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개의 시간
카예 블레그바드 지음, 위서현 옮김 / 콤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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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을 읽는 도중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관해 

되도록 아님 절대 미리 알아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읽게 된다면 매우 좋고,

다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이해를 위해서 

책의 집필의도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

바로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특징이란 건 사실 궁극적으로, 

그림책으로써 그림 위주의 짧은 글에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블랙독과 사람간의 

반려동물식의 유대관계식으로 설명해 나가지만,

실은 우울증의 병리적 특징을 이해시키는 책이란 것이다.

헌데 왜 굳이 이 이유를 

읽기 전에 알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또한, 책의 마지막엔 친절힌 해설이 첨부되어 있다.

그냥 보통의 그림책처럼 읽기를 마치고

마지막에 들어있는 몇페이지 정도의 해설자 설명을 

읽게 되는 순간부터 최종적으로 가장 

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 책.

블랙독이란 개념은 이 책이 처음 선보인 건 아니다.

이미 블랙독이란 주제로 우울증을 다룬

다룬 책들이 나온 케이스가 있다.

아쉽게도 난 그 책을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고

궁금하여 대강 접해볼 기회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만약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설명한 책으로써

어떤 책이 더 좋은가 묻는다면 

난 활자로 채워진 책보단 우선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자신의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비유한 것을 탁월한 비유로 받아들여

이것을 소재로 쓴 심리학 책이 등장했다고 보면 좋을거 같은데,

그렇다고 처칠이 어떤 심오한 이론을 만든 그런 분야는 아니다.

그저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비유한 그 지적사유가

오늘날에도 훌륭한 언어유희처럼 이용된다고 보면 좋겠다.

그런 블랙독의 메타포로 시작된 이 책의 내용은

과연 어떨지 독자로써 조금은 전달할 필요가 있을듯 한데,

우울증에 관한 궁금증으로 목적을 두고 읽게 됐던

아님, 그냥 독특한 성인용 그림책처럼 받아들여 읽게됐던 간에

이 책은 분명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지가 매우 많다.

뭐야 하며 읽은 사람에게나,

과연 뭔가 어떻게 얘기해놨을까 읽었던 사람들 모두에게.

먼저 읽은 사람으로써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기록을 남겨본다.

책은 거의 한 반려견과 그 주인과의 만남과 동행

그리고 그 끝을 모른 마지막까지 전부를 보여주듯 다룬다.

헌데 그 블랙독은 주인과 항상 대치중이다.

그래서 그 주인은 물리거나 거리를 두거나 조심한다.

그리고, 그 개는 주인에게 운이 좋다면 어떤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고

반대로 생활속 작업들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다 또다른 블랙독을 가진 주인을 만나게 되면 

마치 비슷한 처지의 사람으로써 배우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블랙독을 다스리기 위해

150달러를 내고 방법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 시간들은 매우 소중하다고 느끼기도 하다.

이런 식의 내용들만 놓고 보면 이 책은 딱 반려견 일지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나와있는 우울증과 블랙독의 비유를

정확히 인지하고 책을 보게 되면 모든 건 

우화적 스토리에서 심리와 인지적 테스트 문구처럼 전환된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우울증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우울증 인자가 예술적 소양으로써 발휘되기도 하며,

심하거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을 때

심리학자나 의사 등을 통해 관리를 받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자신만 있는 증상처럼 느끼던 우울증이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느끼게 된다면

그 관조적 상황이 동병상련의 동질감과

치료적 효과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는 식의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그림 한장과 은유적 설명엔

이와 같은 깊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난 가끔 시집을 읽는다.

좋아하지 않지만 그 함축성에 끌린다.

그리고 가끔 내가 시를 아주 좋아하지 않음에 

시인이란 직업과 그 창작물들에 미안함이 생긴다.

매번 가까이 두진 않지만 그 위대한 함축성에 말이다.

열마디 백마디 말보다 이런 그림책에서 느끼는게 많을 수 있다.

우울증에 관해 목적을 두고 읽는 책이 아닌

좋은 시집을 읽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한권을 다 읽는데 얼마간의 시간이면 충분하니

이 또한 얼마나 경제적이라 생각하며 행복해질 수 있으니.

