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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그 근거가 너무도 빈약한 탓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내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예상을 하고 로또의 1등 당첨 확률보다 못한, 우연에 가까운 적중률에 환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의 빗나감 때문에 실체적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도 아니요, 예상의 적중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오직 현실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자신이 제시했던 예상의 근거를 작은 목소리로 수정함으로써 변명에 가까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예상치 못했던 현실에 대처하는(아니 '반응하는'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일이기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줄리언 반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아내 팻 캐바나의 죽음이었지만 그는 이 책에서 개별적인 (팻 캐바나의)죽음과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비탄의 모습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삶의 보편적인 패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했던 최세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세 이야기의 묶음이다. '비상의 죄(하늘)', '평지에서(땅)', '깊이의 상실(지하)' 이라는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 세 개의 수직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원제 'Levelsof life'는 직역하면 '인생의 층위들'이다.) 층위가 다르고, 장르적 성격이 다른 세 이야기는 대동소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의 것들을 하나로 합쳐보라. 그때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한 가닥 실처럼 세 이야기의 바늘귀를 관통한다." (p.200)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19세기의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아마도 저으기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캐바나에 대한 회고록 성격의 책이라는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던 독자라면 의아한 마음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아내와 사별하여 비탄에 잠긴 작가와 기구 또는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과의 연관성이 전혀 짐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장에서 작가는 기구를 타고 '신의 영역'인 하늘로 비상하여 '땅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던 나다르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 에르네스틴을 사랑했던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땅 위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2장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기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사랑의 패턴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인 장교 프레드 버나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질적인 두 보헤미안인 사라와 프레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함으로써 함께 기구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기구가 그렇듯 추락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쾌락을 찾아 헤매는 사라와 사랑의 완성을 원하는 프레드의 만남은 처음부터 추락을 염두에 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p.93)

 

3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들리지 않는 위로의 말들과 그다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비탄에서 벗어나는 여러 방법들 역시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상실의 고통은 삶의 층위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땅을 딛고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의 영원한 단절, 비탄에 잠긴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기준이 확실하게 바뀌도록 만든 냉엄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상실의 사마''(무풍지대인) 무심의 호수' '(말라서) 황무지가 된 강' '자기연민의 습지' '기억의 (지하) 동굴' 등을 표시한 17세기 지도와 흡사한 그 지도에서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p.138 ~ p.139)

 

구름을 뚫고 하늘로 비상한 기구처럼 삶의 층위가 갑자기 변했을 때,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땅의 고저를 가늠하는 일도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만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자조적인 무기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건, 벗어날 수 없는 비탄의 강정이나 혹은 구름을 벗어난 행복의 감정에 충만하건 그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우주의 진행은 무심히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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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붓기 없는 얼굴로 출근했더니 기분이 너무 좋아!"

여자 화장실 앞을 지나쳐 갈 때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두 여자분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엿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연히 제 귀에 들려온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인즉슨 얼굴이 붓지 않았던 날보다 퉁퉁 부은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던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얘긴데 얼굴이 붓는다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그 여성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녀의 표정으로 추측컨대 날아갈 듯 즐거워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올랐던 것은 '부풀려진 행복보다는 붓기가 쪽 빠진 있는 그대로의 행복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것'과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죽을 때까지 껴안고 가야 할 질병 한두 개쯤은 누구에게나 흔한 것이로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보았던 여성분들의 나이는 대략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였지만 말입니다.

 

얼굴의 붓기와 행복의 연관성이 쉽게 짝지어지지 않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부은 얼굴처럼 언제나 그 모습이 부풀려져 있다는 게 제 평소의 생각이었던 까닭에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의 붓기는 곧바로 행복과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부은 얼굴이 여러 날 계속되다 보면 본 얼굴을 잊어먹는 것처럼 우리는 행복의 본래 모습을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벌써 세 달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는 열 명이 넘습니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나날이 행복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우주의 탄생처럼 신비롭고 기적에 가까운 일일진대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무심히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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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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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야. 나는 그때 진학할 대학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은 하지 않았던 어정쩡한 신분이었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어쩌면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풋내기 성인이었던 게야. 쭈볏거리는 신분으로 나는 방학 동안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걸 해봤고 적은 금액의 돈을 손에 쥐게 되었지.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은 그때 처음 가져본 것 같아. 4년제 장학생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되었던 나는 등록금 부담은 없던 셈이었어.

