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여학생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규태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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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언급되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읽은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서 여주인공 다카코씨가 읽었다는 여학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여학생은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여학생>14편의 중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4편의 소설의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100엔짜리 화폐가 화자인 단편 화폐의 경우에도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인 작가가 여성을 화자로 삼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여성독자들의 호응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성 독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여성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에 긴가민가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은 14명의 여성을 통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이 책에 실린 화자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 등롱의 경우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경계하고 있으니까요.(9)”라고 시작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믿음을 주는 일도 상호적인 것이라서 내가 상대를 믿어줘야 상대도 나를 믿어주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결국 화자는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심어주었던 것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상대로부터 오해를 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표제작인 여학생의 화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듯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책의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나는 책에 쓰인 것들에 지탱하며 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그 책에 골몰하게 되어, 신뢰하고 동화되고 공감하면서 거기에 내 삶을 얹어버리고야 만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그 책에 동화돼버린다.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여 내 것으로 슬그머니 고쳐내는 재능은 나의 유일한 특기다.(34)” 비판적 책읽기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퀴리 부인>, 나가이 가후의 <묵동 기담>,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드 데아미치스의 소설 <쿠오레>, 프랑스 작가 조제프 케셀의 소설 <메꽃>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꽃>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가이 가후의 <묵동기담>에 대하여 내용은 결코 못마땅하거나 불쾌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거들먹거리는 꼴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마음에 들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65)”라고 적고 있는 것은 작가가 화자의 입을 빌어 슬쩍 비꼬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모진 마음을 먹고 순간 자살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아,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알게 될 것을, 조금만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인데…….’하고 아쉬워하곤 한다.(74)”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스스로 삶을 마치는 선택을 한 것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지요.


세 번째 작품 벚꽃잎과 마술피리는 언젠가 한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 간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편 지요조에 한국인이 등장하는데, 길을 묻는 화자에게 길안내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혼고(本鄕)의 가스가초에 가는 길 안내였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한결 더 고맙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일본 사람은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으니까 그저 모른다고 지나쳐버리곤 하는데, 이 한국인은 잘 모르는데도 내게 어떻게든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 진땀을 마구 흘려가면서 열심히 알려주려고 있으니까요.(168)” 어찌되었건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벚꽃잎과 마술피리에서 도고제독의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일거에 격멸하는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표현한 반면, ‘128에서는 전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짐승 같이 아둔한 미국 군대가 이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일본 국토를 어름어름 걸어 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못 견디겠다. 이 신성한 땅을 한 치라도 밟는다면 녀석들의 다리는 썪어 문드러지리라(219)” 이런 시각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듯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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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 작가 시리즈 2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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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던 것에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읽어가다 보니 일본의 근대문학작가들이 계절을 주제로 하여 쓴 수필이나 시를 모은 책이었습니다. 편집 일을 하는 옮긴이는 일본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같이 하는데, 도쿄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낯선 일본 근대문학을 알아가는 마중물이 되기 바라며 작가 연작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계절><작가의 마감>에 이은 두 번째 책이라고 합니다.


모두 38명의 작가들이 쓴 51편의 수필과 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태어난 일본 근대문학가 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 가운데 모리 오가이가 1862년으로 가장 일찍 태어났으며 작품 활동 역시 1890년에 단편 무희를 발표하여 유일하게 19세기에 활동한 작가였습니다. <작가의 계절>에는 모두 38명의 문학가의 51편의 글을 수록되었는데, 하시모토 다카코는 3편의 글이,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 등 11명의 문학가는 2편의 글이 뽑혔습니다.


