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개정판 손철주의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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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를 감동시킨 것이 피카소였던가, 아니면 피카소품이었던가?"(251-251쪽)

 

  내가 늘 가는 카페에서 빌린 이 책은 두께에 비해 그림이 많고 그림과 작가에 얽힌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생각보다 술술 읽혀 내려갔다. 그림에 반하고, 내용에 재미 들려 읽다 보니 어느새 한참이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시인,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화가들 중에 독특하다 못해 일반인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다 간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중 여러 장이 미성년자가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림들이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으로 용인되는 참 희한한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것의 정도가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부터가 용납 못할 부분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한때 대학에서 졸업작품까지 그려 냈지만 졸업 후 다 접고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인양 살았는데 이제는 미술에 다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을 알게 되고, 작가를 알게 되면 그림 보는 눈이 높아지려나? 이 책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숨어 있던 작품들까지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작가들 중에 사회현상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내가 나이 든 언젠가 그림으로도 나를 표현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림 설명을 하는데도 딱딱하지 않고 이해가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을 구사하고 있다. 많은 책을 읽고 사색했나보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

 

 

 

 

 

 

 

 

 

 

 

 

 

 

 

 

 

 

 

 

 

 

 

 

 

 

 

 

 

 

 

 

 

 

 

김기창, <정청> 1934년, 종이에 채색 -귀머거리 소년 화가에게 어머니의 체온을 전했던 소제, 쥘부채로 앞섶을 가린 채 숨죽이며 앉아 있다.(21쪽)

 

 

 

 

 

 

 

 

 

 

 

 

 

 

 

 

 

 

 

 

 

 

 

파이크 코흐, <슬럼 랩소디>, 1929년, 캔버스에 유채-네덜란드 출신 화가 코흐는 법률학도였으나 미술에 반해 길을 바꿨다. 그는 일상의 느닷없는 사물들을 병치하는마술적 사실주의를 옹호했다.(100쪽)

 

아르망, <장기 주차>, 1982년 쉰다섯 대의 자동차와 1천 6백톤의 시멘트-콘크리트로 고정시켜 쌓아 올린 자동차는 끈끈이주걱에 붙들린 벌레 신세처럼 보인다.(113쪽)

(그는 무려 자동차 쉰 다섯 대를 19.5미터 높이로 층층이 쌓아올렸다. 그것도 뷰익, 르노, 시트로앵 등 각 차종이 골고루 섞였다.)

 

 

 

 

 

 

 

 

 

 

 

 

 

 

 

 

 

 

 

 

 

남계우, ㅡ화접도> 19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나비의 날갯짓을 모두 다르게 그렸다. 너무나 꼼꼼하게 그려 실재하는 것과 달리 몽환적으로 보인다. 서구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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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 - 살아온 삶에 깊이를 더하라
와시다 고야타 지음, 김욱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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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저자는 여러 권의 책을 쓴 경험을 통해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들에게 책을 쓸 것을 권유하고 있다. 책 쓰기는 흥분되는 경험인 동시에 노동의 일종이며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놓은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기까지의 감정 상태를 리얼하게 그려놓은 점이 흥미롭다. 작가들이 책을 낸 후에는 무조건 기쁘고 즐거울 줄만 알았던 나에게 책을 낸 후 찾아오는 허탈감이나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질리는 것 등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후에 다른 저자들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 다른 책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생각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난 후 그 책을 다시 보았을 때 ‘어떻게 이런 훌륭한 글을 썼을까?’ 한다는 것이 그래도 인생에 헛된 경험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책을 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이야기이다.

 

  책을 낸 후에는 그것이 자신의 ‘분신’이라 하더라도 그 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하고 싶다. 그러지 못할 때 그 책이 오히려 저자에게 오래도록 남아 고통을 준다고 한다.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스스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춰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 하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은퇴 후 서재를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설명과 구체적인 의견은 일본사람 특유의 ‘~하는 법’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정말 책을 준비하고, 책을 쓰고, 책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거치는 느낌이 든다.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자 하는 꿈을 가진 분들이라면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본문 내용---

 

- 책을 출판하겠다는 생각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도 어느 정도 분량이 완성되면 자신의 글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높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출판을 목표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출판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글쓰기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는 일이다. 좋은 문장들은 숙련 속에서 나온다. 당신이 좋은 문장들을 많이 구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출판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써라. 이것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첫 번째 메시지다.(9쪽 서문)

 

-내가 처음 책을 썼을 때 준비기간을 제외하고 집필하는 데만 꼬박 반년이 걸렸다. 반년간의 긴장과 흥분에서 벗어나 평소의 일상생활로 돌아오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는 동안은 고통스러움도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글쓰기만큼 사람을 집중시키는 일은 드물다. 집중된 시간 속에서 마음껏 생각을 펼쳐나가다 보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글쓰기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17쪽)

