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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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죽음'에 연관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연초부터 말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자면 캐나다 출신 조력 사망 전문의인 스테파니 그린이 쓴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와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디디에 에리봉의 저서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이 그것이다. 그렇게 이어져 온 독서는 김지수 아나운서가 쓴 <나의 사전연명의향서>에까지 이르렀다.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김영민 교수의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빗대어 말해보자면 '연초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쯤 되겠다. 우리 모두 끝이 있다는 것,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긴다는 건 오늘 하루를, 올 한 해를 의미 있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이 유한하다는 건 불행이 아니라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존엄한 삶은 무엇인가?" 여기서 '존엄한 삶'이란 내가 어떤 삶을 존엄하다고 믿는지의 문제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던, 지금까지도 온전히 마주하기 힘든 기억의 일부를 끄집어냈다. 고3이었던 1994년 가을, 아버지는 난치병을 선고받았고 6년간 이름 모를 병과 싸웠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란 걸 마주했다. 그것은, 난치병의 탈을 쓰고 환자의 장기 하나하나를 망가뜨리며 숨통만큼은 쉽사리 끊지 않는 괴물이었다."  (p.11 '프롤로그' 중에서)


작년 말에 읽었던 남유하 작가의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역시 이 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지수 아나운서 역시 죽음 앞에서 마냥 무기력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로 인해 보건의료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로 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위중한 환자들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앓고 있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끊임없는 자살 충동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끌어안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나쁜 생각의 기세가 나보다 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지켜보고 감시해야 했다. 이렇게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노력함에도 몹쓸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내 나름의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의사가 개입하는 치료 영역과 별개로 나의 내면을 스스로 돌볼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 그건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돌봄'이어야 했다. 그게 뭔지 당장 알 수 없더라도 내면을 돌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p.57)


책은 모두 4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담은 Chapter 1. '아버지는 밤에만 울지 않았다', 취재 현장에서 경험한 말기 환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통해 깨달은 것을 기록한 Chapter 2. '존엄한 삶이라면'과 Chapter 3. '정체성을 지킨다면 존엄한 죽음이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던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Chapter 4. '나의 사전연명의향서'가 그것이다. 존엄사나 의료 조력 사망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감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늘면서 암 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와 가족들이 존엄사가 허용되는 나라로 나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평화롭게 맞는다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요즘 반가운 소식을 자주 접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들이 발표되고 있다.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의사를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겼다는 데 이어, 이러한 사전 서약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 건수가 5만 건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임종을 늦추는 의료서비스를 받지 않는 대신 삶의 마지막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다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P220 '에필로그' 중에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았던 기억은 어느 왕조의 오래된 유물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스러질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아쉽다거나 서럽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만큼은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존엄한 삶의 출발점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존엄한 죽음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점점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로 관심의 추가 서서히 기울게 된다는 점은 우리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듯 보인다. 내게 남은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죽음에 이르러서도 저 공원의 푸른 소나무처럼 담담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바람이 어쩌면 이승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크나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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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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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신의 허점을 찾아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 헤매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뀐 상황에서 그 결과를 어쩔 수 없는 처분처럼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작가는 이따금 너무나 낯선 설정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작가가 설정한 상상력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변주되는 것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의 설정은 유교주의 지배를 받는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마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으냐." 그때 등에 으슬으슬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나무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섹스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순간 시아버지는 움찔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그러고는 슬며시 웃었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났다.  (p.20)


그렇다. 일주일 전에 결혼한 쇼코와 무츠키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이탈리아어를 번역하는 쇼코는 알코올 중독자인 동시에 조울증을 앓고 있다. 의사인 무츠키는 지나친 결병증을 지닌 사람인 반면 동성애자로서 동성 애인인 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짓말이라고는 도무지 할 줄 모르는 무츠키는 쇼코가 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사실대로 말해준다. 잠들기 전 침대 시트를 다림질하는 일을 제외하고 음식이면 음식, 청소면 청소 집안의 모든 일은 무츠키가 도맡아 한다.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무츠키에게 쇼코는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무츠키를 위해 곤과의 관계를 허락하기도 하고, 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형식적인 아내이기는 하지만 무츠키는 이와 같은 쇼코의 배려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차는 한밤중을 똑바로 달린다. 오늘 밤 곤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쇼코의 기분을, 나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끔찍하도록 긴 하루였다. 어머니의 가시 돋친 목소리와 장인의 험악한 표정, 눈물짓는 장모의 손수건 모양과 고개 숙인 아버지의 옆얼굴. 후회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쇼코에게 말한다. 일찌감치 등받이를 뒤로 넘기고 기댄 곤은 코를 골고 있다. 입은 반쯤 열려 있다."  (p.200)


