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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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옛날에는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서 동네친구들과 놀았던 것 같습니다. 야간자습도 고3 때 입시준비를 하느라 2학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공부를 하느라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 때는 방과후 특히 밤에는 학교에 들어서는 일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넓고 전등이 많지 않아서 어둡기도 해서인지 금단의 장소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소위 학교괴담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일찍부터 방과후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운동을 비롯하여 과학, 교양 등 다양한 방과후 활동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방과후>는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아서 생긴 사건을 다룬 히가시노 게이고의 등단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전작읽기가 드디어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방과후>는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체는 선생님들입니다. 화자는 수학을 가르치고 양궁반을 지도하는 마에시마 선생님입니다. 근무하는 학교는 여자고등학교입니다. 사실 여성들만 모인 장소에서 서너차례 강연을 해본 적은 있습니다만, 일회성 이었고 커다란 강당에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강연에 오신 분들과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지거나, 강연을 하면서 특별하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만큼 여학생들은 수업 진행자와의 관계에 민감하다는 것이겠지요.

<방과후>의 주인공 마에시마 선생님은 최근에 미심쩍은 일을 몇 차례 당하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전철 탑승장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선로에 떨어질 뻔했다거나, 수영장에서 감전을 당할 수도 있었다거나, 3층에서 떨어진 화분에 맞을 뻔했다거나 하는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해보니 문틈에 지우개를 걸어놓았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머리에 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장난은 학생들이 선생님께 저지르는 단골 개구쟁이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화분을 일부러 떨어트리는 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정작 생명의 위협을 받던 마에시마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지도부의 무라하시 선생님과 다케이 선생님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에시마 선생님은 밀실에서, 다케이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살해되는 것입니다. 다케이 선생님의 경우는 마에시마 선생님과 역할을 바꾸었기 때문에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두 사건의 범인은 물론이고 살해방법을 추리해내는 것이 <방과후>를 읽는 재미라고 하겠습니다. 사건 수사는 형사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지만, 마에시마 선생님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사건을 뒤쫓아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사실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의 경우 사건을 조사과정을 일일이 밝혀가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리소설에서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추리소설의 중심이 되는 범인과 범행동기를 독후감에 적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직 읽지 않는 분들의 김을 빼는 일기 때문입니다. 다만 <방과후>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고, 일어나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추리소설로 등단하려는 작가답지 않게 책 읽는 이를 고려하여 곳곳에 사건과 관련하여 참고할 사항들을 묻어두었고,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면서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두는 솜씨가 돋보였다는 말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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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호텔의 철학자들
존 캐그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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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있는 심연호텔이 철학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해서 골라든 책입니다. 니체가 집필을 위해 스위스의 질스-마리아에 머물던 장소를 니체 하우스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차라투스트라가 탄생한 것입니다. 유명해진 영화나 연속극을 촬영한 장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만, 그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테어도어 아도르노, 프로모 레베, 카를 융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분들도 이곳에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니체가 묵었던 집, 니체가 산책했던 길을 쫓으며 차라투스트라에 버금하는 영감을 얻으려했던 것일까요?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은 메사추세츠 대학교 철학과의 존 캐그교수가 질스-마리아를 찾아 니체가 얻었던 통찰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그런 행태에 배알이 뒤틀렸던지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죄르지 루카치는 질스-마리아에 있는 발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는 발트하우스 호텔을 심연호텔(The Abysmal Hotel)이라고 불렀습니다. 캐그 교수는 루카치의 비유를 받아서,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웅장한 호텔, 실존의 공허를 성찰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장소, 세계의 종말을 안락하게 관람하는 미술관. 더 많은 웃음이 올라왔고, 나는 바로 니체하우스가 그런 심연호텔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몸서리쳤다.(187쪽)”라고 적었습니다.

