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
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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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스운 말이지만 남자들의 로망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년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다. 비록 그것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의 지인 중 한 사람만 하더라도 그렇다. 평생을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지인은 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정말로 시골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겠노라 선언하며 고급 자재를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 조립식 주택을 짓는 데 수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 집이 완성되고 지인들을 불러 집들이도 거하게 치렀다. 산비탈에 위치한 그의 집은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풍광이 좋은 집이었다. 그러나 더없이 좋아하는 지인과는 다르게 그의 부인은 서울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시골 생활은 지인 혼자 꾸려가게 되었다. 부인과 자식들은 이따금 시간이 날 때마다 한두 번씩 들를 뿐이었다. 말하자면 시골 별장을 찾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족을 떠나 홀로 사는 삶이 외로울 법도 한데 지인은 그 생활을 무척이나 즐기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강이나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그러다 아주 가끔 가족이나 지인의 왁자지껄한 방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나름 즐거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남짓, 지인은 결국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다. 시골에 지었던 집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폐가가 되고 말았다.


"수년간 난로에 불을 피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아 있다는 걸요. 비울 때는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잘 버려야 합니다. 아직 식지 않은 재를 함부로 버리면 화재가 나고, 바람 부는 쪽으로 재를 털면 고스란히 다시 나에게 날아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 할 게 있을 때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뇌는 재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요."  (p.214)


김산들 님의 에세이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를 읽는 사람들 중 몇몇은 작가와 같은 시골 생활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 터를 잡은 작가의 삶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해발 1,200미터의 고산 지대에서 보냈던 경험을 사계절로 나누어 펼쳐 놓은 그녀의 삶에서는 마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열대 바람에 섞여 달콤한 과일 향기가 풍기는 듯도 하고, 고산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정이 현대인의 이기심에 쾅쾅 대못을 박는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인간의 허술한 면을 봐주는 법도 없다. 자연은 연약하고 서툰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법 없이, 그들의 방식 대로 담담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통이 가중될 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비스타베야는 해발 1,200미터에 자리한 고산 마을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산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맑은 날에는 멀리 지중해의 푸른 기운까지 시야에 스민다. 산과 바다가 서로를 향해 길게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풍경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산과 계곡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고대의 터전처럼, 고요하고 기름진 고산 평야가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오래 머물다 가는 넓은 땅, 시야가 트이는 맑은 하늘, 계절의 숨결이 천천히 스며드는 그 평야의 한 산자락에 우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삶의 터를 내렸다. 이 땅의 오래된 시간 속에 살며시 끼어든 것처럼."  (p.5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산들무지개'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을 이따금 훔쳐보곤 한다. 지금은 고산 마을을 떠나 카스테욘 근교의 한 목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꼬맹이였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제법 숙녀 티가 나지만, 고산 마을에서 깃든 순수함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는 듯해서 별것도 아닌 그녀 가족의 일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수십 년 도시 생활에 찌든, 한 명의 도시내기가 보내는 '순수'에로의 열망 또는 익숙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디디는 '순수'로의 착지가 아닐까 싶다.


"계절이 내어 주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비움'과 '채움'의 태도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면, 열매와 잎을 하나씩 내려놓는 추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계절은 그렇게 비우고 채우며 다시 이어집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연은 비우고 채우는 순환을 합니다. 모든 게 풍성할 것 같은 열대에서도 나무는 잎갈이를 하고 익은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추어 비축해야 할 때가 있고, 비축된 걸 다시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p.258)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우리는 동시에 2026년의 6월 한 달을 지우고 있다. 서로가 별것도 아닌 일로 아웅다웅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왜 나는 매사에 초연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나의 삶을 이렇게 빠르게 지워나가다 보면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쓰던 모든 것들이 그저 헛되고 헛된 것으로 인식할 날이 곧 오고야 말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하는가.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10년 이상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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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 - 일터를 잃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염재현 지음 / 은빛물결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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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평범한 진리가 우리들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렇게 믿는 이들 중 다수는 주변의 다른 이들은 계획하지도 않았던 여러 행운들이 덤으로 마구 쏟아지는 듯한데 유독 자신은 단 하나 계획한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믿음을 갖는 이들이 단지 비상식적인 몇몇 사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것인 양 포장하면서 짐짓 슬픔을 과장하고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슬픔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알고 있었고, 해고를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전에는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혹시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9월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오래 근무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해고 통보였다.  그것도 계약 만료 하루 전에."  (p.14~p.15)


