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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보여 줘!
레너드 S. 마커스 엮음, 서남희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과 달리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고 어떤 새로운 생각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 아이들에게 오로지 '옳은' 것만 가르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과학적 이해도 중요하지만 상상력도 북돋워 주어야 해요. 무지개를 보면 빛의 스펙트럼을 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도 있어요. 그보다는 그런 현상을 경이로워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 안노 미쓰마사, p.63
이 책은 미국의 그림책 평론가이자 연구자인 저자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21인을 10여 년에 걸쳐 인터뷰하여 엮은 것이다. 퀜틴 블레이크, 존 버닝햄, 에릭 칼, 모리스 센닥을 비롯해 그림책 거장들은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창작 철학과 작업 과정, 삶과 작업의 접점, 그림책과 어린이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준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이들을 예술가로 자라게 했을까? 무엇이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들은 어디에서 필요한 용기를 얻었을까? 모든 예술 형식 중에서 왜 하필 그림책을 자신의 삶과 열정을 바칠 대상으로 택했을까? 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글과 그림을 연결시킨다. 초기 스케치, 색채 실험, 가제본, 창작 노트 등 희귀 도판 80여 점이 수록되어 있어 현대 그림책의 역사를 써온 이들의 생생한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릭 칼의 인터뷰를 인상깊게 읽었다. 그의 그림책마다 환하게 빛나는 레몬색 태양은 언뜻 보면 유치원 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아이 같은 단순함은 사실 능수능란하게 연출된 것이다. 어린이들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느끼는 책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다듬은 다른 모든 요소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에릭 칼의 그림책을 보고, 또 보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의 작업실 풍경을 묘사한 것도 그의 작품 세계와 너무 잘 어울려 재미있었다. 바스락거리고 서걱거리는 소리와, 컴퓨터와 스캐너의 윙윙거리고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지는 그의 작업실은 꼼꼼하고 활기찬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한 것처럼 느껴졌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그만두게 된 계기와 어린이책에 콜라주 기법을 쓰는 이유, 그림을 공부할 때의 과정과 작업방식 등 흥미로운 내용이 아주 많았다. 특히나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장난감, 만질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그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림책에 매혹을 느꼈어요. 일반적인 그림책 독자의 나이를 넘어섰을 때도 말이지요. 스콜라스틱 북 클럽판 <괴물들이 사는 나라> 안에 써 놓은 손 글씨로 보아, 나는 좀 컸을 때 그 책을 받은 게 분명해요. 나는 그런 책의 그림들을 꼼꼼히 연구하곤 했어요. 또한 찰스 슐츠의 연재만화 <피너츠>를 읽던 시절에는 그 그림을 베끼곤 했지요. 신문 연재만화의 등장인물들을 빼곡히 베껴 그린 공책도 있답니다. - 케빈 헹크스, p.161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유명한 모리스 센닥의 인터뷰도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나는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처음 구입하고 읽었기에, 어른이 되어서 처음 이 책을 보았다.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그림책은 지나치게 어둡고, 무겁게 느껴져서 대체 왜 콜더컷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그림책인지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인터뷰를 통해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과 작품에 대한 의도, 그의 어린이 문학에 대한 가치관과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다시 한번 이 그림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어린 시절에 먼저 보았다면 그 감상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그림책 작가들은 이미 작품으로 접해서 익숙한 작가들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이들이 그림책 분야에 분야에 발을 들인 이유 또한 제각각이었는데,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과 그림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비슷했다. 그래서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너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글을 읽기 전에 그림을 먼저 보면서 이야기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선물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웃게 만들며,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준다. 그림책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림의 언어로 열리는 세계는 어른 독자들에게도 위로와 힐링의 시간을 안겨준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우리를 신나고 부푼 마음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보통 40쪽 안팎의 분량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든 펼쳐볼 수 있다는 것도 그림책이 가진 매력이다. 그림책은 누구나 쉽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장르이기에, 그것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림책을 좋아하거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 놀랍고, 신비로운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