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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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  (p.11)


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보서 아는데'으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잇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p.152)


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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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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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를 읽을 때가 더러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이다. 은유나 비유가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쓰인 단출한 인물과 사건 구성임에도 동화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그토록 쉽게 사로잡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고 문장의 표현이 직접적인 까닭에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소설은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반투명의 얇은 종이를 덧댐으로써 독자들에겐 그저 흐릿한 윤곽만 제공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지만, 동화는 그런 장치 없이 투명한 유리 저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동화 속 주인공이 울고 있으면 나도 따라 훌쩍거리며 울게 되는 것이다.


"은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기도 합니다. 은하철도에 올라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갑작스럽습니다. 조반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바라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은하철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 『은하철도의 밤』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과 슬픔,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우리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p.211)


이서희 작가가 쓴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는 PART 1 '함께할 때야 빛나는 것', PART 2 '진심의 아름다움', PART 3 '상상을 뻗어 자유로운 세계로', PART 4 '내 심장으로 마주하는 모험', PART 5 '우리의 성장을 닮은 이야기' 등 총 5부로 나뉘어 22편의 동화가 발췌되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글북, 소공녀, 피터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닐스의 신기한 모험, 브레맨 음악대, 보물섬,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등제목만 들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동화들이 작가의 안내와 해설에 따라 줄줄이 소환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일에 조심스러워지며,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하던 감각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직 좋은 곳일 수 있다고 믿던 작은 확신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두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동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곁에 놓입니다."  (p.4~p.5 'prologue' 중에서)


비록 이 책에는 작가가 가려 뽑은 동화 속 일부 문장들이 실려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 문장들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동화가 한두 권쯤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느 가을의 언저리에서 홀로 남은 빈집을 지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읽었던 '정글북'이나, 할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조명도 없는 사랑방에 숨어들어 읽었던 '피노키오' 등 우리는 동화 한 편을 다시 읽음으로써 소중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박한 사회생활로 잔뜩 날이 섰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렸던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004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다리가 짧은 거짓말도 있고, 코가 긴 거짓말도 있거든. 네가 한 것은 코가 긴 거짓말이란다."  (p.190)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수없이 잔금이 가는 듯하다. 날 선 표정에 질린 탓인지 사무실에선 농담이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침묵은 가히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닮아 있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를 각자가 겨누는 마음의 검이 마치 어느 영화의 광선검처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찌를 준비를 하고. 내가 읽은 동화 한 편이 광선검을 막아줄 캡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인가. 강한 햇살에 기운을 잃은 나뭇잎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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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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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최지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  (p.105)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  (p.134~p.135)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우리의 여름에게>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


"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  (p.170)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불필요한 여자>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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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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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


"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  (p.42)


정유정의 소설 <28>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28>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28>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  (p.312)


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


"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  (p.545)


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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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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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p.57~p.58)


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  (p.163~p.164)


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  (p.291)


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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