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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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으로, 일부 구간만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소리의 톤, 표정, 손짓과 입고 있는 옷, 주변 환경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p.17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거나 반응하게 된다.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며, 나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에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타인의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유지영 기자는 자신이 '듣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었고, 동시에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것이 살면서 욕심을 낸 유일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글에서 저자는 듣기를 인식한 인생 최초의 순간과 그 의미를 오인한 역사, 이윽고 듣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정적 순간 등 '듣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저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숨은 바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삶에 적잖은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는 결국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닿아 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을 무겁게 이고 지고 싶지 않았다.               p.172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연설을 듣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청자는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추구하는 일이 바로 ‘심장 듣기’라고, 잘 듣는 일이란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듣기'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유지영 기자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몸’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말하기’에 이어 이번에는 ‘듣기’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년간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이력덕분인지 듣기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후배로서, 선배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저자는 '듣는 일이 아닌 들어주는 일이란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 사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므로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듣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법만을 알았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며 내향적 응대처럼 보이는 듣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흘려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 다해 귀 기울여온 한 사람의 조용한 목소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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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교실 - 개정증보판
김규아 지음 / 북스그라운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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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정우야, 벌이 아니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이야. 정우는 아주 조금 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뿐이야..."           p.123~124


아빠와 둘이 사는 정우는 매일 땅을 보고 걷는다. 아빠와 자꾸 다투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따로 살기 시작했고, 말다툼 소리가 사라지자 집은 고요하기만 하다. 강인하고 멋진 늑대를 좋아하는 정우에게는 늑대에 관련된 책만 열 권 넘게 있다. 어떤 방법이든 풀어낼 수 있는 수학의 확실한 세계를 좋아하는 정우는 학원에서 우등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수업시간에 새로 선생님이 오셨는데, 늑대 선생님이었다. 빛을 보면 눈이 아파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선생님은 음악 수업을 해가 지고 난 뒤에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늑대 선생님과 아이들의 '밤의 교실'이 시작된다. 


한편, 정우는 요즘 눈이 자꾸 흐릿해지는 기분이라 아빠와 안과에 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눈에 병이 생겼는데 치료 방법이 없다고, 언젠가 끝없는 밤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실명이라니... 모두가 밝은 세상에 있는데 나에게만 여전히 밤인 세상이 될수도 있다니... 정우는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 부모의 이혼과 시력 상실이라는 위기모두 어린 정우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수학 문제처럼 긴 시간을 들여 고민해봐도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정우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님과 친구들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늑대 선생님의 특별한 음악 수업덕분에 정우는 조금씩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연주를 찾아 가는 과정을 배워간다. 




"마치 인생 같아. 예상할 수 없는 기쁜 일, 슬픈 일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해. 내 삶이 하나의 곡이라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 걸까.              p.149


늑대 선생님은 개나리꽃이 피는 3월에 태어났다. 그런데 아주 어릴 적부터 이유를 알 수 없이 빛을 보면 눈이 너무 아파 두 살 때부터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보통의 늑대 친구들처럼 사냥 수업에 나가지 못해서 친구도 별로 없었다. 늑대들은 타고나길 합창을 좋아했는데, 합창 연습은 대부분 밤에 이루어졌다. 눈이 약한 선생님에게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고,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밤에 하는 수업을 고대하며 기다린다. 그렇게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즐겁게 수업을 받는다. 늑대 선생님은 정우에게 말한다. 나에겐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걸 사랑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그래서 낮보다 밤이 더 편한 눈을 가진 것이 그리 속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볼로냐 라가치 상 만화 부문 우수상을 받은 김규아 작가의 <밤의 교실>이 새로운 에필로그가 더해진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린 그래픽 노블로, 색연필 화풍의 따스한 그림으로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시선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좋았던 것은 정우에게 벌어진 일들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해내는 과정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줘 위로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초판으로 만났던 독자라면 그 뒷이야기가 에필로그로 수록되어 있어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우와 늑대 선생님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면 이번 개정판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읽어도, 부모가 읽어도 공감할 만한 부분들이 많은 작품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면서도, 그것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는 어른들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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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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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여름비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실패는 나 자신의 실패보다도 더 슬프다. 나는 적들의 실패에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바보 같은 선물을 주는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선물은 적절한 것이 아니면 내가 주는 사람일 때도 받는 사람일 때도 어색한데, 적절한 것인 경우가 드물다. 사랑은 내게 큰 기쁨을 주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앗아간다.                p.16


