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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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뜸해진 자리엔 무더위가 자리를 잡았다. 잦아진 기상이변 탓인지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나기 쉬운 계절이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여름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 되고 말았다. 살인적인 더위와 게릴라성 폭우는 매년 그 강도를 더하고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그저 침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지급되는 일시적인 성금과 보여주기식 복구 활동이 그들을 위한 과분한(?) 성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느린 듯하지만 화살보다도 빠른 한 해 한 해를 살아내고 있다. 무성의한 이웃과 가혹한 하늘을 원망하면서.


소담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을 읽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나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다, 청소년기의 어느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나는 꽤나 깊은 우울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간질이 마치 나의 경험인 양 아팠다. 그 후에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고판으로 나온 그의 작품들을 수시로 꺼내 읽곤 했었다.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에 실린 작품은 '백야'를 비롯하여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 등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를 통한 철학적 사색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일관적이지 않은 인간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책을 읽는 이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도록 한다. 자신의 모습을 곰곰 되돌아보지 않는 우리는 자신이 마치 신에 버금가는 대단한 사람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까닭에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탁월한 작가에 의해 간접적으로나마 지적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스텐카, 내가 모욕당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밝고 아늑한 행복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리라 생각하는가! 심한 비난의 말을 퍼부어 너의 가슴에 슬픔을 주고,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며, 행복한 순간에도 우울한 생각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그와 함께 계단을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곱슬머리에 꽂은 그 부드러운 꽃 가운데 단 하나라도 짓뭉개 놓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 결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하늘이 맑게 개기를, 너의 사ㅓ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그리고 감사함으로 가득한 어떤 외로운 가슴에 네가 심어 준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대해 축복받기를!"  (p.114 '백야' 중에서)


'백야'에서 작가는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소심한 한 남자를 등장시킨다. 어찌나 소심한지 연애 경험도 없고 단지 상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운하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게 되고, 그녀를 괴한으로부터 구해 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인(나스텐카)을 위로하며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남자는 자신의 소심함을 떨치고 그녀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었던 여인은 결국...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이성이 아닌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자는 아내를 미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오해와 충돌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긴 외투를 입고 G거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현장을 덮쳐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대체적으로 어제보다는 좀 더 강력하게 행동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금방 집을 찾아 입구로 들어섰다. 그때 외투를 입은 말쑥한 멋쟁이 차림의 한 형태가 그의 팔을 스치듯 가까이 그를 앞질러 3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이반 안드레예비치는 비록 극장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멋쟁이 차림의 사나이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바로 조금 전에 본 그 말쑥한 차림의 멋쟁이 사나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한 층을 앞서 올라갔다. 마침내 3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왓다. 문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벨 소리도 없이 열렸다."  (p.157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중에서)


마지막 작품인 '첫사랑'은 열한 살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이다. 소년이 사랑하는 M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철저히 숨기지만, 어린 소년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M 부인의 입장에서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소년의 입장에서 M 부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그런 까닭에 소년의 시선에서 M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M 부인과 이를 지켜보는 소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은 M 부인을 통해 어른들의 허영과 위선, 사랑과 고독을 감지한다.


"M 부인이 남편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마자 나는 바로 부인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마치 그녀가 한 시간 전부터 같이 산보하자고 청해 놓은 것처럼, 마치 이미 한 달 내내 아침마다 그녀와 함께 산책이라도 해 온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했을까? 또 사소한 거짓말을 할 때 도대체 그녀의 머리엔 무엇이 있었을까? 왜 그녀는 혼자 산보하러 간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제 나는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할지 몰랐다."  (p.225 '첫사랑' 중에서)


