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연 - 열여덟 번째 봄
장아이링 지음, 홍민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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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10월 말에 펀트래블의 중국문학기행의 후반은 상하이에서의 일정이었습니다. 상해 일정의 첫날 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살펴보고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하는 애국적(?)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두 번째 날 아침에는 예원이라는 중국정원을 구경하고 그 동네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상하이수청(上海書城)이라는 서점에 갔는데, 4층 건물이 온통 서점이어서 놀랐습니다. 이어서 서가응서원을 방문했다가 장아이링의 소설 ,(.)를 촬영한 우캉맨션과 근처에 있는 바진 고택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귀국 후에 장아이링의 반생연을 읽게 되었습니다.


장 아이링(張愛玲 )1920년 청나라의 장관이었던 장페이룬(張佩綸)과 리홍장(李鴻章)의 장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 장지이(张志沂)와 청나라 해군 장성 황이성(黄翼升)의 손녀 황이판(黄逸梵)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28년까지 텐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족이 상하이로 이주하면서 1939년까지의 청년시절을 상하이에서 보냈습니다. 1939년 장학금을 받아 영국의 런던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홍콩대학 예술학부로 이적하였으나,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1942년 학업을 중단하고 상하이로 돌아왔습니다. 상하이에서 1952년까지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선정적인 단편소설과 중,장편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상하이를 점령한 뒤에 하향하였지만 당에서 요구하는 바를 다하지 못하여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1952년 중단된 학업을 계속한다는 구실로 홍콩으로 이주하였다가 1955년 난민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8열여덟 번의 봄(十八春)이라는 제목으로 상하이의 이바오(亦报)라는 신문에 연재된 소설로 1950년에 출판사 황관(皇冠)에서 출간되었던 것을 1966년 미국에서 개정하여 반생연(Half a Lifelong Romance)이라는 제목으로 타이완에서 재출간되었습니다. 2014년 카렌 킹스베리가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반생연열여덟 번의 봄의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반생(Half a Lifelong)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한 끝에 반생이 삶의 절반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통상은 삶의 과정에서 살아온 날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반생연의 줄거리는 센스쥔(沈世鈞)과 구만전(顧曼楨)이라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는 과정은 한 마디로 한 편의 막장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은 아내가 신문소설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독후감을 쓰면서 찾아보니 처음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이라고 해서 닭살이 돋았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 상하이와 스쥔의 본가가 있는 난징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스쥔은 대학친구 주수후이(許叔惠)가 일하는 회사에 취직하여 만전을 만나게 됩니다. 셋이서 어울리는 사이 스쥔과 만전을 서로에게 끌리면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까지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만전의 가족들은 언니 만루가 무희로 활동하면서 번 돈으로 살아오다가 나이가 든 언니가 주홍차이(祝鴻才)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홍차이가 만전에게 눈독을 들였던 것이 화를 부르게 됩니다.


만전과 결혼을 결심한 스쥔이지만 만전의 집안과 가까운 장무진이 중간이 끼어들면서 오해가 생겨 두 사람이 다투게 되는데, 그 사이에 홍차이가 밖으로 나도는 것이 불안했던 언니 만루의 지원을 받아 홍차이가 만전을 강간하고 감금한 것입니다. 강간의 결과 아이까지 들어서면서 스쥔과 만전은 재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스쥔의 집에서도 형수의 사촌동생 쉬추이즈(石翠芝)와 혼담을 추진하지만 스쥔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이펑이라는 사람과 약혼까지 했다가 만전과 함께 난징을 찾아왔던 수후이에게 끌린 추이즈가 약혼을 깨고, 이펑은 추이즈의 친구와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만전을 만날 수 없었던 스쥔은 만전이 장무진(张慕瑾)과 결혼한 것이라 오해하고 추이즈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스쥔이 만전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처럼 추이즈 역시 수후이를 마음에 담고 살아왔던 모양입니다.


