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크리가 북상한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덥습니다. 아침나절에 책을 조금 읽고, 하릴없이 잠깐 졸고, 무료해서 대학 시절의 노트를 잠깐 뒤적였습니다. 미친 짓인 줄 잘 알면서도 그때 쓴 낙서 한 줄을 올려봅니다. 오글거리는 내용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잠시 더위도 잊으실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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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와 비 걷힌 후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다르다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침묵을 깨는 균일성의 차이라고 말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 주변을 서성였고 어쩌면 그 발걸음은 빗소리처럼 균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정녕 느닷없음에 다르지 않나 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렵니다.

 

사랑의 시작과 그 끝을 어림하는 것만큼 미욱한 일이 또 있을라구요. 우리가 염원했던 평온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속일 만큼 간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 채 흐르는 시간만 응시했습니다. 그때 당신의 시선이 바람결처럼 흔들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시선도 그렇게 흔들렸겠지요. 서로의 불안을 알면서도 우리는 끝내 마음의 균열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당신과 나는 오직 자신의 품 안에 갈무리하려 애쓸 뿐이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이별의 징후들이 하나 둘 열꽃처럼 피어나던 무렵이었나 봅니다. 나는 당신의 옹졸함을 담을 수 없는 언어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재어보지는 않았어도 우리의 가슴은 딱 그 정도의 크기였다는 것을 지금은 알겠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지나온 길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까닭이지요. 기늠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 지난 후에는 언제나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합니다. 삶의 부조리는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생각했던 마음은 어느새 '너도 잘 살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계절이 바뀐 까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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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조금 더 이어지지만 옮기기가 쑥스러워서 멈췄습니다. 이렇게 옮기고 보니 대학 시절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만 한 것 같네요. 결코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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