무츠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쇼코의 마음은 점점 무츠키에게 기운다. 육체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그와 함께 지내는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츠키는 쇼코의 절친인 미즈호를 통하여 쇼코의 옛 애인인 하네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쇼코는 미즈호와 그녀의 아들 유타, 그리고 하네기 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게 된다. 이 모든 게 무츠키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된 쇼코는 크게 화를 내고 미즈호와는 절교를 선언한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무츠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장인 장모와 시어머니는 결국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츠키와 쇼코는 남들과 다른 자신들의 관계에 심한 압박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자, 왠지 맥이 축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핌즈를 전자에일에 섞어 마신다. 가능하면 무츠키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협력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봐야 하룻밤만 넘기면 되는 일이다. 나는 반짝반짝 닦인 바닥에 엎드리고 누워, 베란다 너머로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뺨이 싸늘해서 상쾌한 기분이다. 눈을 감고 온몸으로 귀 기울인다. 정겹고 청결하고 편안한 방의 기척. 이러고 있으면 무츠키에게 안겨 있는 것 같다."  (p.211)


사회적 인식과 관습에 얽매인 관계 속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과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곤. 책을 읽는 독자는 무겁고 착잡한 기분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물론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동화적 결말로 끝이 나고는 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속이 터질 듯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그저 힘에 겨울 뿐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쇼코를 보면서 '우리가 육체적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사랑할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가 역시 비슷한 문제를 거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개인의 성적인 취향이나 기호를 떠나 서로의 영혼을 깊이 관찰하고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처럼 서로의 순수한 영혼에 이끌려 플라토닉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날씨가 조금 풀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무색하게 바람에 섞인 한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시린 느낌을 더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추위 때문에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겨울을 온전히 사랑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쇼코와 무츠키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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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마음 있는 사람
정기현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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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편집자가 인기 작가로 탈바꿈하는 사례는 불가능하거나 희귀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흔한 사례도 아니지만 말이다. 타인이 쓴 글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는 일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글을 쓰는 일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일 때문이든 취미로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당연히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양자 사이에 서로 긴밀한 연관은 있을지언정 '반드시'로 귀결되는 건 아닌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그닥 즐기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걸 평생의 업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나의 이런 성향은 책을 읽고 숫제 기록도 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오래도록 유지시켰던 바, 어떻게든 이를 고치고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오죽하면 영양가도 없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정기현 작가 역시 스타 편집자에서 신인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난 나의 감회는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자' 결심하거나 생각해서 나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쌓이고 쌓였던 것이 자연스레 넘쳐흘러서 비로소 세상에 나온 책일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때가 되어 마땅히 나와야 할 게 나왔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끝없이 걷는 모습으로 일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은, 새미, 승주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이 마주하는 다른 풍경들을 끊이지 않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나온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탓인지, 아니면 교회에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인지, 낯선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끝나지 않는 긴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교회에 와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라는 것이 대개 먹고사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나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무거운 것들이라 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는 붕 떠올라 당사자만 아는 리듬대로 흘러갔다."  (p.83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중에서)


정기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빅풋', '발밑의 일', '검은 강에 둥실',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농부의 피',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바람 부는 날' 등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신인 소설가인 만큼 소인(小人) 새미가 임준섭의 집에 숨어들어 지내는 며칠 동안 인간이 소인의 존재를 눈치채면 그 즉시 처단된다는 그들만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왠지 그에게는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준섭을 불러보는데, 그는 의외로 차분하기만 하고, 집안의 고요가 깨져 기쁘다는 듯 행동한다는 내용의 '발밑의 일'처럼 실험적인 작품도 선보인다. 물론 큰 발을 갖고 있는 새미가 발 때문에 흐려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슬픔을 다룬,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빅풋'과 같은 작품이 작품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신발 자체로만 본다면 그리 무시무시한 크기까지는 아니었는데도 새미를 먼저 알고 새미 없이 그 신발들을 보게 된다면 그 뒤로도 한동안 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신발들이었다. 새미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데 발 크기에 놀라 마땅한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둔 것처럼 보일까봐 나는 신발들이 선사한 놀라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p.15 '빅풋' 중에서)


