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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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중에 '어떤 일생'이라는 뜻의 제목을 갖고 있었던 원작의 제목이 일본을 거쳐 오는 동안 '여자의 일생'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모든 여자들이 이 책 속의 잔느처럼 불행한 일생을 사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일생'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한 여자가 일생 동안 살면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부모님을 여의고, 자신 또한 늙어가는 모습을 책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아주 잘못된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인가 증조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우리 집 여자들의 계보를 생각하며 여자들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다정하던 분들이 떠나시는 걸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이제 곧 내 차례도 올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었다. 이 책 속의 잔느도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얼떨결에 맞은 약혼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밝은 미래를 꿈꾸던 잔느에게 결혼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편의 외도와 외면으로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사회적으로 진출 기회가 없었던 당시의 잔느는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아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지만 아들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장본인으로 자라난다.

 

  염세주의적 색채가 강한 모파상의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여성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 수 있는지 신기해했다. 그에게 문학을 가르친 이가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라는 것을 책의 말미를 읽으며 알게 되어 조금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을 읽을 때도 같은 이유로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기구한 인생을 산 순수했던 잔느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 귀족에 불과했지만, 주인의 아들을 가져 돈을 받고 쫓겨났던 하녀 로잘리는 늙은 잔느 곁을 지키는 지혜로움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여자의 일생이 모두 비극은 아니라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는 세 번의 출생 과정과 여러 번의 사망(남편, 부모님, 기르던 개, 이모)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태어남이 있으면 돌아감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의 문제는 종종 꺼리는 화젯거리이기도 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므로 더 소중한 삶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해야겠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속히 바로잡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으니까.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302005696

- 잔느는 자기 가슴이 이 달 밝은 밤처럼 속삭임으로 가득 차서 활짝 열리는 것 같았고, 가벼운 떨림으로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밤 짐승들을 닮은 수많은 막연한 욕망이 갑자기 가슴에서 들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떤 친화감이 그녀를 이 생생한 시와 결합해 주고 있었다. (25쪽)

- 방 하나에 모여 우글거리는 대가족의 냄새가 누옥들에서 퍼져 나왔다. (31쪽)

- 그들은 같은 계급, 같은 족벌, 동등한 혈통에 속한다는 단 한 가지 사실 덕분에,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 친밀하게 느끼고, 거의 친구이며 인척간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47쪽)

- `리종 이모`라고 발설할 때, 이 두 단어는 그 누구의 마음에도 아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것은 `커피포트` 또는 `설탕 그릇`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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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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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저서를 처음 접했다. 두껍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다루는 사건이 살인이어서 처음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악착같이 살아온 카타리나 블룸은 평범하진 않지만 나름 편안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의 호의도 받고 좋은 차와 거주지도 생겼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띈 남자가 수배 중이었고, 그를 재워주었다는 것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카타리나는 언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그녀의 사생활 노출은 물론 협박 전화와 거짓 기사들에 점점 멍들어 간다. 그 와중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도 일련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쯤 되면 그 일을 자행한 신문기자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얄밉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자를 만나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자신을 파괴했는지, 근거 없는 거짓말들을 늘어놓아 주변 사람들까지 아프게 했는지 말이다. 버젓이 그녀 앞에 나타나 성추행을 서슴지 않는 기자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권총을 미리 가져온 건 잘못이다.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그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기가 찼을까?

 

  약자의 편에서 글을 썼던 하인리히 뵐처럼 권력이나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 작가들이 멋지다. 이 책에 나오는 언론사의 모델이었음직한 신문사에서 책에 대한 언급을 꺼렸을 정도로 찔려 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책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연예인들도 사람인데 너무 심하게 사생활을 드러내거나 거짓 기사들을 써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도 문제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자극적 기사들의 남발도 잘못이다.

 

  카타리나의 미래가 어땠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는 복역을 끝내고 사랑했던 탈옥범과 평범한 결혼을 했을지 모른다고 작가는 10년 후 회고 글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살인자의 자녀’라는 말을 들을까 자녀는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상상 속 인물이지만 그의 미래를 이야기해 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암울하던 전후 독일, 파괴된 문학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름다운 언어로 문학을 일구어낸 작가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약자의 편에서 펜을 든 그의 용기를 본받고 싶다.

