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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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일에서 25일까지 펀트래블의 로쟈와 함께 하는 중국현대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24일에는 상하이에 있는 바진의 고택을 찾아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고택에서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는 덕분에 정원과 고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진(巴金, 1904~2005)은 루쉰(鲁迅, 1881~1936), 라오서(老舍, 1899~1966)와 함께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히고 있습니다. 쓰촨성 청두의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집에 사는 집안 어른이 20여명, 형제와 자매가 30명이 넘고, 하인 4~5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빈부를 떠나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하는데, 어머니의 이런 가르침이 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 살 때 어머니가 그리고 열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겉으로는 평화롭고 우애가 넘쳐 보이는 속내로는 증오와 알력과 투쟁이 넘치는 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도 <()><휴식의 정원> 등의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1919년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의 기치를 내세우고 과학과 민주를 주창하는 5·4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 바진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면서 급진적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1923년 난징에서 유학한 뒤에는 상하이에서 반봉건 투쟁에 몸을 담았다가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크로포트킨, 버크만 등의 저작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1928년 파리에서 첫소설 <멸망>을 완성하여 귀국하여 1929<소설월보>에 발표하여 큰 반향을 얻은 뒤로 20여년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게 됩니다.


<휴식의 정원(憩園, 1944)><(, 1931)><차가운 밤(寒夜, 1947)>과 함께 가족소설이라는 현대문학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세 작품은 중국 전통의 대가족제도가 핵가족으로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퇴색하면서 가족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변해가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세 작품을 거꾸로 읽었습니다만, <휴식의 정원(憩園, 1944)은 가족해체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었습니다.


<휴식의 정원>1937년 루거우차오(卢沟桥)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1941년 일본이 광둥(广东)까지 밀고 들어와 교착상태에 빠진 1942년 국민당이 지배하던 청두(成都)를 배경으로 합니다. 휴식의 정원(憩園)이라고 하는 대저택은 화자의 친구인 야오궈둥(姚國棟)이 양멍츠(楊夢痴) 사후에 네 아들이 살던 것을 구입한 것입니다. 양멍츠 생전에는 네 아들의 가족들이 살던 대저택이었지만, 야오궈둥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적은 하인들과 살고 있고, 양멍츠의 네 아들 역시 집을 팔고서 각자 작은 집을 사서 나갔으니 대가족의 해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 야오궈둥의 전처의 친정어머니 자오()의 통제를 받고 있는 점이 대가족과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화자는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萬昭華)와 방탕한 생활 끝에 집에서 쫓겨난 양멍츠의 셋째 아들의 둘째 한얼(寒兒)이 보여주는 사랑을 북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야오궈둥의 아들 후()가 외가의 힘을 빌어 학업을 등한시하고 마작이나 경극에 매몰되어 가는 것을 야오궈둥이 방치하는 모습에서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였던 것인데, 자오부인의 위세는 야오궈둥 일가를 압도하여 비극을 자초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휴식의 정원(憩園)이라고 하는 대저택의 옛주인이나 새 주인 모두 세상의 변화하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갈무리할 대목으로는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가 화자가 쓰고 있는 소설에서 보여주었으면 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좀더 따듯하게 만들어주세요.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요.(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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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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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인용된 것을 발견하고 읽게 된 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치유의 책읽기와 관련된 글이었습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말기 유방암으로 죽음을 앞둔 여성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미야노 마키코는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우연을 탐구해왔습니다. 한편 이소노 마호는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만난 문화인류학에 충격을 받아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신체, 섭식, 의료, 불확실성을 탐구해왔습니다. 두 사람은 미야노 마키코가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스무 통 편지를 주고 받게 되는데, 주로 이소노 마호가 질문을 던지고 미야노 마키코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편지가 오갔습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제안은 미야노 마키코가 꺼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몸속에서 자라고 자라는 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병을 앓는 삶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이소노 마호씨와 함께 파고들어보자는 학문적 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 투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가면서 생과 사는 물론 신체와 위험성 등을 이야기하던 중에 미야노 마키코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에서 이소노씨는 미야노씨가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완치될 것으로 갑자기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의료가 발전해서 망은 암환자들이 완치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에 내용도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다면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내놓았습니다.


