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골에 이사 왔어요 신나는 책읽기 12
양혜원 지음, 최정인 그림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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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교 4학년 채운이네 집은 산속 외딴집이다. 어디 먼데 여행 가는 기분으로 엄마 아빠를 따라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고 방문 밖으로 쪽마루가 나 있는 허름한 집들이 있는 동네를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가야 채운이네 집이 나온다. 서울에 살 때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그런 집이다.

종일 바람 소리 물소리만 들리는 깊은 산속에서 다시 이사 가자고 조르던 채운이 남매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가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온 것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냇물, 달님, 봄바람, 솔향기, 산새 소리....

아이들은 똥이 더럽다고 하면서도 똥이야기는 무지 좋아한다. 더러운 것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 딸아이가 '똥탑'을 읽으면서 내내 종알거렸다. 엄마 어렸을 때도 그랬냐고. 겨울 내내 꽁꽁 얼면서 차곡차곡 쌓인 똥탑 이야기는 어른이 읽어도 정말 재미있다. 특히 어린 시절 이런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자란 내겐 더 실감이 났다. 사실 요즘은 시골에 가도 이런 재래식 화장실은 보기 힘든데 채운이네 집은 진짜 깊은 산속인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어쩌다 도시에서 전학을 오는 아이가 있었다. 뭔지 시골 아이들과는 다른 듯한 그 아이는 선생님과 모든 아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피부도 새하얗고 공부도 잘하고 예쁜 구두도 신고 심지어는 촌스럽지 않은 이름까지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채운이는 시골 학교로 전학 와서도 정말 씩씩하다. 채운이가 새로 산 구두 한 짝을 재래식 화장실에 빠뜨리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만 기 죽지 않고 복수까지 하면서 학교 생활을 잘 해 나간다. 아마 채운이의 부모님이 딸아이의 이런 면을 믿고 귀농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는 나만 잘 한다고 잘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과 잘 살아야 진짜 잘 살 수 있다. 호미 할매는 어느 마을에나 있는 이웃이다. 아이들이 냇가에 만들어놓은 수영장으로 가기 위해 밭고랑으로 드나들자 화가 난 호미 할매는 출입 금지를 시킨다. 채운 엄마의 사과와 호미 할매의 용서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채운이네 가족이 산속에서 겪는 사계절 이야기,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에 빠져 당장이라도 여우골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동네 이름처럼 진짜 여우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채운이랑 같이 냇가에 나가 물장구도 치고 싶고, 호미 할매랑 부침개라도 부쳐놓고 앉아 종알종알 수다를 떨고 싶다. 아이들도 여우가 나와서 '여우골'이라는 말에 더 호기심을 보이며 가보고 싶댄다. 울진 통고산이 어딘가 궁금하다.

나도 가끔은 귀농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난 너무 많은 것을 안다. 시골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손보고 마음을 써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나는 문 꼭 닫아 걸면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는 도시를 감히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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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9-0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우~~~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는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소나무집 2006-09-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는 없는데 노루는 진짜 있대요.

씩씩하니 2006-09-1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농을 꿈꾼다,,,,,,,,,저두요..
전 진짜 땅도 보러 다녔잖어요,,,근대 이상하게 농촌에서 자란 울신랑은 농촌을 안꿈꾸고,,제가 꿈꿔요...뭣몰라서 용감한거라든걸요???

소나무집 2006-09-13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분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절대로 꿈 안 꿀 거예요.
 
할머니 집에서 보림어린이문고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 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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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시골을 좋아합니다. 외가가 농사를 짓는 덕분에 농사에 대해 제법 아는 척도 합니다. 그래서 도시에 살지만 도시 아이들 같지 않은 구석이 많답니다. 이 책을 읽던 큰 아이는 지난 봄에 할머니댁에 가서 감자 캤던 기억을 바로 되살려내더군요. "엄마, 솔이네 할머니집은 우리 외할머니댁이랑 똑같아요. 상구라는 친구가 있는 것만 빼고."

