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 어떻게 살 것인가 Philos 시리즈 35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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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p.120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자극이 없으면 지루해하면서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극은 견딜 수 없지만 자극이 없는 것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정작 지루함은 피하고 싶어 한다.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한데, 왜 그로 인해 지루함이라는 불쾌한 상태가 되는 걸까. 삶을 관통하는 이 정반대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한다.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하며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초판본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출간되었다. 러셀, 하이데거,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사유가 400년을 이어져 왔다는 사실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의 발현이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능성이란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단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인 자유를 발휘하라고.... 하이데거는 인간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만이 지루해한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지루해하지만, 동물은 지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311


'지루함'과 '한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사실 평소에 지루하다는 생각이나 한가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대체 한가하고 지루한 감정에 대해서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그 사유라는 것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 가다 보면 꽤나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도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셀의 지루함론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이런 식이다. 러셀이 말하는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오늘을 어제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래서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 줄 것을 갈망한다. 사건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불행하거나, 비참한 사건이어도 된다. 보통 지루함의 반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흥분할 수 있는 것이면 불행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지루해지고 마는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사실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 지루함도 있지만 나름 즐거움도 있는 삶,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빵뿐 아니라 장미로 장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모리스의 사상을 비롯해서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라는 스벤젠의 입장, 인간은 어떻게든 무언가에 괴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다는 니체의 의견에 이르기까지 지루함의 계보학을 만나보자.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을 넘나드는 사유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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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노후 독립 - 나이 드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오종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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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대수명이 길어질수록 우리 인생에 추가로 주어지는 시간이 많아진다. 70세까지 산다면 61만 3,200시간이 주어지지만, 100세까지 산다면 87만 6,000시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26만 2,800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후반기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돈 모으는 데 쓸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데 쓸 것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 건강을 돌보거나 휴가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p.109~110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100세 시대는 분명 과학과 의학의 진보가 가져다 준 선물이지만 오래 사는 것이 모두에게 축복은 아니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긴 노후가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60세에 퇴직한다 해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력과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시간은 오히려 고통이 될 수 있다. 저출산과 고실업으로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풍요롭게 나이 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 통계청장이자 노후설계 전문가인 오종남 교수는 이 책에서 자녀나 국가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노후설계 방법을 제안한다. 자식과 나라에 기대지 않는 독립적인 노후를 위한 11가지 전략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철학부터 소비 습관, 건강, 인간관계, 배우자와의 유대까지 꼼꼼하게 짚어준다. 저자는 공부하고, 일하고, 활동하며,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능동적 노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노후 대비는 모든 방면을 고려한 입체적인 준비가 필수라고 말이다. 노화와 노쇠는 다르다며, 노년기에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70대에 들어서면 다양항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데, 70대는 건강한 100세 인생을 위한 골든타임이기 때문에 식습관 조절과 운동 등을 통해 잘 관리해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누구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노년의 시간 역시 그렇다. 다만 클라인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이 늙지는 않고 계속 젊게만 산다는 게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노인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단계에 있다.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 젊었을 때는 대부분 바쁘게 일하느라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같은 철학적 화두에 매달릴 겨를이 없다. 노년에 들어 노익장의 삶이냐, 아니면 철학자처럼 느긋한 삶이냐를 놓고 고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성향과 건강 상태, 경제적 상황 등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208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고 유동적인 경계 지대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엇갈리고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변화의 시간을 잘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노년기는 한참 일할 때와는 다른 고민과 심신의 변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력이 감퇴하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에 잘 걸리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40대 이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이는 50대, 60대가 되어가면서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좀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에너지 넘치게 삶을 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어떻게 슬기롭게, 노후를 대비할 수 있을까. 


노년은 잘 무장해야 진입할 수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에도 '노년이 인생의 절정일 수도 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면 어떨까. 이 책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며, 다른 사람을 통해 자극과 조언을 받으며 귾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마음가짐을 서서히 달라지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다. 이는 더 늦기 전에 나이 듦에 대한 태도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보다 능동적인 노후를 위한 대비로서 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의 철학과 태도부터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노후 생활에 유리하게 접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가올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준비해야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노후 대비를 지금부터 차그차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늙어가도 마음은 늙지 않도록, 누구든 자신의 노년을 떠올릴 때 걱정이나 불안이 아닌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었다.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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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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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바이천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의 신원을 찾고 그들이 피살된 경위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셰바이천의 살인 동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사회복지사도 인류학자도 아닌 경찰은 그런 사회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p.52


