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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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国境いトンネルをけると雪国であったくなった信号所汽車まった)”로 시작하는 구절이 유명한데, 국경(國境)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국경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인데 한나라 안에서 국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국경의 긴 터널은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잇는 조에츠선의 시미즈(淸水) 터널이며, 신호소는 츠치타루역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조에츠선 열차가 시미즈 터널을 왕복했을 터이나, 요즘에는 신 시미즈 터널이 생겨서 시미즈 터널은 니가타에서 군마로 가는 열차가, 신 시미즈 터널은 군마에서 니가타로 가는 열차가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설국을 가려면 신시미즈 터널을 지나야 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국경(國境)이 나라간의 경계를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에 페번치현(廢藩置縣)하면서 도도부현(都道府県)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도와 국의 중간에 해당하는 쿠니()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마현과 니가타현은 옛날에 각각 코즈케쿠니(上野國)와 에치고쿠니(越後國)였다고 합니다. 두 쿠니의 경계가 조예츠(上越) 국경(國境)이었다는군요.


두 번째 의문은 굴을 경계로 하여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경치가 등장하게 된 연유입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인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시베리아 기단에서 발생한 추운 북서풍이 동해를 건너오면서 수분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 에치고 산맥을 넘으면서 눈을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품은 동해의 수분은 모두 니가타 현에 눈으로 뿌려지고 산을 넘어 군마현에 이르면 쏟아낼 눈이 없어 건조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군마현과 니가타현의 경관이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니가타현에 있는 유자와(湯沢온천에 있는 다카한 료칸에 머물면서 <설국>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서기 1075년에 개업하여 무려 950년의 역사를 가진 다카한 료칸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소설과 영화 <설국>에 관련된 자료를 비롯하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묵었던 방이 보존된 자료관이 있는데 내부수리를 거친 금년부터는 숙박객에게만 공개된다고 합니다. 곧 유자와를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볼 수 없다고 해서 아쉽네요.


<설국>의 내용은 고전무용 비평가이자 프랑스문학을 번역하는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島村)가 글을 쓰기 위하여 니가타로 가는 기차에서 맞은편 좌석에 앉은 요코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니가타의 온천장에서 부른 게이샤 고마코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천방지축인 고마코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요코와도 연결이 됩니다. 고마코는 동기(童妓) 시절 몸값을 내준 남편이 죽은 뒤에 온천에 들어왔는데, 춤을 가르쳐주는 스승의 아들인 유키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정한 바는 없지만 유키오와 짝을 이루었으면 하는 선생님의 암묵적인 암시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코(葉子)는 유키오의 새로운 애인으로 유키오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 공부를 했는데, 유키오가 죽은 뒤에 온천에 정착한 것입니다.


온천장에서 게이샤를 불렀을 때 처음 만난 고마코는 시마무라가 부르지 않아도 그의 숙소에 찾아오곤 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는 무엇을 느끼면서 관계가 깊어집니다. 그렇다고 시마무라가 온천장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고 글쓰는 작업을 할 때면 찾아와 고마코를 만나곤 합니다. 고마코와의 만남이 헛되고 보람 없음을 알면서도 그저 마음이 가는 탓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고마코의 집에 갔을 때 처음 온천장으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요코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유키오에 대한 지순한 사랑에서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매혹되기 시작합니다. 유키오를 돌보는 고마코와 요코의 정성도 유키오가 죽음을 맞으면서 헛되고 말았지만 두 사람의 지극정성이 순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세 사람 사이의 모호한 관계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마무리되지 않고 오히려 고치창고의 영화관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추락한 요코를 고마코가 뛰어들어 안아서 내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은 물론이고, 세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진전되는 가운데 작가가 묘사하는 온천장의 풍경이야말로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기를 쓰고 있다는 고마코에게 헛수고라고 하면서 ()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38-39)”라는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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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상복.최은경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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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녀올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을 찾아가는 일정이 있습니다. 동행할 예정인 로쟈 이현우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도쿄는 일본의 근대문학이 태동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맥락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하야시 후미코의 <뜬구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서 종전 후 몇 년 뒤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야기는 동해 쪽에 있는 후쿠이현의 쓰루가에서 시작합니다. 인도차이나의 다랏트에서 일하던 여주인공 유키코가 패전 후 하이퐁의 수용소에 머물다 귀환선을 타고 쓰루가에 도착한 시점입니다. 하이퐁에 모여든 일본여성들은 간호부, 타자수, 사무원이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위안부였다고 합니다. 쓰루가에 도착해서 조사를 받는 동안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는 유키코입니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다랏트에서의 생활은 전쟁을 잊게 해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키코가 인도차이나까지 흘러가게 된 것은 고향인 시즈오카에서 일하기 위하여 도쿄로 올라와 형부의 남동생 이바 스기오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일주일 만에 성폭행을 당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힘들어진 삶을 바꿔보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면밀하게 따져보고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변화를 주는 그런 성격으로 보입니다. 다랏트에서는 삼림기사 도미오카와 가노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유키코는 유부남인 도미오카와 사랑을 하게 됩니다. 나스메 소세키와 무사노고지 사네아쓰에 심취한 가노보다는 톨스토이 풍의 도미오카가 더 멋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다랏트에서는 달콤했던 사랑도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삶이 녹녹치 않은 탓인지 절절하지만은 않아보이는 도미오카에 여전히 미련을 가지는 유키코입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바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이바씨의 살림을 훔쳐 독립합니다. 우연히 미군 죠를 만나 도움을 받지만 여전히 도미오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도미오카는 산림청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하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럴 때는 유키코를 만나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찾기도 합니다만, 도미오카는 결국 유키코와의 동반자살을 꿈꾸고 이카호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오세이를 꼬여 도쿄로 돌아오면서 유키코와 거리를 두게 되고, 유키코는 이바와 다시 엮여 오히나타교라는 사교집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키코는 삶이 막막해진 사람들을 끌어들여 착취한 금전을 훔쳐 달아나고 오세이를 살해한 남편을 도와주고 있던 도키오카와 함께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로 도망친 끝에 그곳에서 병을 얻어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패전한 나라의 바닥인생들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으면서도 승전국에서는 어떤 인간상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비슷해서 승전국이라 해도 팍팍한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실려 물결이 흐르는 대로, 혹은 구름이 흐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도미오카와, 힘든 여건 속에서도 빈틈을 찾아 삶을 바꾸어가는 유키코의 삶이 어울리게 되는 것은 운명의 실타래가 그리 얽혀있기 때문일까 생각해봅니다. 뜬구름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적어도 지켜야 할 삶의 도리 같은 것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합니다. 이 또한 패전이 안겨준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도미오카는 마치 뜬구름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갈 뜬구름이다.(461)”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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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련님 - 문예 세계문학선 031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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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녀올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만나게 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집이 집에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도련님>에는 도련님’,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그리고 런던탑이 실려 있었습니다.


