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리텍콘텐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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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열전'은 한번쯤 꼭 읽어보라는 권유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만 들어도 골머리가 딱딱 아프고 읽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권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일만 반복해 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쯤의 한가한 어느 주말 오후에 자주 가는 도서관의 서가를 눈으로만 훑고 지나치던 중 눈에 띄었던 게 <사기 열전 1,2(민음사 간)>이었다.  '딱히 읽을 책도 없는데 이 참에 <사기 열전>이나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열전'을 완독함으로써 사마천이 밝히는 3000여 년 전의 역사와 그 시대의 인물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세가.열전.서(書).표(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그중 '열전'만 겨우 읽은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서에 기록된 제왕과 제후의 그늘에 가려져 그들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열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지침서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열전'의 일독을 권했던 여러 지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결국 '인간이라는 종(種)이 거대한 역사의 물살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기록한 가장 리얼한 인간학 보고서입니다.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사기』는 동양 역사 서술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인문학적으로는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답을 제시합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이번에 나는 인문학자 김태현이 펴낸 <사람을 읽는 힘, 사기 열전>을 읽음으로써 '열전'을 재독한 셈이 되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의 공백은 내 기억마저 희미하게 했던지 어떤 부분에서는 기억이 뚜렷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물론 저자는 <사기>에 실린 '열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저자 나름의 관점으로 주제를 정하여 인물을 재분류하고,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PART 1 '야망과 처세: 판을 읽고 기회를 잡는 방법', PART 2 '권력의 민낯: 부귀영화와 뒤틀린 욕망의 끝', PART 3 '리더십과 용인: 사람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PART 4 '신념과 의리: 시대를 거스르는 불멸의 가치', PART 5 '전략과 통찰: 난세를 돌파하는 사유의 힘', PART 6 '경계인의 초산: 외면받은 영웅과 시대의 이면', PART 7 '인생과 허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마주하기'의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체계적으로 짜맞춘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상인 출신으로 진나라의 재상에 올랐던 여불위의 일대기를 다룬 '여불위 열전'은 '열전' 전체를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일지 모른다.


"<여불위 열전>은 상인의 이야기를 통해 투자와 권력, 그리고 인생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인에게 매우 날카로운 교훈을 줍니다. 여불위는 미래 가치를 지닌 자초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천하라는 거대한 이익을 손에 넣었으나, 자신이 만든 시스템인 진나라와 진시황에 의해 파멸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성공은 도리어 자신을 삼키는 독이 되며, 성공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감당할 그릇과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절제의 미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p.25~p.26)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나는 '열전'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내 안에 잠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인간 본성의 여러 형태가 '열전'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이는 까닭이다. 권력과 부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서 그 욕망을 현실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극은 과도한 욕망과 절제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화근인 줄 알면서도 덥석 움켜잡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굴원과 가생의 이야기는 고결한 이상과 뛰어난 식견을 지닌 지식인이 간신의 질시와 군주의 오판, 그리고 권력의 냉혹한 질서 속에서 어떤 비극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의 현실에 맞추어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지식인의 오래된 처세의 딜레마를 깊이 품고 있습니다."  (p.397)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요즘, 오늘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오래전에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던 나로서는 가을비 내리는 쓸쓸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 한 잔의 차와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 한켠에는 헛헛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을 달래줄 한 줄의 글귀와 깊은 깨달음의 경구가 고픈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채근담>이나 읽어야겠다. 얼마나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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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매일 드라마였다 - 수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
강양희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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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정년은 온다. 멀고 가깝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정년은 마치 고된 일과를 마친 어느 노동자의 굽은 어깨처럼 다가온다. 수십 년 동안의 직장생활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하루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정년을 맞는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한 보따리의 추억과 삐걱거리는 몸과 하루라는 긴 시간을 채워가야 하는 막막함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년을 피할 수 없고,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흔히들 말하길 이제는 더이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도 마음껏 하고 좋아하는 취미도 원 없이 하면서 즐거운 노후를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인데 그게 말처럼 쉽기만 한 일일까. 게다가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라고 할지라도 전과 같지 않은 몸을 체감할 때의 쓸쓸함이란...


