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이 조금 내렸습니다. 가볍고 건조한 눈이었습니다. 아파트 인근의 차도와 인도는 비교적 따뜻했는지 내리자마자 금세 녹아 비가 내린 듯 젖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내리는 눈의 방향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등산로 초입의 계단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고, 계단을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자국이 지문처럼 남았습니다. 등산로와 등산로 주변의 낙엽 더미에도 눈이 쌓여 어둠에 지친 숲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내몰린 차량들이 새벽부터 도로를 질주하고,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어느 노동자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지 만 12년이 되었건만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담배 연기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삶에 나른한 권태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쩌면 멀리하던 담배에 불을 붙여 진한 연기를 가슴 한가득 빨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정기현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걷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익숙한 골목골목을 무작정 걷는 느낌입니다. 도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에 익숙해진 도시인이 자신의 보조에 맞춰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낡은 현수막에 실린 어느 정치인의 구호나 전봇대에 나붙은 과외모집 광고 등 우리는 도시 곳곳에 남은 여러 문장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새미는 보리밭 쪽으로 걸었다. 보리밭 반대쪽 산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길도 아빠 차 타고 매번 지나던 길이라 영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걸어본 일이 없어 새미는 할머니와 매일 걷던 보리밭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할머니와 걸을 때에는 보리밭 길 정도야 선산으로 가기 위한 통로라는 것밖에 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혼자 걸으려니 그 길까지도 지나치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p.120)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때로는 시간의 경과마저 잊게 합니다.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였을 때에는 시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후라는 걸 우리는 너무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익숙했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말마다 내가 사는 도시 전체를 다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자주 지나치던 공원이나 천변을 느린 속도로 걸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아주 느린 속도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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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나아진 감이 있습니다만 요 며칠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밖에 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육체적으로 오던 무력감이 정신적인 우울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게 됩니다. 며칠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도 이럴진대 개인의 인생에서 기나긴 좌절이나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진심으로 바라던 게 있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최악의 경우 단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슬픔을 조금쯤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기본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씀으로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의 효능은 본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름 결심하였던 게 있었습니다. 내 블로그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 능력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한 이웃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와 이웃을 맺었던 분이 한동안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지도, 나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 보이면 이웃을 취소하곤 합니다. 이웃 한 분이 취소됨으로써 나에게 이웃을 신청하였던 다른 분(말하자면 이웃 대기자)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친구처럼 지내는 인터넷 서점의 개인 블로그는 그렇지 않고, 소위 sns라고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그렇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가급적이면 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보려 애쓰고 있고, 그들이 현재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보니 주말 휴일이 아니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되돌아볼 잠시의 짬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씩이라도 나의 글을 읽거나 나의 블로그에 입장하여 잠시 머무르는 분이라면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주 가끔씩 하늘을 보는 것처럼 나의 블로그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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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도로는 젖어 있었다. 도시인의 피로를 닮은 어둠이 새벽녘까지 길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여느 날처럼 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에 오르자 주택가 어둠으로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붙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가사각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낙엽이 쌓인 곳을 밟을 때는 저벅저벅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에 비해 얼룩덜룩 잔설이 쌓인 등산로를 지날 때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곧추선 서릿발을 밟는 듯한 쾌감이 찌릿찌릿 전해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미끄러운 등산로 탓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작심삼일도 한참이나 지났으니 새해 계획으로 운동을 결심했던 이들도 이제는 적당히 쉴 때가 되긴 했다.


오늘은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혐의 피고인 8명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있는 날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결심 공판에서 있었던 변호인들의 낯 뜨거운 '침대 변론'으로 인하여 구형도 하지 못한 채 오늘로 연기되었던 바, 내란 수괴인 윤석열이 법정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는 모습을 오늘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게 영 마뜩지 않지만, 나라와 국민 모두를 사지로 몰았던 내란 수괴에 대한 죄과를 묻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노라면 윤석열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지능이 낮은 건지 아니면 슈퍼챗을 받기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보면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고, 단 하나 감정만 있는 듯하다. 그렇게 떠벌여서야 타인을 설득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고 있다. 인터뷰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지는 않은, 말하자면 그들의 노고에 비해 인색한 대우를 받는 인물들이다. 인터뷰의 성패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터뷰어의 공감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가 더없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터뷰 대상자의 선택이 오롯이 이슬아 작가에게 주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이 치우고 너무나 많이 헤아리는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순덕이라는 개인이 해내는 촘촘한 일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순덕 님과 함께 목마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걷다가 순덕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짱을 꼈다. 27년을 일하면서 이렇게 목마공원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병원 정문 코앞에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고, 항시 동동거리며 지낸 것 같다고 하셨다. "일 얘기를 이렇게 쭉 한 거는 처음이에요. 얘기를 하니까 행복하네." 순덕 님의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삶이라는 게 몹시 길게 느껴졌다."  (p.49)


