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쓸모 - 일상에서 뇌과학까지
요하네스 프라스넬리 지음,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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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이 어떻게 기억을 각인하고 질병을 예측하며 우리 행동을 조종하는가라는 요약글을 읽고 <냄새의 쓸모>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요하네스 프라스넬리 교수는 트루아리비에르 퀘백 대학교 해부학과에서 화학적 감각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직업 활동은 새로운 가설을 정립하고, 실험을 실시하며, 획득한 자료를 기존 지식에 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나이가 이러한 지식을 전파해야 한다.(23)”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파의 범위가 전문가들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얻은 인식을 대중과 함께 것을 과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냄새의 쓸모>의 독자들을 후각과 미각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 초대한다고도 했습니다.


저자 역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마들렌 향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서술한다. 그래서 냄새를 인지한 뒤에 강력하고도 감정적인 기억을 불러오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 일컫는다.”라고 말입니다.


<냄새의 쓸모>는 모두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판사의 요약을 다시 요약해보겠습니다. 1실습에서 이론으로에서는 냄새에 대한 추억과 냄새를 연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2냄새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는 물리적 감각인 시각·청각·촉각과 달리, 화학적 감각인 미각과 후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합니다. 3향기는 공기 중에 있다에서는 어떤 냄새는 좋다고 여기고, 또 다른 냄새는 불쾌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4체취에서는 체취가 지문처럼 개별적이라는 사실과 무엇이 체취에 영향을 주는지 설명합니다. 5페로몬에서는 페로몬이란 무엇이며 어떤 작용을 하며, 어떤 동물의 페로몬이 유명하고 인간의 페로몬도 존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6맛과 향에서는 맛과 향을 쉽게 혼동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방향물질이 입안에서부터 목구멍을 거쳐 코에 도달하는 과정, 후각에 장애가 생기면 무엇보다 음식 먹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도 살펴봅니다. 7“3차신경계에서는 3차신경계란 무엇이며, 화학적 감각들은 서로 어떻게 협력하는지 설명하였습니다. 8진정한 후각 전문가에서는 후각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개나 설치류의 능력을 알아보고, 하지만 인간이 몇몇 냄새는 그들보다 더 잘 맡는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9냄새의 대가는 훈련으로 만들어진다에서는 후각 전문가의 특별한 뇌와 후각은 훈련할 수 있음을 설명하며, 후각을 훈련하면 뇌도 바뀐다는 사실을 할게 해줍니다. 10입체적으로 냄새 맡기에서는 냄새 맡는 기술에서 개가 우리보다 앞서는 이유, 우리 코는 바이러스와 독성물질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설명합니다.


11후각 상실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후각장애와 다양한 원인, 치료법 등을 소개합니다. 12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에서는 후각장애를 동반하는 질병과 조기 진단을 위한 후각 검사의 도입 등을 이야기합니다그리고 마지막 13코로나19와 냄새에서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 드러난 코로나감염과 후각손상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대중을 독자로 하기 때문인지 흥미로운 자료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워낙이 잘 알려진 주제가 아닌 탓에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좋아했던 <Waiting for the Sun>연주한 악단 도어스(The Doors)의 이름이 작가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수필 <인식으로 가는 문(The Doors to Perception,, 1954)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혀에서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을 잘 느끼는 부위가 있다는 미각지도가 사실을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독일어로 된 논문을 영어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번역의 오류가 있었다고 하네요. 세상 참 재미있습니다. 콧구멍이 두 개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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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 - 국내 최초로 쓴 암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지침서
강석진 지음 / 소금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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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병리검사를 담당하면서 암진단을 내리던 저도 암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2년전에 전립선암을 스스로 진단하게 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수술을 받고 추적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아내 역시 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암환자이면서 암환자의 보호자가 된 셈입니다.


