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아침이 오고, 낮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주일의 아침. 게으름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의 주인은 일어날 줄 모르고 코끝을 간질이는 봄꽃 향기에 놀라 기지개를 켜며 늦은 아침을 맞는다. 몸만 빠져나온 침구를 정리하고,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 미련이 남은 듯 다시 한번 하품을 한다. 시나브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욱하던 황사 먼지는 완전히 사라져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막 벚꽃이 피는데 겨우 하루가 남은 3월.
총선이 멀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생각하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경제가 이 모양인데 국민의힘을 찍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지요. 똑바른 정신으로 우째 국민의힘을 찍겠어요?' 하는 말. 망가진 게 어디 경제에 국한되는 것일까마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정 시스템 전반이 무너졌는데 그에 대한 반성도, 앞으로의 대책도 없다는 데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도 가기 전에 나라가 망할 거라는 우려가 온 나라, 전체 국민의 가슴에 팽배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는 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산골 무지렁이나 할 짓이 아닌가.
어제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한 명과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IMF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약국 매출은 더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아파도 약 사 먹을 돈도 없는지 약국 매출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빈 상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견디다 견디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떠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살 만하다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이렇듯 죽는소리를 하는데 맨몸뚱아리 하나로 세파와 맞서 싸워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대통령이라는 자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있고...
철학자 서동욱의 저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못 참으며, 특히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할 자유(즉 철학함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가장 못 참는다. 이런 자연적인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려 할 때 국가는 자유의 침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안녕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둘 때 얻어질 수 있다.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담긴 핵심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p.147~p.148)
'MBC는 잘 들어'라면서 언론인에 대한 군부 독재 시절의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던 황 모 씨가 떠오른다.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17세기의 철학자도 알던 사실을 400년이나 지난 21세기의 그는 왜 몰랐을까. 그렇게 하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