아나운서였던 위서현 씨가 이 책의 해설을 담당했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데 심리학자란 새로운 이직직업으로써 

정신적 성숙을 이루며 제2의 인생을 살고있을

그녀의 선택과 과정도 느껴볼 수 있었던 건

이 책에서 얻은 또다른 기쁨이었다. 좋은 책과 좋은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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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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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한 구절은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써보려고 했으나,

워낙 원문의 글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좋고

특별한 가공을 가할 필요없는 느낌도 전달하면서

저자 특유의 성격마저 느껴볼 수 있을 매트한 글이라

그대로 적어보는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은 페이지 390에 나와있는 글이다.

'원죄란 우리가 지닌 잠재력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삶에 해답이 있다면 그건 더 많이 사는 일이 아니다.

삶의 한계가 어딘지 직접 부딪쳐 본 뒤,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죄책감은 제대로 삶을 살아가지 않을 때 생겨난다.'

신기하게도 이 다음 글은 달리기 본연에 대한

찬사적인 글이 바로 이어지는데,

그 글까지 인용한다면, 앞선 인용글의 

탁월함을 다소 떨어뜨리는 듯하여

일부러 여기까지만 적어 보았다.

책 전체가 이런 류의 문장구성은 아니지만

정신과 육체 그리고 그 매개점인 마라톤을 다루고 있기에

어느정도 한사람이 쓴 글로써의 느낌들로써는 

동일성들이 많이 느껴지고 있다.

난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됐던 건,

책의 생명력은 시간의 흐름과 결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의 산 같은 책이나, 데미안, 

까뮈, 데일 카네기, 아가사 크리스티 등등,

이들의 비슷한 점은 소설류라던가 

책의 저자라던지 그런 것들만은 아닌거 같다.

이 나열한 이름들은 이미 한세대 또는 몇세대 전의 

베스트셀러와 인물들이란 점도 공통점이고,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지만,

이미 후생가외의 삶처럼 

비슷한 소재의 다른 책과 다른 인물들이 

앞선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굳이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적어본 것은

독창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은 테크놀러지 같은 분야에서만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런듯 싶고,

인간의 사유나 기타 전반적인 인문학적 요소들은

이미 기존의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탁월한 면이 많다.

게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측면에서 

나와 비슷한 면도 많이 느껴

묘한 느낌을 공유하며 읽는 즐거움도 주었다.

헌데, 이 책의 저자가 세상을 뜬 시기는 1993년이다.

거기에 한국에 나온 이 책의 초판 시기는 2003년.

이 한명의 저자와의 만남도 우연이지만

책의 내용만으로 놓고 본다면,

이 책의 내용도 모르고 살았던 어떤 독자의 시절속에서도

이 책은 이미 존재해 왔던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 봄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것을 찾아해매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인정받으려 애쓰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금 넓게 보면 비슷한 누군가가 이미 존재하며

현재의 독보적이고 유일할 것만 같은 많은 고민들은

이미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있어 왔던거 같다.

이 책의 내용도 탁월하지만,

70년대 80년대 90년대도 느껴볼 수 있는 한 러너의 삶을 읽어보면서

인간의 어떤 면이 그렇게 바뀌었고 어떤 건 구식이 되었는지 난 알수없었다.

도리어 그 시절 그의 얘기들 속에서 더 명징한 사유의 흔적들만을 느낄 뿐.

이 책은 분명 달리면서 얻은 수많은 장점들과 경험을 소개한 책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분명한 철학책이다.

표현이 어렵거나 우월성을 느끼는 자전적인 경험 일부의 확산에 기대지 않고

진실로 퓨어한 무언가를 계속 펌프질하는 부분이 강한 책이다.

달리기를 운동으로만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를 대체할 종목은 많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멀티적인 삶의 충만성을 위해서는

달리기의 경험은 유일무일할 듯 하다.

창피한 얘기지만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공기는 나빠지고 트레드 밀 위에서 일정하게 달리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을 넘지 못해왔다.

비유하자면 사우나실에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느낌이 나의 트레드밀 위의 마음같다.

