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찾아서 -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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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 바탕에 푸른빛을 띠는 해마 한 마리가 그려진 <해마를 찾아서>는 어쩌면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없었더라면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금세 감을 잡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사실 해마는 기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생명체는 아닙니다. 인간의 기억형성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뇌의 부분이 해마를 닮았대서 ‘해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기억’은 제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의 주저자인 윌바 외스트뷔는 오슬로대학 심리학과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데, 기억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저자인 힐데 외스트뷔는 개념사 연구자이면서도 작가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었지만, 책말미의 감사의 글에 적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참고하면, 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윌바가 기억에 관한 연구를 정리하고 힐데는 기억과 관련된 사건들을 정리하고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로의 장점을 잘 살린 책쓰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해마를 찾아서>는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기억을 하는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하는 해마의 역할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서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개인적인 기억에 외상이 주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기억이 허위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기억은 훈련에 의하여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기억의 반대개념 즉 망각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 결국 인간의 오늘이 있게 만들었고, 역시 미래를 꿈꾸게 하는 중요한 힘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기억에 관한 저자들의 개인적 경험과 연구결과 사건사고는 물론, 문학작품, 영화 등 기억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특히 관련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은 물론 인터뷰 내용까지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책 읽는 흐름을 수월하게 만들어줍니다. 전문적인 내용이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합니다만, 저자들의 글 솜씨에서 저도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기억이 만들어지고, 저장되며, 그리고 그렇게 저장된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록 그 설명이 전문적인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추가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지만, 대강의 틀은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기억이 만들어지는 기전에 관한 연구로 노벨의학살을 받은 에릭 캔들의 연구성과를 설명해주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주변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자극을 뇌 안에 있는 특정한 서랍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기억이 신경세포들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 연결고리의 통해서 생화학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짐작은 합니다만, 아직 개념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데, 기억력을 강화하는 근거 있는 방법도 제시되면 좋겠습니다.

그밖에도 제가 알고 있는 기억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인용되지 않은 것도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만, 저자들이 참고한 사건들이나 연구 성과들이 제가 알고 있는 것들과 겹치지 않는 점도 앞으로 기억에 대하여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는 조금 의욕적으로 붙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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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여행하는 법 땅콩문고
임윤희 지음 / 유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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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도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있습니다. 인문 분야의 책은 물론 여행관련 책을 많이 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서관을 통해서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도서관 여행하는 법>이 제 눈길을 붙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제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도서관들을 돌아본 경험이 주로 이야기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 29꼭지의 글은 외국의 도서관을 돌아보면서 느낀 생각 15꼭지와 국내 도서관의 사정에 관한 이야기가 14꼭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자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급적이면 그곳의 도서관을 들러 사정을 알아보려 노력해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건물이 멋지거나 책이 많거나 서비스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온 사람들의 꿈을 살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세상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미국의 도서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도서관에 가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필요한 사항들은 (주로 의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만) 도서관에서 찾곤 했습니다. 물론 3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이고 인터넷읕 통하여 자료를 찾아보는 방법이 없을 때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름대로는 많은 자료를 구하곤 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인터넷에 아무리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가 있다 해도 나는 도서관에서 시작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자료는 아직 인터넷을 통하여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도서관을 이요할 때, 영어도 짧고 낯가림도 심해서 사서에게 부탁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저자들이 쓴 책을 보면 감사의 글에서 자료검색에 기여해준 도서관 사서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 사정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옛날에 경험한 내용도 적지 않은데, 옛날보다는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는 외국의 대규모 도서관의 서비스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도 아이들을 위하여 동네도서관에서 책을 빌어다 보기도 했는데,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때 미국에서 본 동네 도서관과 비교해보면 비록 서울이기는 하지만, 동네도서관의 수준이 훨씬 나은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도서관이라는 대상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외국(일부 국가의 몇 곳이기는 합니다만)의 사정 비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수준의 도서관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오래 전의 미국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와 요즈음의 우리나라 도서관의 이야기를 맞대놓고 비교하는 우를 범하기는 하였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우리나라 도서관의 사정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 등, 희망적인 요소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짚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독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보편적인 인식은 아주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혹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등의 핑계를 대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적지 않은 형편입니다. 책읽기는 정부가 나서서 강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책읽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대 언론의 힘이 가장 클 것 같다는 생각을 여전히 합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동네서점이나 동네도서관 지어주기와 같은 예능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저 놀러 다니거나 먹는 것에 치중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절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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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들 - 존 버거의 예술가론
존 버거 지음, 톰 오버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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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존 버거를 처음 만난 것은 평론보다는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김탁환작가의 산문에서 소개를 받았는데, 리스본의 28번 트램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에 폴란드의 크루쿠프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존 버거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가 번역, 소개되어 있지만, 미술평론에 관한 책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입니다.