홍콩의 구닥다리 아파트인 단칭맨션에서 한 남자가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던 41세 셰바이천은 무직으로 방 안에서 숯을 피워 죽었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전혀 없고, 범죄 연루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심코 열어본 옷장 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옷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유리병 속 보존액에 담긴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 얼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로 20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표본이 된 시신은 대체 누구란 말일까. 낯선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언론은 '은둔족 살인 사건' 또는 '은둔족 살인마' 같은 말을 만들어 내며 자살한 용의자가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망상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추측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유리병 20여 개에 담긴 토막 시신을 이어 붙인 결과 피해자는 남녀 각 한 명씩으로 추정되었다. 두 피해자의 연령대는 비슷했으나, 사망 추정일은 달랐는데, 여자는 수개월에서 최대 반년전, 남자는 최소 1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였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이었다. 셰바이천의 방에 추리소설, 특히 엽기적인 살인을 다룬 소설이 많았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증거가 될만한 요소가 없었다. 경찰 쉬유이와 셰바이천의 친구이자 이웃에 사는 추리소설가 칸즈위안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최선을 다했다는 건 나도 알아요... 시스템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죠.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자기 윤리 기준을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다만 이 평범한 선택이 쌓이면 '악'이 될 뿐입니다...... 바이천 한 명이 희생하면 수천수만 명의 안온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데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정의를 명분으로 앞세운 그런 선택은 결코 정의가 아니에요.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악입니다."             p.390~391


이 작품은 <13·67>, <망내인>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탄탄한 독자층을 보여하고 있는 찬호께이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국내에도 꽤 많이 소개되어 왔는데, 이번에는 <13·67>처럼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하며 읽어 보았다. 이야기는 은둔족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현재와 화자를 알 수 없는 '망자의 고백', 그리고 제목 미정인 소설에서 발췌된 내용이 교차로 진행된다. 셰바이천의 친구인 칸즈위안은 경찰에게 용의자였다가 조력자가 되는데, 경찰은 그를 경계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며 사건을 조사해나간다. 수사 과정과 별개로 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단서가 되어 주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중반을 넘어서도 쉽게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재미가 되어 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홍콩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단절과 무관심이 일상화된 풍경을 보여주며 인간 심연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은 소설이 아니지만, 가끔 진실이 더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독이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용의자의 주변을 조사할수록 수사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사건의 조각들이 쌓일 수록 진실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을 향하게 된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 홀라 왔다가 떠날 때도 혼자 길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인간에게 고독은 정해진 운명 같은 것, 인생이란 원래 고독한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고독이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과 사회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안전한 방 안으로 숨어든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00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지만 중반을 훌쩍 넘어설 때까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과 플롯으로 잘 짜여진 작품이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 나왔던 캐릭터가 등장해 반가웠고, 거듭되는 반전 또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자, 오랜 만에 만나는 찬호께이의 본격 미스터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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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 풍선껌 다산어린이문학
이정란 지음, 모루토리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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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2학년 2반에서 햄스터 키우는 모임인 '햄이모'에서 쫓겨나 속상하다. 햄스터 동동이를 이모가 도로 데려간 걸 햄장인 민아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루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지만, 엄마는 안 된다고만 한다. 속상한 마음에 집을 나왔는데 시원한 아이스크림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간다. 그랬던 계산대에 못 보던 할머니가 서 있는게 아닌가. 할머니는 풍선껌 한 통을 계산대에 이거 딱 하나 남았다고 씩 웃으며 말한다.




얼결에 볼록 풍선껌을 사서 나온 하루는 껌을 꺼내 본다. 껌 종이에는 '떡갈나무 벤치 아래에서 말풍선이 팡팡!'이라는 문구가 서 있었다. 지난 봄 소풍 때 했던 보물찾기가 생각난 하루는 사자 분수대 뒥쪽 숲속 산책길로 통하는 오르막길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 껌 하나를 꺼내 오물 거리다 입김을 불었더니 풍선이 엄청 크게 부풀어 오르다 팡, 하고 터진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온몸이 갈색 털로 뒤덮인 다람쥐가 나타난다. 다람쥐와 함께 풍선껌을 씹었더니 하루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통하는 마법 풍선껌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루는 야생 다람쥐 볼록이와 함께 매일같이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숲에 사는 다람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것도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너무 귀여운 이야기였다. 풍선껌을 씹었더니 속마음이 팡팡 터진다는 설정도 아주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책임지고 돌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집에서 같이 살아야 반려동물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반려'라는 말에 대한 관점을 살짝 바꿔준다.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동물 친구가 등장하는 동화는 기존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품 안으로 동물을 데려와 귀여움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만난 두 존재의 교감을 그려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야기 속 민아는 햄스터를 네 마리나 키워 '햄이모' 모임의 햄장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비숑에 푹 빠져서 강아지를 살 거라고 말한다. 그럼 키우던 햄스터는 어쩌냐고 묻는 하루에게 민아는 햄스터야 뭐, 사촌 동생들 키우라고 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사실 민아는 햄스터 키우기 전에 달팽이도 키웠었는데, 결국 그 달팽이도 아파트 화단에 버렸던 적이 있기에 하루는 헛웃음이 나온다. 


