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고 싶음 가면 될 거 아닌가"라고 반문해도 결국 여행을 못! 간다. 핑계를 대자면 왜 "못(NO")이냐 하면. 사는 게 다 못(PIN)으로 쳐돌려 있거든. 뭐 관광이라면 잠시 다녀오는 것으로도 가능할 수야 있겠지. 아니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어야 하는데, 몇달씩 집을 비우며 직장을 관두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회사가 한 달 두 달 간이나 여행 가겠다고 휴직하겠다 하면? 그러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몇 곳이나 될까. 연휴라 해봐야 명절에 빨간 색 날짜 이외엔 꼬박 징역살이하듯이 잡혀 있는 현실에서 장기간의 휴직이란 것보다는, 퇴직이 훨씬 여행에서 가능한 시간표일 것이다.

 

아마도 장기간의 여행은 현실에서 관두고 떠나야 할, 그리고 관두고 떠났으니 다시 돌아올 이유를 만들지 않을 정도라면? 비로소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자. 퇴직계를 제출하면서 사표 낼 때 사유가 여행이라고 하면? 회사 대표는 이 무슨 뜬금없는 이유라는 반응으로 미친 세 끼라고 쏘아붙일 것이 뻔하다. 아니 지금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여행 갈려고 사표 낸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이 통상적이다. 일주일 휴가로는 안되겠냐라고 여행 대신에, 관광성 휴가를 권유할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달 아니, 서너 달을 비운다고 하면 여행의 목적으로 사직이 아니라 혹시 다른 불만 있냐라는 반응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일 년을 벌어서 한 달 동안 여행을 간다고는 하나, 그건 그 쪽 여건일 뿐, 여기는 그런 이야기에 그저 먼 나라의 워라벨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대충은 여행 간다고 하면 어디 놀러 간다는 유람성 놀이처럼 여길지도 모르니까. 여행을 왜 놀러 같다 생각하는지, 외국이나 혹은 여타 국내로 여행 간다면 십중팔구는 대체적으로 놀러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골프 치러 가는 것도 관광이지 여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많은 여행사가 있지만 대부분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놀이의 일종의 영업이 대부분이다. 관광 경비를 받아서 차액을 남기는 식의 수익창출 구조이다. 여행사에서 내놓은 패키지여행은 그냥 관광이라는 상품을 소비는 것일 따름이다. 다면 여행이라는 포장지가 아닐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관광도 포함된 유랑이다. 유랑엔 방황이 제격이거든. 어디를 갈지를 몰라도 된다. 정해 놓은 것은 없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무작정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된다. 정한 루트가 없는 목적지가 없는 목적의 여행일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낯선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여기서 뭐 하자고 이렇게 방황하는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 생겨야 겨우 여행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착민은 유랑을 끝낸 사람들이다. 어디에 정착하기까지 어떤 유랑을 거쳐왔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공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는 시간 또한 여행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도 앞서 경험한 적이 없는 낯선 시간이라 것. 혹자는 두메산골 산중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상상을 할 것이고, 하루 종일 배낭을 메고 다녀도 늘 그 자리인 것처럼 살기도 한다. 그렇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낯선 시간으로의 여행이라 여기면 그나마 여행을 가볼 수 없는 사람이 둘러댈 여행 못간 것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은 아니 올 것처럼 짐을 싸서 떠나는 게 진짜 여행은 아닐까 한다. 시간여행도 다시는 첫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첫 출발지의 시간을 되짚을 수도 없는, 영원한 떠남의 여행을 꿈꾼다면 지금 떠나고 싶은 간절한 여행이 될지도.

 

개인적으로도 사진을 오래 찍어 왔던 터라, 어디 나들이라도 갈라치면 카메라부터 챙기는 버릇이 생긴지 오래되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여행을 꿈꾸는 게 왜 이렇게 사치처럼 여겨지는 걸까. 나도 잘 떠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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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2-12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웬지 끌리네요. 저 역시 여행은 엄두를 못 내는 형편이긴한데
겁도 좀 나더라구요.괜히 도둑이나 괴한 또는 사기꾼을 만날까봐.ㅎㅎ
요즘엔 부쩍 여행 프로를 보게 되더라구요.ㅠ.

yureka01 2020-02-13 08: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에세이도 좋은데 드로잉 그림 보는 재미도 솔솔하더라구요..
요즘은 워낙 여행정보가 잘 되어 있으니 무리 없을 거예요..

프레이야 2020-02-12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여행관련책이 부쩍 눈에 들어오는데 이책은 특히나 일단 드로잉이 마음 당기네요. 소개 고맙습니다 유레카님

yureka01 2020-02-13 08:4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드로잉 그림 보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도화지 한 권들고 연필로 그림 그리며 돌아다니는 여행..흐..너무 좋을듯 ~

겨울호랑이 2020-02-12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간의 이동뿐 아니라 시간 또한 여행‘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다만, 공간은 삶의 기준점이 있어 멀리 갔다가도 돌아올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 돌아올 기준점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시간 여행은 느리게 가는가, 빨리 가는가 하는 삶의 기울기 선택만 가능해 보입니다...^^:) 잘 살아야겠지요.ㅋ

yureka01 2020-02-13 08:45   좋아요 1 | URL
시간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회성..이었으니까요..
오늘도 좋은 여행되는 날 되었음 합니다~~~^^..

