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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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원 제목이 <All the Beauty in the World>으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이란 뜻일 듯한데 우리말로 옮기면 밋밋했을까요? 그래서인지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명을 달아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형, 톰을 위해라는 헌사에 이어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입사하여 경비 일을 시작하던 날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다보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1층과 2층 구조도 소개합니다. 이어서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메트로폴리탄을 찾았던 일이 이어집니다. 작가는 미술에 관하여 아는 모든 것들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했습니다. 좋은 부모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는 예술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뉴요커라는 잡지사에 입사하여 화려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비치는 직장생활이 화려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는 형이 죽은 뒤에 자신이 아는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고 했습니다. 형의 죽음과 전직이 어떤 맥락으로 연결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2장의 제목을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라고 잡은 것을 보면 형의 죽음이 작가에게는 웬만큼 큰 충격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관하여 쉽게 알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조금씩 내보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주민이 8496명이더라는 이야기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헤아린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시되는 미술품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작품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어떻든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어난, 즉 그려진 이탈리아 화가 베를린기에로(Berlinghiero)<성모자(Madonna and Child)>이며 가장 젊은 주민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1820년에 그린 <티부르시오 페레즈(Tiburcio Pérez y Cuervo)>라고 한 것 같은데, 사실은 <보르도의 황소> 연작 가운데 1825년에 그린 <나뉜 투우장에서의 투우(Bullfight in a divided ring)>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에 관한 미학적 관점에서의 서술보다는 미술관의 경비가 하는 업무, 경비들 사이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저도 미술은 잘 모르지만 유명하다는 몇 곳의 미술관에 가보기도 했고,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한 전람회에도 가보려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의 미술관에 갔을 때는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작품들을 꼼꼼하게 드려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는 유명 작품을 사진으로 찍는 모습을 본 현지 사람이 미술작품은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에 가보면 전시실에 서 있는 직원들을 보게 됩니다만, 그 분들에게 궁금한 점에 대하여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기고 했던 모양입니다.


미술작품을 어떻게 제대로 감상할 것인가는 늘 생각하는 문제인데, 작가의 생각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 낸다. 뚜렷한 특징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 어느 예술품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114)”


그런데 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을 근무한 끝에 미술관을 그만 두고 지금은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을 회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은데, 전직을 한 이유나 사정이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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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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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는 일본 동경과 니이가타 등을 돌아보는 문학기행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히구치 이치요, 하야시 후미코 등 4명의 일본 작가와 관련된 곳을 돌아보는 여행으로 로쟈 이현우 선생께서 동행하여 해설을 해주신다고 하여 기대가 큽니다. 저 역시 일종의 취재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나의 개인주의>는 이번 여행에 포함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록에 포함된 것으로 이번여행에서도 다루어진다고 해서 미리 읽어보았습니다. 책세상에서 나온 <나의 개인주의()>에는 옮긴이 김정훈님의 글과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록 문학론(), 나의 개인주의, 현대 일본의 개화, 내용과 형식, 문예와 도덕, 점두록 등이 수록되어 있고, 이즈 도시히코의 해제 소세키의 자기본위가 더해졌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소세키의 강연은 1910년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19세기말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사회가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을 즈음으로 현대적 시각에서 본다면 실감이 덜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이 강연록을 우리말로 옮기게 된 이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소세키의 작품을 즐겨 있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소세키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그의 평론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근본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학생들이나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많은 강연을 해보았습니다만, 소세키의 강연 방식은 독특한 듯합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자신의 속사정까지도 털어놓는 것 말입니다. 강연은 구어체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라서 쉬울 듯 하지만 시대적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이야기의 핵심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문학론>에서는 그의 영국유학에 얽힌 이야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요즘에도 국비로 유학을 하려면 원하는 사람이 신청을 하고 심사를 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문부성에서 선발되어 유학하라고 통보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싹을 키워가고 있던 시절이라서 일본 사회를 개조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인적 역량을 키우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데 착안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으로 유학한 소세키는 대학에 적을 두고 출석을 했던 것도 아니고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개인 역량을 키우려 노력을 했던 모양입니다. 문부성에서 요구한 목표는 귀국 후 고등학교 혹은 대학에서 교수해야 할 과목을 연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문학이 아니라 영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세키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학에 숙달하는 한편 문학연구에 뜻을 두고 서너달 대학에 청강하던 것을 그만두고 영문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용한 자금을 동원하여 서적을 구입하고 읽어서 공책에 요약해놓았는데 그 두께가 20c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귀국해서는 도쿄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위촉이 되어 강의를 하는 한편 <문학론>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개인주의>는 그가 교수가 되고자 지원했다가 실패한 학습원에서 행한 강연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도 영국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고 그의 개인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개인주의라 함은 타인본위의 상대적 개념인 자기본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자기본위의 생각이면서도 소세키의 개인주의는 도의상의 개인주의로서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놓고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상호주의적 개인주의를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는 비상시국이 아니라면 개인주의가 국가주의에 우선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로서는 쉽지 않은 내용을 공개리에 천명한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어지는 <현대 일본의 개화>에서는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하는 개화의 허와 실을 짚어내는 내용입니다. 