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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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부분으로 가면서 책장이 더 남아 있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 중 하나다. 며칠 전 다시 본 영화 속에서 작가 자신을 그려냈다는 <미져리(영화에서는 ‘져’로 번역했다)> 속 폴은 대중 소설을 썼지만 늘 순수문학을 하고자 했던 재능 있는 작가다. 애니에게 고통 받는 동안에도 그는 훌륭한 작품을 쓴다. 그가 글을 쓰는 장면 묘사를 자세히 보고 싶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폴의 ‘넘버 원 팬’인 애니는 폴이 마지막에 쓴 <<미저리>> 시리즈에서 여자 주인공 미저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는 눈길에 미끄러져 뒤집힌 차에서 자신이 살려낸 폴을 가혹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녀는 살인 전력이 화려한 전직 간호사 출신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폴은 애니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시간이 갈수록 멍해진 뒤 정상이 아닌 행동을 하는 애니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다리 부러진 환자 신세의 자신을 깨닫고 좌절한다. 하지만 엄청난 생명력으로 그는 온갖 고통을 참아내고 애니로부터 벗어날 날만을 기다린다.

 

  인정 사정 없는 애니에게 약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녀가 사랑하는 소설 <<미저리>> 시리즈이다. 그걸 쓴 폴이니 그녀는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편에서 죽은 미저리를 살려낼 사람은 바로 폴이기 때문이다. 타자기를 사 와 <<돌아온 미저리>>를 쓰게 한 그녀는 폴이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잔혹한 행위를 하지만 책을 잘 쓸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폴이 자신을 빗대어 세헤라자데를 떠올린 건 그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가 순수문학으로 쓴 <<과속 차량>>과 <<돌아온 미저리>>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글을 쓰는 장면 묘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아이디어를 얻고 싶을 때 산책을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과속 차량>>의 집필 아이디어도 비디오를 사러 나갔다 얻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미저리>>를 쓰는 폴은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상상하며 글을 쭉쭉 써내려간다.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타자기 앞으로 가는 장면을 읽으며 미친 듯이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장면들이 잔인한 묘사와 욕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영화와 다른 부분은 애니에 대한 묘사와 마지막 부분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의 애니는 느낌 따뜻한 배우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귀여움과 섬뜩함을 오가는데 비해 책에서의 애니는 아주 잠깐 따뜻한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는 주로 이상하거나 폭력적인 것으로 나온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화와 달리 깜짝 반전이 하나 더 등장한다.

 

  이 책을 읽으며 스티븐 킹의 독자를 사로잡는 스토리텔링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중 공포소설 치곤 문학적인 면도 많이 느껴졌다. 소설 속 폴이 순수문학을 쓰고 싶어 했던 건 어쩌면 스티븐 킹 자신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

- ‘미저리Misery'는 보통 명사로서 고통을, 일반적으로 길고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을 의미했다. 그런 단어가 적당한 소설에 인용되면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구성 방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확실히 끝을 알 수 없는 구성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곧 대단원을 맞을 참이었다. 미저리는 폴의 인생에서 마지막 4개월(어쩌면 5개월)을 관통하여 흘러왔다. 그렇다. 수많은 미저리가 있었고, 미저리의 날이 밝았다가 미저리의 날이 저물어 갔다. 확실히 너무나도 단순한 인생이었고, 확실히……. '오, 아니야, 폴. 미저리에 관해서라면 단순한 것은 하나도 없어. 네가 미저리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사실만 빼면. 아마도 넌…… 결국 세헤라자데가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야. 안 그래?’ (398-399쪽)

