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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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법치의 화신 자베르 경감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는 장 발장식 연민의 도덕률을 혐오했다. 그렇게 법치는 괴물이 됐다. 범속한 사상가들이 가진 자들의 불법과 반칙을 비판할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합법적 규칙이야말로 진짜 괴물이라고 폭로했다. 저항이 불법인 이유는 착취가 합법이기 때문이라고. 힘센 자들의 규칙을, 그들의 법치를 목도하며 이 낡은 19세기 서사들이 생생해지는 요즘이다. 이편도 저편도 아니고, 아래편의 눈으로 보니 그렇다.              p.182


우리가 안전한 세상에서 날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아파트 몇 채를 소유하는 사람이 있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살고 있다. 반찬 투정 혹은 다이어트 등의 이유로 식사를 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녁밥을 챙겨먹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장애인들은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매우 좁고 힘든 길을 버텨내야 한다.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차별 없이 함께 살기를 바라는 소수자들에 대한 문제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귀를 기울여야만 알 수 있다. 대부분 자기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불편한 마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자신의 '삶'을 위해 '앎'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라는 작품으로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조형근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겪은 정치?사회적 국면과 두루 공감할 만한 삶의 장면들을 소환해낸다. 저자는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직시하고, 기득권 정치에 대해 비판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펴본다. 낮은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소중함과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잡일'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날카롭지만 따스하다. 저자는 대학 교수를 사직하고 파주의 한 동네에서 이웃과 살고 있는 '동네 사회학자'라고 스스로를 자처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은 그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한겨례>, <경향신문>, <교수신문>, <창비주간논평> 등에 발표했거나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록한 글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을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비판, 기득권 정치를 넘어선 약자들의 정치에 대한 희망, 중산층의 욕망에 대한 자기 성찰, 좀 더 나은 삶을 향한 모색이라는 주제로 장을 나눠 수록했다.




세상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사람들과 연대를 실현하는 일은 당장 이루기 어렵다. 실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무언가를 하려면 용기를 내야하고 그 결과로 때로는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매섭고 나는 두렵다. 대부분 마음만 앞서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모 아니면 도라며 손 놓고 지낼 일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먹는 일들의 목록이 있다.... 갈수록 대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처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지켜온 습관들이다.             p.316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상승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탄식이 많아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어려운 집안, 열악한 지방에서도 자기 힘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고시 같은 시험에 합격해서 계층 상승하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는 한탄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승자가 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고, 촘촘한 대학 서열의 사다리는 위로 갈수록 점점 오르기 어렵다. 애초에 많이 가진 자가 결국 좋은 대학에 가고, 상승 이동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사다리가 이미 끊어졌기에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할 수가 없는데,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이란 그저 말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사실은 노력할 기회조차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롭지 못한 격차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두 갈래의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 연대해서 불평등 축소로 가는 길과 각자 혼자서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길이다. 각자도생의 무한 경쟁 사회가 펼쳐지는 동안 연대는 붕괴하고 민주주의는 허약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힘드니 너도 힘들어야 한다'가 시대정신인 세상 속에서 함께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와 각자의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소시민이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살아내야 할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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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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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텐데도, 우리는 모순이 사라지는 가상의 세계로 도피해버리곤 한다. 자신의 행동이 종종 일관성이 없고, 때로는 스스로의 원칙에 위배되며, 왕왕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왜 그리 어려울까? 어째서 우리는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뻔한 결정과 습관을 부여잡고 바꾸지 않는 걸까? 변화를 원한다면 이런 질문에 맞서야 한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모르는 한, 그것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62


