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리커버 에디션)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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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무고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큰 사고만 꼽아도 1970년 모산역 건널목 사고, 1993년의 서해 페리호 사고, 2014년의 세월호 침몰사고, 2022년의 이태원 압사사고 등이 있습니다. 관계자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기 때문인지 잊어버릴만하면 안전과 관련된 대향사고 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환상과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일본 작가 무라세 다케시의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기차 추락사고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책장을 열면 이야기의 핵심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봄기운이 감돌던 어느날 가마쿠라 시로 가는 상행 급행열차가 선로를 벗어나 절벽 아래로 추락하여 승객 127명 가운데 68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사고 후 두어 달이 지난 뒤에 가마쿠라 선로를 달리는 유령열차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등장했습니다. 사고현장에서 가까운 니시유이가하마 역의 승강장에 나타나는 유키호라는 유령이 나타나는데 그녀가 유령열차에 타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단 네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

,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된다.

,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어딘가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사고를 당해 죽는다.

,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열차가 탈선하기 전에 피해자를 하차시키려고 한다면 원래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규칙을 지켜야 한다면 굳이 열차를 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네 사람이 유령열차를 타게 되는 사연을 담았습니다. 첫 번째는 약혼자를 가슴에 묻은 여자, 두 번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 세 번째는 짝사랑하는 여학생을 잃은 한 소년, 네 번째는 이 사고의 피의자로 지목된 기관사의 아내 등입니다. 유키호에 따르면 열차가 달리면서 내는 소리도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한테만 들리고, 탈선 사고로 인해 마음에 맺힌 게 있는 사람의 눈에만 유령열차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령열차가 나날이 투명해지고 있어, 머지않아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네 사람 모두 유령열차를 타야할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이미 죽은 이들에게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 말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혹여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을 같이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까요?


열차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해말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읽으려거 챙겨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읽다가 그만 기내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결말 부분을 읽지 못했고 저는 아예 읽어보지도 못해서 찜찜했습니다. 이 책은 2022년 출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합니다. 동네 도서관에서도 예약이 밀려있어 빌려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근에 근무하는 곳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 회원등록을 하면서 빌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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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 순수함을 닮은 길 비아 프란치제나를 걷다
백상현 지음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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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을 여행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책장을 넘겨보니 사진이 많아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은 소도시 여행자이자 여행사진작가 백상현이 비아 프란치제나의 토스카나 구간을 걸어서 만난 마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는 영국의 캔터베리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로 이어지는 옛길입니다. 중세 무렵 교황청과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무덤을 찾는 순례자들이 이용하던 순례길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프랑스에서 오는 길)혹은 비아 로메아 프란치제나(Via Romea Francigena"("프랑스에서 오는 로마로 가는 길")로 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롬바르디아 길(Lombard Way)라고 했던 것을 725년 바바리아의 아이히슈타트 주교 빌리발트(Willibald)가 남긴 여행기록에서는 프랑크 루트(Iter Francorum)이라고 적었습니다. 비아 프라치제나라는 이름은 토스카나의 몬테 아미아타에 있는 산 살바토레 수도원에 보관되었던 양피지에 적은 악툼 클루시오(Actum Clusio)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990견 무렵 캔터베리의 시게릭(Sigeric) 대주교는 그의 팔리움(Pallium)을 받기 위하여 캔터베리를 출발하여 교황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시게릭 대주교는 로마에서 돌아올 때는 전체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700의 여정을 8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하루 평균 20씩 걸었습니다. 영국의 순례자들은 시게릭 대주교가 남긴 기록을 토대로 로마로 향했습니다.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의 저자는 비아 프란체지나 가운데 토스카나 지방의 폰트레몰리에서 아쿠아펜덴테에 이르는 354의 구간을 걸은 기록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사실은 토스카나의 북쪽에 있는 롬바르디아의 파비아에서 시작합니다.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길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어딘가로 부터 이어져왔고, 누군가 먼저 발을 내디뎠기에 길이 생견 미래를 향해 간다. 늘 길을 그렇게 미완성의 완결성을 가지고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물리적인 공간 속에 닫혀 있다.(19)“


문장이 참 간결하고, 매사를 시시콜콜 들먹이지 않고 아주 적당한 정도로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해가 저물면 순례자들도 쉬어갈 곳을 찾기 마련이기 때문에 순례길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마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풍경은 아마도 비슷비슷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형차를 타고 주로 고속도로를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시골풍경을 제대로 느껴볼 수 없었습니다만 비아 프란체지나를 따라 걷다보면 그대로의 이탈리아 시골풍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그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보았던 시골풍경 그대로 였습니다.