누구나 곤경에 처하면 빠져 나올 방법을 다양하게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현명한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는 제목이 유혹하듯이 현명한 보호자가 되어보기 위해서 읽은 책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이 책의 내용과는 달리 저는 현명하지 않은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죠. 제대로 된 현명한 보호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편백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는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암환우를 위한 생활관이자 요양시설인 백운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암환우들의 희망지기. 직계 가족 9명 중 어머니와 형제 등 3, 장모, 처남을 암으로 떠나보냈으며 본인도 담낭암과 담도암 등 두 번이나 암에 걸려 살아난 후로 니시의학과 뉴스타트 등 자연의학과 자연요법을 본격 공부해 암환우들을 내 몸처럼 돌보면서 암은 반드시 이긴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강석진 원장의 이런 강한 의지와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으로 많은 암환우가 건강과 행복을 찾았고 이를 매스컴이 소개함으로써 암 예방을 위한 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 등의 계몽에 기여했으며 현재 암환우와 보호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건강강좌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라는 저자의 소개글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읽어보면 저자가 하고 있는 요양시설의 홍보용 책자로 이해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자연의학과 자연요법은 의학적인 면에서 효능이 완전하게 입증된 내용이 아닙니다. 물론 저자의 시설에 입소하여 지내면서 암을 이겨낸 사례들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설에 입소한 환자들이 말기암을 진단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미 현대의학의 치료를 받았으며 시설에 입소할 당시의 병증의 상태에 대한 적확한 판단을 어떻게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야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신체의 각 부위에서 생기는 암은 종류마다 생기는 이유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속이 탁하고 피가 독소에 오염된 상태에서 그 사람의 면역력이 가장 떨어진 부위에 독버섯처럼 피어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전통의학에서도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각혈, 하혈 등 출혈이 생기거나, 멍울, 심한 통증 등 평소와 다른 증상을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까운 동네 의원을 먼저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별 문제가 없다고 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종합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에서는 조직검사를 통해서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 치료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암에 대한 치료법도 다양해지게 되었습니다. 암의 종류와 단계에 따라 치료방법을 달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병리진단은 중요한 순서입니다. 저자가 체내환경을 무시한 조직검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대로 암환자의 장기와 세포들이 독소가 탁한 피와 체액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조직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독소가 사방으로 퍼지게 되므로 조직검사를 받은 다음에 수술을 할 무렵이면 말기암으로 변해버린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에는 현대의학에서도 그렇게 의심한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조직검사를 한 뒤에 바로 수술을 하거나 항암화학치료 혹은 방사선치료를 시작하므로 갑자기 말기암으로 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고 무시하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에는 물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치료가 가능한 전문의를 만나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식은 칼을 대지 않고 하는 수술이라면서 수술을 겁내는 암환자를 요양시설로 오라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입니다. 암과 싸우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자의 요양시설이 심산유곡에 있어 공기가 맑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정신수양을 할 수 있어 환자를 정신적으로 평안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의 치료과정은 제대로 밟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즈음 현대의학은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경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의사가 권위를 앞세워 치료방향을 강제하지 않고 상세한 설명으로 환자의 결정을 돕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 보호자가 나서서 환자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것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암치료에서도 환자가 원하는 바가 우선하는 것이 옳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말기암 단계의 환자를 곧 죽을 사람으로 치부하는 보호자를 칼만 안든 살인자라고 하면서 환자의 희망을 읽는 보호자가 암환자를 살린다고 말합니다만, 환자로 하여금 헛된 희망을 부풀려 고통스럽기만 한 투병과정을 늘리고 치료비용을 더하도록 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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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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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인가를 읽다가 읽어볼 책 목록에 올렸던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았더니 왜 읽어보려했던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습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춣신의 작가 브라이언 무어가 쓴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은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무대로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가에 있는 헨리 라이스 부인의 하숙에 새로 들어온 40대 초반의 여성 주디스 헌이 부인의 아들 버나드, 오빠 제임스 패트릭 매든, 하녀 메리, 그리고 하숙생 레너한과 프리엘양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하숙을 해보았습니다만, 하숙생들은 대체로 서로의 공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다만 하숙생이 떠나는 경우에는 간단하게 환송식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하숙생들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개인사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기 시작될 때만해도 주디스 헌은 교양이 있는 여성으로 보였습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일이 힘겨운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새로운 하숙에서 만난 패트릭 매든과 의기투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처지가 곤고함이 드러나면서 결국은 파국을 맞고 말았습니다. 패트릭 역시 미국에 건너가 허드렛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보험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처지인데 주디스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해보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주디스의 처지는 이모가 남겨준 작은 유산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인데다가 삶이 힘든 탓인지 술과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술에 대한 의존을 잘 억제하는 모습이었는데 패트릭하고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방에 숨겨두었던 술을 마시곤 취해서 주사를 부린 것입니다. 결국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디스의 술버릇에 놀랐지만, 처음에는 조심할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술을 찾는 일이 반복되는데, 심지어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찾아가 술을 먹이다가 환자들에게 들켜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벨파스트는 영국의 북아일랜드의 수도입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일랜드계인 듯합니다.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독립투쟁에 얽힌 이야기라든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의 애환이 조금씩 이야기되기도 합니다만, 작가의 관심은 주디스 헌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양이 넘치는 여성으로 비쳤던 주디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거짓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과연 주디스의 외로운 열정이 무슨 의미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도입부분에 나오는 주디스의 거울놀이에서 감을 잡았어야 했나 봅니다. “주디스의각진 얼굴이 거울에 비친 얼굴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시선을 고정한 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다. () 그녀는 거울에 비친 평범한 여인이 고혹적인 미인으로 탈바꿈하는 즐거운 환상을 지켜보았다. () 그러면서 오직 쇠락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그윽하고도 화려한 결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울놀이를 하려는 열성마저 모조리 앗아가 버릴 그 마지막 순간을.(36-37)”


