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봐도, 작년 크리스마스는 우리 가족한테 특별한 날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 앞으로도 이런 크리스마스가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크리스마스가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는 첫 날이었다.
바로 전날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다.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와 겹치게 된 것인지 불만을 아니 가질 수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논산에 가서 아들을 배웅했다. 아들과 함께 기차를 탔고, 같이 메뉴를 정해 점심을 먹었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부대 앞에 갔다. 우리처럼 배웅을 하러 나온 인파 속에서, 연병장을 향해 가는 아들을 잠시 세워서 포옹하고 손을 잡았다. 무사귀가를 기원하면서.
집에서 아들과 작별하고 쿨하게 보낼 수도 있었지만, 아들이 처음 가족과 떨어지는 상황이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까지 같이 있기로 작정하고 논산까지 따라갔었다. 평생 한 번이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에 아들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대단한 행사가 있는 것은 아니나 가족 구성원이 빠진 자리가 커보일 수 밖에 없다. 시끄러운 놈이 빠져서 더욱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하루, 하루 지남에 따라 아들이 없는 상황에 차츰 익숙해졌다.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낯설음이 익숙해지면서 그리움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들 면회를 간다. 보충역 4주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한다는 초대장을 받았다. 논산행 ktx 열차를 타고 배웅할 때처럼 부모로 섰던 자리에서 다시 아들을 맞으러 간다.
예전에 비해 훈련 강도는 덜 하고 복지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훈련병의 입장에서는 낯설고 힘든 훈련 과정일 뿐이다. 그런 고생이 처음일 터.
아들이 씩씩하게 자라준 것이 고맙다. 생전 처음 겪는 이질적인 환경에서 역경과 고단함을 이겨낸 것을 칭찬해주고 싶다. 스스로는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마도 아들의 외모가 변해있을 것이다. 그을린 얼굴, 까칠해진 피부에 목소리가 쉬어있을 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으니까. 아들이 얼마나 변해 있을런지 궁금하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들, 수고했다.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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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1-21 0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다녀오세요!아빠 마음이 전해져오네요ㅠ충성!

오거서 2016-01-21 09:26   좋아요 2 | URL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해피북 2016-01-21 0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동생이 있는데요. 군에 입대할때 함께 가지는 못했고 부모님께 전해들은바로는 입대전에 화장실간다고 가서는 인사도 없이 훌쩍 들어가버렸다고해요.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서로 울거같아서 그랬다더라고요 ㅎ 오거서님의 글을 읽으니 그때 들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 남동생도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었고 지금 제대해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 ㅎ 오거서님 잘다녀오세요 ^~^

오거서 2016-01-21 10:24   좋아요 3 | URL
네, 소중한 추억이군요. ^^
입대와 제대로 신분이 바뀌는 병역을 대한민국 남자는 대부분 치뤄내야 하는 일이지요.
논산역에 내려서 부근에 있는 시장에서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먹거리를 장만 중에요. 점점 덤덤해지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츠 2016-01-21 1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1월에 입대했었는데.. 훈련이 힘들었기 보다는 추위와의 싸움이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
아드님도 고생이 많았겠네요.
겨울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음식과 함께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디 몸조심히 잘 다녀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거서 2016-01-21 19:10   좋아요 1 | URL
알츠 님도 고생 많았겠어요.
오늘 날이 많이 풀려 다니기 수월했어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16-01-21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울집 남편이 이십여 년전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다고 배웅해준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십여 년이 더 지나면 저희집 큰아들도 훈련소로 떠나겠지요!
애인이 군에 가는 것과 남동생이 군에 가는 것과 아들이 군에 가는 것은 정말 확연하게 마음가짐이 다를 것같아요
아들은??
오거서님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오네요~아드님이 무사히 군 복무를 잘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거서 2016-01-21 17:36   좋아요 1 | URL
입장이 다르니 틀림없이 다를 겁니다. ^^;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은유 2016-01-21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추운 계절에 입대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생각만해도 코끝이 시리고 마음이 짠합니다.

지금쯤이면 너무나 달라져 있는
늠름하고 멋진 아드님을 만나셨겠죠.

제대하는 그날까지
부디 무사무탈하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모든 국군장병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오거서 님, 행복한 시간 되세요.





