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 일본을 걷다 19100829-19450815
이재갑 지음 / 책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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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영갑 작가가 그분이다. 작가 스스로 '외로움과 평화를 찍었다.'고 했던 그의 사진들을 보면 그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제주도의 바람, 정서, 그리고 작가의 영혼이 그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틀에 박힌 한 장의 스틸컷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없이 방문하고 기다려야 했던 작가의 열정은 이제 그가 남긴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작가의 의지와 신(또는 자연)의 의지가 결합된 순간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신의 의지를 깨닫게 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나는 김영갑 사진작가와는 결이 다른, 이재갑 사진가의 사진 에세이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를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작가의 에세이집을 한두 권쯤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아픈 과거와 역사의 현장에 대해 천착했던 작가는 한국전쟁과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일제 강점기 때 끌려갔던 조선인 노동자와 원폭 피해자 등 전쟁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어쩌면 시간 속에서 스러져가는 시간의 파편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들춰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유구한 시간 속을 흐르던 '시간의 운석'인 셈이다.


"글로 표현하기는 민망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이렇게 표현한다. 풀과 돌, 나무들이 말을 걸어왔다. 인간의 언어로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현장의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현장에 가면 여러 소리가 들린다. 사진으로 말(언어)을 한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운명처럼 들려오는 현장의 소리를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듣고 또 듣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언어로 다가오고 이를 시각화 작업을 하고 1차, 2차 과정을 거쳐 마무리하게 된다."  (p.6 '저자 서문' 중에서)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에서 작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의 흔적을 찾아 일본 전역을 훑고 있다. 제1장에서 다루고 잇는 후쿠오카를 비롯하여 2장 나가사키, 3장 오사카, 4장 히로시마, 5장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이 책은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관광 대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우리 선조의 희생과 피로 얼룩진 가슴 먹먹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그저 삼일절이나 광복절 등 특정 국경일에 한하여 우리의 아픈 역사와 조상들의 희생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지나칠 뿐 그때의 기록을 생생하게 대면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선조의 희생을 한낱 조롱거리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하고, 친일파 선조를 둔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자랑스럽게 밝히는 해프닝도 발생한다.


"멀리서 보면 섬 전체의 모습이 군함 같다고 해서 일명 쿤칸지마(軍艦島)로 불렸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지옥과도 같은 노동에 시달렸다고 해서 광부들 사이에서는 지옥 섬이라고 불렸다. 원폭 피해자의 삶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한수산의 소설 <까마귀>의 실제 배경이기도 하다."  (p.123~p.124)


작가가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 작업이 단순히 좋은 사진기와 작가의 테크닉에 의한 하나의 기계적인 결과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진이야말로 작가의 열정과 작가의 깊은 공명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구현되는, 일종의 영혼의 구현이나 영혼의 발현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한 장의 사진 속에 영혼을 담지 않으면 이것을 감상하는 관객은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을 읽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 탓에 때로는 책을 덮고 잠시 먼산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목숨을 담보로 진행된 무리한 공사 탓에 숙소를 탈출하는 일도 많았다. 낯선 지형 때문에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도랑이나 폭포 등으로 떨어져 실족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다리에 나무를 매달아놓고 나뭇잎을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고문했다고 한다. 기사에는 전혀 믿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히로시마 강제 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는 히로시마현 북동부 쪽에 있는 고보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했다. 1942년 시작된 댐 공사에는 경상도 출신의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일하고 있었다. 댐 구조물 공사를 하던 중 조선인 노동자들이 구조물 밑바닥 시멘트 더미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밑으로 떨어진 그들은 위를 향해 살려달라고 있는 힘을 모아 소리쳤다. 동료인 조선인 노동자들이 밧줄을 내려보내 구하려는 순간 일본인 감독이 작업을 중단하지 말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어 감독은 직접 시멘트를 삽으로 떠서 아래로 부었다. 조선인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시멘트를 팔로 막으려 했지만 잠시 후 조용해졌다. 생매장당한 것이다. 당시 사망한 조선인 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 뒤 고보 댐은 '인골(人骨) 댐'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p.258~p.259)