- 개념 정의를 두고 그녀와 검사들 혹은 그녀와 바이츠메네 사이에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31쪽)

- 내가 기자들의 술집에 갔었던 것은 그저 그를 한 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행동거지는 어떠하며, 말하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 삶을 파괴한 바로 그 인간 말입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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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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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보다 나은 영화를 찾기 어렵다. <<안나 카레니나>>도 어떤 버전의 영화보다 책이 훨씬 낫다고 여겨진다. 영화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일의 자초지종이 상세히 드러나 있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심혈을 기울여 쓴 이 작품은 예술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열정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은 후 ‘이런 게 결혼 생활인가보다’하고 여기고 있었을 때 마음을 뜨겁게 동요하게 만든 브론스키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 그녀의 감정 변화가 재미있다. 평소에 늘 봐 오던 남편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고 밉게 다가온 것이다. 심지어 사랑스럽던 아들까지도 낯설게 느낀다.

 

  사랑을 하게 된 열정적인 안나의 감정 변화로부터 일이 벌어지는 이 책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는 긴 이름을 가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얽히고설키며 애증의 관계들을 만들어 낸다. 과거 우리나라도 그랬듯 당시 많은 러시아 귀족들도 사랑 없는 정략결혼으로 결혼 생활 동안 불만족을 키웠고, 곁눈질을 했을 것이다. 안나도 그 대표적인 예다. 뒤늦게 나타난 인연으로 인해 그녀는 가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불같은 사랑으로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외국으로의 도피행각 끝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되돌아온 페테르부르크였지만 아들을 만나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의 죄책감은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이 식으면 남는 것은 질투일까? 안나는 브론스키가 차지하던 자리를 책으로 보내기 시작하며 박식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골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아편에 의존하며 정신적으로 나약해진다.

 

  또 하나의 사랑은 어리고 사랑스러운 키티에 대한 수줍은 레빈의 그것이다. 청혼을 거절당한 후 오랜 시간 기다려 이루어낸 결혼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의미 찾기에 골몰하던 레빈은 결혼 이후 그 해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사랑과 배신, 그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부축임과 질책은 이 책을 복잡하지만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간혹 등장하는 농노에 대한 엇갈리는 귀족들의 논쟁은 사회적 갈등의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톨스토이가 투영된 듯 한 레빈은 농노제 폐지를 소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이다. 순수한 농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기 주변으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던 사람이다. 제목과 다르게 안나보다 레빈에게 비중이 느껴지는 건 부족한 듯 바람직한 그의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책을 구입했지만 첫 페이지 몇 장 넘기다 긴 이름에 질려 덮기 일쑤였다. 인문학 모임 2월의 도서로 선정되는 바람에 읽게 되어 뿌듯했다. 처음에는 긴 이름들을 수첩에 적어 가며 인물의 관계도를 그렸는데 인물들과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두꺼운 책이 조금은 잘 넘어갔다. 하지만 3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야만 했다. 상황 묘사나 연상되는 비유가 수준급인 데 놀랐고, 그의 예술적, 문학적 지식의 방대함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고 소설을 술술 써 나갔다던 정유정 작가가 떠오른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 <<안나 카레니나>>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 이유를 알겠다.

- 그는 키티에 대한 자기의 행위가 일정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바로 결혼하려는 의사 없이 처녀를 유혹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유혹이야말로 그처럼 화려하고 젊은 남자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는 자기가 이러한 만족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만족스런 발견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1권 118-119쪽)

- 그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지 않았고, 똑똑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분위기와 자기의 교양에서 비롯된 극도의 순종과 공경의 태도 외에는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적으면 적을수록 겉으로는 더욱더 순종하고 공손해지는 것이었다. (1권 125-126쪽)

