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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마치 제 생일처럼 기쁘군요. 알라딘 서재에는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곤 합니다. 이렇게 알찬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 관계자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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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순서혁명 - 소리 없는 살인자,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 잡는
가지야마 시즈오, 이마이 사에코 지음, 이소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가끔 엉뚱한 말이나 행동으로 나와 아내를 놀라게 하곤 한다.  그맘때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나도 그때는 그랬었나? 하고 뒤돌아 보게 되지만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딱히 떠오르는 기억은 거의 없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부모님이나 형, 누나로부터 이따금 전해 듣는 얘기로 비교하자면 나와 아들은 붕어빵처럼 닮은 구석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들의 일상을 아내로부터 전해 들을 때마다 늘 새롭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다 보니 아들의 커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없는 현실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 아내는 같은 반의 엄마들 모임에 참석하였었다.  썩 내키는 자리는 아니였던 듯한데 혹시나 우리가 모르는 아들의 모습을 다른 엄마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 들을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또는 두려움)을 안고 참석했었나 보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아내는 그 얘기를 내게 전화로 들려 주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아들과 우연히 짝꿍이 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평소에 편식이 심한 아이였었나 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어느 날 그 여학생에게 기어코 한 마디 충고 아닌 충고를 했었겠다.  그렇게 가려 먹으면 안 된다고.  그 말을 들은 여학생은 분한 마음을 간신히 눌러 참기는 했지만, 그 학생의 엄마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세세히 털어놓았었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내 아들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는 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자신의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지적을 받았다고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텐데 같은 나이의 친구로부터 들었으니...

 

그러나 나는 이 책 <식사 순서 혁명>을 읽고 부모로서의 책임이 무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친구의 잘못을 함부로 지적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적절한 충고의 기술을 익혔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굳게 믿고 나는 아들에게조차 그것을 고집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밥(빵), 반찬, 국을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이 국, 반찬, 밥을 골고루 먹는 것을 당연시하고, 밥 혹은 반찬만 몰아 먹는 것을 잘못된 식습관으로 여긴다.  이런 식사 지도는 성장기 어린이의 편식 습관을 바로잡는데는 좋을지 모르나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p.113)

 

이 책은 '소리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현대인의 고질병-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먹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비록 지금은 그 질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도 식사 순서를 바꾸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식사 순서 요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까다로운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처방받은 환자들이 식단은 그대로 둔 채 단지 먹는 순서만 바꾸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지야마 내과 클리닉의 원장인 가지야마 시즈오와 오사카부립대학 지역보건학회 종합재활치료 교수로 재직 중인 이마이 사에코는 식사 순서 요법을 고안하여 환자들의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보았으며,  그 후 <식사 순서 요법>은 일본의 각 언론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식사 순서 요법'은 먼저 채소를 먹고, 그 다음으로 단백질 반찬, 마지막으로 밥이나 빵과 같은 탄수화물을 먹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만으로도 인슐린이 제어되고, 혈당 상승과 중성지방 상승이 억제되며,  결과적으로 3고(高) 증상이 치료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식사 순서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실천 방법은 무엇인지, 식사 순서 요법을 통하여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의 경험담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실용서는 현재 그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가 아니고서는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평생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잘못된 정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다고 느꼈던 점은 그 방법에 있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식이요법과는 달리 매우 간단하다는 것이다.  일단 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완치가 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적인데 대부분은 방법상의 까다로움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식사 순서 요법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식사 순서 요법의 원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원칙 ① 무조건 채소부터 먹는다.
원칙 ② 채소 다음은 단백질 반찬을 먹는다.
원칙 ③ 밥은 마지막에 먹는다.
원칙 ④ 5분 이상 꼭꼭 씹으며 천천히 먹는다.

 

책에서는 이 식사 순서 요법과 함께 병행하면 좋을 간단한 운동과 각 음식의 효능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내가 아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주입했던 것처럼 부모의 무지는 자식의 건강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는 자식을 부양하는 것과 함께 자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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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는 집과 가까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폭염을 피해 떠밀려온 피난민처럼 그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습습한 바람이 턱밑을 문지르며 지나갈 때에도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어느 곳으로 숨어든다 한들 이 더위를 피하기는 아마 어려우리라는 답답한 생각이 거듭거듭 밀려올 뿐이었다.