엮고 옮긴이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를 따로 적지 않아서 어떻게 이 책을 구성하게 되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흔히 사계절을 이야기할 때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를 취하는데 반하여 이 책은 가을-겨울--여름의 순서로 글을 배치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중위도 온대지역에 속하면서 대륙과 해양의 경계에 위치하여 4계절이 뚜렷한 특징을 가집니다만, 일본은 태평양에 연하고 있으면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형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계절의 변화 역시 우리나라와는 다소 차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적 배경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을 특별하게 읽어본 것은 금년 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여행기를 마무리하고서 참고할 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1월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특히 겨울에 관한 글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고, 참고할 만한 내용을 조금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여행을 통하여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의 작품들을 골라 읽고 있습니다만, 38명의 작가들 가운데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야시 후미코, 나쓰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시마자키 도손 등은 조금 익숙한 이름입니다만, 나머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이름들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그들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몇 군데 접어놓은 대목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가을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다자이 오사무는 20세기 초반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가을은 여름과 동시에 찾아온다라고 적은 구절에 이어서 가을은 교활한 악마다. 여름 사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코웃음을 치며 웅크리고 있다.(14)’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원고 청탁이 올 것에 대비하여 평소에 읽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공책에 적어둔다고도 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화로라는 글에서는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찾아갔던 나쓰메 소세키 산방에 놓여있던 화로에 대한 부분에 인용하는 덤을 얻었습니다. 하야시 후미코의 시원한 은신처’, 와쓰시 데쓰로의 솔바람 소리’, 우에무라 쇼엔의 교토의 여름 풍경등의 글 역시 앞으로 쓸 예정이 글에서 인용할 생각으로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모리 오가이가 샤프란이라는 글에서 적은 그렇게 점점 책을 탐독할수록, 그릇에 때가 끼듯 자연스레 갖가지 사물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이름은 알아도 실물은 모르는 반쪽짜리 지식이었다. 거의 모든 사물이 그랬다. 식물의 이름도 그랬다.(107)”라고 한 것처럼 책읽기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얻는 앎이 늘어갈 뿐만 아니라, 사유를 통하여 얻는 앎도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책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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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인간 실격 더클래식 큰글씨 세계문학 39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클래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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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일본의 무뢰파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달려라 메로스>, <사양>에 이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적 중편소설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인간 실격>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 요조가 남겼다는 3건의 수기를 입수한 작가가 서문과 후기를 붙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서문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그저 후기에서 적은 것처럼 1935년 무렵 교바시에 있는 스탠드바에서 마담을 하던 이를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요조라는 사람이 남겼다는 3건의 수기와 3장의 사진을 건네받았고, 그때 받은 3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서문에 적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유년시절의 사진으로 귀엽게 생겼다는 인상과는 달리 볼수록 꺼림칙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적었고,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로 엄청난 미남이라는 느낌과는 달리 어딘가 괴기스럽고 섬뜩한 느낌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진은 아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생겼는데 소름끼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세 개의 수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암시하는 듯합니다.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수기에서 요조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가족은 물론 하인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광대짓을 일삼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두려워 늘 벌벌 떨고 일간으로서 자신의 언동에 자신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갖지 못한 채 혼자만의 번민은 가슴 깊은 곳의 작은 상자에 감춰 두고서,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기며 그저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척하여 저는 점점 익살스러운 괴짜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17)”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알려졌으면서도 공부보다는 웃기기에 열중하면서 보냈습니다. 결국 존경을 받기보다는 장난꾸러기로 보이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한 것입니다.


두 번째 수기에는 도호쿠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부터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별로 공부도 하지 않고 진학한 중학교에서도 초등학교 때와 별다를 것이 없는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번에는 다케이치라는 친구가 그의 속내를 정확하게 꿰뚫고 보는 바람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다케이치는 요조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것과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줍니다.


요조는 4학년에 되면서 도쿄로 올라오게 되는데 아버지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쿄에 집을 장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술학교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학교도 빼먹고 화방에 드나들다가 6살 연상의 호리키 마사오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그리고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됩니다. 요조의 운명은 호리키와의 만남으로 크게 뒤틀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젊은이가 흔히 빠지게 되는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라 할까요?