표제작인 도련님1906년에 발표되었다고 합니다만, 언제가 만나보았던 인물처럼 친근해 보입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때 학교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삔 적이 있는데, 친구가 거기서 뛰어내릴 용기는 없을걸? 이 겁쟁아라는 소리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나이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상황이면 뛰어내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이 부모님의 재산을 정리해서 나누어주었고, 화자는 집안일을 도와주던 기요하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이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는 도쿄를 떠나 시코쿠에 있는 시골 중학교에 수학교사 자리를 추천받아 부임하게 됩니다. ‘도련님의 이야기는 시코쿠의 시골 중학교에 부임한 신참 수학교사가 고참들과 학생들의 텃세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보여주는 화자의 성품은 어렸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타고난 것으로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참교사를 골탕 먹이려는 학생들의 태도를 보면 세월이 흘러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시골 아이들이라서인지 더 꾸밈이 없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시 학생들 가운데 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임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많았던 것이었을까요? 도쿄에서 온 선생님이라서인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학교는 물론 동네에까지 금세 소문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 많이 조심했어야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골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선한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많지 않는 선생님들이 서로 맞지 않는 선생님은 멀리하는 일종의 편가르기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동네이건 시대를 달리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도련님을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련님이라는 제목이 궁금했습니다. 가정부인 기요가 화자를 부르는 호칭에서 온 것이라면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도련님이라고 하는 것이 맞나 싶었는데,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도련님,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네사 샌님이라고 하던 의미와 같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는 일종의 유령소동입니다. 요즘에는 유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혹시(?)하는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습니다. 결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막상 그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런던탑은 템즈강 북쪽에 있는 고성으로 초기에는 웅장한 궁전으로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12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7년전에 영국과 아일랜드를 여행할 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자 역시 영국 유학시절 런던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이야기 끝에 하숙집 주인의 농담 한 마디에 작가의 공상이 무너져내렸다고 하면서 사실을 런던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설을 구성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든 세 작품 모두 잘 읽히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 전에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몰입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잘 만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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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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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노력이라는 부제가 달린 <로마인 이야기13>은 서기 284년부터 337년까지의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1부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서기284-305)의 치세를, 2부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서기 306-337)의 치세를 다루었고, 3부에서는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부침을 다루었습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에서 <로마인 이야기13>은 로마사에서 제정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원수정에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한 로마제국을 다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했는지, 그 실태는 어땠는지, 원수정과 다른 점, 그리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사실을 읽어 가다보면 그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이름은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 처음 갔을 때 들어보았습니다. 스플리트 근처에 있는 살로나(지금은 솔린이라는 곳입니다)에서 태어난 디오클레스라는 이름의 하층민이었던 그는 로마군단에 들어가서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이 되었습니다. 284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원정하던 누메리아누스 황제가 니코메디아에서 살해된 뒤에 군단이 그를 황제로 추대하였고, 디오클레티우누스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제위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안전보장과 구조개혁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도나우강의 방위선을 정비하고 동방으로 가서 페르시아와의 관계를 원상으로 돌려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절반을 양도받고 아르메니아 왕국에서 친로마파인 티라다테스2세를 즉위시켰습니다. 