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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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나쁜 기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206p) 괴로워하는 신디 쿰스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기도 올리브의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잭과 결혼한 조금 더 나이든 올리브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알아본다. 그들을 찾아가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지나치며 너 캘러헌 씨 딸이더구나.…… 좋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유감이구나.”(84p)라고 하는 짧은 말로 케일리에게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따금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올리브는 전 남편 헨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한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면 다 후회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전보다 더 말이 많아지고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신디처럼 항암치료를 하며 회복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죽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 그건 사실이야.”(206p) 올리브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녀가 공감하고 위로하는 방법이다.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본 노년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 키터리지는 큰 몸집으로 나타나 잊지 못할 위로를 남긴다. 삶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면서 그녀는 타인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간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2월과 3월 그리고 여름과 가을의 햇볕의 차이를 아는 것이 바로 인생의 황혼이라는 생각이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쳤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224p)

 

신디와의 대화, 그리고 신디가 잊지 못할 이 광경, 올리브가 자신이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외침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느꼈다.

 

잭과의 결혼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212p) 이라고 말한 것처럼, 잭의 죽음과 홀로됨, 심장마비,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입주도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계절이 바뀌고 그때마다 빛이 달라지듯 삶이 변화해가는 것이다. 여전히 올리브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탐조등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낸다. 점점 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탐사하듯 대화를 이끌어간다. 사람들은 그 대화 속에서 외로움 불안 상처를 드러내고, 위로를 받고,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는다.

 

그녀 스스로도 잭에게서 신디에게서 이저벨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잭은 올리브에게 당신 기분 좋게 만드는 건 참 쉽구나”(244p) 라고 말한다. 그렇게 쉽게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 반면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를 때가 많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459p)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459p)고 생각한다. 늦은 건 늦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나쁜 기억 한 두 개쯤은 끌어안고 살아가니까. 헨리를 보내고 잭과 결혼한 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 올리브가 가장 올리브다울 때다. 작은 친절에도 기분 좋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 올리브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가고 노화를 겪으며 죽음에 가까이 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서툰 일이다. 거듭되는 상실 역시 반복된다고 해서 적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누구의 간섭도 싫어했던 올리브가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을 보며 나이 들며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며 헨리를 외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 그녀가 끓어안고 가야할 나쁜 기억일 테다.

 

나의 노년은 몇 월의 햇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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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5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은 가을 9월의 빛^^

그레이스 2021-12-05 18:54   좋아요 5 | URL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1-12-05 19: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처럼 열정적인 분에게는 항상 햇빛이 가득한 5월일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12-05 19:34   좋아요 5 | URL
열정적으로 봐주시니 😊 감사

얄라알라 2021-12-05 19: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축언을 받고싶습니다!!!! 열정과 5월 너무 잘 어울립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2-05 19:36   좋아요 3 | URL
ㅎㅎ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12-05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가 다시 지웠다가, 또 썼다가 또다시 지우면서
아, 난 아직 이 작품에 대해서 토를 달 정도는 아니야, 파바박, 알아차립니다. ^^;;;

그레이스 2021-12-05 20:26   좋아요 3 | URL
댓글을 썼다 지웠다 하신 이유가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얼른 폴스타프님 서재로 가서 다시 리뷰 읽고 왔습니다^^

그레이스 2021-12-06 07:13   좋아요 1 | URL
아직 노년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라는 뜻이겠죠??^^

Falstaff 2021-12-06 08:58   좋아요 1 | URL
니옙. 그렇습니까. 아직은 뭐. ㅋㅋㅋㅋ

다락방 2021-12-05 2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엔 2월의 햇빛을 그냥 넘겼거든요. 재독에서야 비로소 2월의 햇빛이 훅 들어왔고 여전히 다시 올리브, 는 2월의 햇빛으로 기억돼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지점이 많지만 2월의 햇빛으로 마무리 짓는 그 단편에서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그레이스 2021-12-05 21:08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mini74 2021-12-05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강아지가 거실에 누워 자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에 따라 조금씩 장소가 바뀌어요. 햇빛 찾아가는 중인거죠 ㅎㅎㅎ 그레이스님의 노년, 몇 월일진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따땃하길 바라봅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1-12-05 22:11   좋아요 3 | URL
강아지^^

scott 2021-12-07 21:00   좋아요 2 | URL
햇살이 몸에 좋은 거 아는 똘망이!
૮ ฅ•ᴥ•აฅ

페크pek0501 2021-12-06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를 좋아합니다. 이 책도 구매하려 했는데 놓쳤어요. ^^

그레이스 2021-12-06 16:38   좋아요 3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좋아하시면 이 책도 좋아하실거예요^^

희선 2021-12-09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는 나이 들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고 달라졌네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있기 좋아했다고 하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았겠습니다 올리브뿐 아니라 올리브를 만난 사람도 전보다 나아졌을 듯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2-09 06:30   좋아요 2 | URL
예~
희선님 ~♡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12-14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즉 읽었지만, 그레이스님 서평 보고나니 더더욱 따스한 느낌이 들어요^^

그레이스 2021-12-14 2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