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 의과학계의 판도를 뒤바꾼 작은 뇌세포에 관하여
도나 잭슨 나카자와 지음, 최가영 옮김 / 브론스테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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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뇌과학을 전공한 까닭에 뇌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는 목차에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쓴 도나 잭슨 나카자와는 과학전문기자입니다. 특히 길랑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이라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계질환을 앓았다고 합니다. 길랑-바레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수초라는 절연물질이 벗겨져 발생하는 급성 마비성 질환입니다그녀의 주치의는 면역계의 백혈구가 무법자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병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작가의 이런 병력은 질환과 면역계와 뇌의 장애를 연결하는 삼각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발성경화증, 세균감염과 관련한 우울증, 양극성 장애, 기억력저하, 조현병 등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던 작가의 촉에 걸린 연구가 바로 뇌의 미세아교세포(microglia)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뇌조직에는 신경세포 숫자의 열배 정도인 수천억 개의 아교세포가 있습니다. 신경세포의 기능을 지원하는 아교세포는 4종류가 있습니다. 뇌실을 덮고 있는 표피세포가 있고, 신경섬유를 감싸는 희소돌기아교세포, 뇌조직은 지탱하고 뇌혈관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신경세포에 전하는 별아교세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세아교세포가 있습니다. 미세아교세포는 신경조직에 있는 백혈구로 이해되어왔습니다. 뇌에 이상이 생기면 미세아교세포가 대식세포로 변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미세아교세포는 뇌가 만들어지면서 신경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진다는 설명과 골수에서 만들어진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저의 스승께서는 골수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하시기도 했습니다. 남성의 골수를 이식받은 여성의 뇌의 미세아교세포에서 남성에서만 볼 수 있는 Y염색체를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미세아교세포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내는 축삭돌기가 신경세포에 접할 때 만들어지는 신경연접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 신경세포와 신경연접을 공격하여 제거하는 일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세아교세포는 우리 몸의 일반 면역세포들과도 소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에는 의학자와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미세아교세포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을 뒤쫓았습니다. 흔히 신경과학은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어려운 내용을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해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로는 너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담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내용도 일부 있었습니다.


우울증 치료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알츠하이머병에 관심이 많은 까닭에 이 부분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뇌는 뇌혈관장벽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외부의 독성성분의 침투를 막는 방어벽인 셈입니다. 그런데 뇌수막에도 림프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뇌수막의 림프관을 통하여 신체의 면역계와 뇌면역계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뇌면역계의 핵심은 미세아교세포입니다. 미세아교세포가 면역계의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신경세포나 신경연접을 공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증질환을 앓은 환자에서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이 생기는 기전도 신경연접을 보호해야 할 미세아교세포가 오작동하면서 신경연접을 먹어치우거나, 먹어치워야 하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방치하기 때문에 쌓이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비스테로이스성 소염제(NSAID)를 사용하는 염증성질환 환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이 크지 않더라는 사실이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가 미세아교세포의 폭주를 차단하는 효과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의 방향이 완전 예방 혹은 치료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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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 무엇이 우리의 노년을 결정하는가
마르타 자라스카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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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은 수와마분 차생가원(雖臥馬糞 此生可願)’이라는 속담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대로 해석하면 말똥 속에 눕더라도 이곳에 살기를 원한다라는 뜻이지만, 우리말로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풀이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172일에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3년이라고 합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하게 지내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풍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병으로 골골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본인도 가족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시대적 소망을 담은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책을 쓴 마라트 자라스카는 건강, 심리,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적 해답을 탐사하는 기자로 워싱턴 포스트 등 유수한 신문에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부응한 기사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큰 그림은 놓치고, 그저 먹는 것이나 운동과 같은 단편적인 내용에 머물고 있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관계, 감정, 마음같이 수명 연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분자생물학, 전염병학, 신경과학, 동물학, 인류학, 심리학, 사이버 심리학부터 아시아 연구, 마케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 영역을 꼼꼼히 살펴, 학계에서 검증한 학술 논문을 600편 이상 읽었고, 마음과 건강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50명 이상의 과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기획도 대단하지만 꼼꼼하게 실행에 옮긴 것 같습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늙어가고 마음과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결혼과 우정, 자원봉사와 성격변화에 이르기까지 수명 연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다만 영양제, 건강측정기 등 별로 효과도 없는 방법에 몰입하면서 애정생활, 우정, 인생의 의미와 같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건강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몸에 좋은 것들의 배신에서는 몸에 좋다는 영양제나 슈퍼푸드, 유기농 식품이 과연 몸에 얼마나 좋은지 따져 물었습니다. 또한 성격에 따라서는 수명을 갉아먹을 수도 있으며, 감정이 뇌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고독한 사람들은 자주 아플 수 있다고 하는데, 몸이 마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원만한 관계는 수명연장에 기여하며, 공감과 이타적 행동 역시 수명연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2015년에 핀란드에서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결혼반지를 까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들보다 심장마비의 위험도가 69% 높았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경우도 8% 높았다고 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롭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을테니 역시 건강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결혼이 건강과 수명에 도움이 되는 기전은 믿음과 헌신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헌신을 왜 해라는 생각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완벽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 역시 건강을 유지하는데 이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고 합니다. 장수하려면 헌신적인 반려자, 몇 명의 절친한 친구, 돌봐주는 이웃 등, 든든한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쓰는 일은 때로 건강에 상당히 해로울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 책의 기획방향에 맞추어 힘을 쏟은 것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명연장에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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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 - 알츠하이머는 노화나 유전이 아니라 생활습관 병이다!
딘 세르자이.아예샤 세르자이 지음, 유진규 옮김 / 부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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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질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치매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을 쓴 딘과 아예샤 세르자이 박사 부부는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딘은 헬스케어 리더십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아예사는 혈관신경학과 역학 분야의 펠로십을 이수하고, 요리학원에도 다녔다고 합니다. 치매예방을 위한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는데, 지중해식단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는데 기여한다고 하고,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식이요법(DASH)’이 뇌졸중을 예방함으로서 혈관성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등의 식사를 통한 치매예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마린다 대학교의 두뇌건강과 알츠하이머 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마린다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도로 구성된 지역사회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연 그대로의 채식, 규칙적인 운동, 사회봉사를 교리로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인근에 있는 샌버노디노 지역은 낙후되어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이 만연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지역의 환자를 진료하는 가운데 뉴로 플랜(NEURO Plan)이라는 혁신적인 치료법을 고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증상을 되돌리거나 악화되는 것을 방지했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했다고 주장합니다.