<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을 쓴 염재현 작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은행에 근무하던 저자가 은행을 나와 계약직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40세의 가장이었던 그가 1년 4개월이라는 긴 실직 기간을 통과하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 책은 삶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을 잃은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고, 일각이 여삼추였을 터이다.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린 뒤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화면에 '잔액 부족'이라는 경고 문구가 떴다. 다시 확인해 보니 통장에 남은 돈은 만 원뿐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통장 잔액이 이렇게까지 바닥난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p.106)


나도 주변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삶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실직과 같은 불행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까닭은 대개 그들의 조급함에 있다. 불행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일들을 벌인다는 점이다. 장기간 취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 자영업에 눈을 돌리는 게 그 대표적인 일이다. 경험도 없고, 자본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낯선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곳저곳 헤매면서 돌아다닐 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먼저 다른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서 상황을 살피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1년 4개월의 실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멈춤'의 시간이 있었던 까닭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종종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한다. 누군가는 실업급여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니 구직을 늦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실직을 겪어 본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여유 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시간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을 고르게 해주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p.216)


낮에 점심을 먹고 아파트 인근에 있는 공원을 잠시 거닐었다.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주말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에도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이 더러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쉽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급한 일일수록 여유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둘러 일을 처리할 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벌써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는 여전히 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쨍한 하늘만 이어지고 있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장마도 잊은 채 마냥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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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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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엮어 판타지 소설로 쓴 작품은 그 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작품 대부분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게 끝이 나 버리는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설 속에서 우리의 미련이나 아쉬움을 죽음 이후로 조금 더 연장하거나 확장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게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부르는 소리가 비껴간다'고 썼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칼로 무 자르듯 죽음과 함께 명확히 나뉘는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우리는 동화와 같은 판타지를 통해 슬쩍 넘나들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번복하고 싶은 간절한 꿈일 테니까 말이다.


"고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시절로 돌아가서 1년간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인의 혼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안, 현재의 육체는 이곳 BCD 카페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인에게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는 BCD 카페의 직원입니다."  (p.21)


봄비눈 작가의 소설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역시 그와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백여름은 철학과 교수이다.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 여름은 1년 사귄 예비 배우자와 만나 웨딩드레스를 함께 고르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여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깨어난 곳은 BCD 카페, 저승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여름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려 보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절을 선택하게 된다. 여름은 21살에 만났던 첫사랑 유현을 떠올렸고, 안유현과 보냈던 그 시간이 그녀의 짧았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던 첫사랑의 순간을 선택하는 여름.


"그의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딘 지 네 달, 남자 친구와 헤어졌지만 바로 연락할 순 없었다. 차갑게 밀어냈으면서 그에게 다시 손내밀기가 두려웠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날 맞이해 줄까. 아님, 내가 그랬듯 차가운 손짓으로 날 밀어낼까. 선뜻 연락하기가 두려워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렸다. 우연히 마주치면,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120)


유현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여름의 두 번째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여름은 1년이라는 한시적 삶이지만 좀 더 잘해 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게 예상하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은 D-3, D-2, D-1, D day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여름의 첫 번째 삶과는 다르게 마음에도 없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유현을 선택한 여름의 간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이어진다. 마냥 풋풋하고 아름다워야 할 여름의 첫사랑은 1년이라는 시간의 제약 탓에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이 감싼다.