- 폴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뒤 연습장을 열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종이 속에서 구멍을 발견해 냈다. 폴은 애니가 날카롭게 깎아 준 연필 세 자루가 전부 다 끝이 뭉뚝해질 때까지 네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글을 썼다. 그리고 나서 침대로 굴러 가 드러누웠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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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불량일기 - 고군분투 사고 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살아남기
에릭 케스터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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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거리감부터 느껴지는 하버드는 보통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유명인을 배출한 하버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학생들에게도 입학이 쉽지는 않다. 미식축구를 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에릭은 하버드 합격 메시지를 보고 부모님과 함께 펄쩍펄쩍 뛴다. 나도 동생이 소위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 동생과 부모님이 정말 뛰면서 기뻐하시던 모습 아직도 생생해 에릭과 부모님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꿈에 부푼 그의 하버드의 첫 해에 생각과는 다르게 우여곡절을 많이 겪게 된다. 이 책은 파란만장한 일 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에릭과 함께 하버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탐험하기도 하고, 밖에서 보기에 신비하지만 그 내면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낙제 수준의 시험 점수를 받고 하버드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 그는 책 날개에 졸업했다는 내용이 씌어 있는 걸 보면 계속 다닌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비율적으로 적은 데다 공부만 하느라 꾸밀 줄 모르는 여학생들 중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글의 재미를 위해 허구를 더했다고 하는 이 책에는 '한 해 동안 어떻게 이렇게 재미난 일이 많았을까' 할 정도로 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이 기말고사 직전 옷을 다 벗고 함성을 지르며 달리는 ‘프라이멀 스크림’이었다. 하버드생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그런 행사를 통해 해소하고자 할까? 그의 '여자친구 만들기'가 프라이멀 스크림 중 결실을 맺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애더롤'이라는 각성제를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하버드. 들어가기보다 졸업하기가 더 어렵다는 미국의 대학교는 우리나라와는 왠지 다른 풍경일 것 같다. 취업을 위해 도서관 자리를 데우는 수많은 학생들을 떠올리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열의도 만만치 않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단지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진정한 학문을 위한 대학 본연의 존재 의미는 이제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많이 웃었다. 웃음이 피식 나오는 게 아니라 정말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에릭의 바보스러운 에피소드들을 상상하기만 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건뿐 아니라 그의 툭 내뱉는 듯한 문체도 재미에 한몫 더한다. 불법과 비리가 판치고, 각종 파티의 공짜 술이 넘쳐나는 하버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에릭의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모두가 그렇게 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읽으면서 하버드가 그렇게 오랫동안 세계의 최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하버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묘한 건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책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나에겐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책이다.

- 하버드에서 부정행위는 뛰어난 학업 성과만큼이나 전통이 깊었다. 거짓말, 컨닝, 배신은 하버드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었고, 하버드가 뛰어난 정치인들을 유달리 많이 배출한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104쪽)

- 그녀는 등을 곧게 펴고 앉아서, 사람들과 얘기할 때면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상대방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다른 하버드 학생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진정성이 묻어났고,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맞은편에 앉은 두 남학생은 신이 났다. (129쪽)

- 하버드 학생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까닭도 이런 비판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냉정하고 비판적이란 건 뒤집어 얘기하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처참하게 깔아뭉갠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내 신문에 기고한 기사, 그림 전시, 아카펠라 공연 같은 사소한 일에서조차 흠을 잡아내서 비난한다. 한마디로 하버드에서 공개적으로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을 하려면 완벽해야 했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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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恨 대마도 1 천년한 대마도 1
이원호 지음 / (주)맥스퍼블리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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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우리는 생각지 못한 대마도가 과거 우리 땅이었다면 우리도 찾아와야 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고, 일본이 가져간 후 관련 기록을 없앴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됩니다.

 

  대마도 여행을 앞두고 관련 책을 검색하다 발견한 이 소설은 처음부터 흥미진진합니다. 대마도에 갑자기 늘어난 한국인 관광객. 그것도 젊은 남자들. 하지만 독도에 군을 주둔시키려고 준비하는 한국 때문에 세상의 관심은 독도에 향해 있습니다. 이들이 대마도에 온 이유는 정말 멋집니다. 남북한 합작 대마도 수복 작전이었지요.

