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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힘 - 조직심리학이 밝혀낸 현명한 선택과 협력을 이끄는 핵심 도구
박귀현 지음 / 심심 / 2023년 11월
평점 :

난 이 책에서 2가지 주제가 좋았다.
하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소수의 필요성과,
또하나는 무행동 따돌림이란 다소 낮선 이론.
먼저,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소수.
책 자체의 논리와 별개로
얼마전 읽은 자기계발서의 한 대목과
일치됨과 상반됨이 섞여있어 대번 눈길을 끌었다.
먼저 읽었던 책에선,
타인에게 왜(why?)란 질문 대신
어떻게(How?)란 질문을 던지라 가르쳤다.
왜냐면, '왜'는 질책을 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상대에게 수동공격형 비슷한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왜를 대체해 '어떻게'를 사용해
우회적이고 결과지향적인 질문울 하라는 것.
충분히 동의할 만한 얘기였다.
하지만, 100% 동의는 어려웠다,
왜냐면, '왜?'도 필요한 세상이니까.
근데, 이 책에 의외로 그 답이 나와 있었다.
물론 다수와 소수의 대립으로 그려진 바가 크지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은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
인간집단은 '왜?'라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배울 기회를 부여받는다.
때론, 소수의견을 이해하려면 왜는 필요하고
그럼으로써 토론이 아닌
배움의 장은 넓어진다고 본다.
그래도 다른 책에서처럼 '왜?'는
공격적인 말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왜?'라는 의견제시 정도는
소수의견자에게 자기 의견을 보여줄
그 근거와 이유를 '발언'할 기회를 준다.
그렇게 들려준 근거와 이유는
대립자체를 넘어 대립의 근원이 된
사고의 차이를 논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즉, '왜?'는 필요한데
그걸 이해할 집단지성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지거나
혹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면 왜란 질문은 설자리를 잃는다.
이 책이 좀더 논리적이라면
전에 읽은 책은 보통관계 속에서
최선의 처세술에 가깝다.
어쩌면 이 책 속 '왜?'의 정의보다
삶을 위해선
'왜'를 '어떻게'로 대체하라는
그 논리가 더 필요할지 모르지만,
난 이 책의 '왜'를 분석한
그 필요성에 한표~
다음은 '무행동 따돌림'.
그냥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용어다.
하지만, 듣다보면 이해못할 부분이 전혀 없고
일상에서 충분히 봐 봤음직할
상황과 그것들에 관한 연구다.
윌리엄스란 심리학자가 공원에서 쉬고 있었다.
3명의 남자가 다가와 같이 원반던지기를 하자고 제안해
그는 그들과 함께 그 놀이에 동참했다.
그런데 점점 윌리엄스는 그 놀이에서 배제되어 갔다.
처음엔 그냥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싶었지만
확실히 3명끼리 던지는 원반놀이에 자신은
어느 순간부터 확실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의 기분 나빠짐에 의문을 가졌다.
그 3명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굳이 정리하자면 '투명인간 취급'을 한게 다였고,
자신도 그리 꼭 하고 싶던 놀이도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알고 싶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기분이 나빠진 걸까?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니,
공격적 행동에 대한 논문은 많았지만
이런 대꾸하지 않는 식의
따돌림을 다룬 연구는 없어서,
무행동으로 인한 소외감을
본인이 직접 연구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실험이 설계됐고,
공평하게 주고받던 공을 어느 순간부터
한명에게만 주지 않고 다른 이에게만 주게 만들었다.
소외된 당사자는 점점 침울해졌고
이런 상황이 2분 정도만 지속됐더라도
당사자는 상당한 심리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험결과엔 설문조사와 뇌MRI도 사용됐는데,
그리 측정된 심리적 고통값도 같은 결과를 암시햇다.
무행동 따돌림을 감지한 당사자는,
그게 의도적이었던 아니던,
또는 정당하던 그렇지 않았던,
자신의 처지를 감지하는 즉시 고통에 빠졌다.
그게 지속적이지 않은 일시적인 거라 할지라도
무행동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예상수준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심리적 타격을 받았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한다.
왜? 무행동 따돌림은 스트레스를 주는 걸까?
자신과 말을 섞지 않거나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을 뿐,
때렸거나 말로 괴롭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따돌림 당하는 피해자가 따돌림에 대응할
적절한 방도가 없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즉 '자구책'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구할 수 없는 막막한 심정.
누군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힌다면
당사자는 반박하거나 대처할 기회가 있다.
그것에 대응할 수도 있다면,
피해당사자는 자신의 고통을 알리고
가해자에게도 알리거나 되돌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무행동 따돌림은
소리치고 반발하거나 반박하기엔
너무 사소한 행동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기분 나쁜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딱히 반응도 못한 채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부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인간은 따돌림을 당하면
슬픔, 헛갈림(자기확신의 저하), 무력감, 수치심 등이
'뒤섞인' 감정으로 느껴진다고 본다.
그렇기에 같이 놀다가 소외됐던 윌리엄스도
그냥 서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우두커니 생각했어야 됐듯이 말이다.
무행동 따돌림은,
가해자들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으며
실제 당사자들 이외에는
제3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거기에 좀 넌센스인 추가 실험도 더해졌는데
이런 따돌림을 당하는 대신
경제적 보상을 줬을 경우다.
결과는, 따돌림 당함으로 느낀 절망감은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이라
이성적으로는 이해한 경제적 이득과는 별개로
당한 당사자에겐 동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실험을 확대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가 아닌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따돌림을 느낀다면
좀 정도가 다를까도 실험했는데,
본능적으로 심리적 상처는 동일하게 입었다.
미운오리새끼란 동화에선
집단 안에서 확연히 다른 구성원이
미움받고 따돌림 당하다가 끝내는 내쳐진다.
그리 된 당사자는,
자신을 받아 줄 집단을 찾지 못한다면
혼자 살아가야 하고 끝내 생의 고비를 맞고.
하지만, 동화는 해피앤딩이였다.
정리임에도 많이 길어졌는데
정확한 전달을 위해선 아직 많이 남았지만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겠다.
결국, 무행동 따돌림을 당한 이는
오랫동안 자신을 탓한다.
뭔가 모자랐고 부족해서 겪었는지 모른다고.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존감 하락을 자초한다.
이유를 알기라도 하면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뭐라도 할 수가 있고,
물어서 적절한 이유를 듣고 수정 가능하다면
다시 집단구성원이 될 희망도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오히려 피해당사자를 면박하고
그런적 없는데 왜 그러냐라던가
그냥 이유는 없다라고만 답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집단에서 나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당신을 도와줄 생각이 없는 집단이니까...'
여러 굵은 주제들이 섞인 책이니
좀 길게 소개한 이런 이야기들도
실린 집단심리들 중 한가지다.
이보다 더 적게 더 많이 실린건 아니고
여러가지가 이야기들이 적절한 분량에서
끝을 맺고 있다는 것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