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어원 사전 - 이 세계를 열 배로 즐기는 법
덩컨 매든 지음, 고정아 옮김, 레비슨 우드 서문 / 윌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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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평범하지 않은 나라다. 화산과 유황이 넘쳐나는 풍경에는 얼음과 불뿐 아니라 장대한 폭포, 구릉진 초원, 먹빛 해변, 발광하는 지열 웅덩이도 있다. 국토가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판에 걸쳐 있고, 그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지리와 지질은 아이슬란드만의 거칠고도 환상적인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이토록 극단적이고 외딴 섬이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곳에 토착민은 없다. 이들 역사에는 서기 800년 무렵부터 강인한 부족들이 와서 얼마간 살다가 떠나는 일이 거듭되었다...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복잡한 명명의 역사를 갖게 되었고, 그 과정에 어원과 관련된 몇 가지 멋진 이야기가 남았다.              p.98~99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미지의 대양을 항해하고 미답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옥스퍼드 오늘의 단어책>, <미식가의 어원 사전>,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등 윌북에서 출간된 단어와 어원에 관련된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 이번에는 각 나라의 이름에 숨은 어원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 주는 <여행자의 어원 사전>을 만나 보았다. 




이 책의 저자인 덩컨 매든은 지난 20년간 6개 대륙, 65개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에 얽힌 어원들을 조사하고 수집해왔다. 단어 하나에는 오래전에 사라진 문화, 민족 이동, 종교, 언어, 갈등, 정복, 지형, 지도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이름은 단순하게 침략자의 이름을 따거나 주요 지형에서 오기도 하지만, 어떤 지명은 수많은 이야기와 수수께끼가 뒤얽힌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달의 배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멕시코, 수수께끼의 유령 섬에서 비롯된 브라질,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얼음 나라라는 뜻의 아이슬란드, 자유롭다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와 중세 라틴어에서 온 프랑스, 모가디슈 항구로 착각해 탄생한 이름 마다가스카르 등 각각의 나라 이름에는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베리아반도의 태양을, 그리고 토끼를 즐겼다면 이 기회에 긴 육상 국경을 넘어 똑같이 강렬한 햇빛이 가득한 이웃 나라를 방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잉글랜드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을 이룬 나라, 탐험가와 어부로 이루어진 바다의 민족,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바로 포르투갈이다. '바다가 가꾼 정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나라는 어원부터 풍부하고 다문화적인 역사를 잘 반영한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이름은 다른 많은 경우처럼 한 언어의 단어가 시간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태동 시점부터 두 언어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p.155~156


언어가 변천해온 모습을 통해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단어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역사이자 미래이기도 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는 각각 이름이 있게 마련이고, 그 이름에는 긴 역사가 서려 있다. 익숙한 나라의 이름들에 숨겨진 배경과 사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통해 어원 여행을 하다 보면 거의 모든 국명의 어원이 네 갈래 중 하나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요 지형, 위치나 방향, 민족,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해와 착각이 놀라울 만큼 큰 역할을 하는데,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각의 나라마다 지도가 함께 표기되어 있어 위치에 대한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오고, 군데군데 깨알같은 틈새 정보도 재미를 더해준다. 지구를 원통형으로 가정해서 만든 지도인 메르카토르도법의 문제, 맥도날드 해피밀의 원조가 미국이 아니라 과테말라였다는 사실, 코스타리카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푸라 비다'라는 스페인어의 뜻, 아단나무 잎으로 만든 파나마 모자는 실제 파나마에서 만들지 않는 다는 정보, 베네수엘라에 있는 세계 최고 높이의 폭포의 진실, 스페인의 세계적 수출품 중의 하나인 츄파춥스의 초현실적인 이야기, 아프리카의 비밀스러운 종교인 부두교에 관한 오해 등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세계지도를 보면서 나라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궁금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 같다. 덩컨 매든이 수집한 각 나라의 이름에 깃든 이야기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한층 더 넓게 만들어 준다. 


