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0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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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뤼방 오지앙의 <나의 길고 아픈 밤>에 인용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오지앙은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신부가 위암이라고 통보받는 대목을 인용합니다.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377~378쪽의 위암. 이 단어 자체가 생경하게 들렸다. () 나는 깊은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 ”얼마나 더 견딜 것 같습니까?“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는 내가 충격받지 않았다고 오해한 것 같다. 아아, 나의 침착함은 그저 실성에 가까운 멍함에 지나지 않았건만!”의 대목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는 독자가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주인공의 생각, 욕망, 감정을 꿰뚫어보면서 죽을병을 선고받는 순간 감정적 혼란, 만감이 교차하는 기막힌 기분을 접하길 원했다.(<나의 길고 아픈 밤> 73)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렇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흐느끼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한숨 한 번 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울고 있었다.(380)”라고 속마음을 토로하였습니다.


조루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20세기 가톨릭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고, 프랑스 소설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는다고 합니다. 옮긴이의 학부 전공과목 교수님께서도 프랑스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옮긴이는 베르나노스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르나노스가 활동하던 103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는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확산되던 시기였습니다. 베르나노스는 그 시대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앞장서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아르트와 지방의 한 촌락인 앙브리쿠르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본당신부로 부임한 신부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사람들이 신앙에서 멀어지고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이들은 하나님 안으로 인도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함과 타협을 모르는 곧은 성격을 가진 신부님은 마을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데, 마을사람들은 그런 신부님을 비난하고 곤경에 빠트리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신부님은 좌절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비뚤어진 생각을 바꿀 여지는 없는지 살펴보고, 자신의 처지를 짚어보기 위하여 일기쓰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후반에 가면 마치 일기장이 실재했던 것처럼 몇 장이 뜯어지고 일부 문장은 펜으로 마구 그어 지워진 상태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좁혀가지 못하기 때문에 신부님의 생활도 윤택하지 못하여 먹는 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형편없는 포도주와 딱딱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수준이지만 신부님은 그마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본당에 부임하고서 3개월 만에 말기 위암으로 진단을 받은 것을 보면 신부님의 암은 이곳에서의 생활로 인하여 생긴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실제로 위암을 의심할만한 증상을 처음 느낀 것은 6개월 전이었다고 합니다.


위암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에 망연자실하던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나의 임종을 하나의 모범, 하나의 교훈으로 만드실 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405)”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어쩐지 신부님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30년대 만해도 말기가 되어서야 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고, 방사선치료가 태동하게 된 것도 1030년대 중반이라서 수술 이외에는 치료방법이 없을 때입니다. 결국 신부님은 수술을 받아보지 못하고 친구의 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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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병동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7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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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방 오지앙의 <나의 길고 아픈 밤>에서 인용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1967년에 발표되어 1970년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책입니다. 오래 전부터 읽어보려 했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붕괴되기 이전의 소련의 타슈켄트(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에 있는 병원을 무대로 하고 시기적으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입니다. 암병원이니만큼 다양한 상병의 암환자를 비롯하여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 간호사, 청소부 등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환자들은 십대 소년으로부터 노인에 이르고,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유형수에서 고위공직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들은 다만 암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암환자가 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진료하는 의료진들은 최대한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가족들이 찾아오거나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나이가 많고 적거나 사회적 지위와 배경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입원 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암치료와 관련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1960년 전후의 시기였던 만큼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수술,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등이 적용되고 있는데, 항암제를 이용한 치료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주로 수술과 방사선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는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암들이 치료가 가능한 까닭에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말기암조차도 완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암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초기 단계를 넘어선 상태로 불치의 병이라는 암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암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에 어떤 환자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여 의료진의 처치에 저항하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암과의 투쟁에 적극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경험을 들어서 해당 병원들의 진료수준을 평가하는 환자경험 적정성평가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평가항목으로는 환자들이 치료방법의 결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의료진은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암병동>에 등장하는 의료진들은 환자들에게 치료방법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환자가 의료진이 결정한 치료방법에 동의하지 않으면 퇴원시키기도 하는데 한번 퇴원하면 다시 입원하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환자들로서는 의료진이 결정한 치료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다만 의료진들은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치료법을 적용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솔제니친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와중에 스탈린에 대하여 비판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체포되었습니다. 8년의 강제노동형과 3년의 유형을 선고받아 모스코바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의 강제노동수용소와 유형지를 전전하면서 스탈린 치하의 공포정치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와중에 악성 종양으로 진단되어 죽음의 목전에 이르렀지만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암병동>에는 솔제니친 자신이 경험한 암병원과 유형지 등 소련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까지 담겨있습니다.