 

- 글을 잘 쓰려면 어느 정도는 훌륭한 문장들을 모방해봐야 한다. 일종의 글쓰기 기술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문장의 기초기술은 베끼는 데 있다. 문장을 문학작품의 글로 바꿔 말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모델을 잘 선정해야 한다. 형편없는 글을 모방하면 형편없는 문장밖에 쓰지 못한다.(29쪽)

 

- 저자는 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 저자의 인격은 책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냉정해 보일지 몰라도 이게 정답이다. 저자가 책과 너무 붙어 있으면 오해와 비판에 관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긴다.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스스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춰야 한다.(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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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실전적 문장비법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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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씨의 책은 어휘가 풍부하고 재치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비결이 스스로 만든 어휘사전을 통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어휘들을 채집해서 항목별로 모두 적고, 거기서 파생되는 관계어들까지 적어 두면 글을 쓰다가 한 번씩 들춰 보고 따 오기 좋을 것 같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글쓰기에는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허영심에서 쓴 글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심한 과장은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소설의 허구와는 구분된다. 소설이 허구이긴 하지만 진실한 작가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독자가 공감한다는 말이다. 

 

  그는 독자를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 한다. 독자의 취향을 맞추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시대 조류나 독자의 눈치만 보지 말고 작가가 진심으로 쓰고 싶은 글을 써서 시간이 지나도 외면당하지 않을 글을 쓰라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글쓰기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적 욕구를 가지고 창조의 고통을 이겨내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누구나 글씨기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글쓰기를 조금 더 잘 하기 위한 팁이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한다.

 

 

---본문  내용---

 

- 머릿속에 수많은 단어가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단어를 다루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우선 단어를 채집하는 일을 생활화해야 한다.(13)

 

-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 하더라도 재료가 부족하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낼 방도가 없다. 만약 그대가 오감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감각별로 하루에 최소한 열 개씩만 찾아서 노트에 정리해 두어도 일 년이 지나면 그대의 감성은 오뉴월 쑥대풀처럼 무성하게 자라오름을 의식할 것이다.(22)

 

- 어떤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다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의 단점을 부각시키려면 그것이 지닌 장점부터 파악해 놓아야 한다.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결정적인 단점이 있음을 지적해야만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단점이나 장점을 잡다하게 열거하는 것보다는 특징을 제시해서 한마디로 촌철살인하는 능력을 기르자(43-44)

 

-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다. 모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예술은 창조적 욕구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경우에도 창조적 욕구 없이는 예술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창조적 욕구만으로도 예술에 이르기는 힘들다. 창조적 욕구에 창조적 능력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남다른 시각부터 가져야 한다. 남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고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면 남들과 똑같은 글을 쓰게 된다. 그대가 남들과 다른 글을 쓰고 싶다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부터 가지도록 하라.(73)

 

- 어떻게 쓸 것인가 / 진실하게 써라. 글쓰기에는 무엇보다도 진실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재담가라도 자신이 감동받지 않은 소재로 타인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먼저 닫혀 있는 그대의 가슴부터 열어라. 진실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는 것이다. 감동도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써라.

 

- 설의법 / 질문의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대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질문이다.

번쩍거린다고 모두 금인가요.

인간이 벼멸구도 아닌데 농약을 먹어서야 쓰겠냐.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설득을 목적으로 할 때 자주 쓰이는 수사법이다. 질문이 합당한 이치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189)

 

-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창조된 허구다.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다르다. 사실은 마음 밖에 존재하는 실재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진실은 마음 안에 존재하는 감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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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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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에 대해 편견을 버리게 만든 [칼의 노래]를 쓴 김훈씨. 원래 기자였던 그는 주관이 너무나 뚜렷해 자신이 빠진 팩트만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보다. 여행가방에 책을 싸 들고 호텔에 칩거하며 읽어 내려갔던 그는 소설을 쓰고, 또 세설을 썼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쓰기 시작한 그의 작품들에는 그렇기에 오히려 삶의 고뇌와 고단함이 묻어 있어 읽는 이에게 거부할 수 없는 공감을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은 솔직하다. 그는 경험한 것 이상의 것들을 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의 멘토이다. 그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나 일부 묘사 방법적인 면에서 내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한 글을 쓰는 면을 배우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단어가 줄어든다고 한 그의 말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조심해서 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지..