질스-마리아는 니체가 지적인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곳입니다. 스위스의 동쪽 끝에 있는 생 모리츠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캐그교수는 ‘니체와 함께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도보여행’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니체를 느끼기 위한 홀로 걷기를 위하여 아내와 딸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허락된 시간에 거대한 산의 세계를 걷다가 쉬면서, 니체가 질스-마리아에서 썼던 책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등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내 캐럴이 동행하지 않은 것은 딸 베카를 돌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역시 철학을 공부한 그녀는 칸트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 자신도 여행이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여행은 실패했다. 초인을 탐색하려 했는데 가정생활만 했다. 다정한 순간들, 일상적인 과제들, 놀이 약속들고 가득 찬 가정생활, 자유로워지여는 시도, 파릇한 젊은 날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려는 시도는 가족에 대한 나의 책무로 가로막혔고, 여행은 진정으로 니체적인 무언가가 되는 대신 니체를 기리는 휴가로 서서히 변모했다. 내게 그런 세속적인 삶으로의 점진적 쇠퇴를 막을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음이 증명되었다.(234쪽)” 그럼에도 저자는 니체가 사유의 결과를 담은 저서의 맥을 찾으려 노력했고, 니체의 삶을 정리하여 연관을 맺어보려 노력한 표시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가 질스-마리아를 탐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익숙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무대였습니다. 스위스의 생모리츠에서 이탈리아의 키아벤나(Chiavenna)로 연결되는 도로가 넘어가야 하는 말로야 고개(malojapass)는 해발 1,815m 높이인데, 영화에서는 말로야의 뱀(maloja schlange 혹은 maloja snake)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로야 고개의 서남쪽 브레가글리아(Bregaglia) 계곡의 습한 공기가 말로야 고개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 지상에서 500~700m 높이에서 구름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께 50m 정도의 구름이 말로야고개를 넘는 모습이 마치 뱀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구름은 대개 질스 호수 부근에서 사라지지만 때로는 생 모리츠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1924년 독일의 산악영화감독 아놀드 팬크(Arnold Fanck)가 영상에 담아내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고명섭 기자님의 <니체 극장> 이후로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읽은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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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경계선 -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어지는
아포 지음, 김새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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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연관이 있어 보이는 책들에 눈이 가는 경향입니다. 제목에서 보는 ‘경계선’은 국경을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국경이 있어서 슬픈 사연이 있나보다 싶었습니다. <슬픈 경계선>을 쓴 분은 타이완 출신 작가입니다. 대학에서 언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기자와 NGO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인류학을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지역에서 겪은 다양한 상황들을 통하여 경계로 인하여 생기는 정체성을 천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직접 방문하여 겪은 일이지만, 북한의 경우만큼은 남한을 방문한 것으로 가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은 일본의 영토로 되어 있는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읽다보면 한국을 제외하고는 현지의 중국인, 즉 화교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중국인들이 본토를 떠난 시기와 사연은 제각각인 듯합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설 때부터 국공내전 끝에 국민당쪽 사람들이 본토를 탈출한 것까지가 중국 본토 안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인하여 떠난 중국인들이 결국은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중국이 내세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따라 늘리고 있는 투자에 따라 다양한 중국인들이 몰려 사업기회를 찾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중국인들은 현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타이완 주변국가들을 책 속으로 끌어와 이곳 섬나라 한복판에 놓은 다음, 나란히 저울에 올려 직접 비교하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느껴볼 수 있길 바랐다(12쪽)”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과 마주했을 때 그저 하나의 시선이나 역사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고민하고, 누군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기보다는 직접 다가가 직접 보고 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기를 기대한다(16쪽)”라고 하였습니다. 인류학자가 되어 보라는 주문 같습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1부 모호한 경계선에서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과 미얀마,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 화교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한 나라에서는 타이완 사람들도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2부 시간과 기억의 경계선에서는 오키나와, 대한민국, 중국 조선족 자치구, 베트남, 보르네오 등의 나라에서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굳어진 경계로 인하여 받고 있는 고통을 다루었습니다. 한국의 경우가 유일하게 화교의 정체성을 다루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남북한이 통일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뿐더러 혹여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북한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있더라고 하는데 놀랐습니다.