아침에 비를 뿌리던 하늘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대기의 습도를 높이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맨드라미도 더위 탓인지 시들시들 생기를 잃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자신이 속한 사진 동아리의 정기 전시회에서 자신이 걸었던 사진 다섯 점 중 두 점이 팔렸다며 좋아하던 게 문득 떠오른다. 공대를 다니고 있는 아들이 졸업 후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은 손에서 놓지 않을 듯하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이 주창했던 로고테라피의 주장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의미를 통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밝아졌던 하늘은 다시 또 어두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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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연결된다 - 이타적 에고이스트의 책 읽기 나와 잘 지내는 시간 3
김성민 지음 / 구름의시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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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떤 동인으로 그 책에 흥미를 느꼈는가 하는 문제가 때로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년의 한 남성이 서점에 들러 한 권의 동화를 선택했다면 '그 나이에 왜?'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남성들 중에도 여전히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비록 그것이 그 사람의 오래된 취향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그 나이에 동화를 고른 동인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을 일컬어 '이타적 에고이스트'라고 하는 김성민 작가의 리뷰 에세이 <고독은 연결된다>를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며칠 전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괜찮은 책인 듯 보여 대출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대책도 없이 책만 빌려 오는 상습적 '책 산책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빌려온 책을 무작정 쌓아놓고 묵히다가 들춰보지도 않은 채 책을 반납하는 비양심적인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번 책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후루룩 다 읽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을 단순히 책 빌리는 곳이라고만 말한다면 허전하고 부족하다. 도서관은 책 자체를 체험하는 곳. 책을 구경하고 읽으며 도서관에서 마련한 수업을 듣고 책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채로운 방법이 있는 곳이다.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배열된 대형 서점에서는 책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지만, 도서관에서는 책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들이 지금 현재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무덤에 있는 저자들이 곁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한 세계라고 말한 보르헤스가 떠오른다."  (p.62)


<고독은 연결된다>에는 작가가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나 사유 또는 연결된 에피소드나 깨달음 등으로 인하여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가 언급한 책을 읽고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부류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상습적 '책 산책자'에겐 이 책이 무척이나 위험한 책이라고 하겠다. 빼곡하게 적은 도서 목록을 들고 하시라도 도서관 나들이를 마다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기에 모인 스물아홉 편의 글은 함께 읽기와 다시 읽기의 결과물이다. 대개 읽고 나서 쓰지만 때로는 쓰기 위해 읽는다. 쓰기 위해 다시 읽는 과정은 나의 이해를 허물고 재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삶을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얼마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말처럼 다시 읽기는 독자로서 갖는 즐거움이다."  (p.8 '들어서며' 중에서)


오늘 아침 새벽 운동에 나섰던 나는 깜짝 놀랐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매일 들었던 매미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귀뚜라미 소리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렇게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고?' 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웬걸, 산의 능선에 올라서자 매미 소리가 어제와 다름없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날씨가 다시 더워지는 바람에 매미들도 조금 더 시원하고 조용한 곳으로 피서를 왔나?' 생각하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등산로를 매미 소리 덕분에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 인간들처럼 어쩌면 여리디 여린 귀뚜라미들도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한껏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층간 소음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인 이유는 개인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개인 간 해결하려다가 감정이 격해져 폭력을 행사하여 정말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뉴스를 흔하게 접하곤 한다. 여기서 누스바움이  주목하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이 사회 정치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감정에 있다고 본다."  (p.184)


무더위가 정말이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가 가까운 곳에서 시끄럽게 울던 매미도 차츰 먼 곳으로 떠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주를 우리는 힘겹게 보내고 있지만 그것이 비단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 서둘러 온 귀뚜라미도 더위 속에서 힘겹게 제 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기억들이 각자의 삶 속에 새록새록 쌓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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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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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는 삶의 음영을 수시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따금 마음의 눈에 편광 필터를 장착한 채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의 외관이 아닌 내면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핀다는 건 낯설고 번거로운 일일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마음에 난 상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의 크기도, 발병의 원인이나 시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는 게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 순진할 정도로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으로 하여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타인의 그것처럼 데면데면하고 푸접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긴요한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있던 근육이 나이와 함께 소실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없던 마음의 근육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작별을 고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세상이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한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영화, 음악, 명상,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가 그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책을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러 작가의 글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데 익숙할 뿐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작품은 읽고 지나친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 <기차의 꿈>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거나 연상되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으로 인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소환하게 되는 책. 그렇게 소환된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인해 나의 내면이 자연스레 내 의식의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상영되는 일.


