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지음, 손화수 옮김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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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관한 주관적인 서평]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런 아쉬운 시간들 앞에서

어떤 주제로 책을 쓸까부터 

이런 고민에서 부터 논제의 시작은

출발하지 않을까란 생각부터 해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마지막 책인

여기서의 주제는 '행복'으로 선택됐다.


초반보다는 확실히 중반부를 넘어서고 나서가

더 와닿는게 많던 책이었는데,

행복에 관한 내용들을 담은 책들에 대해 

비판보다는 그 시도들이 왜

아이러니 같은지에 관한 비평들과

그걸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수긍되며 받아들여질 만한

행복에 관한 지혜들을 들려주려 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 구절들을 좀더 만났기 때문.


책의 후반부니 꼭 하나의 결론만 존재할 거 같지만

최종결론인 듯 캐치하게 됐던 좋은 구절 다음 

공교롭게도 그 다음 그 다음에도 

행복이란 무엇인지 정의처럼 생각되는

의미상 중복되지 않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없다고 주장하는 저자이면서도

마치 정의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책을 통해 보여졌고

거의 결론처럼 정의 내려졌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또 그게 다는 아님의 연속.


'좋은 삶, 만족스런 삶을 산다는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도취, 자기희생, 평등과 경쟁, 안정과 자유,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금욕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과 같다....'


'삶의 의미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획득가능한 구체적인 것들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용해 본 몇개의 문단들만 봐도

행복이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매 문장마다 고유한 행복론이 느껴진다.


특해, 이런 부분들 이전엔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많이 나왔지만,

이후 행복이란 말보다는 대신

삶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으로

행복을 바라보는게 맞겠다고 이해하면 좋을

사유적 문장들이 주로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우연히 행복을 발견한다'는 의미를

더욱 줄여놓은 목차 속 문장은

'행복은 우연이고 긍정적인 부작용'이란 표현이었다.


여기서 긍정적인 부작용을

존 스튜어트 밀의 일화로 설명해보면,

벤담이 제안한 과학적이고 심오한 방식으로

철학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지쳐버린 밀은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관두고

시 같은 감성적인 휴식을 주는 학문을 해보다가

오히려 거기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걸 찾았다는 

사례를 책이 등장시켜 놓았다.


하고자 하는 것에 다다르게 해 줄 거라 믿었던 건

벤담 철학으로부터의 시작이었는데

이걸 놓아버리고 시작한

그냥 곁가지처럼 고집하던 문학적인 접근들에서 

오히려  찾고자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


이는 주류가 됐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그로인해 우연히 시작한 일에서 

'의도치 않은 좋은 결과'를 얻게된 걸 

'긍정적 부작용'이란 행복찾기로 설명하기 위함이다.


결코 우연한 얻음과

운좋게 만났다고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의도치 않은 건 분명한데

거기에 원하던게 있었으니,

파랑새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자기 집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우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다고 느껴지는 

저자의 행복을 바라보는 철학이긴 했다.


정의될 수 없는 걸 정의하려하고

부단히 책에서 찾으려 하는 

노력들에 관해서도 꽤 질타했다.


책이란 어떤 주제이건

쓴 사람의 생각이 담겼는데,

그걸 읽는 사람이 흡수하듯 계속 읽어간다면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주장을 

믿으려는 노력이라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오늘 한권 내일 한권 

이렇게 참고해야 할 책만 들어날 것이고

집안 서고만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을 달관한 듯 조언하려는 부분도 없고

염세적인 부분도 없어 한편으로는 더 아쉽다.

 

동시에 그런 부분들을 통해 

떠나가는 그의 좋은 점들까지 

그의 마지막이 된 이 책에서 

그가 가진 인품은 더더욱 느껴볼 수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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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의사과학자 애로우스미스 상.하세트 - 전2권 의사과학자 애로우스미스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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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으로써 서평은 주관적으로 씀]


오래전 씌여진 소설이라 배경과 느낌 등은

지금과 다른 그 시절만의 분위기가 

외형적으로도 압도하고 주도한다.

