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도둑비가 내렸는지 새벽 공기는 적당히 서늘했고, 메말라 풀석풀석 흙먼지만 일던 등산로도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부드러워졌다. 등산로 초입의 나무 계단을 오르자마자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취할 만큼 전해오고, 깊어진 솔향이 남았던 졸음을 말끔히 씻어내는 듯했다. 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이따금 들려오는 낮은 톤의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어두운 하늘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새벽 정적을 깨는 꿩의 새된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던 지난 주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겠다는 헛된 희망은 애시당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들과 함께 이천 호국원에 들러 부모님을 참배하고, 장인어른이 계시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들르기도 했다. 주말에 어버이날이 겹친 까닭인지 참배객은 생각보다 많았다. 장인어른이 떠나신 후 넓은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장모님을 뵙고 잠시 말벗이 되어 드린 게 고작인데 연휴는 금세 사라졌고, 일로 쌓인 피로를 풀기는커녕 장거리 운전으로 누적된 피로가 더해져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친구의 호출을 받고 나가 듣기도 싫은 정치 얘기를 두 시간 남짓 듣기도 했다.

 

서울의 모 사립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한때 보수 여당의 국회의원 연설문을 대필해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러 선거판을 경험한 베테랑 선거꾼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인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방 광역시의 구청장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고 했다. 나는 딱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의 말은 귓등으로 흘러가게 두었다. 단 하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들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 혹은 전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이념 지형을 진보와 보수 양쪽이 절반 대 절반으로 나뉜다고 보았을 때, 굳이 상대 쪽의 표를 가져오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열성 지지층을 위한 정책과 선거운동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지지자들을 통한 중도층의 포섭에 공을 들인다는 전략이었다. 많은 중도층을 포섭할 필요도 없이 선거에 이길 만큼의 표, 이를테면 0.7%의 중도층만 있어도 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까닭에 진보 세력은 국민으로 보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이러한 선거전략 때문인지 보수 여권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뻔뻔함'을 장착한 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다. 당선인은 지방선거 후보자를 대동한 채 선거운동에 앞장섰고, 청와대의 용산 이전과 대통령 관저의 외교부 공관 이전을 밀어붙이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의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거나 국회의장에 대한 성희롱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성상납 의혹을 받는 당대표도 별것 아니라는 듯 행동하고, 아무리 많은 흠결이 있는 장관 후보자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이면 철저히 옹호하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사가 있으면 항의 방문 및 협박이나 고소 고발도 불사하고, 무시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를테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해서는 상대도 하지 않는 것 등은 어쩌면 그들의 선거 전략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정치학 서적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진보 세력은 너무 순하거나 샌님처럼 조용한 사람들만 있는 듯하다. 물론 어떤 못된 짓도 묵인하고 찬양 일색의 기사를 써주는 언론이 있기 때문에 보수 여당의 정치인들이 뻔뻔함으로 무장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서양 정치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고 하면 동양에는 이종오의 <후흑학>이 있다고들 한다. 이를테면 이종오의 <후흑학>이 동양 정치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셈인데 사실 이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나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후흑학>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몇 년 전에 겨우 읽어보았던 터라 '후흑학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자신 있게 평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후흑'이라는 말은 낯이 두껍다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이 합쳐진 것으로 얼굴은 철면피처럼 두껍게, 마음은 음흉하게 하여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의 정치 처세술을 담은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군자는 그 자신이 늘 낯가죽이 두껍지 않을까 경계하고 속마음이 시꺼멓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얇은 것같이 위험한 게 없고 흰 것같이 위태로운 것이 없다. 이로 인해 군자는 반드시 뻔뻔하고 음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후'라고 하고 한 번 터지면 거리낌이 없는 것을 일컬어 '흑'이라 한다.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지극한 후흑의 단계에 이르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귀신도 무서워한다."