소설 '빅풋'에서 새미는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발에서만 자세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성이 발의 크기가 아님을 은연중에 밝힌다. 동네 곳곳에서 발견되는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되는 낙서를 보면서 기은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김병철'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사연을 찾아 나서게 되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기은이 자신이 새로 발견한 사실을 준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그린 '슬픈 마음 있는 사람'과 여름방학에 꾸었던 꿈을 소재로 다룬 '검은 강에 둥실', 뻐꾸기와 파쿠르의 상상력을 다룬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우연히 발견한 비옥한 땅을 보면서 자신에게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승주의 이야기를 다룬 '농부의 피', 외고를 목표로 노력해 온 승주가 어느 날 노는 아이들의 무리인 '버들치'와 어울리게 되면서 달라지는 삶의 패턴을 그린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재건축을 하기 위해 펜스가 쳐진 아파트 단지를 멀리 돌아 출근하는 대신, 펜스를 뚫고 한가운데로 걸어보자고 결심한 승주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그린 '바람 부는 날' 등 작가는 다양한 소재에서 얻은 여러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길에도 성격이 있다면 고갯길은 무척이나 음흉한 성격일 것이다. 꼭대기에 다다를 때까지 너머의 풍경을 감춘 채 고개의 이쪽 면만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일 누군가 푸른 초목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이유는 내리막길에도 그 녹빛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너머가 바위산이면 어떡하려고? 얼음산이라면? 절벽이라면?"  (p.264 '바람 부는 날' 중에서)


며칠째 날이 무척이나 차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삶에서 받는 충격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멈춰 서거나 기운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좋은 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네 모습을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한 편의 소설이 가리키는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서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잠시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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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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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마다 종이 영수증을 꾸준히 받다 보면 소비 행위가 한결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하루에도 주머니 가득 쌓이는 영수증 더미를 보면서 아연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종이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소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보겠다는 구차한 명목이 아니라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말이다. 계산을 마침과 동시에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금액을 확인하는 정도의 단순한 용도에 그칠 뿐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던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마음속 죄책감을 없애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책에는 40세가 된 정신 작가가 서울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하는 2017년 3월 27일의 미국행 비행기 항공요금 937,800원의 영수증으로 시작된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정신의 영수증뿐만 아니라 배경 사진을 담당한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영수증과 사진을 모아 정신이 쓴 글과 함께 배치한 공민선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말이다.


"글을 한 번 쓰고 나면/몇 번을 수정해요//체에 거르면 고운 것들이 내려앉듯이/수정 후에는 고운 글이 됩니다//체에 남아 있는/거친 것들은 읽어보면 웃음이 나서/고운 것들만 세상에 내보내요//"  (p.166)


정신이 소비한 영수증과 움직인 장소가 찍힌 사진, 그리고 메모에 가까운 정신의 글이 토막처럼 실린 이 책을 정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읽는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 영수증과 영수증 사이의 여백이, 때로는 정신 작가의 짧은 메모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벗어난 독자의 시선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을 수도 있고, 멍한 시선으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벗어나 문득 책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인해 책을 완독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책이다.


"새로운 답을 만날/장소에 거의 다 왔다//길을 건너며/답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는데/크고//순한 느낌이다//나는 옆모습을 어서 보려고/빨리 길을 건너갔다//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아이스크림은 소외되어 녹아내렸다//2019년 7월 19일 오후 5시 12분/아이스크림 두 컵/11.00$/Smitten Ice Cream//"  (p.177)


과거에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광끼>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20대의 정신은 40대의 나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정신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 '위정편'에 이르기를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고 하였는데 작가 정신은 자신의 나이 사십에 비로소 '혹함'을 배우려 했다. 흔들림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작가 정신의 삶은 한 장의 영수증 속에, 그 영수증과 함께 남은 장소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내가 소비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던 어느 카페나 식당의 낡은 영수증 속에 나의 삶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23세/엄마가 47세일 때/아빠는 우리 식구의 삶에서/몇 주 후 사라진다// 엄마의 마음에는/화가 찼지만/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마음에/무엇이 있었는지 느끼기가 어려웠다//엄마는 나에게 아빠까지 되어야 했고/나는 엄마에게 남편까지 되어야 했다//빌런은/우리에게 10년 후 나타나/자신의 지난 일을 덮어두었다//"  (p.210)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 2026년 1월 18일 일요일의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의 가치로 살았던 것일까. 설렁설렁 가볍게 보낸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지는 오후, 약하디 약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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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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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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