하지만, 거의 100년 전 그때 그시절 

그리고 소설이란 가상설정임에도

진짜 존재했을법한 한 의사의 삶을

마치 전기문처럼 소개하고 있기에

사실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담백하고 현실성 있는 전개가 훌륭했다.


현실성...


저마다의 정의내리는 

소설 속 현실성이란 어떤 모습일까? 

모드 다 다르지 않을까.


이 책에서 내가 느끼는 현실성은,

차가움이 냉정한 현실판단으로 느껴지면서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강인함과

그런 많은 사람들의 실제 존재했던

어느 시대 속 모습들이라 부르겠다.


아끼는 이가 죽어도 원통해하지 않고,

혼자 살아남아도 그 사실만으로 

좌절하거나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너무 많은 공감과 동정에 얽매이지 않는

한 의사과학자의 삶...


인간도 결국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동물.


그러나 이타심을 가진 동물이라는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거대한 타이틀 대신,

극복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마저 뛰어 넘으려는 

특유의 헌신과 노력이 합쳐지는

약하면서 강인한 특별한 대상...


의사과학자란 애로우 스미스의 직업이 지닌 냉정함은

그래서 오히려 너무 많은 부분에서 따뜻하게도 느껴진다.


역자의 평 실렸음이 목차에도 없이 뒤에 실려있긴 한데

그걸 읽음으로써 의사과학자란 직업에 대해

좀더 의사의 시각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편집됐다.


리오라...


주인공 애로우스미스의 아내로

지금 시대라면 더더욱 사실감이 떨어지는 사람이겠지만,

우연한 만남과 부부로까지 이어지는 인연을 가진 여인으로

애로우스미스에겐 단순 부인이 아닌

평생 친구이자 말그대로 동반자적 존재다.

그렇기에, 이 책만이 가진 서사를 위해서

어떤 등장인물들보다도 

주인공에겐 이 리오라란 여인이 

더욱 필요했을 사람이었단 건 

읽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도 싶고.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그녀는

남편을 자식이라 여기며 살아가려 마음먹은 듯,

홀로 남겨지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남편이 가진 성격이 따뜻하기 보단

자기 일엔 열심인 반면 인간관계엔 덤덤함에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자신의 역할을 그 속에서 찾고 나누려한다.

이런 배우자를 누가 마다할까?


하지만, 

남편의 일생 안에서 그녀란 존재는 분명 행운이었겠으나

여자의 인생으로 평가할 땐 불운이 교차함에 마음 아팠다.

남편이 역병이 걸린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동안

그녀는 외로이 역병 아닌 만들어진 역병에 사라져갔다.


아내를 잃고 자신의 평생스승인 고틀립도 사라진 세상...

그래도 자기가 잘해왔고 해내야 할 일은 

소신있게 해내고야 마는 의사 애로우스미스.


미국의 예비의사들이 이 책을 가장 선호한다는데

만일 그렇다면 미국은 행복한 나라일지 모른다.

사명감을 공감하며 이 책을 찾아 읽고 

그런 인생을 살 준비된 의사들로 양성될테니.


책의 지향하는 그 좋은 내용이 핵심이지만

책장을 넘기다 가끔 만나는 삽화들 또한 참 좋았다.


처음엔 원래 원전에 삽입된 그림들인 줄 아리송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던 그림들.

'유여진'이란 화가의 그림들인데

개인적으로 첫장의 얼굴없이 

주인공의 모습인 듯 이목구비가 생략된 채

실루엣처럼 그려진 애로우스미스라 추측되는 

그 빈공간 속 얼굴만이 주는

독자 각자 주인공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 

그 그림의 구도가 참 좋았고,

밝은 8명의 딸들을 8마리의 강아지로 비유한 듯한

그 그림도 따스하고 유쾌했다.