"사고 차량에 늘어져 있던 남자는 내가 지나갈 때 아직 살아 있었다. 이 무렵 나는 그가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에 조금 익숙해져서 걸음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요란하고 무례하게 코를 골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부글부글 나왔다. 그런 숨조차 많이 남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측은한지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현실이 어떤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점이 내게는 지독히 측은하게 느껴졌다."  (p.30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 중에서)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평범한 이의 삶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예외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20대 내내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듯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삶이 부러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서지고 흩어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반짝이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반짝이는 그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삶, 이를테면 허물어지고 한없이 흐트러진 삶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제공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삐뚜름하게 보인다. 구멍이 숭숭 난 스웨터처럼 온전한 모습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바인에서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오늘이 어제인 줄, 어제가 내일인 줄 착각하는 순간. 왜냐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비참하다고 여기며 술을 마셨으니까. 우리는 그런 무력감,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는 수갑을 찬 채로 죽을 터였다. 결국 우리의 삶은 강제로 종지부를 찍을 터였고 심지어 우리 잘못도 아닌 일로 그렇게 될 터였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늘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곤 했다."  (p.63 '보석(保釋)' 중에서)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은 편집 또한 기괴하다. 소설의 목차는 책의 가장 뒤편에 배치되어 있고,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 역시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한다. 말하자면 독자는 단편소설의 제목도 모른 채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여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집 방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제목이나 목차를 먼저 확인하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을 보면,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두 남자', '보석', '던던', '일', '응급실', ';더럽혀진 결혼', '다른 한 남자', '해피아워', '시애틀 종합 병원에서 본 굳건한 손', '베벌리 요양 병원' 등 11편이다. 소설은 지극히 짧은 소설에서부터 적당히 긴 소설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하다. 소설은 사실과 환각이 뒤엉키고 시제 역시 불분명한 까닭에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서술하지 않아 잘려나간 듯한 부분 역시 독자의 상상력으로 자연스레 메워지게 된다.


"내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10시간, 12시간, 그 정도였다. 나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헤로인 중독 치료 모임에도 나갔으며, 지역 알코올 중독 수용 센터에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했고, 사막의 봄을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베벌리 요양 병원의 원형 복도는 마치 이승의 삶들 사이에 머무는 곳처럼 느껴졌다. 한 생을 살고 난 뒤 돌아와서 다른 영혼들과 뒤섞인 채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곳."  (p.181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삶은 되돌아보지 않은 채 타인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마치 '남의 눈에는 티, 내 눈에는 들보'라는 격언처럼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예수의 아들>을 읽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왜 그렇게 살아?'라고 비난할 사람이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황이나 달라이라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볼라치면 어느 영화의 시니컬한 대사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충고하는 게 맞을 듯하다. 데니스 존슨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인생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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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워크 - 2025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방희진 지음 / 나루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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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주변부에 있었을 때 우리는 여름이 하냥 만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더위의 중심부를 통과했을 때의 우리에게 여름은 무섭고 두려운 어떤 것으로 변해 있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시 세끼를 부모에게 의존하던 시기에 삶은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가볍고 시시한 것쯤으로 보였지만, 삶의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난 중년의 어느 시기쯤에서 바라보면 삶은 마치 보따리를 풀면 풀수록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문제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나의 괴물 보따리쯤으로 여겨진다. 방희진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는 동안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듯 느껴지는 가까웠던 여름의 폭염과 그에 얽힌 몇몇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재질이 다른 조각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말이다.


"이름 아래 소개된 약력을 검지로 톡톡 치며 진영은 그렇게 말했다. 선망이나 비웃음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의 부지런함만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혜린은 갤러리 관장 외에도 미술평론가, 수도권 대학의 겸임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혜린의 글을 읽었다. 장 드뷔페의 아르 브뤼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진영의 말대로 평론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인용한 문장이 많아선지 현학적이고 난삽해서 요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p.110 '패치워크' 중에서)


방희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패치워크'를 포함하여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패치워크'에는 세 여인이 등장한다. 오정순이었다가 개명을 통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오혜린과 주인공인 나(이정선)와 진영이 그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 여동생인 진영은 짧았던 결혼생활을 접고 그림에만 매달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반면에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만 하던 나는 번아웃이 왔고, 그런 나에게 다시 붓을 쥐어준 이가 진영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오혜린을 만났던 진영이 나의 전화번호를 오혜린에게 건네주었고, 오혜린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30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무명이었던 김옥환 화백이 그의 화실에서 수강생을 모아 서양화를 가르쳤을 때 오혜린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내가 선물로 받았던 팔찌를 통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팔찌에 세 개의 다른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소유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도 서로 다르지만. 마치 소재와 색상이 다른 각각의 원단처럼.


"뒤늦게 첫 소설집을 내며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의미를 따지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뜻있는 뭔가를 자꾸 찾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얻지 못했다. 다만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첫발을 떼면서 호들갑부터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 용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자, 이 책의 의미를 입증하는 알리바이로 그만큼만 주장하자 마음을 다졌다. 나중에는 나중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테지만."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은 대개 피할 수 없는 관계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과 회한 또는 결심이 주를 이룬다. 어느 소설이든 다 그런 범주에 속할 테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삶의 목표에 근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쓸쓸하고 덧없는 감정까지 말끔하게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고 가야 할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


"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  (p.179 '이불' 중에서)


지면을 적시는 비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높아진 습도 탓에 불쾌지수가 높아진 저녁, 군데군데 먹장구름이 떠 있는 하늘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다. 방희진 작가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고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오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내 삶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만고만한 문제들이 울적해진 마음에 불을 붙일 듯하다. 노을이 번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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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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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  (p.11)


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p.152)


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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