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특정 장소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듯한 차림의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리산 정상에서 숏팬츠 차림의 관능적인 여인을 본다거나, 스파이크 골프화만 신으면 당장이라도 필드에 나설 수 있을 것처럼 골프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배 통통한 남자를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만난다거나, 클럽의 플로어에서 격식을 갖춘 양복 차림의 청년을 만난다거나, 어느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 사이에서 도드라진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를 보는 경우이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지구를 빛내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고작 내 앞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뒤로는 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그동안 나는 몇 칸이나 뒤로 밀려났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지독한 배신인지요.

 

나는 끝내 벌어진 틈새를 메우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영혼을 그들의 영혼 가까이에 두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의 정원에 오직 내 잣대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 것이지요.  이 얼마나 고독한 영혼인지요.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채로운 꽃들이 서로를 시기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지금껏 청맹과니의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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