암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만큼 솔제니친은 완치된 이후의 삶은 신으로부터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덤으로 주어진 삶에서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 즉 소련에서 벌어진 일들을 작품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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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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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2>한니발 전쟁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33년에 이르는 시기에 있었던 로마의 대외 전쟁사를 다루었습니다. 대부분은 지중해 건너편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페니키아인의 식민지 카르타고와 치른 포에니 전쟁이 차지합니다. 작가는 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을 시기별로 나누어 진행사항을 정리하고 이어서 벌어진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전쟁을 다룬 다음에 카르타고가 멸망하게 된 사연을 정리합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로마가 차지하고 있던 이탈리아 반도와 오늘날 튀니지의 튀니스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카르타고 사이에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나 그리고 코르시카가 있습니다. 페니키아는 지금의 레바논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민족으로 당시 그리스 사람들과 함께 지중해 곳곳에서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항해술로는 장기간 항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중해의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해안가에 전진기지들을 설치해놓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카르타고는 기원전 815년에 페니키아 출신의 디도여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기원전 750년 전까지는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선왕 사후에 왕위계승을 두고 형제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디도 공주는 추종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카르타고에 정착을 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페니키아는 쇠퇴한 끝에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르3세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뒤를 이은 시돈 역시 쇠퇴하면서 카르타고가 페니키아 사람들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안에서 세를 확산할 무렵에는 지중해의 패자는 카르타고였습니다.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대부분을 비롯하여 시칠리아 섬의 서부, 사르데냐 섬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와 발레아레스 제도를 지배했고, 심지어는 대서양연안으로 진출해서 남쪽으로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해안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영국의 도버해협까지 진출하여 교역을 했다고 전합니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합하게 됨에 따라 카르타고와의 충돌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초는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던 시칠리아 섬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북쪽에 자리한 메시나가 남쪽에 자리한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게 되자 카르타고와 로마를 저울질한 끝에 로마에 지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로마가 메시나의 지원을 결정하고 군대를 보내자 그리스계인 시라쿠사와 페니키아계의 카르타고 역시 위협을 느껴 동맹을 맺고 대응하게 되면서 벌어진 것이 제1차 포에니 전쟁입니다.


작가는 전쟁의 진행사항을 꽤나 시시콜콜하게 설명합니다. 전쟁은 겉으로 보이는 전력 이외에도 전황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인간적인 요소라든가 기후 등의 자연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우연한 상황이 승패를 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로마 공화정의 경우 의사결정과정은 복잡하지만 결정된 사항은 일사분란하게 집행되었던 것과는 달리 카르타고의 경우는 국내에 안주하려는 파와 해외경영에 무게를 두는 파가 시시콜콜 대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든 제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을 로마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해외경영에 무게를 두었던 한니발의 아버지는 이베리아반도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한니발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로마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프랑스 해안을 적지 않게 우회하여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심장부로 쳐들어간다는 생각을 실행이 옮길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적진에서 대군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이나 한니발은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로마를 위협한 끝에 결국 카르타고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카르타고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푸불리우스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대결을 펼친 한니발이 패함으로써 카르타고는 본국을 제외한 지중해의 모든 식민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로마에게 패배한 카르타고는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한 탓인지 기원전 149년에도 로마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하고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카르타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전쟁 이후에 모든 것이 말살되었고, 한니발 역시 전투와 관련하여 기록을 남긴 바가 없기 때문에 로마의 사료에 의지하여 이야기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작가로서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 보입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이기에 팔이 안으로 굽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떻든 그동안 막연했던 포에니 전쟁의 전말을 정리하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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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A-Z
얼프 퀴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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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4월부터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에 즈음하여 출간된 책입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화가의 작품전이 한국에서 열린다고 해서 저도 가보았습니다. 이 책은 전시회에 가기 전에 사서 읽었습니다.


<호퍼 HOPPER A-Z>는 독일 태생의 미술사학자이자 2004년부터 스위스 리헨에 있는 바이엘러 재단의 수석 학예사호 활동한 얼프 퀴스터(Ulf Küster)2020년 에드워드 호퍼전을 기획하면서 전시회의 보충자료로 준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목 그래도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모두 담았다는 의미의 제목인 것입니다.