우리는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힘차게 시작한다. 하지만 희망찬 새해의 계획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우스울 만큼 거창하게 계획만 세워놓고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들 투성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 시작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고, 늘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우리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걸까. 이 책은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의 모순된 본성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새로운 것들은 잠재적 위협을 의미하고, 누구나 안전을 필요로 하기에 본능적으로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외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든 인지 오류, 고정관념, 착각이 변화를 방해하는 거라고 말한다. 재난지역에서 구조된 사람들이 위험한 걸 알면서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이유에서 시작해 유럽에서 산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의사들의 치명적인 오류와 마야문명과 로마제국의 몰락이 의미하는 것들을 두루 살펴보며 인간의 변화를 가로막는 7가지 착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지부조화, 확증편향, 손실회피, 비현실적 낙관주의 같은 인지적 오류 등 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은 루틴이다. 습관에 따라 행동할 때 의도 같은 것은 없다. 습관은 그냥 그 자체로 실행된다. 루틴은 논리가 아니라 자극을 따르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결심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캠페인은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취향과 습관을 가지려면 이해와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옛 습관의 지배를 깨려면 인내심과 더불어, 뇌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긍정적 감정은 기회를 알아차리게 만들지만, 부정적 감정은 위험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엇비슷한 이익을 얻을 전망보다 손실을 볼 가능성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이득을 놓치는 일은 생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위험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치명적인 영향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실과 이익을 그리도 다르게 평가하고,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들기에 선호를 따르는 일이 힘들다. 대신에 우리는 현상 유지를 택한다.                  p.177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위험을 감수하는 걸 싫어하고, 일반적으로 겁이 더 많아진다. 나이든 사람들은 경험에 의존하고, 웬만하면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으며, 실험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줄어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뿐 아니라 이성도 늙는다는 점은 서글픈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 드는 사회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의 뇌가 젊은 사람의 뇌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다르다는 것이다. 고령층이 지배적인 사회는 도전을 대하는 태도가 젊은 사회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길을 가기보다는 익숙한 길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과도하게 보수적인 사회는 몰락할 우려가 있기에, 우리 모두 변화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적응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꼭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필요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낡은 폐습을 끊어내는 일은 관성의 힘과 상실의 두려움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단순히 습관을 버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술을 덜 마시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에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시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버리곤 한다. 하지만 습관을 바꾸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뇌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후변화, 인공지능의 범람, 고령화 등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인류에게 낡은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환대하고 진보로 나아갈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소극적인 나를 바꾸고 싶다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필요한 변화를 이뤄내고 싶다면 이번에야말로 낡은 습관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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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 - 양자물리학과 천문학으로 읽는 우주 탄생
크리스 페리.게라인트 F. 루이스 지음, 김주희 옮김 / 시공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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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과학자들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현대물리학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제는 두 청사진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중력은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일반상대성이론의 휜 공간 관점에서 설명되지만, 전자기력과 강한 핵력, 약한 핵력 등 자연의 다른 힘은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으로 설명됐다. 기초물리학 교과서를 펼치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간의 차이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p.26


양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두 과학자가 우주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넓지만, 폭넓은 시야로 행성과 별, 블랙홀 등에 초점을 맞추면 깔끔하게 정돈된 일련의 물리이론과 법칙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는 고정불변하고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반대로 미시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직관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며 우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자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원소와 화학, 더 나아가 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원리를 제공해준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양극단인 양자와 우주를 다룬다. 두 저자는 거대한 우주의 일생과 미세한 양자 작용이 복잡하게 얽혔음을 밝히며, 양자와 우주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별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의 이해를 위해 가상의 케이크를 구워보는 것처럼 이 책은 복잡한 수식 대신 직관적인 비유와 이야기로 양자와 우주에 대해 들려준다. 우주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먼 미래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라는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을 하나의 시선으로 이어가며 설명해준다.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까? 빅뱅과 원소의 탄생에서 시작해 별의 생애와 블랙홀의 운명을 거쳐 물질의 변화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누구나 한 번쯤 궁금증을 가졌던 우주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가장 현대적인 우주론의 핵심을 콕 찝어 정리해줘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양자물리학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뢰딩거 방정식과 측정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근본적인지는 합의되지 않았다. 파동함수 붕괴를 풀리지 않은 문제점이 아니라 물리학의 본질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비가역성의 근원을 발견한다! 하지만 서두르지 말자. 측정자 또한 원자로 구성됐으므로 양자물리학으로 설명돼야 한다. 실제로 어떤 대상을 측정하는 행위는 그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며, 상호작용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된다. 우리는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p.221