"내일의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까.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몸에 밴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9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어쩌면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p.352)


현실의 사랑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할수록 애틋함은 배가 되고, 간절함으로 인한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장벽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랑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열정도 높아지고, 두 사람의 결합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장벽인 '죽음'은 소설을 통해 종종 소환되곤 한다. 현실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장벽마저 뛰어넘고 싶은 것이다. 그 판타지를 우리는 소설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에 우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렇게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 절절한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애써 태연한 척 눈물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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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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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결혼.여름>은 어쩌면 요즘처럼 여름이 무르익는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일지도 모른다. 알제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한 카뮈가 아직 무명작가이던 시기에 쓰인 이 에세이집은 청년 카뮈의 사유가 담긴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당시의 카뮈는 여러 도시를 직접 여행하는 동안 육체가 감각하는 이 세계를 인식하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삶에 대한 은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고백하는 글들을 여러 편 남김으로써 부조리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지금 이 순간 놀라운 건, 내가 더 이상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종신형으로 갇힌 사람처럼 - 그에겐 모든 것이 현재다. 또한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며 다른 모든 날도 마찬가지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현존을 인식한다는 것은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는 풍경이 있다면 더없이 천박할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지역 곳곳에 걸쳐, 내 것인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에게 공통된 죽음의 맛과도 같은 이 지역의 무언가를 뒤따랐다. 이제는 그림자가 사선으로 드리운 돌기둥들 사이로 불안한 기운이 마치 상처 입은 새처럼 대기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에 깃든 이 불모의 명징성. 불안은 산 자들의 가슴에서 싹튼다. 하지만 고요가 이 살아있는 가슴을 뒤덮으리라. 이것이 내 통찰의 전부다. 해가 점차 기울어가고 소음과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잿가루에 덮여 잦아듦에 따라 스스로에게 배제된 나는, 내 안에서 '아니야'라고 말하는 저 느릿한 힘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p.34)


꽤나 힘든 삶을 살았던 카뮈는 그의 곁에 늘 '죽음'을 두고 살았던 듯하다. '명징한 의식을 끝까지 간직하여, 넘쳐나는 내 모든 질투와 공포와 함께 나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다.'고 썼던 카뮈는 1960년 결국 자동차 사고로 그의 삶을 마감함으로써 그의 최후에 대한 바람마저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죽을 운명인데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가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낙천주의자로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넘쳐나는 질투'를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카뮈는 어쩌면 알제의 여름처럼 그의 행복을 젊은 나이에 모두 소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실'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보에 찬동하기 위한 이성도 그 어떤 역사 철학도 믿지 않지만, 적어도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면서 부단히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보다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을 안고 있지만 모순을 거부해야 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응당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의 임무란 자유로운 영혼들의 끝없는 불안을 가라앉힐 몇 가지 처방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너무도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초인적인 과제다. 하지만 인간이 완수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을 초인적인 과제라 일컫는 것이고, 그뿐이다."  (p.118)


카뮈의 글에 매료되는 까닭은 그의 글이 때로는 선동적이고, 때로는 진지하며, 때로는 철학적이고, 아주 가끔 시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율하듯 그가 쓰는 한 편의 에세이 안에서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적절히 배합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타고 긴 여행길에 나선 어느 여행자의 감성으로 우리는 깊은 시름을 밤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고, 쏟아질 듯 빛나는 뭇별에 탄성을 쏟아낼 수도 있다. 대문호의 글에는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현학적인 문장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 여름>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가볍게 무너지고 만다. 그의 글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그럼에도 그의 글은 끝에 도달할 수도 없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제공한다.