짧은 겨울 해가 떨어지자 부쩍 찬 기운이 돌고 있다. 내일 아침에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쩌면 이번 겨울에는 단 한 차례도 꺼낸 적 없는 아이젠을 챙겨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쨍한 추위를 경험하고 나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가슴 한가득 차오르곤 한다.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둥 컴퓨터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도 새벽 산행을 권하고 싶다.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내가 이제껏 멍청한 짓거리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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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자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눈발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뒤섞입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날씨입니다. 나는 저녁 약속을 취소한 채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오히려 잘됐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한두 시간의 만남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을 하면 그것도 못할 짓입니다. 휴일을 휴일답게 보낼 생각이면 오늘처럼 조용히 집에서 머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날씨를 핑계로 말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따금 인생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들이 더러 있습니다. 엊그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옆구리에 서너 권의 책을 들고 나를 찾아온 후배는 새해를 맞아 뭔가 계획을 단단히 세운 듯했습니다. 그가 내 앞에 펼쳐놓은 책은 주식 관련 서적 한 권과 두 권의 자기계발서였습니다. 그는 올해부터 경제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이 선택한 자기계발서의 지침에 따라 잘못된 습관도 뜯어고칠 생각임을 거창한 포부처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왔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자기계발서에 대해 지나치다 싶은 거리 두기를 해 왔습니다. 그런 처지에 새해 들어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신의 낡은 습관을 버리는 것은 물론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유형의 자신으로 변모해가고자 하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듯 느껴졌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와 비교하여 신체적, 정서적 특징도 다르고,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환경도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지 등 모든 여건이 다른데 저자가 요구하는 일체의 행동 지침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회의적이고, 만일 이것을 절반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독자 스스로가 느낄 실망이나 좌절감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따라 하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들은 또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대개 저자가 이룩한 인생 전체에 대한 노하우이자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한두 가지의 가벼운 팁이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낮은 등급의 기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생 전체에서 얻은 수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저자처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이 상이한 독자 개개인이 그 많은 기술을 습득하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소설 한두 권을 읽거나 철학책 한 권을 읽는 게 낫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소설은 적어도 자기계발서처럼 수많은 인생 노하우를 빼곡하게 적어 놓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한두 가지의 주제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정도의 인생 지식은 누구나 쉽게 깨닫고 습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철학책 역시 많은 그리고 쉽게 깨우치기 어려운 현학적인 지식들이 가득 담겨 있을 듯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권의 철학책에서 하나의 인생 노하우만 습득하여도 성공적이라 하겠습니다.


인생상담을 받기 위해 저를 찾았던 후배는 저와의 상담에서 별 소득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지 않았을까 싶어 제가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찬바람만 스쳐갑니다. 내리던 눈도 그치고 주차장엔 하얗게 쌓인 눈이 오싹한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저녁 약속을 취소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말만 길어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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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1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요즘 나한테 찾아오는 후배는 모두 신세타령 삼아 술 한 병 들고 독거노인이 살고있는 원룸 임대아파트로 찾아오곤 합니다. 그저 오는 사람 난 반갑기만 하지요.

꼼쥐 2026-01-11 17:1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부럽습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저는 술 잘 드시는 분이 늘 부럽습니다. 저 역시 술이 잘 받는 체질이었으면 후배들이 술을 사들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 출판업계에 ‘18개월 법칙‘이라는 정설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계발서를 구입하는 사람은 이전 18개월 이전에 자기계발서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겁니다. 자기계발서의 자기위로성 한계라고 할까요.

꼼쥐 2026-01-11 17:19   좋아요 0 | URL
그런 정설이 있군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우리니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투어 읽힐 수밖에 없고,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그나마 자기계발서라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제로 작용할 듯합니다. 결과가 어찌됐든... 그 기한이 18개월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말이죠.
 

선뜻 나서기 어려운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한 성격의 사람도 내키지 않는 자리는 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대개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한두 명쯤은 참석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리 불편한 자리일지라도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시간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석하게 되지만,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할 사이라면 참석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의 참석 여부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묻는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빴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인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죠. 나도 이따금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주십사 초청을 받게 되면 그와 같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인 모임도 이럴진대 대통령이나 외교관처럼 국가를 대신하여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의 부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의 행보에 비하면 괄목상대의 변화이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매 순간이 즐거워서 임했던 것이겠습니까. 물론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주었을 때는 그에 맞는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했던 외교 행보를 되돌아볼 때 그들은 정말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국가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이 당선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소한 무렵의 이맘때면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위는 때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독서법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밀 파게의 저서 <단단한 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p.202)


책에서 작가는 느리게 읽기와 거듭하여 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허다한 현실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 까닭에 느리게 읽기는 강조하되 거듭하여 읽기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2026년의 1월도 벌써 7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누군가에게도 안녕을 전하고픈 저녁입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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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1-10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