3부 경계에 서있는 정체성에서는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의 화교들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홍콩을 중국 본토의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정부의 시도에 반발하는 홍콩사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이 2010년에 처음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홍콩사태가 빠질 수도 있겠다 싶지만, 금년 6월에 개정판을 내면서도 심도있게 다루지 않은 이유는 분명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 구현을 위한 발버둥을 이해해야 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경제적 도약을 이룩했고, 일본 역시 한국전을 계기로 전후복구에 성공하였던 것처럼, 타이완 역시 한국전을 계기로 본토로부터의 안보와 경계부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고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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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방정식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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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토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갈릴레오 연작의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552쪽에 이르는 두께 때문에 선뜻 집어 들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필치 때문인지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작을 하는 작가인 탓인지 <한여름의 방정식>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도 있으면서, 분명 색다른 점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선 익숙하다는 느낌은 사건현장이 퇴락해가는 바닷가 관광지 마을 하리가우라(가상의 마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화하면서 시즈오카 현에서 촬영을 했다는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이 무대라는 점, 여관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 등입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초등학생이 처음 등장한다는 점인데, 초등학생이 사건의 조역으로 등장하는 점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도쿄 경시청에서 수사에 개입하는 모양새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구요. 살인사건이 우연인지 아니면 계획된 범행인지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듯합니다. 즉 유가와 교수를 비롯한 경찰이 추론한 사인이 실험적으로 재현 가능한 일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구성을 다소 모호하게 한 것은 교헤이가 초등학생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나저나 아름다운 바다를 지키는 일과 해저에 있는 열수광상의 개발이라는 환경지킴과 개발이 상충되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 점에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특히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유가와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주장인 듯합니다. 하지만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이 가능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지킴이들 역시 개발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반론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경은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개발로 인한 환경피해에 대하여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환경 보호론자들 가운데 감성에 호소하는 비전문가들도 새겨둘만한 논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수사관의 집념 같은 것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종결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면 수사현장에서 은퇴한 뒤에도 사건을 뒤쫓는 집념을 읽을 수 있었는데,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집념을 가진 전직 경찰이 피해자가 된다는 설정에서 과연 그의 죽음이 자연사인지 아니면 타살인지도 분명치가 않아 보입니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도 모호하게 처리되는 듯합니다.

초등학생인 교헤이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유가와 교수의 배려가 느껴지는 것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처럼 페트병을 이용한 물로켓 실험을 통하여 바다 속 진경을 보여준다는 설정인데, 처음 보는 초등학생을 위하여 스마트폰을 버리기까지 하는 것은 오지랖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교헤이가 자연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훗날 자연과학자가 된다면 유가와 교수의 스마트폰이 제값을 한 셈이 될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이러난 추락사고로 은퇴한 경찰관이 죽음을 맞은 사건,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도 있는 사건이 쉽게 종결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으로, 과거의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고구마줄기 캐듯 뒤쫓아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작업을 하다보니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드러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형세인데, 이야기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의 대반전이 생뚱맞지 않도록 한 장치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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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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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무엇에 대하여 일단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간의 화제가 되는 장소는 물론 영화나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이 포함됩니다. 단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먼저 경험하는 경우는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경험한 적은 있습니다. 물론 세간의 평가와는 다른 느낌이 남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경우 출간되자마자 쇄를 이어가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 현상에 일조를 한 셈입니다. 하지만 출간되자마자 주문을 넣었으니  그동안 지켜온 저의 취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국 백서’라고 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호하는 책이 준비된다는 소문이 있고, 그런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이 준비된다면서 ‘조국 흑서’라는 별명이 붙은 책이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지난해 조국 사태에 대하여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진중권 교수님, 서민 교수님, 김경율 회계사님, 권경애 변호사님 그리고 강양구 기자님 등이 모여 대담을 나눈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처음 기획안이 나온 것이 금년 1월 28일이고, 최종 원고검토를 마친 것이 광복절인 8월 15일입니다. 그 사이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대담을 나누었고, 대담 내용을 7개의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앞부분에 해당하는 3개의 장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나머지 4개의 장은 지금의 집권 세력이 보이는 이유배반적인 행태를 비판하였습니다.

다섯 분 가운데 서민 교수님의 경우는 동업자이고, 기생충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은 인연이 있습니다. 강양구 기자님은 프레시안에 발표한 기사를 열심히 읽던 인연이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님 역시 미학분야의 책을 읽어본 인연이 있습니다. 당연히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쏟아내고 계신 촌철살인의 사회비판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님과 권경애 변호사님은 지난 해 조국 사태 이후에 처음 알게 된 터라 이번에 읽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통해서 처음 인연을 맺은 셈입니다. 물론 다섯 분 모두 대면하여 인사를 나눈 적은 없으니 인연을 맺었다고까지 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만, 앞부분에서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노무현 대통령 초기까지는 저 역시 진보 쪽에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미심쩍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고,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게 된 것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뒤였습니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도 뜨악했고, 취임식도 하지 않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이야기를 물밑에서 듣기도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맞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세계적은 추세로 보아 광우병은 소멸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출범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광우병 사태를 키워갔는데, 그런 상황에 과학자들까지도 과학적 견해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상황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당시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했던 과학자는 지금 정치판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8년 당시 광우병 파동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우리나라의 진보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던 제가 그 판을 잘못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끝장나고 있음을 우려하시는 다섯 분은 여전히 진보적 입장을 지키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고, 이 책의 기획에 흔쾌하게 동참하신 것은 진정한 진보적 가치를 사수해야 하겠다는 순수함의 발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는 데는 ‘이전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한 이때’,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싸움에 나선 다섯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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