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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8월
평점 :
사무라이를 읽기까지의 긴~~여정 ㅎㅎㅎ
마트계산대에서 누군가 계속 나를 보는 눈빛을 느낀적이 있다.
눈이 나쁜 관계로 사람을 잘 못 알아보고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욕 먹은 적이 있어 그런 경우엔 무조건 인사를 하는 편이다.
계산을 하면서 꾸벅 꾸벅 나를 향한 눈빛의 그 분에게 인사를 했다
그 분도 어렴풋이 나를 아는 듯 모르는 듯 해서 힐끔거린듯 하다.
계산하시는 분이 나에게 한 마디 던지셨다.
손님 거울보고 뭐하세요.
고등학교 시절
우리학교는 일제강점기 시대 지어진 것 같은 수준의 건물이었다.
나무바닥의 삐걱거림과 얇디 얇은 창문들.
그날 나는 창문 담당,
친구가 비가 올 것 같지 않냐는 말에
비가 오려나 하고 창문밖으로 얼굴을 들이밀다가 창문을 깨고 말았다.
창문이 닫혀있었던 것.
친구는 놀래서 교무실로 달려갔고 ㅠㅠㅠ
창문이 없는 듯이 깨끗이 닦은건 절대 아닌데 ㅠㅠ 지금도 내 이마엔 유리창을 박살낸 흔적이 아주 조금 남아있다.
보이지 않으면 감각도 둔해진다.
그 후 선생님들은 수업시간마다 비가 오려나 하시며 나를 지목해서 문제를 풀게 하셨다. 선생님들 악취미가 아닌가 싶다. 흉터도 생긴 억울한 인생에게 가혹한 질문의 개미지옥을 선사하다니!!!
우리집은 선천적으로 눈이 약하다 다들 어릴적주터 안경을 꼈고 각막이 얇아서 라식이고 라섹이고 불가다.
부모님은 눈이 다 좋으신데. 아버지가 다 같이 농사짓고 산에 가서 나무하며 살자고 그러면 눈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설렁한 말을 하신적도 있다.
뭐 어쩌겠는가.
그런데 나이가 드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겼다. 눈이 좋았던 친구는 노안이 영 어색하다. 어제도 아는 사람이 인사하는데 못 알아봤다는 둥 나에겐 일상다반사인 일들을 속상해하며 털어놓는다.
안경을 쓰기 시작하니 코에 붉은 표시가 난다는 둥. 곧 있음 그 주변이 패이기도 한단다라고 알려주진 않았다 ㅎㅎ
젊은 시절 나이듦이 이렇게 불편한지 왜 몰랐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50대를 향해가는 나는, 80대 엄마의 늙음을 답답해한다. 그런거지 뭐 싶다.
그래서 남편이 자꾸 눈 나빠지니까 책 그만 읽고 밖으로 나가서 포켓몬을 하잖다.
저기 그것도 시력에 좋진 않을텐데. ㅎㅎㅎ
방해공작에도 열심히 읽은
사무라이.
사무라이
이로리 속 타닥거리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 그 옆의 흙빛을 닮은 한 사내.
묵묵히 일하고 묵묵히 섬기며 걸어가는 그.
버려지는 돌이라지만, 그럴 리 없다 믿었다.
사무라이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이제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임무에 실패한 자신은 돌아갈 곳이 없다. 가족을 볼 면목조차 없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다나카 다로자에몬.
반짝이는 눈과 새로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니시는
돌아온 고국에서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더 잘하고 싶은 욕망과 더 잘 해내고 싶은 열정은 그를 기만과 술책으로 이끌었다.
야망과 결과에만 집착하던 정이 가지 않던 그 사내벨라스코는 결국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 불탄다.
“산에 오르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동서로도 길이 있고 남북으로도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오르든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도달하는 길도 그와 같겠지요.”
가장 정세 파악을 잘해서 결국 살아남은 마스키 주사쿠.
“신부님이 말하는 더 없는 행복은, 작은 우리 섬에는 폐가 되는 겁니다.”
에도시대, 그들은 멕시코와의 교역을 위해 선교사는 포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함께 먼 뱃길을 떠난다. 그들을 떠나보낸 정치세력들 또한 딴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 체.
온갖 고생 끝에 그러나 성과없이, 떠날때보다 더 그들에게 각박해질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에게 뿌려진 씨앗 하나, 넓은 땅 그 곳에서 섬긴다는 볼품없는 그 사내.
“나는 형식적으로만 기리시탄이 되었다고 생각해왔네. 지금도 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정치가 뭔지를 알고 나서 이따금 그 사내를 생각해. 왜 그 나라들에는 어느 집에나 그 사내의 가련한 상이 놓여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평생 함께해줄 사람, 배신하지 않을 사람, 떠나지 않을 사람을 –설령 그것이 병들어 쇠약한 개라도 좋아- 찾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거겠지. 그 사내는 사람에게 그런 가련한 개가 되어주는 거야.” 465쪽.
양파에 이어 가련한 개다.
요조의 눈에서 그 개를 만난다. 남루하고 말라비틀어진 그러나 그들이 보았던 그 넓은 세상의 집집마다 걸려져 있던 그 사내의 눈을 평생 자신을 섬기는 요조에게서 발견한다.
종교는 없지만,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선 가끔 생각하게 된다.
믿음, 믿음에 대한 의구심, 믿음의 시작....그 물음만으로도 신부는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말한다.
저 바다, 신부들과 기리시탄들의 재가 뿌려져 무덤이 될 저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다.
읽는내내 윤동주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미워서 돌아섰다가 다시 그리워 돌아서게 되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