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새해를 시작하는 첫 달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흘러가곤 합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벌써 1월의 끝자락에 와 있으니 말입니다. 개인의 일상도 그렇지만 세계의 변화도 예전과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국으로 돌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건 역시 미국이라 하겠습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힘과 무력을 통한 세계의 제패를 달성하려는 듯 피아 구분 없이,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돈 앞에선 의리도, 양심도, 수치심도, 인간애도, 사랑이나 자비도,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그 어떤 형이상학적 목표도 힘을 잃게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정치가와 그를 추종하는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 정치에서 힘을 통한 지배는 사실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 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을 견제하고 약화시키는 역할은 주로 종교와 인간 개개인의 선한 영향력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야만과 이성이 공존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몇몇 종교가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정치의 시녀를 자처하면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타락한 종교인에 의해 야만의 정치는 더욱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지금처럼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의리를 중시하고 신념이 투철했으며, 자신의 양심에 빗대어 말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알았습니다. 정치에도 은유와 낭만이 존재했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크게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던 건 역시 대한민국의 종교였습니다. 침례교의 목사를 자처하는 김 모 목사와 순복음교회의 이 모 목사, 광화문 집회를 이끌었던 전 모 목사, 최근 들어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손 모 목사 등 정치에 기생하는 정치버러지 같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소위 이단이나 사이비로 지칭되던 통일교와 신천지 역시 정치와 결탁하여 세를 확장하고자 했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자칫 야만으로 흐를지도 모르는 정치를 정화하고 견제하지는 못할망정 앞장서서 야만을 부추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와 결탁했던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의 몇몇 지도자들 역시 호시탐탐 정치에 앞장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종교는 단지 허울이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이해찬 전 총리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그였지만 그도 역시 운명의 신이 내린 결정을 피해 갈 수는 없었던 듯합니다. 그는 비록 70대 초반의 조금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행복한 정치인생을 살았다고 자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은 힘들었겠지만 낭만과 의리가 살아 있던 시절에, 종교가 야만의 정치를 앞장서서 부추기지 않던 시절에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종교인들은 우리 정치를 야만의 시대로 이끌어 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야만의 정치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이제 더 이상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우리는 개개인의 선량한 양심에 기대어 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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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과의 어색한 동거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보니 쉽게 적응하고 가까워지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과거 우리가 어렵고 못 살던 시절 같으면 몸에 걸친 입성도 허술하고, 지금의 추위보다 훨씬 매섭기도 해서 겨울 추위가 아무리 혹독해도 그러려니 하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한겨울에도 도통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터라 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에도 지레 겁부터 나게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추위에 대한 엄살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는 뜻이지요. 강추위도 없고, 반짝하는 추위도 길게 이어지는 법이 없다 보니 추위에 대한 내성이 사라진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오늘은 지난 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른바 V0로 일컬어지던 김건희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재판장이었던 우 부장판사는 퇴임 후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자신이 소유한 법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김건희의 무죄 선고를 내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번 판결로 인하여 그가 판사직에서 물러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김건희 일가의 집사 변호사로 영전할 가능성이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을 듯합니다. 국민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눈 한 번 질끈 감고 양심과 논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요.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퇴직 후에 일용직을 해야 하나 아니면 어느 회사 수위 자리를 알아와야 하나 그도 저도 아니면 아파트 경비라도 부탁해야 하나 등 별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게 다반사인데 범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어느 사모님을 무죄로 사하여줌으로써 평생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요.


