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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귀찮고 마냥 내팽겨치고 싶은 여름의 정점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역시 책이 아닐까 싶다.  신간 에세이를 검색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잠언집과 같은 포토 에세이나 SNS 문장을 모아 놓은 듯한 짧은 글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는 싫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작가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헤르만 헤세는 내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  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은 나의 성장과 함께 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이따금 읽었던 책들을 들춰보며 그때를 추억하곤 한다.  헤세를 추억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면 여행자가 아닌 타국적의 현지인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작가 신이현이 쓴 이 책은 프랑스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적어도 여행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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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크리가 북상한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덥습니다. 아침나절에 책을 조금 읽고, 하릴없이 잠깐 졸고, 무료해서 대학 시절의 노트를 잠깐 뒤적였습니다. 미친 짓인 줄 잘 알면서도 그때 쓴 낙서 한 줄을 올려봅니다. 오글거리는 내용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잠시 더위도 잊으실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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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와 비 걷힌 후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다르다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침묵을 깨는 균일성의 차이라고 말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 주변을 서성였고 어쩌면 그 발걸음은 빗소리처럼 균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정녕 느닷없음에 다르지 않나 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렵니다.

 

사랑의 시작과 그 끝을 어림하는 것만큼 미욱한 일이 또 있을라구요. 우리가 염원했던 평온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속일 만큼 간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 채 흐르는 시간만 응시했습니다. 그때 당신의 시선이 바람결처럼 흔들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시선도 그렇게 흔들렸겠지요. 서로의 불안을 알면서도 우리는 끝내 마음의 균열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당신과 나는 오직 자신의 품 안에 갈무리하려 애쓸 뿐이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이별의 징후들이 하나 둘 열꽃처럼 피어나던 무렵이었나 봅니다. 나는 당신의 옹졸함을 담을 수 없는 언어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재어보지는 않았어도 우리의 가슴은 딱 그 정도의 크기였다는 것을 지금은 알겠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지나온 길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까닭이지요. 기늠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 지난 후에는 언제나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합니다. 삶의 부조리는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생각했던 마음은 어느새 '너도 잘 살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계절이 바뀐 까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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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조금 더 이어지지만 옮기기가 쑥스러워서 멈췄습니다. 이렇게 옮기고 보니 대학 시절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만 한 것 같네요. 결코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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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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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에 도시의 작은 공원을 거닌 적이 있는지.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상투적인 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한낮 오후에 말이다. 나는 간혹 도시의 잉여 공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시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목도하곤 한다. 이 건조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치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처럼 금방이라도 와삭 부서질 듯한 노인의 시선을 마주 대하고 있노라면 '어서 빨리 가을이 와야 할 텐데'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빌딩에 가로막혀 손바닥만한 허공일지언정 누구에게도 제 영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말매미의 악다구니 울음이 공원에서 종일 떠나지 않고, 등 굽은 노인들이 옹기종기 공원 벤치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었다. 이따금 큰소리가 오가고 대판 싸움이라도 벌어지려나 보면 말매미의 소음 때문인지 갈수록 청력이 떨어지는 까닭인지 메마른 시간만 한나절 흔들릴 뿐 이렇다 할 싸움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근거리의 기척에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 그들만의 독백이 한여름 도시 공원을 떠돈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서.

 

윤대녕의 신작 에세이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떠벌리면서도 나는 정작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분명 다른 책들도 읽어보았을 텐데 윤대녕 하면 줄곧 <대설주의보>만 떠오른다. 선물 상자의 뚜껑을 열고 바닥까지 샅샅이 살폈으면서도 혹시 몰라 상자를 높이 들고 밑면까지 확인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나는 천천히,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그의 공간 속을 걷는다.

 

"제 아무리 바다라 할지라도 프레임 속에 가두어놓으면 곧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순간 시간의 지속은 멈춰지고 현재는 삽시간에 과거로 환원되며 풍경은 추억으로 변한다. 모든 사진이 실은 죽음의 기록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p.66)

 

공간은 장소와는 달리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한시성을 전제로 한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유년기의 공간을 중년의 작가는 이제 아프게 기억한다. 폐허의 기억들. 닿을 수 없는 시간들.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에서 작가는 고향집, 노래방, 바다, 술집, 영화관, 우체국 등 작가의 삶과 연계된 사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작가의 지난했던 삶과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집필을 위해 옮겨다니던 수많은 공간들과 만나게 된다.

 

"흑백으로 각인된 골목의 풍경들은 내 육체 속에 숲의 잔해처럼 남아 있다. 비록 어두웠던 기억일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저 낯선 그림자들이 서성대는 익숙한 공간으로 말이다." (p.106)

 

공간은 태생적인 한계를 품고 있다. 내가 자주 다니던 술집, 첫사랑의 연인과 함께 들렀던 영화관 등은 개개인의 추억과는 상관없이 소멸하거나 변화를 거듭한다. 그것은 오직 기억해야 할 만인의 역사가 아니라 은밀함 속에서 사라져가는 개인의 역사일 뿐이다. 삶은 때로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처럼 안주를 허락하다가도 느닷없는 퇴거를 표독스럽게 명령하기도 한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 잊혀진 공간에 넋두리처럼 나의 기억을 한나절 풀어놓으면 맑은 눈물처럼 정화될지, 그런 날 꿈속에서 내일은 탄산수처럼 투명한 공기방울로 나를 맞아줄지,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하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오후에는 별안간 소나기가 내렸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는 있어야 할 메마른 시선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독백들이 잔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내일 있을지도 모를 죽음을 더듬고 있다. 여기에 머물렀던 등 굽은 노인들을 생각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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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특정 장소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듯한 차림의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리산 정상에서 숏팬츠 차림의 관능적인 여인을 본다거나, 스파이크 골프화만 신으면 당장이라도 필드에 나설 수 있을 것처럼 골프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배 통통한 남자를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만난다거나, 클럽의 플로어에서 격식을 갖춘 양복 차림의 청년을 만난다거나, 어느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 사이에서 도드라진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를 보는 경우이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지구를 빛내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고작 내 앞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뒤로는 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그동안 나는 몇 칸이나 뒤로 밀려났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지독한 배신인지요.

 

나는 끝내 벌어진 틈새를 메우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영혼을 그들의 영혼 가까이에 두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의 정원에 오직 내 잣대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 것이지요.  이 얼마나 고독한 영혼인지요.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채로운 꽃들이 서로를 시기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지금껏 청맹과니의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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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신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인간은 완벽하게 찌질한 생명체가 되는 건가요?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한 셈이군요. 이 찌질한 인간들에 의해 벌어진 최근의 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저는 요즘 제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팔레이스타인 분쟁을 보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비록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두 사건은 샴쌍둥이처럼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히 봉쇄된 지역이지요.  도망가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국경지대에 높은 담벽을 세운 것도 모자라 해상마저 봉쇄하고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할 수 없으니 그들은 땅굴을 파서 물자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자구책인 셈이지요.  이스라엘은 그 땅굴마저 파괴하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경지대에는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구경하는 관광상품도 생겼다 하더군요.  인간이 죽는 모습을 희희낙낙 즐기겠다는 것이겠지요.

 

3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대참사를 조류독감에 비유하는 작자나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작자나 그들은 그저 사람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겠지요.  이스라엘 국경에 서서 불구경 하듯 즐기는 작자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오직 '돈'이라는 유일신이 '권력'이라는 허상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저는 마치 악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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