빵굽는건축가 2020-02-23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바람의.흔적 시집 잘 받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해요. ^^ 건강하시고 글 많이 보여주세요. ^^

yureka01 2020-02-23 19:52   좋아요 1 | URL
제가 무척 좋아하는 분야의 사진이라서요..ㅎㅎㅎ 좋은 감상 되셨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달하고 싶어도 완전히 전달할 수 없음에 대한 애절함과 비통한 우울감을 자아낸듯한 느낌이 드는 노래, 전하지 못한 진심. 우연히 유튜브에서 음악  서핑하다가 얻어걸린 곡이었다. 외국 소녀가 부르는 노래 동영상(영어곡)을 보다가 노래가 차분하니 울림이 있네 하며 듣던 중 동영상에 달린 아래 댓글을 보니 원곡이 BTS가 부른 곡이었던 거다. BTS를 전혀 몰랐다. 아, 그랬구나.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이다. 인류의 역사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한 인간의 삶의 과정은 보통은 소통, 다른 말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서의 교류와 교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다 아시다시피 인간이란 사회적인 관계 형성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 소통이라는 거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요소로서의 소통을 하고 있다지만, 엄밀하게 전부 소통이 될 수 있을까. 뭔가 전달할 수단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진심의 전달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물며 전기가 이동할 때 전류 손실이 발생하고, 완전한 에너지의 전달도 없는 건데, 과연 사람의 진심은 백 퍼센트로 전달 가능이나 할까 묻게 된다. 연인 관계라 할지라도, 부모 자식 간이라 할지라도, 혹은 수십 년 소주 마시며 놀던 친구 간에도, 아니면 더 나아가 나와 나 자신 간에 있어서, 어느 것이 헛심인지 진심인지 욕망인지 욕구인지 주장인지에 대해 전달이 제대로 하기는 했나 따질수록 모호해진다. 그래 대충 뭉덩거려 개념적인 요지나 계통적인 맥락만 전달되면 되는, 그래서 어쩌면 소통과 불통의 중간 어디쯤에서 진심이라며 뜻과 의미나 의사를 덩어리로 뭉쳐 주고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또는 이해와 오해의 이 사에 어디쯤에 있을까. 누군 "아"로 들었는데 "어"로 말했다고 하는 이 소통과 불통과 이해와 오해의 인간관계의 사이에서 말이다. 가끔 내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며 소통의 수단을 활용한다 해서, 얼마나 전달이 될 것인지 구체성에 대해 얼마나 큰 모호성을 가지고 있을지 사람의 마음은 헤집어 낼 수가 없다. 이렇게 소통이란 무엇으로 담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사회생활에서 보자면, 난 널 못 믿으니까 각서를 쓰라는 둥, 담보를 설정하라는 둥, 합의서나 확약서 따위를 쓰고 공증하며 서로 진심을 나누었음을 객관적 문서화 시키곤 한다. 이게 다 오해와 이해의 차이에서, 서로의 약속을 증명하는 이유가 많은 것도 이해가 오해되는 수많은 경우의 사레를 조금이나마 예방책이 아니었던가 한다. 어제의 의미가 오늘에서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지, 혹은 오늘의 뜻이 내일은 또 무엇으로 바뀌는 것인지 서로간의 약속은 철저하지 못한 것을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전달적 수단으로 피사체가 되는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사하여 명확하지만, 또한 얼마나 사진이 의미나 의도하는 뜻이 모호한 것인지 사진을 찍을수록, 점점 완전 소통과 완벽한 불통의 어느 지점의 중간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오래전 살았을 적에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사람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에서 보니 딱 그러하다. 어떤 글도 없이, 노 퍼블리싱 했으며, 오로지 사후에 발견된 사진만을 가지고서 사진을 찍었던 사람의 진심을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기는 있는 것일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즉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사진이란 일부를 보고 추측을 하고 추측을 확장하고 확장된 추측이 곧 신화같은 전설적 인물로 바뀐다. 당시 살았던 이력이나 경력만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활동과 내용을 보며 삶과 사진의 관계를 연결하는 예측이 얼마나 찍는 사람의 진심이었는가에 모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아 당신은 왜, 무슨 마음을 가지고 이 사진을 직접 찍었는지? 물어도 사진으로는 말이 없으며 사진은 또 그 어떤 말을 하는듯하다. 알듯 모를 듯한 불명확한 말들이다. 명확성이 대단히 높은 사진을 두고 그 뜻과 의미의 불명확성은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설명이 되다가도, 설명이 안되는 의미론적인 사진은 현실을 기반으로 직접 찍었으나 또한 직접 말로써는 아닌 그 의도의 불명확성이다. 단지 사진을 찍었을 뿐인 사람이 사후에 비로소 작가라는 칭호를 후세의 사람들에게 회자될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은 사진을 찍고 발표할 기회가 전보다는 훨씬 많다. 진심을 주장하여 외치든 소통의 진정성을 의도하든 뭐든 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하다못해 작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진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에 사진을 업로딩하여 보여 줄 수 있고 하다못해 SNS의 모임에서도 오늘의 일과들을 설명할 수도 있다. 하다못해 새해 인사랍시고 이미지를 다운로드해 다시 전달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의도의 말을 전달한다. 그럼에도 우린 현대의 각 개개인의 형식적, 타성적, 의례적인 인사 대신에 진짜 정말로 전달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며 어떤 것일까. 혹여 진심을 내보였다간 서로 간에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혼네와 다테마에 로 은유된, 진심과 겉심의 마음들 사이에서 이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한 적은 없는가 말이다.

