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사랑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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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홀로되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당사자가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하여 자녀들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은 프랑스에서의 일입니다만 나이 들어 시작하는 사랑이 어떻게 발전해가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기회가 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만난 사랑><체리토마토파이https://blog.naver.com/neuro412/223217409901>의 작가 베로니크 드 뷔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체리토마토파이>는 리옹과 리모주의 중간프랑스 중부지역에 있는 완전한 시골에 사는 과부 잔이 90살이 되는 해 춘분에서 시작하여 꼭 1년간 써내려간 일기입니다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딸과 아들이 수시로 찾아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잔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작가인지 아니면 화자인 딸인지는 분명치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자의 어머니가 70살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생긴 호흡부전이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된 어머니였지만 충격을 딛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엄마와 속이야기도 거릴 것 없이 나누던 화자가 엄마더러 재혼할 거라고 물어보면 , 지금 세상 편하고 좋다. 남자를 데려다 뭐에 쓰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모를 일이지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날 무렵 첫사랑이었던 그자비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자비에 역시 엄마와 석연치 않게 헤어진 뒤에 결혼한 미셸과 사별한 상태였고, 엄마가 혼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회한 두 사람은 400나 떨어져 살고 있는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새로운 사랑을 키워가고, 화자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아빠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자비에의 집을 처음 찾아가는 엄마를 배웅하면서 가세요, 엄마.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거의 아무 데도 안 갔잖아요.”라고 하면서 등을 떠밀었던 것과는 달리 배신감 같은 감정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화자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의 생각까지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첫사랑과의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국은 사제를 모시고 서약을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나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가진 것입니다.


서로의 비밀스러운 일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엄마와 딸 사이에 알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엄마가 감정이 폭발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거야! 내 인생이니까. 나는 평생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았어. 내 의무를 다한 지금, 드디어 나를 위해 살 수 있게 됐어! 너희가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딸의 생각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엄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가 여전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니 스스로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엄마와 그자비에가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말씀에 담겨있는 다음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애정은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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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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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었습니다. 미국의 인디애나에 살고 있는 헤이즐 그레이스 랭카스터는 16살에 갑상선암이 폐로 전이되어 4기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17살이 된 그녀는 외부활동에 나서라는 부모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암환우회 모임에 참석하고는 있지만 그리 적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망막아세포종으로 한 눈을 잃은 아이작의 소개로 참석한 동갑 나이의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상황입니다. 매주 수요일 만나는 암환우회는 성공회 교회의 석조 지하실의 십자가 모양이 만나는 장소, 즉 예수의 심장이고 말하는 위치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투병과정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달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모임을 주관하는 패트릭은 모임을 마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자라는 다짐을 외웁니다.


처음 만나는 날 두 사람은 최애도서를 각각 서로에게 추천합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 어거스터스는 <새벽의 대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피터 반 호텐의 <장엄한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 안나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 암치료를 위한 자선단체가 아니라 암에 걸렸지만 콜레라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설립합니다. 그녀의 활동은 암에 걸린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선량함을 일깨우고, 암치료라는 유산을 남겼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안나의 엄마가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안나가 개밀과 소량의 비소를 투약하는 말도 안되는(?) 새로운 치료를 막 받으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그런이라면서 문장 중간에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피터 반 호텐은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한 이유에 대하여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미국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잠행에 들어갔습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출판사를 통하여 작가에게 질문을 보내지만 답변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거스터스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오고 두 사람을 네덜란드로 초청하게 됩니다. 호텐는 어거스터스에게 보내온 답장에서 두 사람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위로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이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120)’라고 고쳐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의 제목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후원단체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이미 사용한 헤이즐을 위하여 어거스터스는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헤이즐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헤이즐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어거스터스는 네덜란드로 가서 <장엄한 고뇌>의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헤이즐은 자신이 궁금해했던 <장엄한 고뇌>의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를 작가에게 캐묻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이고, 그들에겐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답합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소설이 끝나는 순간 존재하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크니스토프 보르트베르크와 만프레트 타이젠이 <책들의 유령>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모든 책들의 등장인물들은 책들의 세계에서 실존하는 존재이며 현실의 세계로 이동해올 수도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트스는 실망한 헤이즐에게 자신이 <장엄한 고뇌>의 뒷이야기를 써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호텐의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안네의 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안내 프랑크가 남긴 유물들을 살펴보고는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정합니다. 세상을 향해 돌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켜주는 2인조 장애자 자경단원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온 뒤에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암이 재발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뒤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죽음을 맞기 전에 병세가 약간 회복되는 순간에 어거스터스는 아이작과 헤이즐에게 자신의 장례식에서 낭독해주기를 부탁하고 장례식의 예행연습도 합니다. 어거스터스의 장례식에 반 호텐도 참석합니다. 그 역시 딸이 어린 나이에 암으로 죽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반 호텐은 헤이즐이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한 답이라면서 옴니스 셀룰라 에 셀룰라(Omis cellula e cellula),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윤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이 죽은 이에 대한 추억을 달래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암으로 투병하는 남녀 가운데 한쪽이 죽음을 맞았을 때 남아 있는 사람이 받게 될 충격은 정상인 사람이 겪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잘못이 우리별에 있다는 화두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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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생의 의미 -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찾은 가슴 벅찬 7가지 깨달음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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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횡재를 한 느낌이 든 책읽기였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사회인류학과의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교수가 쓴 책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40여년을 사회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촉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히 2016년 암이 발생한 것으로 진단받아 투병하면서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문에 들어있는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다름이다.”라고 한 점입니다. 남들이 하는 것이 좋아 보여 따라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는 삶의 선하고 유용한 의미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7가지의 공통점을 관계, 결핍, , 느린 시간, 순간, 균형, 실 끊기 등의 주제어로 풀어 설명합니다. 이런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하고 중립적이며 자유롭다. 삶의 의미는 관계로 이루어진다.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후, 우리 자신을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하는 실에 대한 긴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가는 실들이 모여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그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거대한 합창단을 이루며, 그 안에서 우리는각자 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실타래가 바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첫 번째 주제 관계를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계는 동물세계는 물론 식물세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Carla Bley)<혼자 하는 식사 Dining Alone>을 인용하는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이란 음식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했습니다.


