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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평점 :
"<오만과 편견>이 여러분 독서 모임에서 첫 번째로 읽을 책인가요?"
퍼트리샤가 묻자, 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골랐어요. 당신은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퍼트리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독서는 자신의 삶에서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현실이 괴로울 때마다 항상 책 속 세상으로 도망칠 수 있어서였다. 외로울 때마다 책이 위로하며 함께 있어주었고, 그렇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모든 문제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었다. p.82 ~83
고등학교 서무실에서 일하는 퍼트리샤는 어느 날 하얀 봉투에 담긴 우편물을 하나 받게 된다. 발신인이 없는 우편물의 소인은 스웨덴이었고, 봉투 안에는 작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동생 매들린의 열여덟 살 생일에 선물한 거였다. 스웨덴으로 떠났던 날 매들린은 이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지 30여 년이 지났다. 목걸이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들린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퍼트리샤는 그렇게 낯선 나라 스웨덴으로 향한다. 그곳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유셰르였다. 매들린은 30여 년 전 유셰르의 자유 교회에서 인턴 자리를 얻었고, 일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과연 퍼트리샤는 동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상관을 조르고 졸라 얻어낸 특별 휴가의 기한은 3주였다. 퍼트리샤는 어떻게는 그 안에 동생의 실종에 관련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이야기는 현재 퍼트리샤의 시점과 30년 전 동생 매들린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당시에 매들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금씩 알게 되지만, 현실의 퍼트리샤는 동생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오래 전이라 당시의 기억은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했으며,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혹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매들린이 자발적으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던 중 퍼트리샤는 묶고 있는 호텔의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워낙 책을 좋아했기도 했지만, 동네 주민인 독서 모인 친구들에게 사연을 말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퍼트리샤는 작은 창문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결치는 파도와 목 놓아 우는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쩐지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모나의 책이 있는 B&B'에서 또 환상적인 아침 식사를 할 채비를 마친 그녀는 다시금 빠르게 머리를 빗었다. 매일 아침 모나는 오븐으로 폭신폭신한 호밀빵을 갓 구워내어 그 위에 버터를 발라 사르르 녹인 다음 시럽과 등자 열매, 크림치즈, 홈메이드 마멀레이드를 같이 내놓았고, 거기다 시장에서 방금 사 온 훈제 고등어와 이웃 농장에서 조달한 커다란 갈색 달걀도 곁들여 아주 멋진 아침상을 차렸다. p.356
독서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모나의 책이 있는 B&B'는 경쾌한 건축 양식이 특징인 오래되고 노란 저택이다. 모나는 단지 편안해 보인다는 이유로 호텔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했는데, 덕분에 호텔에 들어서면 마치 나이 지긋한 사서의 거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에 둔 이상한 화분 사이, 다 해진 소파 옆 협탁 위, 온갖 그릇과 장식품들 사이마다 책이 흩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텔은 유셰르 마을의 공식 기관 같은 곳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사방에 책이 가득한 작고 아늑한 호텔, 모나가 구워주는 맛있는 빵과 음식들, 생각만 해도 설레이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동생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가 중심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독서 모임의 회원들인 중년 여성들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퍼트리샤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로부터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의지가 되어주는 치유의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혹은 독서 모임이 소재가 되는 작품은 언제나 설레임을 안겨 준다. 이 작품은 <템스강의 작은 서점>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프리다 쉬베크의 신작이다. 전작이 낡고 오래된 서점을 다시 살려내려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다는 미스터리를 한 축으로 호텔 주인이 여는 작은 독서 모임이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따뜻한 드마라를 그리고 있다. 완두콩 색으로 칠한 오래된 계단 난간, 계속 새로 천을 씌워 긴 세월 동안 사용해온 해진 소파, 녹색 대리석 장식 선반이 달린 낡은 벽난로, 한 세기도 전에 직접 손으로 짠 짙은 색 나무 서가, 고집불통 늙은 고양이,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템스강 풍경까지 들어서는 순간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작은 서점만큼이나 이번 작품의 배경 또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유셰르에서 펼쳐지는 작은 독서 모임과 문학 축제,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을 통해서 따스한 위로의 시간을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