지난 봄 감자를 캐러 오라는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고는 주말에 내려갔지요. 감자를 캐다가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서 두어 두둑 남겨두셨다며 얼른 아이들 보고 캐라고 하셨습니다. 옷에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은 "야, 감자다" 하며 엄마를 앞서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이 잘 캘까 싶어 주의를 주며 처음엔 엄마가 캐는 감자를 주워 담도록만 했지요. 호미로 흙을 파낼 때마다 때글때글 굵은 감자알이 나오자 아이들은 정말로 신기했나 봅니다. 서로가 호미를 들고 자기가 감자를 캐겠다며 아우성었지요. 결국 감자 주워담는 일은 엄마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자기가 캔 감자가 크다며 대어보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두 두둑의 감자를 순식간에 다 캔 아이들은 할머니께서 캔 쪽의 밭을 보고 "저쪽도 우리가 캤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요.

저도 보라꽃이 피면 보라 감자가 열린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네요. 우리 딸아이는 외할머니도 보라 감자를 심어놓고 자기를 불렀으면 좋겠다며 스케치북 가득 보라 감자를 그려놓았습니다. 아이가 하나하나 그리는 그림이 책 속의 그림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그림 작가가 아이들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솔이나 우리 아이들처럼 찾아갈 할머니댁이 있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세상에 아주 조그만 식물 하나도 혼자서 자라는 것이 아님을 저절로 알게 되지요. 가랑비랑 이슬이랑 뙤약볕이랑 할머니가 그것들을 키우지요. 여기에 또 하나 있답니다. 바로 아이들요. 그 아이들은 힘든 일을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농군에게 가장 큰 힘을 줍니다. 어쩌면 주말에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더 열심히 감자며 호박이며 고추를 돌보고 계실지도 모르니까요.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이 초등 4,5학년만 되어도 방학 같은 때 할머니댁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나 이틀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공부를 한다고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까요? 그 시간에 할머니댁에 가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늘 손주들 기다리다 목이 길어지는 할머니 품에도 안겨보고 할머니가 쪄주는 감자랑 옥수수랑 먹으면서 느끼는 사랑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솔이 엄마랑 아빠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자식들 다 도시로 내보내고 늙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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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2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래요? 전 그런 외할머니댁 없어서 ^^ 궁금하네요

소나무집 2006-08-3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힘을, 보여 주마 창비아동문고 225
박관희 지음, 변영미 그림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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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세상에도 힘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 약간 씁쓸하다. 의한이 같은 아이들은 늘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다. 힘이 약했던 난 늘 동선이 같은 입장에 있었다. 그 시절에도 힘센 아이들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아이들을 골라 힘자랑을 하곤 했다.

표제작 <힘을, 보여주마>의 의한이도 다리가 불편한 차석이에게 잘해준다는 이유로 동선이를 괴롭힌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차석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동선이가 읍내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갈등을 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이 차석이를 놀리거나 괴롭힐 때마다 동선이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놀림을 당하는 차석이를 볼 때마다 안쓰럽고 진짜 차석이가 불쌍해졌기 때문에 자꾸 외면하게 된다. 그로 인해 마음에 벽이 생기고 차석이도 그것을 눈치채게 된다.

하지만 차석이는 동선이에게 어린 시절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차석이의 속마음을 알게 된 날 의한이와 마주친 동선이는 차석이 앞에서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내어 그들을 쫓아버린다. 그리고는 차석이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차석이는 동선이 같은 든든한 친구가 있어 많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지독하게 운이 좋은 아이>에서는 진짜 지독하게 운이 좋아 아이들의 미움을 받는 아이 새롬이가 나온다. 이종 사촌인 새롬이를 바라보는 같은 반 하영이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하영이가 쓴 글을 가지고 독후감상을 받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런 아이가 옆에 있다면 정말 몇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이다.

