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유한성의 철학
오도 마르크바르트 지음, 조창오 옮김 / 그린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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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이 듦, 늙어감 등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늙어감에 대하여>도 그래서 골랐던 것인데, 읽어가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건너뛴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특히 인간의 오류 가능성, 우연성, 유한성에 대한 깊이 있는 저작을 발표해왔다고 합니다.

현대에 들어 특히 과학적-기술적 문명의 발전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저자는 의학, 기술, 경제 영역에서의 문화적 성과를 부정적인 것으로 유죄판단하기보다는 축복이라고 찬미하는 철학자라고 합니다. 우려할 바는 있으나 발전으로 인해 누리는 생활을 편리함을 폄하할 것까지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늙어감에 대하여>에서는 ‘유한성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잊고 사는 우리를 일깨우기 위하여 쓴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죽음이라는 존재가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85세 생일에 맞추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을 것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베츠는 ‘도대체 왜 생일이 축하되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생일축하는 사실상 죽음과 연관이 있는데, 언젠가 죽을 그날을 피해 왔다는 것을 상정하여 축하하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죽음을 맞더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이라는 진실을 감추기 위하여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1. 우연을 인정하고, 2. 시민성 거부를 수용하지 않으며, 3. 시가니 유한하다는 것, 4. 그렇다고 해서 우울할 이유는 없으니 ‘그래야만 해’보다는 ‘그렇지’하는 입장을 견지할 것, 5.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시기에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음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삶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에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목표로 삼은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읽기였던 셈입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젊어서 세웠던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아하게 늙어가는 일인 듯합니다.

특히 ‘시민성 거부의 거부’라는 소제목은 ‘1945년에 대한 한 철학자의 비평’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던 5월 8일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날 저자는 소련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자신이 겪어온 과정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정리하였습니다. 저자는 1940년 4월부터 1945년 3월 초반까지 아돌프-히틀러-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1937년 시작된 이 학교는 처음에는 10개로 시작하여 12개의 시설이 있었고, 2,500~3,000명의 학생이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나이에 따른 히틀러 소년단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시민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나치-이상론자를 위한 혁명적 교육이 이루어져졌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에 대하여 저자는 “전체주의적인 이상론자는 소위 더 상위의 것을 위해 ‘강인함’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반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중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 그의 개별성, 그의 시민적 감수성, 그의 인간성과 도덕 모두가 희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36쪽)”라고 적었습니다. 시민성을 거부한 나치교육의 목적이었습니다. 전후 서독에서 활동한 적지 않은 명망가들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시민성 거부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마르크바르트와 서문을 썼던 베츠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담의 중간에 나오는 ‘늙은 저는 더 이상 특별히 희망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미래에 열려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냐하면 나에겐 더 이상 남은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진 미래에 자신의 기대를 맞출 때 늙은이의 영리함이 드러나게 됩니다.(103쪽)“라는 부분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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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힐리 고전 시의 이해 - 케냐, 탄자니아 해안 도서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학술총서 6
권명식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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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어 읽게 된 책입니다.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 동부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을 아프리카 여행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면서 공부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책읽기입니다. 아프리카에는 2,090 종류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와힐리어는 다는 아프리카 언어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역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와힐리문명은 아프리카 동쪽 코뿔소의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 남부 모가디슈에서 마다가스카르섬이 보이는 모잠비크에 이르는 아프리카대륙의 동부에 자리 잡았다. 스와힐리어가 나이저-콩고어족에 속하는 반투어인데, 이는 기원전 3,000년부터 서기 400년 무렵에 이르기까지 카메룬과 케냐를 잇는 선을 따라 반투인들의 이주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동부지역은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를 통하여 아라비아반도, 인도, 말레이반도에 이르기까지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스와힐리어는 반투어와 아랍어가 혼합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스와힐리문명에서의 시작(詩作) 활동은 정신적 고양, 수신과 교육 즉 진리 추구의 일환, 형식미의 즐거움과 의미의 모호성을 보이는 언어유희 등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다양한 형식을 갖는 시의 구조는 음절수와 각운에 묘미가 있다고 합니다. 동일한 수의 음절이 반복되면서 리듬을 만들어내고, 소절의 맨 끝이 같은 음으로 끝나면서 역시 동일한 반복의 운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스와힐리의 고전시는 가장 오래된 시인으로 구전되는 후모 리용고(Liyongo Fumo, 1150-1204)를 비롯하여 포르투갈인의 내습과 지배와 아랍세력의 반격을 거칩니다. 이 시기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슬람에 대한 찬양이 이루어지는데, 사이드 아이다루시(Siyid Aidarusi b. Athumani)의 하음지야(Hamziya), 무웽고 빈 아투마니(Mwengo bin Athumani)의 탐부카(Tambuka), 아부 바카리(Abu Bakari)의 ‘파티마’와 ‘카티리푸(Utendi wa Katirifu) 등이 있습니다.