나라 이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속에는 미스터리한 전래 동화 같은 어원도 있었고, 혼란과 투쟁의 역사가 깃든 이름도 있었으며, 거대한 전설에서 비롯된 나라도 있었고, 어이없는 실수가 더해져 오늘날의 이름이 된 곳도 있었다. 단어의 어원을 따라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나라들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언어의 마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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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역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Future Publishing 지음, 강영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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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거의 모든 문화에 마녀라는 개념이 확인된다. 사소한 차이는 있으나 마녀는 대체로 어둡고 사악한 무언가,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상징한다. 하얀 옷을 두른 무구한 처녀와는 대조적으로 마녀는 늙고 추하며, 솥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고 무방비한 희생자에게 재앙과 다툼을 부를 계략을 꾸미고 있다. 마녀는 여성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며, 착란에 빠졌고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마녀는 감당할 수 없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마녀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마녀가 조합하는 약처럼 오랜 세월 동안 신화, 종교, 탄압이 섞여 달여진 것이다.               p.12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현대에서 빈번히 쓰인다. 인터넷, 언론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혹은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지닌 인물에 대해 기득권이 행하는 위협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중세 시대에는 평범한 여성들이 마녀라고 누명이 씌여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곤 했다. 실제로 가혹한 마냐사냥의 시대 동안 7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처형당했다고 할 정도이니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녀사냥은 왜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 책은 중세에서 근세까지 유럽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의 전모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마녀사냥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는지, 여러 사건들의 사례를 강렬한 일러스트와 상세한 해설로 낱낱이 보여준다. 


근데 유럽과 미국의 마녀사냥꾼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고문하고 사형대로 보냈다. 무엇이 이러한 참사를 일으킨 것일까. 수 세기 동안 권력자들은 요술을 사회를 위협하는 어리석은 미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요술을 믿는 것을 요술 자체보다 위험하다고 여겨 엄벌에 처했다. 마녀사냥은 요술을 박멸하고 판별하기 위한 목적의 하나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평범한 여성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았으며, 혐의가 풀리지 않는 경우 고문이라는 수단을 통해 억지로 결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단 마녀로 소환되면 진위가 무엇이든 죽음으로 가는 길 밖에 없었다. 





르네상스기는 예술의 추구와 과학적 사고가 유럽에서 개화한 시대로 인식된다... 하지만 동시에 진보는 의혹의 색을 띠었고, 사람들은 열심히 연금술 같은 수상한 과학을 추구했다. 유럽사에서 문명이 개화하는 시대에 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대규모 마녀사냥이 일어난 것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전쟁, 기아, 종교적 및 사회적 격동이 얽혀 의혹과 히스테리가 양성되기 알맞은 환경이 갖춰졌다. 이렇게 일어난 혼란기 동안 공동체가 겪는 재난에 대한 대처법으로 초자연이 이용되었으며, 희생양을 원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을 잡고 신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마녀를 표적으로 삼았다.           p.82


마녀와 마녀재판은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단서임과 동시에 현대의 문화 산업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나 스토리의 모델이 되었다. <더 위치>, <아메리칸 헌팅>,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의 작품들은 모두 실제 마녀재판을 소재로 하거나 당시의 자료들을 면밀하게 조사해 분위기를 재현했다.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기묘하며 폭력적인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15명의 가장 악명 높은 마녀에서는 실제 마녀라 불린 여성들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미국, 스웨덴 등 다양한 나라의 경우를 엿볼 수 있다. 




성전기사단, 군힐드, 나바르의 잔, 엘리자베스 우드빌등 마녀의 전설을 만든 사람들과 흑마술과 음모론 등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시기의 정치, 사회적 배경, 마녀로 지목된 사람이 겪게 되는 재판 과정, 악명 높은 마녀사냥 장군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읽을 거리로 가득한 책이다. 책의 판형이 큰 데다 생생한 컬러로 만나게 되는 일러스트와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된 역사적 사실들로 인해 '마녀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안내를 받게 해준다. 