그런 스스로를 다잡을 겸 저자의 인정받았다는 그 철학도 읽어보려

이 책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하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저자는 노화로 죽은게 아닌 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건강전도사로써의 삶처럼 이 책을 읽으려 한 사람들에겐

이미 이 사실이 하나의 좋은 전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의 도구로써만 읽으려 말고 마음으로 읽어보라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너무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줄 책이다,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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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이효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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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한번 가볍게 넘기듯 책을 봤을 때 난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조금은 오해했었다.

그때 느낌에선 그냥, 직업이 의사인 저자가 

전문의 생활을 하고있는 한 병원 안에서 

그간 겪어온 개인적인 일들을 자신의 느낌들과 섞어 

다양하게 적어 본 보통의 다른 수필들의 모습과 

이 책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헌데, 몇페이지 넘기지 않았을 때 한개의 에피소드로

난 이 책이 매우 좋은 책일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의사가 얘기했던 하나의 오래된 시점의 얘기가

노희경 작가가 쓴 한편의 드라마처럼도 느껴지기도 했다.

운이 나쁘게 정신질환을 앓게 된 한 젊은 여성.

그 후 그녀의 인생은 정신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됐고

병원생활은 벌서 20년은 족히 넘었다.

젊었을 때 부부의 연으로 결혼없이 한 남자와 살다 

딸까지 낳은 젊은 보통의 삶이였지만, 

정작 그녀의 현재의 병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예정된 듯 그 남자는 떠나갔다 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그녀의 인생은

그후로도 점점 더 내리막이 되었다고도 보여진다.

내리막이라 내가 표현해 본 것은 

그후 이런저런 고난들을 잘 극복하고 

남은 딸과 건강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은 아니기에

조금은 과격하나마 그리 표현한 것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치료를 시작한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도 했고, 

필요했을 약들은 적재적소에 환자에게 투여되지 못했다. 

시대가 그러했고 지금보다 덜 발전됐을 시기의 정신적 발병은

그나마 더 좋은 약과 만날 운 또한 그녀에게선 비껴갔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여러가지 조금씩 

아쉬움들만 쌓여갔고 고만고만한 시간은 그리 흘러갔다.

그렇게 그녀는 20년 넘은 지금도 저자의 눈앞에 있다.

점점 늙어간 그 환자 옆엔 딸이란 존재가 있었다.

자연히 엄마는 늙어갔고 딸은 딸대로 나이가 들어갔다.

어느새 중년의 나이까지 된 그녀의 딸.

결혼을 했으며 지금은 환자의 부모가 해왔던 여러 일들을

마치 원래 그렇게 살라고 주어진 인생처럼 

그 딸이 대신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는 회상한다, 병이 있는 그 환자의 모습과 함께

처음 봤던 꼬마 어린 딸의 옛모습도.

어렸지만 어른들을 따라 엄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그때

설명은 할 수 없었겠지만 어른의 시선이나 짐작으론

익숙하지 않았을 정신병원이란 분위기 속에서,

어린 나이의 그 딸은 대기의자에 눕기도 앉아있기도 하며 기다리다 

졸다 뒤척이기도 하며 자신과 관계된 어른들과 그 시기를 보냈다.

어른들이 일을 마치고 되돌아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지은이는 말한다. 이런 얘기가 한 집안의 특이한 일만은 아니라고.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간의 이런 상황을 많이 보는 직업이라서.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떠나가고 누구는 남는다.

모정의 부재속에서 자라났을 딸이라고 책에선 말하였지만

딸은 떠나간 부정 역시 온전히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늙어간다, 보호자가 되어서.

의사인 지은이는 그저 바라보고 손을 잡아주는 정도만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상황들을 아련히 바라보고 공감해주고 있음을 책에서 느껴진다.

측은지심을 간직한 정신과 의사 그러나 뒤돌아 서서 

자신의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땐 생활인으로써

자신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기에 그 한계도 독자로써 공유한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 소개가 너무 길어져 버렸지만, 

위와 관련된 얘기는 책 초반에 실려 있는 작은 얘기이고

분량도 몇페이지 정도인 사연을 나름 전달해 본 것 뿐이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으며 쓰다보니 하나 아쉬움이 생긴다. 

