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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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전후해서 불임인 일본인 부부가 대리모를 통하여 아이를 얻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하여 난자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면서 돈을 주고 난자를 제공받는 것을 규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모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법률조항은 없는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난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를 위한 불임시술을 정부가 지원하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기도 합니다. 난임 시술기관에서 제대로 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런 기관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서인지 <대리모 같은 소리>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대리모란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다양한 장애로 인하여 임신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도움을 받아 임신과 출산을 위탁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켜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하는 경우 말고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아내와 남편 어느 한 쪽이 생식기관에 문제가 있어 난자 혹은 정자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경우에는 다른 남성의 정자, 대리모 혹은 다른 여성의 난자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으나 아이를 원하는 남성, 동성애자 남성부부들이 아이를 원하는 경우에도 대리모를 이용하여 아이를 얻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리모의 경우도 대가를 받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상업적 대리모와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를 위하여 임신과 출산을 대신하는 이타적 대리모가 있다고 합니다. 아내와 남편의 씨를 받아 대리모의 자궁만 빌어 임신을 하는 경우도 다양한 윤리적 조건을 따져봐야 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입양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의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성이 곁들여지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수정을 거쳐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모체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출산을 통하여 얻은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의뢰인에게 내주어야 하는 심리적 위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자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성과 혼인의 관계로 인연을 맺은 바 없는 미혼 남성 혹은 동성애자 남성이 대리모를 통하여 아이를 얻으려한다는 것은 개인의 욕망에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만난 ‘모부’라는 단어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부모’라는 단어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나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페미니스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대리모가 겪어야 하는 위험에 관해서도 위험하다는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한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양이라는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상업적 대리모를 구하는 희망자들의 속성을 보면서 대리모를 인정하면 안된다는 이들의 주장에 조금씩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상업적 대리모를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인륜적인 행태가 과연 용납할 수 있는 문제인가를 깊히 고민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이타적 대리모의 경우도 과연 이타적인 측면만 있는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난임부부를 위한 불임시술의 뒤안길에 상업적인 어두운 그림자는 과연 없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읽기였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난임시술기관의 평가사업을 냉정하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현실을 제대로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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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서 - 자연이 만드는 우아한 세계, 24절기
위스춘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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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드는 우아한 세계, 24절기’라는 부제보다는 <시간의 서>라는 제목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중국사회에 파란을 일으킨 사상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는 시간의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서문을 읽어가면서야 저자가 중국에서 발전시킨 24절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서문의 제목을 ‘하나라의 책력을 시행하라’로 정하고, 부제를 ‘24절기에 관해’라고 했지만, 24절기가 하나라 때부터 시행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절기와 천문역법은 고대로부터 권력을 쥔 자들이 독점하던 것으로 백성은 그 원리를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1980년대에 이르도록 ‘교육부 중앙 관상대’에서 매년 달력을 제작하던 것이 시장에서 제작하게 되면서 권력이 독점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력의 제작은 민간이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달력의 기본 골격을 국가기관에서 내놓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아랍국가에서는 지금도 라다만을 비롯한 이슬람교의 행사들은 국가기관에서 정해서 일반에 공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절기에 관하여 써보겠다는 방향을 세웠을 때만하더라도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절기에 관해 쓰려고 할 때 처음에는 ‘뭔가 대단해 보이기는 하는데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시공의 의미를 깨달아 역사적, 심미적, 선(善)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는데, 절기에는 시간적 요소가 공간적 요소보다 훨씬 비중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회 중국 같은 경우는 동서로나 남북으로도 넓은 땅덩어리는 차지하고 있어서 절기라는 것이 모든 지역에서 통하는 것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는 사계절에는 각각 6개의 절기가 들어있습니다. 봄은 입춘부터 시작해서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로 이어지고, 이어서 여름은 입하로 시작하여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로, 가을은 입추로 시작해서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으로, 겨울은 입동으로 시작해서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 절기는 중국의 농사력에 기반하고 있는데, 입춘이 첫 번째 절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입춘부터 농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서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점에 대하여 십이지(十二支)와 천지인의 탄생을 연결하고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설명이 과한 듯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이 ‘봄날을 관찰한 역사가 천만년에 이른다’는 대목입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베이징원인은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인류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조상이라 할 호모 에렉투스입니다. 