<교실은 매일 드라마였다>를 쓴 강양희 작가 역시 26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친 은퇴자이다. 그런 까닭에 교사로서 작가가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위주로 책을 엮었다. 물론 교사가 겪는 경험이 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어서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이나 교사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의 풍경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 글을 쓴 강양희 작가는 책의 첫머리에 학생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하고 있고, 독자로서 나는 그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나를 너그럽게 품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를 교사로 길러 주었다. 한창 예민하고 여린 십 대 시절, 나의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을 수많은 제자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한때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차인표 씨의 인터뷰 내용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p.11~p.12 '프롤로그' 중에서)


사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학교 풍경은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청소년기 학생들의 진한 우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교권이 바닥으로 떨어진 학교 현장의 피폐해진 모습이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지만 말이다. 책에서도 이와 같은 실상이 언뜻언뜻 비치고 교사로서 겪었던 노고와 고단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책이 지닌 무게와 자부심이 그보다는 훨씬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 시기의 학생들이 보여주는 순수함과 생기 넘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서는 학생 또한 온전한 배움을 누릴 수 없다. 교사의 안전과 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학생의 권리도 함께 지켜질 수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참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은 어느 한쪽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p.123)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자신이 싫어하는 학생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방치 등은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께 억울함을 호소한다 할지라도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때렸겠지. 선생님이 괜히 그러셨을까." 하는 식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거나 어머니의 학교 출입이 잦은 학생은 늘 선생님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도 저도 아닌 학생은 선생님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체벌을 빙자한 선생님의 폭력이 사라진 것은 반길 일이지만 반대로 선생님의 교권이 끝없이 추락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제 하나뿐인 아들이 성인이 되어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학부모로서의 부담은 벗어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출근하면서 보게 되는 학생들의 등교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학교라는 또 다른 세상이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은퇴 후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여행을 다니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화려한 노후는 잠시 뒤로 밀려났다. 대신 나는 손주들의 단추를 기다려 주고, 느린 아침을 견디고, 엉뚱한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삶은 조금도 초라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월급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p.235)


멀리 프랑스에서는 학생들로부터 촉발된 시위가 한창이다. 열악한 학교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라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단순한 이유뿐일까. 자신들에게 닥칠 암울한 미래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그들을 시위의 현장으로 불러냈을 터, 우리나라도 역시 고질적인 청년 실업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침에 쌀쌀하던 날씨는 금세 기온이 올라 화창하다. 가을을 닮아가는 가로수잎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가수 이용이 불렀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는 걸 보니 나는 옛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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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제시카 아우 지음, 이예원 옮김, 김화진 독서후기 / 엘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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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보다 더 길고 막막한 질문을 알지 못한다. 더구나 멀리 떨어진 가족처럼 한없이 가까운 사이의 누군가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길고 막막함에 더해 애틋함마저 추가된다. 나의 지난 삶 중에서 질문의 당사자와 얽히지 않았던 어느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추려 그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만 나열한다고 해도 그것은 실로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막막함으로 인해 우리는 그저 "그럭저럭 살았지 뭐." 하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누군가의 삶이란 그렇게 시간 속으로 묻히고 얼버무려진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연초에 나는 함께 일본 관광을 가지 않겠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 같은 도시에 살지도 않고 성인이 된 뒤로 같이 여행을 다녀온 적도 거의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하지 않을지, 그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아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에서 들던 무렵이었다. 엄마는 처음엔 썩 내켜하지 않다가 내가 계속 밀어붙이자 결국 동의했는데, 딱히 그래 그러자고 말한 건 아니지만 항의를 조금 덜하는 식으로 또는 내가 물었을 때 수화기 저편에서 머뭇거리는 식으로 의사를 표했고, 그걸로 나는 엄마가 따라오겠다는 뜻을 드디어 넌지시 밝혔음을 알 수 있었다."  (p.11)


제시카 아우의 소설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를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소설의 문체와 담담한 이어짐으로 인해 몇 쪽 일기도 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꽤나 놀라운 경험이라고 하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와 딸이 익숙하지도 않은 타국의 땅에서 만나 함께 여행을 이어가는 이 소설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얼핏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딸의 관심사와 엄마의 관심사가 교차하고,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각각의 삶과 그 간극이 여행 내내 약간의 어긋남으로 불거질 때 독자는 이미 울음이 터질 순간을 예감하게 된다. 작가는 비록 엄마와 딸의 어긋나는 순간을 세세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엄마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딸의 이야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걸었던 시간의 공백은 더는 넘을 수 없는 분명한 선을 그어 놓은 듯 그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이를 인식하는 엄마와 딸 더 나아가서 책을 읽는 독자 모두는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삶에 있어 최선은 욕망받는 것이라고, 내가 욕망하지 않더라도, 나를 욕망하는 사람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만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가르침을 어떤 경로로든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p.104)


