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평점 :
아내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사람 보는 눈>의 작가는 미술담당으로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취재해 오면서 취재본부장을 지낸 손철주 기자입니다. 1998년에 발표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2017년에 개정신판을 낼 정도로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저는 <사람 보는 눈>이 작가의 처음 읽는 책입니다.
작가는 앞서는 글에서 “사람 그림들을 죽 펼쳐놓고 보면서 새삼스레 깨단한다. 그림 밖의 사람은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고, 그림 속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이럴진대 사람 그림을, 그려진 사람으로만 여기겠는가. 보고 또 볼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깨단하다’의 뜻이 궁금해졌습니다. 누리망에서 찾아보니 ‘오래 생각나지 않다가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고 분명히 알다.’라고 합니다.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는 글에서 발견한 ‘깨단하다’처럼 책 곳곳에서 처음 듣는 우리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모두 39꼭지의 글을 ‘1부 같아도 삶 달라도 삶’, ‘2부 마음을 빼닮은 얼굴’, ‘3부 든 자리와 난 자리’, ‘4부 있거나 없거나 풍경’이라는 4개의 작은 제목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1부는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뜻 같습니다. 2부에서는 그림 속 얼굴에 마음까지 담아낸 그림들을 소개하는 것, 3부는 그림에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4부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 그림을 소개한 것은 3부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김홍도의 세마도였습니다. 버들가지가 늘어진 것을 보아 봄이라고 했습니다. 봄이 되었으니 말을 못으로 이끌어 씻어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단원은 “문밖의 푸른 못물로 봄날에 말을 씻고(門外綠潭春洗馬) / 누대 앞의 붉은 촛불을 밤에 손님을 맞는다(樓前紅燭夜迎人)”이라는 당나라 한굉의 시의 한 구절을 적어놓았습니다. 부귀와 공명을 버린 채 한소하게 사는 자의 여유를 노래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4부에 있는 ‘포도알 탱글탱글하듯’에서는 월성 김씨가 아들 인환에게 준 「포도」라는 그림을 설명하면서 우리문학에 나타난 포도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과 잘 어울린다. 바다 건너 존 스타인벡의 강퍅한 ‘분노의 포도’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231쪽)”라고 했습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는 7월에 익어가는 청포도를 노래하였으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포도가 등장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존 스타인벡은 “사람들의 눈에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포도가 하나 가득 가지가 휘게 무르익어 간다. 수확의 때를 향하여 알알이 더욱 무르익어 간다.”라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에 들어간 포도는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결이 다르다고 한 것은 틀림이 없으나 이육사의 청포도와 존 스타인벡의 포도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4부에 있는 ‘작은 그림에 갸륵한 소망’에서는 심사정이 「초충도」에 그린 양귀비는 꽃의 여왕이라고 한답니다. 모란을 꽃의 왕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양귀비를 꽃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당나라 현종의 사랑을 받은 양귀비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답니다.
역시 4부에 있는 ‘손 타지 않아 발랄하다’에서는 심사정의 「국화와 돌」에서는 국화에 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월을 국월(菊月)이라 한다는데, 도연명이 9월 9일 중양절에 술이 없어 대신 국화꽃을 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화는 은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란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 자줏빛 국화는 ‘술에 취한 신선’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