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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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과거보다 먼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해 '왜 그럴까?' 하고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반감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역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회상이 좀 씁쓸하게 여겨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아왔던 지난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를 성장시켰던 단계단계마다의 성과와 실수를 되짚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젊은 시절에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대인 듯 여겨지기 때문이고, 죽음이란 그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아주 희미한 흔적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은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이 시기가 되면 독서 취향도 크게 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른바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어린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화나 그림책에 큰 관심이 가기도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담 가운데 이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신성한 하늘처럼 우러러 온 아버지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친 기둥에 쩍 하니 금이 간 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체험으로 우리 운명의 중요한 윤곽이 그려진다는 점을 읽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그런 상처와 균열은 대개 봉합되고 잊히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가슴 속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한다."  (p.31)


싱클레어의 삶을 단계별로 뒤쫓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까닭에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계기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얼마나 유약하며, 인생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싱클레어. 그 괴롭힘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상처로 남지만 괴롭힘의 발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기숙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외톨이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숙사 선배인 알폰스 베크나 같은 외톨이 신세인 크나우어와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소녀의 그림을 그려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하며 숭배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를 유일하게 일깨우는 존재인 데미안은 그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알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깨고 나오려 분투하라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47)


학창시절의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관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실존의 세계는 마냥 하찮고 낮게 보인다. 온갖 부조리와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상. 그러나 학업을 마친 우리가 실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과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실존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은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깊이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만 두려움을 품지. 자기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해. 자신 안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다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들은 느끼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삶의 법칙이 더는 맞지 않음을. 종교도, 풍습도, 윤리도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건 낡은 석판에 새겨진 케케묵은 계명이라는 사실을. 그런 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p.221~p.222)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운이 좋게도 자신의 곁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할 뿐이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어쩌면 그런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그토록 크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런 과정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유럽 여행 중인 아들은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리부킹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도 어쩌면 경유하는 어느 공항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목적했던 어느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항공유처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착지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기착지에서 누구와 조우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을 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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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시작된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에 핀 목련도 이제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 흐물흐물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진 벚나무 가지에선 연녹색 새순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가까스로 봄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맞는 봄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택가보다 기온이 낮은 산에는 지금도 여전히 꽃의 난장입니다. 산벚꽃, 진달래, 조팝꽃, 복숭아꽃...


군을 제대한 아들은 오늘 아침 드디어 유럽을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던 아들은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메시지를 카톡 문자로 남겼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답글을 남기면서도 나는 내심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하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일들로 인해 혹여라도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으로 속을 끓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만 모든 게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굳이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삶의 태도나 습관을 변경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여행도 이와 같아서 미리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여행은 그야말로 장소만 달라진 일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계획에서 벗어난 일상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끝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어진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소유와 명성, 권력, 외모, 학위 등 집착하던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나는 이 사실을 죽어가는 환자와 인터뷰하며 배웠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환자는 모두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함께한다고 느낄 때 따뜻함을 느꼈다."  (p.150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중에서)


무사 앗사리드가 쓴 <사막별 여행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는 아들에게 선물은 절대 사 오지 말라시며, 사 와봐야 쓰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래도 어찌 그리 야박하게 할 수 있느냐며 가급적 쓸 수 있는 선물을 사 오겠노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유럽 여행을 통하여 아들은 어쩌면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자맥질하듯 비가 오락가락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면 먹이를 찾아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도 오늘의 비가 단비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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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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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권의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경험이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 책을 꾸린다면 자칫 자서전으로 흐를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데에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서전을 써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더불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를 엮을 때, 그 성패는 무엇보다도 구성의 밸런스에 있지 싶다. 예컨대 유년시절의 경험담과 직장 생활, 읽었던 책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나누어 4개의 장으로 구성할 경우 유년 시절의 고생담을 너무 장황하게 쓰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전체의 느낌이 어둡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에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위주로 글을 쓰면 흔하디흔한 독서 리뷰나 영화 감상문쯤으로 오해할 소지가 높다.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몸을 배배 꼬기 전에 주제를 바꿔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별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얘기다. 잠시 귀국했을 때, 네 명의 건장한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보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은 함께 일하고 있군요. 나는 혼자인데. 서로 합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당신들의 일치된 발걸음이 나는 사무치게 부럽습니다. 서로의 안위를 서로에게 맡긴 채, 외롭지 않게, 당신들은 함께 나아가고 있네요."  (p.87)