‘나는 미술평론가로 불리는 것이 늘 싫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누구를 미술평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하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미술평론가는 자신이 아주 조금만 알거나 전혀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고, 거드름 피우며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하여 깊은 식견을 쌓아야 하며, 그 사람의 속사정까지도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못한 일부 평가자들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1959년에는 “나는 미술비평을 너무 오랫동안 써 왔고, 그것은 잘못된 작업으로 판명이 났다(22쪽)”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톰 오버턴이 엮은 이 책은 존 버거가 대영도서관에 기증한 다양한 자료를 정리한 것입니다. 미술에 대한 존 버거의 응답의 폭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에세이, 전시회에 대한 평론, 동료와 가족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는 물론, 시, 소설, 희곡, 혹의 대화의 일부를 발췌하기도 했다. 그의 글이 집중력과, 상상을 통한 감정이입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에 대한 하나의 초상화라고 보았기 때문에 책의 제목을 <초상화>라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74개의 글을 모았습니다. 글 가운데는 기원전 3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의 쇼베동굴에 그려진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기 1세기~3세기 무렵의 이집트 남부의 파이윰 지방에 남겨진 현존 최고(最古)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뒤를 잇고, 그리고는 15세기 중반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필두로 하여 현재 생존하여 활동하고 있는 화가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졌습니다. 일종의 다양한 역사적 시기의 예술가들에 대한 연대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보면, 존 버거의 관점에서 본 미술사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엮은이의 생각입니다.

어떤 글에서는 화가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면서 화풍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화가의 삶과 생각을 두루 짚어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다양한 자료원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보니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로 제한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자신의 주관에 따른 솔직함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예술가라해서 평론이 두루뭉실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점도 저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아쉬운 점은 적지 않은 미술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제한된 숫자의 작품만 그것도 흑백으로 싣고 있다는 점입니다. 존 버거가 이야기한대로 ‘단순한 기록’ 수준으로 참고하면 되겠다는 이야기이지만, 설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컬러사진이면 금상첨화였겠고, 흑백사진이라도 좋으니 도판을 더 담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

특히 근현대의 잘 알려진 화가들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어느 정도 작품이나 화풍에 대한 작은 앎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말씀드려 이름을 처음 듣는 화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그린 드로잉도 몇 점 소개되고 있으며, 분명 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덩그라니 빈 채로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고 있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처음 듣는 내용도 많았던 점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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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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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망트쪽’의 후편은 할머니가 요독증에 빠지면서 건강이 나빠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프루스트 시대의 프랑스 의학이라고 해도 현대의학의 수준과 비교해보면 대증적 치료에 머무르는 수준이었을 터라서 할머니의 병이 회복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환자진료에 임하는 의사의 태도였습니다. 왕진요청에도 불구하고 상공부장관 댁 만찬에 가야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는데,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주치의의 요청이 없는 왕진이라는 점에서 직업상의 윤리문제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고, 응급상황에 빠진 할머니를 모시고 갔을 때는 외출을 미루면서 환자를 진찰하는 성의는 보였다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외출과정에서 발작을 일으킨 할머니를 의사에게 모셔가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쩌면 보통 때는 죽음 특유의 기이함 때문에 그 공포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런 종류의 죽음에서-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과의 접촉에서-그것이 우리가 아는 일상의 친숙한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오히려 어떤 안도감 같은 느낄지도 모른다(12쪽)”는 대목을 읽으면 고통스럽게 맞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도 있는 한편, 일상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데서 안도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투병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어머니와 가정부가 최선을 다하여 간병하는 모습은 요즘 우리사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할머니가 임종을 맞는 과정에서 친척과 가까운 친지들이 문병을 온다거나 조문을 하는 모습도 당시의 프랑스 사회의 풍습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물론 화자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과정은 지극하다는 느낌이 들어 오늘날 우리사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소원했던 알베르틴이 화자의 집에 찾아왔을 뿐 아니라, 이전에 찬바람이 돌던 관계가 발전하여 입을 맞추고 애무를 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마무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습니다.

