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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어 굿 - 세계적인 평화주의자들로부터 배우는 선행의 기술
닐 고쉬 지음, 김준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9월
평점 :
중학교 시절 '명심보감'을 외워본 적이 있다. 누가 강요해서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결심해서 한 일이었다. 어쩌면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나이대의 사내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어떤 특별한 모습을 통해 또래 친구들로부터 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내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나 보다. 아무튼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이니라'로 시작되는 '명심보감'을 암기하는 장대한 여정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명심보감' 암기는 계선편(繼善篇)을 넘어 천명편(天命篇), 순명편(順命篇), 효행편(孝行篇)까지 이어졌던 건 기억하는데 교우편(交友篇)이나 부행편(婦行篇)을 넘기지는 못했고, 결국 중간 어디쯤에서 멈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정도 부족하고 목표의식도 없었던 내가 중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전혀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는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을 지닌 '명심보감'이 하필이면 왜 선함을 이어가자는 '계선편(繼善篇)'으로 시작하는지 이따금 궁금해하곤 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인간이 구성원 상호간에 선함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결국 와해되고 구성원의 생존도 지키기 어려웠을 터,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생존을 위한 가장 이기적은 방법으로 타인에 대한 선함을 선택한 게 아닐까 싶은 게 나의 생각이다.
닐 고쉬가 쓴 <두 모어 굿>을 읽게 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책은 마틴 루터 킹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생에서 가장 끈질기고 긴급한 질문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라고 했던 마틴 루터 킹의 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기업가인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쳐왔는지 생각할 때, 그러한 만남으로부터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그것이 <두 모어 굿>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말하자면 저자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30개의 교훈으로 정리한 셈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준수 번역가의 역자 후기를 조금 옮겨 보면 저자의 의도와 취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지금 어떻게'를 강조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이 전하는 교훈을, 지금,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겠는지를 계속 독자에게 물으며, 앉아서, 일어서서, 또 행동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라고 권하죠. 이런 반복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점의 근원이 바로 이 '반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빨리 감기나 2배속, 3배속 버튼을 눌러서 넘길 수 있는 동영상과는 달리,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은 콘텐츠에 우리 자신을 천천히 스며들 수 있게 허락하니까요." (p.380)
1부 '앉아서 세상을 바꾸다', 2부 '일어서서 세상을 바꾸다', 3부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다'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저자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달라이 라마, 테레사 수녀, 조 바이든, 살만 칸, 안젤리나 졸리,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셀럽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존경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조 바이든이나 빌 클린턴, 지미 카터나 힐러리 클린턴 등 유명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 전체를 평가하거나 그들의 이념이나 가치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라 각 인물들이 저자에게 선물해 준 하나하나의 깨달음을 부각하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공감력은 풍부했던 저자의 부모님은 저자에게 매사에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쳤다고 회고한다. 저자의 부모님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저자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배웠던 공감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겼던 것이다. 달라이 라마 평화교육센터 설립자이자 달라이 라마와 공동 집필에 참여했던 빅터 챈의 초청으로 참석했던 '제1회 델리 대화'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배웠던 것은 연민의 실천이었다. 나 역시 빅터 챈이 쓴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읽었던 바, 그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수용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를 텐데 이를 적극 수용한다는 것은 사업가인 저자가 얼마나 배움에 목마른 사람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
"테레사 수녀와의 만남이 제 삶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날 얻은 깨달음은 내내 저를 떠나지 않은 채 제 삶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어 주었죠. 예를 들어, 소외된 이들을 위해 더 의식적으로 일하기 위해 비영리 분야로 직업을 옮겼을 때 저는 제 삶의 나침반과 공명하며 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p.106)
사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삶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성원 각자의 삶이 바뀌지 않는 한 공동체의 변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일차적으로 깨달음이 실천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이 다만 문헌 속의 지식으로만 존재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신의 책 제목에서 '두(Do)'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작은 깨달음일지라도 구성원 각자가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선한 영향력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굳이 어떤 종교를 믿고 의지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천국과 같은 행복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릴 적에 암송했던 '명심보감'의 첫머리가 계선편(繼善篇)으로 시작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선(善)'이란 우리 모두의 만남과 관계를 주선하고 원활히 유지시켜 주는 일종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순간이 있다고들 하지요. 첫 번째는 우리가 탄생한 순간으로, 우리의 존재를 알려 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죠. 이 '이유'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목적'입니다. 지미 카터에게 이 목적은 민주주의적 이상을 향상시키고, 인권을 수호하고, 전 세계의 평화를 증진하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이토록 엄청난 과업에 그는 반세기가 넘도록 헌신해 왔죠. 우리 대부분은 이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과제를 처리하진 않지만,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파악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어떻게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아내고, 목적 달성에 계속 매달릴 능력이 있습니다." (p.301)
우리는 어쩌면 저자가 그의 삶에서 배우고 실천했던 모든 교훈들이 어떤 책에선가 이미 읽어보았거나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저자처럼 그 교훈을 자신의 삶으로 옮겨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거나 시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타인의 단점을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공동체를 와해시킴으로써 자신의 삶의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지극히 어리석은 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미련하게도 말이다.
기척도 없이 가을비가 내렸고, 기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일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들도 익히 아는 사실일 테지만 그들 역시 나를 향해 건강 조심하라는 인사를 건넨다. '자왈, 위선자는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라고 씌었던 명심보감의 첫 문장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나는 이제 뒤돌아서면 하려던 일도 금세 까먹고 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줄줄 암송할 수 있었던 그 시기에 왜 나는 '명심보감'을 다 외우지 않았던 것일까. 후회는 삶의 오점처럼 진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