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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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잠에 열강하는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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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을 보고 있다. 남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미 한국에서는 제주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조만간 오끼나와 학자들에 의해서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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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12-0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은 다 좋은데 자판 때문에 오타가 많다. 가로 쓰기가 안되니 영
 
철의 제국 가야 -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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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연맹체? 김유신? 신라?

 

  사실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건국되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가야라는 나라 자체가 신라에 멸당당하고 흡수된지 오래고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여,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철을 정련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중앙 집권체로 성장하지 못하여 신라에 의하여 합병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마저도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가야계 인물이 없었다면 알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서 여러가지 상상과 비약으로 그 공간들을 채울 수 밖에 없다. 모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던 가야계 사람들의 결사체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왕망의 후예에 의한 가야의 건설 이야기까지 가야는 좀처럼 그 실체를 유추할 수 없는 카더라는 이야기들이 넘치는 고대국가다. 물론 카더라는 유추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면 그것은 역사적인 추론이 아니라 역사 소설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역사적인 근거와 거기에 기반한 그럴듯한 이야기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문제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어느 것을 선별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가야가 왕망의 후예에 의해서 건국되었다는 이야기라든지, 일본의 야마대국 여왕 히미코가 김수로의 딸이라고 하는 부분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재야 사학자 가운데 그러한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듣고는 있지만, 아직은 소수의 학설일텐데 이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건대 저자는 이쪽 학풍을 이어 받은 것 같다. 아마도 흉노족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한국의 고대사로 받아들이려고 시도하는 사학자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 고대사를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그 근거가 희박해서야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환단고기가 생각이 난다. 아직 역사적인 판단 기준이 서 있지 않던 그 시절에(물론 지금이라고 역사적인 판간 기준이 명확하게 서 있다고 할 수 없는 역사 덕후이지만) 읽어도 환단고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한민족에서 시작되었다는 투의 이야기, 기독교의 하나님 여호와가 사실은 여와가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이렇게 황당무계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근거해서 단군의 계보를 이야기한다든지, 우리 민족은 대단한 민족이었다는 투로 말하는 것은 역사적인 자기 위안을 넘어 자기 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를 권한다.

 

  이 책을 읽던 시기에 같이 읽었던 책이 가락국의 후예들이다. 이 책은 가락국의 성씨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가문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같이 읽었기 때문에 철의 제국 가야에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을 선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혹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락국의 후예들이라는 책도 같이 읽기를 권한다.

 

  역사는 자기 위안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부끄럽고 힘든 역사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한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나라는 이렇게 대단한 조상들을 두고 있다는 식의 민족 사관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축소하는 식민사관만큼이나 위험하다. 다만 식민 사관만을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은 꽤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을 모두 가르치고 비교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꽤나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아쉬움에 방점을 찍을지 재미에 방점을 찍을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나는 재미에 방점을 찍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잠시 쉬어가는 책으로 읽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다. 이런 연구들이 축적이 되어서 언젠가는 가야사에 대해서 조선사나 고려사만큼이나 저서들이 축적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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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劍
박흥용 지음 / 포이에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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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용!

 

  아마 이 이름 석자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과 내 파란 세이버를 통하여 박흥용의 작품을 만난 사람들이라면 십중 팔구는 그리할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포이에마라는 출판사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박흥용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에 몇번을 망설인 끝에 이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앉아서 단숨에 읽어 내렸다. 다만 책을 읽어 내리는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에서 조선 최고의 칼잡이와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아직은 설익은 주인공 칼잡이의 이야기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그리는 칼잡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이 아렸다. 또한 시대의 모순에 천착하면서 칼잡이의 인생으로 풀어가는 그의 집요한 서술 방식은 혁명의 정당성과 과격성, 실패한 혁명의 씁쓸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만 아쉽다면 영화화 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진지함과 집요함이 영화의 단순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삭제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박흥용의 초창기 작품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체가 확연히 살아있기는 하지만 묘사의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점에서 그가 느꼈을 아쉬움이 손에 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여타 그의 작품에서 유지되고 있는 진지함과 성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상과 삶의 문제! 기독교인 박흥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과 삶의 문제, 머릿말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를 빌리자면 작품과 빵의 문제! 이 책은 끊임없이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안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간극을 발견하다보면 어느샌가 그 둘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만나고 하나가 된다. 삶에 대한 진지함은 이상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삶을 무시한 이상은 이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발견하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욕을 먹고, 교회가 지탄을 받는가? 빵과 작품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 아닌가?

 

  주인공은 묘하게도 아름다움이나 돈을 추구하는 환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오직 직검만을 만든다. 찌른다는 검 특유의 속성을 위해서 날카로운 직검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쳤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는 그렇게 직검에 미쳐서 살았다. 아버지의 직검을 보면서 끊임없이 직검에 몰두한다. 그에게 사람도, 부도, 명예도 아무 것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이 없어서 힘들고 어렵지만 그는 오직 직검만을 연구하고, 마음에 새기고 손으로 직검만을 만든다. 그런 그가 절름발이 아이를 만나고 그를 위하여 아버지의 직검으로 난생처음 검이 아닌 다른 도구를 만든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이상과 꿈이 담긴 아버지의 직검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자기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아버지의 직검을 포기하는 순간 그렇게도 찾았던 직검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미쳤다고,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기 영혼에 새겨진, 그리고 평생을 추구했던 직검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정에 그를 사로잡던 수많은 갈등과 고민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는 예수의 말로 끝이 난다. 어찌보면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만의 말이 아니라 평생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검이라는 그의 만화는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앙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곱씹어 볼수록 난해한다. 한권의 철학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신앙서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 해석도 가능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그의 고민은 말장난이 아니라 그의 삶의 근간을 붙잡고 흔드는 고민과 번민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은 박흥용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며,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번민하는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흥용! 그는 인생을 칼로 푸는 사람이다.

