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하는 질문에 답장이라도 하려는 듯 요 며칠 바람이 불었습니다. 습기를 말끔히 걷어낸 건조한 햇살이 대지를 말리는 동안 푸르름을 드러낸 하늘은 한 뼘쯤 높아진 듯했습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농촌의 농부들에겐 타들어갈 듯 건조한 햇살이 계절에 맞춰 알곡을 여물게 하고, 과일의 단맛을 더욱 깊게 하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일 테지만,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그저 살갗을 태우는 잉여의 열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늘에서 맞는 끈적이지 않는 바람의 감촉은 마냥 좋았습니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익숙했던 지난 계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익숙하다는 건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곧 잊힌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없는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왔고, 새로운 세상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한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했던 많은 기억들을 잊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문득, 계절이 바뀌듯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어떤 시기가 찾아오면 옅어진 죄책감에 새로운 색을 입혀 그들과의 추억을 조금씩 되살리곤 합니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에 쓴 연필 글씨처럼 한동안 잊고 지내던 추억은 뿌연 연기 속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나는 지금 김연수 작가 외 7인이 쓴 <계절 쓰기>를 읽고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와 전의령 인류학자는 여름을, 홍한별 번역가와 윤경희 문학평론가는 가을을, 김소연 시인과 김지승 작가는 겨울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와 은유 작가는 봄을 씀으로써 책은 사계절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홍한별 번역가가 쓴 가을의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나의 계절도 가을이다. 낮이 점점 짧아지고 총기도 사그라진다. 심장이 덜컹거리고 감정은 둔탁하다. 가을은 시들고 이우는 계절이지만, 무성한 잎을 내주는 대신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하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쓸모가 있는 계절이다. 그래야 하는데, 어느덧 시대가 바뀌었고 내가 지금껏 축적해 온 지식이 무용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무얼 써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대신 남이 써놓은 것을 따라서 쓰는 번역가가 되었다."  (p.40)


베란다에서도 차츰 뜨거워지는 마른 햇살의 열기가 느껴집니다. 아파트 화단의 정원수에는 지금도 짝을 찾지 못한 수컷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빈 하늘에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고, 새로운 계절에 지문을 남기려는 듯 마른 잎사귀가 지면을 향해 살랑살랑 떨어집니다. 나는 이제 익숙했던 계절과 이별하고 새로운 계절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새벽 기온에 잠이 깨어 열린 창문을 닫기도 하고, 투명해진 햇살에 지그시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가을을 잊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잊힌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 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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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걸음 걷다가 멈추고 다시 서너 걸음 걷다가 멈춘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와 같은 순간은 꽤나 빈번하게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삶이 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평생 동안 더없이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무작위로 뽑히는 각자의 삶에서 로또와 다름없는 그와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분명 아닐 테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삶에서도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꽃길처럼 순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가 길게 이어진 바람에 한여름을 방불케 하던 늦더위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요 며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던 까닭에 해가 짧아진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듯합니다. 내가 아침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만 하더라도 이제는 제법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손전등 없이는 등산로의 장애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달포쯤 전만 하더라도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이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지만 12월 22일의 동지까지 밤은 계속하여 조금씩 길어질 테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예수의 아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


"베벌리 요양 병원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최고령 환자들을 모아 구내식당 의자에 앉혀 놓고 우유가 담긴 종이컵과 쿠키가 담긴 종이 접시를 앞에 놓아주었다. 그들은 '기억해'라는 놀이를 했다. 그들의 정신이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기 전에 삶의 소소한 것들을 붙잡게 하는 놀이였다. 모두가 각자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p.180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무척이나 쓸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지막이 절대 그와 같은 처량한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수시로 다독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언론에서는 치매 치료제도 개발되었고, 암 백신도 개발되어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겼던 병들이 하나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듯 보도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미치려면 하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활짝 개지 않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닐 우의를 걸친 듯 탁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돕니다. 낮아진 기온만큼 끈적끈적한 습도도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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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지속 다니는 입장에서 암백신이나 치매 치료제 신약 개발에 대한 혜택을 차지하고라도 현재 안과에서 눈에 직접 대장 항암제를 주사맞는 입장(노인 안과 질환자의 상당수가 이 주사를 맞음)데 댜장암 치료제라고 안과처방시 비 보험처리되서 수십만원의 주사비를 개인들이 부담하고 있지요.
이런 것만 보아도 서민들한테 혜택이 갈려면 아직도 길이 멀어만 보입니다.

꼼쥐 2026-09-03 20:3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신약이 나온다고 해도 병을 앓는 환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죠. 그러니 신약은 그림의 떡일 뿐이고 말이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기억의 구름이 고난의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의식의 대지를 향해 한차례 거센 빗줄기를 흩뿌리곤 합니다. 메말랐던 의식의 대지는 그 비로 인해 한동안 습습한 과거 기억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과거 기억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작금의 초조한 현실과 뒤섞일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됩니다. 가빴던 호흡이 느려지고 그득했던 욕심도 조금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면 우리의 수명은 어쩌면 지금의 절반쯤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원리도 우리의 기억 체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겪는 고난의 능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억의 구름이 짙고 풍성하게 쌓일 테고, 언젠가 그 구름을 통해 소나기처럼 세찬 기억이 의식의 대지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말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여행 에세이 <그 좋았던 시간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합니다.


