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세 모금 창비아동문고 226
최진영 지음, 김용철 그림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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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아이만 했을 때는 도깨비가 정말 많았다. 부엌에도 뒷간에도 뒷산에도 집에서 쓰는 웬만한 물건엔 모두 도깨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협박(?)할 때 '도깨비 나온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셨다. 지금은 도깨비가 나온다는 말을 하는 이도 없고, 그런 말을 한다 해도 믿을 사람도 많지 않다. 아마도 작가의 말처럼 도깨비는 사람들이 쓰던 오래된 물건 속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물건은 모두 박물관에나 가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민속 박물관 한 구석에 모인 도깨비들이 밤마다 잔치를 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샘물 세 모금>은 지금까지 접해 보지 않은 유형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열세살 아이 준우가 왕할머니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 있는 도깨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십 살이 넘게 산 왕할머니는 도깨비도 마음대로 주무른다. 왕할머니의 참빗에서 나온 인간적인 도깨비 돌쇠는 준우를 도깨비 나라로 데려간다. 준우는 도깨비들과 어울려 놀다 만난 뿔도깨비 우정이의 도움을 받아 왕할머니를 살릴 샘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도깨비들은 한결같이 익숙하다. 말하는 동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구미호, 쪽박 귀신, 몽달 귀신, 처녀 귀신, 걸귀 등 모두 옛이야기 책에서 만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한 편 한 편의 주인공들이 이 책에서는 모두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다.

책면지에 나와 있는 도깨비 마을 그림을 보면 그리 넓은 지역도 아니건만 보름달이 뜨는 곳, 달의 숨결이 닿는 곳, 비가 내리는 곳, 빛이 모이는 곳, 하얀 반달이 뜨는 곳, 어둠이 내려앉는 곳을 다 거치고 나서야 준우는 샘물을 찾아낸다. 특히 하얀 반달이 뜨는 곳에서 만난 구미호 사랑이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다른 동물들의 따돌림을 받아 늘 혼자인 아이 구미호는 사랑이 필요해서일까? 이름도 사랑이다. 사랑이는 신기한 힘이 숨어 있는 구미호네 집 대문을 열어줌으로써 준우에게 사랑을 베풀고 이름값을 한다. 

호리병박에 샘물 세 모금을 담은 준우가 더 욕심을 부리자 샘물이 말라버린다. 직접 샘물을 마시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엄마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준우는 포기한다. 샘물 세 모금을 왕할머니께 드리자 할머니는 한 모금만 드시고, 나머지 한 모금은 감나무 밑에 뿌려 대대손손 감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마지막 한 모금은 개울물에 뿌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물이 되게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했던 준우의 욕심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도깨비 마을 모험을 통해 새엄마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준우의 모습이 대견하다.

삽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색을 많이 써서일까 그림마다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청록색이 강한 삽화는 뭔가 신비한 힘이 솓아나올 듯하다.  도깨비나 동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개성이 있고 재미있다. 도깨비를 만나기까지의 서두에서 느끼는 약간 지루한 감을 그림 보는 재미로 대신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 책을 많이 읽어주는 편이다. 옛날 이야기가 좋은 이런저런 이유를 다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재미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만 해도 옛날 이야기는 모두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듣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흔치 않다. 나 또한 이야기 솜씨가 별로 없다 보니 읽어줄 수 있는 옛날 이야기 책이 많이 나오는 게 고맙다. 오랜만에 살아 있는 도깨비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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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8-2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늘 듣던 도깨비 얘기가 아닌걸요? 잼날꺼 같에요,...
초등 저학년 정도 수준에요??

소나무집 2006-08-24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약간 두꺼워 4,5학년은 되어야 부담이 없을 것 같아요. 내용상으로는 3학년도 가능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