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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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01376551

 

  박범신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읽었던 은교가 떠올라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읽었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소설도 함께 인기를 얻은 건지, 소설이 인기가 있어 영화가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동안 거론하기를 꺼렸던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어서 당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것 같다. 게다가 고등학생과의 연애라니, 원조교제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지탄 받던 사건들을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책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적요시인이 되어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열정을 이야기하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지망생이던 이지우는 왜 하필 시인에게 문하생으로 들어간 것일까? 작가는 소설가라고 하면 자신과 너무나 닮을까 시인으로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단지 노년의 사랑에 대한 건 아닐 거라고 본다. 나이든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설움에 대한 내용이 상당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명망 있는 시인으로 모든 것을 누리는 듯 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모든 것을 다 갖고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성경의 이야기가 딱 맞는 것 같다.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도 끊임없이 소설가가 되고자 애쓰는 이지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시인이 쓴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인터뷰 하면서 얼마나 스스로가 가증스러웠을까? 이 책에는 개개인의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시인과 소설가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은교는 상당히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그녀는 두 남성의 시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녀의 감정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두 남자를 자신도 모르게 유혹해 죽음에 빠뜨린 후 정작 자신이 시를 쓰게 되는 은교는 참 철모르는 듯 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겨우 헤드램프 하나뿐이었다. 내 삶이 애당초 그렇지 않았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젊은 날의 대부분은 헤드램프 하나 없이 세상 가운데를 걸었다. 나는 평생 혼자 살았다. 중년이 되고부터는 시가 헤드램프였다. 불은 자주 꺼졌고 배터리를 대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자주 시인의 길을 선택한 나를 미워했다. 신성으로서의 시는커녕, 겨우 악마의 술과 같은 시를 썼다. 그만둘까 생각한 날도 많았다. "감옥에서의 시는 폭동이 되고 병원 창가에서의 시는 불타는 희망이 된다"고 말한 건 보들레르였다. 간교한 자 같으니라고. 나는 보들레르를 자주 저주했다. (105쪽)



- A. 앙드레(Endre) -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에서 (107쪽)

자기를 괴롭혀서 시를 짓는 것보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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