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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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든 성공을 거듭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삶이 조금씩 쉬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이거나 전에 비해 훨씬 더 어렵기만 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새벽 시간에 내가 즐겨 찾는 '산스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왔던 까닭에 그분의 얼굴은 잘 알고 있지만 그분의 이름도, 사는 곳도, 살아온 이력도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그저 가볍게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니 그분과 나는 완벽하게 남남일 뿐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게 확실하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산스장'에서 하는 기초적인 운동을 마친 후 조금 더 걷기 위해 돌아서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이따금 만나곤 하는 할머니 한 분과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그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이 지역 토박이인 듯 그동안 내가 등산로에서 만났던 분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40대 때 이 동네로 이사를 왔으며 지금 나이가 80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 할아버지가 절에 다니셔서 나는 처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사님이 우리 나이로 올해 87세일 거예요. 그 집 할머니가 6년 전에 쓰러지셔서 거동을 잘 못하세요."라고 하셔서 "맞아요. 할아버지가 저한테도 1940년생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할아버지가 불편한 할머니를 씻기고, 옷 입히고, 밥 차려 주고, 간식이며 시간 맞춰 과일도 깎아 주고 온갖 수발을 6년째 하고 있어요. 자식들이 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할머니가 쓰러지고 1년쯤 지났을 때, 할아버지 힘들다며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죽어도 못 보낸다고, 할머니 죽으면 자신도 죽겠다며 올해로 6년째 할머니를 돌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할머니는 복도 많다고 했어요. 몸도 불편한 노인을 그 연세에 한다는 게 보통일 아니에요. 그 할아버지 상 줘야 돼요. 요양원에 보내면 누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 주겠어요." 할머니는 등산로를 걷는 내내 할아버지 칭찬을 이어갔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나는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밤, 항우는 더 이상 천하의 패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였습니다. 명예와 사랑이 충돌한 그 순간, 그의 세상은 이미 무너졌고,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희. 그 이름은 그의 마지막 노래처럼, 패왕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항우는 남은 800여 명의 정예기병을 추려 포위선 한 모서리를 찢는 돌파전을 감행했습니다. 단기에는 몇 겹을 뚫었으나, 외곽에 또 다른 포위선이 있어 기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추격과 재포위가 반복되며 탈출 병력은 급감했습니다."  (p.221)


'삶을 바꾸는 실천적 지식'을 전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인문학자 김태현의 저서 <초한지 인생 공부>를 다 읽었던 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꽤 오래전에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나로서는 <초한지>의 모든 부분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 저자인 김태현의 해설이 곁들여진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총 70편에 이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얼마나 대단한 책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초한지 인생 공부>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산스장'에서 매일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든 <초한지 인생 공부>의 리뷰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초한지 30년의 역사는 기록 속에 멈췄지만, '당신'이라는 주인공이 써 내려갈 '인생 초한지'는 매일 아침 장기판의 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다시 시작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외통수에 절망할 수도, 때로는 단 하나의 묘수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가장 강한 돌을 가진 자가 아니라, 판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다스리며 묵묵히 이어간 자의 이름을 마지막에 기록합니다."  (p.357)


나는 사실 나이가 들어 마땅히 갈 곳이 없어진, 그리하여 하루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탑골공원에 모이곤 했던 할아버지들의 바둑, 장기판을 보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추억이 있다. 매일매일 그들을 보아왔던 건 아니지만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하는 날이면 시선을 남이 두는 장기나 바둑판에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들이 두는 장기판에서는 한(漢)이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초(楚)가 이기기도 하지만 불변하는 역사의 기록에서 초나라의 패왕 항우는 언제나 패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강인한 무예와 용맹한 기질을 가진 항우가 어찌 보면 유약하고 건달 기질마저 있는 유방에게 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우리의 삶도, 이해할 수 없는 역사도 때로는 기적처럼 이를 어기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초한 전쟁의 거대한 서사를 칼날과 함성으로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역사의 절반만을 보는 것입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눈에 보이는 칼과 병력의 전쟁이었다면, 소하와 역이기가 벌인 싸움은 보이지 않는 머리와 혀의 전쟁이었습니다."  (p.187)


