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개정판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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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11545525

 

 
 
 
   한국전쟁 당시 영상들을 보면 짧은 단발머리를 한 채 철퍼덕 앉아 망연자실 울고 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로 자랐을 그 아이의 사진을 보면 함께 울고 싶어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 몽실이도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상처들을 경험합니다. 지금 태어난 걸 감사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너무나 저려 오는 당시에 살았던 수많은 몽실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울컥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가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헌납하고 가진 것 없이 최후를 맞으신 고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어려움을 당하고도 오뚜기처럼 일어나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마저 사랑할 줄 알았던 성자 몽실이는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에 남아 울리는 감동을 줍니다.

 

  자신은 먹지 않고 동생을 먹이고,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대꾸하기 보다는 그냥 피하는 어떻게 보면 너무 미련하기까지 한 그녀의 행동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건 당시 그런 삶을 살았던 우리 할머니들이 떠올라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암울하고 힘든 시기 중 하나인 당시를 살았던 그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이루어 놓은 풍성함에 감사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몽실이 만났던 인민군과 국군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물론 그들 중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죽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스한 마음을 지닌 같은 민족입니다.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이 점차 교류하다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가능하지 않겠지요? 북한에서도 고집을 버리고 더 늦기 전에 오픈마인드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몽실언니처럼 고생만 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해방이 되고부터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갈 길을 바로 알지 못하여 나라가 두 동강으로 갈라져서 서로가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은지 우리는 바른길을 알아야 합니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미국을 믿지 마라,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힘이든지 남의 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소련의 힘을 의지하면 소련의 식민지가 되고, 미국을 의지하면 곧 미국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일제 삼십오 년은 어리석은 우리 어른들이 일본의 힘을 의지하려다가 결국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맡겨 버린 결과가 되었지요. 을사보호조약이란 게 바로 그런 못난 약속이었습니다. (67-68쪽)



- 난남이는 몽실의 튼튼한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언니이면서 어머니 같은 몽실이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암죽을 끓여 먹이며 키워 준 언니였다. 깡통으로 구걸해 온 밥을 먹지 않고 먹이며 키워 준 언니였다. 깡통으로 구걸해 온 밥을 먹지 않고 먹여 준 언니, 그 언니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난남의 핏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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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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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06687518

 

  소중한 이웃분의 추천으로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 속 응어리, 자기 혼자 들어가서 꽁꽁 숨어버리는 오두막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아픔을 고스란히 되씹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픈 상처를 지닌 오두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녀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는 쓸 당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권유로 어린 시절의 아픔들이 녹아 있는 메모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아픔을 겪게 된 오두막에서 그는 사람의 모습으로 온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물론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이 하나씩 깨어집니다. 쉬운 언어로 교리들을 자연스럽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오두막에서 보낸 시간으로 주인공이 회복이 되었듯, 책을 읽는 우리도 위안을 받습니다.

 

  읽으면서 나의 오두막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아픔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처를 들추지 않고 덮어두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것입니다. 주변만 서성이기다 상처 안에 들어가 직면하고 해결하는 일이 한 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말이죠.

 

 

- 당신이 오로지 자기 고통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나요? (147쪽)



- 당신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사랑받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그게 바로 당신 삶을 제한하는 거예요. (149쪽)



- 당신들이 관계를 버리고 독립을 택하면서 서로 위험한 존재가 되었죠.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조종하거나 복종시켜야 할 존재가 되는 거예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권위란, 강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죠.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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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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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01376551

 

  박범신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읽었던 은교가 떠올라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읽었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소설도 함께 인기를 얻은 건지, 소설이 인기가 있어 영화가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동안 거론하기를 꺼렸던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어서 당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것 같다. 게다가 고등학생과의 연애라니, 원조교제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지탄 받던 사건들을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책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적요시인이 되어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열정을 이야기하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지망생이던 이지우는 왜 하필 시인에게 문하생으로 들어간 것일까? 작가는 소설가라고 하면 자신과 너무나 닮을까 시인으로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단지 노년의 사랑에 대한 건 아닐 거라고 본다. 나이든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설움에 대한 내용이 상당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명망 있는 시인으로 모든 것을 누리는 듯 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모든 것을 다 갖고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성경의 이야기가 딱 맞는 것 같다.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도 끊임없이 소설가가 되고자 애쓰는 이지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시인이 쓴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인터뷰 하면서 얼마나 스스로가 가증스러웠을까? 이 책에는 개개인의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시인과 소설가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은교는 상당히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그녀는 두 남성의 시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녀의 감정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두 남자를 자신도 모르게 유혹해 죽음에 빠뜨린 후 정작 자신이 시를 쓰게 되는 은교는 참 철모르는 듯 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겨우 헤드램프 하나뿐이었다. 내 삶이 애당초 그렇지 않았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젊은 날의 대부분은 헤드램프 하나 없이 세상 가운데를 걸었다. 나는 평생 혼자 살았다. 중년이 되고부터는 시가 헤드램프였다. 불은 자주 꺼졌고 배터리를 대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자주 시인의 길을 선택한 나를 미워했다. 신성으로서의 시는커녕, 겨우 악마의 술과 같은 시를 썼다. 그만둘까 생각한 날도 많았다. "감옥에서의 시는 폭동이 되고 병원 창가에서의 시는 불타는 희망이 된다"고 말한 건 보들레르였다. 간교한 자 같으니라고. 나는 보들레르를 자주 저주했다. (105쪽)



