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의 바깥공기를 체크하는 일은 휴일 일정에서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이다. 날아갈 듯 가벼운 꼬마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뽀송뽀송 마른 보도 위를 사뿟사뿟 걷는 모습만 보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가볍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서둘러 아침 산책을 나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곤 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스팔트가 온통 축축한 물기로 젖어 있고, 비가 쏟아질 듯 아침부터 하늘이 끄물끄물하는 날에는 뭉그적뭉그적 게으름을 피우게 마련이다. 세수도 한껏 미룬 채 뒹굴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런 날에는 이상하게도 쇼팽의 녹턴에 마음이 끌린다. 셰레시 레죄의 '글루미 선데이'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나 대견하다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은 어제 내린 비와 진눈깨비로 도로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영하의 날씨라고는 해도 추위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 주위에 게으름의 더께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대만 작가 천쉐가 쓴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고 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천쉐'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대만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라는데 말이다.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써 내려간 듯한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잘 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계속 쓰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꾸무럭거리거나 펜을 놓지 말자. 오로지 글로 써낸 원고만이 나의 것이다. 끊임없이 써나가야만 글쓰기가 우리 삶의 핵심이 된다. 계속해서 쓸 능력이 있어야만 글쓰기가 우리의 전문이 된다. 쉬지 않고 써야만 우리는 비로소 결승점에 이를 수 있다."  (p.35)


50대 중반의 작가는 글쓰기에 진심인 듯했다. 그 열정과 치열함이 부러웠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머리로 생각했던 글의 내용과 막상 글로 써서 완성했을 때의 글의 내용이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사실에 절망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의도했던 주제나 글의 내용은 전혀 이게 아닌데...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 몰래 와서 나의 글을 대신 썼던 것도 아닌데 어쩜 이럴 수가...' 나의 생각과 글 사이에 존재하는 크나큰 차이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탓일 테지만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게 근본 원인인 듯하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니 노력할 이유도 찾기 어렵지만 말이다.


여린 겨울 햇살이 자맥질하듯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금세 사라지곤 한다. 내게 허용된 게으름은 이 정도인가 보다. 오후에 약속이 한 건 있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그마저도 취소해야 할지 모른다. 그건 예의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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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눈이 내려 대한민국은 이제 온통 눈 세상이 되었습니다. 건듯 불어오는 바람도 눈의 냉기를 한껏 머금은 듯 조금의 온기마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량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더부룩한 속을 달래느라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보이고, 햇볕을 쪼이며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모습도 보입니다. 12월의 첫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렇듯 냉랭한 한기 속에 적잖이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하던 편안함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나는 그와 같은 편안함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련하다는 세평을 꽤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까닭에 장을 보기 위해 직접 마트를 방문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것을 구매할 때에도 편의점이나 인근의 가게를 방문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나는 어떤 배달앱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을 때에는 가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찾으러 가곤 합니다. 게다가 나는 남들 다 한다는 '페이'도 이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카드로 결제를 하곤 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전자책은 이용하지 않고 오직 종이책만 고집합니다.


이런 내 모습이 직장 동료들에게는 구시대적 유물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나의 루틴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껏 나의 개인정보가 단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었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거 내가 이용하던 인터파크에서도, 최근에는 SK텔레콤에서도 나의 개인 정보는 무참히 유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내가 이용하던 인터넷 사이트에서 두어 번의 정보 유출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어차피 개인정보가 유출될 거면 편안함을 추구하고 유출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나에게 주장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편안함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아날로그적 경험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실수와 그로 인해 우리가 지불하는 많은 불편과 시간낭비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안함과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효율적으로 흘러가게 될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이따금 깨어나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량생산을 담당하는 자동화된 공장과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나의 삶도, 당신의 삶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단일한 삶이라면 우리는 굳이 개별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요. 당신의 삶도, 나의 삶도 이제껏 없었던 고유한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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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꼼쥐 2025-12-07 1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내려다보면 아이들 놀이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휴일 한낮의 느긋함을 확인하기 위해 놀이터의 풍경을 몰래 훔쳐보곤 한다. 쇠양배양 돌아치는 아이들의 잰 몸놀림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시간은 급할 것 없다는 듯 느릿느릿 흘러간다. 꾸물꾸물 늦장을 부리는 시간 속을 쉼 없이 움직이는 아이들. 극과 극의 대비가 휴일 한낮의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군에 있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응시하는 부모의 시선이 되었다가 이따금 거침없이 뛰노는 아이의 시선이 되기도 하면서 단지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휴일의 시간은 그렇게 나릿나릿 흘러간다.


12월의 첫날.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비장한 표정이다. 하필이면 첫날이 월요일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어제보다 기온이 떨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는 비상계엄 1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켜보고 있을 때의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흐르지만 대충 뭉뚱그려 따져보는 시간은 너무너무 빨리 흐른다. 벌써 1년이라니... 뜬금없는 비상계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 그리고 암담하게 흘러가던 시간들. 내란에 대한 죄과가 낱낱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처벌이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 처참하고 암담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있다.