'인간사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는 통찰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사기열전>을 읽다 보면 초나라의 항우도, 한나라의 유방도 결국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고뇌 속에서 살다 갔음을 알게 된다.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만나는 할아버지 역시 만 86세라는 연세가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며 그 속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삶의 의미를 깨우쳐가는 게 아닐까 싶다. <초한지 인생 공부>를 읽고 있노라면 부귀와 공명이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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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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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울타리에는 넝쿨장미가 한창이다. 초록의 잎새 위에 핀 붉은 꽃송이. 초록과 붉음의 완벽한 대비는 때론 애절하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서 더욱 애절한 게 5월이다. 붉은 꽃잎은 마치 5월의 희생과 피의 헌신을 닮은 듯 서글프다. 46년 전 5월 18일은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피를 흘렸던 날이고, 5월 23일은 검찰과 언론이 합작하여 퇴임한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날이다. 그날에 맞춰 장미는 피어나고, 아파트 울타리를 타고 올라 붉음을 토하고 있다. 애절함을 기념한다는 게 어찌 말이 될까마는 우리는 터져 나오는 울분을 붉은 꽃잎에 기록하며 뜨거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사람 강순희'를 만난 것이 운명인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에 관심이 많고 정의감이 높은 분이었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때 인혁당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는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였으며 국회의원과 장관으로 일하면서 그를 도왔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이 만났던 때 그는 내게, 정치보다는 글 쓰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왔고, 그런 나를 강순희가 찾아냈다. 운명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맺어준 인연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그 인연을 받아들였다."  (p.23~p.24 '프롤로그' 중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억울한 일 한두 가지 겪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억울함에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닌가. 내 가족이, 나의 친척이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희생자가 되어 이유도 없이 삶을 마감하였다면, 살아남은 자는 그 억울함이 오히려 한이 되어 사는 게 무척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남편을 잃었던 강순희 여사와 유시민 작가의 대담 형식으로 기록된 이 책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끌어져 간다. 자신의 억울한 역사를 털어놓는 당사자(강순희)도 이를 듣고 있는 작가(유시민)도 마치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오랜 지기가 만나 수다를 떠는 양 즐거운 분위기인 것이다.


"박정희 때는 하루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잘 살았어. 남편하고 바람 쐬러도 다녔고. 1972년이었나? 우리 열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그이랑 부천에 사놓은 포도밭을 둘러봤어요. 그런데 오는 길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신호 위반으로 걸린 거야. 군인이 면허증 내놓으라고 하는데, 내가 나가서 막 봐달라고 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었지.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결혼 16주년이라 내가 그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는 바람에 기사 아저씨가 듣느라 그랬다고. 한번 봐달라고. 그랬더니 정말 결혼기념일이냐면서 그냥 가라고 했어."  (p.117)


아흔세 살의 강순희 여사는 평안도 박천에서 태어나, 만주 하얼빈에서 자랐고, 평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사업 수완이 좋은 아버지 덕에 북에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듯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하여 부산에 정착하였고,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재직하던 중 혁신 운동에 뜻을 둔 우홍선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슬하에 3녀 1남을 두었다. 1974년 남편 우홍선이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이듬해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다음 날 새벽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네 자녀를 돌보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p.262)


넝쿨장미 흐드러진 5월이 오면 알 수 없는 부채의식에 시달릴 때가 더러 있다. 장미의 가시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도 하고, 특별한 노력도 없이 이런 행복을 무상으로 즐겨도 되는가, 곰곰 생각하기도 한다. 암적색으로 만개한 장미 한 송이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기도 한다. 각자의 운명은 불가항력이라 하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남은 삶을 송두리째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할 때 내 삶은 무척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각자의 부끄러움을 알리기 위해 5월의 장미는 저리도 붉고 선명하게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넝쿨장미는 무심히 피고, 초록과 붉음의 대비가 시리도록 눈에 도드라져 나는 불현듯 잊고 있었던 슬픔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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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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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산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시간이면 멋쟁이 할아버지가 어김없이 나타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기 위해 누웠는데 할아버지 역시 내 옆자리에 눕는 게 보였다. 천천히 자세를 잡으면서 다 누울 때까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가벼운 신음을 연달아 내고 있었다. 길게 누워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으면서 내게 묻기를, '나는 아직 누울 때 당신처럼 아프지는 않겠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 안에는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는 어디에 눕더라도 아프지 않았고, 윗몸일으키기쯤이야 수십 번쯤 거뜬히 해치웠었다는 뉘앙스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프지 않다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누운 채 어깨며 허리며 몸 이곳저곳을 두들기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산스장' 곳곳을 빠르게 돌고 있었다. 아침 기온이 낮고 건조하던 며칠 전과는 다르게 비가 온 후 기온이 빠르게 오르는 바람에 때를 만난 모기들도 덩달아 신이 난 모양이다. 1940년생인 할아버지의 마른 체구에서 빨아먹을 피가 얼마나 있다고 극성스러운 모기떼가 앵앵거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문득 싫증이 나고, 미약하던 의욕마저 뚝 떨어져 사는 게 그저 덤덤하게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나는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 하루키 역시 독자들에게 없는 기운이라도 짜 내서 으쌰으쌰 열심히 살아보라고 권하는 건 아니지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되뇌고, 겉도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낱낱의 문장을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도 기운을 내서 한 번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는 홋카이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고, 그는 오타루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식물의 씨앗이 변덕스러운 바람에 날려 운반되듯이, 우리도 역시 우연이라는 대지를 목표도 없이 방황한다."  (p.56 '그녀의 거리와 그녀의 면양' 중에서)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내가 이따금 생각이 날 때마다 펼쳐보는 책이다. 물론 '4월'이라는 특정한 달이 제목에 포함된 까닭에 그해 4월에 읽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년 4월마다 이 책이 떠오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18편의 소설이 실린 이 책은 하루키의 열혈 독자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하루키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된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히라주쿠의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나간다. 그다지 예쁜 여자는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모르긴 몰라도 이미 서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50미터 앞에서부터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인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내 가슴은 불규칙하게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P.21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하루키 소설의 장점은 그의 소설이 분명 현실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에서 미세하게, 이를테면 현실의 공간에서 반 발자국쯤 떨어진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실에 지친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현실로부터 살짝 떨어져서(또는 현실을 잠시 잊은 채로) 독서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로부터 발을 뺀 채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현실로 복귀해야겠다는 마음이 슬몃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처방은 그의 에세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당신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 나는 관여하지 않겠어' 하는 식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