 

간첩 조작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공직 기강 비서관으로 앉히는 등 말도 안 되는 일련의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직자 모두가 그들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만 하면 조작을 해서라도 감옥에 보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리라. 밤새 도둑비가 내려 한결 깨끗해진 대기가 불결한 인간들의 탐욕과 아귀다툼으로 더럽혀지는 오늘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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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2-05-09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려워요 ㅜ

꼼쥐 2022-05-14 17:59   좋아요 0 | URL
5년이 너무나 긴 시간일 듯합니다.ㅜㅜ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인 <논어>는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 <논어>를 언급하는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물론 <논어>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가슴에 새길 만한 명문장이고 책으로서의 가치 역시 현대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명작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앞뒤가 꽉꽉 막힌 '꼰대'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용의 방대함으로 인해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논어>는 한 편 한 편이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가슴에 새길 명구들로 가득합니다. <논어> 제15장 위령공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其恕乎, 己所不慾 勿施於人(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해설: 자공이 공자께 질문하여 말씀드리기를 "평생 귀감으로 삼고 실천해야 할 말 한마디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마도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말이다."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자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인을 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장인이 자신의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하는 법이다. 한 나라에 살면서 어진 관리를 섬기며, 그 나라의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차기 정부를 책임질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뉴스에서 듣고 있노라면 어느 한 사람도 제대로 살아온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그들의 축재 과정도 그렇고, 자식을 돌보고 가정을 이끄는 과정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곧바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대통령 선거 내내 줄기차게 주장하던 공정과 상식은 바로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지껄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는 검찰의 조사도 없을 테고, 준엄한 법의 심판도 피해 갈 수 있을 테니 그들은 아마도 자신을 지켜줄 어진 관리(?)를 섬기며,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 온 모양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어진 사람들인 까닭에 천인공노할 그들의 불법행위를 보고도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고 차기 선거에서도 그들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까닭에 그들의 불법행위는 나날이 대범해질 듯합니다.


한 차례 봄비가 지나간 후 무덥던 날씨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자 근로자 날.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은 벌써부터 자신의 공약을 하나둘 폐기하고 있고, 느닷없는 정치 풍경에 다소 뜨악할지라도 우리는 이 봄을 의지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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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많이도 올랐다. 생각 없이 물건을 사다가도 영수증에 빼곡히 적힌 품목 하나하나의 물건값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바코드에 찍힌 가격을 그대로 더한 것이니 틀릴 까닭이 없겠지만 혹여라도 구매한 물건의 개수가 하나인데 둘로 계산된 것은 아닌지, 매대에서는 분명 가격 할인 이벤트 중이라는 문구를 보았는데 할인가가 아닌 정상가로 계산된 것은 아닌지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으면서도 몇 번을 확인하게 된다. 제대로 계산된 영수증임을 잘 알면서도 과하다 싶은 생각에 뭔가 톡톡히 손해를 본 느낌이 들고, 다른 누군가에게 억울한 마음을 따져 묻고 싶은 것이다.


친구와 함께 모처럼 점심을 같이 하면서도 메뉴판의 음식 종류보다는 가격에 먼저 눈이 갔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사람들은 다들 거리낌 없이 음식을 주문하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담소를 나누는데 나만 괜히 좀스럽게 구는 게 아닌가 싶어 한풀 기가 꺾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밤에도 불을 끄지 않고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친구의 푸념 섞인 하소연이 있었다. 불을 켜 놓은 채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건 알지만 불을 끄는 게 왠지 싫다고 했다. 부모와 떨어져 직장생활을 하는 딸과 지방에서 약대를 다니는 아들이 있는 친구는 외지로 자식들을 떠나보낸 후 유난히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덩그러니 부부만 남은 집에서 텔레비전의 소음도 없는 적막을 한 꺼풀 어둠으로 감싼다는 게 어디 그리 달가운 일일까마는 그 복잡한 심정마저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면...


썩은 열정(경상도 사투리로는 '석은 열정' 되시겠지만)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는 느낌이다. 어린 훈이를 장관에 내정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들었을 때 사무실 직원들 모두 한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저건 아니지!"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설마..." 하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썩은 열정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해치고 결국에는 멀쩡했던 자신의 생명을 잃고 마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썩은 열정이 건강한 몸과 맞짱을 뜨는 형국이랄까.


내일 4월 16일은 세월호 8주기. 나는 지금 이해인 수녀님의 <꽃잎 한 장처럼>을 읽고 있다. 2021년 4월 16일에 있었던 수녀님의 메모를 옮겨본다.