박선영의 에세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곁에 지루함을 놓아 두거나 권태를 벗어나게 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자리를 뜨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작가가 책에서 쓴 이야기는 제법 무겁고 논쟁이 될 만한 것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독자들이 이렇듯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까닭은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총 4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글의 분량이나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에서 작가는 기자로서 살았던 17년의 세월을 돌이켜본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슬픔에 이끌렸던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무력감 등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결들을 바라본다.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되새긴다. 비슷비슷한 주제인 듯 보이지만 작가는 각각의 주제에 선명한 새깔을 입히는 것은 물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일까.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덕성과 지성이다. 우는 이도 웃게 하는 유머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다. 타인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는 착한 마음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는 용기다. 자신의 오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성찰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 지성을 흠모하고 진리를 수행하는 지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의 덕성이다."  (p.290)


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갖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저 마음속의 꿈으로만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만의 책을 쓰는 것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더러 책을 읽기도 할 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글을 쓰는 일조차 힘에 겨운 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껏 썼던 글을 모두 없애고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남은 생을 보낼 생각이다. 남에게 큰 죄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이다.


"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기가 있다. 그 한기를 감지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너의 견적서를 읽었다. 네겐 나의 값이 이렇게 싸구나. 순식간에 장맛비가 차오르는 한여름의 반지하방처럼 마음은 슬픔으로 출렁거린다. 값싼 내가 슬퍼서가 아니라, 값싼 네가 슬퍼서."  (p.215)


새벽에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쌀쌀하던 날씨는 낮이 되자 금세 풀려 따뜻하다. 지난 비에 듬성듬성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원형탈모를 앓아 왔던 사람처럼 우듬지가 휑하다. 사는 게 그저 하얗게 쌓이 꽃길만 밟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때로 허방을 딛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삶 역시 같은 크기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란과 미국의 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이란 국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치권자는 과연 알기나 할까.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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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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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보다는 과정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더러 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말을 미리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일수록 소설의 서사는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독자가 예측하는 뻔한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인위적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듯한 전개와 구성. 작가는 실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소설 어디에도 일부러 꾸민 듯한, 작위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단박에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컸다.


"학교 교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공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실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학교는 인간 형성을 목적하는 곳이라는 듯이 운영되는 것도, 다루기 편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일 따위, 하룻밤이면 뒤집힌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입시학원에 다니고,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저주가 걸린 것일까 불쌍해진다."  (p.50)


대학 입시와 서열로 얼룩진 남자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가오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만다. 결국 그의 아버지 고이치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오루의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가오루를 맡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네사다 씨는 2차 세계대전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 후 귀환한 귀환병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조차 그를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오부브'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 오카다가 있다. 가오루가 머무는 여름 동안 오카다 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가오루.


"복원하고 거절당했을 때부터 가네사다는 친척이라는 것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했다.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친척이란 커다란 바다에 나타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나 바람에 뒤틀리는, 수동적으로 태어난 우연의 주름 같은,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계도는 종으로뿐 아니라 횡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그 확대는 세로 방향이든 가로 방향이든 바로 안개 속에 뒤섞여서 더듬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듬어가지 못하는 그 앞으로 가서 모든 선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너나 나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친척들과 결별해도 바다를 떠돌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p.100)


작가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이 일상이 된 주인공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보여줄 뿐이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던 가오루의 집에서부터, 그렇게 이어지던 불안은 가네사다의 재즈 카페 '오부브'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접하는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가오루는 잔잔한 재즈 선율 속에서 외국어에 능한 작은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비록 그를 보살피는 어른들이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가오루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 때야. 자기가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렸다든가, 소외되었다든가, 집단을 원망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집단에 남든지, 집단에서 나가는 편이 좋아. 그리고 정면으로 불평을 말하면 돼. 욕지거리를 해도 돼. 누군가는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어.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집단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야."  (p.202~p.203)


집단에 속한 개인은 언제나 집단의 단단한 벽과 마주할 때 또는 집단 구성원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어찌할 줄 모른 채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집단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이 집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거나 숫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집단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거품>의 주인공인 가오루처럼 말이다.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날의 제주 시민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만개한 벚꽃은 저리 밝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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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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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  (p.40 '고독')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


"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  (p.10 '프롤로그' 중에서)


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  (p.104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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