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시대 - 미래 화폐의 승자가 만들어낼 거대한 부의 물결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으로부터 3년 반쯤 전, 그러니까 2021년 9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올린 경험이 있다. 로또복권은 사지도 않지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여담이지만 내가 내 돈을 내고 로또복권을 샀던 건 지금껏 살면서 두세 번쯤 된다. 처음 로또복권을 샀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로또복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창기의 어느 날 은행(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주택은행)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동기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서 거금(?) 1만 원을 투자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한 게임당 가격이 2,000원이었고, 복권 담당이었던 친구는 반 강제적으로 1만 원의 복권 구입을 종용했었다. 그 후에 두어 번 샀던 것은 주로 회식이 파한 자리에서 삼삼오오 편의점에 들러 서로의 행운을 점쳐보기 위한 하나의 재미 혹은 놀이 차원에서였다.


복권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샛길로 빠졌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2021년 당시 나는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많지 않은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귀가 얇은 사람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코로나 시기에 주식에 투자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나는 그 돈의 일부를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게 일평균 거래금액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일평균 거래액이 주식시장의 거래액을 초과하였다는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 돈은 역시 돈이 모이는 곳에서 벌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이나 단순한 인간이다. 투자라는 게 사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 일인데...


나는 그렇게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투자금 전액을 통장으로 이체했고, 묘하게도 내가 암호화폐에서 손을 뗀 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도 연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후 암호화폐는 나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적어도 2024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트럼프의 재선 이후 1억 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야말로 쳐다볼 수 없는 넘사벽의 투자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경제 스토리텔러이자 비트코인 투자자이기도 한 김창익이 쓴 <비트코인의 시대>를 읽어보자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짐작했겠지만 투자는 과거 데이터와 미래 전망에 대한 함수다. 2025년 초 비트코인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비트코인이 큰 폭으로 올랐고, 이 같은 추세가 적어도 당분간 유사하게 반복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p.27)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테지만 책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암호화폐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화폐의 본질을 파헤치고, 비트코인의 달러 대체 가능성과 비트코인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변화 및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트코인 현상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트코인이 직면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너지 소비 문제, 확장성 문제, 규제 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의 영웅 서사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비트코인은 페트로달러라는 구체제의 모순에서 태동했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와 비트코인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능케 한 이유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몰락시킨 페트로달러 체제, 즉 세계화의 종식을 선언하며 미국인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p.143)


책의 목차를 읽어 보면 대략적인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1장 '비트코인,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되다', 2장 '비트코인은 오를 수밖에 없다', 3장 '트럼프는 왜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었나', 4장 '비트코인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5장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6장 '비트코인의 시대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점에서 왜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 즉 이 시대를 왜 비트코인 시대로 명명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국면이 지나면 비트코인 투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인플레이션 헤징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 관점에서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개미들의 영역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이때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p.396 '에필로그' 중에서)


계엄령 이후 대통령의 파면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선 국면에 있는 우리나라는 모든 게 불안정한 시기이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국에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 경제는 극도의 혼란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투기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변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전에는 비트코인이라면 말도 꺼내기 전에 손사래부터 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투자 방법과 전망을 묻는 걸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익의 저서 <비트코인의 시대>는 비트코인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 소담 클래식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작은 재독, 삼독, 나아가 아무리 읽는 횟수를 늘려가더라도 설렘의 강도가 여전히 줄지 않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줄기는커녕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 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추억에 더하여 새로운 느낌과 기대감으로 인해 설렘의 강도가 예전에 비해 절반쯤 높아지는 책이라면 명작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서는 그렇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 듯하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러한데 네 번이나 다섯 번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제 읽었던 책의 저자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은 나로서는 나의 기억력을 도통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개츠비', 내가 확실하게 경멸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개츠비는 내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만약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련의 남다른 행위와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정말 눈부신 면이, 그러니까 인생의 성공을 감지하는 뛰어난 감수성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수만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정교한 기계처럼 말이다."  (p.11)