 

정말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들어 내려 않는다. 마음의 밑바닥에 앙금처럼 가라앉아서 좀처럼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활성화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소통이 쉬운 것이 아니란 거다. 과연 사후의 명명된 작가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왜 오늘도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 찍고 싶어 해서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서 밥 벌어먹는 짓에 대해 환멸적 구속처럼 여기면서 그 사진의 욕망으로 무엇을 하려고 현재의 구속을 싫어할 것인지에 대해 따져 보게 된다. 딱히 결론이랍시고 명확하게 아 이거라며 그것을 지시할 것이 확연하게 부각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나와의 소통이 부재중인을 자각하게 된다. 그 왜 한창 유행가 가사에서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어떻게 알겠소냐'라고 하는 까닭이 낯설지가 않다. 참으로 미묘한 간극이다. 진실로 하고 싶은 의미를 내보이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답답증이 도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진심이라며 함부로 들어 내어선 안되는, 관계의 일탈을 두려워한다. 그래서일까? 심리학에서는 행동학으로 그 사람의 행위적인 말을 해석하려 하고 행동으로써 그 의미를 추출하려 드는 이유가 아닐까. 나의 욕망에 충실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의 욕망을 적당히 행동과 말의 커튼을 치고 보이지 않게 단지 상대가 어떤 유리한 해석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나 않을까라는 자극을 알아차리는 것이 눈치코치로 재는 건지도 모르겠다.

 

달리 생각해서, 모든 마음에 진심만이 최선이거나 최고일 수도 없다. 인간이란 서로 간에 이익과 생각이 욕망이 상충될 때 어떤 적당하게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 만큼 정도로  위선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가끔 위선적이라고 듣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진심만을 말하지 않는다 해서 거짓이라고 몰아세울 수도 없다. 위선과 거짓은 어쩌면 인간이 인간 사의 관계를 틀어지지 않는 일종의 모순을 처음부터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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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30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말씀처럼 한 장의 이미지가 수많은 말보다 더 진심을 담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 장의 이미지는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담겨 있는 반면, 말로 표현된 언어는 의식만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yureka01 2020-01-30 11:56   좋아요 1 | URL
그 어떤 직설로도 진심은 100퍼센트로 전이될 수는 없는 수단의 한계가 다 있기 마련이겠지요...
그래서 차라리 은유화시켜서 시가 사진이 더 나아가 예술이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서요.

이왕 다 전달 안될 바에는 더 비틀고 더 꼬아서 미학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도 좋을거 같아서요..

강옥 2020-01-3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실과 사실의 차이
사진은 진실보다 사실에 충실하지요
세상 만사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특히 인간이란 존재는 더욱 -

yureka01 2020-02-02 09:5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명언이십니다..^^..

2020-02-03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04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 눈빛포토에세이 2
권철 글.사진, 고성미 옮김 / 눈빛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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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서러울 때가 특히 생긴 것으로 차별받을 때이다. 누가 차별받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닐 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들에 대해 차별적일 때, 존재의 슬픔을 느낀다. 차별로 슬픔을 준 사람들이 우월감으로 행복한 것도 아닐 텐데 차별로 분노를 표출하며 마치 벌레를 죽이듯 세상의 모든 벌레가 무용한 존재인 것처럼 사람을 학대할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혹시나 무슨 병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전염을 시키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는 격리를 당하고 분리를 시키고 배제를 시켜 버린다. 차별로 인해 분리의 장벽을 치고 생긴 것이 마치 죄가 된양 격리당했을 때이다. 차별은 무지해서이거나, 지독한 아집과 혹은 편견에 의해서거나 오류의 판단에 의해서거나 또는 의도적인 정치성으로 인해서 등등 그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혹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피해를 입은 것과 같은 피해 망상 때문에 멀리하려 들 때도 있다.

 

시장에 가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열대 과일인 바나나는 단일 품종이라고 한다. 즉 사람으로 치면 한 인종 밖에 없다는 것과 같이 차이가 없다. 가장 평등한 것은 바나나가 아닐까 한다. 한가지 품종의 바나나를 보고 차별은 없다. 빨간색 바나나를 본 적이 없다. 때로는 지역에 따라, 토양의 성격에 따라 생김새는 다 비슷해도 맛은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도 맛의 차이에서 바나나의 특유의 독특함은 거의 일정하다. 달리 말해서 바나나는 단일 품종으로 유전적 대가 끊기면 바나나는 멸종할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바나나를 맛볼 수가 없다. 왜 바나나에 비유하는가 하면 사람도 단일 품종의 인간만 존재한다면, 차이가 없다면 모든 것이 공평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차이가 없으니 인종 간의 차별을 없다고 바나나처럼 모든 것이 단일한 맛을 낸다고 보장도 없다. 특히 인종 간의 차별로 인한 인간의 차별성에 대한 편견은 그래서 아주 지독하다. 생긴 것으로부터, 피부색으로부터 나와 다름 이질성에 대해 가혹한 역사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더더구나 사람의 생김새로 인한 차이는 이질감에서부터 시작되고 나와 다름에 대한 이질적인 거부감은 배척으로 나온다. 인종적, 성별적인 차이를 이내 제도적 권력과 결부되면서 더욱 가혹하고 지독하고 악랄했다. 빨간색의 바나나를 상상한 적이 있는가? 어쩌면 이 책의 사진에서 나오는 나균에 감염되어 평생을 나환자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나환자를 은유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린 얼마나 생김새의 편견이 지독한 것인지 우리 스스로는 모른다. 설사 안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만큼 낯선 모습의 생김새에 때로는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질병을 치른 후유증에 시달린 아픈 사람이었음을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알려 주었다.

