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물을 알릴 때쯤이었다. 봄꽃들이 떨어지고, 여름잎사귀들이 연한 초록빛으로 담장을 드리울 쯤 이면, 엄마는 “이제 오실 때가 됐는데”하며 기다리곤 하셨다.
바로 우산 고치시는 분,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때쯤이면 우산고쳐요~ 하며 아저씨 한 분이골목을 누비곤 했다. 항상 모자를 쓰고 칙칙한 색의 옷을 입은 그 아저씨는 우리집 마당 한켠에 몇 개 되지 않는 장비를 펼쳐 놓곤 우산을 고치셨다. 아버지의 커다란 우산에 난 구멍을 촘촘히 매꿨고, 녹슨 우산살을 갈아 끼우고, 기름칠을 하셨다. 그렇게 우산 수리가 끝나면, 수리비를 받아들곤, 끼이익 소리가 나는 우리집 철대문을 무심한 듯 칙칙 두 번 기름을발라주곤 가버리셨다. 그러면 한동안 철대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 열렸다.
내게 우산은 사는 물건이란 개념이 아니었다. 그냥 언제나 우산꽂이에 담겨 있는 물건.
잃어버려도 집에 가면 비슷한 우산들이 있는, 우산은 그냥 그 곳에 있는 물건이며 미적취향이나 개성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언제나 검은 색이었고, 커다랬고, 무거웠다. 그래서 우산은 언제나 좁은 어깨에서 밀려 내려왔고, 책가방은 반쯤 젖어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의 빨간 디즈니 우산을 봤다.
“니, 그거 어데서 난기고?”
“뭐? 선물가게에서 샀지, 어데서 나기는 ”
선물가게. 우산을 선물가게에서 사는 거라고? 그냥 집에서 화초 나듯이 잡초처럼 그냥 솟아 나오는 게 아니고?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나도 우산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우산이 천지삐까리다. ”
그 후 용돈을 모아 산, 빨간 땡땡이 내 우산은, 언니들이 마치 자기 것처럼 들고 다니는 통에 두세 번도 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우산에 대한 집착은, 알라딘 사은품으로 이어졌다. 우산만 나오면 가져야 할 것 같은, 그래서 지금 우리 집 우산꽂이에는 온통 알라딘 사은품용 우산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우산의 역사라니..
남자들이 창이나 칼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자, 섭섭한 맘에 들고 다닌 우산이라던가, 우산을 들고 전쟁에 참전해서 공을 세운 영국군인에 대한 이야기 등 우산의 역사에 대해선!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
바로 우산이 등장하는 소설들과 에세이에 대한 책이다.
우산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도롱이? 울 남편의 대답이다. 도롱이라니!!
우산하면 메어리 포핀즈, 손잡이에 새 모양이 새겨진 우산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은,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에 견줄만 하다.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만든 가죽 우산.
킹스맨의 우산, 상류층 신사라면 떠오르는 중절모에 긴 우산까지.
그리고 보바리 부인에서의 우산 등 소설 속 문구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멸시와 조롱의 대상에서 신사의 필수품으로 혹은 유혹의 도구로 변한 우산, 그러고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엄청난 것들이 변했지만 우산의 모양이나 쓰임새만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미래엔 어떤 우산이 나올까.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노나라의 공수반이 아내와 산책 중 비룰 만났고, 그때 아내가 정자가 있으면 비를 피할 수 있으니 좋겠다고 한 말에 착안해, 들고 다니는 정자를 만든 게 우산의 시작이라고 한다.
서양은 우산보단 양산이 먼저였다. 햇빛을 가리는 역할도 했지만, 신의 보호 아래 있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한다. 그 후 비를 막는 우산은 서양에선 여성들이 사용하는 물건으로 치부되었고, 남자들은 우산을 쓰는 행위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그 후 조나선 한웨이가 우산을 쓰기 시작했고, 온갖 오물과 돌로 야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엔 남자들은 장우산으로 위엄을 표현했고 오히려 신사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임금 등이 쓰던 일산, 지우산 도롱이 등이 있었고, 개화기때 서양의 양산이들어오면서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산이나 양산이 그려진 그림들도 매력적이다. 모네가 까미유를 그린 그림엔 바람과 함께 날리는 하얀 드레스와 양산이 있다.
르누아르의 우산 속엔 말갛게 화가를 바라보는 듯한 수잔발라동이 있다.
천장 가득 채워진 우산들로 표현된 현대예술,
김홍도의 공원춘효도에 그려진 커다란 우산 속엔, 과거 시험의 비리들이 속닥거리고 있다.
마네의 봄 그림 속 화려한 레이스의 양산
우산을 비스듬히 지팡이처럼 의지하고 있는 매리 카사트를 그린 드가의 <루브르의 매리카사트 >
카유보트의 비오는 파리거리는, 반듯하게 정비된 후의 도시와 그 곳을 걷는 신사들과 숙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잭 베트리아노(표절논란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가)의 노래하는 집사
박순철 작가의 비는 내리고 에서는 쓸쓸한 뒷모습을 우산 하나가 힘겹게 받쳐들고 위로하는 듯 하다
우키요에의 그림에도 우산은 자주 나오는 단골소재, 연인들이 함께 쓰는 우산도 좋지만 두 처녀가 나란히 쓰고 가는 우산도 보기 좋다. 스즈키 아루노부의 <우산 아래의 두 처녀>
그리고 내게 가장 익숙한 우산을 든 남자, 비광이다. ㅎㅎ( 일본의 유명 서예가 오노도후라고 한다. 젊은 시절 글씨가 잘되지 않아 포기하려 했지만, 비가 와서 불어난 강물 위에서 몇 번이나 시도해서 버드나무에 올라가는 개구리를 보고는 감명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 또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멋진 서예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광에는 우산과 개구리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다 )
발자크는 우산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팡이와 컨버트블이 낳은 사생아” 정말 그렇게 말했을지는 의문이지만.
내게 우산은? <홀리데이>에서의 최민수의 금니? 혹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이성재가 햇빛에 말리던 우산, 친구랑 나란히 쓰던 우산, 그리고 잃어버린 우산들.
잃어버린 우산들의 나라가 있다면, 내 것이었던 우산도 여러 개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