단조롭게 느껴지는 반주 속에서 식사를 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노랫말은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지만 사실을 혼밥의 쓸쓸함을 애써 감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만, 저에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인용들이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외부와의 관계를 최소화하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꼭 틀렸을까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저자의 동료는 술에 취해 인생의 의미는 신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반드시 자신의 생물학적 자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경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 겸손, 자기 확신은 더 없이 소중한 삶의 덕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주제에서도 느낀 바가 많았지만, 마지막 주제 실 끊기는 저자가 말기암 병동에 입원해서 가진 사유의 시간을 통하여 얻는 바를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 끊기는 모두에서 이야기한 관계를 통하여 형성한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삶을 달관했을 노인이 젊은이들만큼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했고, 오히려 노인보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힌두교와 불교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좋은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모든 것의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죽음의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라는 대목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좋은 죽음이란 잘못을 보상하고,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라는 대목에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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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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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인지 <카사노바 호텔>, <바깥 일기>, <단순한 열정> 등 몇 권을 읽었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느 책에선가 발견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8312월에 시작하여 86428일까지 불규칙하게 이어진 일기로 구성된 이야기형식이 독특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느끼게 된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한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과 자신과 함께한 어머니로서 그녀의 삶을 <한 여자>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투병하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어머니와 함께 한 삶을 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16-17)”이라고 적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29)”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참으로 지난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647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145)”라고 절망적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름이 지나서 부터의 심경을 정리하여 <한 여자>라는 작품을 구성한 모양입니다.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내 몸이 둘로 쪼개져 있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면서도 그녀였다.(21)”라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 나는 지금 분리된 상태에 있다.(159)’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에 이별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때로 뒤따라 세상을 하직하기도 합니다만, 과연 돌아가신 분이 남은 분에게 바라는 일일까 싶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탈출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머니가 남겨놓은 편지에 적혀 있는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15)”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가끔 속옷을 적시기도 하고 집에 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보입니다.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얀 잠옷을 간호사에게 주었는데, 어머니가 이 옷을 입고 땅속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가 직접 환복을 해드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고향을 찾아간 작가에게 이모와 사촌들이 넌 네 엄마를 쏙 빼닮았어. 꼭 네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아!(123)”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일 것 같습니다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재종 형님댁을 찾아갔습니다. 형님과 석양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형님께서 꼭 선친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목소리가 선친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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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 마음이 그림과 만날 때 감상은 대화가 된다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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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관에 가기도 합니다만, 미술이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술 수필 분야를 개척해왔다는 이주헌님이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에서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지만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그와 같은 배경 지식이 없더라고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미술품 감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용한 다양한 작품들에 얽힌 다양한 배경지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많은 그림들이 인용되고 있는데, 가끔은 저도 아는 그림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새로이 만나는 그림들이 대부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표식을 남긴 그림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독서하는 여인>입니다. 제가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보다도 책을 읽는 일은 빛을 찾고 만나는 일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어떤 거이어야 하는지, 우리는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알아갑니다. 등대가 뱃길을 알려주듯 책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환하게 비춰줍니다.”라는 책읽기 예찬론이 더 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구인지, 화가와 그녀의 관계는 물론 그녀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표식을 남긴 부분은 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혜로운 여행자의 가방은 가벼운 법입니다. 뒤피는 예술을 한다며 쓸데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니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긍정하고 밝게만 살고 싶었습니다.”라는 대목입니다. 야수파의 거장 라울 뒤피의 작품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네 삶이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긴 여행이라고 한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표식은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에 남겨놓았습니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멜쇠이의 책상 앞에 서 있는 이다를 설명하면서 인용한 시인데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책상 앞에 서서 무언가를 쓰는 모습인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곧 소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는 대목을 고독한자의 행복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하여 그림의 설명으로 곁들인 것입니다.


네 번째 표식은 클로드 모네에 대한 풍경은 하룻밤 사이에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글이었습니다. 표지를 해놓은 이유는 제가 준비하고 있던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편에서 미셀 뷔시의 <검은 수련> 읽기와 모네가 작품활동을 하던 지베르니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초고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표식을 남긴 부분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세운 순진무구한 거짓말쟁이라는 제목으로 앙리 루소를 소개한 부분입니다. 작가는 앙리 루소를 못그린 그림으로 훌륭한 화가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작가는 여기에서 잘 그린 그림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소개합니다. “일단 시각적으로 매우 세련되고 조화로원 보기에 즐거울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일반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라고 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수정한 기준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조형적,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앙리 루소의 그림은 잘 그린 그림 같아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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