 

권철 작가는 한센병이라 불리는 나병환자에 대해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나병환자들이 사회에서 잘 드러 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숨기려 하며, 또한 사회 체재가 나병환자에게 철저한 격리를 목적으로 했다. 나병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인류와 함께 상존했던 질병이었으나, 그 특유의 후유증으로 인체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감염의 두려움으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감염되지 않거나 완치되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혐오와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분리시키려 했다. 집단 수용시설로 강제 이주시키고 개인적 사생활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병원균에 감염된 것만으로도 인생은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학대를 당했던 역사이다. 이런 편견을 사진작가는 다큐와 르포의 형식으로 한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에게 집중하며 그와 교류하면서 그 삶을 추적했다. 그야말로 빨간색 바나나 같은 이질 당한 편견에서 하나의 인간적 휴머니즘을 한센병 환자에게서 발견하는 것. 그러함으로써 나병환자들이 질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모양만 다른, 색이 다른, 엄연한 인격체임은 사진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정상적인 직업도 구할 수 없고, 격리당한 삶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었던 한센병 사람들의 고통은 사진의 전체에서 흑백으로 암울하게 처리됨으로써 우울로 표현될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편견과 차별의 질곡에서 살았던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삶의 수긍의 적응하며, 그런 사진을 통해서 한센인들이 사회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신의 삶을 시로 노래하는 표현이 어쩌면 역설적 긍정을 사진으로도 표현되었던 거다.

 

사진 주인공이었던 텟짱의 삶을 통해서 평생토록 존재의 저주처럼 살았음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은 그의 삶을 노래한 시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보다는 오히려 한센병으로 겪은 삶을 시적인 미학으로 승화시켜 냈던 한 사람의 일대기 같은 사진은 존재론적인 그늘과 그 빛의 교차점을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겪을 수 없고, 혹여 사진작가처럼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 삶에서 한센인에게 손을 내밀며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진작가가 새삼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삶이란 그런 거다. 내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들에 대해서 비관과 긍정의 흔들림은 그의 사진에서 투영된다.

 

사진은 빛을 통해 숨어 있는 것을 드러 내는 역할을 한다. 억눌렸던 아픔과 그늘을 고스란히 빛 속으로 끄집어 내어, 숨기고 싶은 것들 감추고 싶은 것들에 저항하게 한다. 차이를 부각시키고 차별이 결코 되지 않을 양지를 지향하면서 알게 모르게 작용한 편견을 깨는 것. 그들도 아픈 사람이었음을 들어내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인류애의 자기 치유력을 사진은 증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말 좋은 사진과 책이었음을 감사히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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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1-23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랍네요.
한센병, 시인, 감사, 저주, 차별과 차이..... 사진으로 담기엔 무거워 보이는데 말이죠.
눈빛출판사 책이군요. 사진책 잘 내죠? 눈빛

식구라야 셋, 그마저도 일년에 몇번 못 보는
하기사 잘난 아들 두면 해외동포가 된다는데 그거 면한 것만 해도 어딘가요 ㅎ

yureka01 2020-01-26 18:27   좋아요 1 | URL
한센병에 대한 편견이 지독한 곳에서 그들의 삶을 조명한 사진은 극히 드물거예요..
네 눈빛출판사의 사진 책이었어요..