일러스트가 아닌 화가의 그림인 걸 알고서도

책과 잘 어울리는 그 센스가 

전문 일러스트 작가보다 더 원전을 잘 살려준 느낌이었다.


책에선 애로우스미스가 아닌 주로 마틴으로 불리우지만

애로우스미스란 그 고풍스런 주인공의 성은

좌고우면 하지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 그를 

느낌면에서 잘 표현해 낸 

좋은 작명이란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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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코드 - 다섯 가지 코드로 크리스티를 읽다
오오야 히로코 지음, 이희재 옮김 / 애플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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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서평]


검증된 작가라도 내놓은 모든 작품이 매력적이긴 힘들다.

그러나 몇몇 작가는 그 어려운 걸 해냈는데

그 중 한명이 애거사 크리스티 같다.


이 책을 읽고 예전 기억도 소환해 보며,

책이 됐건 영화가 됐건

애거사와 관계된 많은 접점을 조합해 보게 됐다.

저자가 제시해주는 키워드들을 쫓다보면

애거사가 창조한 추리소설들만의 느낌들을 

특징적으로 이해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작품 중에 

'쥐덫'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또는 

'목사관 살인사건',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만큼은 아니지만,

덜 알려졌을 '비뚤어진 집'이란 작품에 대해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뤘는데

해당작품을 미리 접해봤던 것이 의외로 

이 작품을 저자가 다룰 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


추리소설이란 장르적 특성상

애거사 크리스티의 전 작품을 다룸에 있어서

저자로서도 매우 어려웠겠지만,

책내용을 이어가면서 전혀 결말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될 내용들은 없도록 글을 써나갔다.


만일 '비뚤어진 집'을 이미 알고있지 않았다면

재밌게 느끼며 이해했을 부분으로써나

책의 흐름상 저자가 주고싶은 전달 포인트를 바라보는데

제대로 알아들으며 넘어가기란 쉽지 않았을 거 같아

미리 이 작품을 알고 읽을 수 있어서 개운했다.


단순히 스토리부분 말고도

애거사의 책들마다 등장했던

탐정들, 지역적 배경, 속임수 기술 등을

5개의 코드처럼 구성해 

애거사 책만의 특징들로 서술했다.


예전에 봤던 그녀의 책들마다엔

짧지만 첨부됐던 애거사의 개인사들이 꼭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으로 다시 접하며

중요한 약력 중 내게 왜곡돼 입력된게 있었음을 알게 돼

매우 다행이다 싶었는데,

나에게 있어 애거사 크리스티의 인생사는

거의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꼴로 기억됐었기 때문이다.


신경쇠약이나 남편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해리성 둔주를 겪었을거라는 

애거사의 1번째 결혼생활 중 있었던 사건을,

난 그녀가 결국 자살로 끝맺음 했던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책들마다 항상 

그녀 인생 초반에 있던 남편과의 비극적 사건을 

크게 다룬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와서였겠지만,

나이들어 자연사 한 유명작가를 

비극적 자살로 기억했을 뻔 하다니

큰 결례같아 미안했고

그 기억을 수정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너무 유명한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관해서도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알게돼 의미 있었는데,


당시 흑인의 비속어인 'nigger'가 원제목에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각색되어

이게 인디언이 됐다가 마지막엔 병정인형이 됐음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또하나의 사실 중 하나다.


애거사 작품을 읽는 다양한 관점을 

포인트로 잡고 소개한 이 책은

60년대 생의 일본저자가 썼는데,

코로나 시대를 포함 7년 동안 

애거사 작품들을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한다.


큰 기대로 시작게 아니었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다룬 강의의 시작은,

계속 인기리에 이어져 지금은 이렇게 

책으로까지 내게 됐다니 남의 일이지만 행복하다 느낀다.


마치 한 장르의 오타쿠가 

자신의 취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감으로까지 이끌어내고 공유해 보는

괜찮은 강의가 된 사례는 아닐까

독자로써 상상도 해봄으로써.