사회학 연구자인 이승연은 자신의 최근 저서인 <손절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체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와 공공의 책임을 해체하는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이자 '문화'라고 규정했다. 내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까닭은 도스토옙스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태도는 우리가 평소에 관계를 맺고 지내는 여러 관계의 간극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심하여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 질투심에 불타는 남편, 소년이 연애 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성인 여성 등 도스토옙스키가 설정한 소설 속 인물들과의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것은 별 이득이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우리는 그들과 손절을 하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다양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우리는 나에게 이득이 없는 관계는 곧바로 손절을 하는 바람에 나와 다른 타인을 연구하고 탐색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관계를 통한 의미와 깨달음이지 단순한 손익 관계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손익 계산에 익숙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에 배척과 혐오로 일관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경계를 넘어 배척의 이유가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에게 고전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세대를 배척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장마가 지나간 아파트 화단에는 말매미 울음소리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낮잠을 자기도 어렵다. 나의 뜻에 반한다는 이유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없애야 하는가. 저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이 악다구니를 쓰며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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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만 부 리커버 에디션)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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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몇몇 추구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게 있다면 '추상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컨대 '행복하게 살자'와 같은 추상적인 문장을 추구하거나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 이를테면 산책이나 낮잠 등 때에 따라 다양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일상이 그렇게 흘러가면서부터 나는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어떤 일의 선택 기준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따금 당부하곤 한다. 이를테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어떤 의무나 관습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런 일은 하지 말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나중에 어떤 직장에 취업을 하고 출근을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100% 의무감 때문에 하고 있다면 이직을 포함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의 반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라도 그 일의 밑바탕에는 99%의 의무감과 1%의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은 꽤나 긴 듯하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책에 담고 싶었던 세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결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둘째는 좋은 사람이 돼서 좋은 사람을 곁에 두었으면 한다는 것. 셋째는 결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들은 다 행복하기 위해 한다고 믿고 있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행복은 과연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 저는 행복이라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p.8 '작가의 말' 중에서)


김상현 작가의 에세이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는 출간된 지 적어도 5, 6년은 흘렀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는 책과의 궁합이 맞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며 권하더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고, 한참이 지나 책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아, 이 아무개가 이 책을 권한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예정에도 없던 독서를 시작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이 책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답은 언제나 똑같다. 또 그런 일상들을 보낼 것이다. 가끔 내가 그리는 미래에 닿았을 때, 그려왔던 모습과 다르면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또 다른 답을 찾기도 하고 길을 찾기도 한다. 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주제가 온전히 나이기에 끊임없이 되묻고 깨닫고 갈망한다."  (p.165)


우리는 이런 종류의 책이 마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나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여 밤잠을 설치게 되는 결혼 적령기의 그들에게나 어울리는 책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도 타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감정에 쏟는 에너지가 극심하여 체력이 남은 상태의 가뿐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날이 없는 까닭에 오늘의 나를 위로할 단 한 줄의 문장은 어느 날이나 필요한 게 아닌가. 마음을 가라앉혀 줄 힐링 에세이는 어쩌면 나의 마음에 건네는 한 병의 박카스가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로 인하여, 과도한 불안과 고민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인하여 지친 우리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영혼의 자양강장제를 한 병쯤 마셔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인생은 고통이다. 삶 자체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존재 역시도 고통이다. 우리가 죽음으로 회귀하는 동안 살아내야 하는 저항값이 고통인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고통 받는 건 당연하다. 허나 고통을 회피하는 건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고 흘러가기 위해서 많은 것들에 부딪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환경일 수도, 체제일 수도 있다."  (p.214)


늦은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늘은 연일 어둡거나 희미해지고 있다. 몸에 닿는 바람도 전처럼 건조하고 상쾌하지가 않다. 눅눅하고 끈적한 공기가 번번이 의욕을 꺾는 바람에 휴일이면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의 원심력에 한없이 휩쓸린다. 우리를 강한 인력(引力)으로 빨아들이는 과거의 기억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대기 중의 습습한 알갱이들마다 나를 붙잡는 기억들로 가득하다. 습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맥을 못 추고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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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
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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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스운 말이지만 남자들의 로망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년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다. 비록 그것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의 지인 중 한 사람만 하더라도 그렇다. 평생을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지인은 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정말로 시골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겠노라 선언하며 고급 자재를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 조립식 주택을 짓는 데 수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 집이 완성되고 지인들을 불러 집들이도 거하게 치렀다. 산비탈에 위치한 그의 집은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풍광이 좋은 집이었다. 그러나 더없이 좋아하는 지인과는 다르게 그의 부인은 서울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시골 생활은 지인 혼자 꾸려가게 되었다. 부인과 자식들은 이따금 시간이 날 때마다 한두 번씩 들를 뿐이었다. 말하자면 시골 별장을 찾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족을 떠나 홀로 사는 삶이 외로울 법도 한데 지인은 그 생활을 무척이나 즐기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강이나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그러다 아주 가끔 가족이나 지인의 왁자지껄한 방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나름 즐거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남짓, 지인은 결국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다. 시골에 지었던 집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폐가가 되고 말았다.