저도 식구가 셋인데..마침 딸아이가 유럽가서...와이프랑 둘이서 명절 지내니 완전 썰렁하네요..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몇 출판사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출간되었다. 의도야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며 유언으로 남겼다. 말빚이 너무 크다고 하셨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책이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음에 대한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하고 떠났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법정 스님의 기록문이나 예전에 남긴 글로 새로이 엮어서 책으로 냈다. 이는 유언에 의미하는 뜻에 반하고, 무시하며 따르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아무리 하려 해도 참아야 하는 게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태도가 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따르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무소유를 설파하며 떠난 스님의 유언이 남은 자들의 어김에 대해 소유의 빚으로 남은 거다.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하지 않는 게, 인간적인 도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은 절판하라고 했으나 이미 나온 자신의 책을 불 질러서 없애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출간된 책만으로도 얼마든지 떠난 고인의 의사를 되새기고 삶의 방향성으로 삼는 가르침을 받기에 충분하다. 떠난 고인이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추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가르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미 차고도 넘친다. 불교의 종교관은 욕망의 헤탈을 수행으로 삼는다는 것이지만 의미만 가지고는 어렵다. 스님이 사신 것처럼 평생을 절제하고 욕망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그의 말을 통해서 안다고는 하나 실제론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스님은 말의 빚을 졌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다못해 우리들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찌들려 살면서 말의 빚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더해서 무수한 존재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알게 모르게 공해 물질을 얼마나 뿌렸을까,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 시켰을 것이다.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에너지와 가공하고 만들기 위해 부산적으로 나오는 공해물질은 또 얼마나 될까 계산하기도 어렵다. 살기 위해서 자연의 공해라는 물질을 뿜뿜하는 가해자 거나 혹은 공범자가 되는 셈이다. 오늘날 많은 건축물이나 구조물에는 일일이 따져볼 수도 없이, 발생하는 에너지의 소비가 결국은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에 일말의 안전에 도움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시대로 돌아가서 돌도끼를 들고, 동굴에서 기거하면서 풀잎으로 가린 옷을 입고 살지도 못한다. 절대 원시로 돌아갈 의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알게 모르게 뿜뿜하고 살아야 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도, 확답도 못한다. 우선 당장의 공해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먼 훗날에 내가 알지 못하는 현상으로 벌어질 것인지 그 각자가 지는 책임은 1/n이 될 것이고 피해는 가난의 순서로 돌아간다.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존재론적인 빚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산 자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그 유언의 뜻을 무시해가며 뜻을 어기고 책을 낸다. 스님요. 당신이 떠난 후의 당신이 주장한 말씀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의 소유가 아님이었다는 것을 스님을 몰랐을 것이다. 어찌할 방법을 잃어버렸으므로, 내가 떠난 후 당신 자신이 남긴 모든 것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의 소유였음을 법정 스님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모든 것을 더 이상 내 것도 아니다. 스님의 남은 말씀이 스님의 소유가 아닌, 살아남아 유지를 받들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소유가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무소유란 내가 떠난 이후의 소유가 무의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은 사람은 남겨진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이상 가타부타 할 것도 없다. 내가 떠나고 남은 말들이 결국은 스님의 빚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빛으로 환유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더이상 남기지 말고 절판하라고 해도, 절판하지 않는다 해도 법정 스님은 아무런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절판의 유언은 그저 유언만으로 남았을 뿐이다. 지키든 말든 남은 자들의 업,,,으로 남았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유언의 유지를 받을까 말까라는 고민이 주어졌다. 남겨진 책의 말씀이 어떻게 사용되든 이용을 하든,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이 행할 자신들에게 남겨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의 말은 여전히 말의 빚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반짝이고 계속 돌고 돌아다닐 것이다. 빚지고 살지 말고 빛지고 살자. 이제 스님의 말은 개인재가 아니라 공공재가 되었다. 흔히 하루에 몇 번이나 호흡을 하며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었을까. 공기도 물도 공공적 성격과 같이 스님의 그 뜻도 공공의 공기처럼 떠돌아 누군가의 탁한 가슴을 청량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재가 되었던 것을 아닐까 한다.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두루두루 돌려가며 삶아 가더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 말의 빛이 쏟아나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자본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약탈적 자본주의 시대, 야수가 들끓는 야만의 자본 시대에서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한 것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연봉이 몇 천에서 억대를 넘본다고 해도, 물려받은 게 많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서울에서 역세권을 품은 한강변에 아파트 하나 사기 어렵다. 평생을 모아도 내 편히 쉴 곳 하나 마련하기가 불가능한 시대가 된 거다. 욕망의 투기는 아파트값을 끝없이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아무리 국가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수단을 사용해도 그 압력을 이겨 내기가 버겁다. 그렇다면 부모의 찬스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대기업 연봉으로 날뛰는 부동산 아파트를 번듯하게 하나 대출도 없이 마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에 절망이 팽배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조적이고 자포적 사회에서 소위 사토리 세대처럼 득도한 것과 같은 체념의 상황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수십 채 갭투자로 싹쓸이 해서 점점 차액을 이익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극히 소수들이지만 다수에게 결정적인 포기의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어느 정부라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우려 노력하는 것만은 맞겠지만 서민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사회나 국가가 돌아가는 것쯤은 너무나 잘안다. 극히 일부의 소수자들만의 독식하는 사회의 체재에서 부조리함의 팽배 자포자기로 연결될 것이 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누구는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없어서 욕하고, 독식을 하지 못해서 욕한다. 욕하는 그 불만과 욕망의 집착은 욕할 뿐이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이 채울 수 없는 자본을 향한 저주를 붓고 자신을 욕망을 학대한다. 스스로 행복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스스로의 행복은 커녕 누가 준 행복도 못 알아차린다.

 

법정 스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책, 데이비드 월든이 쓴 책은 한결같이 소박한 오두막에서 자연과 벗하며 산 삶을 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자본이란 물질의 껍데기를 두르고 산 욕망의 겉옷을 걸친 몸은 야위고 지쳐가고 온통 상처를 받는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어디 주식 시장의 시황판이 나오는 게시판을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불능에 따른 분노의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몇개만 봐도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말의 빚들이 많다. 그래서 그곳에서 스님의 자연 회귀를 운운했다간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식일 수밖에 없다.

 

잠이 들면 눈을 감는다. 빛이 차단해야 숙면에 들 수 있지만 사람들의 행복은 늘 눈을 감고 잠만 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행복할 줄은 몰라도 스스로 불행한 방법도 너무 쉽게 안다. 모든 것은 스스로에 달려 있으니까. 뭐 어쩌겠나? 그렇게 살다 저렇게 가고 나면 존재의 그림자도 사라지면 그만이다.

 

주말에 또 강가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보고 반짝이며 반사되는 빛(윤슬)이라도 보고 행복에 젖어 보자. 사는 게 이게 다 뭐라고. 지랄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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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1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님은 가셨어도 우리가 아직 떠나보내드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2009년 즈음에 돌아가신 네 분(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 법정스님)의 빈자리를 지금도 느끼기에 그렇다 생각됩니다...

yureka01 2020-01-20 08:50   좋아요 1 | URL
그 뜻과 유지를 받아 새기는 것이 남은 자들의 업이겠지요..그럼요~
든자리 난자리..대비되더군요,

강옥 2020-01-20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대산 쯔데기골, 스님 거처에 가본적이 있지요. 물론 돌아가신 후에.
스님을 존경하던 신도 한분이 오래전에 그 오두막(?)을 빌려드린 거였는데 스님 사후에 문제가 생겼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거처를 수소문하여 찾아들기 시작한 거죠.
오두막의 소유권자는 마침내 철조망을 두르고 말았습니다. 하마트면 소유권 분쟁으로 비화될 뻔했던-
세인들은 유명인들에게 관심이 많죠. 인증샷에 열광하고요. 당사자의 심정 따위는 관심도 없겠죠 ㅎ

yureka01 2020-01-20 08:51   좋아요 0 | URL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 게 그렇게 어렵나 봐요..ㅎㅎㅎㅎ
유심을 유물론적으로 치환해버리는 마인드가 의외입니다.