 

피난민 행렬과 같은 그들 무리에 섞여 도서관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히기에는 조금 힘겨운 듯 보였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 책에 빠져들 즈음에는 그럭저럭 땀도 잦아들고 있었다.  어쩌면 도시에서의 도서관은 더위나 추위를 피해 달아날 수 있는 섬과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도서관 로비에는 가족인 듯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을 터, 턱까지 차오른 더위를 간신히 밀어내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몰려왔다.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주말부부로 사는 내가 혼자뿐인 집에 에어컨을 틀어 도시의 열기를 더한다는 것은 내 알량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홀로 있는 집에 전등을 환하게 밝히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왠지 미안하다.

 

정유정의 <마법의 시간>을 다 읽고 일어설 즈음, 도서관도 때마침 문을 닫을 시간이었던지 사람들은 도서관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도 후끈한 열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밤을 잊은 말매미 소리가 비듬처럼 하얗게 일었고, 피난처를 잃은 사람들이 공원 분수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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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에디트 피아프 외 지음, 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젊은 연인들을 만날 때마다 되똥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없는 사랑은 오직 탐욕과 질투만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 나의 아날로그식 감성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속으로 알 수 없는 불안을 실어 나르는 까닭이다.  한번 굳어진 습관은 변화된 환경을 거부하며 제 행동에 대한 합리화의 표찰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오래 전 연인들은 편지를 쓰고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리며 마음을 조렸었다.  가슴 가득한 그리움을 기다림의 세월 속에 켜켜이 쌓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나는 그렇게 옛 방식으로 사랑을 배웠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은 가끔 노래로 달래곤 했다.  노래가 없는 청춘을 생각할 수 있을까마는 그 시절의 청춘들에게 노래는 곧 세월을 견디는 위안이자, 사랑의 완성을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하여, 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보다 노래가 먼저 흘러나오곤 한다.  저마다의 추억은 노래의 선율을 따라 제각각 흐른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들었던 대중가요와 중,고등학교 시절의 팝송과 사랑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샹송과 삶의 무게를 깨닫는 시절의 트로트와...

 

샹송을 처음 알게 된(알았다기보다는 처음 듣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불문학과에 재학중이었던 아내는 유명한 샹송 가수의 노래들을 테이프에 담아 듣곤 했었다.  내가 이브 몽땅, 에디트 피아프, 아다모, 멜라니 사프카, 나나 무스꾸리 등 생소한 이름들을 노래와 함께 기억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내를 만난 덕분이었다.  그때 들었던 샹송은 내 청춘의 강렬한 지문(指紋)이었다.  나는 지금도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떨려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이 책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를 읽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마르셀 세르당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에디트는 오열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었던 남자의 죽음에 몹시 죄책감을 느꼈다.  이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에 가눌 길 없는 큰 충격을 받은 피아프는 함께 따라죽을 생각을 하기도 했고, 영혼의 교신을 통해 사랑의 부활을 얻으려고 영매술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에디트는 마르셀을 위하여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찬가'는 죽은 뒤에도 영원히 그와 함께 하겠다는 절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옮긴이의 글'중에서)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여자가수로 꼽히는 에디트 피아프와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녀의 연인 마르셀 세르당이 여섯 달 동안 주고받았던 사랑의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다.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생애 마지막 여섯 달 동안 두 연인이 함께 나누었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사람 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마르셀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에디트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마르셀의 순수하고 착한 심성애 반했다고 한다.

 

"나는 결코 너에게 어울릴 만큼 충분히 아름다울 수는 없을 거야.  너의 영혼은 너무도 아름다우니까.  나는 너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을 미워할 거야.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말이야.  나는 네가 누구보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거야.  만일 언젠가 너에게 근심이 생긴다면 나는 너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것을 나눌 거야.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    (p.104-105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중에서)

 

에디트 피아프는 다른 연인들처럼 마르셀의 옷을 골라주고, 그의 스케줄에 맞춰 자신의 시간을 조절하고, 마르셀의 아들을 위해 손수 놀이옷을 만드는 등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마르셀이 뉴욕에 있던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파리와 뉴욕 사이의 하늘 어드메쯤에서 멈추었다.