도쿄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도쿄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고, 이어서 오사카와 교토로 이동한다. 두 사람은 운하를 따라 걷기도 하고, 국수를 먹거나 녹차를 마시기도 하고, 중고서점에서 예술서를 들춰보기도 한다. 딸은 동아시계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상처와 자신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던 여러 타인에 대해, 그리스 고전과 인상파 그림 앞에서 경험했던 경이와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하며 한 사람의 존재로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들려준다. 함께 일본을 여행하는 몇 주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가 다른 시선으로 걷고 있음을 확인한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걸 알려 들고 실제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마치 모퉁이만 돌면 각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라고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도통함이란 사실 없으며 이해가 고통을 줄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삶을 거쳐가는 것으로, 무無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다른 곳에서 고통을 받는 것, 이 두 가지 지점 중 하나에 이를 때까지 연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듯 번민 속에 삶을 관통하는 것뿐이라고. 엄마는 선함과 베풂, 부의 보물 상자를 채우듯 축적해가는 친절 등 다른 교의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때는 나를 보고 이야기했고, 나는 엄마가 내가 공감하고 엄마를 따르길 바란다는 걸 알았지만 창피하게도 내가 그럴 수 없고 그보다 더 낯뜨겁게는 그런 시늉조차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p.93~p.94)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하며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려 했던 딸은 어느 순간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보고 보듬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겠다(p.138)'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여행 전에 엄마는 뭘 봐도 기쁠 거라고 종종 대답했는데, 겨울에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물었던 게 엄마가 한 유일한 질문이었다고 화자는 말한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 있었을 때의 친밀함을 어른이 된 후에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실 허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식이 독립을 하고 다른 공간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친밀감은 서서히 희석되고, 추억이라는 별도의 공간으로 유배된다. 그리고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실감한다.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친밀감의 온기가 멀어지려는 관계를 굳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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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비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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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유한하다는 건 우리에게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 까닭에 사는 동안 우리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부인(또는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이따금 농담 삼아 받게 된다. 물론 그와 같은 질문 속에는 지금과 같은 삶이 몇 번이고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가정은 종종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한껏 부풀려진 기대를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마치 사실인 양 펼쳐 보인다. 전생의 부부였거나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현생에서 다시 전생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전생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현생에서 원 없이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에서의 제약이 무한대로 봉인해제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도파민 뿜뿜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독자는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슬픔과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바른 정렬이 일어나는 때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기약 없는 대기실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죽은 이들을 생각해보세요. 평생의 기다림을 지하 세계로까지 가지고 가서 다시 지상으로 나올 때까지, 다시 살면서 또 기다리게 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이들을요. 그러니, 한 시간을 들여 후회할 일을 하는 편이, 하늘이 다시 우리 삶과 맞닿을 때까지 평생을 기다리는 쪽보다 낫지요."  (p.58~p.59)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페루에서 온 신사> 역시 전생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젊음과 나이듦, 휴양지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원주민만 아는 비밀 정원의 고요 등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삶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여러 욕망의 엇갈림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통상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현생에서의 어설픈 꿈이나 간절함은 몇 세대 후의 다음 생에서나 어쩌다 이루어질 수 있는 허튼 꿈이라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은 가장 완벽한 날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삶이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한다.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렸음을 라울은 알았다."  (p.135~p.136)


친구들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난 젊은이들이 보트 고장으로 인해 해안가의 한 고급 호텔에서 머물게 된다. 이탈리아 남부의 유명 휴양지인 아말피 해안. 젊은이들은 보트가 수리되는 동안 함께 몰려다니며 수영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한다. 그러던 중 그들의 눈에 뜨인 한 남자가 있었다. 호텔 식당에 언제나 같은 시각에 홀로 나타나는 수수께끼의 신사 '라울'. 어느 날 우연히 말을 섞게 되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라울'의 신비한 능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고질병처럼 여겼던 어깨 통증이 그의 손길 한 번에 말끔히 사라지는가 하면 아무도 모르는 개인의 비밀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일정 때문에 함께 여행을 오지 못한 친구에게 투자의 팁을 알려줌으로써 큰돈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라울과 젊은이들. 어느 날 라울은 그들 무리 중 한 사람인 마고와 점심을 함께 하고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그녀와 산책을 한다. 라울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마고는 묘한 기시감에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라울과 있었던 전생의 인연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는 여기까지 걸어와서, 저기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가길 좋아해요. 걷다가 모래가 샌들에 들어가면 어린 시절 샌들에 모래가 들어가는 게 싫어서 맨발로 걸어 다니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여기에 오면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심지어 나 자신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p.85)


라울이 젊은이들에게 펼쳐 보이는 마법과 같은 이야기로 인해 판타지 소설쯤으로 읽히기 시작했던 초반 분위기는 라울과 마고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금세 분위기는 바뀌어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전생은 물론 다음 생도 알고 있는 라울이 마고에게 하는 당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한다. '우리는 삶을 바로잡으려고 돌아옵니다. 모든 삶은 불완전하기 때문이죠.(p.39)'라고 말했던 라울. 과연 우리는 이번 생의 불완전함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 생에도 돌아올 수 있을까?