 

나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한참 고민했어. 그때까지 용돈이란 걸 받아본 적 없었던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 기차여행이었어. 사실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어. 나는 그렇게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시작한 거야.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했던 나로서는 기차여행이 그나마 익숙한 것 중 하나였어. 방학이면 늘 형과 함께 기차를 타고 집에 다녀오곤 했었으니까.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지명의 차표를 끊어 무작정 기차에 오르곤 했지. 손에는 볼펜과 수첩을 들고 말이야. 나는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었어.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 건네는 인사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서너 정거장쯤 지난 뒤에야 내게 묻곤 했어. 자신을 아느냐고. 나는 모른다고 했지. 그냥 옆에 앉게 돼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 거라고. 그제야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했어. 방학 내내 목적지도 없이 떠도는 사이에 지겹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고, 그들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첩에 기록했어.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헤어지면서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했던 손길을 나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해.

 

정혜윤 작가의 <마술 라디오>를 읽으며 문득 그때 생각이 났어. 20년 동안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정혜윤 PD가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지. 내가 기차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한 트럭은 될 거야" 하는 말. 작가도 그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다 옮길 수는 없었을 거야. 책에는 단지 14편의 이야기만 실려 있을 뿐이지. 나머지 이야기들은 아마도 작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거리고 생각해.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말을 다르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을 숱하게 봐왔어(그 반대도 물론 숱하게 봤지. 남을 위협하고 세를 과시하는 데만 말의 힘을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도 같은 칼날에 상처를 입지). 지금 내가 바로 그것을 해보려고 해. 나는 언제부터인가 힘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만 이야기를 들려줘. 나는 '의견'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나는 이야기로 노를 저어서 힘없는 사람들을 다른 편 기슭에 옮겨놓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p.54)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해. 나는 기차여행을 하면서 그걸 절실히 느꼈어. 다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어쩌면 부끄러워서 꽁꽁 숨기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러나 한 번 입이 열리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걸 나는 숱하게 봤어.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쏟아내며 그들은 마치 그 시절을 다시 살고 있는 듯했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지아비,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말이야. 지난 이야기는 언제나 자유로웠지.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어. 하나는 사회의 룰을 따를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지킬 의무, 즉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을 의무야. 그렇지만 우리는 두 번째 의무가 있기나 한 건지 잊곤 하지. 지금 어부는 두 번째 의무, 즉 자신을 지키는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었어. 그것이 자유라고. 나는 그렇게 자유를 설명하는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는 보지 못했고 책에선 조르바를 만난 적이 있어." (p.64)

 

한동안 나는 모든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으며 살았었어. 세월의 격랑을 헤쳐갔던 모든 생명들에게는 좋든 싫든 저마다의 이야기와 내력이 있지 않겠어? 나는 그 이야기들이 마냥 좋았어. 그러나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그냥저냥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게 되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어. 오직 나만의 이야기가 중요했던 거지. 그 빠듯한 시간을 살아내느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시간낭비인 것처럼 느껴졌어. 내 삶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소중한 인연들을 나는 헌신짝처럼 버렸던 거야. 그 소중한 사람들을 말이야.

 

"우리는 우리가 아주 작은 사람인 줄 알아요. 중요한 사람이란 것도 소중한 사람이란 것도 몰라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한 말이 지금 생각나요. 아무도 감히 모든 힘을 다해 제 운명을 살지 못한다고. 우리는 어중간한 데서 멈춘다고. 일평생 내내 사랑과 이데아를 속여 손바닥 위에 놓인 저울의 이익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우리는 너무나 몸을 사리기 때문에 시시한 사랑으로 상처받고 평범한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우리 자신의 모험을 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일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게 되죠." (p.304)

 

나는 지금도 가끔 모든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을 생각해.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나는 이미 모든 생명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게 된 것 같아. 모든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과 모든 생명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고 있는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간 것 같아. 흘러간 세월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가끔 생각해.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 정혜윤 피디의 <마술 라디오>를 읽고 문득 그 시절 생각이 났던 거야. 한번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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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바다의 기별" 중에서 -김훈)

 