빵과 만화와 죽음-

작품이냐, 양식이냐!
만화가 중에는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해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직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자기 존재를 느끼고 표현하는 작업`으로서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념의 담장을 더욱 높이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땅으로 성역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덮고 당장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기 싫은 그림을 그리는 고통보다는 배고픔의 고통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잠깐의 창작 경험으로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평을 늘어놓으며 원치 않는 작업을 하다 간혹 병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것에 익숙해져 창작욕구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어느덧 무덤덤한 생활인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어떤 동료들은 빵과 만화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고, 또 K 형처럼 삶을 포기하기까지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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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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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변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현실은 가끔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와는 엇박자를 보일 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그렇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대는 변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지형도를 살펴보자. 남과 북으로, 동과 서로 갈라져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갈라져 있고, 노와 소가 갈라져 있다. 왜 그럴까? 그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잠시 접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부모님 세대가 자녀 세대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아왔던 시대는 분명 우리가 사는 시대와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 자녀 세대와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사고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한 예를 들어보자. 몇년전 MB가 청년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외쳤던 말이 있다. 젊은이의 생각을 바꿔라. 젊은이의 생각을 바꾸고 눈 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일자리가 많은가? 말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녀에 대해서만큼은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대학을 나온 사람은 인구의 한줌도 되지 않던 시대였다. 학교에서 부모님들의 학력을 조사하던 때의 일이다. 부모님 가운데 두분 모두 고졸만 되어도 많이 배우셨다고 놀라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고졸이라는 학력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시대에 고졸은 학력 계급의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기 자녀들을 수백만원짜리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최소한 자기들보다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겠는가?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자신들이 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요즘 대학생이 눈이 높아졌다, 배가 부르다, 혹은 역사 의식이 없다고 비판하고 깎아 내리는 것은 "나 무식한 사람이요, 시대의 변화도 모르는 사람이요."라고 자인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정치 의식은 또 어떤가? 과거에는 대통령을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왕처럼 떠받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대통령이지, 왕은 아니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욕을 먹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 왕처럼 군림하려고 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비웃음이 도를 넘었다고 엄포를 놓는다면 개그의 소재가 될 뿐이다.

 

  이성계와 이방원만큼 이 사실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없다. 흔히 우리는 이성계와 이방원을 해석하면서 이방원은 세종의 태평성대를 열기 위하여 온갖 악역을 자신이 감당한 결단의 군주로, 이성계를 자식 사랑에 치우쳐서 시대의 변화에 반동하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덕일씨가 지적한 것처럼 이성계의 시대에도, 이방원의 시대에도 개혁을 진핸하는 가운데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시대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다만 우리가 이성계에 대해서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반동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그가 자기의 사고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갖고 가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다.

 

  이성계의 시대에는 고려의 멸광과 조선의 창업, 이 안에서 조선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어떻게 놓을지가 정치 판단에서 가장 고려할 사항이었다. 조선의 창업을 뒤흔든다면 아무리 명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대항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방원의 시대는 창업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창업을 어떻게 이어갈 것이며, 어떻게 발전의 단계로 나갈 것인가를 더 고려해야할 시대였다. 더군다나 명이 주체라는 강력한 권력자를 황제로 맞아들였다면 이 부분을 변수로 놓고 모든 것들을 판단해야 한다. 이성계는,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동반자였던 정도전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자신들의 시대가 변화하는 것처럼 명도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명을 과거의 명으로 판단하고 대처하고 있다. 괜히 민족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조선이 명과 한판 했더라면 요동을 재탈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만약이라는 역사관과 미련은 말 그대로 미련일 뿐이다.

 

  이성계와 이방원 모두 시대의 흐름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다만 두 사람이 파악한 시대라는 것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데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성계도 이방원도, 심지어는 존재감조차 없었던 정종도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에 세종의 시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인조반정처럼 정말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바보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조선이 발전의 단계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 어릴 때는, 내가 말단일 때는, 내가 청년일 때는 이런 말들로 훈계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나라가 온통 분열과 갈등 투성이가 아닌가? 진보도 보수도 훈계질을 그만두고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성계파요, 나는 이방원파요 편가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시대는 우리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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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11-07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씨의 새 책인가봐요. 구해서 읽어볼 책이네요. 이성계-이방원의 시대와 거사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나름대로의 이유를 분석한 듯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자신의 옛시절을 지금 세대와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은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사고를 통해 지금 세대가 우리보다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소위 `배부른 소리한다`라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더 많죠.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와 세월에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독서는 그런 의미로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하네요.

saint236 2014-11-07 17:28   좋아요 0 | URL
제일 확실한 꼰대짓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죠...^^ 이덕일씨의 역사특강 시리즈 같습니다. 나온지는 몇달 되었고요..