에두아르 르베의 대표작 <자화상>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1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책의 만듦새를 그대로 담은 필사 노트도 너무 예쁘다. '극도로 절제된 글을 쓰는 작가', '비움으로써 본질을 드러내는 사진가',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열흘 뒤 생을 달리한' 작가라는 점때문에 굉장히 궁금했었다. 절판본이 매우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기에 재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웠다. 특히나 표지가 굉장히 아름답다. 점묘화로 표현된 표지 이미지가 이 작품의 글쓰기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끊임없는 문장들의 나열로 이루어져있는데, 문단 구분이 없고, 쉼표로 연속적으로 이어지거나, 마침표 하나로 끊기는 방식이다. 무수한 문장들이 모여 평면처럼 보이는 입체가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문장과 그 다음 문장에 아무런 논리적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잊어버린다, 나는 누군가를 죽인 누군가와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막다른 길들을 바라볼 것이다.'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문장들이 계속 이어진다. 한마디로 왜?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유는? 나는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끝보다 시작을 좋아한다. 왜? 불특정한 과거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무작위로 이어지는 평면의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입체가 되는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다소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어려운 문장은 하나도 없는데, 지독하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자꾸만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른다. 나는 기념물보다는 유적을 좋아한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차분하다. 나는 송년회에 별 반감이 없다.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가 거짓 없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잇는 건 오직 한 번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p.143


'나는 자살 시도를 한 번 했고, 자살 시도 유혹을 네 번 느꼈다.'는 문장 뒤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여름에 멀리서 들려오는, 잔디 깎는 기계 소리는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이다. 인과관계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문장과 가벼운 문장의 구분 또한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페이지에서는 자신의 독서 편련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한다. 읽은 것을 다시 읽고,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읽은 것만큼이나 많고,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이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며, 오후보다 아침과 저녁에 더 많이 읽고, 안경 없이 읽으며, 5분 후에 제대로 읽기 시작한다는 등 독서 습관과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수영하기 좋은 곳과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과 사랑 편력에 대해서 말한다. 그야말로 삶의 무작위성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작품이었다. 


에두아르 르베는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 어떤 자세한 설명도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감정과 인과관계를 배제한 채 무작위로 나열한 문장들이 한 인간의 초상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 파편화된 문장들의 모음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자서전인지도 알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무수하게 많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나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이자, 책을 읽는 이의 '자화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요절한 천재 작가가 그려낸 한 인간의 초상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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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탐험단 조선왕조실록 3 : 문종·단종·세조 - 왕좌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SEL+한능검 워크북 수록 이세계 탐험단 조선왕조실록 3
타니 지음, 김기수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서울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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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사 학습 만화 시리즈 <이세계 탐험단 조선왕조실록>이 세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조, 두 번째 이야기는 세종이었고, 세 번째 이야기는 문종과 단종, 그리고 세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만났던 어린 왕 단종과 한명회 등 당시의 주요 인물들도 등장하니,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매우 반가울 것이다. 


이 시리즈는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구성한 학습만화이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본문 곳곳에 담아 사실성을 높였다. 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다루는 책 중에 어린이를 위한 버전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세계 탐험단 시리즈로 그 갈증을 채울 수 있다. 




이야기는 과거 역사 인물이 처했던 상황을 간접 경험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당대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만화를 통해 펼쳐져서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주인공 렘과 엠버가 VR 기구를 통해 조선 시대로 이동해 그 시대 속에서 왕이 직면했던 여러 사건들을 함께 들여다보고, 역사 체험 프로그램의 가이드인 해치몬이 제시하는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번 3권에서는 뒤늦게 킹덤 아카이브에 접속해 모험에 합류했던 젤로스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시리즈를 계속 읽어 왔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렘과 앰버가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것은 1452년의 조선이다. 세종 때 세자로서 국정을 훌륭하게 이끌었던 왕, 조선의 5대 임금인 문종을 먼저 만난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고, 엄청난 미남이기도 했는데, 세종의 장점만 쏙 빼닮은 준비된 왕이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왕위에 오른 지 2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2살인 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바로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이다. 단종은 영화 덕분에 거의 전국민을 사랑을 받게 된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렘와 앰버의 첫 번째 미션이 '어린 왕을 끝까지 모셔라'인데, 과연 그들은 단종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이후 벌어진 비극적인 왕위 찬탈 사건인 계유정난을 살펴보고, 세조가 어떻게 조선을 다스렸는지에 대한 내용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왕이 된 과정때문에 수양대군은 보통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왕이 되고 나서 펼쳤던 수많은 정책들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같다. 