특검의 15년 구형에 대하여 1년 8개월을 선고한 것을 보면 재판장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불공정한 판결이 아니었느냐고 말이지요. 돌이켜보면 요양원을 운영하던 그의 오빠 역시 수십억 원을 횡령하였지만 불구속 송치되었고, 요양원 운영에 깊이 관여하였고 동종 전과도 있는 그녀의 엄마는 검찰에 숫제 송치조차 되지 않은 걸 감안할 때 김건희에 대해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정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일반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고 결과이겠지만 말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한 것'이라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법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였던 김건희에 대해 사법부는 한없이 초라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녀에게 한껏 낮은 자세로 머리를 조아렸던 것입니다. 일개 공무원 신분인 그가 퇴임 후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구걸하기 위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한낮에도 바람이 몹시 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화끈화끈 열이 오릅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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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불던 칼바람의 기세가 오늘 낮부터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한 한파가 길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몇몇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주가지수 5000을 가볍게 돌파하였다는 소식과 내란범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마냥 느슨하게만 보여 답답했는데, 재판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국민과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눈높이에서 내란범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재판 결과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검찰이나 사법부는 재임 기간 중에 받을 수 있는 국민의 신망이나 존경보다는 퇴임 후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사적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나 재벌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을 감아왔고, 이를 통하여 소위 엘리트 그룹의 부정부패는 공고히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판사나 검사 역시 퇴임 후에는 그들 그룹에 소속되어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 인맥과 교류 속에 대대손손 권력과 부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의 편에 선다는 건 어지간한 결단이 아니고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이인자였던 한 전 총리만 보더라도 온갖 비리에 대한 설이 무성했지만 단 한 번도 처벌되지 않고 지금껏 호의호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역시 엘리트 그룹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던 까닭입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을 담당했던 이진관 판사 역시 온갖 유혹과 회유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도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한 전 총리가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여 호가호위를 꿈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법부의 정의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질끈 눈을 감은 채 소수 엘리트 그룹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단 한 번 안면을 몰수한다면 자신은 물론 자손 대대로 탄탄대로를 걷게 될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친다는 게 어디 쉽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진관 판사는 정의와 이를 열망하는 국민 다수의 편에 섬으로써 퇴락하는 사법부의 신뢰를 다시 살렸음은 물론 국민의 염원을 일부 해소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내란에 가담했던 모든 정황을 밝히고 그들 모두에 대한 처벌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답답했던 국민의 마음이 조금쯤 풀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만 같았던 2026년 1월도 벌써 마지막 한 주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아주 작은 희망을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주일의 혹독한 칼바람 속에서 몇몇 따뜻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용기는 우연히 발견된 작은 희망의 결합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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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조금 내렸습니다. 가볍고 건조한 눈이었습니다. 아파트 인근의 차도와 인도는 비교적 따뜻했는지 내리자마자 금세 녹아 비가 내린 듯 젖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내리는 눈의 방향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등산로 초입의 계단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고, 계단을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자국이 지문처럼 남았습니다. 등산로와 등산로 주변의 낙엽 더미에도 눈이 쌓여 어둠에 지친 숲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내몰린 차량들이 새벽부터 도로를 질주하고,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어느 노동자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지 만 12년이 되었건만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담배 연기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삶에 나른한 권태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쩌면 멀리하던 담배에 불을 붙여 진한 연기를 가슴 한가득 빨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정기현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걷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익숙한 골목골목을 무작정 걷는 느낌입니다. 도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에 익숙해진 도시인이 자신의 보조에 맞춰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낡은 현수막에 실린 어느 정치인의 구호나 전봇대에 나붙은 과외모집 광고 등 우리는 도시 곳곳에 남은 여러 문장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새미는 보리밭 쪽으로 걸었다. 보리밭 반대쪽 산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길도 아빠 차 타고 매번 지나던 길이라 영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걸어본 일이 없어 새미는 할머니와 매일 걷던 보리밭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할머니와 걸을 때에는 보리밭 길 정도야 선산으로 가기 위한 통로라는 것밖에 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혼자 걸으려니 그 길까지도 지나치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p.120)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때로는 시간의 경과마저 잊게 합니다.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였을 때에는 시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후라는 걸 우리는 너무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익숙했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말마다 내가 사는 도시 전체를 다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자주 지나치던 공원이나 천변을 느린 속도로 걸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아주 느린 속도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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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나아진 감이 있습니다만 요 며칠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밖에 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육체적으로 오던 무력감이 정신적인 우울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게 됩니다. 며칠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도 이럴진대 개인의 인생에서 기나긴 좌절이나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진심으로 바라던 게 있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최악의 경우 단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슬픔을 조금쯤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기본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씀으로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의 효능은 본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름 결심하였던 게 있었습니다. 내 블로그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 능력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한 이웃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와 이웃을 맺었던 분이 한동안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지도, 나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 보이면 이웃을 취소하곤 합니다. 이웃 한 분이 취소됨으로써 나에게 이웃을 신청하였던 다른 분(말하자면 이웃 대기자)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친구처럼 지내는 인터넷 서점의 개인 블로그는 그렇지 않고, 소위 sns라고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그렇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가급적이면 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보려 애쓰고 있고, 그들이 현재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보니 주말 휴일이 아니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되돌아볼 잠시의 짬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씩이라도 나의 글을 읽거나 나의 블로그에 입장하여 잠시 머무르는 분이라면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주 가끔씩 하늘을 보는 것처럼 나의 블로그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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