"수년간 난로에 불을 피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아 있다는 걸요. 비울 때는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잘 버려야 합니다. 아직 식지 않은 재를 함부로 버리면 화재가 나고, 바람 부는 쪽으로 재를 털면 고스란히 다시 나에게 날아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 할 게 있을 때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뇌는 재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요."  (p.214)


김산들 님의 에세이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를 읽는 사람들 중 몇몇은 작가와 같은 시골 생활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 터를 잡은 작가의 삶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해발 1,200미터의 고산 지대에서 보냈던 경험을 사계절로 나누어 펼쳐 놓은 그녀의 삶에서는 마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열대 바람에 섞여 달콤한 과일 향기가 풍기는 듯도 하고, 고산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정이 현대인의 이기심에 쾅쾅 대못을 박는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인간의 허술한 면을 봐주는 법도 없다. 자연은 연약하고 서툰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법 없이, 그들의 방식 대로 담담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통이 가중될 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비스타베야는 해발 1,200미터에 자리한 고산 마을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산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맑은 날에는 멀리 지중해의 푸른 기운까지 시야에 스민다. 산과 바다가 서로를 향해 길게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풍경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산과 계곡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고대의 터전처럼, 고요하고 기름진 고산 평야가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오래 머물다 가는 넓은 땅, 시야가 트이는 맑은 하늘, 계절의 숨결이 천천히 스며드는 그 평야의 한 산자락에 우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삶의 터를 내렸다. 이 땅의 오래된 시간 속에 살며시 끼어든 것처럼."  (p.5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산들무지개'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을 이따금 훔쳐보곤 한다. 지금은 고산 마을을 떠나 카스테욘 근교의 한 목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꼬맹이였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제법 숙녀 티가 나지만, 고산 마을에서 깃든 순수함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는 듯해서 별것도 아닌 그녀 가족의 일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수십 년 도시 생활에 찌든, 한 명의 도시내기가 보내는 '순수'에로의 열망 또는 익숙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디디는 '순수'로의 착지가 아닐까 싶다.


"계절이 내어 주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비움'과 '채움'의 태도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면, 열매와 잎을 하나씩 내려놓는 추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계절은 그렇게 비우고 채우며 다시 이어집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연은 비우고 채우는 순환을 합니다. 모든 게 풍성할 것 같은 열대에서도 나무는 잎갈이를 하고 익은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추어 비축해야 할 때가 있고, 비축된 걸 다시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p.258)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우리는 동시에 2026년의 6월 한 달을 지우고 있다. 서로가 별것도 아닌 일로 아웅다웅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왜 나는 매사에 초연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나의 삶을 이렇게 빠르게 지워나가다 보면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쓰던 모든 것들이 그저 헛되고 헛된 것으로 인식할 날이 곧 오고야 말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하는가.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10년 이상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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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 - 일터를 잃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염재현 지음 / 은빛물결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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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평범한 진리가 우리들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렇게 믿는 이들 중 다수는 주변의 다른 이들은 계획하지도 않았던 여러 행운들이 덤으로 마구 쏟아지는 듯한데 유독 자신은 단 하나 계획한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믿음을 갖는 이들이 단지 비상식적인 몇몇 사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것인 양 포장하면서 짐짓 슬픔을 과장하고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슬픔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알고 있었고, 해고를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전에는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혹시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9월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오래 근무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해고 통보였다.  그것도 계약 만료 하루 전에."  (p.14~p.15)