 

  김훈의 관찰력은 독창적이다. 그는 여성의 탱크탑의 끈과 브라 끈을 가지고도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흘러내린 끈은 쳐다보지 못한다는 부분이 재미있다. 악기를 여성성에 비유한 것이라든가 아줌마에 대한 그의 관점, 그리고 마냥 즐기기만 하는 축구 경기 뒷면에 있는 축구공 꿰매는 아시아 저임금국 소년소녀의 이야기와 빛나는 골 뒤에 숨은 문지기들의 애환 등 그는 우리가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렇기에 신선하다. 나도 사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나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은 유머러스한 제목에다 크기가 다른 책에 비해 2/3정도인 이 책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혀질 거라고 생각하며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글의 무게는 다른 책들이 가진 무게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본문 내용---

 

- 악기는 인간의 몸의 일부로써만 작동한다. 인간의 몸이 아니면 그 악기로부터 소리를 끌어낼 수가 없다. 타악기는 팔의 일부이고 관악기는 호흡의 일부이며 건반악기, 현악기가 다 몸의 일부이고 성악은 몸 그 자체이다. 그래서 모든 악기는 인간의 몸과 친숙하게 사귈 수 있는 물리적 구조로 태어난다. 가야금, 거문고,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같은 현악기들은 인간의 몸에 안기기 편안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연주자는 악기를 안거나 무릎에 올려놓고 켠다. 그 악기의 구조는 여성성을 연상시킨다. 악기는 기계가 아니라, 몸 그 자체인 것이다.(17-18)

 

- 악기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구멍과 줄과 떨림판과 건반 어디에도 소리의 흔적은 없다. 악기는 소리의 집이지만, 소리는 그 집에서 살지 않는다. 소리는 어디에 있느냐, 소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죽느냐. 나는 소리의 거처를 알지 못한다. 그 거처를 알지 못하지만, 소리는 악기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 사이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문질러야 소리가 나오고 불어야 소리가 나오고, 손가락을 놀려서 바람구멍을 막고 열어야 소리는 춤을 춘다. 소리의 춤은 아날로그의 춤이다.(19)

 

-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37)

 

- 세월은 무자비한 불도저처럼 인간의 얼굴을 밟고 지나간다. 아무도 그 불도저의 궤도 자국을 피할 수는 없다. 늙음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이지만, 그 자연현상은 사회적인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노인은 배척받고 소외돼야 마땅한 혐오스러운 인종쯤으로 여겨지고 있다.(39) - 늙기란 힘든 사업이다

 

- 자전거는 땅 위의 바퀴다. 자전거는 갯벌을 지나서 물 위로 갈 수 없다. 자전거는 늘 갯벌에서 멈춘다. 그리고는 갈 수 없는 먼 바다를 다만 바라본다.(171) - 자전거에서 내려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연어들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을 준 몸을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이 끝없는 생명의 반복인 무명과 보시(죽은 후 다른 물고기에게 먹히는 것)는 인연이고, 그 인연은 세상의 찬란한 허상이다라고 고형렬은 썼다. 조국의 연어들은 이 인연의 강을 따라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죽음에 삶을 잇대어 가며 그것들은 돌아온다. 돌아와서, 생명의 기쁨과 생명의 허무를 사람들에게 알게 한다.(185)

 

-‘문화방송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 충북의 한 도시는 지난 2000년부터 사과아가씨를 없앴고 사과아줌마를 뽑고 있다. 실제로 사과를 재배하는 30-50대 여성농민들 중에서 뽑는다. 시청 관계자는 아줌마들이 많은 상금을 요구하지 않아 행사비용이 12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또 선발된 뒤에도, 사과농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새침데기 미녀들보다는 이 농사꾼 아줌마들이 스스럼없이 관광객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홍보 효과도 커졌다고 한다. 자본의 힘은 미녀들을 찬양해서 억압하고, 아줌마들을 폄하해서 억압한다. 그래서 아줌마의 해방은 곧 미녀의 해방과 같다. 몸과 삶이 맞닿아 있는 것이 아줌마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삶으로부터 유리된 몸의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아줌마들의 싸움은 힘들어 보인다.(225-226)

 

- 축구는 단순한 공차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상을 누린다. 거룩한축구공은 아시아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수탈노동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축구공은 오각형의 가죽조각을 손으로 꿰매서 만든다. 아디다스 등 스포츠용품업계의 초국적기업들은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같은 아시아 저임금지대를 옮겨가며 생산 공장을 차리고 값싼 어린이 노동을 고용했다. ‘월드컵 후원 초국적기업 반대 공동행동은 축구공을 꿰매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방한한 국제시민단체의 연대조직이다. 축구공을 꿰매다가 눈이 멈 인도 소녀 소니아(15)도 따라왔다. ‘공동행동은 세계 최대의 축구공 생산지인 파키스탄에서 15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한 개에 120-200원을 받고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세계축구연맹(FIFA)의 답변을 요구했다. 초국적기업들의 후원금은 텔레비전 중계료와 함께 FIFA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다. 월드컵의 함성에 묻혀서, 축구공 속에 들어있는 세계의 온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고멀다.(227-228)