 

  1권 뒤쪽부터는 이들 작전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고려 말 박위와 이성계의 왜구 토벌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 그리고 일제시대와 관동대지진, 이승만 대통령의 반환 요구, 그리고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마도를 배경으로 일본과 얽힌 굵직한 사건들이 현실감 있게 재현됩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땅이었다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남아 있지만 일본에서 가지고 있던 자료들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없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일본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자료들이 아직 남아 대마도가 한국 땅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우리나라와 희로애락을 함께 한 대마도. 대마도 수복작전의 중심인물은 바로 대마도에서 대대로 살아온 우리나라의 후예입니다. DNA가 한국인과 흡사한 사람들이 많다는 대마도는 정말 우리나라 땅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닌지? 적어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박으로라도 이용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소설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겠지만 역사 기술을 통해 일본의 만행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이이녕님의 <<일제 36년사>> 시리즈를 읽으며 분개했던 것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특히 관동대지진 때의 학살 장면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당시 그곳에 살던 사람 중 2/3이 넘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게 하고 은폐하려 했던 사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시 대마도 수복작전 이야기가 숨 막히게 진행됩니다. 독도에 진입하려는 우리 군은 일본군의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대마도에 잠입했던 작전원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이 소설의 이야기처럼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책으로나마 땅을 되찾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도와 대마도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세계에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사 시험 입시 반영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위한 공부만이 아닌 진실된 역사에 진정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아베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한국군의 죽도 진입으로 죽도에 대한 오랜 분쟁이 끝나게 되겠군." 오오쿠보는 눈만 끔벅였고 아베의 말이 이어졌다. "상륙군을 저지하고 죽도에 일본군이 진입하는 거요. 이왕 피해가 난 김에 죽도 경비대도 무력 진압을 해야겠지." 눈을 가늘게 뜬 아베가 벽에 걸린 세계 지도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죽도에 우리 요새를 만드는 거요. 한국인들은 잊어먹기를 잘하는 민족이라 3년쯤 지나면 다 잊을 거요." (1권 120쪽)

- 조선인의 귀다. 왜군은 경쟁하듯이 조선인의 왼쪽 귀를 베어 전공의 증물로 삼았는데 앞으로는 코를 베어 갈 것이라고 했다. 오른쪽 귀까지 베어 두 사람 몫으로 속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2권 105쪽)

- 이노우에의 시선을 받은 종의장이 이어 말한다. "히데요시가 죽고 막부가 개설된 후부터 쓰시마는 다시 조선의 관직을 받고 경상도 관할의 대마도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막부에서도 묵인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잠깐." 20대 중반의 이노우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종의장을 보았다. "요시나가 씨, 그렇다면 쓰시마가 조선의 영토란 말이오?" "1천여 년 전부터 그렇습니다."(2권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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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김선진 그림, 강명순 옮김 / 좋은생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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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과 비교언어학의 대가 막스 뮐러가 남긴 유일한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은 그 이야기의 단순함에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 모두가 추구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순백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 주인공은 신분이 다른 후작의 성으로 놀러 가서 병약한 마리아를 처음 만나게 되고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감전된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은 마리아의 초청 편지를 받고 매일 그녀를 만나러 간다. 늘 누워 있던 그녀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아직 살아 있었고 그들은 시와 그림과 종교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떠나 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고민 끝에 여행을 떠나지만 자석처럼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게 된다.

 

  상대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도 사랑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 예전에 본 영화 <A Walk to Remember>가 생각났다. 망나니 고등학생을 철들게 만들어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한 여주인공은 결국 병에 걸려 점점 쇠약해지지만 남자 주인공은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청혼한다. 결국 결혼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저 세상으로 가고 그는 평생 그녀를 추억한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원서를 사서 읽기도 하고 같은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봤던 건 사람이 사랑으로 인해 변화되고,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내는 것이 멋있어서였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아픈 마리아를 향한 그의 변치 않는 사랑은 결국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도 멀리 할 수 있게 만든다.