"5월의 태양 아래를, 양손에 운동화를 들고 낡은 방파제 위를 걸어가면서 나는 예언한다. 너희는 무너져버릴 것이다, 라고. 몇 년 뒤인가, 몇십 년 뒤인가, 몇백 년 뒤인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확실히 무너져버린다.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메우고, 우물을 메우고, 죽은 사람의 혼 위에 너희들이 세워 올린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콘크리트와 잡초와 화장터의 굴뚝, 그것뿐이지 않은가."  (P.120 '5월의 해안선' 중에서)


'삶의 권태기'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시시때때로 일상이 지겨워지고 나른한 권태에 짓눌리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우울증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외투에 붙은 먼지처럼 가볍게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고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나른한 지겨움은 조금씩 정도를 높여간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할 때 하루키의 책은 그와 같은 증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처방책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일단 한 번 그의 작품에 빠져들어 볼 필요가 있다. 속는 셈 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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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서용선의 일상을 따라나서다
고진예 지음 / 희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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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화가와 관련된 책을 자주(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읽게 된다. 얼마 전에는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를 다룬 책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를 읽었고, 그때의 느낌이 워낙 특별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읽은 <화가 서용선의 일상을 따라나서다> 역시 특별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화가 서용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었다. 고진예 작가가 쓴 이 책은 화가 서용선의 일상에 더하여 화가와 작가의 대화 내용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화가의 생각과 사상이 녹아들게 하고 있다.


"그는 역사화는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교수진에서는 민중화나 역사화를 그린 분이 없었고, 앵포르멜 이후의 세대와 그의 이전 교수진들을 포함해서 그런 류의 그림을 그린 분이 없었다. 그가 그린 조선시대의 그림은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시점에 접근 방법을 시도해 본 그림이라고 한다. 비록 그가 민주화 투쟁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역사의식은 투쟁이 아닌 지적 사고의 발현으로 그림에 표출된 것은 아닐까. 또한, 그에게 역사화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 연재로 읽던 역사 소설에 연이 닿아 있다고 한다. 역사 소설은 화가인 그가 문학적 텍스트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P.183~P.184)


2007년부터 약 1년 동안 매주 경기도 양평에 있는 화가의 문호리 작업실을 찾아 화가와 대화를 나누고, 변해가는 바깥 풍경을 기록하고, 화가가 던진 사유의 조각들을 조용히 맞춰 왔다. 책을 읽는 독자는 먼저 그의 그림에 눈길이 간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골격에 강렬한 원색의 굵은 터치는 마치 8,9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의 걸개그림과 닮은 듯하다. 2000년대 이후 동학농민운동과 단 관련 역사 서사를 주제로 그가 그렸던 그림들은 여러 점의 자화상과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역사적 운명에 대한 반항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은 또 다른 역사가 되어 후손에게 전달될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은 영원성이 있어.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예술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해. 물론 행동도 좋으나 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문학으로서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만약 시간이 많이 지나 역사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앞으로의 세대가 그들의 글을 읽었을 때, 글에서 깊이보다 작가의 울분과 신경질만 느껴진다면 훌륭한 글이 아니라는 거지."  (P.28)


서용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공부가 뭔 필요야.' 하는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게 된다. 그림의 깊이는 결국 화가의 사유와 깨달음의 정도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용선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 대부분이 서로 비슷한 느낌과 감동을 공유하는 걸 보면 화가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사유의 깊이가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화가의 진정성이나 현실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화가의 가치관이 그림과 함께 투명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흐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그림 속에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인 고진예 작가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서용선 화가의 작품을 아끼는 까닭은 일반 민중의 현실과 삶의 진실이 그림을 통하여 가감 없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 본인도 천형처럼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이 역사의 은유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자신의 그림에 담으려고 애쓴 듯하다.