당연한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되는 등장인물은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달라지곤 한다. 주인공인 개츠비였다가, 데이지의 남편인 톰이었다가, 이야기의 화자인 닉이었다가... 그러나 주목하는 인물이 달라짐에 따라 책을 읽은 느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벌어진다. 개츠비를 주목했을 때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란 말인가' 하는 느낌과 함께 삶에 대한 열정이 뭉글뭉글 피어나지만, 이번처럼 닉에게 주목했을 때는 모든 게 허망하고 덧없다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획득하고 경험하는 모든 게 손안에 거머쥔 가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쉽게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살면서 맺게 되는 멀고도 가까운 인간관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개츠비가 한 말을 통해, 지독히 감상적인 그의 생각을 통해,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주 옛날,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리듬, 잊힌 말의 단편을...... 일순 내 입에서 한마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서 내 입술이 벙어리처럼 벌어졌다. 마치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결국 말을 하지 못했으며, 거의 생각날 뻔했던 것은 영원히 전달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p.181)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까닭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대강의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젊은 시절, 순수한 열정만으로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데이지와 개츠비. 결국 개츠비는 전쟁터로 나가고 데이지는 톰 부캐넌이라는 부자와 결혼한다. 한편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닉은 증권업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 교외의 웨스트 에그에 있는 작은 집을 빌려 생활하는데, 그것이 하필 부자가 된 개츠비의 대저택 옆집이었다. 데이지와 헤어지게 된 것이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개츠비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결국 부자가 되었고, 데이지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자신과 데이지 사이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뉴욕 시내로 외출을 했던 데이지가 자신이 운전하던 차로 교통사고를 내고, 결국 그 사고로 톰의 정부였던 윌슨 부인이 사망하게 된다. 개츠비는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지만 데이지는 톰과 공모하여 개츠비가 사고를 낸 것으로 몰고 가는데...


"그 섬의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집으로 향하는 길가 양쪽에 늘어서 있던 나무들은 한때 모든 인간의 꿈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지막 꿈에 탐닉하여 소곤거렸을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황홀한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의 존재 앞에 넋을 잃고 숨을 죽였을 것이며, 역사상 마지막으로 자신의 경이로운 능력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마주 대한 채, 이해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어떤 심미적인 명상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으리라."  (p.290~p.291)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어쩌면 숨 죽인 채 바보처럼 살았던, 자신의 아내 머틀이 누군가(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직 일만 하며 살았던, 그러다 결국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자 했던, 그러나 끝내 그것마저 이루지 못했던 자동차 정비공 조지 윌슨을 주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선하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망연자실 넋을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조금쯤 분개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이 책을 다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할 때는 뭔가 집중하여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 혹은 하나의 문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생각할 거리가 필요한 셈이다.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매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각을 단순화하고 잡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하나의 주제나 문장에 몰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달아나려는 생각을 붙잡기 위해 스님에게는 화두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평소 맘에 담았던 어느 철학자의 경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자의 저서 한 권을 통째로 이해한다는 건 나와 같은 지능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니 기회가 될 때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겨우겨우 이해하는 게 그나마 앞으로의 삶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053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당신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 행복과 상관 있는 것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It isn't what you have, or who you are, or where you are, or what you are doing that makes you happy or unhappy. It is what you think about."  (p.35)


인문학자이자 지식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현 작가의 저서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은 이따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한 책이다. 자신의 삶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강물에 떠밀려 흘러가듯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작정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때 책의 어딘가에서 자신에게 맞는 문장을 골라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선별한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철학자 몇몇을 각각의 장에 배치하여 우리의 삶 전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고민거리를 그때그때마다 적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제1장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제2장 '사유하는 인간에 대하여', 제3장 '대문호들이 던지는 철학적 교훈', 제4장 '생각의 폭발을 이끈 동양의 철학자들'로 구성된 이 책은 세네카와 같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에서부터 프로이트와 같은 비교적 우리 세대와 가까운 철학자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괴테나 칼릴지브란과 같은 대문호와 루쉰이나 법정스님과 같은 동양의 현자들의 생각도 담고 있다. 이처럼 시대를 아우르고 동서양을 섞음으로써 우리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고 있다.


"379 젊은 영혼들이 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그들은 벌써 거칠어져 있거나, 거칠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 피 흘리면서 아픔을 견뎌내는 영혼을 사랑한다. 내가 인간 세상에 있음을,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年輕的靈魂在我面前延立着. 他們已經從粗糙尖銳起來. 可是我, 他們洗血, 痛苦的靈魂. 我在人間, 人間, 住在感覺."  (p.182)


요즘 산에는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화두 삼아 깊은 사색에 빠져들다 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정상까지의 거리도 힘든 줄 모르고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규칙적으로 들리는 멧비둘기의 울음에 박자를 맞춰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산의 정상, 발아래 펼쳐지는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 줄기 바람에 땀을 식히노라면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절로 들 것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비슷한 파장의 사람들이 잘 모이듯, 깊은 통찰력을 지닌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본인부터 먼저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철학자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p.231 '마치며' 중에서)