보이지 않는 사랑과, 보이지 않는 꿈을 품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걸어,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제, 실체가 없는 추억이 지번도 없는 어느 곳에 켜켜이 쌓이는 동안, 종국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이 내 그림자와 동행하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온 몸으로 뜨겁고 차가운 것을 구별하며, 달고 쓴 것을 느끼고, 고소하고 역겨운 냄새에 전율하고, 크고 작은 소리에 민감했던 나의 실존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보이지 않는 미움에 보이지 않는 말로 다투고, 보이지 않는 지식과 보이지 않는 부를 탐내며, 보이지 않는 명예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시기하며, 보이지 않는 증오를 키워가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삶의 팔 할은 관념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던 팔 할의 삶을 죽어 육신이 스러진 후에 찾을 수 있을까? 그때는 보이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고, 매만질 수 있는 실체를 매만지면서, 오롯이 실존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서 하지 못했던 실존의 삶을. 진정 관념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내 실존을 죽어 관념만 남은 세상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 시선의 망막 위로 먼 미래의 희망이 기척도 없이 너울대던 날, 내 기억의 깊은 계곡에선 메마른 시간들이 우수수 흩날렸다. 기신기신 살아온 내 삶의 팔 할은 관념이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다의 기별" 중에서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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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침묵의 거리에서 (전2권) 침묵의 거리에서
오쿠다 히데오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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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아무리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여도 그가 사는 동안 자신의 작품 모두가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연이어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다가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마치 세상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독자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엉뚱한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독자들 중 몇몇은 그 작가에 대한 더이상의 사랑을 유보한 채, 새로 발견했거나 한때 좋아했던 다른 작가에게로 관심을 옮겨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금 얄미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심한 독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도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에게 있어 소설 <침묵의 거리에서>가 그런 작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는 기획 단계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스토리 전개와 소재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는 대단한 것이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이런 기대와 바람은 너무나 흔한 것임에도 그 순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의 주제는 명확해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날로 지능화, 흉포화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실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각 계층의 서로 다른 시선을 조명함으로써 일본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듯하다. 사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문제는 비단 일본에서만 심각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실상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그래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일본의 작은 도시 구와바타의 시립 제2중학교에서 시작된다. 학교 교정에서 발견된 한 학생의 주검을 두고 단순 추락사인지, 타인에 의한 살인 사건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다. 죽은 학생은 그 지역에서 포목상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 아들이었다. 주검에서는 추락과는 상관없는 다수의 상흔이 발견되었고, 경찰은 사고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조사한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학생들 간의 집단 따돌림, 폭력, 금품갈취 등 지속적인 범죄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폭력에 가담했던 14세 이상의 두 소년은 경찰에 구속되고 14세가 안 된 두 소년은 아동 상담소로 보내진다.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과 학교,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 언론과 학생들 등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각자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중학생이 되자 같은 학생들 사이에도 어렴풋이 계층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은 아이, 없는 아이, 인정받는 아이, 무시당하는 아이, 모두 자신의 위치에 무관심할 수 없어졌다.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서도 학교생활이 180도 달라진다." (1권, p.302~p.303)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과 침묵하는 주변인들. 가해자 학생들 부모의 직업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싱글맘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도 있고, 할아버지가 현 의원인 지방 유지도 있었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쓴다. 학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간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갈팡질팡한다. 반면 사건 사고를 다루는 언론은 정보를 캐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아직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취재는 삼가자고 결의하기도 한다. 경찰에서의 수사가 종결되고 사건이 검찰로 이송되면서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학생들이 풀려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바짝 긴장했던 학생들도 수사가 장기화 되자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단순히 테니스부에 속했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피해자 주변의 문제 학생들과 선후배 간의 문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던 피해자 집안의 가정 교육 문제,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자녀를 지키려 하는 가해자측의 입장 등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각종 부조리가 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학생들이 오히려 체구가 작고 사회성이 부족했던 피해자를 지켜주려 노력했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문제 학생들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피해 학생의 현실이 극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시각도 드러난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런 잔혹성을 가지고 있지만 커 가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게 아닐까. 중학생은 아직 그 성질이 남아 있고. 학교 폭력, 집단 괴롭힘이 가장 심한 연령도 중학생이야. 고등학생이 되면 강도를 조절할 줄도 알고 동정심도 생기지." (2권, p.306~p.307)

 

좁은 지역사회에서 한 사건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되는 갈등의 모습을 작가는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은 계속되는 까닭에 갈라진 틈을 메우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 또한 작가는 주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안타까운 사건을 두고 어찌 됐든 결말을 써야 하는 작가의 고민도 깊었으리라.

 

"하시모토는 그렇게 말하며 깨달았다. 중학생들은 일의 심각성을 모른다. 때문에 단순한 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주변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은 생명의 존엄성도, 인생의 의의도, 사람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2권, p.287)

 

이 소설에서는 오쿠다 히데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유머와 재치가 보이지 않는다.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흡입력도 찾기 어려웠다. (당연하겠지만) 다분히 추리소설의 성격을 띠는 이 소설은 만만찮은 작품의 분량 탓인지 긴장감이나 빠른 사건 전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느슨하고 헐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만 작품의 주제만 전면에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독자를 계도하려 하거나 어떤 다른 의도가 깔린 소설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주제가 작품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선명성은 돋보일지 모르지만 독자의 호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재구성이다. 작가는 일반인의 생각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소설 속에서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하지만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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