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자크의 해학 - 인문학 그래픽 노블
폴 브리지.가에탕 브리지 지음, 이세진 옮김, 오느레 드 발자크 원작 / 학고재 / 2024년 10월
평점 :
그러고보니 발자크의 작품은 읽은 것이 한 편도 없다. <고리오 영감>의 저자, 커피를 많이 마셨다는 것, 로댕의 조각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것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기도 하다. 작품은 읽지 않았지만 발자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궁금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구입해두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아직 읽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발자크에 대해서도,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지식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 상태에서 <인문학 그래픽 노블 발자크의 해학>을 만났다. 이 책에 대한 기본 지식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와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그림들은 뭐지? 너무나 선정적인 그림들이 가득해서 옆에 있던 남편이 볼까봐 살짝 숨겨야했다. 그래픽 노블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을텐데.
<해학 이야기>는 발자크가 자신이 피부로 접하는 현실 사회를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구와 현실을 떠나 다른 시대. 다른 분위기의 상상을 통해서 현재 느끼는 억압이나 위선을 깨트리고 싶은 욕구를 담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해학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30편까지 집필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네 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발자크가 등장해서 한 마디를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웃음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쟎소. 걱정거리는 넘쳐나고, 권태롭고 귀찮은 일들이 가랑비처럼 부슬부슬 내려 몸을 적시는 이 시기에, 뭔가 우스운 극을 써서 발표한다면 그게 애국이지 싶소, 제목? 해학 이야기로 하지. 웃음은 어린 시절, 그리고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에만 가능한 것 같소. 나이가 들면 웃음은 스러지고 이 등불의 기름처럼 닳아 없어지지. 그러니 나를 흉보지 말고 낮 동안보다는 밤에 읽어주시구려. p4
낮에는 누가 볼까 밤에 읽어야할 듯했다. <미녀 앵페리아>,<가벼운 죄>,<악마의 상속자>,<원수 부인> 모두 선정적인 장면들이 난무했다. 성직자들의 타락, 문란한 성 생활등이 주를 이루는데, 등장인물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읽고 있는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런 썩은 세상이라니' 이런 생각만 들었으니까. <미녀 앵페리아>에서는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마가 등장 하지만, 한 인간을 구하고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수도사가 있었다. 성직자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주교와 추기경도 있었지만.그런데, 역자의 글을 읽어보니 그래픽 노불의 내용은 원작과는 다르게 쓰여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작을 읽어보고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다.<가벼운 죄>에서는 남편 구실을 못하는 남편때문에 '가벼운 죄'를 지음으로써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그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있었다. <악마의 상속자>에서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기를 기다리는 두 불효자식이 등장했다. 그들은 욕심을 채우려다 오히려 악마의 꾐에 놀아난 사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소설에서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악마의 부름을 받은 조카가 아주 부유하게 잘 살아가는 거였다. 나쁜 마음을 먹었던 아들들은 죽임을 당했는데, 악마에 협조한 조카는 행복하게 산다? 권선징악을 말하는듯 하다가 악의 승리라는 건가싶기도 하고. <원수 부인>에서는 내 애인인줄 알았더니 다른 여자의 애인인 남자가 있고, 참 요지경인 세상이 가득했다.
'해학'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발자크의 묵직한 소설들보다 가벼이 읽을 수 있는, 또 그래픽 노블로 만나서 발자크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던 계기가 된듯하다. 그의 다른 소설들을 잘 읽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발자크의 소설을 읽어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