"오늘은 세월호 7주기! 나는 왠지 오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아픈 느낌이 드네. 지난번엔 이곳을 다녀간 주희.솔비와도 문자로 대화를 하고, 죽은 덕하의 엄마 김상희(사라) 씨와도 문자를 주고받았지. 오늘 방영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으나 나는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 외엔 슬퍼서 보게 되질 않는구나.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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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가 높아질수록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개인의 자유 또한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직의 구성원을 제재하는 룰은 변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지위가 올라갈수록 개인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사 혹은 감독관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면 시스템이나 규칙에 의한 제재만 가능할 뿐 다른 어느 누구의 간섭이나 영향력도 미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에서 지적되는 것처럼 사실 유명무실한 룰이나 규칙보다는 한 사람의 상사가 더 두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조직의 최정점에 올라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상사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회사와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최정점을 향해 기를 쓰는 것이다. 언덕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무거운 바위를 굴리고 또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권력의 최정점에 이른 자는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위가 오를수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신독(愼獨)에 힘써야 함은 권력에 오르는 자의 의무이자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는 방부제를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대개의 권력자는 자신에게 무한대로 주어진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 인해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종국에는 파멸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독(愼獨)에 힘쓰지 않는 권력자는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대중이 이용하는 열차의 의자에 구두를 신은 발을 버젓이 올려놓거나 하는 행위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그게 무슨 큰 죄인가 싶겠지만 스스로를 엄격히 제어하거나 삼가지 않는 권력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의 말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독(愼獨)에 힘쓰지 않는 권력자의 자유는 일종의 폭력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를 없애는 자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길 자유, 허위 경력과 주가 조작의 범죄 혐의를 받는 아내를 처벌하지 않을 자유, 멤버yuji와 같은 허접한 박사 논문을 그대로 yuji할 자유 등은 최고 권력자에게는 자유일지 몰라도 사회 구성원에게는 일종의 폭력인 셈이다.

 

사회적 지위가 오를수록 자신의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스스로를 살피고 삼간다는 건 다른 누군가를 위한 자선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위가 오를수록 신독(愼獨)에 힘써야 한다. 권력자가 약자를 다룸에 있어 손쉽다고 생각하는 건 실질적인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생각만으로도 커다란 위협이자 폭력이다.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이나 장애인을 다루기 쉬운 약자로 인식하고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된다고 믿는 사고방식 역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커다란 폭력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실체가 없는 폭력에 의해 마구 흔들리고 있다.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어떻게 되든지 간에 괜찮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하고 결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하며 최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도덕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다. 희망은 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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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봄.

매일 아침 오르는 산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가지마다 연녹색 새순이 돋고 다소곳한 진달래도 꽃을 피웠다. 숲은 나름의 질서 속에 오가는 계절을 준비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산 주변은 온통 새로 들어선 아파트로 빼곡하다. 그렇게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던 몇 년 동안 숲과 그것에 기대어 살던 동물들이 수난을 겪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소리에 민감한 뱀들이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추었고, 겨울철이면 먹이를 찾아 산 아래쪽을 향해 겅중겅중 뛰던 고라니도 보이지 않고, 이따금 나타나 나의 아침 산행길에 동무가 되어주던 너구리도 찾을 길 없고, 흔하디 흔하던 청설모도 모두 사라졌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숲의 어둠을 몇몇 산새들이 겨우 생명의 기척을 내고 있을 뿐이다. 숲은 이제 콘크리트 바다에 둘러 쌓인 작디작은 섬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언젠가 자연이 모두 사라지고 인간 홀로 남으면 인간다워지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사람에게는 '애정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동물에게 과도한 애정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개든, 고양이든 동물과 친밀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고, 그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가 조작과 허위 이력의 피의자가 처음 보는 경찰견을 꼭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 온 국민이 꼭 알아야 하는 소식은 아닐 터, 요즘 기자들은 뉴스거리가 어지간히도 없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입은 후드티나 슬리퍼를 두고 검소하다는 둥 매진이 되었다는 둥 하는 가십 거리를 뉴스 지면에 실어준다는 것도 참으로 창피한 일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기자는 참으로 한가한 사람들이다.


며칠 전에는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 보수 정권의 대표가 참석하는 건 어찌 보면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묵념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당당하게 이동하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지각 입장도 미안한 일인데 하물며 묵념도 하지 않고... 그런 오만방자한 태도가 보수의 품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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