학교는 거의 빼먹고 학과공부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희한하게 시험 답안은 제대로 쓰는 재주가 있어 고향의 부모님을 속일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연상의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처지가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것입니다. 그래도 그에게 반한 여성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쓰네코라는 여성과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여자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고향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넙치를 통해서 눈곱만큼 생활비를 보내주는 눈치였지만, 어느날 넙치의 집을 탈출하여 호리키를 만나러 가면서 요조의 삶은 바닥으로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여자들의 기둥서방 비슷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형이 찾아와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말았습니다. 요조는 인간으로써 실격이 되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의 고뇌의 항아리가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던 것으로 치부하게 되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향이 도호쿠의 바닷가 온천으로 낙향하고 말았는데, 스물일곱 살이면서도 마흔이 넘은 모습을 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수기가 쓰인 시기를 일본의 군부가 슬슬 노골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1935년 무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조에 대해서는 마담의 입을 빌어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 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하느님처럼 착한 친구였어야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제 앞가림을 제대로 못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요조의 삶의 궤적이 다자이 오사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에서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154)”라고 적었습니다만, 삶의 의미를 거창하게 둘 수도 있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요즈음에 드는 저의 생각입니다.


너무 순수해서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적극적인 돌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가 살 무렵의 일본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없는 비인간화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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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5
모리 오가이 지음, 권태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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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여행기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일본근대문학 사조들 가운데 낭만주의 혹은 여유파 작가로 분류되는 모리 오가이는 도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의 군의총감을 지낸 의사라는 점이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이와미(岩見) 지방의 쓰와노(津和野)번에서 번주의 시의를 지내던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풍에서 엄격하면서도 각별한 배려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로 도쿄로 온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의학교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군 군의부에 들어가 군의관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입신출세와 가문의 번영을 일구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됴쿄의학부에서 보내주는 국비유학생 자격을 얻지 못했던 그는 결국 육군성 파견 유학생으로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4년 공부했습니다.


그의 단편집 아베 일족에는 아베 일족, 무희, 기러기, 다카세부네등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무희기러기는 그의 경험에서 얻은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고, 아베 일족다카세부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기러기는 도쿄의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들은 일을 소설로 꾸민 것입니다. 화자의 친구인 오카다는 칸트처럼 하루 일과가 정확한데,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오카다는 무엔자카에 사는 여인 오타마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오타마는 시나브로 순경의 첩으로 지내다가 본처가 쫓아와 난리를 치는 바람에 홀로되었던 것인데, 학교 기숙사에서 사환을 지내면서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면서 고리대금업에 눈을 뜬 스에조가 웬만큼 먹고 살만하자 오타마를 첩으로 들이게 되었습니다.


스에조의 첩으로 지내게 된 오타마는 세월이 흐르면서 무료함을 느끼게 되면서 집 앞을 지나는 오카다에게 눈길을 주게 되지만, 연을 맺을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지내던 중입니다. 오타마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결심한 날 오카다는 화자와 함께 산책에 나섰고, 호숫가에서 이시하라가 권하는 대로 호수에서 놀고 있는 기러기를 돌팔매질로 맞추어 잡게 되었습니다. 기러기를 요리하여 술을 마시던 중 오타마는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오타마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카다와 이별을 하게 된 셈입니다. 우연히 던진 돌팔매에 맞아 죽고 만 기러기처럼 말입니다.


무희는 기러기보다 뒷날의 이야기입니다. 꿈꾸던 독일 유학에 나선 오타가 베를린에서 만난 유학생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데, 아마도 모리 오가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가난한 무희 엘리스를 만나 도움을 준 인연으로 동거를 시작하고 임신시키지만, 이런 사연이 유학생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본국에서의 지원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베를린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던 중에 친구가 상관을 모시고 베를린에 오면서 통번역을 부탁하게 되는데, 이렇게 만난 상관은 그의 능력과 성실함에 매료되어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권하였고, 결국은 엘리스를 버리고 귀국길에 오르는 선택을 했고, 엘리스는 실성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리 오가이가는 무희를 통하여 일본 전통의 가문과 공명심을 쫓는 자아를 버리고 서구 방식의 자유를 즐기면서 깨닫게 된 개인을 위한 자아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 같습니다. 모이 오가이 역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독일에서 찾아온 엘리제를 돌려보냈고, 해군중장은 야카마쓰 노리요시 남작의 장녀 도시코와 결혼을 했다가 무희를 발표하면서 이혼했다고 합니다.