17세기 무렵이 파테를 중심으로 스와힐리 고전 문학의 황금기라고 합니다. 사이드 압달라 빈 나시르(Saiyd Abdallah b. Nasir)의 영혼의 각성 등 파테의 부와 영화를 바탕으로 지상의 영화가 무상하고 덧없음을 노래한 철학적 시들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Hurimiza zitu zote / watazikwa watu wote(모든 것에 종말이 있나니, / 모든 사람이 땅 아래 묻히리라.)’라는 표현도 있다고 합니다.

1800년 들어 파테가 몰락하고 몸바사를 중심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몸바사(Mombasa)는 ‘만남의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몸바사가 낳은 위대한 시인 세 명이 있는데, 1776년에 태어난 무야카 빈 하지 알 가싸니(Muyaka bin Hajji al-Ghassan)는 향수제조자라는 뜻으로 아압어의 attar(향수)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무야카는 영웅에 대한 찬양이나, 이슬람 종교형성 시기에 나타났던 이야기들의 신성화 및 신화화, 작가들이 몸담았던 사회의 포괄적인 사건들을 노래했던 이전시기의 시문학과는  달리 개인이 바라본 세계, 특 사적인 세계를 문학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금기시했던 남녀상렬지사를 노래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의 정표를 보냈는데, 그것을 남에게 까발린 여인을 한탄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근세들어 서구열강의 침입에 대한 스와힐리 사람들의 정서를 나타내는 시들까지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점은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와힐리의 고전시를 처음 접하면서 느낀 점은 바로 이런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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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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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연 완전범죄가 가능할까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에 따라서 살인사건을 저지른다고 해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범행이 드러나기 마련인 듯합니다. 하물며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습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습하는 천재 수학교사의 활약(?)과 그것을 꿰뚫는 천재 물리학교수의 추리과정을 그려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수학한 친구이고 서로의 재능을 잘 아는 관계라면 더욱 미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불행한 사건은 잘못된 만남이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사건은 첫 결혼에 실패한 야스코가 호스티스로 일하면서 딸을 키우다가 클럽에 드나들던 외제차 세일즈맨 도미가시의 유혹에 넘어가 재혼한 것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그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요? 도미가시의 헤픈 씀씀이는 회사돈을 유용한데서 비롯한 것이었고, 그런 사실을 오래 감출 수 없는 법이지요.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도미가시의 본성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야스코는 도미가시와 이혼하고 새 출발을 했지만, 도미가시가 찾아와 다시 합치자고 애걸하거나 협박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연은 신중하게,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야스코는 딸 미사토를 걸고 재결합을 협박하는 도미가시를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보면 약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여자도 큰일을 저지를 수 있는 모양입니다. 우발적이라고는 하지만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모녀에게 옆집에 사는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은 금세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당연히 야스코와 주변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초동수사를 벌이게 되는데, 이시가미가 마련한 알리바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경찰은 이시가미가 짜둔 알리바이를 뒤쫓으면서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 등장하는 경찰은 구사나기입니다. 당연히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교수가 수사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알고 보니 세 사람은 데이도 대학 동문인데다가 동기이기도 합니다. 유가와와 이시가미는 자연계열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이지만, 구사나기는 인문계열이라서 이시나기는 그를 모르고, 유가와는 동아리를 같이하면서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읽어가다 보면 이시가미가 설계한 알리바이 조작은 아주 치밀합니다. 경찰의 수사가 야스코에 집중되지만 사건 당일 그녀의 알리바이, 즉 딸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가 노래방까지 갔다는 그녀의 알리바이는 확실한 증거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천재 이시가미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합니다. 도미가시와 헤어진 야스코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구도가 등장한 것입니다. 결국은 그 사이에 구도는 상처를 하고 혼자가 되었는데 야스코와 결혼을 생각하고 찾아왔던 것이고, 이시가미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생각 같으면 배신감이 치를 떨고 야스코의 범죄사실을 경찰에 알릴 법도 합니다만, 이시가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자수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야스코의 범행을 감추어보겠다는 지극한 사랑을 받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이 부분이 이 사건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극적인 반전은 그 뒤에 있다고 할 것 같군요. 살신성인의 사랑은 무시되면 안되는 것이니까요.

