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그때 아빠의 말이 얼마나 기뻤던가.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많이 먹고 많이 웃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즈메간장에는 여자가 네 명 있다. 늘 엄격한 얼굴의 '빠득빠득' 다즈코, 꿈속에 젖어 '둥실둥실' 떠다니는 엄마, 여왕처럼 도도한 '삐죽삐죽' 사쿠라코, 그리고 만사태평한 '헤실헤실' 긴카였다.
아빠와 오하라 도지가 죽고 양조장에는 다즈코 혼자 남았다. 긴카가 돕겠다고 나섰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p.158~159

 

제163회 나오키상 후보작이자,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도다 준코의 신작이다. 150년 가까이 대대로 이어온 유서 깊은 간장 양조장 집안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긴카는 오사카에서 화가인 아빠와 요리를 잘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아빠가 그리는 그림은 상업적이지 못해 거의 팔리지 않았고,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 물건이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 있다. 지갑에 돈이 있어도, 물건이 필요하지 않아도 갑자기 손이 움직여 훔치고는 금방 들켜버린다.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후회하고 울지만, 뒷수습은 언제나 딸인 긴카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있는지도 몰랐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가 가업인 간장 양조장을 이어야 하기에 본가로 가서 살게 된다. 나라현에 있는 아버지의 본가는 뒤로는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오래된 살림집과 양조장 건물이 넓은 부지에 함께 있는 곳이었다. 긴카는 그곳에서 엄격한 할머니와 열한 살짜리 고모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아빠는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양조장 일을 소홀히 하고,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엄마는 절약이 몸에 밴 할머니와 잘 지내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긴카는 아빠 대신 양조장 일을 거들고, 엄마가 친 사고를 뒷수습하며 홀로 고군분투한다. 그 와중에 엄마의 손버릇을 감싸주려다 친구들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억울했지만 그저 견뎌낸다. 게다가 자신이 아빠의 진짜 딸이 아니라 의붓자식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긴카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 혼란스럽다.

 

 

 

"너는 정말 잘 웃는구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마 단순해서일 거예요."
"내 말에 웃어주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
다즈코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얼굴은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눈빛에는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한 온기가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찐 콩처럼 따뜻한 눈빛이다.        p.369

 

이 작품은 긴카라는 한 소녀가 환갑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의 수십 년을 고스란히 펼쳐 보이고 있다. 대대로 당주의 눈에만 보인다는 집안의 수호신 좌부동자가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간장 양조장에서의 삶은 어른들에게도, 어린이에게도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그 와중에 각자가 숨기고 있는 비밀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거짓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독이 되고, 불행을 불러오고, 재앙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굴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 가족의 얽히고 설킨 인연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그 누구도 결코 바란 적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참고, 견디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기는 것이 삶이라는 걸, 작가는 긴카라는 소녀의 목소리로 들려 준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괴롭고 힘들어서 원망하는 긴카, 한 집안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벌이없이 생활비를 본가에서 받아 쓰던 아빠, 요리, 청소 등 실력은 뛰어나지만 도벽이 있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엄마, 엄격한 성품과는 달리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할머니, 그리고 예쁜 외모와 달리 밖으로 엇나가기만 하는 고모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하나씩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이 모든 인물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도다 준코의 뛰어난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가혹한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기로 유명한 도다 준코의 작품 중에서도 주인공이 가장 고생을 덜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긴카의 드라마틱한 생을 함께 겪어 내고 나니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상상이 되었다. 도다 준코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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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KUNAMATATA 2023-03-05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뿌고 기분좋아지는 피오나공주(?)의 방이네요~^^
잘 읽고갑니다

피오나 2023-03-05 15:11   좋아요 1 | URL
자주 오셔서 책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