호퍼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미국의 현대화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삶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호퍼는 초년에는 삽화가로 생계를 꾸리다가 1920년대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호퍼 HOPPER A-Z>에서 적지 않은 호퍼의 작품을 소개하면서도, 작품보다도 화가의 생애와 삶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다양한 미술평론을 통하여 익숙해진 호퍼의 대표작들은 당연히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처음 보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호퍼의 작품들이나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호퍼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정말 미국적인 풍경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 2년 정도 살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국을 자주 방문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호퍼의 작품에 담긴 풍경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 작품을 보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옮긴이가 호퍼의 창문을 들여다보듯 호퍼의 세상을 들여다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밝힌 것처럼 자동차를 타고 미국을 여행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호퍼는 여행을 통해서 영감을 얻기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저도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여러 차례 여행했습니다만 그만그만한 풍경이 지루하다는 느낌밖에 남은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랜드 캐년 등 콜로라도의 국립공원이아 나이애가리 폭포와같은 놀라운 경관도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오늘날의 에드워드 호퍼를 있게 한 사람은 화가의 부인 조세핀 호퍼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녀 역시 화가였지만 남편을 내조하는데 주력하다보니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구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세핀은 호퍼의 모델 혹은 조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빠진 것이 적지 않았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작한 소묘 연작 등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걸려있는 작품들을 돌아보고 나오다보면 호퍼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호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호퍼 전시회에 가기 전에 구입했던 또 다른 책 <빈방의 빛>과 마찬가지로 <호퍼 HOPPER A-Z> 역시 박상미님이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였습니다. <빈방의 빛>은 에드워드 호퍼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셈이 되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한 박상미님은 전문가라고 하겠습니다. 덕분에 호퍼에 관하여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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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 나에게 힘이 되는 마음챙김 걷기
애덤 포드 지음, 최린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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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관한 글을 써보려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 목사로 활동하던 애덤 포드가 쓴 <걷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도 그래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인도 종교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은만큼 불교, 힌두교에 관심이 많고 강의도 해왔다고 합니다. 제목에서 느끼는 것처럼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챙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힘이 되는 마음챙김 걷기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글의 성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글제목을 정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소제목을 참 잘도 지었구나 싶었습니다. ‘걸을 때는 그저 걷기만 하라는 서문의 제목을 비롯하여 마음의 짐 내려놓기’, ‘느긋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기’,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가을의 향기를 들이마시다’, 등 어떤 느낌으로 걸어야 할 것인지를 참 잘도 표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챙김 호흡과 마음챙김 걷기코끼리가 걷는 방식처럼 어떻게 걸을 것인지에 관한 내용임을 암시하는 제목도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으면 표시를 해둡니다만, 이 책의 경우는 표시를 별로 해놓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표시를 해야 할 대목이 너무 많았던 듯합니다. 저는 요즈음 암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까닭에 적당한 정도의 걷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서문에 첫머리에 나오는 걷는다는 신체 운동은 우선 마음에 생기를 불어놓어 줍니다.’라는 대목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챙김이라는 용어의 뜻도 정리해두었습니다. 아마도 선()을 영어로 옮긴 ‘mindfullness’를 우리말로 옮긴 듯합니다. 저자는 마음챙김이란 현실과 지속적으로 닿아 있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멍때림이라는 마음상태가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멍때림 대회 같은 것도 열리니 말입니다. 멍때림 대회는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사람이 우승을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마음챙김을 얻기 위한 명상은 멍때림과는 다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명상에 잠겨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마음의 궁전 어딘가로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에서 현재의 순간을 비추는 안내자처럼 땅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챙김을 실행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잘 걷는 것이라는 것 같습니다. 다만 걸을 때는 그저 걷기만 하라라는 붓다의 단순한 가르침에 따르라고 권합니다.


수많은 마음의 짐과 싸우며 걸어서는 안되므로 우선 생각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다보면 문젯거리나 일들이 자연스럽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리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짐에 몰두를 하다보면 스스로의 의지가 나서서 해결방법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의 뜻에 맞는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놓아버리면 무의식중에 문제해결방안이 떠오르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이 도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챙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라고 합니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려울 게 무엇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리듬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작은 글제목처럼 신체활동이 일정한 양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호흡이 마음챙김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일정한 방식으로 호흡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몰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탁닉한이 <걷기 명상>에서 추천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제각각 달라서 자신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좋고 편안한 방법을 찾아내라고 권합니다. 책을 읽고 나면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걷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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