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옳았다 -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
이광재 지음 / 포르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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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종종 기적과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것은 비단 생명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삶의 전 분야에서 기적은 늘 존재하며, 그러한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여섯 자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썼던 책이 단지 입소문과 웹사이트 광고를 통해 전 세계에서 600만 부 이상의 책이 팔렸던 <오두막>이나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작가를 단번에 주목받는 사상가로 만들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역시 기적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상고 출신의 인권변호사가, 더구나 빈농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던 비주류의 정치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또 있을까. 나는 여전히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당선을 내가 목격한 가장 큰 기적으로 꼽고 있다.

 

기적과 같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12년, 참으로 많은 게 바뀌었다. 그리고 또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체감은 단순히 변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변화의 속도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한 세대 혹은 여러 세대에 걸친 느린 변화는 진행 중에 있을 때는 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부채질하였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이었을 터, 보편화된 비대면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미래 역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30여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 보좌관으로 정계에 첫발을 디딘 이광재 의원은 모든 게 뿔뿔이 흩어지는 분열의 시대에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되새기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정치인 이광재의 비전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그러므로 <노무현이 옳았다>는 '노무현 정신'을 담은 이광재 의원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서인 셈이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감이 고조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영민하게 대처하고, 서로를 따뜻이 껴안으며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나는 그런 국민의 마음이 대한민국을 전진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이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더 살피고 보듬어야 하는 것은 없을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짚어보고 내일을 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p.21)

 

정치인이 쓴 책은 대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자화자찬의 글이나 논리에도 맞지 않는 중구난방의 글로 채워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책을 출간하는 목적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정치 후원금을 두둑이 챙기는 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세 과시가 정치인들의 주된 관심사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옳았다>를 집필한 이광재 의원은 마치 한 편의 정치 논문을 쓴 것처럼 책의 순서나 내용 면에서 기승전결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서장(序章): 내일의 문턱에 서서', 1장 '세대, 너와 나의 에너지가 모두의 시너지로', 2장 '정치, 균형으로 모두의 나라를 열다', 3장 '기술, 혁신의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4장 '교육, 질문하는 교육으로 전환하라', 5장 '부(富),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6장 '글로벌, 세계의 중심에 대한민국을!', '결장(結章):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에서 보이는 것처럼 분열과 갈등의 문제제기와 저자 자신의 대안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일과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문화 5종 세트가 중요하다. 국민이 안정적 소득 기반을 갖고, 주거, 교육, 의료, 문화 등에서 저비용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삶의 질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좋은 이웃, 마을, 사회, 국가 등 건강한 공동체도 중요하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도 국민 개개인의 희망을 담대하게 열 수 있는 강인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p.246)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양상은 분열과 갈등의 심화로 심화로 요약할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가속화로 인한 계층 간 대립, 세대 간의 대립, 그리고 야당과 여당, 진보와 보수로의 분열, 기술의 발달로 인한 직업의 부족 현상과 젠더 대결 양상, 팬데믹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종교 간 대립이나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 등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은 더욱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적 대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정치이고 진정한 리더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세대를 아우르고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 리더가 절실한 것이다. 국민 모두가 어깨를 겯고 번영의 길로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공공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지식을 상수도나 전기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주체가 된 과감하고 혁신적인 '디지털 교육 뉴딜'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이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여 펼친 과감한 해결 정책인 뉴딜 정책에 교육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교육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p.170)

 

저자는 <노무현이 옳았다>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는 양면성을 가진 단어라고는 하지만, 위기를 뚫고 새로운 기회가 분배되는 과정에서 모든 이가 그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위기로 인한 부의 쏠림 현상은 심화되고 가속화된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초고소득층의 소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다수의 중산층은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변화의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저자 역시 대한민국의 정치인 중 1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을 터, 안일하게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이념 타령을 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지 않았을까. 일레인 글레이저의 <겟 리얼>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죽었다거나 악이라는 말 자체가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 통합을 말하지만 사실 그런 말 자체가 헛된 주장이나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이었지만 자신의 속내를 가장 솔직한 언어로, 가장 편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고 노무현 대통령. 그를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철학마저 그를 닮아가는 듯한 저자는 어쩌면 우리 세대의 가장 따뜻한 정치인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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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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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편지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발송 비용도 저렴한 데다 편지지의 매수 제한도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난한 청춘들에게 편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였다. 편지를 통하여 서로의 애달픈 심정을 구구절절 써서 보내기도 했고, 거절의 답신을 어렵게 풀어 보내기도 했다. 그것은 비단 청춘들의 전유물은 아니어서 도시로 유학을 떠난 자식의 안부를 묻는 통로이기도 했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따스한 온기이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지에 얽힌 추억 한두 개쯤은 마음 한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터,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역시 추억처럼 술술 읽히지 않을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고, 고민에 빠져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대필가라기보다는 마치 인생 상담원 같았다. 내게 의뢰할 내용을 설명하면서 화를 내거나 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p.136)

