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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IT 디스 이즈 잇
얀 케르쇼트 지음, 방기호 옮김 / 씨아이알(CIR) / 2024년 7월
평점 :
책본문 자체로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내가 이 책에 정을 두고 읽게 해준 건
오히려 역자인 방기호의 여는 글과 닫는 글이었다.
역자가 옮긴 책에 글을 2개나 실은 걸 보는 건 처음이다.
보통 저자의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는 있어도 말이다.
역자의 수련의 시절,
담당교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한계를 설명하면서
그 구분을 둘 수 있는 가장 근접점을 묻는다.
사실, 몇cm까지 근접한 걸
볼 수 있는냐는 질문이 아닌
눈이 더이상 물리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대상을 바라보는 두뇌의 힘으로
눈을 떠난 인식(consciousness)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설명.
헌데 여기서 의문.
이 인식과 awareness가 뜻하는 인식은
비이원론과 비이분법에서 쓰는 인식과
많이 다른 것일까.
우선, 책 제목인 디스 이즈 잇(This is it)을 살펴보자.
이또한 역자의 글 속에서 본문에서보다 힌트를 얻게 됐는데
역자는 안다는 거 모른다는 거 모두가 틀렸다 하지만
힌트를 얻은 정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
이것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디스 이즈 잇'
이건 존재의 인식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장.
그냥 직역하면 '이것은 그것이다'가 될만 하다.
하지만, 비이원론 입장에 서서
이 한 문장 뜻에 접근에 보자면
앞선 This와 뒤의 it은 같은 대칭적인 대명사가 아니다.
This를 역자는 '바로' 정도의 지시대명사로 활용해
뒤의 it을 바라보는 '눈' 또는 '시선' 정도의 구실로 해석했다.
즉, 비이원론적 입장에서
모든 건 하나를 뜻하기에,
자신이 자신을 본다는 말은 논리상 맞지 않다.
A=B라는 이분법이 아닌
A=A라는 비이원론적 뜻이 통하기 위해선,
이 2개의 A는 같은 A를 뜻함도 아니고
그저 A가 스스로 A임을 인식하는
그 정도의 수준을 등호(=)가 화살표처럼 가리키는 역할.
20년이 넘은 예전 에크하르트 툴레와
저자의 대담 속에서 인상적이던 구절이 있다.
발현(Manifestation)을 이야기 하며
인식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
존재, 즉 'being을 뜻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가 가장 대중적인 설명이자 경험담으로 느껴져서다.
저마다 다른 느낌을 이야기 할 때
그걸 바라보며 참고해야 하는 입장에선,
기존에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하며 느꼈던 존재와
다른 자신을 인식했다는게 무엇인지
부드럽게 이해식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마음에 드는 에크하르트 툴레의 설명이 이어진다.
특히, 발현이란 단어가 주는 우연성 느낌이 쉽게 와 닿으면서.
역자의 이야기를 또 안할 수 없는데,
결국, 모든 건 부질없다는 듯 들리기도 했지만
선을 통해서건 명상을 통해서건 종교를 통해서건
무엇을 쫒는다는 건 의미없는 목적추구라 설명하며,
이 설명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여 봤을 땐
나 스스로가 한마리 말이 되어
눈 앞에 매달려진 당근을 쫓아 뛰니
결국 나와 당근은 같이 뛰고 있는,
즉, 당근을 쫓으려 뛴게 아니라
뛰고 있는 나란 존재는 이미 당근 뒤에 있는데
나란 말이 계속 참나를 찾고 있는 듯 느껴지는 설명 같았다.
이 책은 정답이 있지 않기에
각자의 느낌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책을 읽으며 가질 수 있는 시간은
각자의 '각성'이 되어주리라 추측은 된다.
단정적인 말을 자꾸 피하게 되는 건
깨달음은 없다는 책이 내건
애초의 명제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좋은 것을 얻었다고 믿음을 갖게 되는 이유는,
비이원론을 파고 들어가는게 황당무개하게 느낄 순 있어도
그 '존재'하는 대상을 설명하는게 어려워서 생기는 느낌 띠문같지
부정하지 못할 단순명료한 핵심은 줄곧 느껴지기 때문.
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운다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