2020-01-2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1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아침에 네이버 사진 불로그 게스트 창에 오래전 이웃분으로부터 안부 글이 달렸더군요. 오래전 이웃분이라 당연히 링크로 이웃 블로그에 찾아가 보니, 강원도 분이신데 개인 주택을 신축하다가 거의 사기를 당하다시피  했더군요. 건축자금은 자금대로 쓰고 집은 하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먹고 나른 업자에 이어 새로운 업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군요. (아 씨바. 자동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나도 건축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종사했는데 아직도 저런 비양심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과거에는 심심찮게 그런 비양심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지경이라고 한다니 기가 찰 수 밖에요. 건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비양심적인 사람에게 일을 맺겨 사달이 날까. 이건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인간 사회라는 세계의 궁금증이자 사진으로도 늘 생각하던 화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흔히 의식주라고 합니다. 주택은 바로 "주(거)"에 해당하는 필수적인 필요 충족의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집이 없는 원시시대에도 하다못해 동굴을 찾아 들어갔어요. 항온을 해야 하는 인체 구조상 따뜻해야 할 곳과 잠을 자야 하는 무방비의 상태를 집이 막아 주는 역할은 인간에게 그래서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누구나 주택은 필요로 하고 당연히 움막이든 초가집이든 집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아마 분명 오늘도 다들 어떤 구조의 집이든 간에 밖에 노숙을 하지 않는 이상, 다 집이란 거주 공간에서 먹고 자고 했을 것이 확실하거든요. 야생에서 노숙할 수야 없거든요. 물론 등산 가서 백팽킹이야 재미 삼아 할 수도 있겠죠. 이도 텐트라는 집도 가설하거든요. 한두 번이야 노숙으로 침낭 속에서 잠잔다 해도 이게 수십 년간은 불가능하거든요.

 

집을 구하는 방법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마 일생에서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것 중에 하나일 겁니다. 공동주택(아파트나 다세대 등)를 사든가 아니면, 시골에 주택을 신축하든가 이랬던 저랬던 돈이 듭니다. 아니면 직접 신축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한다 해도 기술력이 필요로 하고 자재를 구해야 하고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든가 장비들 들여야 하는 모든 것이 자본과 뗄 수가 없거든요. 제일 비싼 물건을 구입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사전에 지식이 없이는 돈만 있다고 해서 함부로 덤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면 이미 다 지어 놓은 집을 편하게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가격이 더 비쌀 수 밖에요. 그래서 사전에 대강의 프로세스를 공부할 필요가 있거든요.

 

집을 짓는데 절차 즉 프로세스는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부지 물색 (위치 용도지역 지구 검토)

2 부지 매입 

3 설계(설계 계약 후 도면 설계) 

4 허가 또는 신고(허가를 받고 나서) 

5 시공사 선정 (시공계약)

6  착공신고 

7 시공 

8 준공

9 보존등기 

10 입주라는 대략적 순서입니다.

 

1. 그냥 아무 곳이나 토지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지을 수는 없거든요. 지역이나 지구에 정한 규모와 용도에 맞는 건축이라야 합니다. 이 넓은 땅에 아무 곳에나 집을 짓는다면 난개발이 되기 쉽고, 혹은 안전이나 방재, 및 사회 기간 시스템에 접근성 등 하고 공적인 서비스에 접근이 용이해야 사는데 불편이 없거든요. 심심 산골에 내 땅이라고 해도 그 지역의 용도와 지구에 맞지 않는다면 허가는 당연히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지 선정에 대한 고민이 제일 큽니다. 이것도 알아보지 않고 시청이나 군청 건축과나 혹은 설계사무소 등에 의뢰하지 않고 단순한 공부상 근거로 해서 부지를 매입하게 되면 나중에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때는 부지는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을 매입하고 나면 대물릴 수가 없거든요. 그럼 돈만, 날리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지는 용도에 맞는다고 또 전부도 아닙니다.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하고 기반 시설의 접근성을 따지고 토지의 정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정형으로 토지 활용에 제약은 피해야 하니까요. 또한,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 통신 등의 시설 접근성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면 이게 전부 돈으로 커버해야 하니까 거리 때문에 자본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조건에 맞게 부지가 선정되어야 하고 매입을 해야 합니다. 저도 개인 갤러리를 지으려 많은 부지를 답사하고 공부를 발급하고 확인하는 과정 중에 있기도 했습니다만 현재까지 딱 맞는 곳을 선정도 못했고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부지 선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정보과 지식이 필요로 하고 내가 직접 모든 것들 다 알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자문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설계사무소에 가도면을 만들어 보는 경우가 좋거든요. 비용이 들더라도 전체 건축 진행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비용을 아까워해서 자문도 구하지 않고 덥석 토지 매매계약을 하고 등기 치고 나면 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문 구하는 비용을 왜 아깝니까. 전문가는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거든요. 그나마 좋은 방법은 해당 지역의 시청이나 군청 주변에는 설계사무소가 반드시 한두 개가 있습니다.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 똑똑하지도 공부도 안 해놓고 계약부터 저지르는 오류가 첫 번째 경우일 것입니다

 