-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이 집단이 못 견디게 싫어졌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서로를 속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모임 속에 있기가 몹시 지루하고 거북해졌으므로 그녀는 백작부인 리디야 이바노브나에게서도 될 수 있는 한 발을 멀리하게 됐다. (1권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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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 - 사고의 틀을 바꾸는 유쾌한 지적 훈련 인문 사고
최원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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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실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상식을 깨는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가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었다는 것, <<1984>>와 <<동물 농장>>이 우리나라에서 반공도서였다는 것처럼 알고 있었던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연예계 뒷이야기 같은 위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간디나 마틴 루터 킹의 여성편력, 자신의 이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인들까지 포섭했던 에디슨, 냉정한 행정가이기도 했던 나이팅게일 등)이나 전혀 몰랐던 내용들(2차 세계대전으로 탄생하게 된 환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팔기 시작한 사람이 아랍인들이라는 사실, 공정하지 않은 공정무역 등)이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내용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얄팍한 지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비꼬듯 말했지만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 이면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진실이 숨겨져 잇을 수 있고 변해간다는 자체가 재미있다.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거짓이 될 수도, 지금의 별남이 미래의 기정사실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마련이니까. 똑같은 사실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275530723


- 소주는 원래 우리 술이 아니었다. 증류주는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의 수메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49쪽)

- 이슬람 세계에서는 같은 교도를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하는 교리 때문에 이슬람 지역 밖에서 노예를 구했던 것이다. (179쪽)

- 당시 그녀(나이팅게일)의 별명은 `등불을 든 여인`이었다. 등불을 들고 병원 곳곳을 다니며 시설이 미비한 곳을 찾아 개선에 힘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흰색`이 아니라 짙은 색의 검소한 옷을 입었고, 성격 역시 `천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237쪽)

- 네덜란드는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국토의 30%가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제방을 쌓고 물을 퍼내는 풍차를 많이 만든 연유다. 그래서 네덜란드에는 `담(dam)`으로 끝나는 도시가 많다. 담이 바로 댐을 의미한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등등. 암스테르담은 암스텔 강에 제방을 둘러 만든 도시다. 그 결과 운하가 발달하여 겨울에 운하가 얼면 스케이트를 많이 탄다. 이런 배경이 제방 구멍을 막은 소년 이야기를 실화처럼 여기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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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처럼 살라 다른 길, 자기만의 삶 1
박홍순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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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난 이후 잊고 지냈던 장자. 그 동안 '언젠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노자, 장자, 논어 등 동양 철학 사상 서적이다. 이런 나에게 동양 철학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한 것이 이 책이다. 시험에 나올 것을 대비하여 공자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다는 정도로 외웠던 것 같은데, 그가 어떤 주장들을 했는지, 무위자연을 주장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이 책을 만났다.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위적인 틀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 그대로 살다가 갔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온갖 물건들과 가치관 속에서 흐느적거린다. 작년에 본 영화 <헝거게임>은 지금보다 몇십 년 후가 배경인데 화장법이나 도구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인위적인 것을 보면 당분간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개발과 창조물들 속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장자는 유독 공자의 가르침을 반박하는 주장을 많이 했다. 유명한 공자를 등에 업고 덩달아 인기를 누리고자 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랜 시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였던 유교의 교훈들을 쓸모없는 것 또는, 인위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한 장자는 심지어 국가도, 왕도 몇 몇 인간들이 만들어낸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큰 도둑) 

 

  그는 또한 요즘 시대에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기계발과 사회적 성공에 목말라 하는 것도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 부질없는 노력으로 여긴다. 좋고 싫음의 경계를 짓지 않기를 바라고,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이들이 개성 없어져 감을 안타까이 여기던 장자는 시대를 넘어 대중의 생각을 뒤집어엎는 듯 용감하게 느껴졌다.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배만 채우고자 하는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통쾌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좋고 싫음을 구분하는 것, 요즘 시대의 감정의 과잉 등 현대인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들을 그 오랜 옛날 이미 했다는 것이 놀랍다. 어떻게 보면 지금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 옳다고만 여겼던 여러 가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책에는 장자뿐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자들의 주장이 나와 비교하며 읽기에 좋았다.

 

- 마른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왕성한 흡수력으로 인간과 세상을 만나는 시기에, 무려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경제적 동기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집단적 경험에 갇혀 살게 될 때, 향후 삶에서 무엇이 마음을 지배할지는 뻔한 노릇이다. (18쪽)

-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노자 (23쪽)

- 대학은 학문 탐구라는 본래 목적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이고 취업 학원으로 전락해 있다. 졸업을 전후하여 한두 해 안에 취직하지 못하면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학점 관리와는 별도로 있는대로 스펙 쌓기에 전념한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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