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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인간 실격 ㅣ 더클래식 큰글씨 세계문학 39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클래식 / 2018년 1월
평점 :
<인간실격>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일본의 무뢰파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달려라 메로스>, <사양>에 이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적 중편소설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 실격>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 요조가 남겼다는 3건의 수기를 입수한 작가가 서문과 후기를 붙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서문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그저 후기에서 적은 것처럼 1935년 무렵 교바시에 있는 스탠드바에서 마담을 하던 이를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요조라는 사람이 남겼다는 3건의 수기와 3장의 사진을 건네받았고, 그때 받은 3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서문에 적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유년시절의 사진으로 귀엽게 생겼다는 인상과는 달리 볼수록 꺼림칙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적었고,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로 엄청난 미남이라는 느낌과는 달리 어딘가 괴기스럽고 섬뜩한 느낌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진은 아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생겼는데 소름끼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세 개의 수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암시하는 듯합니다.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수기에서 요조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가족은 물론 하인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광대짓을 일삼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두려워 늘 벌벌 떨고 일간으로서 자신의 언동에 자신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갖지 못한 채 혼자만의 번민은 가슴 깊은 곳의 작은 상자에 감춰 두고서,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기며 그저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척하여 저는 점점 익살스러운 괴짜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17쪽)”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알려졌으면서도 공부보다는 웃기기에 열중하면서 보냈습니다. 결국 존경을 받기보다는 장난꾸러기로 보이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한 것입니다.
두 번째 수기에는 도호쿠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부터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별로 공부도 하지 않고 진학한 중학교에서도 초등학교 때와 별다를 것이 없는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번에는 다케이치라는 친구가 그의 속내를 정확하게 꿰뚫고 보는 바람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다케이치는 요조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것과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줍니다.
요조는 4학년에 되면서 도쿄로 올라오게 되는데 아버지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쿄에 집을 장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술학교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학교도 빼먹고 화방에 드나들다가 6살 연상의 호리키 마사오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그리고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됩니다. 요조의 운명은 호리키와의 만남으로 크게 뒤틀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젊은이가 흔히 빠지게 되는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라 할까요?
학교는 거의 빼먹고 학과공부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희한하게 시험 답안은 제대로 쓰는 재주가 있어 고향의 부모님을 속일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연상의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처지가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것입니다. 그래도 그에게 반한 여성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쓰네코라는 여성과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여자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고향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넙치를 통해서 눈곱만큼 생활비를 보내주는 눈치였지만, 어느날 넙치의 집을 탈출하여 호리키를 만나러 가면서 요조의 삶은 바닥으로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여자들의 기둥서방 비슷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형이 찾아와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말았습니다. 요조는 인간으로써 실격이 되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의 고뇌의 항아리가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던 것으로 치부하게 되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향이 도호쿠의 바닷가 온천으로 낙향하고 말았는데, 스물일곱 살이면서도 마흔이 넘은 모습을 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수기가 쓰인 시기를 일본의 군부가 슬슬 노골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1935년 무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조에 대해서는 마담의 입을 빌어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 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하느님처럼 착한 친구였어야”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제 앞가림을 제대로 못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요조의 삶의 궤적이 다자이 오사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에서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154쪽)”라고 적었습니다만, 삶의 의미를 거창하게 둘 수도 있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요즈음에 드는 저의 생각입니다.
너무 순수해서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적극적인 돌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가 살 무렵의 일본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없는 비인간화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