 

2000년대 이전에 군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편지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휴가나 외출이 아니고서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던 그 시절에 편지는 그야말로 달짝지근한 사제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보안검열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 하에서도 애인의 편지나 부모님의 편지를 소각하지 않은 채 관물대 옷가지 속에 감추거나 야전잠바 주머니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휘영청 달이 밝은 날 초소 근무를 설 때, 닳아 헤진 편지를 희미한 달빛에 비춰가며 읽고 또 읽곤 했었다.

 

"실은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쿠도 씨가 말했어.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흐르는 건 사람이고,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멈춰 있는 거라고. 자신은 그 시간을 그저 물을 긷듯 사진기로 퍼올리는 것뿐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난 점점 어딘가로 떨어져 갔어. 이 경험이 뭔지에 대해 생각했어. 기치조오지의 부티크에서 일하던 땐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경험."  (p.168)

 

책에는 소설가로 등단하였지만 소설은 쓰지 않고 기치조오지에서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셈인데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일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이에 일조를 했던 것은 주인공이 자주 찾는 레오나르도 카페의 사장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힘이 컸다. 편지를 의뢰한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무실 남자 사원의 구애를 기분 나쁘지 않게 거부하는 편지, 단 한 번도 사랑 고백을 해보지 못한 남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65년의 결혼 생활을 해온 어느 노부인이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며 찾아온 속사정, 한 여인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그 여자의 연인을 살해한 후 출소 후 여인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 등 우리의 일상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들이 편지와 함께 펼쳐진다. 게다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죽은 손자를 대신해 거짓 편지를 쓰는 장면은 왠지 모를 먹먹함을 안겨 주었다. 오직 편지에서만 받을 수 있는 진한 감동이 그 한 장면에 집중된 것처럼.

 

"의사인 친구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병실을 장식하는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 그림이 아니라 뭘 그린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추상화 쪽이 좋다고. 그림에 담긴 뜻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환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나아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편지를 기다리는 행위에는 살아갈 희망이 잠재되어 있다."  (p.187)

 

나도 군 복무를 하던 시기에 대필을 해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선임의 협박에 굴복하여 연애편지를 대신 썼던 것은 아니고, 같은 내무반의 후임 병사의 사정이 하도 딱해서 어쩔 수 없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인데 사정인 즉 이러했다. 후임 병사에게는 매주 거르지 않고 면회를 오는 애인이 있었는데 첫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후부터 더 이상 그 애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후임병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매사에 의욕을 잃고 허물어져 갔다. 근무하는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행정병이었던 나로서는 후임병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어느 날 저녁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고, 그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다. 컴퓨터도 없던 당시에 나는 업무가 끝난 후 야간에 홀로 사무실에 남아 타자기로 타이핑을 한 후 봉투에 담아 후임병의 이름을 써서 보냈고, 편지가 도착한 그 주 주말에 후임병의 애인이 면회를 온 걸 목격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를 했고, 그 후의 뒷얘기는 알지 못하지만 한 통의 편지가 펼쳐 보여주었던 기적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소박한 것에서 기적의 순간을 목격하기도 한다. 편지에는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영혼이 아날로그 필름처럼 찍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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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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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전업 작가로서의 소설가는 남들보다 글을 잘 쓰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갖고 있는 게 확실하지만 그밖에 이를테면 예지력과 같은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가가 타인의 운명을 족집게처럼 알아맞힌다는 건 물론 아니다. 소설가가 운명을 예지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닌 그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예지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한다는 점에서 점쟁이와 구별되는 것이다. 용한 점쟁이가 타인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소설가는 어떤 나이가 되면 자신이 써야 할 소설의 방향이나 내용을 어렴풋이 감지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조정래 작가가 춘향전과 같은 로맨스 소설을 써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1964년생인 에쿠니 가오리가 40대 중반에 출간한 소설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역시 에쿠니 가오리라면 그 시기에 마땅히 그와 같은 내용의 소설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그런 소설들로 묶여 있다. 40대를 넘기면 그 시절의 감성이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20대와 30대의 젊은 시절에는 작가 주변의 또래 친구들 혹은 작가 자신의 넘치는 생명력으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만한 소재는 무궁무진 넘쳐났을 테고, 웬만한 사랑 이야기로도 소설 한 편은 너끈히 쓸 수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관계의 폭이 좁아지기 시작하는 40대를 기점으로 소재는 빈궁해지고, 부족한 소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어렴풋한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에쿠니 가오리의 새 단편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를 만났을 때도 이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온갖 감정이 교차했던 여고 시절의 교실은 이미 내게서 멀어졌는데,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 보면 분명 거기에 있다. 동성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에 몸을 떠는 기쿠코처럼, 현실을 버티지 못해 정신에 금이 간 에미처럼, 우정과 연애의 경계에서 덜 영근 사랑을 하는 유즈처럼, 비만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 일기장에 독약을 처방하는 카나처럼, 빨리 성숙한 육체로 남자를 혼란케 하는 미요처럼 많은 친구들이 그 의미조차 규정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나 역시 그랬다."  (p181~p.182 '역자 후기' 중에서)