미야노씨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이야기한 죽음은 분명히 다가온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26)”를 인용하면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말도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병세의 진행에 따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지 가운데 암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지금처럼 살아가는 인생, 부작용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 그리고 매우 무거운 부작용을 앓으며 간신히 연명하는 인생 등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상정하였습니다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요즈음에는 치료방향을 결정하는데 환자의 생각이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라는 말을 듣다보면, “고르기 힘들어, 선택하기도 지쳤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환자의 상태와 그에 따른 치료방향의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진단받게 된 환자는 자신에 닥친 불행한 상황에 절망하기 쉽습니다만, 미야노씨는 나는 불행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답은 불운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였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무탈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암을 비롯하여 삶을 어렵게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렇듯 닥쳐온 어려움에 분노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수용하고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놓아버리는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소노씨가 미야노씨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오직 너만이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그 글이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마.” 또한 미야노 씨의 몸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무기, 글로 세계를 그리는 힘은 아직도 당신 속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힘이 제 눈에 보이는 한 저는 미야노 씨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도망치지 마. 더 할 수 있어.’라며 당신의 손을 잡아끌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역할입니다.(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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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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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마도 등 뒤의 창문이 열리는 순간이란 제목의 글에서 인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행본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책을 모두 읽고 보니 6권으로 된 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스시의 마법사>는 어스시 연작의 첫 번째 책이었습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아투안의 무덤>, <머나먼 바닷가>, <테하누>, <어스시의 이야기들>, 그리고 <또다른 바람>6권으로 된 <어스시 마법사> 연작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환상 문학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아마도 <해리 포터> 연작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1권인 <어스시의 마법사>196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북동해의 거친 바다에 솟아난 외봉우리의 곤트 섬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곤트섬은 마법사로 이름난 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 혹은 현자로 어스시의 많은 섬에서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스시는 earthsea를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북동해의 땅과 바다가 무대가 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곤트섬의 마법사들 가운데 대현자까지 되었던 새매의 생애를 읊은 게드의 위업을 비롯한 노래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는 것입니다.


곤트의 마법사들은 룬문자로 기록한 마법서를 읽고, 룬문자로 된 마법 주문을 읊는 것으로 보아 북유럽의 고대문명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룬 문자는 게르만족이 로마자를 쓰기 이전에 사용하던 문자로 3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명문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새매의 어린 시절을 담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지어준 더니라는 이름을 썼는데,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여섯명이나 되는 형들과 함께 홀아버지 슬하에서 자랐고, 제 앞가림을 하기 전에는 이모가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모가 마법사였던 모양입니다. 더니가 몰던 염소가 말썽을 부리자 이모가 주문을 외워 해결하는 것을 본 더니는 이모의 주문을 따라 해보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니에게 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것이 알게 된 이모가 간단한 마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모의 마술을 모두 배우게 된 더니는 곤트섬에 쳐들어온 카르그 제국의 군사들을 마법을 써서 물리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오지언이라는 마법사가 찾아와 더니에게 게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제자로 삼게 됩니다. 오지언을 따라간 게드는 룬문자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찾아온 르 알비 노영주의 딸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냐는 꼬드김에 넘어가게 됩니다. 어린 아이의 영웅심리가 화를 부른 셈입니다. 오지언의 마법서에서 소환주문을 찾아낸 게드가 주문을 읽자 어둠보다 더 캄캄한 어둠이며 일정한 형체가 없는 그림자 덩어리가 등장하여 게드를 향해 뻗쳐 왔습니다.


그 순간 오지언이 나타나 게드를 구해주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로크섬에 있는 마법학교로 가서 마법공부를 하게 됩니다. 로크에서 만난 보옥이라는 상급생과 삐걱거리는 생활을 하던 중에 마법을 겨루어보자고 도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앞서 불러냈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고 그 그림자를 막으려던 대현자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겨우 목숨을 구한 게드는 마법사가 되지만 그림자에게 제압당할 수도 있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숨어사는 느낌이던 게드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아나지 않고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는 계시에 따라 그림자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어스시의 마법사>가 끝날 무렵 로크에서 만난 마법사 친구 들콩과 함께 바다로 나서서 그림자와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그림자는 게드의 검은 자신이었습니다. 게드가 검은 자신을 붙잡는 순간 빛과 어둠이 만나고, 합쳐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아야기가 펼쳐지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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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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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이란 주로 입던 옷가지나, 사용하던 물품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의미는 때로 나쁜 일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부정한 돈의 근원을 감추기 위한 돈 세탁, 자금 세탁이 있는가하면, 심지어는 사람의 근본을 감추는 신분 세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이디(海帶)라는 필명을 쓰는 리자원(李家) 작가가 쓴 <시간 세탁소>는 어떨까요?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라는 부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억 세탁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막다른 골목 안의 조용한 건물에 세탁소가 들어 있다는데,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찾아올 수도 없는 그런 집이라고 합니다. 세탁소이니 옷가지를 세탁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거리가 많지도 않어서 주인은 일이 없으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죠. 요즘에는 책방에서 차는 물론 음반, 잡화 등 다양한 것들을 판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은 책방ㅡ세탁소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결혼도 안한 주인은 세탁만 하는게 아니라 인생상담도 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탁물을 가지고 와서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조언을 듣는다는 것이지요. 시간 세탁소에서 다룬 세탁물로는 첫사랑 손수건, 바쁘다 바빠 셔츠, 상실 속싸개, 작별 배낭, 자신감 가방, 비밀 축구화, 통제 스웨터, 망각 목도리, 과거의 기억 등 9건입니다. 그런데 세탁물을 맡긴 고객은 다섯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다섯 명이 맡긴 세탁물 이외에 나머지 네 건의 세탁물은 알고 보니 세탁소의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세탁물인 과거의 기억이야말로 이 책의 제목과 부제에 잘 어울리는 세탁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마다의 사연을 들어주는 주인장이 고객들에게 전하는 촌철살인하여 금과옥조가 되는 구절이 신박합니다. 작가와 편집자는 그런 구절을 굵은 글씨체로 표기해 주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이런 댕속이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에요. 사람도 헤어짐을 위해 만나는 것처럼요. 사실은 회자정리라는 점을 이야기했더라면, 첫사랑이 완성되지 못하고 헤어질까봐 걱정하는 어린 여학생을 이해시키는데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에는 일에 매달려 스스로를 혹사하는 젊은 여성에게 주는 "시간을 즐길 수 없다면 낭비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라는 조언입니다.


