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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ㅣ 나남창작선 141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7월
평점 :
비창 | 나남 창작선 141
이병주(지음) | 나남출판 | 2017-07-05
등장인물
구인상(역사철학교수, 이미숙 남편, 한문수와 서창희 친아들, 구만택의 의붓아들, 한경주로 개명함), 이미숙(음대출신-피아노전공, 구인상 아내, 순아 모친, 자살함), 순아(구인상과 이미숙의 딸), 서창희(구인상 친모, 한문수 애인, 구만택과 결혼), 유모(순아 유모), 고진숙(고제봉 딸, 애인에게 실연당함, 구인상이 거주한 하숙집 딸), 방상기(이미숙과 불륜설, 이미숙 대학 은사), 계향(기생, 구인상에게 뿌리를 찾아줌), 방화(본명은 최귀련, 기생출신, 한문수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영천 술도가집 사장의 첩), 할아버지(구인상 조부, 의성 거주), 백부(구인상 큰아버지, 의성 거주), 명국희(살롱 청마 마담, 기생의 딸, 구인상 애인), 기병열(음대출신, 진숙영 남편, 이미숙과 외도, 사기죄 구속), 진숙영(기병열 아내, 구인상과 외도), 고제봉(하숙집 주인 영감,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한문수(한갑순이란 필명 사용, 좌익운동 10월 폭동으로 사망, 서창희와 사랑한 사이, 구인상 친부), 구만택(=구영화, 서창희 남편, 구인상 의붓아버지, 한문수 밀고자),
뜬금없다. 삶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그것들 하나하나를 외따로 해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를 결박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고집스럽게 하나의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말이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의미가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과연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운명의 범주는 어디쯤 일까? 또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가 속한 국가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이병주의 장편소설 <비창>(나남, 2017)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비창’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3대 피아노 소나타(비창, 월광, 열정) 중 한 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이병주(李炳注, 1921~1992년 4월 3일)의 소설 ‘비창’이 베토벤의 음악과 관련하여 특별히 언급한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르크너의 교양곡 7번’을 비롯하여 작품 속에 서양고전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출현한다. 또 주인공 ‘구인상의 아내 이미숙’과 ‘진숙영의 남편 기병열’은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 출신이며, ‘살롱 청마의 마담 명국희’ 역시 고전음악에 심취해 있다. 그런가하면 ‘음대 교수 방상기’의 피아노 연주 장면도 등장한다. 따라서 소설 ‘비창’의 기저에 깔린 이미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Piano Sonata No.8) ‘비창’을 충분히 연상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사랑과 미움’, ‘이별과 기다림’, ‘사회문화현상과 역사인식’, ‘순수와 열정’을 하나의 텍스트로 묶어 ‘애증의 관계’로 안착 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어느 누구의 사랑도 온전하지 않은 이 소설의 플롯은 등장인물들에게 서러움과 한스러움을 안긴다. 그야말로 비창(悲愴)이 아나고서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비창>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깊고 슬픈 선율에서 탄생한다. 스케일이 크고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전 포인트를 하나로 꼬집어서 해석하기엔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운명적인 사랑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한문수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신뢰와 존중’ 그리고 구인상을 중심으로 모여든 여성들의 ‘나약함과 현실도피’라는 두 집단이다. 그렇다고 이들 두 집단이 서로 대결을 한다거나 어떤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 이 소설의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가르마 타듯 ‘한문수의 러브라인’과 ‘구인상의 러브라인’을 구분해 보았을 뿐이다. 이렇게 분리해서 읽고 나니, 공교롭게도 이 두 집단이 추구한 사랑은 어느 쪽도 완벽한 객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낸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소설 속에서 독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구만택’과 ‘기병열’까지도 한 호흡만 멈춰 서서 되짚어보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눅진한 애증의 고뇌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둘의 말로(末路)는 처참한 몰락을 맞는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면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남성을 몇몇의 여성이 흠모(欽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적극적이거나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이거나 자기애가 지나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을 향해 적극적인 성향을 드러낸 여성들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끝까지 상대 남성의 인격을 존중한다. 반면, 상대 남성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여성과 자기애가 지나친 여성들의 경우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거나 제자리걸음만 걷다가 주저앉게 된다. 이들의 성향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문수의 러브라인에는 ‘서창희, 계향, 방화’가 있다. 