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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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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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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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물건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집과 사무실에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을 마치 때 지난 과제인 양 떠안고 살면서도 단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허다하니 때로는 책이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를 옥죄는 삶의 난제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때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글귀들이 잠들었던 신경세포인 양 나를 일깨운다. 책은 그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몸속 하나하나의 세포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정혜윤 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위태로운 순간을 대비하여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순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먼저 호출하고, 불러온 책의 한 대목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곤 한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작가 역시 수십 년간 라디오 프로듀서를 하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재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를 붙잡아주었던 책의 힘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는 작가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삶의 현장으로 옮아 와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지난 경험의 이야기이자 그와 같은 책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


"원치 않는 재료가 널린 거친 작업장에서 삶을 빚는 나의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섞는 것이었다. 슬픔에다 책 큰 스푼 듬뿍, 외로움에도 책 두 스푼, 실망에도 책 한 즙 쭉. 두려움에는 책 한 국자. 쓰디쓴 재료에는 감미로운 책 한 그릇. 나는 온갖 재료에 책을 섞는다. 이렇게 많은 삶의 재료가 있는데 여기서 아무 좋은 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할 때도 책을 섞었다.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는 말 같은 것.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음식을 먹듯이 책을 흡수했고 거기서 영양분을 취했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재료(현실)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고 내 인생의 작업 비밀은 내가 책과의 혼합물이라는 점이다."  (P.32~P.33)


작가는 이 책에서 이자크 디네센, 허먼 멜빌, 제프 다이어, 이탈로 칼비노, 배리 로페즈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이나 관념으로만 떠돌던 그들 대문호의 작품을 현실에 섞는다. 한겨울 경찰차에 막혀 남태령을 넘지 못하던 농민들 곁을 함께 지켰던 시민들,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비행기 폭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눈물이 흐르던 고래의 얼굴을 기억하는 원양어선 항해사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읽었던 어느 작가의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바베트의 만찬', '모비 딕', '그러나 아름다운', '호라이즌'...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P.179~P.180)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무작정 책만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멀리하면서 오직 세상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에 이르게 된,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내 이웃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더해져 빛나는 미소가 되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웃의 슬픈 눈물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P.90~P.91)


점심을 먹고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니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엔 푸른빛의 냉기가 흐르고, 공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한데 저 비둘기 떼는 어디에서 오늘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비둘기의 잔상을 눈에 담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온기를 잃은 겨울 햇살이 눈밭에 부딪혀 부서진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일인가,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집은 차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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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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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을 모르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귀동냥일망정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 어수선했던 초창기 미국에서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삶에서도, 그가 쓴 작품 속에서도 언제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기에 그는 언제나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년의 모험담은 재미와 흥분을 넘어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동생 시드와 함께 폴리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기죽지 않고 행동하는 톰 소여나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모험적인 일상을 살아가던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는 지금도 '헉'이나 '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스라하게 먼 수십 년 전의 그 시절로.


"날이 밝아지자 헉이 강도들의 약탈품이라 부르는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헉은 이 모험에 완전히 신이 나 있었다. 나는 그 점에 감탄했고, 사실을 말하자면 부럽기도 했다. 목매달려 죽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할 염려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다는 것이 부러웠다."  (p.95)


퍼시벌 에버렛이 쓴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헉의 시점이 아니라 흑인 노예인 짐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제임스'는 짐의 본명이다. 제임스에게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고, 그들은 모두 왓슨 부인의 노예다. 독학으로 글을 읽는 것은 물론 쓸줄도 알았던 제임스였지만, 그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양 흑인의 방언을 흉내내며 지냈다. 백인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되자 미시시피강의 잭슨섬으로 달아난다.


"나는 가족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대낮에 탈출을 시도하는 건 멍청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언제 나를 데려가려고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달리지 않았다. 달리기는 노예에게 절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도망칠 때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더글러스 부인의 뒷마당을 지나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강으로 향할 때까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침식되어 깎여나간 강둑 아래쪽에 기대어 기다렸다. 대낮에 위험을 무릅쓰고 강 위로 나갈 순 없었다."  (p.53)


잭슨섬에서 헉과 우연히 조우한 제임스는 헉과 함께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면서 제임스는 자신이 간직했던 비밀 한 가지를 헉에게 털어놓는다. 헉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결국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제임스의 아내 세이디와 딸 리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제임스는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다시 그레이엄 목장으로 향하게 되고...


"모르겠어요. 아마 희망? 희망은  웃긴 거니까요. 희망은 계획이 아니죠. 실은 그냥 속임수예요. 농간 같은 거죠." 여자는 마지막 음절을 길게 늘여서 말했다. 마치 그 소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당신이 희망의 한쪽 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희망은 다른 쪽 손으로 막대기를 들고 당신을 찌를 거라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뾰족한 막대기로요. 당신이 짐을 나르고 망치로 못을 박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건, 당신이 돈이기 때문이에요."  (p.359)


책은 곳곳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제임스의 생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헉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처음에는 내가 알던 친숙한 이름들이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는 제임스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당시의 흑인 노예의 생활상을 아픈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노예 감시인 홉킨스가 흑인 노예 케이티를 강간하는 장면은 끔찍했다.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서슴없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자행된 흑인 노예에 대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다룬 소설을 지금껏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나는 소설의 끝부분에 묘사되고 있는 몇 줄의 짧은 문장을 나는 왜 그토록 읽기 힘들어했던 것일까.