여성에 대한 화자의 관심이 조석변인 것도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여인에가 관심을 쏟을 때는 주변 정황을 따져보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인데, 그렇게 정열을 쏟아도 좋은 결말에 이르지 못하면 대부분 중간에 접고 마는 것은 젊은이답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무렵 화자의 필명이 사교계에 어느 정도 알려진 듯합니다. 한동안 마음을 쏟았던 게르망트부인이 살롱에 초대하는 것을 비롯하여 화자 주변에 꽤나 인지도가 있는 살롱에 출입을 권유받거나, 혹은 초대를 받아내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화자가 게르망트 부인이 게르망트씨와 주고받는 재치 있는 말을 인용하는 것은 당시 살롱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화자가 게르망트 부인의 초대에 응하게 된 것은 “매력적인 말들과 친절한 행동과 진정한 내적인 풍요로움으로 부양되는 온갖 언어적인 우아함 때문이었다.(399쪽)”라고 했는데, 아마도 작가로서의 관심이 작용한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샤를뤼스씨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어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하여 미리 포석을 깔아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음사에서 내놓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새로운 번역판은 처음보다 번역하신 분이 붙여놓은 각주(脚註)가 더 많아지고 충실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차이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완역이 되면 국일문화사판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민음사의 번역판이 번역이 진행 되는대로 출간되고 있어 이야기가 끊기는 느낌입니다. 다만 세부의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것도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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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필로테라피 5
셀린 벨로크 지음, 류재화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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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골라든 것은 아마도 오래 전에 읽은 강원대학교의 김선희교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를 읽은 기억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철학적 상담을 통하여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는 철학상담치료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김선희교수는 그 꼬투리를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적 사유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는 싱가포르에 있는 프랑스 국제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셀렌 벨로크 교수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위대한 철학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달라’  뜻에서 썼다고 합니다. ‘철학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면서 우리의 삶을 개선하려는 야망 같은 것을 가진다’는 철학의 본질에 기반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독자들은 새로운 철학적 이론의 도움을 얻어 자기 문제들을 해석해보고 또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꾼 다음에라야 우리 삶과 그 의미라는 더 큰 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1. 진단하기, 2. 이해하기, 3. 적용하기, 4. 내다보기 등의 순서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진단하기의 과정에서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 즉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파악된 문제를 이해하는 단계인데, 여기에서 혁신적인 철학적 테제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즉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하기의 단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행동에 옮김으로서 본격적인 문제해결 과정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내다보기의 단계에서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적 견해를 통하여 삶을 더 총괄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일상에서 자신을 관리하게 된 것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단계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철학은 ‘영혼의 약’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약의 부작용을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미리 경고합니다. 아마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극약처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물학의 시조 파라켈수스가 남긴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는 것을 정한다.’라는 금언처럼 부작용이 없는 만큼 사용하면 극약도 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자체로는 실로 고유한 가치가 없고, 삶이 움직이면서 유지되는 것은 필요와 환상에 의해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실존의 빈곤과 공허는 명백해진다(‘소품과 부록’)”라고 말입니다. 행복이나 사랑도 그저 고통을 누그러뜨리려는 희망에서 오는 환상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살고자 하는 의지의 분출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자유의지이건 맹목적인 충동이던 간에 말입니다.

결국 삶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려면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환상에 묻어 잊어버리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맹목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에 휘둘리지 말고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조함으로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더하여 결핍을 보충하려는 의지에서 생기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사물들을 멀리 놓는 것만 아니라 가까이 앞에 놓음으로써 우리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사물들을 순수하게 관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이다.’(‘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게 된 단계에서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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