 

소설을 번역했던 김난주 역시 당시의 자신이 낯설고 멋쩍다고 말한다. 질서정연하지 않고 안정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버겁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시절의 감성 충만하고 끈적끈적한 나날들을 단문 위주의 건조한 문체를 통해 작가 자신의 감정이 배제된 듯한 사실적인 기록으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자신의 경험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데면데면한 관계를 지속한다.

 

"이모는 외할머니 집 근처에 혼자 살고 있다. 장소는 에코다. 독신 생활이 자유롭고 편하기는 한데, 한 가지 곤란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가출할 수 없다는 것. "그렇잖아, 내가 가출을 해봐, 그건 절대 가출일 수 없잖아. 돌아오면 여행인 거고, 돌아오지 않으면 이사잖아." 이모는 가능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p.162 '비, 오이, 녹차' 중에서)

 

책에는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전절에서 중년의 동성 여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로 쓴 '손가락', 단짝이었던 친구가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가는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상을 그린 '초록 고양이', 숫기 없는 남자 친구 요시다가 만남을 이어가면서 점차 애인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갖게 된다는 내용의 '천국의 맛', 비만에 대한 피해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일기장에 독약을 처방하는 카나의 일상을 그린 '사탕일기', 독신인 이모를 성숙한 어른처럼 챙기는 유코의 이야기를 다룬 '비, 오이, 녹차', 성숙한 몸으로 육체적인 사랑만 추구하는 미요의 이야기를 그린 '머리빗과 사인펜'이 그것이다.

 

"결국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굴함과 오만함이 뒤섞인 웃음과 땀에 젖은 싸늘하고 따스한 몸을 떠올릴 때마다, 라면 한 그릇으로 꽤나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야 할지 라면 한 그릇 때문에 호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 곤혹스럽다. "아저씨." 아직도 미요의 달짝지근한 속삭임이 귓가에 남아 있다."  (P.179 '머리빗과 사인펜' 중에서)

 

잰걸음의 겨울 해가 서둘러 하루를 마감하려 하고 있다. 고교 시절의 흐릿한 기억들이 석양빛에 걸려 아스라하다. 하루의 시간들이 어둠 저편으로 스러지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돌이켜보면 너무나 짧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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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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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년 연초에는 희박하던 행복이 갑자기 넘쳐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다들 너무 많이 소유하여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해 안달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평소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던 행복이 매년 연초만 되면 '세계행복은행'(물론 존재하지 않는 기구이다)의 총재가 '에이, 기분이다.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행복을 한 100억 장쯤 찍어내자.'라고 결심이라도 했는지 행복은 그저 흔해빠진 어떤 것으로 변하고 만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행복을 만들어 거리마다 크게 외치네. 해피니스~ 해피니스~' 뭐 이런 노래가 금세라도 울려 퍼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흔한 인사이긴 하지만 나도 물론 '행복 가득한 2021년'을 맞으라는 인사를 곳곳에 뿌렸었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혼자 살고 있는 독신자를 빼놓고는, 자신의 팬츠를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르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다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p.341~p.342 '작지만 확고한 행복'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꽤나 오래된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문학사상사에서 199년에 초판을 발행하였으니 20년도 더 지난, 마치 낡은 책만 취급하는 헌책방의 한 귀퉁이에서나 발견될 듯한 골동품쯤으로 연상되기도 하겠지만 막상 책을 펼쳐 내용을 읽어본 독자라면 왜 사람들이 하루키, 하루키'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쯤 이해할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만 하더라도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루키가 쓴 이 책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하루키의 에세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생활 주변과 삶에 대해 소박하고 경쾌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예컨대 옛날부터 쌍둥이에게 관심이 많아서 쌍둥이 아가씨와 데이트를 해보는 게 오랫동안의 꿈'이었다거나, 한국에서 개를 잡아먹는 관습이 있는데 이건 성향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개념의 문제는 아니라거나,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의미라거나 하는 등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넓고도 다양하다 하겠다.