이런 주제만으로도 충분히 한권의 좋은 책이 있었을텐데 하는.

책은 앞서 말한 그런 이야기 외에도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흔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해석을 비롯

정말 다양한 주위의 이야기들을 대상으로 

공감대 넘치는 분석과 느낌들을 많이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해석들은 정신과 의사라는 본연의 능력에 기초한 바가 많다.

재미로 읽을 책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 읽으면 의무로 읽게 될 책은 아닌 

책 자체의 흡입력을 크게 느껴보게 해 줄 책이다.

한때 매스컴은 자주, 의사의 공급이 많아져서 

선망의 직종인 의사란 직업도 더이상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말을 

정말 자주해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무작위로 어떤 건물이라도 올려다 볼 때 

2~3개씩은 꼭 보이는 저 많아진 병원들을 마주하면

이 말이 현실성이 없다고 부정킨 어려울거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란 직업을 그런 틀로만 보아야 할까란.

다수의 동종경쟁 속에 몰려진 의사란 직업이 됐기도 하겠지만

이 직업엔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아이덴티티가 있다.

오랜기간의 숙련, 독학으론 어려운 전문지식의 자체 축적기간,

한마디로 직업 자체만으로는 대체불가한 부분이 많은 직종이다.

그 소중한 직업에 성숙함이 더해진 소명까지 발휘됐을 땐 어떨지.

저자는 사양할지도 모르겠지만 독자로써 느끼는 그는

따뜻한 면과 시선까지 지닌 밀알같이 쓰일 

내면의 능력도 갖춘의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의 좋은 생각을 책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어 많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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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 남을 신경 쓰느라 자신에게 소홀한 당신을 위한 자기 수용의 심리학
박예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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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독서를 하는 중간에

잠깐씩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단순히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려 해보거나

순간에 젖어들어 자연스런 유익함을 축적해가는게 아닌,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얻고 배우려고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이걸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꾸 무언가에 목적을 두는 삶은

긴 안목에선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단 생각이 

독서중에 본능처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몸만 지치는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지친다는 것을

자꾸 스스로 잊고 사는 건 아닐지도 같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더 위와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왜냐면, 이 책은 단순히 각자의 심리적 부양만을 위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무술로 치면 태극권 같은 원리랄까,

정중동 속에 있을 원초적인 에너지의 갈무리와

심리적 조화 속에서 뭔가를 찾으라는 책 같았다.

아들러의 이론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간단하게 2도 인쇄된 각 사연자들의 상황들에

조언이 뒤에 붙는 구조를 큰 틀로 가진 책이라 보면 된다.

이런 각각의 사연들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읽다보면 나뉘어진 사연들 서로가 

개별적이지 않은 느낌을 주는 건,

특정한 사람들만의 극소수인 얘기들이라기 보다는

성장기나 현재 그리고 주변 누군가의 삶속에서

직간접적 느낌들로 지각해왔었을

주변 대다수의 삶의 모습들을 느껴볼 수 있는 얘기라서다.

그리고 그 삶들을 관조하는 상담가의 조언은

예상외로 뭔가 해결책을 담보하진 않는다.

해결해주고 고민이 해결되는 극적인 모습이 아닌

각자가 착각하고 있는 작은 오류들을 느끼게 도와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떠올려지는 함축적 얘기들을 정리해보면,

부담을 줄이고, 안된다는 생각들 중 일부는 덜어내도 보고

넉다운 되지 않고 그런 번아웃 되지 않도록 

필요이상으로 너무 애쓰지 말고 조절하고 

에너지를 덜 발산하고 마무리하는 주체적 삶을 사는 것.

이 이외에도 많지만, 정제되지 않은 느낌들로

독자의 시선으로써 정리해 봤고

책이 주려는 느낌과 독자로써 받은 느낌을 매치시켜 보았다.

무엇을 해라, 무엇이 좋다, 그건 틀렸다 이런 것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걸 위해 구사하는 언어가 강하지 않다고 해서

전하려는 진리나 그리 행동해야 하는

실천적 부담감까지 결코 쉬울 순 없다.

