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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이효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맨처음 한번 가볍게 넘기듯 책을 봤을 때 난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조금은 오해했었다.
그때 느낌에선 그냥, 직업이 의사인 저자가
전문의 생활을 하고있는 한 병원 안에서
그간 겪어온 개인적인 일들을 자신의 느낌들과 섞어
다양하게 적어 본 보통의 다른 수필들의 모습과
이 책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헌데, 몇페이지 넘기지 않았을 때 한개의 에피소드로
난 이 책이 매우 좋은 책일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의사가 얘기했던 하나의 오래된 시점의 얘기가
노희경 작가가 쓴 한편의 드라마처럼도 느껴지기도 했다.
운이 나쁘게 정신질환을 앓게 된 한 젊은 여성.
그 후 그녀의 인생은 정신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됐고
병원생활은 벌서 20년은 족히 넘었다.
젊었을 때 부부의 연으로 결혼없이 한 남자와 살다
딸까지 낳은 젊은 보통의 삶이였지만,
정작 그녀의 현재의 병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예정된 듯 그 남자는 떠나갔다 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그녀의 인생은
그후로도 점점 더 내리막이 되었다고도 보여진다.
내리막이라 내가 표현해 본 것은
그후 이런저런 고난들을 잘 극복하고
남은 딸과 건강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은 아니기에
조금은 과격하나마 그리 표현한 것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치료를 시작한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도 했고,
필요했을 약들은 적재적소에 환자에게 투여되지 못했다.
시대가 그러했고 지금보다 덜 발전됐을 시기의 정신적 발병은
그나마 더 좋은 약과 만날 운 또한 그녀에게선 비껴갔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여러가지 조금씩
아쉬움들만 쌓여갔고 고만고만한 시간은 그리 흘러갔다.
그렇게 그녀는 20년 넘은 지금도 저자의 눈앞에 있다.
점점 늙어간 그 환자 옆엔 딸이란 존재가 있었다.
자연히 엄마는 늙어갔고 딸은 딸대로 나이가 들어갔다.
어느새 중년의 나이까지 된 그녀의 딸.
결혼을 했으며 지금은 환자의 부모가 해왔던 여러 일들을
마치 원래 그렇게 살라고 주어진 인생처럼
그 딸이 대신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는 회상한다, 병이 있는 그 환자의 모습과 함께
처음 봤던 꼬마 어린 딸의 옛모습도.
어렸지만 어른들을 따라 엄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그때
설명은 할 수 없었겠지만 어른의 시선이나 짐작으론
익숙하지 않았을 정신병원이란 분위기 속에서,
어린 나이의 그 딸은 대기의자에 눕기도 앉아있기도 하며 기다리다
졸다 뒤척이기도 하며 자신과 관계된 어른들과 그 시기를 보냈다.
어른들이 일을 마치고 되돌아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지은이는 말한다. 이런 얘기가 한 집안의 특이한 일만은 아니라고.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간의 이런 상황을 많이 보는 직업이라서.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떠나가고 누구는 남는다.
모정의 부재속에서 자라났을 딸이라고 책에선 말하였지만
딸은 떠나간 부정 역시 온전히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늙어간다, 보호자가 되어서.
의사인 지은이는 그저 바라보고 손을 잡아주는 정도만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상황들을 아련히 바라보고 공감해주고 있음을 책에서 느껴진다.
측은지심을 간직한 정신과 의사 그러나 뒤돌아 서서
자신의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땐 생활인으로써
자신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기에 그 한계도 독자로써 공유한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 소개가 너무 길어져 버렸지만,
위와 관련된 얘기는 책 초반에 실려 있는 작은 얘기이고
분량도 몇페이지 정도인 사연을 나름 전달해 본 것 뿐이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으며 쓰다보니 하나 아쉬움이 생긴다.
이런 주제만으로도 충분히 한권의 좋은 책이 있었을텐데 하는.
책은 앞서 말한 그런 이야기 외에도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흔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해석을 비롯
정말 다양한 주위의 이야기들을 대상으로
공감대 넘치는 분석과 느낌들을 많이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해석들은 정신과 의사라는 본연의 능력에 기초한 바가 많다.
재미로 읽을 책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 읽으면 의무로 읽게 될 책은 아닌
책 자체의 흡입력을 크게 느껴보게 해 줄 책이다.
한때 매스컴은 자주, 의사의 공급이 많아져서
선망의 직종인 의사란 직업도 더이상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말을
정말 자주해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무작위로 어떤 건물이라도 올려다 볼 때
2~3개씩은 꼭 보이는 저 많아진 병원들을 마주하면
이 말이 현실성이 없다고 부정킨 어려울거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란 직업을 그런 틀로만 보아야 할까란.
다수의 동종경쟁 속에 몰려진 의사란 직업이 됐기도 하겠지만
이 직업엔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아이덴티티가 있다.
오랜기간의 숙련, 독학으론 어려운 전문지식의 자체 축적기간,
한마디로 직업 자체만으로는 대체불가한 부분이 많은 직종이다.
그 소중한 직업에 성숙함이 더해진 소명까지 발휘됐을 땐 어떨지.
저자는 사양할지도 모르겠지만 독자로써 느끼는 그는
따뜻한 면과 시선까지 지닌 밀알같이 쓰일
내면의 능력도 갖춘의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의 좋은 생각을 책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어 많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