학습 '만화' 형식이지만, 본문의 내용을 복습하고 확장할 수 있는 워크북이 포함되어 있어 독후 활동과 교과 연계 학습도 가능하다. 워크북이 굉장히 알차게 만들어졌는데, 본문에서 배운 내용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개념과 핵심 내용을 별도로 정리해두었다. 왕과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핵심 정보를 담았고, 문제 풀이로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도 대비할 수 있다. 왕과 관련된 사회 정서 역량을 살펴보는 SEL 독후 활동도 이 시리즈만의 장점이다. 정조의 사회 정서 역량은 '회복탄력성'과 '소통'으로, 세종의 사회 정서 역량은 '공감'과 '포용'이었고, 이번 세조의 사회 정서 역량은 '윤리'와 '책임'이었다. 역사속 인물을 통해 도덕적 가치를 되짚어 본다는 점이 유익한 책이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버전의 조선왕조실록이 없어서 아쉬웠었는데, 이렇게 판타지 세계관과 서사를 더한 학습만화로 읽을 수 있는 시리즈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있다. 충실한 역사 기록을 상상력 넘치는 판타지로 엮어 내어 아이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아이들이 부담없이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이 시리즈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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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인 남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줄리안 시먼스 지음, 정향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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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프레이컷에 사는 지인이 찾아오기로 마음먹으면, 그곳에 사무실이 있었고 사무실 생활이라는 무대 장치 가운데 앉은 아서가 있었다. 아서는 그곳에서 과거의 살인 사건에 대한 책을 읽으며 한참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언제나 범인의 정체를 알면서도 유죄를 선고할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짜인 살인 사건에 흥미를 느꼈다. 사무실에는 '영국의 유명 재판' 시리즈가 들어찬 책장이 있었다. 아서는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인들이 어디에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관찰했다.               p.66


아서 브라운존은 위압적인 아내 클레어에게 억눌려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조차 아내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는 그를 안타까워하지만, 클레어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 결혼했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아서는 참을성 있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한 남자였지만 점차 숨막히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즌비 멜런 소령은 결혼중개업체를 운영하는 대담하고 단호한 성격의 남자였다. 그의 아내 조앤은 그가 첩보원이라고 알고 있었고, 가끔 떠나는 해외 출장을 비롯해 그가 만들어낸 첩보의 세계를 너무나도 쉽게 믿었다. 


소령은 어느 날 고객으로 온 퍼트리샤 파커라는 젊고 예쁘장한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고, 그때부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서 브라운존과 이즌비 멜런 소령은 사실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정반대되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두 여자와 각각의 삶을 나름대로 완벽하게 영위해 왔던 그에게 정체성의 위기가 닥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두 가지 삶을 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는 아서 브라운존으로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이즌비 멜런 소령으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살았다. 늘 나긋나긋하고 폭신한 쿠션 같은 조앤과 남편을 지배하려는 성향의 클레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말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아서는 결국 한쪽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결심하는데, 과연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죽일 수 있을까. 




자신이 유의미한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읽은 기묘한 소설을 떠올렸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내면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겉으로는 완벽하게 기능하였고 심지어는 성공하기까지 했기에, 교수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교수진은 그들의 대열에 들어온 것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차가운 껍데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역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인가? 아서 브라운존은 클레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즌비 멜런은 반드시 빠져나가야만 하는 그물에 갇혔다.                   p.218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를 다루었던 명작 <블러디 머더>를 쓴 줄리언 시먼스의 대표작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42번째 작품으로 나왔다. 나 역시 <블러디 머더>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줄리언 시먼스가 추리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게다가 국내에는 그의 '소설'이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것이니 그 동안 줄리언 시먼스를 비평가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스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전형적인 황금기 고전 미스터리 스타일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 점차 인간 심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작품 역시 인물의 내면에 주목하는 스타일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작가이자 비평가로서도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기존 스타일을 답습하는 작가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직접 새로운 스타일의 미스터리를 집필하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비평가로서 역설한 범죄소설 작법이 집대성된 대표작이다. 그는 영웅적인 탐정 캐릭터 대신 평범한 소시민을 범죄소설의 주인공에 두었다. 그의 작품에서 미스터리의 핵심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닌 '왜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놓여있다. 그러한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다. <자신을 죽인 남자>는 평범한 한 인물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소설로서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위선과 모순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범죄소설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에서 이중생활이라는 소재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시먼스는 거기에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의 유머를 더해 색다른 미스터리를 탄생시켰다. 엘릭시르의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를 즐겨 읽어 왔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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