악마의 위협에 노출된 유럽에서 안전이 보장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녀라고 바로 의심받는 타입에 대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무 이유없이 마녀가 될 수도 있는 시대였구나 싶다. 과부, 노인, 혼자 살며 고양이를 기르거나, 매주 교회에 가지 않고, 기묘한 신체적 특징이 있거나 혼잣말이 많은 것도 마녀로 판정될 여지를 주는 요소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선정된 마녀들을 분간하는 방법 또한 막무가내였다. 가장 유명한 것이 용의자를 물에 던지는 방법으로, 물에 뜨면 유죄이며, 가라앉으면 무죄로 보았다고 하니, 어떤 경우든 용의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7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마녀 박해와 수색이 천천히 기세를 잃어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성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도, 아직 요술의 혐의로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고 한다. 물론 밝은 면도 있다. 비웃음을 사고 두려움을 받아온 마녀들이 21세기의 긍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어둠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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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민박집
가이토 구로스케 지음, 김진환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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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스케의 능력에 흥분했던 슈는 갑자기 딱딱하게 굳으며 할 말을 잃었다. 주변 풍경 때문이었다.

이형.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눈에 보이는 건 사람이 아닌 이형의 존재들뿐이었다. 커다란 외눈이 달린 꼬마와 5미터는 족히 넘는 거구의 남자. 눈알이 백 개는 달린 듯한 고깃덩이에 양팔에 집게발이 달린 괴물까지.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팔다리가 달려서 움직이는 물건까지 있었다.          p.57~58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시는 요괴 만화로 유명한 작가의 고향으로 요괴를 지역 관광 상품에 활용하고 있다. 역에 도착하면 사방팔방에 자리 잡은 요괴들이 부담스럽게 환영해줄 정도인데, 요괴 모양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2층 목조 가옥이 나타난다. 낡고 허름한 외관의 '아야시 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민박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사람과 요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인간이 드나드는 큰길 쪽 아야시 장은 허름하지만 요괴가 드나드는 뒷골목 쪽의 아야시 장은 호화찬란한 모습이다. 


슈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먼 친척 부부의 집에서 오랫동안 신세를 졌다. 친할머니가 있긴 했지만 아무 연락도 나누지 않던 사이였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겨울쯤, 갑자기 친할머니에게 여기 와서 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는다. 학교에서 늘 외톨이로 지냈던 슈이기에, 고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먼 도시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사를 오게 된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이 바로 아야시 장이었으며, 슈가 이제부터 생활하게 될 곳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렇게 슈가 낯선 도시로 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고, 상대를 노려보는 것만으로 해를 입히는 '저주의 눈'을 가진 탓에 외롭게 지내왔다. 눈을 가리기 위해 줄곧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는데, 그 덕에 더 눈에 띄고 아이들이 멀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야시 장에서 만난 햄스터 요괴는 슈에게 자기 눈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연 이곳에서 슈는 기존과는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 난 말이지, 이 눈 때문에 쭉 외롭게 살았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슈는 보이지 않는 걸 보인다고 말하고,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몸이 이상해지는 섬뜩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친척 부부를 제외하면 모두가 그를 피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외톨이였던 원인은 눈도, 하물며 선글라스도 아니고 나 자신한테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             p.246~247


슈는 할머니에게 특수한 안경을 선물 받게 되고, 더 이상 선글라스를 쓰지 않아도 되자 학교 생활도 한층 편해진다. 하지만 할머니는 선물에 대한 대가로 아야시 장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민박집의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슈는 매일같이 맛을 상상하기도 싫은 괴상한 음식을 나르고, 농구 경기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대형 연회실을 청소하고, 총 길이가 10미터는 될듯한 이불에 커버를 씌우고, 인형의 집만큼 


 

