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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트는 이런 태도에 익숙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상관없는 존재,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그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 것에도 나름대로 이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p.109
대프니는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과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15년 동안 아파트 밖으로 거의 나온 적이 없다. 그리고 일흔 살 생일에, 자신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자식이나 손주도 없었으니 자신을 사랑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제 세상과 교류하고, 친구를 사귈 때가 온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까칠하고 호탕한 성격의 70세 할머니 대프니가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75세 할아버지인 아트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이다. 여전히 활력 넘치고,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불러 주는 곳이 거의 없다. 에이전시의 대표는 그의 전화를 피하고만 있었고,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밤새도록 페이스북에 접속해 딸 케리를 몰래 추적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아트는 거리에서 광고지를 하나 발견한다.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고 싶은가요?
만델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에 가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무료로 식사와 음료를 먹을수도, 따뜻한 복지관에서 몇 시간 보내는 것도 난방비를 아끼게 해주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랜 친구인 윌리엄을 설득해 함께 복지관으로 향한다. 19살인 지기는 혼자 딸을 키우게 된 미혼부 고등학생이다. 2학년 무도회때 여자친구와 관계로 아이가 생겼고, 지기의 엄마가 아기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새출발을 위해 전학을 가고, 지기만 홀로 남겨졌다. 요즘은 만델 복지관의 유아원에 카일리를 보내는 동안 몇 시간이라도 자유 시간이 생긴 참이다.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아기를 돌보며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가 않다. 리디아는 젊을 때 잘나가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였으나 결혼, 출산과 함께 경력이 단절된 53세 전업 주부 중년 여성이다. 딸들이 둘다 대학에 가고 난 후, 텅빈 집에서 다른 여자가 생긴 듯한 남편과 함께 산다. 그리고 오랜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아니게 된 것이 바로 복지관에서 노인 사교 클럽을 운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모임 첫날 복지관의 천장 일부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수십 년 만에 구한 첫 유급 일자리를 잃어 버릴 위기에 처한다.

"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동네 노인들과 불 시합을 하다가 죽는 걸까요, 아니면 파차 클럽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죽는 걸까요? 우린 시인 딜런 토머스의 말을 기억해야 해요."
"뭐라고 했는데요?" 아트가 물었다.
"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날이 저물 무렵에 노년은 불타고 날뛰어야 한다." p.480
나이를 먹고 가장 서글픈 일중 하나는 겉모습은 늙었지만, 마음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 여기 꺼져가는 불빛에 분노하는, 무력하고 어두운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기대기보다 상황을 주도하고, 신기술에 능숙하고, 누구보다 삶에 자유롭다.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까칠하고 호탕한 대프니,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뜨개질로 동네 곳곳을 뒤덮어 ‘제2의 뱅크시’라는 뉴스를 몰고 다니는 루비, 가죽 바이커 재킷 차림에 머리를 연보라색으로 물들이고 거리의 무법자처럼 이동 보조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애나, 늘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려 그들을 도와주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 아트, 아트의 70년 지기 친구이자 전직 파파라치였던 윌리엄... 이들은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운영되는 노인 사교 클럽에서 만난다.
"당신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이런, 당신은 내가 의심한 대로 무례하군요."
노후된 시설로 인해 복지관을 보수하는 대신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노인 사교 클럽이 해체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고령의 노인들이 유쾌하고, 통쾌한 인생 반란극을 보여준다. 어느새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이 곧 철거해도 이상하지 않은 낡고 허름한 주민센터를 지키기 위해 사수하기 위해 한바탕 대소동을 벌인다. 사실 주민센터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 노인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19세 미혼부, 말을 하지 못하는 5세 어린이, 이민자, 경력 단절 중년 여성 등 삶이라는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이 등장해 불완전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결국 구원하는 서사는 뭉클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비호감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기세 넘치는 노인들의 끝내주는 인생 노하우는 덤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단하게 부셔버린, 스웩넘치는 노인들의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