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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평점 :
미국인이 본 일본, 아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관광이 아닌 거주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겪었던 일본 문화, 사람, 경제, 정치 그리고 과거사까지 담겨있는 책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2차대전 연합군 사령부 군무원으로 일본에 오게 된 그는 몇 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을 돌아간 것을 빼고 거의 2013년 88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본에서 지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일본적이면서도 서양적 사고방식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조금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현재의 일본이 아닌 2차대전이 끝난 후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면서 점차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봐라 보면서 느꼈던 일본 이야기가 제대로 담겨있는 것 같다.
특히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일본 영화에 깊은 사유와 지식을 바탕으로 변화되어가는 일본의 현상을 일본 영화와 비유하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너무나 달라서 항상 부딪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할 수 있는 글이었다.
"일본인은 패턴화된 나라에 살고 있는 패턴화된 사람들이다.
일본에는 전화를 거는 마땅한 방법이 있고, 쇼핑을 하는 마땅한 방법이 있고, 차를 마시는 마땅한 방법이 있고, 꽃꽂이를 하는 마땅한 방법이 있고, 돈을 빌리는 마땅한 방법이 있다. 페이지 17
우리나라에서 일본 자동차, 카메라, 노트북, 심지어 어릴 적 유명했던 보온밥통까지 바탕에 일본에 마땅한 방법인 패턴 화가 이 산업을 일으킨 주요 핵심이 되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최근 드라마 및 영화로 유명해진 "파친코"에 대한 사실은 2차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파친코 생성과 이 놀이에 깔린 일본의 정서 그리고 현재의 파친코가 가지는 의미까지 설명하고 있다.
위에 말한 패턴화된 사람들에게 이런 파친코가 생길 수 있었던 이유는 2차대전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확실성이라는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최고에서 갑작스럽게 폐해가 된 나라에서 느낀 상실감을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았던 일본인의 근성에 그 허망함을 달래줄 놀이인 파친코는 어쩌면 그 시대의 처참한 현실을 잊기 위한 망각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 망각의 공간이 점점 더 현대화 되어가는 일본에서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더욱더 필요해진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친코의 진정한 목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멸이다. 자기 소멸은 지극한 쾌락의 경지다.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 상태가 무한히 계속된다. 페이지 68
이처럼 도널드 리치는 60년을 보낸 일본의 패션, 글자, 형태, 영화, 자동차 등 한동안 일본 하면 떠올랐던 대표 이미지들의 형성과 퇴락을 그들의 기본적인 감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일본인이 아닌 이방인이 그린 이야기가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 더 다가오는 것은 아마 객관성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60년을 살아온 그가 과연 진정한 이방인일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이방인의 시선 안에 담긴 애달픈 일본의 전통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그의 허망함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 함에도 그가 그리는 일본은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그들의 당황스러운 행동들에 담긴 그들의 정서적 근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국적이나 자아라는 것은 다른 국적이나 타아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규정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은 부자 없이는 자신들의 처지를 가난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특정한 사상이나 특정한 정치 전략을 옳은 것이라 여기려면 어둠의 힘이나 악의 축이 있어야 한다. 이는 딱히 해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계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우리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지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