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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평점 :
《논어》 <팔일>에서 공자는 “관저는 즐거울 때도 지나치지 않는 낙이불음(樂而不淫)과 슬플 때도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지 않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의 대표작이다.”라고 했다.
관저關雎
關關雎鳩 끼룩끼룩 물수리는
在河之洲 황하의 강섬에서 울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君子好逑 임의 좋은 짝이지
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 풀을
左右流之 이리저리 헤치며 찾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寤寐求之 자나 깨나 구하지
求之不得 찾아도 찾을 길 없어
寤寐思服 자나 깨나 생각하지
悠哉悠哉 끝없는 그리움에
輾轉反側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지
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 풀을
左右采之 이리저리 헤치며 뜯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琴瑟友之 금슬 좋게 사귀지
……
《시경(詩經)》의 <관저(關雎)>에서 애이불상(哀而不傷)을 말하는 공자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애이불상은 슬픈 기운을 더 진하게 한다. 이 시와 공자의 감상은 먹먹하게 하는 애상(哀傷)으로 다가왔다.
아이다의 첫 번째 편지에서 나는 이 애이불상(哀而不傷)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이 소설은 ‘이중종신형’을 받고 수감되어있는 연인 사비에르에게 보낸 아이다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종신형’은 감옥 안에서 죽어도 시신을 돌려주지 않는 형벌이다. 시위와 소요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비에르는 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이 형을 받았음을 추측하게 된다. 아이다는 사비에르와 결혼한 관계가 아니어서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는 사비에르와의 결혼을 정부에 신청해보지만 거듭 거절당한다.
첫 번째 편지에서 아이다는 사비에르를 “나의 엎드린 사자”라고 부른다. “오늘 일어나 보니 하늘이 파랬어요. 멀리서 당나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가까이에서는 시멘트를 섞는 삽질소리가 났어요”라고 말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 몸을 비틀며 기어내려 오는 카멜레온의 모습을 관능적인 느낌으로 전달하며, 카멜레온은 그리스어로 ‘엎드린 사자’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부재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전하고 있어서였다.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편지는 일상과 사건들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절제된 그리움이 절절히 전해진다. 내가 관저와 애이불상을 떠올린 이유일 것이다.
사비에르는 이 편지를 읽고 그녀의 그리움을 느꼈을 텐데, 편지 뒷면에 남긴 그의 메모는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비판하는 내용뿐이다.
“십억 명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식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 리터의 물이 브라질의 어떤 지역에서는 일 리터의 우유보다 더 비싸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일 리터의 휘발유보다 더 비싸다. 같은 시각, ‘보티아 앤드 엔스’사(社)가 소유하고 있는 두 개의 펄프 제지공장에서는 우루과이 강에서 하루 팔천육백만 리터의 물을 끌어와 쓸 예정이다.”(19p)
애써 외면하려는 것일까? 감정에 젖어들 수 없다는 다짐처럼 보인다. 만져 볼 수도 안을 수도 없는 몸의 상황이 선명해져서 더욱 슬프다. 죽음으로도 만질 수 없는 몸! 그를 사랑하는 그녀에게도 형벌이다. 이렇게 편지 뒷장에 남긴 사비에르의 메모는 그의 사상과 투쟁을 짐작하게 한다.
아이다는 그녀의 몸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래서 더욱 의지를 갖게 됨을 전하고 있다.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것 그뿐이 아니에요.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 그들이 당신에게 이중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40p)
약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든 일상은 사비에르의 부재를 지시하고 있다. 총을 맞고 찾아온 소년을 치료하다가, 길을 걷고 식료품을 사다가, 콩깍지를 까다가, …… 그의 부재와 그리움에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편지를 한 장 한 장 읽다가 나는 결국 뜨거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비에르도 그랬을까?
“나는 가만히 지켜봐요. 내가 무얼 지켜보는지 알아요? 나는 거친 혀로 자신을 깔끔히 단장하는 당신의 부재를 보는 거예요.” (155p)
고양이가 몸을 단장하는 모습에서 그의 부재를 본다는 그녀의 모든 시간 모든 사건은 그리움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가슴이 저렸다.
앞부분 그녀의 편지에서 느껴졌던 담담한 그리움은 쌓인 흐느낌으로,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신념의 다짐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슬픔의 깊이를 드러낼 뿐이다. 그의 손, 말투, 태도, 표정, 음성, 함께 비행하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면서 그녀는 그런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후 이어지는 편지들에 손을 그려넣고 그를 만지고 싶어 하는 자신의 손이라고 한다. 그저 갈비뼈 움푹한 곳의 서늘함이라 했던 부재의 느낌은, 몸에 닿지 못한 손의 저릿함으로부터 밀려오는 뜨거운 눈물로 폭발하게 되고,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편지의 마침 인사는 ‘당신의 아이다’에서 ‘세월에 점점 쫓기고 있는, 그리고 당신의 아이다’, ‘당신의 영원한 아이다’로 변해간다.
사비에르의 메모도 그리움을 차츰 드러낸다.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
- 나는 단지 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것뿐이죠.
나는 단지 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 ”(67p)
“가끔은 그 사이의 시간을 분간하는 게 어려워요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게
당신은 내 마음의 장미-
어젯밤 들은 조니 캐시의 노래….
당신이 지쳤다면 내 품에 기대요
내 마음의 장미” (113p)
노래 가사로 눌러왔던 그리움을 비치는 사비에르의 글 때문에 울었다. 그의 셔츠를 다리고 그 옷을 입는 그를 상상하는 아이다, 몸을 받아들인 지각과 그 이미지가 존재하는 정신으로 그의 존재를 더듬는 아이다에게 그는 드디어 짧은 문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적는다.
“이레네. 잘 자요. 꿈속에서 당신을 가질테니….”(189p)
이 문장을 옮겨 적으며 나는 또 울고 있다. 죽은 몸으로도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두 사람은 꿈속에서 길을 찾는다.
편지 뒤에 쓴 사비에르의 메모가 없었더라면 이 소설의 감동은 덜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 더미를 딛고 올라가 창틀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는 그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맞춰 밖으로 행진해가는 수인들의 행렬을 상상한다. 그의 짧은 글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고 여전히 신념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하는 자신과의 투쟁을 엿보게 된다. 자신의 잠 속 집으로 찾아오라는 아이다의 편지 뒷면에 “오늘밤의 탈출경로”라는 제목의 낙서(그림)로 이 소설은 마치고 있다. 존 버거의 말처럼 사비에르와 아이다 두 사람이 어디에서든 무사히 함께 하길 빌어본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작가도 서문에서 실제로 입수한 편지인지 아니면 온전히 창작에 의한 것인지 밝혀주지 않는다. 읽다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이 362평방 킬로미터의 감옥 가자지구를 연상하게 한다. 존 버거의 가자지구에서 활동과도 연관되기도 한다. 부재, 그것은 자연스러운 부재가 아니었고, 권력에 의한 강제였다. 몸을 구속하는 권력과 그에 저항하는 사랑을 작가는 탁월한 구성으로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