작은 객실을 면봉으로 청소한다. 눈이 돌아갈 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며 햄스터 요괴를 비롯해서 수많은 요괴들을 만나게 된다. 요괴들뿐만 아니라 학교 선배인 요괴 덕후 미노리, 장기 숙박 중인 꽃미남 요괴 만화가, 정체불명의 수호신 등 아야시 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슈는 점차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가이토 구로스케는 일본의 투고 사이트 에브리스타가 주관하는 일본 최대 공모 문학상 ‘스마트폰 소설 대상’에서 2013, 2014년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일본의 ‘요괴 마을’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 출신으로 고향의 특성을 살린 요괴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 <기묘한 민박집>을 비롯해 여러 작품 속에서 독자적인 요괴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니,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면 좋을 것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나츠메 우인장>을 잇는 요괴 판타지로서도 매력적이고, 인간과 요괴라는 전혀 다른 두 존재가 만나며 펼쳐지는 힐링 드라마로서도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아마도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개성 강한 캐릭터들도 인상적이었고 말이다. 수상하지만 어딘가 아늑하고, 기묘하지만 은근히 다정한 민박집 '아야시 장'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어서 오십시오. 아야시 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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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구리네 떡집 난 책읽기가 좋아
김리리 지음, 김이랑 그림 / 비룡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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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지는 정성 들여서 도토리떡을 만들었어. 그런 다음 삼신할머니의 편지를 가져와서 도토리떡에 부채질했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편지에서 하얀 연기가 회오리처럼 피어오르더니 도토리떡을 감싸고 뱅글뱅글 돌았어. 꼬랑지는 왕구리의 잃어버린 기억이 모두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더 열심히 부채질했지.

"왕구리야, 빨리 일어나 봐. 너를 위한 떡을 만들었어."          p.17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그 열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만복이네 떡집>을 시작으로 <장군이네 떡집>, <소원 떡집>, <양순이네 떡집>, <달콩이네 떡집>, <둥실이네 떡집>, <랑랑형제 떡집>, <하하자매 떡집>, <해님달님 떡집>까지 모두 아이와 함께 읽어 왔다. 그래서 이번 <왕구리네 떡집>은 더 기다렸는데, 바로 그 동안 꼬랑지의 든든한 조수로 활동했던 왕구리의 사연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시리즈 일곱 번째 <랑랑형제 떡집>에서 혼자 떡을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꼬랑지의 모습을 지켜보던 삼신할머니가 꼬랑지를 도와줄 개구리 '왕구리'를 보냈었다. 그렇게 왕구리가 등장해 이후 소원 떡 배달에 나서기 시작했었다. 이후 랑랑 형제, 하하 자매, 해님달님 남매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며, 주요 캐릭터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었다. 전작에서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떡을 배달하는 와중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는 왕구리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 왕구리를 기다리는 꼬랑지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 쌓인 언덕에서 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는 왕구리르 발견한 꼬랑지는 서둘러 떡집으로 돌아와 정성껏 간호한다. 긴 겨울 잠을 자고 깨어난 왕구리는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는데, 꼬랑지는 왕구리를 위해 '잃어버린 기억이 되돌아오는 도토리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응. 우리 착한 신나라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는 떡이면 좋겠굴개. 우리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거든."

"하지만 어른을 위한 떡은 한 번도 만든 적이 없어. 소원 떡을 만드는 비법 책에도 어른들을 위한 소원 떡이 나타난 적은 없어."

꼬랑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어.             p.59


이번 작품에는 세가지 떡이 등장한다. 잃어버린 기억이 되돌아오는 ‘도토리떡’, 바라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시떡’, 그리고 몸이 좁쌀만큼 조그매지는 ‘조매떡’이다. 왕구리의 사연과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이 떡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그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어른을 위한 떡'이 나온다는 점이다. 김리리 작가는 '어른도 돕고 싶으니, 어른을 위한 떡도 만들어 달라고' 한 어린이 독자의 따듯한 마음이 담긴 요청을 이야기에 풀어냈다. 어른을 위한 떡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꼬랑지가 어떤 떡을 만들어낼 지 기대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왕구리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떻게 꼬랑지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왕구리의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밝혀지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진짜 재미는 왕구리의 깜짝 놀랄 만한 변신이다. 학교에 가게 된 왕구리의 좌충우돌 대 활약도 이번 작품만의 특별한 재미가 되어 준다.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 아니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는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매번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이유가 될테고, 꼬랑지가 만들어 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맞춤형 '소원 떡'이라는 설정 또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덕분에 어느 덧 밀리언 셀러를 넘어 누적 판매 16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힐링 판타지 동화로서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다음 번 작품의 예고를 해주는 것도 특징인데, 다음 번 이야기는 <장돌이네 떡집>이라고 한다. 꼬랑지와 같은 반이된 장군이 동생 장돌이에게는 또 어떤 소원이 있을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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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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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들판과 소나무 숲, 시내를 가로질러 잊힌 작품까지. 모든 게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 떼와 오두막집 지붕, 잊힌 작품의 커다란 더미가 티끌처럼 보였다. 대기 자체가 잿빛이었다. 