2026년 새해 들어 두 번째 맞는 주말.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간간이 비가 내린다. 그리고 궂은 날씨에 더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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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이야기장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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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책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의 무용론도 뒤따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미흡한 자기 합리화이자 책을 읽지 않는 자신에 대한 구차한 자기변명에 가깝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독서의 무용론이 마치 정론처럼 대접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런가?'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이따금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독서인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p.57~p.58)


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나에게도 가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이 당도하곤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나 줄었던지 그런 질문을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독서의 효용이랄까, 책을 읽는 목적이랄까 아무튼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독서를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을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에 근접한 방향으로 통일시킬 수 있음을 독서 효용의 1순위로 꼽곤 한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사랑, 권리, 차별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많은 추상어가 있지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열이면 열, 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는 남녀 간의 짙은 애정행각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적적인 몇몇 사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일반어로 '사랑'을 언급했을 때,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갖는 추상어의 개념이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독서 인구의 소멸과 함께 영상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영상만 보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언론사의 영상만 구독하는 상황에서 영상 매체를 통한 구성원의 단결과 통합을 기대한다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변화가 느리고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향한 간절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  (p.171)


정여울 작가가 글을 쓰고 이승원 작가가 사진을 찍은 책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팬데믹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기억을 떠올릴 테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환대의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아물게 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을 모은 에세이이기 때문다. 1부 '따스하고 복잡하며 구슬픈 당신에게', 2부 '가장 아픈 시간은 끝났다', 3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만 있다면', 4부 '사랑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종류의 환대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소개되고 있다. 영상 매체와는 다르게 책이란 그래서 유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독자로 선택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조금씩 엇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이 가감 없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취사선택의 전권은 오롯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어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를 향해 수렴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가장 모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타인의 남다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기어코 남다른 삶을 콕 집어 살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글을 사랑해주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미숙한 아마추어라 믿는 사람의 열정적인 투쟁이니까요."  (p.11 '프롤로그' 중에서)


2026년에 맞는 첫 주말,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일도 없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나는 후회나 반성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질책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호되게 나를 질책해 왔고, 수없이 많은 반성 속에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작은 습관 한두 가지 고친다고 지난 삶이 바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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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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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익숙해지겠지만 새해는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날짜를 말하거나 쓸 때에도 '2025'라는 이미 지나간 숫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2026'이라는 숫자와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고 가는 한 해가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잠시 금세 여름이 오고 그렇게 끝없이 더위에 헐떡이다 보면 가을인 듯싶다가 이내 겨울이 찾아오곤 한다. 너무나 긴 여름과 미처 계절을 감각할 새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여타의 계절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계절의 변화가 무척이나 낯설기만 하다. 이런 감각을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코로나라는 낯선 이름이 전 세계를 점령했던 2020년 초의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으로부터 멀어지자 깨닫게 되는 사실들. 우리의 시야를 가장 흐리게 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존재하는 인간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오후, 시퍼런 냉기가 뚝뚝 흐르는 한파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마저 읽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중에 크면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겠노라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사랑 이야기를 쓰겠노라 생각했다.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나중에 이제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고전 소설들의 핵심을 이루는 결혼 이야기 말이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이상 매력적인 줄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마지막에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될 수는 없었다. 간음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었고, 간통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었으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아를 해하는 열쇠도 아니었다. 문학은 그런 것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p.174)


소설의 화자는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이다. 동창인 릴리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여러 명의 동창생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화자는 동창 친구 바이올렛의 지인인 아이리스 부부의 부탁으로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아이리스 부부는 팬데믹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앵무새를 돌보기로 했던 한 대학생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삭의 아이리스는 캘리포아에서 떠날 수 없었고, 급하게 '유레카'를 떠맡게 된 화자. 모든 관계가 차단된 시기에 '유레카'를 돌보는 일은 화자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p.104~p.105)


화자는 뉴욕에 자원봉사를 온 한 의사가 거처를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자신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자신은 유레카가 있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돌연 사라졌던 대학생 '베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오면서 화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화자는 '베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던 까닭에 그와의 마주침을 최대한 피한 채 생활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탄 괴한과 마주친 화자는 그의 조롱과 위협으로 인해 외출조차 어려워지고 만다. 모든 게 순조롭지 않다고 여겼던 그 순간부터 '베치'와의 관계에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베치' 역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고, 화자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네 통이나 사오는 등 서툰 방식으로 가슴을 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두렵긴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난 진짜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간절히 원하는 건. 내가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는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두려워요. 이렇게 모든 게, 모든 사람들이 엉망진창이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p.273)


<취약함(The Vulnerables)>이라는 원제를 갖는 이 소설은 팬데믹이라는 불확실한 시기에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취약함을 스스로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몸을 도사림으로써 타인과의 깊은 관계 설정에 실패하기도 하고, 타인의 약점을 빌미 삼아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관계 맺기에 실패하기도 한다. 다정함이란 결국 나와 너의 '취약함'을 서로 애틋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견고함은 상대방의 강인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가엾게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방 안에 갇힌 앵무새를 함께 돌보면서 발견하게 된 모든 존재의 취약함. 어쩌면 우리는 그 낮은 곳으로부터 관계를 맺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2026년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출근을 했고,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하루를 보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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