<다복이가 왔다> <바보 은태> <학급 문고 책도둑 사건>은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 편 다 소외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라서 마음이 짠해졌다. 소외받는 아이들을 끌어안아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간방 갈래 머리>는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모부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갈래 머리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같은 또래 아이의 시각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성폭력은 정말 빨리 사라져야 할 사회의 악이다.

마지막 작품 <화장>은 따뜻하다. 근육위축증을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해 돼지 저금통을 털어 화장품을 고르고 엄마에게 화장을 시켜주는 딸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결혼 사진처럼 예쁘게 화장을 시켜서 엄마의 기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려는 아이에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아이의 마음이 통해 엄마의 병이 나았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기억 속에 남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한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돌아보게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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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세 모금 창비아동문고 226
최진영 지음, 김용철 그림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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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아이만 했을 때는 도깨비가 정말 많았다. 부엌에도 뒷간에도 뒷산에도 집에서 쓰는 웬만한 물건엔 모두 도깨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협박(?)할 때 '도깨비 나온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셨다. 지금은 도깨비가 나온다는 말을 하는 이도 없고, 그런 말을 한다 해도 믿을 사람도 많지 않다. 아마도 작가의 말처럼 도깨비는 사람들이 쓰던 오래된 물건 속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물건은 모두 박물관에나 가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민속 박물관 한 구석에 모인 도깨비들이 밤마다 잔치를 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샘물 세 모금>은 지금까지 접해 보지 않은 유형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열세살 아이 준우가 왕할머니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 있는 도깨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십 살이 넘게 산 왕할머니는 도깨비도 마음대로 주무른다. 왕할머니의 참빗에서 나온 인간적인 도깨비 돌쇠는 준우를 도깨비 나라로 데려간다. 준우는 도깨비들과 어울려 놀다 만난 뿔도깨비 우정이의 도움을 받아 왕할머니를 살릴 샘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도깨비들은 한결같이 익숙하다. 말하는 동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구미호, 쪽박 귀신, 몽달 귀신, 처녀 귀신, 걸귀 등 모두 옛이야기 책에서 만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한 편 한 편의 주인공들이 이 책에서는 모두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다.

책면지에 나와 있는 도깨비 마을 그림을 보면 그리 넓은 지역도 아니건만 보름달이 뜨는 곳, 달의 숨결이 닿는 곳, 비가 내리는 곳, 빛이 모이는 곳, 하얀 반달이 뜨는 곳, 어둠이 내려앉는 곳을 다 거치고 나서야 준우는 샘물을 찾아낸다. 특히 하얀 반달이 뜨는 곳에서 만난 구미호 사랑이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다른 동물들의 따돌림을 받아 늘 혼자인 아이 구미호는 사랑이 필요해서일까? 이름도 사랑이다. 사랑이는 신기한 힘이 숨어 있는 구미호네 집 대문을 열어줌으로써 준우에게 사랑을 베풀고 이름값을 한다. 

호리병박에 샘물 세 모금을 담은 준우가 더 욕심을 부리자 샘물이 말라버린다. 직접 샘물을 마시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엄마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준우는 포기한다. 샘물 세 모금을 왕할머니께 드리자 할머니는 한 모금만 드시고, 나머지 한 모금은 감나무 밑에 뿌려 대대손손 감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마지막 한 모금은 개울물에 뿌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물이 되게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했던 준우의 욕심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도깨비 마을 모험을 통해 새엄마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준우의 모습이 대견하다.