유가와는 친구인 이시가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건의 핵심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친구의 범행을 덮어주는 일은 없었던 셈입니다. 사실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가 결정적 실수(?)가 되기도 하는데, 이시나기의 완벽한 알리바이 설계도 구사나기에게 툭 던졌던 ‘선입견의 맹점을 찔러 수학 시험문제를 만든다’는 한 마디가 유가와 교수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뻔한 것 같던 이시나기의 알리바이 설계가 왜 견고하게 작동하여 경찰을 혼란에 빠트렸던 것인지는 마지막 반전 부분에 이르러서야 유가와교수에 의하여 설명되기 때문에 저 역시 구사나기처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시나기가 야스코의 범행을 덮으려했던 결정적 이유도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아무래도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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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기억력을 훔쳐라 - 한국 최초 국제 기억력 마스터가 전수하는 "기억력"와 "두뇌 개발"의 모든 것!
정계원 지음 / 베프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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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형성과 회상과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 최초의 국제 기억력 마스터가 되기까지의 훈련과정을 담았다는 설명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저자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면서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술을 통하여 기억을 갈무리하고, 필요할 때 인출해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은 셜록 홈즈가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궁전 짓기’라는 기억술 기법은 멀리 그리스 시대의 시인 시모니데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회장이 강풍에 무너져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을 때 시모니데스의 기억에 따라 사망자의 신원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DNA검사를 통하여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서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이 있을 때가 아니니 시모니데스의 기억이 완벽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니얼 L. 샥터교수는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에서 기억이 일으키는 대표적인 오류로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誤歸因),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의 7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억의 오류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며 누구에게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궁전 짓기에 의지한 기억술은 대중이 보기에 엄청난 재능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기억술이 타고나기 보다는 훈련에 의하여 얻어지는 후천적인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이런 기억술의 훈련 정도를 서로 겨루는 과정이 세계 기억력 스포츠 협회에서 주관하는 기억력 대회에서 겨루는 종목은 모두 열 가지라고 합니다. 1. 15분간 이름-얼굴 기억하기, 2. 30분간 이진수 기억하기, 3. 1시간 동안 숫자 기억하기, 4. 추상적 그림 기억하기, 5. 5분간 숫자 기억하기, 6. 1시간 동안 카드 기억하기, 7. 5분간 역사연도 기억하기, 8. 15분간 무작위 단어 기억하기, 9. 불러주는 숫자기억하기, 10. 카드 한 번 빨리 기억하기, 등입니다.

사실 이런 기술을 통하여 기억능력을 키우고 겨루는 것은 개인적인 성취감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술을 통하여 잘 갈무리한 기억들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의 세기 히로시 교수는 <나를 위한 교양수업>에서 “얻은 지식들을 횡적을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기억술로 얻은 지식들은 그저 자기 과시욕을 채우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 교수가 앞서 말씀드린 ‘기억의 궁전 짓기’ 기법을 통하여 얻은 기억들을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기억의 집>에서 설명한 것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셜록의 기억력 훔치기’가 아니라 셜록이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기억에 저장했고, 이를 회상하여 범죄수사에 활용할 수 있었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겠습니다. 어떻든 셜록은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쓴 소설의 주인공에 불과한 것이니 말입니다. 저자처럼 기억력 마스터가 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기억력을 키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단 중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 기억력 천재는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재능을 후천적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타고났을 뿐 아니라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했던 것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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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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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524쪽에 이르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깔아놓은 다양한 장치들이 볼 만 합니다. 우선 제목을 따온 라플라스 이론이나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과 같은 물리학 분야의 이론에 최신 뇌과학을 접목하여 신인류의 등장 가능성까지 다루었습니다.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가 2012년에 발표한 <제노사이드>에서 신인류의 등장을 점친 바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노사이드>에서는 신인류의 등장을 두려워한 현생인류의 저항을 그렸다면 게이고는 신인류의 등장에 대한 현생인류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라플라스 이론은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라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의 주장입니다. 다만 현재의 뇌과학의 수준으로는 아직도 ‘라플라스의 마녀’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여러 건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3건은 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입니다. 사건들은 서로 엮여 있습니다만, 황화수소가 살해의 핵심 요소로 등장합니다. 다만 일본에서도 토네이도가 발생하는지는 궁금합니다. 화산과 온천이 많은 일본이라는 특별한 지리적 여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문제는 화산가스라고 하는 황화수소를 어떻게 살인도구로 쓰는가 하는 문제인데, 라프라스의 악마가 존재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편 피를 나눈 자녀와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역시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가족 학대 경향의 확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특별한 상황으로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는 살인사건을 뒤쫓는 사람들이 두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일단은 최초의 사건을 인지한 경찰과 그를 도와주는 지구과학자가 있고, 이어서 사건을 일으키는 자를 보호하려고 뒤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은 두 집단이 하나로 정리가 되기는 합니다만, 사건의 본질을 미궁에 빠트리는 것은 정부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뒷맛이 고약하게 남는 부분입니다. 즉 라플라스의 천재를 만들어내려는 도전이 국책과제라는 이유로 사건을 덮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입니다.

더하여 사고로 인하여 뇌사상태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하여 뇌신경 재활을 위한 신의료기술을 적용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정상적인 친딸에게 수술을 행하여 같은 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인 윤리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는지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바에 따르는 것으로, 개인은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사회라는 집합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행동은 물리학의 법칙을 적용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범행을 도와줄 공범을 확보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사람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기억에 관한 언급도 주목할 만합니다. “인간의 기억에는 종류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시계, 손수건, 책상 같은 물품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전혀 별개의 계통이 사용됩니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더라도 모국어나 물건의 사용법, 규칙이나 관습은 잊어버리지 않는 건 그 때문이지요. 기억상실의 경우, 경력이나 인간관계를 잊어버리는 게 일반적입니다.(396쪽)” 인간관계를 잊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지 확인을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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