영화감독 윤가은의 산문집 <호호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나는 별자리 운세에 꽤 진지하다. 꿈은 너무 멀고 사랑은 계속 아픈데, 나는 내 마음조차 모르겠어 끝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에 별자리를 만났다. 친한 선배의 소개로 점성술사 수전 밀러의 별점을 다달이 번역해 올려주는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전에 경험한 적 없던 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크고 따뜻한 무언가가 나와 내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절대 겁을 주거나 경고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다정하게 위로하고 부드럽게 격려할 뿐이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너와 비슷한 주기로 넘어지고 일어나는 다른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그들과 함께 가는 거니까 너무 외로워 말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것도 같았다."  (p.165)


우리는 비록 별자리는 서로 다르지만 '비상계엄'이라는 엄청나게 높은 산을 함께 넘은 동지이자 동시대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시민으로서 '비상계엄 1주기'에 맞춰 힘내라는 응원의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워진 날씨에 우리는 갑자기 서로의 건강이 문득 걱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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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긴 슬픔이 가슴을 헤집어놓고 사라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인간이란 본디 기쁨보다는 슬픔에 더 익숙한 까닭에 슬픔이 찾아올 때면 오히려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슬픔이 지나간 뒤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만사에 의욕이 사라지곤 합니다. 한번 그렇게 떨어진 의욕이 다시 보통 사람의 그것으로 회복하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열고 슬픔이 무시로 드나들 수 없도록 가슴을 꽁꽁 걸어 잠그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디 현관문을 잠그듯 필요할 때마다 그렇게 잠가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문지기를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요.


오늘 아침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습니다. 나는 탁하고 텁텁한 미세먼지의 온기에 기대어 비교적 수월한 산행을 했습니다. 어제 내렸던 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워낙 적은 양의 비가 내렸던 탓일 테지요. 다만 어제 불던 바람은 잦아들어 어둠에 싸인 숲은 그저 고요했습니다. 나는 사실 요 며칠 뉴스를 뒤덮었던 내란 재판 변호사들의 난동과 대한민국의 종교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난동을 부렸던 변호사들 역시 종교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는 개신교는 자신들의 돈에 대한 탐욕을 교묘한 언어로 숨겨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거나 자유시장경제 등의 언어를 교묘하게 섞어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그와 같은 언어 뒤에 숨겨왔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전두환과 같은 살인자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목사도 있고, 피고인 김건희와 함께 사찰을 방문하여 절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종교는 뒷전이고 오직 자신의 권력과 돈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실 나는 대한민국 개신교의 발전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종교를 단순히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용도로 사용해 왔다는 데 화가 날 뿐입니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왜 갑자기?'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윤석열 정권을 지나오면서 그들의 행태는 선량한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난동을 부렸던 변호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선진국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관이 같은 놈을 데리고 있으니까 우리가 선진국이 못 되는 거죠. 저 같잖은 놈이, 안경 쓴 키 작은 남자라고 써 놓고서 자기 얘기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라는 말 속에는 자신을 감치한 판사를 조롱하는 것과 더불어 그의 뇌리에 뿌리 깊이 박힌 일제에 대한 찬양과 동경의, 얼룩진 역사 인식이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폴란드를 침공했던 독일 나치에 대해 오직 자신의 돈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대중이 용납할 수 없는 언어로 나치를 찬양하는 폴란드 유태인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반역자인 동시에 인류 보편적 인권에 반하는 언어를 내뱉은 자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 역시 종교를 방패막이 삼아 장애인이나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증오를 부추깁니다.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그들이 앞장서서 인권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태는 박근혜 정권을 넘어서면서 일부 불교 종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말하자면 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돈에 눈이 먼 그들이 대중에게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합니다.


종교를 방패로 삼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의 언어가 주로 욕설과 저주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진실한 종교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혐오와 차별, 그리고 증오의 언어로 어찌 신의 사랑이나 자비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사이비 종교인일 뿐입니다. 나는 비록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지만 그들처럼 인간에 대한 증오의 말을 쏟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신실한 종교인으로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서로 종교가 다를지라도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는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조국과 민족을 배신할 수 있고, 같은 민족을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그런 비열한 인간은 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적어도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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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개신교는 율리아누스 황제와 같은 이가 나와서 뭔가 싹다 정리를 해야할 거 같습니다~

꼼쥐 2025-11-28 13:53   좋아요 0 | URL
지금이야말로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인 게 아닌가 싶어요. 소위 목회자라는 놈들이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으니...쯧쯧.
 

'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증진하며, 소수 의견 개진의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심의의 효율성을 강화하여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구현하고자' 2012년 5월 2일에 개정된 국회법 조항이 있다.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사실 위반시 매우 엄격한 처벌이 가해지는 까닭에 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에 출마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국회선진화법' 저촉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은 물론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5년은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 5년은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을 벌벌 떨게 만드는 법이라고 해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 남편이 판사이거나, 현직 국민의힘 의원이거나, 내란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김건희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라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치다 기소가 되어도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데는 무려 6년이란 긴 시간이 소모되기도 하고, 여론에 등 떠밀려 재판이 열린다 한들 검찰의 구형과는 상관없이 벌금 400만 원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에 처해짐으로써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장의 하혜와 같은 배려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벌금 400만 원이 준비된 능력자라면 앞으로도 계속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그게 보기 싫다고? 그러면 당신도 판사 남편을 두거나 국민의힘 의원이 되면 된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되었었던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 지도부 전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500만 원 미만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에 처해짐으로써 다시 동물 국회로 회귀해도 된다는 법원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게 되었다. 법원을 나서는 피고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속내를 추측하자면, "너무 부당한 것 같다고? 지금 감히 하느님과 동격인 판사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얘기? 고귀하고 신성시하는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봐라. 이참에 본때를 톡톡히 보여줄 테니. 그리고 재판장과 가까운 사람은 너희와 같은 대중 나부랭이와 계급이 달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치는 놈들은 다 빨갱이고, 좌파야. 어딜 감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법원은, 말하자면 사법부는 법률로 정한 국회의 운영도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있다. 2025년 11월 20일의 판결을 통해 그것을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보여주었다. 사법부는 하느님과 동격이니 어느 누구건 대들지 말지어다. 대한민국 국회는 다시 동물 국회로의 회귀를 명한다. "땅, 땅,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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