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릴레이 페이퍼 >
아마 이 책의 제목에 더 집중 했다면 나는 고양이를 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양이 털갈이에는 브레이크란 없지>
초승달이 뜬 날 구해서 이름이 승달인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두 자매의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웃으며 읽었던 책이었는데, 고양이 털갈이에 대한 지식이 크게 없어서 웃고 지나쳤던 무지한 나를 탓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흰 털옷을 입은 고양이가 집에 살기 때문에 검정 옷이나 짙은 색 옷을 입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막혀버린 해외여행 멤버 중 한 언니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난후 앞으로 여행을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고양이털이 자신의 신체에 붙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날 웃으면서 그럼 앞으로 같이 여행은 가지 말아요, 라고 말하고 왔지만 집에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다. 내 고양이 털 때문에 나의 인간관계가 이렇게 끊어질 수도 있겠구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 나 밖에 없는 내 고양이는 잘못이 없으니 탓하지 말자. 그렇게 인간관계가 정리가 되었지만 브레이크 없는 고양이 털갈이는 정리되지 못했다.
2017년 독일로 삼 개월 정도 있다가 왔다. 독일에서의 첫 한 달 동안 마음의 상처를 많이 얻었다. 후배의 집에서 숙식이 생각보다 녹녹치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돈도 있는 여잔데, 왜 타지에서 이렇게 있어야 하나 일요일마다 맥도날드에 아침부터 앉아 커피와 햄버거를 먹으며 울었다. 그리고 배낭에 짐을 꾸려 독일을 한 바퀴 여행을 하고 한 달간의 서러움을 털어버리려 했지만 그 한 달의 마음고생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괜찮아지겠지 했던 그 마음의 병이 극대화 되었고, 바닥까지 낮아진 자존감에 나는 죽을 결심도 했었다. 죽고 싶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때 받은 모욕들이 떠올라 밤마다 울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이런 모욕을 독일에 놓고 오지 못해서 미칠것 같은 마음으로 삼일을 울었던 적도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해 줄 수 없었다. 간혹 내가 좀 힘들다 괴롭다는 얘기는 했지만 매일 밤마다 울고 있다는 얘기는 할 수 없었다.
그때 친한 지인이 잠들지 못한 외로움에 죽어가고 있는 나에게 심각하게 얘기를 했다. 우선 네가 살릴 고양이가 있으니 이 아이가 다른 분에게 입양을 갈때까지만 좀 케어를 해 달라고 했다. 지인의 친한 분이 분양을 받았는데 고양이 알러지가 심해서 결국 키울 수 없어 고민하던 차에 죽어가는 나를 살려보겠다며 어린 고양이를 보냈을 것이다. 한 번도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생각은 안했다. 나는 방랑생활을 즐기기 때문에 절대로 고양이를 키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혹은 두 달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생각뿐이었으니까. 임시 보호라는 이름으로 고양이를 키우는 동안 고양이가 나쁜 환경에서 출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고양이는 허피스라는 고양이 감기에 걸려있었고 피부병도 있었다. 두 달 정도만 치료를 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 동안 허피스가 치료 되지 않아 유명한 병원은 다 다녔다. 일 년이 지나니 허피스가 치료가 되었는데,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입양을 보낸다는 것이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장기 프로젝트가 있는 나의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입양을 결정했다. 그렇게 내 곁에 온 고양이는 4년째 동거중이다.
이렇게 몰골이 불쌍했던 녀석
좀 자라서 귀여웠지
이런곳에 들어가 있으면 찾지를 못했네.
매일 숨고 찾는 것은 집사의 몫
노르웨이 숲이라는 참 예쁜 이름의 품종묘. 노르웨이 숲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그래서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루키. 뭐 그렇게 지어졌다.
3개월쯤 된 고양이는 매일 사고를 쳤다. 참 작은 녀석이 어찌나 손, 발, 다리를 다 물어서 어디서 맞고 다니는 사람처럼 상처투성이였다. 익숙해지니 그것도 나아지면서 루키의 사회성도 길러지고 나도 고양이에게 길들여져서 이제는 서로가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장난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간혹 그 정도가 넘어설 때도 있기는 하지만.
루키를 키우고 처음으로 여행을 가기위해 고양이 전용 호텔링 결정을 하고 첫날 입소 때 관리인에게 말했다. 우리 고양이 순해요. 하악질도 못해요.
그날 사진을 찍어 보낸 관리인이 말해줬다.
“집사님, 루키는 하악질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받아보고 여행지에서 빵터졌다. 아, 자식 성깔있구나. 온순하기만 한줄 알았는데 아녔어
하악질 사진에 돌아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잘 지냈나고 한다.
애교도 부리고 장난감도 잘 가지고 놀고 ( 하루에 한 시간씩 놀아주심)
자기 자식 부모만 모른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다. 루키는 내게 하악질 한 번도 안했는데, 할 수 있구나. 몰랐네.
죽어가던 나를 살린 루키는 매일 퇴근하는 나를 기다린다. 그래서 주말에도 나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한량 같은 인생으로 종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극진히 모시느라 퇴근 후 손발이 쉬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인간관계를 정리시켜주고 내 옷장 속 검정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고, 내 지갑이 홀쭉해져도 웃을 수 있는 내 고양이, 루키. 내일도 열심히 사냥 갔다 와서 낚시대를 흔들어줘야겠다.
자주 누워 계시는 분.
때로는 나를 하루종일 웃게 만드는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