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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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문득 친청엄마 생각이 났다. 40여 년 전 엄마는 아버지랑 선보는 날 짜장면을 처음 보았다고 하셨다. 앞으로 시댁 식구가 될 수도 있는 어른들이 쭈욱 나와 있는데 하필 시킨 음식이 짜장면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야 천 번도 더 먹고 싶었지만 스무 살 새색시 체면에 시커먼 것을 입에 묻힐 수가 없어 한 젓가락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한이 맺힌 것일까? 요즘도 엄마께서는 아버지랑 두 분이서 가끔 짜장면을 드시러 가곤 한단다.

<짜장면 불어요>, 어린 시절 누구나 좋아했을 짜장면. 이 단어만 들어도 어쩐지 짜장 소스 냄새가 나는 듯 군침이 돈다.  황금반점 고참인 기삼이는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는 요리 명칭에서부터 겉과 속이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를 꼬집는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기삼이의 배달 철학은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왜 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어른은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외치는 '빨리 빨리' 소리에 폭주족이 될 수밖에 없는 사연도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철가방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마시라. 배달맨들에게 오토바이는 교복이고 철가방은 책가방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아닌 중국집에서 배운 기삼이의 인생 철학은 그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어른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하다. 자신의 일에 매력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며  '난 그냥 내가 좋아, 내가 너무 좋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삼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생이 책가방만큼 무겁지 않고, 용태가 느낀 것처럼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철가방이 된다면 더 좋겠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이웃의 모범생을 닮기를 바란다. 그 기준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질책을 한다. 그런 통제 속에서 마음대로 어디 표출할 수도 없다. 그런 아이들은 나와 다른 기삼이의 언어와 행동, 모습에서 쾌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짊어지고 버거워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빠라 바라 바라 밤 '을 외치며 인생을 신나게 사는 기삼이에게서 대리 만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느 정도 살아 보면 남과 좀 다르게 사는 것이 훨씬 인생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또다시 아이들에게 남과 다르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깜짝 놀랐다. 요즘 보통 아이들의 성의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현경이와 최고 인기 남학생 상우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대학 1학년 때를 떠오르게 했다.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대학 1학년 때서야 느꼈다면 내가 너무 늦은 걸까? 상우의 실수로 인해 위기를 겪으며 현경과 상우의 우정은 더 따뜻해진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작품이 <3일간>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마주치는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픔이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함께 어울릴 수 없도록 차단해버린다. 여기서 희주와 같은 아이들의 불행은 더 커지는 것이다. 모범생 윤서의 가출을 모두 희주 탓으로 돌리고 감싸주지 못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들이 원망스럽다. 결국 희주를 문제아로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다. 불행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윤서,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고 생각하는 희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아예 상관하고 싶지 않은 영선.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친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그립다.

술을 마시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슬픈 흰곰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동민이의 모습을 그려낸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와 2045년 지구의 미래를 예측해 보는 <지구는 잘 있지?> 에서도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그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한다. 특히 5,6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꽁꽁 숨기려 하고 어른들은 더 궁금해한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의 거리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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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7-0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프레이야 2006-07-0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당선 축하드려요~~^^ 리뷰가 참 좋으네요. 꾸욱 누르고 갑니다...

소나무집 2006-08-09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님, 배혜경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