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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덕후 1호 - 나를 몰입하게 한 것들에 대하여
문화라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평점 :
계절에는 냄새가 있다. 봄에는 봄 냄새, 여름에는 여름 냄새, 가을에는 가을 냄새, 겨울에는 겨울 냄새가 난다. 계절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타박한다. 그러나 계절의 냄새라는 것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다. 계절마다 온도와 습도가 다르고, 그 계절에 피는 꽃과 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주변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봄냄새를 타고 온다. p.110
미래엔 북폴리오에서 개최한 제1회 단편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품집이다.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 된 ‘덕질’,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모아 듣기 위해 ‘덕후 에세이’ 공모전 <이웃덕후>가 매년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이 있다면 참여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첫번째 공모전의 수상작은 총 다섯 편이다. 모임 덕후에 대한 글이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브리티시 록, 기계식 키보드, 튤립 키우기, 다이어리 꾸미기에 대한 글들이 우수상 수상작이다. 일단 꽂혔다 하면 순식간에 덕후의 경지에 오르고야 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나 역시 아주 많은 취미들을 거쳐 왔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전작들을 다 모으는 것은 기본이고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경우에는 원서로도 수집했다. 도서에 관련된 굿즈나 각종 예쁜 노트류도 꽤 오랜 세월에 걸쳐 모아온 취미 중의 하나이고 말이다. 각종 피규어도 좋아하는 편이라 애정하는 몇몇 피규어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구입하는 중이고, 한때는 뮤지컬에 푹 빠져서 얼마나 공연장을 들락거렸는지 연출과 배우분들이 다 알아볼 정도였다. 이렇게 뭐든지 좋아하는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적어도 마흔쯤에는 뭔가를 이루어놓은 굉장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굉장한 어른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나의 삶은 '굉한한 어른'의 삶과 굉장히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 온갖 유혹에 갈대처럼 흔들리며 유유자적 살고 있다. 다이어리에 대한 에세이를 쓰겠다고 다이어리 쇼핑몰을 들락거리다가 다이어리를 충동구매하고야 마는 게 마흔 살 정 모 씨의 현실이다. 물론 달라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다. p.155
<모임의 여왕>은 모임 덕후가 오랫동안 모임을 유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러 종류의 덕후들을 보아왔지만, '모임 덕후'라니 대단히 흥미로웠다. 13년 전, 쌍둥이를 낳고 나서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의 조언이 절실해서 만들었던 '08 쌍둥맘 모임'부터 시작해 반찬 품앗이 모임인 '반반(반찬에 반하다)', 매월 한 개의 적금을 가입해 재테크를 위한 기초를 다졌던 '적금 풍차 모임', 일종의 자아 찾기 프로그램으로 만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글로서기' 등 여러 모임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 정도면 뭐 당당히 '부캐'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프로 모임러'가 아닌가 싶었는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과, 모임을 운영한다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참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내 인생의 브리티시>에는 록 중에서도 특별히 영국 록 음악에 심취한 스물 여섯 살 록 덕후의 인생 베스트 트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키보드 위에서 나를 확인한다>는 조금은 낯선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들도 많아 정보로서도 훌륭한 글이었다.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글은 <꽃 하나에 사계절을 담아>로 마늘이나 양파같이 생긴 튤립 구근에서 시작하는 꽃 피우기 과정을 담고 있다. 아무래도 플랜테리어니 식물을 키우는 것이 붐이 되어 한동완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그 책들을 읽다 보니 나 역시 식물에 관심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마지막에 수록된 <오늘도 다이어리 테라피>는 할머니가 되어도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는 다이어리 중독자의 귀여운 에세이이다. SNS에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로는 문구점이나 쇼핑몰에 아예 다꾸 아이템만 모아서 파는 코너가 따로 생겼을 정도라서, 공감이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글이었다.
대상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에 진심인 자칭 덕후라면, 이 책을 통해서 개성 넘치는 다섯 덕후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그야말로 소확행의 진짜 의미를 알게 해줄 만한 소소한 일상 속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