모처럼 내리던 가을비는 오후가 되자 금세 그쳤다. 구름 사이로 가을 햇살이 자맥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여름 늦더위가 끝난 후에 비다운 비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그마저도 물론 대지를 흠뻑 적실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었지만, 등산로를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던 모습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그게 어딘가. 삶에서 순간순간 이어지는 우리의 아쉬움은 다음 생에서도 습관처럼 전해지는 것 같다. 아쉬움은 때때로 슬픔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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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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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에 의하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라고 귀결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도무지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을 그 누구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평생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낼 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


"삶은 한 치씩 꾸역꾸역 나아갔고, 그녀는 살아 있었다. 부당하게도, 미치고 팔짝 뛰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어떤 날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걸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살금살금 흘러갔고, 매 순간 주위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p.388)


영국 작가 루시 스티즈의 소설 <에티의 여름>을 읽었던 건 지난 추석 명절의 연휴 기간 동안이었다. 그닥 길지 않은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꺼내 읽곤 했다. 학계에 몸담고 있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작가가 소설이 쓰고 싶어 1년 동안만 집필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후 12개월 만에 나온 초고가 억대의 선인세와 두 권의 출간 계약이라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도 놀랍지만 연구원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지 단 1년 만에 한 편의 원고로 영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된 것 역시 경이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잘 짜인 구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소설의 잔상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곤 했다.


"왜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 없을까? 왜 이미 일어난 일을 전부 되돌릴 수 없을까? 지난 3년의 실타래를 다시 감아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으리라. 형과 어머니를 집에 가둬두고 온갖 방법으로 둘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인생은 교묘한 함정을 너무 많이 감추고 있다."  (p.112)


소설은 신생 잡지사의 기자인 조지프가 유명한 은둔 화가 타르튀프로부터 달랑 "오라(Venez)"는 한 단어만 적힌 편지 한 장을 들고 그가 사는 프로방스 지역의 외딴 농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20년,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는 세상과 단절한 채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를 돌보며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인 에티뿐이었다. 에티는 조지프를 새 그림의 모델이라 둘러대며 집 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오렌지를 든 청년'의 실제 모델이 되어 타르튀프의 화실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지만, 오후에는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일곱 살에 엄마를 잃고 삼촌인 타르튀프의 삶을 보조하면서 외롭게 성장했던 에티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전쟁을 겪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상처는 다른 듯 닮아 있다. 타르튀프로부터 도망쳐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행을 선택했던 에티의 엄마는 끝내 죽음이 되어 돌아왔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어린 에티는 스스로의 힘으로 글을 익히고, 요리를 배우고, 삼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왔다. 삼촌은 에티의 완벽한 보조 덕분에 오직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은 비싼 가격에 팔렸다. 반면 매사에 유능했던 형 루퍼트가 자진하여 전쟁에 나갔던 반면 조지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대에 들어가 그림을 배운다. 전쟁이 끝나고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안은 채 귀가한 형과 독감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조지프는 미대를 그만두고 작가가 된다. 비겁한 겁쟁이라는 질타는 그의 마음에 온전한 짐으로 남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자랐던 에티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에티는 결국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에 삼촌을 속이고 간호사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던 중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시 삼촌 곁으로 되돌아온다.


"짓이겨진 몸뚱이를 보고도 몸서리를 치거나 숨을 헉 들이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자부심의 징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의연한 태도가 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절대 손이 떨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움찔하거나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엉킨 현장이었다."  (p.364)


"아미르와 함께 언덕에 서 있던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엄마가 느꼈던 충동을 이해했다. 도망치고 싶은 욕망.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욕망. 엄마가 미국에 묻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죽어서까지 다시 생 오귀스트로 끌려왔다는 사실이 어딘가 서글펐다. 엄마는 끝내 생 오귀스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p.380)


타르튀프의 눈을 피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조지프와 에티. '오렌지를 든 청년'이 완성된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던 조지프는 비로소 타르튀프의 비밀과 에티의 감추어진 재능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쩌면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타르튀프의 비겁한 폭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삼촌을 보조하면서 허드렛일만 강요받았던 에티였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삼촌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사랑을 일궈가는 두 사람. 에티가 타르튀프의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그림이 도매상에게 버젓이 인계되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사랑과 불타버린 그림에 대한 비밀은 어떤 방식으로 밝혀질까?


가을이 깊어지면서 독서에 대한 열정도, 소소한 일상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욕심도 시나브로 옅어지는 느낌이다. 뜨거운 열기 탓에 바깥에서의 일상이 도통 궁금하지 않았던 지난여름과는 달리 숲의 변화도,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도, 저무는 햇살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어느 것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게 없다. 어제는 시골에 가서 떨어진 알밤을 한 되쯤 주워 왔다. 밤을 삶는 일도, 껍질을 벗겨 속살을 발라내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밤을 줍기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이렇게 밖으로만 나돌다 보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길 일이 도무지 없겠다 싶었다.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 리뷰를 남길 자신은 없지만 가슴에 남는 어떤 책은 책을 읽었다는 작은 표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 문구의 스탬프를 찍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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