이곳 태양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태양이 날마다 다른 색깔로 빛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찰리마저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워터멜론을 한껏 잘 키운다.           p.69


'워터멜론 슈거에서'라는 달콤한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파스텔톤의 알록달록한 솜사탕 구름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인 최승자가 미국의 헌책방에서 발견해 직접 번역까지 맡아 소개한 작품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표지와 장정으로 다시 나왔다. 이야기는 요일마다 다른 색의 태양이 뜨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일곱 가지 햇살을 먹고 자란 일곱 가지 색의 워터멜론 즙을 끓여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 쓴다. 


워터멜론 공장에는 커다란 통에서 끓고 있는 달콤한 슈거 냄새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온갖 모양과 빛깔의 슈거들이 가로로 층층히 쌓여 있다. 강에는 송어들이 살고 있고, 한쪽에는 잊힌 물건들의 커다란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는 '잊힌 작품'이라는 장소가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아이디아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브라우티건이 만든 'iDEATH'라는 합성어는 ‘i’와 ‘DEATH’ 혹은 ‘idea’와 ‘DEATH’로 해석되는데, 어느 쪽으로 읽든  ‘DEATH’을 내포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가장 이상향의 장소를 만들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것은 유토피아적 공동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꿈조차 유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극중 인보일 일당이 아이디아뜨로 찾아와서, 사실 아이디아뜨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환상일 뿐이라고 폭로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잊힌 작품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가볼 수 없는, 그리고 가보길 원치도 않는 먼 곳까지 뻗쳐 있기에.

잊힌 작품 아주 멀리까지 들어가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찰리가 말한, 그곳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 사람 외에는. 그 사람의 고민거리는 무엇이었을까. 거기 들어가서 몇 주일을 보내다니. 

잊힌 작품은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이어질 뿐이다. 그러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곳은 크다. 우리보다 훨씬 크다.              p.112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아이디아뜨 근처의 한 통나무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작지만 즐겁고 편안한 통나무 오두막 역시 소나무와 워터멜론 슈거와 돌로 만들어져 있다. 창밖으로 차갑고 맑은 강이 보이고, 강물에는 송어가 살고 있다. '나'는 워터멜론 씨앗으로 만든 잉크에 펜을 적셔 향긋한 냄새가 나는 목판지에 글을 쓰고 있다. 이 마을에서 마지막 책은 삼십오 년 전에 쓰였고, 지금 쓰고 있는 책은 스물네 번째 책이 될 예정이다. 이곳의 다른 책들은 태워서 땔감으로 쓰이거나, 잊혀진 작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장소인 '잊힌 작품'에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잔잔하게 이어지다, 한때 마을 주민이었던 인보일 일당이 들이닥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주어진 풍요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과 그들의 낙원을 부정하는 이들 사이의 난장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연결되지만, 그것조차 이 작품 속에서는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대표작인 <미국의 송어낚시>가 1967년에 출간되었고, 이 작품은 바로 그 다음 해인 1968년에 출간되었다.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기법과 상상력으로 쓰여 문학적인 신선함을 안겨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목가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사회 공동체를 연상케 하는 이 마을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영원하지 않은 유한한 삶을 산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동화같은 설정에 시적인 문장들로 쓰인 작품이지만, 줄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없어 여러 번 읽어도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분명하지 않음과 이해할 수 없음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면 <미국의 송어낚시>를 우리말로 옮겼던 김성곤 교수가 작품 해설을 썼으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시처럼 리드미컬한 산문으로 쓰인 이 작품을 통해 목가적인 꿈이 보존되어 있는 브라우티건 표 달콤쌉싸름한 환상의 세계를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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