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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ㅣ 창비세계문학 4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애숙 옮김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얼마 전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도쿄에 있는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관에 가는 길에 로쟈 이현우 선생님이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설명하는 가운데 <방랑기(放浪記)>가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하였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옮긴이는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문학’이라는 제목의 작품해설에서 <방랑기>가 하야시 후미코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했습니다.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이주할 무렵부터 약 5년간에 걸쳐 쓴 공책 6권 분량의 <노래일기(歌日記)>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1928년 10월부터 20회에 걸쳐 <뇨인게이주츠(女人藝術)>에 연재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1930년에는 카이조오샤(改造社)에서 속방랑기(続放浪記)를, 그리고 1949년에는 루조쇼텐(留女書店)에서 방랑기3부를 출간하였다. 5년간에 걸친 <노래일기(歌日記)>를 기계적으로 3등분한 형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노래일기(歌日記)>는 발표되지 않은 부분을 남기고 후미코 자신이 파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방랑기(放浪記)>의 내용이 어느 정도 <노래일기(歌日記)>와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방랑기>의 모두에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라는 대목이 나오지만 자신의 고향이 큐슈의 사쿠라지마가 고향이라고 밝혔습니다. 제2부에서는 “나는 사는 게 힘들어지면 고향을 생각한다.(276쪽)”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기타큐슈의 초등학교에서 배웠다는 <그리운 내 고향>이라는 노래의 일부를 수록했는데, “깊어가는 가을밤 낯선 타향에서 / 외로운 마음에 나 홀로 서러워 / 그립다 고향 산천 보고픈 내 부모님”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노래는 미국의 존 오드웨이가 작사 작곡한 노래 <Dreaming of Home and Mother>라는 가곡을 인도규케이(犬童球溪)가 개사한 <료슈(旅愁)>라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번안곡을 다시 번안하여 여수(旅愁)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외로워 /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이라는 익숙한 가사는 누가 지었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하야시 후미코는 <방랑기>에서 외지인과 결혼하여 고향에서 떠나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행상을 하며 성장하다가 도쿄에 올라와서도 소설가의 하녀로 시작하여 목욕탕, 출판사, 재고점 등의 점원을 하거나 노점상을 하다가 식당과 찻집의 종업원을 거치는 등 먹고살기에도 급급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책을 사거나 빌려 열심히 읽으면서 시, 동화,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써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여 받는 몇 푼의 고료를 벌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만 해도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후미코는 생전에 “자신의 소설은 쌀을 됫박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는 소설이다.”라고 했다는데, <방랑기>에 나오는 그녀의 삶은 봉지쌀을 사서 하루를 연명하는 그런 삶이었고 생활비가 부족하여 지인에게 돈을 빌리러 간 적도 있고, 그조차도 여의치 않을 때는 몸을 팔 생각까지도 했다고 적었습니다. 방랑기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렇게 바닥을 헤매는 삶을 살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그녀의 악착같은 삶을 응원하는 마음이 하나로 모인 탓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가 조선작의 소설을 영화화한 <영자의 전성시대>가 시골에서 올라와 여급으로 일하다가 윤락녀가 된 영자의 삶을 다루면서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응원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방랑기>를 어렵게 읽은 이유는 이야기가 맥락이 분명치 않게 전개되는 점인데, 아마도 <노래일기(歌日記)>에서 발췌하여 연재하는 과정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한 삶이 어려우면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시기, 동거하는 남성이 있으면서도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가는 등 오락가락 하는 모습 등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졌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옛말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꽁치 굽는 냄새가 계절을 알리는 신호(100쪽)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곽에서는 기생들에게 매일 꽁치만 먹여 몸에 비늘이 떠다닐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흔히 알기로는 꽁치는 비늘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은 잔비늘이 촘촘하게 덮여있지만 어획과정에서 그물코에 걸린 꽁치가 몸부림치면서 많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합니다. ‘클로로포름 냄새가 식초 같다는 대목’도 있는데(139쪽), 평생 포르말린 냄새를 맡으며 일을 해온 제 경험에는 식초 냄새보다는 매큼한 냄새가 강하다는 생각입니다. ‘시클라멘 냄새가 불쾌하다’는 대목 역시 공기정화식물인 시클라멘의 꽃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난다고 하니 그 향이 불쾌하다는 작가의 친구 토끼가 예민한 탓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문학가들과의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결국은 질곡에서 벗어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가가 <방랑기>에서 읽었다고 하는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이 많은데, 일본사람들이 독서열이 대단하여 그 옛날부터 다양한 외국서적들이 번역되어 일본에 소개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랑기>의 여러 곳에서 조선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그 조선인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간토 대지진 직후에 조선 사람이 우물에 독을 탓다는 유언비어를 들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에 대하여 “교외에서는 조선인들이 큰일이라고 하던데요.(175쪽)”라는 정도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아무런 차별의식 없는 평온한 시각이라고 설명합니다.
출간 당시 굉장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문단에서는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방랑기>였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여성주의(Feminism)에 입각한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집’에 결박되는 ‘나’를 거부한 채 오로지 예술에 의한 자아실현을 추구해나가는 삶은 한 여성 작가의 선 굵은 ‘자기형성의 여정’과 겹쳐진다.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방랑의 삶과 파격적인 감성,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장, 먹고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내는 절박하고 튼특한 생활력, 여성은 ‘가족’과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존재라 여겨지던 1920년대의 사회를 향해 던지는 통렬한 자기주장이 <방랑기>다.(449쪽)”라는 해석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성주의자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 활동 가운데 설명이 되지 않는 점이 더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발표된 <눈보라(吹雪)>, <비(雨)>, <목가(牧歌)> 등은 농촌을 무대로 전쟁의 참상을 다루어 반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작품들입니다. ‘천황폐하는 미치셨다’면서 무정부주의를 선언했던 후미코였지만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내각정보부의 펜부대(ぺ部隊)의 장교로 참여하였고, 분게이주고운도(文藝銃後運動)의 강연회에도 참여하는 등, 군부의 전쟁 수행에 협력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라 할 것입니다. 상황에 따른 변신이 그녀의 철학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