그런가 하면 작가는 패트릭을 통해 일확천금을 얻어 고향 아일랜드로 금의환향하는 꿈을 가진 아일랜드 사람들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는 뉴욕에서 29년을 일했지만 한번도 300달러가 넘는 돈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 잃은 딸을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시킨 것이었는데, 딸마저도 아일랜드 조상을 증오하는 이민자2세인 늙은 놈팡이 스티브와 결혼하여 패트릭을 실망시기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교통사고로 1만달러의 보상금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작가가 벨파스트 출신이라고 하는데, 벨파스트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별로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등장인물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그들의 삶에서 과연 희망이란 것을 찾아볼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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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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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화두로 삼고 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 발표된 <기억으로 가는 길>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서른 번째 소설입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기억의 예술을 통해 불가해한 인간의 운명을 소환하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찬사와 함께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망각이라는 거대한 흰 종이 앞에서, 반쯤 지워진 단어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소설가의 사명일 것입니다.”라고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모디아노 역시 기억과 망각을 화두로 삼고 있는 모양입니다.


화자인 보스망스는 슈브뢰즈 계곡을 지나 독토르퀴르젠 가에 있는 오퇴유라는 곳에 있는 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적이 있고, 15년 뒤에 찾아간 적이 있으며 다시 50년이 흐른 시점에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옛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하여 장소에 대한 그의 기억과 정밀지도가 다른 까닭은 아마도 그가 생의 여러 시기에 그 지역에 여러 번 머물렀으며, 기산이 거리를 단축시켰기 때문이리라.(18)”라고 설명합니다.


보스망스가 어렸을 적에 겪었던 일을 세밀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일부러 기억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보스망스가 어렸을 적이 살던 오퇴유의 아파트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에 이어 경찰의 수색에 이르기까지의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보스망스를 찾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된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했다. () 다른 이에게는 하찮아 보일 법한 디테일 하나면 충분했다. 바로 그것, 디테일. ‘생각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적합하지 않았다. 너무 거창하다. ()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디테일이 하얀 종이에 쌓여갈수록, 훗날 그가 상황을 밝혀낼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쓸모없어 보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12-13)”


