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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 - 국내 최초로 쓴 암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지침서
강석진 지음 / 소금나무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병원에서 병리검사를 담당하면서 암진단을 내리던 저도 암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2년전에 전립선암을 스스로 진단하게 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수술을 받고 추적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아내 역시 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암환자이면서 암환자의 보호자가 된 셈입니다.
누구나 곤경에 처하면 빠져 나올 방법을 다양하게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현명한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는 제목이 유혹하듯이 현명한 보호자가 되어보기 위해서 읽은 책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이 책의 내용과는 달리 저는 현명하지 않은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죠. 제대로 된 현명한 보호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편백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는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암환우를 위한 생활관이자 요양시설인 ‘백운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암환우들의 희망지기. 직계 가족 9명 중 어머니와 형제 등 3명, 장모, 처남을 암으로 떠나보냈으며 본인도 담낭암과 담도암 등 두 번이나 암에 걸려 살아난 후로 니시의학과 뉴스타트 등 자연의학과 자연요법을 본격 공부해 암환우들을 내 몸처럼 돌보면서 암은 반드시 이긴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강석진 원장의 이런 강한 의지와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으로 많은 암환우가 건강과 행복을 찾았고 이를 매스컴이 소개함으로써 암 예방을 위한 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 등의 계몽에 기여했으며 현재 암환우와 보호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건강강좌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라는 저자의 소개글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읽어보면 저자가 하고 있는 요양시설의 홍보용 책자로 이해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자연의학과 자연요법은 의학적인 면에서 효능이 완전하게 입증된 내용이 아닙니다. 물론 저자의 시설에 입소하여 지내면서 암을 이겨낸 사례들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설에 입소한 환자들이 말기암을 진단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미 현대의학의 치료를 받았으며 시설에 입소할 당시의 병증의 상태에 대한 적확한 판단을 어떻게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야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신체의 각 부위에서 생기는 암은 종류마다 생기는 이유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속이 탁하고 피가 독소에 오염된 상태에서 그 사람의 면역력이 가장 떨어진 부위에 독버섯처럼 피어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전통의학에서도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각혈, 하혈 등 출혈이 생기거나, 멍울, 심한 통증 등 평소와 다른 증상을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까운 동네 의원을 먼저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별 문제가 없다고 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종합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에서는 조직검사를 통해서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 치료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암에 대한 치료법도 다양해지게 되었습니다. 암의 종류와 단계에 따라 치료방법을 달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병리진단은 중요한 순서입니다. 저자가 ‘체내환경을 무시한 조직검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대로 암환자의 장기와 세포들이 독소가 탁한 피와 체액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조직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독소가 사방으로 퍼지게 되므로 조직검사를 받은 다음에 수술을 할 무렵이면 말기암으로 변해버린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에는 현대의학에서도 그렇게 의심한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조직검사를 한 뒤에 바로 수술을 하거나 항암화학치료 혹은 방사선치료를 시작하므로 갑자기 말기암으로 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고 무시하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에는 물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치료가 가능한 전문의를 만나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식은 칼을 대지 않고 하는 수술’이라면서 수술을 겁내는 암환자를 요양시설로 오라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입니다. 암과 싸우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자의 요양시설이 심산유곡에 있어 공기가 맑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정신수양을 할 수 있어 환자를 정신적으로 평안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의 치료과정은 제대로 밟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즈음 현대의학은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경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의사가 권위를 앞세워 치료방향을 강제하지 않고 상세한 설명으로 환자의 결정을 돕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 보호자가 나서서 환자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것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암치료에서도 환자가 원하는 바가 우선하는 것이 옳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말기암 단계의 환자를 곧 죽을 사람으로 치부하는 보호자를 칼만 안든 살인자라고 하면서 환자의 희망을 읽는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고 말합니다만, 환자로 하여금 헛된 희망을 부풀려 고통스럽기만 한 투병과정을 늘리고 치료비용을 더하도록 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