순례길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이 작가의 관심사인 만큼 사진들의 대부분은 마을 풍경과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수많은 사진에 따로 설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진이 실려 있는 쪽 어디엔가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이 사진에 담긴 풍경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23개의 마을 가운데 적어도 오르비에토는 가본 적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여행에 관한 단상들도 눈길을 끌었고, 다만 부온콘벤토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헨리7세 황제가 사망한 사실이 세 차례나 언급되면서 사인에 관한 설명이 다소 헷갈리게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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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이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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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병을 앓게 된 환자가 진단을 받는 순간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연구성과를 최초로 소개한 죽음학의 고전입니다. 죽음의 5단계는 그녀의 후속작을 통하여 알게 되었지만 죽음학 연구의 첫 번째 성과물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음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1965년 가을 시카고 신학교의 신학생 4명이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기획을 도와달라고 찾아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스와 신학생들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그들의 심리상태와 욕구를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이 자신의 환자와 만나는 것을 반대하는 주치의들은 물론 간호사들을 설득하여 환자들로부터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루어낸 성과가 환자진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의료진들이 늘어나면서 면담모임은 규모가 확대되었고, 500여명의 환자를 면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환자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면서 로스가 이끄는 연구모임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환자들이 1단계에서는 충격을 받고서 아니야.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라면서 진단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의사들을 통하여 진단이 바뀌지 않게 되면 2단계로 왜 하필이면 나일까?”하는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 환자는 분노와 광기, 시기, 원한의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다음 3단계에서는 환자는 죽음을 미루기 위하여 협상에 나섭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은 죽을 수 없으니 죽음을 미루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보이는 것입니다. 다음 4단계는 우울의 단계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두고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마지막 5단계에 이르면 우울마저도 뛰어넘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치의 병을 진단받은 환자가 5단계를 거쳐 죽음에 이른다고 설명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5단계 모두를 반드시 거치지 않거나 선후가 바뀌는 환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진이 죽어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암을 치료하는 수단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개발되기 전이라서 많은 환자들이 암으로 진단되었을 때 이미 말기에 이른 경우가 많아서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하여 갑상선암, 위장관암 등 건강검진을 통하여 암이 시작되기 이전인 전암상태를 진단하게 되거나 암이라고 하더라도 초기 상태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수술을 통하여 병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가 종료되기도 하고, 더 진행이 되었다 하더라고 항암제를 사용하거나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들을 사멸시킴으로 해서 완치에 이르도록 하는 치료법들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암질환을 불치의 병이라기보다는 만성질환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로스 연구진과 면담을 가진 환자들이 제기한 문제점 가운데 의료진들이 환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특히 환자에게 병에 대한 정보나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를 환자와 공유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말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환자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62)“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했을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수행하고 있는 환자경험평가를 통하여 의료진이 환자와 정보를 얼마나 공유하고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는지를 평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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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0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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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뤼방 오지앙의 <나의 길고 아픈 밤>에 인용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오지앙은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신부가 위암이라고 통보받는 대목을 인용합니다.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377~378쪽의 위암. 이 단어 자체가 생경하게 들렸다. () 나는 깊은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 ”얼마나 더 견딜 것 같습니까?“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는 내가 충격받지 않았다고 오해한 것 같다. 아아, 나의 침착함은 그저 실성에 가까운 멍함에 지나지 않았건만!”의 대목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는 독자가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주인공의 생각, 욕망, 감정을 꿰뚫어보면서 죽을병을 선고받는 순간 감정적 혼란, 만감이 교차하는 기막힌 기분을 접하길 원했다.(<나의 길고 아픈 밤> 73)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렇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흐느끼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한숨 한 번 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울고 있었다.(380)”라고 속마음을 토로하였습니다.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20세기 가톨릭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고, 프랑스 소설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는다고 합니다. 옮긴이의 학부 전공과목 교수님께서도 프랑스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옮긴이는 베르나노스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르나노스가 활동하던 103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는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확산되던 시기였습니다. 베르나노스는 그 시대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앞장서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아르트와 지방의 한 촌락인 앙브리쿠르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본당신부로 부임한 신부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사람들이 신앙에서 멀어지고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이들은 하나님 안으로 인도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함과 타협을 모르는 곧은 성격을 가진 신부님은 마을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데, 마을사람들은 그런 신부님을 비난하고 곤경에 빠트리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신부님은 좌절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비뚤어진 생각을 바꿀 여지는 없는지 살펴보고, 자신의 처지를 짚어보기 위하여 일기쓰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후반에 가면 마치 일기장이 실재했던 것처럼 몇 장이 뜯어지고 일부 문장은 펜으로 마구 그어 지워진 상태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좁혀가지 못하기 때문에 신부님의 생활도 윤택하지 못하여 먹는 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형편없는 포도주와 딱딱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수준이지만 신부님은 그마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본당에 부임하고서 3개월 만에 말기 위암으로 진단을 받은 것을 보면 신부님의 암은 이곳에서의 생활로 인하여 생긴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실제로 위암을 의심할만한 증상을 처음 느낀 것은 6개월 전이었다고 합니다.