당기고 밀수 있고 밀다가 당길수도 있는

정신 심리적 안정상태의 항상성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책 제목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는

책이 담은 여러 많은 표현법 중 가장 잘 

이 책의 핵심을 표현해 주는 문장일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타인에게 꼭 인정받고 싶은 

구체적 욕구나 욕심 없이 스스로를 위한 

힘을 발휘하며 사는 삶이라 느껴졌다.

스스로의 발전은 계속해 나가돼 무리한 선넘기는 안 할수 있는 삶.

부드러운 글들이지만 책에서 느낀 바들을 실천하는 

삶을 생각해봤을 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필요한 일들이

책속에 담겨있다, 안분지족 하지만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가치관.

책은 그런걸 가르쳐주려는 거 같다.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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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하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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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전에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고

다시 인연이 닿아 그의 신간을 읽어볼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써 책의 주제를 말하자면 

먼저 정치적이지 않게 본다면

결코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먼저 하고 싶었다.

분명 정치적이다, 하지만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

정치색을 띄었다고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주제 투성이지만

내가 느끼는 바로는 정치가 아닌 변질되고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문화의 변태과정을 논한다고 느꼈다.

페미니즘을 다룬 챕터 정도를 빼면 모두다 정치적 연관성이 짙고

저자 스스로도 정치색이 가미된 소비자 운동처럼

다루고 있는 세상사를 바라보는 면이 크지만,

독자로써 그가 설명해주는 주변의 일을 

그의 설명과 함께 독자의 눈으로도 따라가다 보면

책 이상의 것들도 생각해 볼 것들이 많음을 느껴보게 했다.

첫째, 정치적이긴 하나 이젠 더이상

그 분리와 구분이 모호해진 사회문화적 행태를 

너무도 많이 목도하게 된 세상이다.

게다가, 타인이 봤을 땐 분명 정치적일 수 있는 상황들인데

그 분위기를 만든 실제 당사자들은 순수한 표현이지만

나름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은 결코

정치적 매개관계없다는 표현들로

더이상의 논의가 불가한 경우도 많다.

태어는 났으나 마치 자가발전처럼 발생주체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도덕이나 관념법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든

개인주의적 의사표현이 절대선이고 개혁으로 

몰이해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 시대에서

단지 정치색 하나로만 이 모든걸 연결지어 보기엔 무리수가 있다.

틀린 얘기가 아니라 받아들여지기 힘든 세상.

하지만,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을 통한 작업은 매우 가치있고

독자에게 복잡한 생각들 안에 구심점을 만들어주는

빛과 같은 느낌의 지적느낌들이 넘쳐난다.

옹호나 반대를 위한 책이 아니고,

진영을 넘나들며 근 5~6년 정도의 중요한 이슈들을

해석해보고 설명해주니 이보다 고마운 노릇이 없다.

동의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등장하는 사건들을 회상해 볼 때,

느낌만으로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문제점들을

다시 재조명 해보며 명확한 미씽 포인트들을 집어낸다.

뉴스는 다시 다른 뉴스에 묻힌다.

하지만 강준만씨의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는 시대를 읽으려 했고 그것을

좀더 들여다보면서 비합리적인 수정요소를 발견했고,

어느 부분에 가서는 되려 너무도 

과한 비판과 결집이 이루어진 것들을 분석해 냈음이 보인다.

끝으로 책제목에 쇼핑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써 언급함으로써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저자는 이제 정치도 쇼핑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음을 말하는 듯 하다.

소신과 드러난 색깔이 결집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닌,

쇼핑의 주체가 쇼핑의 대상이 갔으면 하는

그 길을 제시하고 무언의 압박이 가능한 시대.

내가 느끼는 메세지는 이거였다.

혹, 저자가 본다면 내가 느낀게 맞다고 할지

틀리다고 할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건, 이 책은 생각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표지판 같은 역할은 분명 녹아있다는 점이다.

정치라 읽지않고 문화라 생각하며

꼭 한번 일독해보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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