물론, 

1976년 애거사 크리스티가 작고한 이후에도

성경만큼 읽혔다는 생명력 갖춘 작품이자 작가를 대상으로

강의 주제로써 전문화 한거니, 

흔히 말하는 자기만의 세상 속 오타쿠는 아니겠으나

그 열정만큼은 이리 비유해도 실례는 아니겠다 싶다.


다루는 추리소설들에 관해 

스포일러가 없다는 구성도 중요하겠고,

애거사 크리스티에 관한 강의가 열린다면

어떤 식의 내용이 되겠는가란 관점에서

강의로써 실존하는 이 책의 내용을

함께 공유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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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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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자살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어 봤지만

이처럼 독창적인 접근법은 생소하고 처음이다.

냉소적이고 솔직하여 어떤 부분은 소설같고

어떤 부분은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느껴진다.

이러할 수 있는 건,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듯

자살이란 주제를 관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책의 시작을 

자신이 경험했던 환자 류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이혼한 어머니와 살다 성인인 된 류타는

술담배도 하지 않는 실생활에선 큰 기복없던 젊은이였다.

누구는 히키코모리라 부를지 모르지만

저자는 말투가 묘하게 거슬리던 환자였을 뿐

큰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음도 강조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낯에 신경을 거슬렸던 여점원의 일로

동네에서 이유모를 난동을 부리게 돼 

처음엔 경찰서로 갔다가 다시 정신병동으로 옮긴다.


아마 이쯤 그의 삶의 이력과 

병원까지 가게된 모습에서

자살이란 책의 주제와 잘 연결된다고 

쉽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말하는 류타의 자살원인은 사실 '알수없음'이다.


딱히 우려될만한 증상도 안보여 왔었고 

그 이전에도 예견할 만한 조짐도 없었기에.

그런데 저자는 류타와의 마지막 모습을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기억하며 의미부여를 했다.


얼굴이 이상하다며 한밤중 자신을 찾아온 

류타의 얼굴은 마치 위벽점막 같았고

이로인한 모습 자체가 큰 거부감이 들었지만,

우선 잘 자보고 내일 낮에 

피부과 협진을 통해 알아보자며 돌려 보냈다.


그 당시 저자는 본인 심정을

왠지모를 화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명쾌한 답변이 어려운 원인불명의 질환이라 여겨

이를 류타가 준 무력감이라 느꼈을 수도 있겠고,

그냥 얼굴상태 자체에서 전달받은

불쾌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기억한다.

아님 막연한 불길함이었을 수도 있었겠다고도 하며.


이는 단순 의사로써 보인 모습이었다기 보다는

그냥 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이지만 솔직한 감정표현이었단 느낌과

그걸 이 정도로 솔직한 감수성으로 표현한 자체가

의사인지 소설가인지 놀랍기도 한 부분이었다.


이런 류타는 다음날 사라졌고

먼 지하철 역에서 투신한게 발견된다.


이 얘기가 굳이 첫번째 얘기가 된 건,

자살의 원인찾기란 특정될 수 없는 

저마다의 불특정 원인도 갖을 수 있단 결론을

보여주려 한게 아닌가 추측되는 부분.


이후 저자는 7가지로 자살의 원인을 정리하긴 한다.


-미학, 철학에 따른 자살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이 중,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사례엔

'절망 친화형'과 '자살 친화형'이라 부를만한

성격유형이란게 존재하는 것 같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임상소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삶의 어려움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인해 늘 죽을 기회를 엿보는 듯 사는

일본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거 같다.

보통 이런 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허무함과 사투를 벌이며

평생 과제처럼 느끼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 유형은, 

방탕하게 살기도 하고

허무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일찌감치 신앙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절망이 앞서기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

불안에 강박관념까지 더해져

신경증이 한층 강해진 사람도 있고,

허무감이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듯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계기로 더 궁지에 몰리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괴로운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시야는 좁아지고

희망이 없다는 상실감을 초래한다.