스쥔과 만전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기간이 4년이고, 14년 뒤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18년의 세월이 반생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수쥔과 만전을 둘러싼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 과정은 신문소설을 끌어가는 힘이었다고 한다면 형부 홍차이가 언니 만루의 도움을 받아 만전을 강간하고 임신을 시키기까지 한다는 설정을 막장 연속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중국 전통의 가정형태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만난 스쥔과 만전이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사이 스쥔의 아내 추이즈 역시 오랜 세월 마음에 담고 있던 스후이와 이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매조지하는 것은 만전이 형부 홍차이가 만전을 강간하고 감금하는 등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와는 달리, 이야기의 마무리가 애매모호하다는 점도 짚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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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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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펀트래블의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하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여행길에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이 세상에는 지금 최대한 많은 지적 낙관주의와 진정한 행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돈키호테 같은 여행길에 나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해 1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하게 된 것은 필자만의 행복추구의 일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작가의 여행길은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를 거쳐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이어집니다. 작가가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이유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나온 행복경제학 연구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루트 벤호벤 교수를 만나 행복을 연구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를 듣고 어디를 찾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던가 봅니다.


세계행복데이타베이스(World Database of Happiness, WDH)는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 대한 연구결과를 수집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의 질을 전체적으로 호의적으로 판단하는 정도로 정의된다고 합니다. 행복은 정서의 향락적 수준(즐거운 정서가 지배하는 정도)와 만족감(욕구의 인지된 실현)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2023년에는 행복에 관한 16,000개의 과학출판물을 분석하여 23,000개의 분포결과(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24,000개의 상관관계 결과(더 많은 행복과 더 적은 행복과 관련된 요인에 대해)가 추출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목록을 만드는 데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곳에서 얻은 자료와 자신의 육감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행복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앞서 들은 10개의 국가들이 선정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행복은 끝없는 관용에서 온다라고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조용한 만족감이다라고 정리되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여행에서 만난 제한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나라의 행복에 대하여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이어진 나라는 부탄입니다. 행복이 국가의 최대 목표라는 부탄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2024년 사이에 143개국의 국가행복지수의 평균점수에 따른 국가행복지수의 순위 60위 안에 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1위는 핀란드이고, 2위는 덴마크, 3위는 아이슬란드입니다. 작가의 여행이 시작된 네덜란드는 5위에 올라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10개 나라들 가운데 60위 안에 드는 나라는 네덜란드(5), 아이슬란드(3), 스위스(13), 영국(23), 미국(24), 태국(49) 등이며 부탄, 몰도바, 인도, 카타르 등은 60위 안에 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작가가 몰도바를 여행한 이유는 행복한 곳을 돋보이게 해줄 정도로 불행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몰도바는 행복의 지도에 포함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을 찾아 여행하기 위하여 WDH를 참조했다고 하면서 여행지에서는 상위에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선택되지 않은 것을 보면 행복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방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그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늠한다는 것도 적절한가 싶기도 합니다. 면담할 사람도 알음알음으로 선택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지도라는 제목이 적절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기억할만한 대목은 낯선 땅을 떠돌 때,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의,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편안한 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17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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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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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寒夜, 1947)><(, 1931)><휴식의 정원(憩園, 1944)>을 잇는 바진의 가족소설의 완결편으로 아주 주간이 선정한 ‘20세기 중국소설 100에서 11위에 올라있습니다. 1949년 이후 바진은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맡는 한편 산문과 보고문학의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로 좌경적 문학평론을 주도했던 야오원위안(姚文元)1958년부터 여러 편의 평론을 통하여 바진을 개인주의, 무정부주의, 애정지상주의에 빠져 있으며, 반동적인 극단적 개인주의자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바진은 이에 대하여 작가의 용기와 책임감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마땅히 독립적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작가는 단순한 스피커가 아니며, 부화뇌동할 수도 없다. () 문학에는 선전 및 교유적 역할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선전이 문예는 아니며, 문예는 자신도 모르는 외적 영향으로 인간의 영혼을 빚어내는 것이다.” “생활에 깊이 파고 들어가 관찰을 하고 소재를 선택하는 바, 모두 작가 자신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지 누군가의 지도에 의해 안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바진의 입장은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반동권위, 무정부주의자, 30년대의 낡은 인물, 반혁명분자 등의 죄명으로 노동개조형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차가운 밤>1944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6년에 완성된 바진의 마지막 장편소설입니다. 국민당 정부가 피난해 와있던 충칭에 머물면서 구상한 작품으로 항일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였습니다. 치솟는 물가, 팽배해진 염전사상, 국민당의 실정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감이 고조에 이르던 당시의 분위기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족소설 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차가운 밤>에서는 주인공 왕원쉬안(汪文宣)과 아내 쩡수성(曾樹生)을 중심으로 어머니(汪母)와 아들 샤오위안(小宣)으로 구성된 단촐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왕원쉬안과 쩡수성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부부입니다. 젊어서는 매사에 열정적이던 두 사람은 전화(戰火)를 피해 충칭으로 이주했을 때는 열악한 사회여건을 버터야 했습니다. 왕원쉬안은 편집 업무를 하는 박봉의 공무원이었고, 쩡수성은 은행에 다니면서 비교적 넉넉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내기로 하면서 그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반대한 어머니는 이런 며느리가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왕원쉬안은 어쩡쩡한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부부 사이에서도 충돌이 잦아졌습니다. 은행에서는 쩡수성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상사 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쩡수성은 남편에 대한 사랑은 여전합니다.