아베 일족은 봉건시대의 무사도 정신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군이 죽을 때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무사가 주변의 따가운 눈길에 순사를 결심하지만 새 주군은 주변인물의 간계에 넘어가 남은 가족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남은 가족들이 불편한 심사를 표출한 것으로 두고 군사를 보내 가문을 몰살시킨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쇼군의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로 막부시대의 인사관리체계가 주먹구구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군의 명을 받은 자가 아닌 삼자의 개입을 금하는 전통을 깨고서, 새 주군이 토벌군을 보내던 날 이웃에 살던 친구가 아베가문에 난입하여 친구와 대결을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역시 역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다케세부네의 경우에 자결한 동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쓴 남자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다카세부테는 교토에서 죄인을 호송하는 배를 이른다고 합니다.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는 기스케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 같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메이지 유신을 몸소 겪은 세대로 서구문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전통과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주로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는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문학을 통해 관료주의와 절대권력을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문학은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이었고, 현실의 모순으로부터의 탈출구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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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2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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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2><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의 뒷이야기입니다. 진보초 헌책방에 관한 이야기는 속편에서도 이어집니다. 진보초 헌책방이 대를 이어온 것은 일본 사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가업을 잇는다는 사고방식도 한 몫을 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렸을 적부터 헌책방에서 살아왔다고 하면 그 분위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모리사키 서점의 3대 주인 사토루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존재한 서적들 사이에 둘러싸이면 시간의 흐름 자체가 달라지고, 내가 그 흐름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 () 여기 이렇게 있으면 내 그릇과 딱 맞는 구멍에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뭐랄까, 계속 이대로만 있고 싶은 기분이 든다.(108)”


어쩌면 이런 분위기는 진보초 헌책방이 어려웠던 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진보초 헌책방거리지만 어려웠던 시절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대부터는 헌책을 찾는 인구 자체가 줄어 고난이었던 시기도 꽤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렇게 영업을 이어가는 것은 이 서점을 사랑하고 애용하는 손님들이 아직 남아 있는 덕분이다.(9)”


전편에서처럼 소개하는 근대문학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사마자키 도손과 같이 유명한 작가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개정판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을 터이니 초판이 절판되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결국 헌책방으로 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저 역시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하여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헌책방을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진보초처럼 헌책방이 모여 있다면 읽어보고 싶지만 절판된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초를 찾는 다양한 이들의 목적도 이야기해주는데, 저처럼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희귀본을 구하는 사람, 진귀한 책을 수집하는 사람, 세도리(せどり)라고 하는 사람은 가치가 있는 헌책을 사서 다른 헌책방에 팔아 차액을 얻는 사람도 있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초판본만 구하는 사람도 있고 책에 들어있는 삽화만을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세상은 넓고 헌책을 사는 사람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보초에 관한 귀중한 정보 말고도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2>의 줄거리는 사토루 삼촌의 아내 모모코가 암을 진단받고 죽음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하여 화자인 다카코와 와다씨가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하는 과정, 도모짱과 다카노씨와의 관계 등이 밝혀집니다. 특히 모모코씨가 죽음을 맞는 과정은 생각할 거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토루 삼촌의 이야기입니다. “요 반년 동안 떠나보낼 각오를 했다고 여겼어. 하지만 안 돼. 막상 때가 닥치니까 역시 하루라도 같이 있고 싶어져. 아직 떠나지 말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돼. 그 사람은 이미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였어.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나야. 아무래도 내가 욕심이 많은가 봐.(223)”


역시 사토루는 모모코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나 봅니다. 모모코의 장례를 치른 뒤에 모리사키 서점의 문을 닫고 집에 틀어박힙니다. 두어 달의 시간이 지나고 이따금 청소하고 환기를 시키면서 서점을 지키던 다카코가 모모코가 남긴 유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부디 모리사키 서점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당신과 내가 함께했던 증거가 여기 있어. 당신이 이 서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데, 당신 못지 않게 나 역시 이곳을 아주 좋아해.(260)”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모코가 다카코에게 잔뜩 슬퍼한 다음에 또다시 앞을 바라보며 살아달라고 전해달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런 모모코의 진심을 알게 된 사로투는 모리사키 서점의 문을 다시 열게 됩니다.


작가는 이곳은 도쿄의 헌책방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서점. 여기에는 소소한 이야기가 가득 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 또한, 이 서점에 담겨 있다.(274)”라고 적어 긴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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