작가가 <기억으로 가는 길>에서 기억과 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순회공연을 하는 어머니가 친구집에 동생과 함께 맡겨 살았고, 몇 해 뒤에는 공립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주말에는 동생과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이 끝나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친구집에서 동생과 함께 지낼 무렵에는 수상한 사라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낯설고 무서운 분위기를 <기억으로 가는 길>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는 저는 제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들이 나중에 제가 쓸 책의 기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 기억으로 가는 길은 향수에 젖어 지난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몽유병자처럼 살아온 과거를 이해하겠다는 욕망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태어났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직접 겪어서 기억하고 있거나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써야하겠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겪은 일들은 기억형성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20여년 전에 시작한 누리사랑방에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잊혀진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억을 담아내는 방식은 살아오면서 거처했던 공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적어가고 있어서 경관기행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아직도 현업을 이어가고 있고, 책읽고 독후감 쓰기를 비롯하여 다녀온 해외여행의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 적지 않아 경관기행이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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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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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가 달린 <로마인 이야기14>은 서기 337년부터 397년까지의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1부에서는 콘스탄티우스 황제(서기337-361)의 치세를, 2부에서는 율리아누스 황제(서기 361-363)의 치세를 다루었고, 3부에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서기374-397)의 행적을 다루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13>3부에서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부침을 다룬데 이어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장악하여 중세유럽사회를 통제하게 되는 바탕을 세워가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한 덕에 후세에서는 그를 대제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죽기 2년 전에 자신의 아들 셋과 이복형제의 두 아들까지 카이사르에 임명하여 제국의 방위와 통치를 분담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 황제 사후에 이들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벌어져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가 주도하여 어린 갈루스와 율리아누스를 제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복형제의 아들 달마티우스와 한니발리우스 등 육친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갈리아의 로마군 총사령관 마그넨티우스를 자극하여 황제를 칭하는 등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3년에 걸쳐 내전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막상 제국을 나누어 통치할만한 인물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행적을 보면 그릇이 황제의 그릇이 아니었음을 알겠습니다. 부제로 발탁한 갈루스 조차도 숙청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혈육이라 할 율리아누스가 갈리아에서 병사들로부터 황제로 추대받자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동하던 중에 병을 얻어 죽고 말았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선제의 유지를 이어 기독교에 호의적이었습니다. 특히 아리우스파를 옹호했던 콘스탄티우스는 이교도 박해법을 제정하여 전통을 이어오던 그리스-로마신전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리우스 반대파 역시 박해하고 추방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로마의 황궁을 장악하고 있던 환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환관들은 콘스탄티우스의 경쟁상대가 될 만한 사람에게는 측근들을 붙여 감시하다가 이상행동이 감지되면 황제의 이름을 빌어 살해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렇듯 흘러가는 제국의 동향을 지켜본 율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에 심취하며 콘스탄티우스의 시야에 들지 않도록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불러 쓸 육친이 없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를 부제에 임명하여 갈리아에서 야만족을 평정하도록 했습니다. 전투경험이 전혀 없었던 율리아누스였지만 부제가 되어 치른 게르만족과의 네 차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2세와의 일전을 준비하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의 병력을 차출하여 동쪽으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율리아누스 예하의 로마군단이 이에 반발하여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게 되었고, 이를 징벌하고자 병력을 이동하던 중에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죽음에 임박한 콘스탄티우스는 율리아누스의 제위를 인정했다고 합니다.


율리아누스는 집권하면서 콘스탄티우스 치세에 벌어진 악정을 모두 버렸다. 황궁의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환관들을 모두 몰라냈습니다.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모범삼아 철학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이외의 이교도를 박해하던 정책을 버리고 로마의 종교적 관용정신을 되찾게 하였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강박적인 기독교 견제정책은 결국 반작용을 가져와 샤푸르2세와의 전투에 나선 길에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율리아누스를 배교자로 폄훼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율리아누스 황제 사후에 짧은 기간 황제 위에 있었던 요비아누스에 이어 황제가 된 발렌티니아누스는 기독교에 의하여 대제라고 불릴만큼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중요한 여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의 몰락 이후에 유럽의 중세를 기독교가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사람으로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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