위암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에 망연자실하던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나의 임종을 하나의 모범, 하나의 교훈으로 만드실 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405)”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어쩐지 신부님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30년대 만해도 말기가 되어서야 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고, 방사선치료가 태동하게 된 것도 1030년대 중반이라서 수술 이외에는 치료방법이 없을 때입니다. 결국 신부님은 수술을 받아보지 못하고 친구의 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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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병동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7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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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방 오지앙의 <나의 길고 아픈 밤>에서 인용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1967년에 발표되어 1970년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책입니다. 오래 전부터 읽어보려 했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붕괴되기 이전의 소련의 타슈켄트(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에 있는 병원을 무대로 하고 시기적으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입니다. 암병원이니만큼 다양한 상병의 암환자를 비롯하여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 간호사, 청소부 등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환자들은 십대 소년으로부터 노인에 이르고,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유형수에서 고위공직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들은 다만 암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암환자가 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진료하는 의료진들은 최대한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가족들이 찾아오거나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나이가 많고 적거나 사회적 지위와 배경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입원 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암치료와 관련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1960년 전후의 시기였던 만큼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수술,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등이 적용되고 있는데, 항암제를 이용한 치료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주로 수술과 방사선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는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암들이 치료가 가능한 까닭에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말기암조차도 완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암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초기 단계를 넘어선 상태로 불치의 병이라는 암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암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에 어떤 환자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여 의료진의 처치에 저항하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암과의 투쟁에 적극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경험을 들어서 해당 병원들의 진료수준을 평가하는 환자경험 적정성평가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평가항목으로는 환자들이 치료방법의 결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의료진은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암병동>에 등장하는 의료진들은 환자들에게 치료방법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환자가 의료진이 결정한 치료방법에 동의하지 않으면 퇴원시키기도 하는데 한번 퇴원하면 다시 입원하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환자들로서는 의료진이 결정한 치료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다만 의료진들은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치료법을 적용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솔제니친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와중에 스탈린에 대하여 비판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체포되었습니다. 8년의 강제노동형과 3년의 유형을 선고받아 모스코바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의 강제노동수용소와 유형지를 전전하면서 스탈린 치하의 공포정치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와중에 악성 종양으로 진단되어 죽음의 목전에 이르렀지만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암병동>에는 솔제니친 자신이 경험한 암병원과 유형지 등 소련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까지 담겨있습니다.


암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만큼 솔제니친은 완치된 이후의 삶은 신으로부터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덤으로 주어진 삶에서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 즉 소련에서 벌어진 일들을 작품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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