 

  숭고한 사랑 이야기,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읽고 좋아하는 건 우리 마음속에 늘 이런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랑이 없고, 견디지 못할 좌절이 없겠지만 그로 인해 인간은 더 성장하고 성숙한다. 우리의 사랑과 고난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 본문 내용 ---

 

- 안타깝게도, 우리가 인생을 절반도 채 살기 전에 이런 사랑은 거의 사라져버린다. 타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벌써 어린아이는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다. 사랑의 샘물은 마르기 시작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샘물 위에는 흙모래가 켜켜이 쌓여간다. 우리의 눈은 빛을 잃어버리고, 시끌벅적한 거리에서도 우리는 심각하고 지친 표정으로 그냥 스쳐 지나간다. 서로 인사도잘 하지 않는다. 인사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우리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남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잘 아로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영혼의 날개가 깃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으며, 꽃잎이 시들어 떨어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34-35쪽)

 

- 인생이라는 강물이 고요히 흘러가는 동안에는, 언제나 같은 강물이 흐르는 것이고, 변하는 것은 단지 양쪽 강변의 경치뿐인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고비 길에서 만나는 폭포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폭포는 언제까지나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심지어 폭포에서 완전히 멀어져 이제 물결 잔잔한 안식의 바다에 거의 다다랐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귓가에서 여전히 폭포의 힘찬 물소리가 들려오는 경우도 있다. 그제서야 우리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생명,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바로 그 폭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57-58쪽)

 

- 나는 이곳 밤의 정적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내 머리는 모든 기능이 완전히 멈춘 것처럼 멍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를 상대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대지는 관처럼 생각되었고, 어두운 하늘은 관을 덮는 천처럼 느껴졌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벌써 죽은 것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167쪽)

 

-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던 지난 이틀간의 추억 세계는 실제로 그녀를 만나 그녀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자 한낱 그림자처럼 아무 것도 아이었다는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183쪽)

 

-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무수한 사랑의 빛깔 중 한 가지를 보여준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 순종과 헌신의 사랑, 빛깔로 말하면 순백의 하얀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어쩌면 그런 사랑은 현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미 잊혀지고 사라진 것일지도…. -옮긴이의 말(204쪽)

 

http://blog.naver.com/kelly110/4019819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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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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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엄청난 민간 교류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조정래 작가 특유의 스토리 텔링 능력도 한 몫 했겠지만 중국과 어떤 모양으로든 관계를 맺게 될 직장인들의 책 구입은 예정된 일인 듯 하다.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주된 인물인 전대광은 상사원으로 중국에 살고 있는 그와 관계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는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적용하여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강정규, 김현곤 등의 인물도 있고 그가 도움을 주고자 데리고 온 성형외과 의사 서하원도 있다. 물론 그들은 중국 땅에 살면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일본인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긴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오뚜기 근성으로 어디서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에 대해 소개한 어떤 책보다 재미있게 중국의 실질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때는 그게 좀 지나쳐서 작가가 수집한 정보를 독자에게 들려주기 위해 인물들의 대사를 빌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인물들의 대사에서 작가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중국어를 꼭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협상의 필수 조건으로 언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역을 앞세운 협상과 능통한 언어로 직접 하는 협상은 그 결과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행히 책 속에서 한국인은 중국과 중국어를 빨리 배우는 것으로 나온다. 한국인의 근성과 지성은 어딜 가나 인정받는 것 같다.

 

  이 책에 또 다른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젊은 커플인 송재형과 리옌링의 연애 사건은 왠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점점 친해지는 관계를 상징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송재형은 중국의 부자인 리옌링의 아버지 리완싱으로부터 결혼을 허락받고자 찾아간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리완싱은 자신의 나라의 속국(물론 그의 착각이라고 리옌링은 역설한다) 사람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던 그는 송재형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차례로 빌려 읽느라 꽤 오랜 기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정작 책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들이 얽혀 있어 적어 가며 읽어야 하긴 했지만 중국 땅에서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기양양한 삶을 잘 알 수 있었다. G1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삶이 이 책에 있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진 않겠지만 점점 중국 진출을 꿈꾸고 실현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땅에서 선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부터 풍습, 그리고 금기에 이르기까지 알짜 정보들을 준다. 작가의 자료 수집 양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 상상을 해 본다. 나도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늘 공부하고, 자료를 수집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중국어도 다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http://blog.naver.com/kelly110/40198036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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