가슴이 절절했던 이야기는 결혼 후에 우연히 가졌던 아이를 잃고 생의 허망함에 애를 태우는 젊은 어머니에게 주는 조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 생명, 그리고 사람은 각자의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왔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일단 그들의 임무가 끝나면, 함께 했던 사람과 머물렀던 장소를 떠나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자카란다라는 푸른 꽃이 등장합니다. 남미가 원산지로 뉴질랜드에 갔을 때 처음 보았던 자카란다는 곤명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란화잉(藍花)이라 하며 꽃말이 '절망 속의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누리망에서는 화사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갖는다 되어 있어 자세히 찾아볼 노릇입니다.


세탁소에 놀러 오는 젊은이가 엮인 이야기에서는 첫 작품을 내고 생각이 꽉 막힌 젊은이에게 주는 조언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였습니다. 영화 니모의 대사라고 합니다. 사실은 돌아가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막다른 길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작별 배낭, 비밀 축구화, 망각 목도리, 과거의 기억 등 4건의 이야기는 세탁소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적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외국으로 가면서 부모에게 아들을 맡건 채 돌아오지 못했던 엄마와 아들 사이에 뒷이야기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라는 세탁물이 등장한 것입니다. 아들에게 되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어머니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은 지워야 할 나쁜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심리상담가로서 '이야기가 곧 인생'이라고 했던 알프레드 아들러에 경도되어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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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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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긴장감, 동일본대지진의 충격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사서가 나라현의 산촌 히가시요시노무라에 있는 고택에 만든 사설도서관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삶을 적은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저자의 다양한 책읽기가 인용됩니다.


영국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만화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시간이 걸리는 일,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되어 있습니다. 히로시마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3학년 대상의 평화 학습 교재 <히로시마의 평화 노트>에 실려 있던 만화 <맨발의 겐>의 내용이 피폭의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교체한 일을 언급한 대목입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우리 안에 흐르는 시간을 무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산촌에 도서관을 열었다고 한 것처럼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는 시간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산촌 도서관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에서 읽었다고 합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주인공 톰이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리자 피병(避病)하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이모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이모네 집에 도착한 직후에는 감염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층 방에 격리되는데, 톰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모네 집에는 함께 놀 친구도, 마당도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 피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긴 정말 최악이야.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 괴롭다니까!”라고 써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층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 두시 다음에 열세 번 울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층으로 내려간 톰은 뒷문을 열어 달빛을 끌어들여 시계를 자세히 보려 합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눈앞에 아주 광활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정원에서 작은 소녀 해티를 만나게 됩니다. 이모는 뒷문밖에는 정원은커녕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좁은 공간이라고 합니다.


뒷문밖 정원에서 톰은 해티와 만나는 동안 시간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종국에는 해티가 이층에서 살고 있다는 집주인 바살러뮤 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이 대목이 다음처럼 소개됩니다. “초반에는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체감처럼 하루하루가 천천히 흘러가지만, 막바지에 이를수록 전개가 성난 파도처럼 빨라집니다. 이는 마치 인생 속의 시간 같습니다. 가령 여섯 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6분의 1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20분의 1, 40분의 1이 되어가는 느낌과도 비슷하지요.(56-57)”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시간에 뒷문을 통하여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해티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톰의 시간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도 닮았습니다.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처럼 시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80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는 특이체질입니다. 12살이 되었을 때는 60대의 외모를 가지는데, 이때 5살 소녀 데이지를 만나면서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기억하게 됩니다. 중년이 되었을 때는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주제곡이던 영화도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이모와 이모부는 현실세계에 갇혀 시간을 되돌리는 열쇠,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호기심 많은 톰은 그 열쇠를 놓치지 않는다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환상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만화입니다.


모두에 인용된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에 나왔다는 구절도 인상적입니다. “정원이 소설의 배경으로 너무 쉽게 쓰인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정원은 그 이상의 존재다. 사실 소설과 정원은 같은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 이야기를 쓰는 건 씨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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