 

에디트와 마르셀의 짧고 애절했던 러브스토리는 벌써 반세기를 넘어버린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L' hymne l' amour)'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의 슬픈 이야기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한평생이 가슴 한켠을 아릿하게 적시는 까닭은 그녀의 순수한 열정이 이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삼복의 무더위 속에서도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감동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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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녀자 - 나 만큼 우리를 사랑한 멋진 여자들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 17
고미숙 외 지음, 우석훈 해제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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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의 신을 섬기는 그 종교들은 말 그대로 가부장적이므로(하늘은 전지전능한 아버지다) 해당 지역의 여성들은 하늘의 신과 그 지상의 남성 대리자들에게 2000년 동안 멸시를 받아왔다.'는 미국 작가 고어 바이댈의 말로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유교라고는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서양도 이럴진대 온 몸으로 유교주의를 겪어온 우리나라의 여성들이야 말해 무었할까.  그나마 기독교가 늦게 들어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소한 유교도, 기독교도 유입되기 전의 우리나라 여성들은 비이성적인 성차별은 받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비록 남자이기는 하지만 '배운 여자라서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말 그대로의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비아냥이 섞인 안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아왔다.  그 말 속에는 '그래. 너 잘났다'는 식의 비꼼과 아니꼬운 속내가 배어있는 것이다.  특별히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냉소의 이면에는 권력구조의 비열함이 숨어있다고 보여진다.  처음으로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에 급급하겠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현상쯤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러나 그들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차별을 받는 다수의 사람들 간의 '연대'이다.  그러므로 소위 권력을 득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연대만 막으면 되는 셈이다.  멀지 않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이 땅에 상식과 정의와 연대가 뿌리내리길 희망했던 그들에게, 이름을 기억해 주고, 친구를 만들어 주고,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 주려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직업인으로 사회인으로 제 맡은바 몫을 해내려 애쓰고 있는 언니, 친구, 동생 17인의 이야기를 모았다.  하는 일과 생각하는 것, 지향점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자신이 배우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다."    (p.6  '들어가는 글'중에서)

 

그렇다.  이 책에는 17인의 여성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어쩌면 남성인 나와는 어떤 연관도 없을 듯한 이 책을 굳이 읽고 리뷰를 쓰고자 한 데에는 어떤 계획이나 구상도 없었다.  아주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리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뿐이다.  MBC [피디수첩]의 프로듀서였던 김보슬, 배우 김여진, 무료 치과 진료를 하는 이웃린치과 홍수연, 인권활동가 류은숙, '한경희 생활 과학' 대표 한경희, 고전 평론가 고미숙 등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과 생각에 나도 모르게 리뷰를 쓰게 되었을 뿐이다. 

 

"다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 거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러지 마라'고 협박해도 소용없다.  나는 내 맘대로 살 거다.  내 인생이다.  한 번 사는 내 인생이다.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인생들과 교류하고, 구경하고, 같이 놀고, 배우며 그렇게 살 거다.  그래서 나는 배우는, 배우, 여자, 사람이다."    (p.43-44  '김여진'편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고, 아파하는 방법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따로 있을까.  여성의 취업률이 젊은 증에서는 남자와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그닥 부족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불만에 가득한 자와 미소를 띠는 자로 양분되어 삐그덕 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어쩌면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 진정성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가식과 눈가림이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 가면을 벗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순전히 우리 사회 구성원의 '앎과 실천'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나는 노동자들이 물적 토대를 확보하면 당연히 삶의 비전을 위한 고매한 지성을 탐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차별과 억압을 벗어나면 자유롭고 당당한 사랑의 주체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인간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부자건 노동자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삶의 가치는 오직 자본의 증식이고, 그걸 투여하는 욕망의 대상은 오로지 가족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던 세상인가?"    (p.263  고전평론가 '고미숙'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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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07 09:0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여성만으로 쓰여진 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흥미롭네요^^
우석훈 해재가 특히요~~ ㅎㅎ

꼼쥐 2013-08-08 12:35   좋아요 0 | URL
촛불집회 이후에 엮은 책인 듯해요. MB시절의 촛불집회로 인해 우리 세대는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석훈도 아마 그 점에 착안하여 이 책을 생각했겠지요.

Char 2013-08-07 10: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꼼쥐님 ^^
댓글 남겨주신 것 보고 저도 와보았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고, 아파하는 방법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따로 있을까."
이 부분을 읽고 마음이 참 좋았어요. 이렇게 다른 이의 후기를 읽고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나는 건가봐요. 고맙습니다. :)

꼼쥐 2013-08-08 12:38   좋아요 0 | URL
저는 왠지 다른 사람의 리뷰를 꼼꼼히 읽는 편인지라 비록 형편없는 제 글도 이렇게 꼼꼼히 읽어주는 분이 반갑더군요. 비록 어떤 비판의 글을 댓글로 남길지라도 누군가의 글을 꼼꼼히 읽고, 그 뜻을 파악한 후에 남긴 것이라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싶어요.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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