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자살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어 봤지만
이처럼 독창적인 접근법은 생소하고 처음이다.
냉소적이고 솔직하여 어떤 부분은 소설같고
어떤 부분은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느껴진다.
이러할 수 있는 건,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듯
자살이란 주제를 관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책의 시작을
자신이 경험했던 환자 류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이혼한 어머니와 살다 성인인 된 류타는
술담배도 하지 않는 실생활에선 큰 기복없던 젊은이였다.
누구는 히키코모리라 부를지 모르지만
저자는 말투가 묘하게 거슬리던 환자였을 뿐
큰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음도 강조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낯에 신경을 거슬렸던 여점원의 일로
동네에서 이유모를 난동을 부리게 돼
처음엔 경찰서로 갔다가 다시 정신병동으로 옮긴다.
아마 이쯤 그의 삶의 이력과
병원까지 가게된 모습에서
자살이란 책의 주제와 잘 연결된다고
쉽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말하는 류타의 자살원인은 사실 '알수없음'이다.
딱히 우려될만한 증상도 안보여 왔었고
그 이전에도 예견할 만한 조짐도 없었기에.
그런데 저자는 류타와의 마지막 모습을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기억하며 의미부여를 했다.
얼굴이 이상하다며 한밤중 자신을 찾아온
류타의 얼굴은 마치 위벽점막 같았고
이로인한 모습 자체가 큰 거부감이 들었지만,
우선 잘 자보고 내일 낮에
피부과 협진을 통해 알아보자며 돌려 보냈다.
그 당시 저자는 본인 심정을
왠지모를 화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명쾌한 답변이 어려운 원인불명의 질환이라 여겨
이를 류타가 준 무력감이라 느꼈을 수도 있겠고,
그냥 얼굴상태 자체에서 전달받은
불쾌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기억한다.
아님 막연한 불길함이었을 수도 있었겠다고도 하며.
이는 단순 의사로써 보인 모습이었다기 보다는
그냥 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이지만 솔직한 감정표현이었단 느낌과
그걸 이 정도로 솔직한 감수성으로 표현한 자체가
의사인지 소설가인지 놀랍기도 한 부분이었다.
이런 류타는 다음날 사라졌고
먼 지하철 역에서 투신한게 발견된다.
이 얘기가 굳이 첫번째 얘기가 된 건,
자살의 원인찾기란 특정될 수 없는
저마다의 불특정 원인도 갖을 수 있단 결론을
보여주려 한게 아닌가 추측되는 부분.
이후 저자는 7가지로 자살의 원인을 정리하긴 한다.
-미학, 철학에 따른 자살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이 중,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사례엔
'절망 친화형'과 '자살 친화형'이라 부를만한
성격유형이란게 존재하는 것 같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임상소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삶의 어려움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인해 늘 죽을 기회를 엿보는 듯 사는
일본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거 같다.
보통 이런 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허무함과 사투를 벌이며
평생 과제처럼 느끼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 유형은,
방탕하게 살기도 하고
허무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일찌감치 신앙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절망이 앞서기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
불안에 강박관념까지 더해져
신경증이 한층 강해진 사람도 있고,
허무감이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듯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계기로 더 궁지에 몰리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괴로운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시야는 좁아지고
희망이 없다는 상실감을 초래한다.
여기까지 도달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라리 죽어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의 실린 원문자체를 인용했지만
번역문장이라 약간의 윤색은 가미했다.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은
문장자체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굳이 책의 설명을 첨부하진 않겠다.
끝으로,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은
인상적인 부분만 가볍게 다뤄보려 한다.
우울증은 대표적인 자살로 이어지는 질환으로,
자고 일어났을 때 도리어 기운을 차려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단 느낌 보다는
오히려 자살시도는 아침에 많다는 점은 특이하다.
또다시 의미없는 하루가 주는 의미가
무망감이 원인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전형과 비전형으로 나눠 우울증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전형적인 우울증의 원인은
특유의 병전(병에 잘 걸리는) 성격을 이유로 꼽는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고 열심히 꼼꼼히도 하지만,
변화를 극히 싫어하는 성격으로써,
어느 한가지 일엔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 정신표본으로 설명.
그만큼 임기응변엔 취약하다.
착실하고 진지한 태도가 병이 될 소지가 있는 건
매우 주목해 볼 만한 요소같다.
만일,
연공서열제가 존재하는 안정적 사회라면
분명히 가장 적합한 기질이고
무조건 충성을 강요함에도 쉽게 지치지 않고
불합리함 마저도 견뎌 낼 수 있으니 더욱.
그러나 불합리함 자체에
면역까지 있는 건 아닌 것도 이 유형에겐 고민거리.
결국 이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질서를 중시하고 무슨 일이든 잘 해내려 드니까.
분위기 파악도 의외로 잘한다.
할당량을 먼저 채웠다고 칼퇴근도 하지않을 품성에
최대한 협조하는 면까지도 있다.
이런 성품을 인정해주고
조직이 끝까지 보호해 준다면
아마 영원히 헌신할 유형일 것이다.
무난하고 평범한 걸 한심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자기 분수를 아는 소시민이라고도 볼 수도 있으니.
저자는 의외로 이런 성격을
매우 현실적이라 평하면서도,
이게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로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하고자 하는
불안과 초조가 그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만일, 현상유지가 어려워지고
업무환경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여지껏 만난 적 없는 인간을 윗사람으로 접하게 되면
매우 큰 위기를 맞는다고도 봤다.
이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움과 압박감을 심하게 느껴서다.
승진이나 높은 평가를 받는 등의
좋은 일로 인한 변화 또한
심리적 압박감이 되고 자살원인이 될 수 있는 게
좋은 사람의 성격 안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적 인자라는 사실은 슬픈다.
거부감이나 빠져듬 없이
학술적으로 읽어보길 권하는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