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도 지난 주말,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때마침 비가 내린다. 여기저기 초록이 짙어지고 있다. 떡갈나무 잎사귀도 손바닥만큼 자라 등산로는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삶이란 언제나 '제로섬 게임'인지라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 게 순리, 다만 우리의 인식은 두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를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기대했던 수익을 거뒀다면 그것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이 잃었던 것들(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거나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건강 악화 등)에 대해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앞둔 이들의 절절한 고백을 마치 유언인 양 듣게 된다. 그러나 삶이 지속되는 한 운명과도 같은 인간의 우둔함은 피하기 어렵다.
마르셀 서루의 소설 <먼 북쪽>을 읽고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던 것은 물론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몇 가지 현실적 묘사는 우리에게 은연중에 소름을 돋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사태가 그저 픽션의 장치가 아닌,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임을 이미 알아버렸다. 우리가 이야기라는 장치를 헤쳐 가는 동안 발견하는 것은 통절할 정도의 공감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마치 선거 전에는 100% 잘하던 정부가 선거를 기점으로 180도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손바닥을 뒤집듯 순식간에 표변하는 행태는 비단 언론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대답이 30%대 중후반을 넘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발표하던 여론조사가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건 여당의 지지자들뿐만이 아니다.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선거에 상관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왔더라면 신뢰는 고사하고 욕이라도 덜 먹었을 텐데 이제는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으로부터 어떤 신뢰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언론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말이다. <먼 북쪽>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아버지가 늘 말했듯이, 자궁의 원시 진흙에서 썰매를 타고 빠져나온 이후로 우리를 규정한 건 바로 결핍이었다. 치즈, 교회, 예절, 절약, 맥주, 비누, 인내, 가족, 살인, 울타리. 무엇을 행하고 만든들 모두가 결핍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돌아가기에 충분치 못하거나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투쟁하거나 투쟁에 실패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곡우가 딱 하루 지난 오늘 풍년을 예감하듯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