"겨울은 여름을 떠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아쉬워할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을 열렬히 그리워하는 밤. 성에가 낀 얼룩덜룩한 유리창을 보면서, 다음번 여름엔 소낙비가 내릴 때에 유리창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창 바깥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귤차를 마시다 안경알에 낀 성에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 여름의 냄새가 다녀간다. 겨울의 반대편에 여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  (p.179 '겨울에 꺼내는 여름' 중에서)


주말 동안 이어지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올해의 늦더위도 조금씩 수그러들 것 같습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의 터널을 비로소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홍수로 인한 네팔 재난의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이번 여름에 겪었던 더위와 가뭄이 가난한 나라의 참혹한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재난의 주범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선진국의 국민들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이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를 입은 네팔 주민과 사고를 당한 많은 외국 관광객의 유가족들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지고 언젠가 잊히겠지만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듯합니다.


아침에 잠깐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습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끈적끈적한 더위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어느새 에어컨의 리모컨을 손에 쥔 나는 께느른한 오수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비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구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여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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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도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귀뚜라미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뿐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더디게 다가오는 듯하지만 이것이 임계점이야, 하는 경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아침 바람에 소슬한 한기를 느끼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걸 알기에 작금의 더위를 아주 세세히 느껴보곤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듯 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계절도, 우리의 젊음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시간들도.


단단하던 몸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또한 신체의 변화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주변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덩달아 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의 기억력 감퇴나 인지 기능 저하가 아닙니다. 한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정의나 도덕성, 심지어 종교적 신념까지도 나이가 듦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했던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신념마저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개개인이 수립한 정의나 가치관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거나 자신의 정신을 올곧게 지탱하던 체력이 소진되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보였던 진보진영의 백 모 교수가 그렇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던 황 모 작가가 그렇습니다. 하물며 장삼이사와 다름없는 노 모 변호사나 신 모 변호사, 이 모 기자나 이 모 작가 등이야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어제는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인지 유시민 작가는 아직 자신의 가치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억력이나 논리는 빈틈이 없었고, 분석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잔잔바리 유튜버들은 유시민 작가의 논리를 부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인신공격과 조롱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미국작가 월리 램이 쓴 <강물이 멈춘 날(The River Is Waiting)>을 읽고 있습니다.


"오른쪽 뒷바퀴에 무언가 살짝 걸리는 느낌이 전해지자, 내가 쌓아 둔 장작더미에서 나무 한 토막이 굴러떨어졌나보다 생각한다. 장애물이라면 그거일 거라고,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나는 차를 몇 미터 앞으로 뺐다가 다시 후진하면서 장애물을 넘어갈 만큼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때 백미러로 팔을 휘저으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저래? 저 여자가 왜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거야? 그러다 나는 알아차린다."  (p.26)


우리가 알아차리는 비극은 일이 엉망으로 변한 결과일 뿐이지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는 대부분의 비극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만한 권력자로 변한 대통령의 모습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처럼 가역적인 변화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모두 가역과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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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보낼 때마다 나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 페터 빅셀이 쓴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가 떠오르곤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페터 빅셀의 말에 동의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못마땅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속의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다독이고 미화하면서 이상만 추구하는 또 다른 나에게 끝없이 변명하고 설득하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일기 쓰기가 두렵다. 살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삼 일 뒤에는 늘 포기했다. 일기장은 내 날들을 망쳤다. 낮에 경험한 일을 저녁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장을 위해 살기 시작했으니까. 일기장을 위해 움직이고, 일기장을 위해 관찰했다. 일기장을 위해 술집을 고르고, 일기장을 위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았다.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p.84~p.85)


그닥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김민석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민주당의 당원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지지하고 밀었던 후보, 모든 언론과 진보 진영의 유튜버들이 그토록 공을 들이고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펼쳤던 후보, 그럼으로써 경쟁 상대였던 다른 유력 후보를 비인격적으로 조롱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 운동, 선거 이후에 당선되지 않은 유력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이나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남은 앙금을 해소하는 데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 등은 선거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그 모든 게 현실로 재현되었을 때 사람들의 낙담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라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뀐 듯합니다. 그럼에도 선거에 동원되었던 여러 유튜버와 신임 당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공과와 전리품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듯 보이고 말입니다.


민주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아끼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선거만큼 저열한 방식의 당 대표 선거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끝없이 대통령을 팔았던 신임 당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 모든 일들을 대통령이 용인하고 지지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어쩌면 자신들의 권모술수가 사람들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대중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조만간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완전히 철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민주당을 탈당하여 당원 자격마저 없앤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취임한 지 1년 남짓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쳐가는 모든 역사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겠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우리 곁에는 여전한 더위가 숨을 쉬기 어렵게 몸을 감싸고 권모술수에만 능한 정치인들이 여름의 짜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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