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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 소설은 한 사람을 알게 하는데 그게 나일 수 있다
이정일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2월
평점 :
읽다보면 성경과 연관해 사고해야 할 부분들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이 책을
종교적으로 더 읽고 싶었던 어떤 사람들은
좀 아쉽거나 다른 의미일 거 같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이 표현이 완전하게 맞진 않을 수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면
너무 정확하게 성경 구절 하나하나나
성경이란 책 자체만을 읽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가장 많이 읽혀지고 팔리는 책이란 성경을
누구라도 좀더 잘 받아들이기 위한 학습적 보조수단이자,
정서의 바탕을 키울 수 있는 방법적 모색으로
이같은 컨셉의 책이 충분히 나올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하는게 맞는거 같으니까.
어쨌든 하나 더,
책의 어떤 내용이나 방향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저자의 글쓰는 솜씨가 근래 읽은
어떤 저자의 책들 보다도
매 문장들마다 많은 정보와 감정들이
놀라울 정도로 담겨있다는 점은 놀랍다.
뒤로 갈수록 조금 그 힘이 빠지기는 하지만.
어느 부분은 그냥 따라 읽었고
어느 부분은 나와는 다른 관점을 들여다 보며 읽었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변신'를 읽은 오에 겐자부로를 논하며 시작하는
이 책을 소개했던 부분에서는,
그가 이 책을 여러번 재독을 했다고 소개하며
총 3번 읽었는데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하더라를 설명한다.
1번째는 있는 그대로의 벌레로 변해버린
비상식적인 상황 자체를 우화적으로 이해했었고,
2번째는 실직한 이가 겪는
무시당함이란 측면이 크게 다가왔으며,
3번째 읽었을 땐,
가족 속에서 마저 소외되어 가는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이는, 실생활에 존재하는 의식주 문제와 연결지어
기본적인게 어려울 때 그래도
존엄있게 살아갈 방법은 없는가란 고민을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처치에 이입해
대리적인 고민을 했던거 같이 묘사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리 생각했다면 이 책의 저자는,
점차 주인공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냉정하고 적대적으로 변해갔음에 주목했고
그의 최후까지 그런 자신의 느낌을 적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고 실직한 후
어느 정도까지는 가족들은 그를 식구로 대한다.
벌레가 된 그를 대신해 청소나 식사를 챙겨주면서.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모든 식구들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향해
어서 죽기를 바라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에 대해,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벌레 그레고르지만
일정부분 분노도 느끼는 동시에
자기 대신 일하는 아버지란 생각으로
그런 자신의 생각에 기대 미안함을 가진다.
고단한 일상에 지쳐 옷을 입은 채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죽는데
그가 안타깝게 묘사한 자신만 빠진 집안은 오히려 화기애애.
죽은 아들 대신 건강한 딸을 보며 희망을 찾기가지 하면서.
저자는 이를 인간의 모순된 행보라 봤다.
이런 태도를 보인 가족들을 가여운 인간들이라 봤으며
대체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생각하야 하는가를
고민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보여진다.
책은 이렇게 여러 소설들이나 영화들에 대해
저자의 소회들을 적는게 많고 거기에
신앙적인 면으로 확장해 좀더 생각들을 공유한다.
위의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을 땐,
저자가 말한 대부분의 말들에 분명 공감이 됐다.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를 하는 것과 더불어서.
하지만, 한가지 더 평소 이 책의
중요한 모티브로 생각했던 장면을
하나의 생각꺼리로 더 넣어보고 생각해 봤다면
어땠을까가 상상하게 된다.
그레고르는 말그대로 결국 죽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자연사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에 가까웠다.
가족이 벌레가 된 그의 존재에 화가 나서
어느 날 먹다 던진 사과가 몸에 꽂혀
염증이 생겨 죽은 샘이었으니까.
아마, 소설 원전을 다 읽지 못하고
이 책만으로도 충분이 이 작품이 풍기는 개요는
잘 와닿았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작가였다면 구원되지 못한
벌레인간의 죽음에 좀더
성경적 의미를 해석해 봤으면 싶었고,
사라져 주었으면 바라는 천한 대상으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이 벌레인간 자체의 고단한 삶과,
반대로 동정심은 풍부했고 사람이었을 동안은
가장으로 역할을 다 하려 했던 그런 면들을,
뭔가 부족했던 인생의 뒤안 길을
성경적 구원과 결부시켜
들여다 봤다면 좋았을 작품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다양한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책이 여러번 등장하는 경우도 있기에,
만일 어떤 책은 원래 유독 좋아했던 책이었다면
본인의 취향에 더 맞을수도 있을테니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겠다 싶다.
하물며 연쇄살인을 다룬 '양들의 침묵' 같은 책도
범인과 수사관이 서로 성격을 파악해 가는 측면으로 소개하면서,
독자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심리를
더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키울 수 있다고 소개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이런 스릴러 소설류를 읽음으로써
무작위 적으로 던져주는 책속 실마리들을
각자가 재밌게 읽는 동시에 추리해 나아가야 내용이 정리되기에
이해의 몫은 독자의 몫이라는 면을 결합시키면서
스릴러 소설의 플롯이 가진 책읽기의 묘미와
성경이해를 결부시켜 설명을 해놨다.
소개된 책들만으로 본다면 내 경우엔
이렇게 여러번 등장한 책들 중엔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언급들이 좋았다.
평소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사고를
여러 정보들과 버무려 압축적으로 써 내려간 책들 중,
어떤 작가의 책들은 읽기 힘들고 싫어지는 책들도 있었다.
사고의 궤적이 나랑 다른 누군가의 일기 같아서.
그런데 이 책은 나름 즐거움이 컸다.
아마 일정부분 내면적 동질감도 작용했거나 컸을지 모르고.
요즘 이 책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꾸 성경이 읽고 싶어지던데,
여전히, 진짜 내가 그 마음을
제대로 실천에 옮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