오거서 2016-01-21 17:40   좋아요 1 | URL
품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말씀처럼 아들이 늠름하고 멋져 보였어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붉은돼지 2016-01-21 1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병교육대 수료식날 부모님이 오셨더랬죠..ㅎㅎㅎ 어제일 처럼 떠오릅니다...라기에는 너무 오래전이군요..거의 30여년전 ㅋㅋㅋㅋ
늦가을이었는데 추워서 코를 질질흘리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ㅋ

즐겨(?)부르던 군가도 생각납니다.
˝겨례의 늘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아드님 군 복무 잘마치고 늘름늘름!! 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

오거서 2016-01-21 17:52   좋아요 1 | URL
추위는 군인한테 또다른 적이나 마찬가지죠. 추위를 이기지 못하면 손트고, 콧물, 감기 등 고생이 따르지요. 말씀처럼 아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루와다솜 2016-01-21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네요^^건강하고 멋지게 군생활 마칠거라 믿습니다

오거서 2016-01-21 19:12   좋아요 1 | URL
건강하고 멋있는 사나이로 군생활 마치기를 기도합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1-2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1-21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이 이렇게 추운 시기를 훈련소에서 보냈겠네요. 군생활을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오거서님, 잘 다녀오세요.^^

오거서 2016-01-21 19:26   좋아요 1 | URL
고된 훈련도 추위도 견뎌내면서 아들의 심신이 단련되겠지요. 이제 한 고비를 넘겼고 말씀처럼 무사히 마치기를 기도합니다.
본의 아니게 염려를 끼쳤군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리미 2016-01-21 14: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우리집 늦둥이 막내다 보니 큰조카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논산 훈련소도 조카들 때문에 몇번 다녀와서 그 곳 분위기가 선명하게 그려지네요. 한달간의 훈련을 수료하고 나온 아이들은 다들 의젓해져 있던걸요^^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오세요!!

오거서 2016-01-21 19:30   좋아요 2 | URL
말씀처럼, 아들이 한달간의 훈련으로 의젓해져 있더군요. 야~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6-01-21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거서 님께서 아드님 보러 논산엘 가시는군요. 이 추운 엄동설한에 꽤나 고생이 많았을 테니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고 맛있는 거 많이 사먹이고 오세요..

제 아들은 작년 7월에 몹시도 더울 때 논산으로 입대했는데 너무 더워서 정말 숨쉬기조차 어렵더군요. 의경으로 입대했는데 4주 훈련 마치고 `면회`하던 날은 찜통이 따로 없을 정도로 덥더군요. 훈련을 끝마친 아들을 연병장에서 다시 만날 땐 정말 울컥할 정도로 감격스럽고 대견스럽더군요. 오늘 날씨가 너무나 춥지만 `부자지간의 정`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날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오거서 2016-01-21 19:46   좋아요 3 | URL
작년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지요. 추위도 고생이지만 더위도 그에 못지 않죠. 게다가 모기 때문에 더 고생하게 되죠. 저가 여름에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나 잘 알죠. 모기도 군대 모기와 민간 모기 있는 거 아세요? 군대가서 알게 되더라고요. 아드님도 고생 많았겠어요.
그러고 보니, 제 아들도 의경으로 입대했어요. 아들 선배의 부모는 역시 다르군요. oren 님께서 연병장에서 아들과 부모가 대면하는 극적인 장면을 정확하게 언급해주시네요. 오늘 추위를 부자지간 정으로 녹여내었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6-01-21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거서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오거서 2016-01-21 20: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안락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

cyrus 2016-01-21 2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이 추울 때 군생활이 조금 힘들 겁니다. 우리가 느끼는 추위는 군인들이 느끼는 추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드님을 만나면 정말 따뜻하게 껴안아주세요. ^^

오거서 2016-01-21 20:14   좋아요 2 | URL
아들을 만나 물어보니 PX를 꼭 가고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같이 가서 성능 좋은 귀마개와 방한내피를 사주었어요. 말씀처럼 군생활에서 느끼는 추위는 몇배 혹독하지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oonnight 2016-01-21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워낙 추웠는데 부모님의 정으로 아드님 따뜻했겠어요. 군생활 건강히 잘 마치도록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오거서 2016-01-21 21:20   좋아요 0 | URL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고 챙긴다는 것을 몸소 실천했어요.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도리가 그리고 자식의 도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님을 느꼈어요. 아들이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구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1-2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편안함이 아드님의 노고 덕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거서 2016-01-22 10:03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우리 아들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실 2016-01-2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고2되는 우리 아들도 곧 군대를 가겠지요. 많이 슬프겠지만 꼭 가는걸로ㅎㅎ
훈련병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