뉴로 플랜(NEURO Plan)의 핵심은 영양(Nutrition), 운동(Exercise), 긴장이완(Unwind), 회복 수면(Restore), 두뇌 최적화(Optimize)입니다. 알츠하이머가 생활양식에 기인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저자들이 주장하는 요소들은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질병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아밀로이드 반과 신경섬유농축체가 쌓여 신경세포가 죽어나가는 현상을 보았을 뿐입니다. 아밀로이드 반에는 이상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유전적으로 베타 아밀로이드를 많이 만들어내는 돌연변이가 확인되었습니다. 병리학적으로도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인지장애가 없는 노인의 뇌에서도 아밀로이드반이나 신경섬유농축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뉴로플랜을 적용하려면 우선 알츠하이머 위험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나이, 유전적요소 등 불변적 위험요소와 영양, 운동, 스트레스, 수면, 정신활동, 사회 활동, 질병 이력 등의 가변적 위험요소에 각각 점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항에 따라서는 주관적으로 점수를 부여하도록 되어 있어 정확할지 의문입니다.


저자들은 광범위하게 문헌을 조사하여 고안한 뉴로 플랜을 로마린다 대학교의 두뇌건강과 알츠하이머 예방 프로그램을 통하여 치매환자에게 적용한 결과를 통하여 개인별 맞춤치료로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환자의 증상을 개선시키거나 병증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지지하는 문헌에 무게를 두어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치매를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생활습관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노화나 유전이 아니라 생활습관 병이다!’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미 밝혀진 유전적 요인에 의한 알츠하이머병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모든 치매환자들에게 뉴로 플랜을 적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인이 다른데 동일한 치료방식으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 뉴로 플랜이 알츠하이머 병을 비롯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한다는 문제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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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치유의 책
레지나 오멜버니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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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유럽에서 구경하지 못한 나라가 있습니다만, 그 옛날에도 유럽에서는 여행이 자유로웠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광기와 치유의 책>은 아빠 찾아 유럽 각국을 주유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16세기 말, 베네치아에서 개업하던 의사 에르네스토 바르톨로메오 몬디니씨가 <질병백과>를 저술하기 위하여 유럽 각국을 주유하면서 다양한 사례와 치료법을 수집하러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프랑스를 거쳐 모로코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 사이에 딸 가브리엘라에게 근황을 전하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여정이 수년을 넘어가면서 이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가 날아오면서, 가업을 이은 가브리엘라는 아버지의 보증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소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결국 가브리엘라는 하인 부부인 로렌초와 올미나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서 나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파도바에 사는 카르다노 박사를 찾아 소식을 구합니다만, 별 소득이 없이 없어 아버지가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소식만 듣습니다. 파도바를 떠나 향한 곳은 독일의 튀빙겐입니다. 튀빙겐이 이르는 동안 폭우로 불어난 콘스탄츠 호수 인근에서 개울을 건너다가 말과 약상자를 잃었을 뿐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집니다. 바슬러박사라는 개업의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행을 당할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튀빙겐으로 가는 길에 도움을 얻은 구두룬 부인은 약초학에 조예가 깊지만, 마녀로 몰릴까봐 조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중세 시절에는 특히 여성이 민간요법을 행하는 경우에 흔히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튀빙겐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신교가 득세를 하면서 가톨릭 신자나 여성들을 처형하는 사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튀빙겐에서는 식물학 박사인 라이너 푸크스 박사를 찾아갑니다만,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푸크스 박사가 훔쳤던 아버지의 원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튀빙겐에서는 배를 타고 네덜란드의 레이던으로 가서 오테르스페이르 교수를 만나지만, 아버지의 종적은 여전히 감감하고, 이곳에서 아버지의 광증이 더 심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이곳에서 해부학 실연에 참여하게 되는데 당인 해부대에 오른 외국인 남자는 튀빙겐에서 만났던 로흐너씨었습니다. 가브리엘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뒤따라왔던 것인데 불행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다음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입니다. 이곳에서는 철학과교수인 해미시 어카트 박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역시 아버지의 행적에 대한 소문은 별로 없었습니다. 겨울철이라서 여행이 힘든 탓에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질병백과>의 집필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프랑스 몽펠리에에 있는 주베르 박사와 서신을 교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에든버러에 묵는 가운데 해미시 아카트 박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몽펠리에서도 별 소득이 없자 아버지가 편지를 보냈던 에스파냐의 산타엔그라시아로 향합니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의 한 오두막에 머물던 날 곰의 습격을 받아 로렌초가 죽었습니다. 산타엔그라시아에서는 약재상의 도움을 받아 에스파냐 남쪽 해안에 있는 알헤세르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하녀인 올미나는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가브리엘은 탕헤르로 건너갑니다. 탕헤르에서는 사막에 있는 타라단테로 향했습니다. 아버지가 편지를 보낸 곳입니다. 그리고 타라단테에서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미 광기가 도져 정신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곳 여관의 주인이 광에 묶어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아버지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나 10여년을 주유했지만 얻은 것은 광기뿐이었습니다. 정신이 멀쩡해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 이국에서 광기로 혼란스러운 모진 삶을 이어간 것은 딸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려온 것일까요?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한 가브리엘라는 , 아버지! 저 세상으로 훌쩍 뛰어가버리셨군요! 기억의 황야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나요, 그래야 마침내 가버릴 수 있으니까? 어제 우리는 같이 웃었잖아요.(444)”