여기까지 도달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라리 죽어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의 실린 원문자체를 인용했지만

번역문장이라 약간의 윤색은 가미했다.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은

문장자체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굳이 책의 설명을 첨부하진 않겠다.


끝으로,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은 

인상적인 부분만 가볍게 다뤄보려 한다.


우울증은 대표적인 자살로 이어지는 질환으로,

자고 일어났을 때 도리어 기운을 차려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단 느낌 보다는 

오히려 자살시도는 아침에 많다는 점은 특이하다.

또다시 의미없는 하루가 주는 의미가

무망감이 원인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전형과 비전형으로 나눠 우울증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전형적인 우울증의 원인은 

특유의 병전(병에 잘 걸리는) 성격을 이유로 꼽는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고 열심히 꼼꼼히도 하지만,

변화를 극히 싫어하는 성격으로써,

어느 한가지 일엔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 정신표본으로 설명.

그만큼 임기응변엔 취약하다.


착실하고 진지한 태도가 병이 될 소지가 있는 건

매우 주목해 볼 만한 요소같다.


만일, 

연공서열제가 존재하는 안정적 사회라면 

분명히 가장 적합한 기질이고

무조건 충성을 강요함에도 쉽게 지치지 않고

불합리함 마저도 견뎌 낼 수 있으니 더욱.

그러나 불합리함 자체에 

면역까지 있는 건 아닌 것도 이 유형에겐 고민거리.


결국 이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질서를 중시하고 무슨 일이든 잘 해내려 드니까.

분위기 파악도 의외로 잘한다.

할당량을 먼저 채웠다고 칼퇴근도 하지않을 품성에

최대한 협조하는 면까지도 있다.


이런 성품을 인정해주고

조직이 끝까지 보호해 준다면

아마 영원히 헌신할 유형일 것이다.


무난하고 평범한 걸 한심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자기 분수를 아는 소시민이라고도 볼 수도 있으니.


저자는 의외로 이런 성격을 

매우 현실적이라 평하면서도,

이게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로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하고자 하는

불안과 초조가 그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만일, 현상유지가 어려워지고 

업무환경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여지껏 만난 적 없는 인간을 윗사람으로 접하게 되면

매우 큰 위기를 맞는다고도 봤다.

이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움과 압박감을 심하게 느껴서다.


승진이나 높은 평가를 받는 등의

좋은 일로 인한 변화 또한

심리적 압박감이 되고 자살원인이 될 수 있는 게

좋은 사람의 성격 안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적 인자라는 사실은 슬픈다.


거부감이나 빠져듬 없이 

학술적으로 읽어보길 권하는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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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과 그 가족이 맨 처음 읽는 책 -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신건강 안내서
히로오카 기요노부 지음, 이송희 옮김 / 리스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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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목차 속 '제1장'에 실린 첫문장은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갈등이 마음의 병을 키운다'이다. 

이 몇줄 만으로도 난 사실 너무 좋았다.

좋다는 건 결국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믿음을 준단 건데,

양가 감정을 책을 여는 주제로 다룬다는 건

그만큼 저자가 넓은 시각을 가졌다는 뜻 같기에.


유독 이 문장이 좋았던 건, 

장르를 떠나 여러 문장들을 접하다 보면

비슷하고 맞는 느낌을 주는 괜찮은 말들은 글로 많이 만나지만

핵심 사항을 정확하게 건드렸다고 느껴지면서

의외로 짧기까지 한 문장을 만나는 건 사실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았던 이 문장...

실제 읽었을 때 크게 예상을 깬 건 아니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예상한 방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단 것은 밝혀야겠다.


난 이 글을 읽기 전 이 문장을

"양가 감정"을 설명한다고 이해했는데,

실제 읽어보니 양가감정으로써 해석한다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의미도 담기는 했으나

정확히는 양가감정 자체를 위한 설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좋은 내용인 건 맞다.