호모에렉투스는 17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아시아, 시베리아, 인도네시아 등에 걸쳐서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생인류에 앞선 구인류는 유인원류에서 진화한 것으로 믿어지는데, 아프리카 남부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구인류가 유인원류에서 진화한 시점이 300만년 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절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일정한 형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음양과 오행 등 동양철학적 설명을 포함하여, 세시 풍습, 속담, 기상학, 그리고 중국의 옛 시가를 비롯하여 서구의 문인들의 시가와 심지어는 일본의 자료까지도 인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옛 중국의 선비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조선의 시가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24절기는 중국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관심은 컸는데, 대체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기후조건과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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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대우고전총서 29
루크레티우스 지음, 강대진 옮김 / 아카넷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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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하는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책을 발굴해낸 과정을 뒤쫓은 하버드 대학교 인문대학 존 코건 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랫교수가 쓴 <1417년, 근대의 탄생; https://blog.naver.com/neuro412/221410933359>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말한 그 책의 이름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입니다.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을 계승한 루크레티우스는 세상의 모든 존재나 현상을 원자론에 기반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린블랫교수는 미와 쾌락의 향유에 관한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이 잘 체현된 문화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을 읽고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구입하였지만 막상 완독을 한 것은 1년여가 지난해 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도 들고 갔지만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고, 지난해 여름 발트연안국가를 다녀올 때도 들고 갔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1417년, 근대의 탄생>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요약한 것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린블랫교수가 요약한 것을 확인한데 불과한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이미 사물의 본질을 꽤뚫고 있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그가 세운 일반적인 원칙은, ‘아무 것도 무에서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물들은 작은 입자, 원자로 되어 있는데, 입자들 사이에 빈공간이 있음을 간파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의 견고함, 영원함, 단순함, 그리고 불변성을 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는 쉼 없이 운동하며, 여러 밀도를 가진 사물들 속에 결합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가 원자이며, 그 원자는 양자와 중성자가 들어있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빈공간이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미시의 세계 뿐 아니라 거시의 세계라 할 우주과 공간의 무한함을 논파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을 뿐더러, 천체, 땅, 대기의 현상들이나 지상의 현상들에 대한 논증 역시 과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영혼의 본성과 구조, 영혼의 필명설에 대한 증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어리석은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하나의 본성을 이뤄내는데 이는 신체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영원은 죽지 않는다는 견해에 반대하여 영혼의 필멸성을 증명합니다. 다만 ‘영혼이 잘게 나뉘어 바깥으로 흩어지며, 따라서 소멸한다.’라고 설명한 부분은 다소 의외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사물의 본질이라 할 원자로 구성된 신체가 죽음 뒤에서 해체되어 흩어진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죽음은 그저 감각의 정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애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사후에 징벌을 받을 것에 대한 공포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은 물론 에피쿠로스 자신도 삶의 빛이 다 저물자 떠나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너는 떠나기를 망설이고 억울해하겠는가?’라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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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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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하면 일단 기차가 하얀 설국을 달려가는, 낭만적인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런 낭만적인 여행을 떠올리며 고른 책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보잉747을 납치해서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충돌시키겠다는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비행기를 납치하기 위하여 공항검색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처럼 저 역시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짜증나는 이유는 “내가 검색대를 통과하면 어김없이 그놈의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면 갑자기 거창한 게임이 시작되어 검사요원들의 손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온몸을 더듬”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내가 비행기를 폭파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라고 내뱉은 경우였다고 합니다. 시니컬한 응답이 보완요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탓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꼭 이런 상황을 맞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골절수술이나 관절치환술 등의 수술을 받아 몸 안에 금속을 집어넣은 분들 말입니다. 사실 검색대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몸을 더듬는 요원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특히 짜증이 치밀곤 합니다. 그렇지만 검색대의 경보가 울렸는데도 그냥 통과한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한 주인공은 자신이 비행기를 납치해서 목표물에 충돌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써내려갑니다. 물론 이 글 역시 비행기와 함께 불타버릴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읽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생각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독후감까지 쓴 것을 보면 말입니다.

주인공이 조직 등의 사주를 받지 않은 단독 범행으로는 황당무계하다 싶은 비행기 납치라는 어마 무시한 범행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게 된 여성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심지어는 환각버섯이라는 생소한 것을 먹고 벌인 파티에서도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깜찍한 이야기를 생각해낸 작가가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가을 신작을 내놓는데, 그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화제를 모은다고 합니다.