우주 역사에서 인류 문명은 수십억 년도 아닌 수천 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류는 우주가 구사하는 다양한 언어를 성공적으로 해석했다. 과학에서 일련의 혁명이 시작된 것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20세기 전환기부터이다. '왜 그럴까?'라는 플랑크의 의문은 기존의 물리법칙으로 자신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발견에서 양자 가설이 시작되고, 오늘날 양자이론 영역에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후 수십 년간 물리학자들은 양자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켰고, 새로운 물리학을 기반으로 실험 결과가 풍부하게 나오자, 과학계는 대격변을 맞게 된다. 인류가 현대과학기술을 구축하게 된 것도 모두 양자물리학 덕분이다. 그리고 우주의 본질에 호기심을 품었던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고,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이 탄생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시공간을 수학으로 설명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게 되면 과학자들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현대물리학의 청사진을 제시하게 된다. 바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두 가지 기둥이다. 상대성이론은 행성과 별, 은하 등 거대하고 무거운 물리학적 대상을 설명할 때 활용되고, 양자역학은 전자와 입자 등으로 이뤄진 아주 작은 세계의 물리학을 지배한다. 두 기둥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지만, 양자와 중력을 별계의 세계로 분리하게 되면,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분명 어려워진다. 인류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진정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와 우주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양자물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와 천체물리학 대중화에 힘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교수가 함께 이 책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양자물리학과 천문학을 함께 아울러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 가장 작은 세계가 만든 거대한 세계, 양자와 우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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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리학으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 - 사소한 순간에 마주친 뜻밖의 물리학
하시모토 고지 지음, 정문주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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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리학자니까 태양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안다. 그래서 "여름철 교토에서 언제 절대 외출하지 않는 게 좋은가?"를 계산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첫머리에 소개한 지옥 시간대다. 계산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해가 정동쪽, 정서쪽에 위치한 시간대를 추출하기만 하면 된다... 물리학을 이용해서 쾌적하게 산다. 얼마나 근사한가!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좋아한다. 교토시가 '지옥 시간대'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불볕 더위 속 출퇴근을 피할 수 있도록 기억에 근무 시간대를 권고했으면 한다.            p.44~45


갑자기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안 가져왔다. 우산을 안 쓰고 걸어서 목적지로 가야 할 때, 가장 젖지 않는 방법은 뭘까?  복숭아를 여러 사람과 나눠 먹어야 할 때, 공평하게 자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침마다 혼잡한 버스를 타야만 한다면, 붐비는 버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출퇴근 시간이 길다면, 전철에서 좌석 확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하철에서 반드시 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 책은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물리학의 관점 위에 올려놓고, 아침식사와 날씨, 출퇴근길 같은 순간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에서 일상생활에서 건져 올린 흥미진진하고 기상천외한 물리 법칙들을 소개해주었던 물리학자 하시모토 고지는 복잡한 이론 대신 일상의 질문으로 물리학의 핵심 개념을 풀어낸다. 웃으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물리학이라니... 정말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밝혀온' 것이 물리학이라면, 그야말로 일상의 모든 것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물리학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만원 버스에서 핵폭탄의 원리를 포착하고, 사장 비에 덜 맞는 자세를 알아내기 위해 종단 속도를 계산하고, 찜통 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날씨를 예측하며, 소음을 유발하는 다리 떨기 소동을 ‘노이즈 캔슬링’ 원리로 해결한다. AI와 물리학을 잇는 ‘학습 물리학’ 연구자인 저자가 '기계학습과 물리학의 융합' 학문을 만든 이유도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한 호기심과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감각이 일상으로 향할 때 이렇게 멋진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출퇴근에 매일 왕복 4시간을 소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전철 내 좌석 확보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앉기만 하면 노트북을 열어 일을 할 수 있다. '10분 일찍 출근하기'와 '앉아서 정시에 출근하기'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를 고르겠다. 물리학의 기본 과정은 '현상 관측' -> '법칙 추출' -> '이유 고찰과 가설 만들기' -> '공식화를 통한 예언' -> '실험으로 확인'이다. 우주, 소립자, 물질 같은 물리학의 통상적인 대상이 아니어도 이 사고법을 응용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나는 전철에 적용하면서 매일 4시간이나 되는 통근을 즐기고 있다.               p.167