 

"결혼하고 2년째쯤 되었을 때의 일인데, 나는 반년 정도 '주부(主夫=하우스 허즈번드)' 노릇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렇다 할 일도 없이 극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반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페이지였던 것 같다."  (p.105 '나의 주부(主夫) 생활' 중에서)

 

나는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이면 비교적 가벼운 내용의 책을 읽곤 한다. 바쁘고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는 까닭에 이해하기 어렵거나 딱딱한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다고 하더라도 남는 게 없겠지만 말이다. 1월을 뜻하는 재뉴어리의 어원이 야누스에서 왔다고 하지만 1월은 사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야누스처럼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옛 얼굴과 미래를 설계하는 새 얼굴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말이다. 괴테는 자신의 책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썼는데 나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방황하는 걸 보면 그저 봄을 타는 것처럼 '1월을 타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단순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동장군의 위세 무섭기만 하다. 1월의 첫 주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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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 -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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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에세이 <긴 호흡>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레고와 같은 책이다. 주어진 형식이나 주제는 없고 책을 읽는 독자에 의해 어떠한 형식, 어떠한 주제로 언제든 변경 가능하기 때문이며, 얇디얇은 이 책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이고 뒹굴뒹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에 너른 공간을 만들어 놓고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유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부추기는, 어쩌면 작가는 사유의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같은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8 '서문' 중에서)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메리 올리버는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미국 시인 맥신 쿠민은 메리 올리버를 일컬어 '습지 관찰자'이며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했다. 2019년 1월 17일, 여든세 살의 일기를 마칠 때까지 스무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냈던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따금 나는 몸을 기울여 물을 들여다본다. 연못 물은 거칠고 정직한 거울이다. 내 시선뿐 아니라 사방에서 물그림자에 합쳐 드는 세상의 후광도 비춘다. 그러니까 연못을 가로질러 날아다니며 노래를 조금 부르는 제비들은 내 어깨 위로, 머리칼 사이로 날아다니는 것이다. 진흙 바닥을 천천히 지나가는 거북은 내 광대뼈를 만지는 것이다. 내가 이 순간 똑딱거리는 시계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p.83)

 

시인은 이 책에서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프로빈스랜즈의 무성한 숲과 모래언덕에서, 클랩스 연못에서, 베넷 연못에서, 라운드 연못에서, 오크 헤드 연못에서, 패스처 연못에서 시인과 함께 살았던 부엉이와, 올빼미와, 토끼와, 들쥐들과, 어스름한 마당에 앉아 평화로운 생각에 잠긴 고양이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이 든 배낭을 메고 학교 대신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책들 사이에 늘 함께 있었던 휘트먼의 시집으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모든 것이 필요할 때 시는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가는 헝클어진 미묘한 길과 배낭 속 책들의 무게를 기억한다. 나는 그 어슬렁거림과 빈둥거림을 기억한다. 휘트먼과 함께 "바지 끝을 장화 속에 집어넣고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경이로운 날들을 기억한다."  (p.92)

 

우리는 이따금 시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의 무용론을 말하기도 하고, 압축된 시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를 멀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못 위에 부서지던 금빛 햇살의 잔상들을 실재하는 시구 하나하나의 시어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모습으로 목도하는 비현실적인 체험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엄마의 체온을 하나의 시구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시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몰라서 시를 읽지 않는다는 건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다.  시는 시어 위에 실재하는 햇살이며, 엄마의 따스한 체온이며, 나풀거리는 눈발일 뿐이다. 시는 이해하는 문학이 아니라 체험하는 문학인 까닭에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삶을 체험하면 그만이다. 내가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을 읽으며 프로빈스랜즈의 숲길을 길게 거닐었던 것처럼. 때로는 어슬렁거리며, 때로는 또 빈둥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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