시리아와 이집트 지방을 위협하던 도적과 원주민의 발호를 진압하고 도나우강 유역으로 돌아와 사르마티아족을 격퇴하는 등 제국의 방위선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을 개혁하는 작업은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자신과 막시미아누스를 정제로 하고 각각 부제를 두어 다스리는 4두 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4명의 황제가 있는 셈이라서 필요한 자금이 확대됨에 따라 세제개혁이 필요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출범하면서 부담이 크지 않은 간접세를 부과하고, 부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을 부담하는 방식이었던 것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세계 개혁으로 인두세와 토지세 등 직접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품과 용역의 상항을 정하는 가격통제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위기에 빠진 제국을 수습해놓은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은퇴하고 스플리트에서 노후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였으며 첫 번째 기독교인 로마황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은퇴한 뒤를 이은 사두체제가 서방정제 콘스탄티우스의 죽음에 따라 갈등을 일으키는 와중에서 사두체제를 무너트리고 단독 황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스탄불이 된 비잔티움을 건설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하여 로마제국의 중심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소작농을 농노로 바꾸어 중세의 장원경제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대제로 불리면서 오늘날까지도 이름을 전하게 된 것은 그가 공인한 기독교가 오랜 세월 유럽을 지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그보다 앞서 로마를 지배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사람들에게는 그의 치적이 강화되어 비쳤을 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3년 기독교 탄압을 규정한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교회와 성물을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금하고 사제를 구금하였다고는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로마 신의 제의에 참석하면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기독교계에서는 3천명에서 35백 명이 순교하였다고는 하지만 정확한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대박해시대라고 하는 이 시기의 순교자가 너무 적다고 하는 연구자도 있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친화적인 정책들은 오히려 기독교 성직자들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특혜를 부여한 것으로 로마적이지 않은 결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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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재기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33
히구치 이치요 지음, 임경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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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떠나기로 한 일본문학기행에서 다루게 될 4명의 일본 작가 가운데 히구치 이치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키재기>가 논의될 것이라고 합니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이구치 이치요의 작품집 <키재기()>에는 표제작 <키재기>를 비롯하여 모두 6편의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히구치 이치요는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에도시대가 메이지유신으로 넘어가는 격변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서구문명이 밀려들어오던 시기였지만 에도시대의 사회적 풍조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여류소설가들이 주로 상류 사교계를 무대로한 결혼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도쿄의 중심지역이 된 에도에 있던 요시와라 유곽이 <키재기>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말미에 있는 해설을 보면 요시와라의 구시대적 활기와 메이지적인 어둠, 사치와 빈곤, 해학과 슬픔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소년소녀들과 그들의 사랑을 그려냈다(262)’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변천상이 일본을 뒤따라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이치요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첫 작품 <섣달그믐>의 주인공 오미네는 부모없이 삼촌집에서 자라다가 곤궁한 삼촌을 돕기 위해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부잣집 사람들의 행태 역시 과거 우리나라의 졸부들이 보여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삼야>의 여주인공 오세키 역시 높은 신분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출세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그녀를 흠모했던 로쿠노스케는 삶에 의욕을 상실하고 인력거를 끄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친정에 왔던 오세키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은 포기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로쿠노스케를 만난다는 설정도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갈림길>의 남주인공 기치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이웃집 오쿄 누나에게 의지하는데, 그녀마저도 미천한 신분을 벗어나려 부유한 남성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나 때문에>에서는 하급관료 요시로가 미모의 아내와 결혼하여 진실한 사랑을 꿈꾸지만 출세욕이 전혀 없는 소시민적인 요시로에 실망한 아내가 떠난 뒤로 돈을 뒤쫓는 속물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도 언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키재기>의 무대가 에도의 유곽 요시와라라고 했습니다만, 당시 유곽은 도쿠가와 막부가 공인되고 관리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에도의 요시와라는 교토의 시마바라, 오사카의 신마치와 함께 3대 유곽으로 꼽혔지만, 일본의 유곽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곽촌으로 1893년에는 요시와라에 무려 9천명이 넘는 여성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키재기>에서는 요시와라의 유녀들을 중심으로 한 남녀관계가 가감 없이 서술되거나 유곽촌에 살던 소년 소녀들 사이에 오가는 사연들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요시와라에 거주하는 소년과 소녀들의 풋풋한 사랑이 다루어집니다. 8월의 축제부터 11월의 축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요시와라의 최고 유녀의 동생 미도리(14)를 중심으로 전당포 아들 쇼타로, 인력거꾼 아들 산고로 등의 큰길파와 토목기술자의 아들 초키치를 중심으로 한 골목파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습니다.


골목파 아이들은 큰길파 아이들에게 맞대응하기 위해 절의 주지 아들인 신료를 끌어들여 8월 축제 때 큰길파의 행사장에서 난동을 부렸다. 초키치는 그들의 행패를 말리는 미도리에게 몹쓸 소리를 해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미도리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11월 축제 때는 유녀 모양으로 머리를 하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신뇨는 승려 공부를 하기 위해 동네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키재기>는 요시와라 유곽촌 아이들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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