극단적인 경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민아처럼 반려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예쁘면 갖고 싶고, 지겨워지면 어디론가 치워 버리고, 또 다른 것을 데려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 말이다. 반려동물은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책임질 수 있는 마음까지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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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 -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존 다가타.짐 핑걸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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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레비 프레슬리가 스트래토스피어 호텔앤드카지노의 350미터 높이 타워 전망대에서 뛰어내린 그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시 당국이 영업 허가를 받은 관내 스트립 클럽 서른네 곳에 대해 한시적으로 랩댄스를 금지시켰고, 고고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타바스코소스 병을 버키츠 오브 블러드라는 술집 지하에서 발굴했으며, 미시시피에서 온 한 여성은 진저라는 소녀를 상대로 35분 동안 틱택토 게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p.13~15


2002년 7월 13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열여섯 소년이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에세이스트 존 다가타는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쓰지만 사실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잡지에 게재를 거부당하고, 얼마간의 개고를 거쳐 다른 잡지에 재투고하게 된다. 글이 게재되는 조건은 내부 팩트체크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거였는데, 그렇게 인턴 편집자 짐 핑걸과 존 다가타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성이 상당히 독특해 흥미진진했다. 존 다가타가 쓴 에세이 원문을 토막토막 쪼개어 페이지 중간에 수록하고, 양 옆으로 편집자의 팩트체크 과정과 두 사람의 논쟁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팩트가 충돌하는 내용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책의 반 정도 되는 내용이 붉은 색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실제 편집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진실은 정확성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에세이스트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철저하게 확인하는 집요한 팩트체커의 양보없는 끝장 논쟁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지금 제가 이 에세이에서 그러고 있다는 겁니까? '자기과시를 위해' 이야기를 '위조한다'고요? ... 한데 대관절 언제부터 약간의 지적 아나키즘이 나쁜 것이 되었죠?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결정짓는 규칙을 용납하기 시작했나요? 오히려 일상적 담론에선 잘 용납되지 않는 자유도 예술가에게는 권장되는 분위기 아니었습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예술에 의지하는 것 아닌가요? 예술가가 한계를 시험하고, 규칙에 도전하고, 금기를 파괴해주길 다들 내심 기대하지 않나요?               p.135


엄밀히 말하면 이 설명은 부정확하다, 저자가 이 수치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불분명하다, 정보의 출처부터 좀 의심스럽다 등으로 조목조목 문장을 따지고 드는 편집자와 정확성에 치중하다 보면 극적 효과도 떨어지고 글이 너무 투박해진다는 에세이스트의 공방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신문의 기사면처럼 빼곡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가독성 자체는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따라가면서 읽다 보면 금방 빠져들게 되는 몰입감이 있는 책이었다. 글의 어감이 주는 느낌이 좋아 수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그러면 의도적으로 수치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독자의 신망을 잃지 않겠느냐고 받아치는 편집자. 그리고 자신이 무슨 공직에 출마할 것도 아니고 그저 흥미롭게 읽을 만한 글을 쓰고자 할 뿐이니 상관없다는 작가. 일다 보면 편집자의 말에도 수긍이 되고, 작가의 의도에도 공감이 된다. 그야말로 이성과 감성의 대결이랄까. '그의 죽음을 더 각별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와 독자들에게 명확한 사실을 제공해야한다는 사명감의 대결이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한 사람은 자료나 문헌을 확인하며 명확한 사실을 원한다. 또 한 사람은 어느 정도 변형된 사실이 사건의 실체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독자에게 진실한 글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픽션은 현실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옳고,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맞다.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가의 고민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어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다. 해리 포터를 연기했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팩트체커 역을 맡기도 했다고 하니 연극 버전도 궁금해진다. 논픽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 편집과 집필 과정에 숨겨진 비밀, 틀림없는 사실과 그럴듯한 허구 사이의 진실... 진짜 업계 사람들의 속 뒤집히는 티키타카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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