삽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색을 많이 써서일까 그림마다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청록색이 강한 삽화는 뭔가 신비한 힘이 솓아나올 듯하다.  도깨비나 동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개성이 있고 재미있다. 도깨비를 만나기까지의 서두에서 느끼는 약간 지루한 감을 그림 보는 재미로 대신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 책을 많이 읽어주는 편이다. 옛날 이야기가 좋은 이런저런 이유를 다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재미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만 해도 옛날 이야기는 모두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듣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흔치 않다. 나 또한 이야기 솜씨가 별로 없다 보니 읽어줄 수 있는 옛날 이야기 책이 많이 나오는 게 고맙다. 오랜만에 살아 있는 도깨비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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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8-2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늘 듣던 도깨비 얘기가 아닌걸요? 잼날꺼 같에요,...
초등 저학년 정도 수준에요??

소나무집 2006-08-24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약간 두꺼워 4,5학년은 되어야 부담이 없을 것 같아요. 내용상으로는 3학년도 가능하고요.
 
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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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문득 친청엄마 생각이 났다. 40여 년 전 엄마는 아버지랑 선보는 날 짜장면을 처음 보았다고 하셨다. 앞으로 시댁 식구가 될 수도 있는 어른들이 쭈욱 나와 있는데 하필 시킨 음식이 짜장면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야 천 번도 더 먹고 싶었지만 스무 살 새색시 체면에 시커먼 것을 입에 묻힐 수가 없어 한 젓가락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한이 맺힌 것일까? 요즘도 엄마께서는 아버지랑 두 분이서 가끔 짜장면을 드시러 가곤 한단다.

<짜장면 불어요>, 어린 시절 누구나 좋아했을 짜장면. 이 단어만 들어도 어쩐지 짜장 소스 냄새가 나는 듯 군침이 돈다.  황금반점 고참인 기삼이는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는 요리 명칭에서부터 겉과 속이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를 꼬집는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기삼이의 배달 철학은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왜 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어른은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외치는 '빨리 빨리' 소리에 폭주족이 될 수밖에 없는 사연도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철가방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마시라. 배달맨들에게 오토바이는 교복이고 철가방은 책가방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아닌 중국집에서 배운 기삼이의 인생 철학은 그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어른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하다. 자신의 일에 매력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며  '난 그냥 내가 좋아, 내가 너무 좋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삼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생이 책가방만큼 무겁지 않고, 용태가 느낀 것처럼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철가방이 된다면 더 좋겠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이웃의 모범생을 닮기를 바란다. 그 기준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질책을 한다. 그런 통제 속에서 마음대로 어디 표출할 수도 없다. 그런 아이들은 나와 다른 기삼이의 언어와 행동, 모습에서 쾌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짊어지고 버거워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빠라 바라 바라 밤 '을 외치며 인생을 신나게 사는 기삼이에게서 대리 만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느 정도 살아 보면 남과 좀 다르게 사는 것이 훨씬 인생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또다시 아이들에게 남과 다르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깜짝 놀랐다. 요즘 보통 아이들의 성의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현경이와 최고 인기 남학생 상우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대학 1학년 때를 떠오르게 했다.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대학 1학년 때서야 느꼈다면 내가 너무 늦은 걸까? 상우의 실수로 인해 위기를 겪으며 현경과 상우의 우정은 더 따뜻해진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작품이 <3일간>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마주치는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픔이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함께 어울릴 수 없도록 차단해버린다. 여기서 희주와 같은 아이들의 불행은 더 커지는 것이다. 모범생 윤서의 가출을 모두 희주 탓으로 돌리고 감싸주지 못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들이 원망스럽다. 결국 희주를 문제아로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다. 불행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윤서,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고 생각하는 희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아예 상관하고 싶지 않은 영선.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친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그립다.

술을 마시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슬픈 흰곰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동민이의 모습을 그려낸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와 2045년 지구의 미래를 예측해 보는 <지구는 잘 있지?> 에서도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그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한다. 특히 5,6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꽁꽁 숨기려 하고 어른들은 더 궁금해한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의 거리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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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7-0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프레이야 2006-07-0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당선 축하드려요~~^^ 리뷰가 참 좋으네요. 꾸욱 누르고 갑니다...

소나무집 2006-08-09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님, 배혜경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