2. 적정한 부지를 선정하고 등기 이전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설계를 해야 합니다. 건축에 있어서 설계만큼 중요한 작업이 없어요. 시공도 물론 하자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은 모든 것이 첫 출발이 설계부터 잘 돼야 합니다. 충분한 기간 동안 건축주가 건축의 의도와 방향, 그리고 디테일하게 설계자와 협의가 되어야 하고 세밀한 설계일수록 하자가 줄어듭니다. 기본 도면은 물론 가급적 상세 도면까지 완성된다면 집은 이미 반은 지어진거나 다름없습니다. 흔히 건축주가 설계를 의뢰하면서 설계비 평당 얼마?라는 따위로 하려는 건축주는 사기당할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건축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의도와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하려면 그만큼 도면 작업이 많아야 합니다. 꼼꼼한 설계가 앞으로 시공 중, 시공 후의 하자에 대해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계가 세밀하려면 설계기간도 길게 됩니다. 평당 몇만 원식으로 돈 아끼겠다고 설계를 대충 했다간 나중에 몇 배로 뒷감당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봤습니다. 왜 돈을 그런데 아끼려 드는 건지. 가급적 설계시 스펙을 제대로 정하고 해야 차후 분쟁을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대충 기재된 설계도는 시공자로 하여금 임의대로 시공해버리는 화를 자초하게 되거든요. 설계가 정확할수록 시공도 깔끔하고 하자도 줄어들어 분쟁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냉방기 용량 설정할 때 몇 킬로 용량에 몇 대 이런 식의 기재는 옳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회사 어떤 제품의 용량을 가진 냉방기라고 정하면 딱 그걸로 지정하는 게 어려 모로 다툼이 없어지거든요. 벽지는 무슨 회사 어떤 디자인의 품명 넘버까지 해두는 치밀한 것입니다. 그러니 설계도서에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재하려면 가격조사도 되어야 하고 시공상의 문제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게 다 설계에 반영할 문제입니다. 집을 신축하는데 설계비 평당 얼마. 이딴 식은 제발 지양하시길. 이렇게 모든 설계가 마무리되면 허가를 신청하고 혹은 신고를 하고 허가나 신고에 맞게 착공을 하게 됩니다

 

3. 착공은 요즘에 있어서는 60평(200M2) 이상의 모든 건물은 시공사(건설회사)가 반드시 있어야 가능합니다.(최근에 강화되었어요.) 오래전 변경되기 전에는 200평까지 개인이 신축할 수 있다 보니 무등록(무허가) 업자에게 공사비를 싸다는 이유로 시공을 맺깁니다. 특히 주택을 신축함에 있어서 도면 검토도 없이 무조건 주택은 평당 얼마?라는 식으로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디테일하게 설계된 도면으로 물량을 산출하고 물량에 단가를 넣고 종합적인 원가 계산서를 더하여 내역서가 나와야 합니다. 이건 무등록 업자는 어떤 산출 근거도 없이 공사 1식 얼마라는 식으로 내역서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면 언젠가 공사비 때문에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시공업자는 추가로 투입되었고 물량이 증가되었다며 돈을 추가로 더 달라는 식이 됩니다. 건축주는 기절할 노릇이죠. 예산 범위에 맞게 설계했다고 생각했는데 추가 비용이 계속 발생하면 진짜 난감하게 되거든요. 설계를 정확히 스펙도 정확히 넣으면 견적 또한 오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충 그린 도면 가지고 평당 얼마라는 식의 견적은 그야말로 쓰레기이자 다툼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나중에 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소송까지 번지게 됩니다. 도면이 상세할수록 견적도 비례하게 디테일하게 산출됩니다. 평당 얼마라는 식의 견적서는 절대 금물입니다.

 

또한 시공사 선정 또 마찬가지입니다. 알음알음 거처 거처 안다는 사람도 돈 앞에서는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게 세상 살이 입니다. 하물며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거처 거처 소개받은 업자가 제대로 시공 경력이 있는지, 평판은 어떤지 왜 알아보지 않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시공업자가 다른 건물을 지었다면 그런 건물의 건축주에게 어떤 시공사인지 물어볼 수도 있는 좋은 참고입니다. 일을 개판으로 쳐놓은 놈인지 아니면 제대로 하는 놈인지 왜 알아 보지 않는지요.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짓는데 있어서 시공사가 어떤지 모르면 정말 사기당하는 건 순간이거든요.

 

공식적으로 설계사무소에서 의뢰하면 시공사도 알아봐 달라 해서 견적도 설계사무소와 협의하는 절차를 생략하면 마찬가지로 당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견적을 서너 군데 받아보면 됩니다. 도면이 정확하면 대강의 견적이 엇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중에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시공이 꼼꼼한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하면 됩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시공 업체라면 계약에 따른 계약 이행을 위해 담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시공을 정상적으로 일정한 기간 내에 완료하지 못한 건축주의 손해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건축주는 시공을 위한 자금을 서로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믿음이란 것은 돈으로 해결되면 가장 좋은 방법 이기든요. 물론 이런 담보를 위해 건설사는 대부분 건설공제조합이라는 조합에 가입하고 조합이 계약에 대해 보증을 하게 됩니다. 무등록업자는 이런 조합에 가입할 수 없으니 보증서를 발급받지 못하겠지요. 또는 각 지역마다 건설 단체가 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설협회입니다. 협회에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소개하는 업체가 우수한 업체를 소개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설계사무소나 건설협회 등 이런 전문 기관에 의뢰하면 과정을 몇단계 거칠지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공사 선정을 왜 소문으로 소개받아서 하는지, 게다가 몇몇 군데 견적은 받고 무조건 싼 가격의 업자에게 일을 맺기는 경우엔 왜 가격이 싼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무턱대로 견적서에 가격이 싸다고 덥석 물었다간  공사비 받고 일도 재대로 하지 않고 나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근무하는 회사도 설계사무소에서 의뢰받은 건축주가 있었습니다. 시공에 문제 없이 원활한 시공을 한 경력이 건축물 공사 수주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거든요.