16세기 말에 하인 부부가 동행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처녀의 몸으로 유럽을 주유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1590년 베네치아를 출발하여 1592년에 돌아갔을 것으로 짐작되니 정말 오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경비를 어떻게 조달하였을 것이며, 보안문제는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당시 의학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 그러니까 <질병백과>의 원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의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민간전승의 요법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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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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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까지 오르한 파묵의 전작 읽기를 마친 것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전작 읽기를 마친 뒤에도 소설과 수필집에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빨강머리 여인>을 읽게 되었습니다.


<빨강머리 여인>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고 내쳐진 오이디푸스가 결국은 신탁이 예언한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선왕 라이오스의 잘못에 대한 징벌에 연좌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혹한 신의 처사에 따른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라이오스의 악행은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 손자와 손녀들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테베의 백성들까지고 고초를 겪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은 <빨강머리 여인>에서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이란의 민족서사시 <왕서>에 등장하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11세기 초 페르도우시(Ferdowsi)에 의하여 완성된 <왕서(Shahnameh)>는 우주의 창조부터 7세기 페르시아가 아랍사람들에게 정복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6만 여구의 시행에 담았습니다. 무려 7권의 분량에 달하는 <왕서>는 페르시아 최고의 서사시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서사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함께 세계 4대 문학작품으로 꼽힙니다. 우리말로는 아직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빨강머리 여인>에서 인용한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이란의 영웅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적국 투란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투란의 왕은 뤼스템을 환대하였고, 타흐미네 공주는 뤼스템에 반하여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하룻밤 사랑으로 타흐미네 공주는 쉬흐랍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쉬흐랍이 장성하여 이란에 쳐들어갑니다. 이란의 폭군 케이카우스 왕을 폐위시키고 아버지 뤼스템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투란으로 돌아와 투란의 폭군 아프라시아브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 뤼스템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나서서 결국 쉬흐랍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왕서>에 나오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는 아들이 아비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다른 얼개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파묵의 <빨간머리 여인>은 뤼스템과 쉬흐랍의 전설보다는 오이디푸스의 신화의 기본 설계에 따릅니다만,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등장인물이나 서사구조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 젬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 우물파기 명장 마흐무트 우스타를 따라 왼괴렌으로 우물을 파러 갑니다.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빨간머리 여인을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누기도합니다. 우물파기 작업을 하면서 마흐무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실수로 흙더미가 담긴 양동이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마흐무트가 죽었다고 생각한 젬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아들이라고 생각한 건설업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운명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빨간머리 여인과 하룻밤 사랑으로 아들이 태어났는데, 사실은 빨간머리 여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애인이었습니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마흐무트는 빨간머리가 나서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오이디푸스 신화와 일치하는 부분은 젬과 빨간머리 여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엔베르의 손에 젬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빨간머리 여인>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주인 셈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는 오이디스푸스 신화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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