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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 성인, 아기, 잠 못 자는 밤, 배설과 우유, 빨랫감더미. 작업하려면 침실의 작은 테이블을 공유하거나 늘 어질러져 있는 식탁을 사용해야 했다. 현실을 직시해. 그녀가 거기서 <여정>을 쓸 수 있었겠어? 그 정교한 산문, 캐서린이 흠모하는 조지 엘리엇의 망령에게 바친 야심 찬 여담, 고통스러울 정도로 민감한 주인공의 의식, 주변을 맴도는 주의깊은 시선, 마치 독자 바로 앞에서 천천히 이야기하는 듯한, 의식적으로 정돈된 늘 너그럽고 관용적인 서술, 그 방대한 자료. 아니, 불가능했다. p.352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학창시절 금단의 사랑을 나눈 대가로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된 그는 긴 방황을 거쳐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칠개월된 아기와 자신을 버리고 아내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남자는 아내의 실종에 대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실종된 아내가 사망하면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쓴 노트 속 글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어 있어야만 했다'는 문구를 보고 형사가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오래 전 연애에 관한 것이었고, 그 문장은 연애가 죽어서 매장되었다는 은유였을 뿐이다. 아내가 왜 떠났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시인의 꿈은 뒷전으로 미루고 홀로 아기를 키우며 현실을 감당하기에 급급하다. 남자가 아내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삼 년이 지나서 그녀가 쓴 소설을 읽고 나서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많은 여성이 그저 꿈꾸기만 했던 무서운 도약을 이루어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그것에 맞서 싸웠다.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뤄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 사랑이라는 제일 비싼 대가를 치룬다. 남자는 아내가 쓴 소설을 읽고 왜 그녀가 떠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녀의 글은 아름답고, 명료하고, 예술적이었다. 도입부의 어조에는 권위와 지성이 실려 있었다고, 작가의 시선은 정확하고, 무자비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눈부시게 빛났다. 그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가 그렇게 글을 잘 쓰기에 용서해야만 했다. 그녀가 사랑을 거둔 건 이기적이고 냉정한 짓이라 해도 말이다. 문학계는 그녀를 천재로 선언했으며 그녀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인생에서 아들과 남편은 사라졌지만,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전 세계에 자신의 책과 상을 쌓는다. 그녀는 거물이 되었고, 45개 언어로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사랑이 과거로 사라질 때 모두가 잊어버리는 본질이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 시간, 나날 속에서 느끼고 맛보았던 것.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덮이고, 그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다시 덮이기 전의 그 모든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많은 기억이 남진 않는다. 오래전에 끝난 연애와 결혼은 과거에서 온 엽서와도 같다. 날씨에 대한 짤막한 언급, 재미나 슬픔이 담긴 간단한 이야기, 그리고 뒷면의 밝은 그림. 제일 먼저 사라지는 건 포착하기 힘든 자신이다. p.65
이언 매큐언은 가족관계, 유년 시절, 태어난 해까지 작가 본인을 빼닮은 주인공 롤런드의 전 생애를 696페이지에 달하는 밀도높은 분량으로 그려냈다. 열한 살의 롤런드는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피아노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중이다. 그는 늘 실수하는 데서 매번 틀리곤 했다. 엄지가 멋대로 움직였고, 늘 똑같은 실수가 이어졌다. 틀리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실수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면서도 놓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 그것이 삶의 교훈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롤런드는 피아노 선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와 금단의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이후 삶의 행로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에게 집착하는 선생 곁에서 떠나기 위해 대학과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기나긴 권태의 시기를 견디다, 가정을 이루고 정착했지만, 그 삶 마저도 평범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떠난 걸 제외하면. 아니, 그것도 반응이었다."
그때 대학에 진학했다면,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아내가 떠나지 않았거나 다시 돌아왔다면?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혹은 내리지 않은 결정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한다. 가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롤런드의 삶을 지켜보며 어차피 인생이 후회의 연속이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모든 순간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두툼한 페이지만큼 차곡차곡 시간의 밀도를 쌓아가면서 서사를 완성해 나간다.
이 작품 속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보자면, 원하는 대로 문학적 야심을 이루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곁에는 가족도, 가까운 친구도,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기다리게 된 삶과 세상에 남을 창작품은커녕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지만, 평범하게 가족과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온 삶을 비교하자면, 관습적인 기준으로 남자가 더 행복해 보인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사랑하는 가족을 철저히 외면한 채 문학적 야망을 이룬 아내의 삶보다 가난하지만 충실한 아버지의 삶을 산 남편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초라한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좌절과 자책, 회한으로 얼룩져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나는 아내 앨리사의 삶에 자꾸 마음이 갔다. 언젠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녀의 삶에 매혹당했기 때문이다. 문학적 야심이 있었지만 사랑에 빠졌고, 그다음엔 결혼, 그다음엔 아기가 태어났다. 옛 야심은 깨지거나 잊히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기로 한다. 누구도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앨리사의 결단이, 그 뒤로 이어지는 행보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롤런드의 일생을 통해 알게되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부분도 너무 좋았지만, 앨리사의 삶을 통해 창작을 하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먹먹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