항일전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으로 몰립니다. 그 무렵 왕원쉬안은 각혈을 하는 등 폐결핵의 증상이 점차 심해집니다. 한편 쩡수성의 상사 첸은 난저우의 책임자로 옮겨가면서 쩡수성에게 함께 갈 것을 권합니다. 쩡수성은 남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리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므로 첩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고는 난저우행을 결정합니다. 결국 시어머니와 쩡수성 모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어머니였습니다. 쩡수성이 란저우로 떠나던 새벽 그녀를 배웅하는 왕원쉬안은 무섭게 차가운 밤이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내가 난저우로 간 뒤로 왕원쉬안의 병세를 점차 나빠지고 일본이 패전한 뒤에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난저우로 간 쩡수성은 생활비를 꾸준히 보내왔고, 일본이 패전한 뒤에 청두로 돌아왔지만 남편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습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왕원수쉬안은 직장에서 왕따 당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임을 보여줍니다. 반면 쩡수성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회성도 좋은 신세대 여성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은 깊어 전통적인 면이 남아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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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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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일에서 25일까지 펀트래블의 로쟈와 함께 하는 중국현대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24일에는 상하이에 있는 바진의 고택을 찾아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고택에서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는 덕분에 정원과 고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진(巴金, 1904~2005)은 루쉰(鲁迅, 1881~1936), 라오서(老舍, 1899~1966)와 함께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히고 있습니다. 쓰촨성 청두의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집에 사는 집안 어른이 20여명, 형제와 자매가 30명이 넘고, 하인 4~5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빈부를 떠나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하는데, 어머니의 이런 가르침이 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 살 때 어머니가 그리고 열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겉으로는 평화롭고 우애가 넘쳐 보이는 속내로는 증오와 알력과 투쟁이 넘치는 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도 <()><휴식의 정원> 등의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1919년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의 기치를 내세우고 과학과 민주를 주창하는 5·4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 바진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면서 급진적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1923년 난징에서 유학한 뒤에는 상하이에서 반봉건 투쟁에 몸을 담았다가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크로포트킨, 버크만 등의 저작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1928년 파리에서 첫소설 <멸망>을 완성하여 귀국하여 1929<소설월보>에 발표하여 큰 반향을 얻은 뒤로 20여년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게 됩니다.


