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이랑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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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 겨울밤, 

도서관의 여러 책들 중 한권을 빼 들었다.

유독 이웃한 책들보다 얇고 낡았었지만,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잘 시간도 많이 뺏기지 않을

적절한 분량인 것도 이유였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추운 겨울날, 

구두 만드는 노인은 지나가다

벌거벗고 쓰러져 있던 젊은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젊은이는 그날의 식사를 마치고 한번,

1년 후에 건장한 남자의 슬리퍼를 만들고 한번,

다시 5년 후에 쌍둥이 신발 의뢰를 받고 한번,

이렇게 총 3번의 웃음을 보이고

천사로 변해 하늘로 날아간다.


인간세상에서 풀어야 했던

3가지 수수께끼를 이해한 후

다시 천사로 변해 돌아가는 

극히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3가지 수수께끼의 답들은

듣는 인간의 입장에서 

하늘의 시선과 인간적인 판단력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만드는 소재였다.


대문호 톨스토이라면 

더 어렵고 긴 글로만

만나야 하는 인물 같았건만,

이 단편으로 오히려 그가 왜 오래 기억되고 

작품들은 숭고하게 느껴지는지 느껴볼 수 있었다.


3가지 질문은

인간의 마음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로

천사는 매 질문의 답을 알때마다 웃음을 짓는다.


예전 책으로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이 책으로 다시 같은 작품을 읽으니

전과 다른 감성의 나를 만나보며

예전 기억속에선 애매했던 

책속의 답을 확인해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예전 책에선, 

3번째 문제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묘하게 이해되지 않게 쓰여 있었다.

몇번 다시 읽어 봐도

잘 이해되지 않던 그 느낌만 기억한다.


또, 천사 미하엘이 하늘로 돌아갈 때,

예전 책에선 부부가 그 모습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지만,

이 책에선 지붕이 갈라지며 사라지고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집은 그대로 있더란 

이야기로 끝을 맺는게 달랐다.


왠지 진짜 앤딩은,

감동을 받은 부부의 모습이 아닌

이 책의 이야기가 원본같다.

다만, 예전 책의 역자는 

원작에 손을 대고 싶었다기 보단

하나님의 영성을 더 배가시킬

각색된 엔딩을 원했을진 모르겠다 싶다.


다시 같은 소설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포인트가 달라져 있음은,

지난 시간들과 현재의 시간의 차이를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책제목이기도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은

예전 책보다 이번에 더 정확한 내용으로 알게 됐다.


3번째 답은 1번째 답과 사실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들도 죽을 운명의 곤궁한 부부,

남편은 비참한 심정에 걷고 있던 중에도

지나치기긴 양심에 걸려 

쓰러진 젊은이를 살리려 되돌아 왔고,

부인은 자신들이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집으로 군식구가 들어온 상황인데

설명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날 저녁을 나눠 먹는다.

천사는 이 부부의 죽을 운명이

자신을 구함으로써 바뀌었다느니,

하느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새인생의 계기라느니

이런 식의 시시콜콜한 설명을 달진 않았지만,

충분히 부부 스스로에게도 

기적은 일어났음을 이해하게 한다.


그 상황에서 천사 미카엘은

1번째 답은 인간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이라 느낀다.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나눠주는 그 마음,

그것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인 그.


책과 다르게, 2번째를 건너뛰고 

1번째와 이어지는 3번째 질문으로...


천사는 죽어가던 쌍둥이 친모를 만나고

측은지심에 차마 하늘로 데려오지 못했다.

하나님은 재차 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3가지 질문들을 하사했다.

결국, 쌍둥이 엄마는 하늘로 

천사는 도중에 날개가 꺾여 추락하며

우연히 부부와 인연이 닿는다.


자신이 가면 아이가 죽으리란 엄마를 외면못한 천사는,

날개가 꺾여 떨어진 지상의 삶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했고

천사마저도 걱정하던 홀로 남게 된 쌍둥이는 

이웃여자의 양녀가 되어

손님으로써 천사의 구두방에 방문하게 된다.


천사는 부부에게 말해준다.

사람 모두의 마음엔 '사랑'이 있다고.

하지만, 서로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사랑으로 사는 삶이 아닌

서로의 사랑으로 같이 살아가는 그런 사랑의 형태라고.

그리고 사람안에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인 거라고.


1번과 3번 질문이 더 성찰적이었건만

내겐 2번째 질문이 좀더 

현실적이고 심란한 느낌을 준다.


건장하고 혈색좋은 남자.

직접 구한 최상급 가죽을 맡기며

오랫동안 신어도 수선이 필요없을

장화를 제대로 만들라고 당부에 당부를 한다.

천사의 실력에 의심과 검토도 하면서.


하지만, 천사는 가죽으로 슬리퍼를 만들고 마는데

부인은 사고 같아 마음을 졸이지만 

미카엘을 믿고 내버려 둔다.


결국, 건장한 남자의 하인이

슬리퍼가 완성된 직후 방문하여,

돌아가던 마차 안에서 남자가 급사했고

이젠 장화가 아닌 장례용 슬리퍼가 필요하니

장화 대신 만들어달라며 기존의뢰를 수정한다.


죽은 남자..,


좋은 덩치에 종아리는 일반 성인 둘레보다

훨씬 두꺼운 근육질의 남자였다.

부도 쌓았고 일처리도 꼼꼼하며 

자신이 사용히게 될 것엔

내구성 있게 분명한 품질로

확실한 결과로써 탄생되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받던 그.


그는 죽었다.


그의 뒤에 죽음의 천사가 서있었던 건

오직 천사 미카엘만 볼 수 있었고.


천사는 이 남자의 선택에서

자신이 알아야 할 2번째 답을 발견한다.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스스로 뭔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예견할 수 없는 운명의 인간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채 살아가야 하며,

서로 어우러져 각자의 사랑으로 상대를 대하며

그 유대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 하느님의 이유,

그게 천사가 이해한

인간에게 부족함을 심어놓은 이유였다.

부족함으로 하나되어 

서로의 부족함을 보상해주며 살라는.


예전엔 각 질문과 각각의 답이 따로 같았는데

이 책에선 모든 질문과 답이 서로 엉켜있는듯 느껴진다.


재밌다고 해야할까, 감동이라고 해야할까.

천사가 떠난건 지금이나 그때나 슬퍼진다.

헤어짐은 슬프다.


천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인간 부부는 남았지만,

6년의 시간을 천사와 사는 경험을 한 그들인데

천사없이 그들만이 홀로 남은 상황이 애처로웠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이런 은유적인 메세지들을 담은 작품들이다.

모두 좋았고, 짧은 호흡의 단편들이지만

톨스토이만의 느낌은 느껴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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