여기서 등장시킨 2개의 감정대립이란 양가감정이 아닌,

정상이란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2개의 감정인 평상심과 불안감이었고,

평상심을 우위에 놓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평상심을 기반으로 한 자체적인 조절능력이  

마음상태를 움직이는 기반이 돼 바람직하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마음상태가 유지되야 

스스로 지켜낼 힘이 있게 되는 거고,

자신이 정신과 심적 안정상태가

정상기준을 충족하는 상태의 수준임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설명한다.


즉, 자의적이던 타의적인 자극이던 

정상적인 정신상태에 필요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상심이 우위에 선 감정유지가 핵심요소란 설명.


이 단순한 내용들에 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정상과 비정상은 정확하게 나눠지는 상태가 아닌

어느 쪽이 더 우세한 걸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일 뿐이란 것도 

동시에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평상심보다 우위에 있다면

이걸 '비정상'이라 부르게 되는데.

말 그대로 평상심이란

평상수준을 유지하게 해주는 심적균형이니

불안으로 인해 깨지거나 약해진 것은

반대로 비정상으로 불린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평상심이 우위에 놓인 상태일지라도

결코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는 아닐 수 있고,

순도 100%의 평상심이란 것도

종교적 이상향에서만 이론으로 존재하는

긍극적인 목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표준은 

둘 중 어느 한쪽만을 갖아야 해결되는게 아니라

불안과 평상심 2개가 모두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어느 한쪽이 우세하고 열세해지는 

관계만이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생각케 되니까.


그러니,

평상심이 불안감보다 우위에 있게 유지함으로써

불안함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

적정수준으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된

불안과 평상심의 병존상태인게 정상인거고,

불안함에 자신이 압도당하지 않게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정상이냐 아니냔 걸로 판단하게 하는 걸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듯 하다.


평상심은 물의 잔잔함과 같으니

그냥 그 상태의 평온함을 유지한다는 뜻일 뿐

수치화 된 레벨처럼 확정지어 설명할 순 없을 부분이다.


이 이론이 앞서 오해했던 양가 감정과 다른 건

자신이 판단한게 맞나 틀리냐를 고민할 때

스스로 의심하고 확신하게 하는게 양가감정에 가깝지,

불안이냐 평안하냐를 놓고 고민하는게

양가를 판단하는 주된 잣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주

우선 제일 필요한 건 '목차 외우기'란 말들을 한다.

이 책은 공부법과 전혀 관련은 없음에도

목차에 적힌 많은 문장들 모두가

외우고 싶을만큼 정돈된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왜 우울증이 '인격자의 병'인가,

긍정적 기억이 쌓일수록 평상심은 크고 강해진다,

행동을 의식적으로 제약하는 강박장애,

마음의 병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힐 전환점,

환자 가족의 마음이 병들지 않으려면,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등


목차 안의 이런 문장들 자체가 

이미 많은 의미를 압축해 담고 있는 

좋은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에게 스스로 찾아온 환자들은

본인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겪는 중 임에도

이렇게 나아지겠다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발휘한 것이고

힘든 상황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용기 또한 이미 낸 사람들로 보기에,

회복단계로 가는 첫고비는 넘어선

현명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평가한다.


건강해야만 의미있는게 아니라

살아있어야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먼저 이해시키려는 저자의 지향점은

저마다의 실의에 빠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라 생각하고 공감된다.


자신이 가진 육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걸 

스스로 고귀하게 여길 줄 알고, 

정신이던 몸이던 건강해지고 싶어하는 

그런 욕구가 있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휼륭할 수 있다는 설명은

종교적이지 않으면서도 귀한 가치가 느껴진다.


이런저런 책의 메세지에 읽고 공감한다면

바른 방향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설명하는 바를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정신건강의 균형까지는 아닐지언정

옳은 걸 옳게 느낄 수 있는 공감과 통찰 정도는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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