저자의 집에선 아침이 늘 빵과 커피에 과일, 요거트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침 식사에도 물리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물리학이란 모든 사물이 어떤 이치로 그렇게 움직이고 그런 모양을 띠는지를 탐구한 학문이다. '모든'이라고 이름 붙인 한, 그 이치는 아침 뿐 아니라 점심과 저녁 식사에도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아침밥을 준비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식탁 위의 물리학이란 무엇일까. 자, 그날 아침의 과일은 복숭아였다. 복숭아는 구의 표면, 즉 2차원 구의 다면체 근사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복숭아를 구와 비슷하다고 보고, '근사'를 거쳐 물리학을 사용해 복숭아의 부피를 계산한다. 그렇게 무게를 잰 뒤에는 균등하게 배분해서 자르는 수학 문제로 이어진다. 가운데 있는 딱딱한 씨를 피해서 4회 회전 대칭으로 자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찹쌀떡, 도넛 상자가 등장할 때마다 저자는 물리학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낸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출퇴근의 물리'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표에 적힌 시각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을 때, 각각의 전차 도착 시각과 혼잡도를 도표로 만들어서 정리를 하고, 붐비는 버스를 피하는 방법을 알아낸다거나 긴 시간을 왕복해야 하는 지하철에서 반드시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현상의 법칙성을 추출해내는 과정 등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정말 일상의 모든 순간에 물리학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양볼은 풀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킥킥거리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나 어려운 수식과 개념으로 가득한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으로 개인적 경험을 통해 풀어나가는 과학책이라 쉽고, 재미있게 물리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줄, 조금 다른 물리학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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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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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매년 낯선 존재가 되어 깨어나는 법이 없다. 마치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어제 교실 칠판에 써놨던 내용이 싹 지워진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지는 법이 없단 말이다... 그가 '재시작'을 거치면, 마치 자신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 그가 남긴 구멍이 벽지로 덮이거나 다른 사람의 존재로 깔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p.109~110


매년, 독같은 날에,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잊어 버린다면 어떨까.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존재하며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들에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고 다른 사람도 다 그대로인데, 다만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는 상황. 그래서 매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재시작'의 원인이 되는 게 우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그렇게 해마다 자신을 지워버리는 세계 속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운명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일은 토미의 첫 번째 생일이다. 레오와 엘리스 부부는 아들이 한 살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웃집 모리스 부인을 초대한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의 차 모임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월 5일, 토미의 생일이 되면 세상 모두가 그를 잊어 버릴 테니까.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한 레오와 엘리스는 거실 한복판에 누워있는 낯선 아기를 발견하고 경찰을 부른다. 대체 누가 아기 침대와 함께 아이를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두고 온단 말인가. 출동한 경찰도 이상하게 여겼지만, 더 이상한 건 그 집 어디에서도 아이 용품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가 살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거다. 결국 토미는 위탁 시설인 밀크우드 하우스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토미가 두 살이 되던 날 밤,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다. 토미에 대한 모든 지식과 기억,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그 애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들마저 전부 지워져 버린 것이다. 토미는 그렇게 또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에는 서로 친구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이건 토미가 스스로 만들어 믿는 이론이었다. 조시 손더스는 그날 밤 더홀의 주방에서 토미를 처음 만났다. 스물네 시간 전, 토미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화를 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토미는 조시와의 사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둘의 우정이 땅속 깊은 곳에 묻힌 금덩어리 같기를, 지구를 돌더라도 변하지 않을 단단한 덩어리 같기를, 그래서 언젠가 발견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기를 그는 바라고,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p.267


토미는 매년 1월 5일마다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토미가 친구를 쉽게 사귀는 성격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을 알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애써 설득하기도 했지만 열 살쯤에는 그냥 자기소개만 한 뒤 조용히 자리를 찾아갔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해마다 모든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워야 했던 토미의 '기억되지 아 ㄶ는 삶'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날 기억하지 못할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운명대로, 어떻게든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피하거나 바꿀 방법을 알지 못해 좌절감만 커져 갔다. 그러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올 즈음, '재시작'을 속일 허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자신을 지워내는 가혹한 규칙에 맞서보기로 결심한다. 


어제가 없는 세계에서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해마다 모든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면, 누군가와 친밀함을 쌓거나 뭔가 업적을 이루는 것이 다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삶이란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걸까. 매일 쌓아온 시간과 관계를 매년 잃어 버리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지난번보다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면서 토미는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져 간다. 하지만 지켜내고 싶은 존재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잊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토미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마다 정해진 이상한 운명에 맞서 버텨내야 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는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더 응원하고 싶어지는 몰입감을 안겨 주었다. 토미가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싶은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소중한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그들로부터 잊혀진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관계란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시작해 뭉클한 로맨스 드라마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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