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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2
안세화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7월
평점 :
하지만 장담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할 것이다. 긴긴밤,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을 떠올리며 숱하게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잡아 볼 것이다. 그 방법이 평생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도,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일단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엿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볼 수밖에 없다. p.130~131
나은은 얼마 전부터 이상한 꿈을 연달아 꾸는 중이었다. 잊을 수 없는 십이 년 전 그날, 그 사건의 완벽한 재현이 꿈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그날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 두 명을 구하고 대신 하늘로 갔던 소꿉친구 수빈 곁에 나은이 있었다. 만일 그때 인사도 없이 떠난 그를 잡았더라면, 바다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그 인생은 지금보다 나았을까? 끊임없이 솟아오른 생각은 그날 수빈이 살려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다다르고, 나은은 두 사람을 찾아 보기로 한다. 어린 시절 사고를 모른 채 각자 삶을 살고 있던 고등학생 은호와 도희는 자신들을 지켜보는 나은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오래 전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수빈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나은은 수빈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왔었다. 하지만 최근 반복되는 꿈을 꾸게 되면서 다시 그곳을 찾는다. 이상한 꿈은 오후 3시에 시작되어 수빈이가 사고를 당하기 직후인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실제 취침 시간은 상관없이, 언제나 꿈속 그곳에서의 시간은 매번 단 한 시간이었다. 자신의 꿈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은은 과거를 바꿔 수빈을 살려보고자 한다. 그래서 십이 년 전 소소리 마을 어딘가에 있던 여섯 살 은호와 도희를 찾아서 그들이 바다에 빠지지 못하도록 막아볼 셈이다. 수빈을 되살려 내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은은 달리고, 또 달린다. 한편, 지금까지 몰랐던, 하지만 현재의 자신들을 있게 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은호와 도희는 수빈에 대해 알아보고자 사건이 일어났던 그곳으로 향한다.
"종종 생각했어. 그날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정대로 선착장까지 함께 갔다면 어땠을까. 그 장면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어. 노을이 내리고, 갈매기 소리가 울리는 그곳엔 자주 같이 있었으니까. 나란히 앉아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 걔가 먼저 내 이름을 불렀겠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그러면 난 걔가 들려줄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테고. 그런데...... 항상 그다음 장면이 잘 상상되지 않았어. 아무리 기다려도 수빈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걔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내가 전혀 모르니까." p.197~198
만약 과거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단, 그럴 경우 그가 구해냈던 두 아이의 미래는 사라진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관 없는 두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긴긴밤,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을 떠올리며 숱하게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쳐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을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잡아 보고 싶지 않을까. 그 방법이 평생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도,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내가 바꾸려는 미래는 일확천금을 번다거나,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을 다시 살려내, 그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 꿈 속에서 수빈의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도착한 나은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수빈이는 자신의 친구를 죽게 만들었던 은희와 도희를 지켜보며 생각한다. 사고의 원흉은 이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선택은 수빈이 했고, 아이들은 운 나쁘게 운명의 장난질에 휘말렸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 사고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빈이의 잘못도 아니었다. 미래를 바꾸어 볼 기회가 단 한 번 남은 지금, 수빈은 고민한다. '만일 내가 꿈속에서 수빈이를 붙잡으면, 현실에서 은호와 도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과거를 바꿀 경우 누군가의 희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은과 함께 독자들도 고민에 빠진다.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어떤 선택이 더 후회하지 않을 미래로 데려갈 것인지 말이다. 학업의 무게에 눌려 바쁘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어른들에게도,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표지의 색감만큼이나 상큼하고 찬란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