이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매사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다. 이는 한문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변함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면서 끝까지 한문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려 애쓴다. 이러한 적극성은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일조한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문에 충실하며, 주체적인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비록 삶의 과정은 험난하고 아픈 세월이었지만 결과는 찬란한 빛을 발한다.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강한 여성상을 드러낸다. 헌신적이되 비굴하지 않고, 적극적이되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저 진득하게, 아픈 현실이지만 울지 않고, 슬픈 사랑이지만 이기적이지 않다. 다음, 구인상의 러브라인에는 ‘이미숙, 고진숙, 명국희, 진숙영’ 등이 있다.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이미숙과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인 고진숙은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다. 진숙영 역시 끊임없이 자살을 예보하며 불안한 삶을 연명한다. 이 세 여성의 인생은 불행한 종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명국희는 다르다. 굉장히 적극적인이면서도 끝내 이기적이지 않다. 구인상의 삶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살롱 청마의 마담’을 그만 두고 출판사 개업을 추진하는 명국희의 모습은 오히려 한문수의 러브라인 여성들과 닮은꼴이다.
이처럼 한문수를 둘러싼 여성들은 진정한 플라토닉 사랑의 숭고함으로 한문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즉 겉으로 드러난 외모 중심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내면에 무르익은 그림자 사랑을 추구한다. 대신 구인상 주변의 여성들은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으로 양쪽 모두의 몰락을 초래한다. 최고의 사랑은 결코 외형만을 추구하는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정반대의 사랑을 꿈꾸었던 두 집단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초월하여 슬픈 사랑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플라토닉 사랑에 중점을 둔 한문수의 러브라인이 성공을 거둔다. 설령,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거룩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시간을 대신 경험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인상이 되어보거나 이미숙이 되어 보고, 계향이나 방화의 입장이 되어서 이 소설 읽기에 빠진다면 그 재미는 더없이 쏠쏠할 것이다. 구만택처럼 비열한 인물은 비열한 대로, 한문수처럼 소신 있는 인물은 소신이 있는 대로, 이미숙이나 고진숙 그리고 진숙영처럼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까지도 말이다. 딱히 어느 한 인물의 노선을 응원하면서 읽더라도 결코 중앙선을 침범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이 하나의 텍스트에서 출발하여 유기적으로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강한 흡인력으로 유혹한다. 스토리와 플롯이 모두 좋은 소설을 만나기 어렵다는 금기어까지도 시원하게 날려버릴 정도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님을 방증한 셈이다.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아무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지 않은, 자기가 자기를 벌하는 행위로서만 겨우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지경에 말려든 거야. 나는 순아 어미의 마음이 꼭 안나 카레니나의 그때 마음일 것 같아…. (본문 412쪽)
구인상이 여자를 사랑하기에는 정말 이기적인 남자였을까? 아내 이미숙의 잦은 외도를 핑계로 정녕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바람기를 공표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 이미숙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정녕 그것뿐이었을까?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순간순간의 짧은 만남을 그저 즐길 요량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불리한 흔적들을 감쪽같이 지우고 또 지우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인상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 짜여진 각본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작 바람을 피우고 가족을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한 원인은 전적으로 구인상의 책임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아내 이미숙을 향한 뒤늦은 회한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미숙에게만은 그토록 냉정했던 구인상이 왜 참담하기 그지없는 슬픈 곡조의 사랑노래를 피토하듯 쏟아내는가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누구 한 사람 완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지 못한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수만 갈래의 생각이 우우, 비바람처럼 불어 온다. 언제고 다시 읽어보리라 스스로 굳은 약속을 한다. <비창>은 몇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소설 마니아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전혀 새로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7. 8. 7(월). Ⓒ 심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