오늘은 어버이날. 두 분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난 까닭에 본의 아니게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나로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가도 툭툭 생각이 끊기고, 그리움인지, 죄스러움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감정에 때론 목이 메고, 하염없는 생각에 넋을 놓는 일도 다반사.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피곤에 지쳐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벽 산길을 걷고 있을 테다. 삶은, 생명을 유지하는 자의 일상은 그렇게 또 이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과학 분야, 그것도 정치 분야의 도서에 대한 리뷰는 언제나 그 시작이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의 도서에 대한 리뷰는 늘 쉬운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렵기는 매일반이지만 상대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기고자 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었을 때는 결국 리뷰를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쓰지 못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2021년 1월, 선거에 패배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시작으로 촉발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이로 인한 미국 민주주의 급격한 후퇴를 바라보면서 공고하게만 보였던 민주주의 체제의 약점과 허약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그와 같은 의견 제시에 대한 논거로 미국의 헌법과 선거 제도를 살피고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 민주주의를 추종하는 국가에서 극단적 소수를 가진 소수가 어떻게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의 배후로 민주주의 원리주의자들, 즉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낡은 민주주의 체제를 들고 있다.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로운 권력 이양과 정당한 경쟁을 유도하고, 같은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극단주의 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책이 과연 미국 정치인이나 국민들을 위해 쓰인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쓰인 책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질서 정연한 소수의 지배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인들의 양태를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는 때로 정치 싸움에서 다수를 좌절하게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일반적인 협상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가 '계속해서' 거대 다수를 이기거나 정책을 강요하는 것, 나아가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위를 굳건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곳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p.247)


그러나 책의 원제인 [소수에 의한 폭정(Tyranny of the Minority)]은 장구한 역사에 있어 일시적인 현상일 뿐 항구적이거나 영원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물체의 열적 상태 또는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즉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는 시스템의 무질서도가 크고, 에너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는 시스템이 더 질서 정연하고, 에너지가 특정한 형태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민주주의 발전에 등치 시키면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제도의 무질서도가 크고, 권력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민주주의 발전 단계가 낮으면 제도가 더 질서 정연하고, 권력이 특정한 형태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연계에서 엔트로피는 결코 감소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제도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책에서 저자들은 정치적 소수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도입되는 반다수결주의적 제도들에 숨겨진 소수의 독재에 대한 위험성을 끝없이 제기한다. "민주주의는 몇몇 반다수결주의 제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지나치게 만연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목처럼 극단적 소수에 의한 지배를 꿈꾸는 사람들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극단적으로는 하나의 의견밖에 없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지향한다. 그러자면 언론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권이 끝없이 언론 통제에 공을 들였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일반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역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날 나는 외출을 반납한 대신 고요함을 선물로 받는다. 가물었던 대지에 비가 내렸고, 하늘은 종일 어두웠다. 아파트 화단의 마가목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른 키보다 조금 더 자란 마가목은 우듬지에 흰 꽃을 소복소복 매달고, 무늬가 특별한 잎을 과하지 않게 피웠다. 식물의 성장은 이따금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잎보다 먼저 붉은색 꽃을 화려하게 피웠던 박태기나무도 시나브로 꽃은 사라지고 잎만 무성해졌다. 화단은 이제 화려한 철쭉이 그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한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마도 철쭉과 영산홍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화단의 여러 식물들이 하염없이 젖어드는 모습을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베란다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도 어른어른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었다.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는 걸 알았는지 몇 권의 책이 선물처럼 날아들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얼마 전에 쓴 리뷰에 대한 보상으로 표지가 아름다운 양장본 도서를 보내주었다.




그렇다.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이다. 뒤적뒤적 몇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아도 폴 오스터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다.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위대한 개츠비> 출간 100주년에 맞춰 나온 책이다. 유혜경 역자의 번역으로 소담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었던 게 언제였는지...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고 리뷰를 썼던 게 언제였는지... 그 모든 게 아득하기만 하다.










윤두열 작가의 신작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를 읽고 리뷰를 올린 게 엊그제인데 작가님이 나의 리뷰를 읽고 댓글과 함께 선물로 책 한 권을 보내셨다. "우연은 인연으로. 마음을 담아."라는 문구와 함께 친필 사인이 책의 앞장에 담겼다.








나는 갑자기 날아든 책 선물로 책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비는 그쳤지만 저녁 어스름과 함께 고요가 내려앉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