 

4. 착공은 시공사로 선정된 업체가 건축주에게 제출합니다. 일반적으로 착공신고는 건축주가 하여야 하나 굉장히 전문적이라서 설계사무소는 건축주에게 그 업무를 위임받아서 대행을 합니다. 따라서 위임받은 설계사무소가 제출받은 신고서를 허가(신고) 기관에 제출하여 신고가 이루어집니다. 제대로 된 업체라면 도면에 정한 대로 시공을 하게 됩니다. 도면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물량 오류가 없고 스펙이 정확하면 시공사도 시공이 편리합니다. 현장 대리인(시공사 소장)이 임의대로 시공을 최대한 줄이는 것. 이게 도면의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웬만한 건축기사는 도면대로 하려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마음대로 시공했다간 현장 대리인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공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계약 내역 금액과 차이가 발생할 때 벌어지는 다툼은 정말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심지어 오래전에는 건축 자격도 없는 자가 시공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돼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기사도 굉장히 전문자격이라서 고스톱 따듯이 취득한 것이 아니거든요. 대학에서 일정 수준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국토부에서 자격 검증을 거쳐서 취득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시공업무에 종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모든 것이 다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보고 무등록 업자나 혹은 무등록 업체에서 전문자격도 없는 자의 시공은 품질 저하 혹은 하자 발생 등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현장 소장의 급여 또한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안정적으로 소장이 시공업무에 종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지지 않고 무등록 업체에 일을 주게 되면 어떤 사단이 나는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하게 되면 시공비 뿐만 아니라 이외의 다수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합니다. 건축주의 명의로 전기 인입, 상하수도 인입, 통신 인입 등 다양한 비용이 들어야 하거든요. 이런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통상 간접비라고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미리 예산을 가지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딱 건축비 이것만으로는 절대 집은 지어질 수가 없어요. 집만 지어놓고 각종 부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거든요. 가장 많이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시공상의 하자에 공사비 추가 부분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건축업자가 아닌 이상, 일생일대에 집을 자주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번 혹은 두 번일 텐데, 사전에 건축계획이 있다면 이 또한 기본적으로 공부가 조금은 되어야 합니다. 집은 정보나 지식, 기술, 자본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리 사전에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알고 하나하나 챙겨 나가야 차후에 골몰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비용명세서도 가급적 디테일하게 뽑아야 합니다. 차라리 임차를 하든가 아니면 지은 놓은 집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직도 시공 능력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등록 업자가 시공하면 소송으로 번지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당장에 가격이 싸다고 덥썩 일을 맺겼다가 치르는 수업료는 과도하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분쟁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거든요. 한번 삐긋하면 지루한 다툼을 벌여야 하고 마땅은 피해를 보상받기까지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능력 있는 설계자를 만나야 하고 꼼꼼한 실력 있는 도면으로 집을 완성 시켰을 때라야 하거든요. 흔히 시골에서 집을 지으면 머리 왕창 빠진다고들 합니다. 처음이라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모르면 우선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순리라서요. 어중이떠중이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자격을 구비한 설계자와 시공자를 따지지 않는 실수는 두고두고 고통이 되거든요.

 

시공업체는 등록만으로 안됩니다. 적정한 자본력과 기술력은 매년 검증받습니다. 조합에 가입해서 보증을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자본력에 포함됩니다. 지난해 연말,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허가 관청에서 적정한 업체인지 실태조사도 자주 합니다. 재무 상황을 검증받고 건설산업기본법상의 자본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기술자도 기술능력이 등록되었는지 보고도 해야 합니다. 시공사의 시공 능력을 자본력과 기술력 등 종합적으로 적격 여부를 가리는 제도가 법률상에 나와 있거든요. 그런 회사라야 만이 공사비 떼 처먹고 쉽게 도망을 못 가거든요. 그런 자격은 건설 관련 단체와 국가기관(국토부 등)에서 모두 공표되어 있고 얼마든지 검색하면 나와 있기도 합니다. 기초 정보는 이미 인터넷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업자를 선정하는 바탕이 되거든요. 건축비 싸게 들이겠다고 등록도 하지 않는 업체에게 의뢰했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법률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음에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편인데 하물며 이런 최소한의 정보조차 무시했다간 분쟁이 나면 차후의 다툼은 너무나 지난한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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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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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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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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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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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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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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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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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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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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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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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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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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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1-05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골에 집 짓는 거 잘 생각하셔야 할 거예요.
위에 열거한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 걸 생각하면 시골로 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요.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살다가 버리고 나오는 거라면 몰라도 -
제가 너무 현실적인가요?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선 전원주택들.... 깊이 들어가보면 처치곤란인 집들 많아요 ㅠ.ㅠ

yureka01 2020-01-06 09:02   좋아요 1 | URL
그럼요..너무 잘 압니다..
시골에 빈집이 나날이 늘어가죠.
빈집으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도 않죠.
(그런데 땅은 나오지 않아서요.)
주택을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가설로 작업실 하나 만들까 했거든요...
건축비는 건설회사 다니니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아직 땅을 못구했습니다.마땅한 조건의 땅이 거의 없어서요..

2020-01-06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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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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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저도 집 시공과 관련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유레카님에게 조언을 구해야겠어요. ^^

yureka01 2020-01-07 08:55   좋아요 1 | URL
현장에 있지 않아서 시공기술은 잘 모르지만
행정적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조언 가능합니다,^^..

페크pek0501 2020-01-12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건필을 기원합니다.

yureka01 2020-01-13 21: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새해에도 형통하는 해 되시길^^..

2020-01-14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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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1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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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1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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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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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8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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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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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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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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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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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20-01-20 16:03   좋아요 1 | URL
네.언제든지..꼭 마음에 드는 책 나오면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