 

- 미드필드에서부터 아군 진영이 뚫려서 수많은 적들이 골문으로 몰려들 때, 김병지는 골문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에 갈팡질팡했다. 그는 마치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홀몸으로 막아내는 인간과도 같았다. 그가 실패했을 때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실패한 문지기들은 자신의 몸 뒤에서 그물을 흔드는 공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문지기들은 또 다시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골에는 함성이 일었고, 그때마다 문지기들은 무너졌다. 김병지도 무너졌고, 바르테즈도 무너졌다. 문지기들은 자신의 참패에 열광하는 관중의 함성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되는 것일까. 함성이 일 때 경기장엔 오직 문지기 한 개인만이 외톨이가 돼 골문 앞에 서있다. 승리의 맥락을 따라서 축구를 보는 일과 패배의 맥락을 따라서 축구를 보는 일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패배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개별적 인간이 잘 보이고, 승리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인간의 집단이 먼저 보인다.(134-135)

 

- 거대담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몸이 검증 안 한 언어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역사적 이런 말들이 잘 안 와 닿는다. 어떤 문제든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나와는 안 맞다. 언어를 사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쓸 수는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는 한줌밖에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언어가 점점 적어진다.(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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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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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박민규의 정신세계는 독특하다. 지난 번 소설가들이 쓴 옴니버스 형식의 책을 읽으며 그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쓴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책은 정말 파격적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인물 설정과 사건의 전개가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야기인데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아마도 천재인가보다.

 

  그는 성이나 배설 등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써 두었는데 이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나는 아직 이런 이야기를 쓰기에는 너무 쑥스럽다. 난 소설가가 되기에는 먼 것인가? 아마도 제임스 미치너가 이 책을 읽는다면 놀라서 기절할 것 같다. 스타일이 너무 다른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는 박민규씨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높이 사는 편이지만 제임스 미치너처럼 점잖은 소설을 쓰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할 수는 있지만 보다 진솔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지만 그의 일인칭 시점은 마음에 든다. 일인칭이니 작가가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작가인지 구별이 안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허구여도 말이다. 그러면 독자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를 썼어도 그런대로 읽어 줄 만 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10개의 단편들의 주인공이 거의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모두 같은 사람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비슷한 성향인 데다 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한 아웃사이더들로 보여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그로 인해 대변되는 남자들의 생각을 말이다. 지금까지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앞으로는 남성이 주인공인 소설도 많이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이 있다. 작가는 그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책 깊숙이 깔려 있는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깊은 상처를 유머로 중화시키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 독자가 나는 이 주인공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10개의 단편들이 가까운 이들에게 주는 선물로 씌어졌다는 것도 흥미롭다. 대단한 건 이 소설들이 세계의 문학, 문학 동네, 한국 문학, 문학 수첩 등 유수의 문학잡지에 실린 글들이라는 사실이다.

 

 

---김영하의 추천서(책 뒷면)---

 

  "지금껏 우리 문학계에 존재한 적 없었던 기이하고 유쾌한 문장들을 제시하여 나를 비롯한 프로페셔널과 독자들의 유쾌한 항복선언을 받아내고 있다. 구어이면서 동시에 문어인 그의 문장들은 유희적 태도로 가장한 연민의 어법을 능청스럽게 구사하며 우리를 행복한 독서의 경험으로 끌어들인다. '신언문일치체'라 불러도 좋을 그의 문장들이 오래 기다려 온 비처럼 내 온몸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나는 나의 어두운 골방 속에서 남몰래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웃는다."

 

---본문  내용(갑을고시원 체류기 중)---

 

  "의외로 씩씩한 것은 여자들이었다. 세면장겸 화장실에서 마주쳐도 여자들은 언제나 당당했고 자신의 볼일을 척척 다 보고, 서로의 방을 오가며 소곤소곤 환담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장을 보러 가는가 하면, 그 좁은 옥탑방에서 몇몇이 어울려 식사를 하고, 웃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니, 웃었다! 옥상에서 나와 담배를 피던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곳에서 <웃는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희귀한 일이었다. 업소의 여급임이 분명할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래도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 여자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것은 여자들이다. 과연 남자들만의 세상이란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낯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이나 말이다."(288-289쪽) - 그의 여성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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