"문자는 이미 음성적 속성을 갖지. 우리가 문자를 눈으로 읽을 때 본다는 것은 빛의 파동에 의해 시각적인 형태로 감지되잖아. 그래서 문자를 읽는다는 것은 파동을 인지한다는 거야. 그것은 이미 소리 형태를 보인다는 거지. 미술에는 이미지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미지는 이미 현실이고 실체가 있는 거지. 왜냐하면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이미지는 재현적이지만, 이미 현실에 놓인 공간 안에 존재하기에 실체가 있는 현실적 이미지라는 거야. 우리는 실체가 없는 그린다고 하지만 그림이라는 것은 늘 공간 안에 놓이고 공간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거지."  (P.155)


오늘 아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등산로에는 안개가 자욱했었다. 그 시각에도 어디론가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이 허연 버짐처럼 더께더께 피어나고 있었다.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그 한컷의 장면을 그림으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화가 서용선의 핏발 선 눈빛의 자화상이 처진 어깨를 한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내내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삶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끊이지 않고 힘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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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시린
김보겸 지음 / 사람과가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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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말은 감정의 폭의 크지 않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두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노을에 하염없이 빠져들거나 일출의 장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예술가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다른 정상인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정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인은 예외로 한다는 규정 또한 갖고 있지 않다.


김보겸 작가의 에세이 <서른에 시린>을 읽는 내내 나는 그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것은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T나 F로 분류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T로 분류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예술가도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서란 다소간의 성향적 특성은 있을지언정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다. 누구나 같은 인간이라는 공통의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말로 표현되면 현실을 정의하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던 것을 나는 시로 썼고, 시를 쓰며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시를 쓴 까닭은, 내 마음을 움직였던 여운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가 주는 언어로 삶을 바라보는 노력은 사람들이 쉼을 갖고 싶을 때 하나의 답이 될 거라고 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p.52)


제목에 나이를 뜻하는 어떤 단어가 포함된 책이나 노래를 만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그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나의 기억 회로가 제목이 의미하는 정확한 나이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까닭에 텅 빈 머릿속이 한동안 멍한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김보겸 작가의 <서른에 시린>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에 'ㄴ' 받침이 들어가는 첫 순서이기도 한 '서른'이라는 나이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른, 마흔, 쉰, 예순...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고 시나브로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잔잔한 파동을 좋아한 것 같다. 사람들로 가득 찬 술집보다는 테이블이 몇 안 되는, 사장님의 손때가 묻은 식당이 편하고 정이 간다.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아침에 새로 한 듯한 김치, 사장님만의 특수 간이 되어 있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우면 술을 마시기 전인데도, 그 정경이 참 맛있게 느껴진다. 식당을 오고 간 지 십여 년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주방을 드나들며 반찬을 가져가는 단골손님의 넉넉한 웃음마저 정겹다."  (p.133~p.134)


사람의 마음도 나이가 듦에 따라 수분을 잃고 푸석푸석 건조해지게 마련, 다들 동안의 육체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촉촉한 감성을 유지하는 동심의 마음을 부러워했으면 좋겠다. 천천히 늙는다는 건 그 사람의 정서에 여전히 생명의 물기를 머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까닭이다. 젊은 사람들이 매우 논리적이거나 바른말만 하는 어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정서 역시 타인의 감정에 녹아들지 못한 채 점점 메말라가는 것이다.


"때마침 노을이 졌고, 노을 끝에 닿은 아내의 표정이 맑아 마음에 담았다. 생각해 보니 맑은 사람을 꿈처럼 담는 일에도 여러 감정이 요동쳤고, 그럼에도 그 감정의 끝에는 아내가 있었다. 시간에 무뎌지면 마땅히 느껴야 할 계절조차도 사전에 박힌 이름처럼 건조하게 지나갈 때가 있는데, 아내를 만나 마르지 않은 계절들을 보냈다. 한 사람을 내 안에 담는 일이, 한 세상을 담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 후로 한 걸음씩 하루를 놓는 일에 늘 다정하려 애쓴다. 시린 마음의 끝에서도 변하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는다. 그대 잇기에 한순간 꿈처럼 빛날 수 있었다."  (p.45~p.46)


지난 3월에 군을 제대한 나의 아들은 4월 9일에 출국하여 유럽 전역을 돌고 있다. 서른의 끝자락에 선 작가가 이렇게 흔들렸던 것처럼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 아들 역시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복학 준비를 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서른'이라는 나이를 경험하겠지만, 그것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은 통과의례라고 말해주고 싶다. '서른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서른이 시리다'고 썼다는 작가는 어쩌면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시점에 '마흔에 시린'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우리는 그렇게 불가능한 어떤 것에 끝없이 매달린다. 우리의 삶이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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