<휴식의 정원(憩園, 1944)><(, 1931)><차가운 밤(寒夜, 1947)>과 함께 가족소설이라는 현대문학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세 작품은 중국 전통의 대가족제도가 핵가족으로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퇴색하면서 가족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변해가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세 작품을 거꾸로 읽었습니다만, <휴식의 정원(憩園, 1944)은 가족해체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었습니다.


<휴식의 정원>1937년 루거우차오(卢沟桥)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1941년 일본이 광둥(广东)까지 밀고 들어와 교착상태에 빠진 1942년 국민당이 지배하던 청두(成都)를 배경으로 합니다. 휴식의 정원(憩園)이라고 하는 대저택은 화자의 친구인 야오궈둥(姚國棟)이 양멍츠(楊夢痴) 사후에 네 아들이 살던 것을 구입한 것입니다. 양멍츠 생전에는 네 아들의 가족들이 살던 대저택이었지만, 야오궈둥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적은 하인들과 살고 있고, 양멍츠의 네 아들 역시 집을 팔고서 각자 작은 집을 사서 나갔으니 대가족의 해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 야오궈둥의 전처의 친정어머니 자오()의 통제를 받고 있는 점이 대가족과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화자는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萬昭華)와 방탕한 생활 끝에 집에서 쫓겨난 양멍츠의 셋째 아들의 둘째 한얼(寒兒)이 보여주는 사랑을 북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야오궈둥의 아들 후()가 외가의 힘을 빌어 학업을 등한시하고 마작이나 경극에 매몰되어 가는 것을 야오궈둥이 방치하는 모습에서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였던 것인데, 자오부인의 위세는 야오궈둥 일가를 압도하여 비극을 자초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휴식의 정원(憩園)이라고 하는 대저택의 옛주인이나 새 주인 모두 세상의 변화하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갈무리할 대목으로는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가 화자가 쓰고 있는 소설에서 보여주었으면 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좀더 따듯하게 만들어주세요.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요.(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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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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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인용된 것을 발견하고 읽게 된 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치유의 책읽기와 관련된 글이었습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말기 유방암으로 죽음을 앞둔 여성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미야노 마키코는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우연을 탐구해왔습니다. 한편 이소노 마호는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만난 문화인류학에 충격을 받아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신체, 섭식, 의료, 불확실성을 탐구해왔습니다. 두 사람은 미야노 마키코가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스무 통 편지를 주고 받게 되는데, 주로 이소노 마호가 질문을 던지고 미야노 마키코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편지가 오갔습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제안은 미야노 마키코가 꺼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몸속에서 자라고 자라는 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병을 앓는 삶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이소노 마호씨와 함께 파고들어보자는 학문적 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 투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가면서 생과 사는 물론 신체와 위험성 등을 이야기하던 중에 미야노 마키코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에서 이소노씨는 미야노씨가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완치될 것으로 갑자기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의료가 발전해서 망은 암환자들이 완치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에 내용도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다면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내놓았습니다.


미야노씨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이야기한 죽음은 분명히 다가온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26)”를 인용하면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말도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병세의 진행에 따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지 가운데 암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지금처럼 살아가는 인생, 부작용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 그리고 매우 무거운 부작용을 앓으며 간신히 연명하는 인생 등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상정하였습니다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요즈음에는 치료방향을 결정하는데 환자의 생각이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라는 말을 듣다보면, “고르기 힘들어, 선택하기도 지쳤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환자의 상태와 그에 따른 치료방향의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진단받게 된 환자는 자신에 닥친 불행한 상황에 절망하기 쉽습니다만, 미야노씨는 나는 불행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답은 불운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였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무탈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암을 비롯하여 삶을 어렵게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렇듯 닥쳐온 어려움에 분노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수용하고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놓아버리는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소노씨가 미야노씨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오직 너만이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그 글이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마.” 또한 미야노 씨의 몸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무기, 글로 세계를 그리는 힘은 아직도 당신 속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힘이 제 눈에 보이는 한 저는 미야노 씨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도망치지 마. 더 할 수 있어.’라며 당신의 손을 잡아끌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역할입니다.(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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