- A. 앙드레(Endre) -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에서 (107쪽)

자기를 괴롭혀서 시를 짓는 것보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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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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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591981867

  오래 전 남편이 갖다 놓은 <<비즈니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엄마가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판다는 거야?’하는 마음에 선입견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박작가의 <<소소한 풍경>>을 읽으며 <<은교>>에서 느꼈던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을 발견하고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닫힌 마음으로 읽었던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물질에 길들여진 우리들, 새로 형성된 도시에 투자하느라 잊혀 가는 구시가지들, 서로에게 무관심한 결혼생활…….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대학생 시절 운동을 하던 남편은 인권변호사의 꿈을 안고 고시공부에 돌입합니다. 그가 보내버린 10년 동안 정우 엄마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를 키웁니다. 오랜 공부 끝에 그가선택한 직장에서 남편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부인에게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단 하나의 희망인 정우의 공부를 위해 그녀는 친구를 통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난 새로운 인연으로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구시가지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그려진 이 책은 중국에서도 연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불합리성을 글로 쓰기 좋아하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시가지에 투자하기 위해 과거의 약속을 무시하는 시장의 비즈니스, 그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이 도둑을 변신해 저지르는 비즈니스, 자식의 과외공부를 위해 시작한 암흑의 비즈니스, 물욕을 채우기 위해 남자를 차지하려는 욕망의 비즈니스. 이들은 모두 목적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닮아 있습니다. 저마다 노련함을 자랑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지만 그 끝에서 허무함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많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필요치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 내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세상에 대해 적개심이 많았던 젊은 남편의 등뼈는 그때, 차라리 고등어의 등처럼 푸르고 싱싱했다. 얼마나 달려가 매달리고 싶었던 등뼈였던가. 버림받는다는 건 내겐 늘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었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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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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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00367794

 

  요즘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계속 찾아 읽고 있다. 소금은 작년엔가 이웃 분들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마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책이다. 이번에 다시 빌려 읽으면서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정 경제가 살아날수록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한데 오히려 소비 풍조에 빠져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더 갖기를 열망하게 된다면 그 가정의 끝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던 선명우는 점점 자신을 돈 나오는 곳으로만 인식하는 가족들 때문에 미련 없이 가정을 떠나게 된다. 물론 그 가정은 그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다. 서로를 사랑해야 할 가족인데 오히려 이용하고,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가깝기 때문에 더 무례하고, 상처를 주는 가족. 그는 그런 가족을 떠나 가진 것 없고 모두 부족한 것 투성이인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 고된 몸에 없는 살림이지만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그의 새로운 삶은 우리에게 물질이 다가 아님을 알려준다.

  자신의 몸을 녹여 음식의 맛을 더하는 소금처럼 우리의 아버지들은 과거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예전에는 집안일을 여자들이 거의 다 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집안일에 육아까지 해내는 남자들이 늘은 것 같다. 가사분담과 경제 부양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힘든 시대이다. 그럴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힘이 되어 주는 가정 분위기가 꼭 필요하다.

 

-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가리켜 ‘숙맥’이라고 불렀다. ‘숙맥이 무슨 뜻이야, 엄마?’ 작은언니가 묻고 "콩과 보리.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하는 사람!" 엄마의 설명에 큰언니, 작은언니, 시우는 한꺼번에 까르르르 웃었다. (34쪽)



- 그가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것은 김승민의 휠체어를 사는 일과 네 식구가 나란히 누울 만한 텐트를 사는 일 정도였다. 모든 문제는 잉여 재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잉여는 소비를 부르고, 소비는 더 큰 욕망과 더 큰 잉여를 부르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다. … 가족은 차츰 그 자신을 다만 ‘통장’같이 취급했다. 아내는 물론이고 어린 딸들과도 따뜻이 지냈던 시절의 짧은 추억들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잉여 재산이 불어나면서 그는 차츰 그 모든 사랑의 관계를 잃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는 자식들을 소비의 괴물로 만들었을 뿐이었고, 아내와의 사랑 역시 서로 ‘뺄대를 꽂아 빠는 기능적 관계로 변모됐다. (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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