"달이 솟았다. 달은 우선 해수면을 어렴풋이 비추고는 더 높이 올라가 부드러운 물 위에 글을 쓴다. 마침내 중천에 이른 달이 바다의 통로 전체를 환히 비추며, 하늘에 흐드러진 은하수가 배의 움직임과 더불어 캄캄한 대양 속의 우리를 향해 무한히 흘러내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요란한 빛과 알코올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절히 불렀던 충실한 밤, 신선한 밤이다."  (p.182)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여름>을 읽는 독자들이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을 읽은 느낌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는 등 지금 막 출간한 책인 양 각별한 애정을 쏟는 까닭은 그의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인인 우리에게 전달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뮈 자신이 나의 생각은 이렇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지녔던 삶의 철학을 배우고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운일 뿐이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고 썼던 카뮈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이 불행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썼던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도 떠오른다. 우리는 점점 한여름의 무더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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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시리즈 82
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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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주는 첫 감각은 언제나 지난밤에 먹은 야식으로 인한 팅팅 불은 부기와 한껏 둔한 감각이 주는 답답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푸석푸석한 감각에 어느 정도의 매끈한 생명력이 도는 데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밤새 멈춰 있던 기계에 윤활유를 치는 시간이랄까. 그러나 그 시간은 늘 비슷하거나 한결같은 짬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지체되거나 늦어진다. 말하자면 내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의 답답함을 나는 수십 년 동안 줄곧 지켜보면서 하루하루의 내 삶을 연명해 왔다. 하루를 살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그 시간, 어쩌면 내 몸의 중심추를 맞추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은 익숙한 곳에서만 귀한 시간인 걸까. 집에선 새벽이 끝나가는 게 늘 아쉽기만 했는데. 물론 그건 새벽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아침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아침이 온들 오늘도 가난하기밖에 더 하겠나, 빚밖에 더 늘겠나, 그런 생각만 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오사카의 퀴퀴한 숙소에 누워 아침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니. 여행용 가난이 오사카까지 따라온 게 분명했다."  (p.53)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인근의 산에 올라 몸을 풀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그 일차적인 목적이다. 말하자면 나는 비싼 생명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되지 않는 탓에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운동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는 동안 내 몸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려는 게 나의 바람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새벽은 늘 그런 바람과 목적으로 채워진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서두른다. 변하지 않는 나의 새벽 루틴은 마치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로봇의 움직임처럼 단조롭고 칙칙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매일매일이 조금씩 달라지는 숲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을 감지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은 내게 있어 크나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박수영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새벽>을 읽으면서 나는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들의 기분도, 하는 일도, 목적도,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이유도 각자가 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했다.


"새벽인데도 기온은 떨어질 기미가 없고 습한 기운까지 가득 차서 두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였다. 그런 날이면 더 많은 쓰레기가 길 위에 버려지는 것 같다. 카페 앞에 버려진 일회용 커피 컵 안에는 대부분 얼음이 녹아 탁해진 물과 담배꽁초, 휴지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컵들이 모여 있는 벤치를 쓰레기통으로 인식했고 환경공무관은 새벽마다 쓰레기통을 벤치로 되돌려놓기 위해 그 속에 든 오물들을 일일이 건져냈다. 바닥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바닥 닦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건 웨딩홀에서 배운 뼈아픈 진실이었다."  (p.129)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작가는 학교에 지각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새벽까지 영화를 보고, 일기를 쓰고, 새벽 어스름에 자신의 비밀을 숨기던 소녀였다. 이십대가 된 작가는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언니와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의 새벽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아빠를 보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그 새벽에 녹아 있었다. 이렇듯 작가에게  새벽은 자신의 감정이나 비밀을 마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새벽은 '잠들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잠들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새벽을 사는 다른 생명체를 돌아보게 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챙기고, 아픈 고양이 후디를 돌보고, 새벽 배송 기사와 환경공무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새벽은 작가에게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감각된다.


"후디를 구조한 뒤에도 새벽이 되면 바깥으로 나갔다. 화단 안쪽이나 건물 틈새에 설치해둔 급식소를 들키지 않으려면 새벽의 도움이 절실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의 유일한 단점은 들고 나는 모습이 오히려 눈에 잘 띈다는 것이라 인적이 없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태우거나 전화 통화라도 하고 있다면 그날의 계획은 실수로 건드린 도미노처럼 몽땅 쓰러져버린다. 그러니까 새벽 순찰은 도미노 블록을 일일이 본드로 붙이는 작업인 셈이다. 후디가 가르쳐준 다소 번거롭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새벽을 이용하는 것."  (p.99~p.100)


오늘도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쓰레기장을 정리하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후문의 이면도로를 건너 산에 올랐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청설모 한 마리가 등산로에서 무언가 주워 먹다가 그 모습을 내게 들킨 듯 잰걸음으로 후다닥 자리를 뜨고, 어제 잠깐 내린 소나기 탓인지 등산로에 떨어진 밤꽃이 어지러웠다. 새벽 풍경은 이렇듯 매일매일이 다르다. 작가와는 다르게 단지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새벽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새벽은 다른 기억으로 채워질 터, 내가 보았던 오늘의 새벽은 서둘러 일터로 향하는 어느 트럭 기사의 모습과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부지런한 일꾼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모르게 분주하고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6월, 아무튼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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