추진동력이 어디에 있던지 일본의 개화는 주체적으로 추진되었던 반면 일본의 개화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피동적으로 추진되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의 첫 작품인 만큼 영국 유학을 통하여 형성된 그의 사고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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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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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죽음의 에티켓>은 독일의 언론인 롤란드 슐츠가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될 생의 마지막 여행에 대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죽음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 그리고 죽음을 맞는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충격, 그리고 장례식과 애도 그리고 애도 이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병리학을 전공한 저는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일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인간이 죽음을 맞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역사는 8,000세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인간이 출현한 뒤로 지구상에서 죽어간 인간들의 수가 2천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현생인류만을 포함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흔히 듣는다는 말도 처음 읽는 것입니다, 첫째는 과소평가라는데, 당면한 건강상의 문제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종의 교훈 주기인데, 모든 일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니 이제는 그렇다는 점을 깨달으라고 훈육조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해법제시인데, 이렇게 하면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것입니다. 중병으로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이런 조언들에 휩쓸려 이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흔히 영화를 보면 죽음을 맞는 순간에 고개를 떨어트리는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만, 감지할 수 있는 변화가 없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이들도 감정이 고조되면서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데, 슬픔을 내보이는 방식에도 차이나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곡비(哭婢)라고 해서 통곡을 하는 사람을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불교계에서는 지나치게 슬픔을 표하는 것을 말리는 경향입니다. 가족 친지들이 쏟아내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 망자 역시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쉬게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장례식도 치러보았지만, 장례 절차에는 많이 간여하지 않아서 그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은 제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만, 정말 많은 절차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장례식은 죽은 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모든 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이야.(163-164)’라고 이야기하면서 독일에서의 장례 절차를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한 일은 아버님 장례를 치룬 뒤에 어머님께서 주도하셔서 가족 납골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장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당사자는 물론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상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상실을 인생의 역사가 책 한 권이라면 어느 한 페이지에서, 갑자기 어느 한 줄에서 모든 미래를 위한 장들은 찢겨 나가 중단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답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삶을 정리했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터이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겪어야 할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상실의 충격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흔히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방도를 쉬이 찾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슬픔을 삭이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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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음 / 북파머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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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만난 책입니다.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에서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박애희 작가가 늘 힘이 되어주시던 어머니가 타계한 지 7년이 지나서야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책을 2019년에 발표했던 것을 독자들의 성원에 따라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판을 읽어보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가름할 수는 없겠으나, 일단 제목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과 각 장의 끝에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어머니에게 띄워 보내는 공개적인 편지글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도 새로이 썼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은 지금 이 책을 펼친 분이라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분이지 않을까 싶어 먼저 안부를 묻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오래 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끔은 두 분을 떠올리곤 합니다. 언젠가는 사모곡, 사부곡을 써볼 요량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은 틀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도 책을 냈고, 그 책들의 개정작업을 몇 번 해보았습니다만, 개정판에서는 아무래도 변화가 있는 부분은 들어내고 새로운 글로 채워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지면서 개정판을 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새 책을 써보셨더라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초판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는 상실을 겪은 사람으로서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당신도 그랬느냐고, 나도 그랬다고, 각자에게 주어진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며 오늘을 사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었다.’라면서 내 작은 글들이 당신에게 다정한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작가에게 어머니는 격려를 하고 작가의 일을 지켜보는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수시로 문자를 보내 자신이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딸이 하는 방송을 듣고 잘했다하고 칭찬해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시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했는데, 적어둘만 했습니다. 신혼시절 생일을 맞은 작가에게 시아버지가 문자를 보냈더랍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며느리에게 그런 문자를 보내는 멋진 시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멋진 일을 해본 적이 있던가 돌아봅니다.


