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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고인이 된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는 아주 오래전에 <깨어남>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깨어남>은 로버트 드 니로 와 역시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한 16권의 책을 썼고,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어본 책은 <깨어남>과 <오악사카 저널> 등 2권에 불과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색스를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인 그가 만났던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내용이라서 저로서는 읽기에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요즈음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다루면 좋을 듯한 내용도 눈에 띄었습니다. 책읽기도 인연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글을 쓰는 작가(?)라서인지 들어가는 글의 모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쓸 때 가장 마지막에 결정해야 하는 것은 처음에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래서 여러분이 읽게 될 기묘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체계를 잡고 책머리에 쓸 인용문 두 개를 정하고 나서 나는 내가 무엇을, 왜 했는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봐야만 했다.(9쪽)”라고 이어갔습니다. 즉 책 원고의 마지막을 서문쓰기로 하였는데, 이게 참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여덟 번째 책도 전체의 틀을 잡고, 시간이 나는 대로 토막글 형식으로 본문을 써놓았습니다. 마무리단계에서는 토막글들을 제자리에 배치하는 작업을 마치면 저도 들어가는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모두 20명의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자의 말로는 8편의 글은 여러 매체에 이미 발표되었던 사례이고 12편을 새로 썼다고 합니다. 20편의 글들을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 등 신경계의 기능변화에 따라 4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각 부의 시작부분에는 주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상실’에서는 “‘결손’이라는 용어는 신경학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신경 기능의 장애나 불능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과잉’이라는 주제는 신경과 영역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정신과 영역에서는 관심대상이라고 합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흥분성 장애나 생산적인 질환[상상력 과잉, 충동 과잉], 조등 등]을 질환으로 문제 삼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경계를 기계나 컴퓨터로 간주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개념과 비전은 지극히 편협하다고 비판합니다. 당연히 좀더 유연하고 현실에 맞게 개념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료현장에서 만났던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련의 신경심리학자였던 알렉산더 루리아는 “글로 남기는 힘, 이것은 19세기의 위대한 신경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보편적인 자질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자고 말았다. … 우리는 이 힘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색스는 이점에 관하여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습관은 19세기 절정을 이룬 후, 신경학이라는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쇠퇴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환자가 가진 의학적 문제가 왜 생겼는지, 진행과정도 설명합니다만, 지금으로부터 40년 이전에 경험한 사례들이라서 그 사이에 발전한 질병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을 듯합니다. 또한 뒷이야기라는 덧붙이는 글에서 환자에 대한 혹은 해당 질환에 대한 뒷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학술지나 다른 의사들과의 교신에서 비슷한 환자에 관한 이야기도 제공받았고, 혹은 기왕에 발표한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옮겨 적기도 합니다.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은 의료현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환자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진단을 제대로 하고 치료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