엘로이즈라는 이름의 자폐증을 가진 작가와 그녀를 돌보는 아스트라보라는 여성에 꽂힌 주인공의 이름은 조일입니다. 조일은 엘로이즈라는 이름에서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무엇을 연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일과 그가 사랑하게 된 아스트라보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작가가 취재를 참 꼼꼼하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조일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5~4세개 무렵, 호메로스에 대한 혹평으로 유명하던 그리스의 소피스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메로매스택스(호메로스의 재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괴테는 자신의 작품을 혹편하는 비평가를 조일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아들의 아름을 정할 부모는 없은 것 같습니다. 사실 어머니기 조일을 가졌을 때, 부모님들은 딸일 것으로 확신하고 조에라는 이름을 미리 정해놓았다가 그냥 조에의 남성형인 조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는 11세기 프랑스 중세철학을 대표하는 피에르 아벨라르가 16살 연하인 제자 엘로이즈 사이에 얻은 딸입니다. 조카를 욕보였다고 생각한 중세시절의 엘로이즈의 삼촌은 사람을 시켜 피에르를 거세시켰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역시 피에르였고, 어머니 역시 엘로이즈였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피에르는 아내가 임신하고서 얼마지 않아 숭배하던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로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스트라보의 어머니는 ‘카스트로주의자’가 ‘거세(castration)'에서 유래한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제목이 겨울여행인 것은 조일이 두여자와 함께 벌인 환각버섯파티를 여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가하면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67쪽)’라고 하면서 ‘겨울과 사랑은 시련을 통해 욕망을 채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68쪽)’고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 <겨울여행>은 우리에게는 <겨울 나그네>로 더 익숙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멜리 노통브는 ‘사랑의 파괴’와 ‘테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즐겨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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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이른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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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떠날 때 책을 여러 권 챙겨가곤 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물론 몰입이 필요한 책까지 골고루 챙기는 편입니다. 수필도 빠트리지 않는데, 특히 철학자가 쓴 수필을 챙겨보려 노력합니다. 지난 연말에 다녀온 이집트여행에서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비롯하여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챙겼습니다. <지중해의 영감>을 챙긴 이유는 ‘시적이고 명상적인 그르니에 특유의 감성과 사유가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는 대목과 함께, ‘그르니에가 젊은 시절 머물거나 여행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 나라, 도시들과 그 내면화된 인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출판사의 설명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1898년 2월 파리에서 태어난 장 그르니에는 사상가이며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소개됩니다. 청소년기를 대서양 연안의 브르타뉴에 속하는 셍-브리유에서 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한 뒤에는 40여년에 걸쳐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를 거쳐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미학과 예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삶 속에는 거친 대서양의 기운과 부드러운 지중해의 기운이 공존한 셈입니다. 특히 알제리에서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치면서  그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처음 읽었습니다. 책을 고르면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등, 글의 주제를 얻은 지역으로 구분해놓은 목차의 작은 제목에 끌렸던 것입니다. 막상 책을 읽어가면서 서두에 있는 ‘침묵과 망설임의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는 시적 자질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는 것이 모험이었다라는 김화영교수님의 토로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읽고 이해하는데 옮긴이의 고통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글 ‘산타 크루즈’에서는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아이두르(Aidour)산에서 바로 본 풍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랑 사람들이 산타 크루즈라고 일컫는 산입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하dis 동전들의 무더기, 저것은 오랑, 자줏빛 잉크의 반점, 저것은 지중해,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저것은 햇빛을 통해 보이는 벌판의 소금.(29)” 산 위로 올라갈수록 풍경은 점점 거대해져갔는데, 그런 변화에서 파성추로 때리듯 쾅쾅 울리는 베토벤의 교향곡의 주제 악장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같았다는 지중해의 모습은 이번 여행에서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해안으로 연신 몰려드는 하얀 파도의 거품을 바라보면서 그르니에의 은유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집트의 기자에서 만난 피라미드, 아부심벨에 있는 람세스와 네페르타리 신전, 아스완에 있는 필레신전, 콤옴보와 에드푸의 호루스신전,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와 왕비의 묘, 합세슈트 장제전 등, 우리가 본 모든 것은 이집트 고왕국이 남긴 죽은 자들을 위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즉 산자들을 위한 건축물은 없었습니다. 그르니에 역시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던 가 봅니다. “산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도시 카이로와 바로 이웃한 저 거대한 사자들의 도시에서라면 나는 그다지 마음이 편치 못했으리라, (…) 산 사람들의 도시와 거의 맞먹는 크기의 도시, 유령들이 모시는 유령들의 도시(169쪽)”

그래서인지 그리니에가 로마의 유적, 특히 죽은 자들을 모신 묘지에서 그가 읽어낸 바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곁으로 무심히 지나가는 그대 길손이여, 미안하지만 그대 또한 그렇게 걸어가 봐야 소용없으리라. 그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테니.”(75-76쪽)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베로나에서 만난 묘지에서 느낀 바도 기억해둘 만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척도’에 맞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 삶을 버려야 한다.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이란 없으니 말이다.(97쪽)” 젊을 때는 열심히 살고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면 미련을 두지 말고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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