작가가 엽엽한 것처럼 여섯 살배기 작가의 아들도 깜찍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흔까지 살 수 있겠어? 아니, 110살까지 살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더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엄마도 죽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노력해볼게, 아니, 꼭 그렇게 할게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절로 공감하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자료들에서 적절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데, 저는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책들이라서 작가의 책읽기의 깊이에 놀라게 됩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혈액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앓고 있어 골수이식술을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발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잠시 맑은 정신이 돌아와 가족들과 작별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소개할 호스피스 전문가의 책에서도 죽음을 맞기 직전에 맑은 정신이 돌아오는 현상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떠나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딸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개정판에 새로이 담았습니다. 부치지 못했지만, 영적 교류를 통하여 어머니가 받아보셨을 그런 편지를 말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을 담은 편지입니다. 저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사모곡을 적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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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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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 역시 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것을 보고 읽은 책입니다. 특히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여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대목을 인용하였는데, 저는 책을 모두 읽고서도 이 대목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건성 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창가의 토토>는 일본의 유명 방송인이자 사회봉사가로 활동하는 구로야나기 테츠코씨가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황금같은 시절이라 할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자연과 친구와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당시의 스승과, 아이들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한 수업내용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문부성의 허가를 받은 정규 학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대안학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전의 시기였던 것을 보면 상당히 선구자적인 그런 교육체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토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테츠코는 호기심이 많고 천방지축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만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던 것이지요. 그랬던 토토가 정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서 도모에 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들이 이끄는 수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화조 뚜껑을 덮어놓은 신문지에 뛰어든다거나 모래더미처럼 보이는 진흙탕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충동적이고 상황을 살피는 것보다 행동이 먼저인 점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일도 수월치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토토의 어머니의 입을 빌어서 일본인이나 조선인을 구별하여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정도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작가 자신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조선인 엄마가 아들을 찾는 소리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치 애달피 우는 듯했다.’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말미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 찾아가 위문을 하고, 이웃에 사는 남자들이 전장터로 떠나가고 일용품을 배급받는 어려운 상황을 짧게 적고 있을 뿐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은 한 줄도 적지 않았다거나 전후 일본의 사정까지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B-29의 폭격으로 도모에 학원이 불탔다는 이야기, “큰 집의 맏아들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며 풀썩 고꾸라져 전사하는 군인의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슬픈 광경이었다라고 적은 것은 전쟁에 대한 일본 국민, 특히 당시의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는지도 궁금합니다전쟁만 없었더라면 더욱 많은 학생들이 (고바야시) 선생님의 손을 거쳐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고 서글픈 마음뿐이라고 소회를 밝히는 것도 적절치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무렵에 창가족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소외된 있는 층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그래서 자신도 학교에서 왠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제목을 정했다고 합니다. ‘窓際族(まどぎわぞく)’이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우리말 그대로 번역하면 창가족정도의 의미로, 일본 기업이나 단체 직장에서 한직으로 몰린 사원이나 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따가 된 토토가 되나요? 도모에 학원에서는 왕따가 아니라 동무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었으므노 창가족이라 할 수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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