<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을 쓴 염재현 작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은행에 근무하던 저자가 은행을 나와 계약직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40세의 가장이었던 그가 1년 4개월이라는 긴 실직 기간을 통과하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 책은 삶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을 잃은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고, 일각이 여삼추였을 터이다.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린 뒤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화면에 '잔액 부족'이라는 경고 문구가 떴다. 다시 확인해 보니 통장에 남은 돈은 만 원뿐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통장 잔액이 이렇게까지 바닥난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p.106)


나도 주변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삶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실직과 같은 불행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까닭은 대개 그들의 조급함에 있다. 불행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일들을 벌인다는 점이다. 장기간 취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 자영업에 눈을 돌리는 게 그 대표적인 일이다. 경험도 없고, 자본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낯선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곳저곳 헤매면서 돌아다닐 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먼저 다른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서 상황을 살피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1년 4개월의 실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멈춤'의 시간이 있었던 까닭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종종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한다. 누군가는 실업급여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니 구직을 늦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실직을 겪어 본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여유 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시간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을 고르게 해주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p.216)


낮에 점심을 먹고 아파트 인근에 있는 공원을 잠시 거닐었다.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주말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에도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이 더러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쉽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급한 일일수록 여유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둘러 일을 처리할 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벌써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는 여전히 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쨍한 하늘만 이어지고 있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장마도 잊은 채 마냥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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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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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엮어 판타지 소설로 쓴 작품은 그 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작품 대부분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게 끝이 나 버리는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설 속에서 우리의 미련이나 아쉬움을 죽음 이후로 조금 더 연장하거나 확장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게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부르는 소리가 비껴간다'고 썼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칼로 무 자르듯 죽음과 함께 명확히 나뉘는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우리는 동화와 같은 판타지를 통해 슬쩍 넘나들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번복하고 싶은 간절한 꿈일 테니까 말이다.


"고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시절로 돌아가서 1년간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인의 혼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안, 현재의 육체는 이곳 BCD 카페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인에게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는 BCD 카페의 직원입니다."  (p.21)


봄비눈 작가의 소설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역시 그와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백여름은 철학과 교수이다.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 여름은 1년 사귄 예비 배우자와 만나 웨딩드레스를 함께 고르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여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깨어난 곳은 BCD 카페, 저승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여름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려 보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절을 선택하게 된다. 여름은 21살에 만났던 첫사랑 유현을 떠올렸고, 안유현과 보냈던 그 시간이 그녀의 짧았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던 첫사랑의 순간을 선택하는 여름.


"그의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딘 지 네 달, 남자 친구와 헤어졌지만 바로 연락할 순 없었다. 차갑게 밀어냈으면서 그에게 다시 손내밀기가 두려웠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날 맞이해 줄까. 아님, 내가 그랬듯 차가운 손짓으로 날 밀어낼까. 선뜻 연락하기가 두려워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렸다. 우연히 마주치면,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120)


유현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여름의 두 번째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여름은 1년이라는 한시적 삶이지만 좀 더 잘해 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게 예상하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은 D-3, D-2, D-1, D day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여름의 첫 번째 삶과는 다르게 마음에도 없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유현을 선택한 여름의 간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이어진다. 마냥 풋풋하고 아름다워야 할 여름의 첫사랑은 1년이라는 시간의 제약 탓에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이 감싼다.


"내일의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까.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몸에 밴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9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어쩌면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p.352)


현실의 사랑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할수록 애틋함은 배가 되고, 간절함으로 인한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장벽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랑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열정도 높아지고, 두 사람의 결합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장벽인 '죽음'은 소설을 통해 종종 소환되곤 한다. 현실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장벽마저 뛰어넘고 싶은 것이다. 그 판타지를 우리는 소설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에 우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렇게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 절절한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애써 태연한 척 눈물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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