 디자인을 더 빨리 생산해내기로 한다. 그런데 AI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그대로 이용해서 업무에 이용해도 저작권 등에 문제가 없는 걸까? 팔로워를 50만 명이나 보유한 인스타그래머 A씨는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제품을 게시할 때마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받는다. 그런데 상품 소개글에 광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가끔은 업체가 광고 받은 사실을 숨겨주면 광고비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뒷광고와 가짜 내돈내산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회사 비품은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전월세 보증금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인신고는 최대한 미루는 게 좋다는데 맞는 건지,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는 무료로 사용해도 되는 지 등등 법에 취약한 젊은 세대들이 마주하게 될 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한 법률 조언들로 가득하다. 젊은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장영인 변호사는 꼭 필요한 법률 상식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일인데, 그러지 못해 복잡한 상황에 휘말리는 의뢰인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다짐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흔히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법률 정보를 찾아 보게 마련인데, 그런 정보는 대부분 광고 목적이고, 최근 경향이 반영되지 않아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상담소보다 가깝고 검색보다 정확한 실전 법률 조언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책이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줄 것 같다. 법이 더 이상 어렵고 낯선 존재가 아니라 조금은 친근하고,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지길 원한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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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의 한능검 한국사 4 - 백제 최태성의 한능검 한국사 4
최태성 기획, 이태영 그림, 윤상석 글 / 다산어린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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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한국사 학습만화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이다. 대한민국 수능 역사 1타 강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타 강사인 최태성 선생님이 한국사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위해 처음으로 선보인 학습만화라 그런지 아이와 함께 정말 유익하게 읽고 있는 시리즈이다. . 


이 책을 통해 만화를 읽다 보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저절로 풀리는 마법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1권에서 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까지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 고조선부터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부여, 고구려 등 여러 나라의 성장을 다루었다. 3권에서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발전 과정을 다루었고, 4권에서는 삼국 중 전성기를 가장 빨리 맞이한 문화 강국 백제를 다룬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사를 재미있는 만화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라, 아이도, 어른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설의 칼 한능검이 사라지고 나서 역사책에 있는 글자들이 모조리 없어지는 일이 벌어져, 춘추관의 관리인 준이와 단이는 사라진 한능검을 뒤쫓는 중이다. 한능검을 집안 대대로 비밀리에 보물로 보관하고 지켰던 곽씨 집안의 대를 잇는 검객 곽승과 구석기 시대에서 만난 돌치까지가 함께하는 멤버이다.  한능검 도둑으로 오해받고 있는 검객 태성은 중간 중간 나타나 이들을 위험에서 구하기도 하고, 한능검을 찾을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역사가 바뀌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바로잡기 위해 시대를 넘나드는 태성을 쫓아 함께 여러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준이와 단이 일행들은 언젠가 자신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스토리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싶어서 놀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각각의 장이 끝날 때마다 실제 한능검 기출 문제들을 풀어볼 수 있고, 큰별쌤의 꼼꼼한 해설도 만나볼 수 있다. 전체 이야기가 끝이 난 뒤에는 해당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함께 찾아봐요!’ 코너를 통해 책에 나온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데,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그림으로 되어 있어 더 좋다. 굳이 암기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만화를 읽고, 그림으로 정리된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 한국사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다. 한국사 전반에 대해 다루며 1급에서 6급까지 다양한 급수로 나뉘어져 있어 초등학생 어린이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몇 안 되는 자격증인데다, 절대 평가라서 온전히 자신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자격증이기에, 초등학생들이 방학 동안 도전해보기 딱 좋지 않나 싶다. 초등학생이라면 6급만 따도 충분하니, 한능검 시리즈를 즐기면서 한능검 자격증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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